호손 풋볼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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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호손 풋볼 클럽은 호주식 축구 리그(AFL)에 참가하는 빅토리아주의 프로 축구 클럽이다. 1902년 창단되어 1925년 VFL(현 AFL)에 합류했으며, '호크스'라는 별칭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 존 케네디 시니어 감독 부임 이후 1961년 첫 프리미어십을 달성했고, 1980년대 전성기를 맞아 7번의 결승 진출과 4번의 우승을 기록했다. 2000년대 앨러스터 클락슨 감독 부임 이후 2008년부터 2015년까지 3번의 우승을 포함, 4번의 프리미어십을 추가하며 명문 구단으로 자리매김했다. 2022년 샘 미첼 감독 부임 이후 2024년 7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등 재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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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손 풋볼 클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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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 | |
공식 명칭 | 호손 풋볼 클럽 유한회사 |
별칭 | 호크스 |
모토 | Spectemur Agendo (행동으로 평가받자) |
창단 | 1902년 |
VFL 가입 | 1925년 |
색상 | 갈색 금색 |
리그 | AFL: 남자 시니어 AFLW: 여자 시니어 VBFL: 시각 장애인 (혼성) VWFL: 휠체어 (혼성) CWFL: 휠체어 (혼성) |
회장 | 앤드루 가워스 |
CEO | 애시 클라인 |
감독 | 샘 미첼 |
주장 | 제임스 시실리 |
홈 구장 | 멜버른 크리켓 그라운드 |
보조 구장 | 유니버시티 오브 태즈매이니아 스타디움 |
수용 인원 | 100,024명 |
보조 구장 수용 인원 | 19,000명 |
과거 홈 구장 | 글렌페리 오벌 |
사용 기간 | 1906–1973 |
과거 홈 구장 2 | 프린세스 파크 |
사용 기간 2 | 1974–1991 |
과거 홈 구장 3 | 웨이벌리 파크 |
사용 기간 3 | 1990–1999 |
훈련장 | 웨이벌리 파크 (2025년까지) 케네디 커뮤니티 센터 (2025년부터) |
웹사이트 | hawthornfc.com.au |
성적 | |
시즌 | 2024 |
리그 순위 | 7위 |
최종 순위 | 6위 |
최다 득점자 | 마비오르 촐 (37골) |
최고 & 공정 선수 | 제이 뉴컴 |
최고 & 공정 선수 메달 | 피터 크리민스 메달 |
우승 기록 | |
VFL/AFL (13회) | 1961 1971 1976 1978 1983 1986 1988 1989 1991 2008 2013 2014 2015 |
리저브/VFL (7회) | 1958 1959 1972 1985 2001 2013 2018 |
VFLW (1회) | 2018 |
오스트레일리아 챔피언십 (1회) | 1971 |
2. 역사
2. 1. 창단 초기 (1902-1924)
1902년 3월, 알프 코스키는 여러 지역 클럽들을 통합하여 호손 풋볼 클럽을 창단하고 메트로폴리탄 주니어 풋볼 협회(MJFA)에 참가했다.[10] 호손의 첫 승리는 1902년 4라운드에서 켈틱을 18점 차로 이긴 것이었다.[11][12] 1905년에는 보로다라 풋볼 클럽과 합병하여 보로다라의 색상인 빨간색 띠가 있는 검은색 저지를 채택했지만, "호손"이라는 이름을 유지했다.[15][16][17]1906년 글렌퍼리 오벌 개장으로 공식 명칭을 '''호손 시티 풋볼 클럽'''으로 변경했지만, 클럽은 계속해서 단순히 호손으로 알려졌다.[17] 1912년 클럽은 성공적인 주니어 클럽인 '''호손 로버스'''와 합병하여 로버스의 파란색 "V"가 있는 금색 저지로 변경하고, 다시 공식적으로 "호손 시티"로 이름을 변경했다.[18][19] 이후 의회는 빅토리아 풋볼 협회(VFA)에 가입을 신청했고, 1914년 호손이 해체된 멜버른 시티 풋볼 클럽을 대체하면서 가입이 승인되었다.[20][21]
클럽의 첫 번째 과제는 클럽의 색상을 결정하는 것이었는데, 파란색과 금색 유니폼은 이미 윌리엄스타운에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변경이 필요했다. 1914년 2월 17일에 열린 특별 총회에서 J. 브레인 씨가 새로운 색상으로 갈색과 금색을 제안했고, 이 안건은 통과되었다. 메이블룸스는 VFA 첫 시즌에 3승 1무를 기록했다. 선수들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결과로 1915년에는 최하위를 기록했다. VFA는 1916년과 1917년에 휴식기에 들어갔고, 호손은 1918년에 재개되었을 때 경기에 참가하지 않았다. 1919년 호손이 재개되었을 때는 더 경쟁력이 향상되어 8승을 거두고 10개 팀 중 6위를 차지했다.
빌 월튼은 1922년 호손의 캡틴-코치로 임명되었으나 포트 멜버른으로부터 이적 거부를 당했다. 1922년, 클럽은 승률에서 밀려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호손은 VFA에서 새로운 기록 점수를 세웠는데, 30.31.211점을 득점하여 프라란 6.9.45점을 기록했다. 1923년, 월튼은 이적 허가를 받았고, 클럽은 4위로 시즌을 마쳐 결승에 진출했지만, 준결승전에서 포트 멜버른에 패했다. 1924년, 클럽은 5위로 시즌을 마쳐 4점 차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2. 2. VFL 합류와 초기 어려움 (1925-1949)
1919년 이후, VFL에는 9개의 클럽이 있었고, 이로 인해 매주 토요일마다 한 팀은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VFL은 열 번째 클럽의 가입을 통해 이러한 바이를 없애기를 원했다.[22] 1925년 1월 9일, 칼턴의 레그 헌트가 의장을 맡은 VFL 위원회 회의에서 9개 클럽에서 12개 클럽으로 대회를 확장하는 문제를 검토했고, 1925년 1월 16일 열린 추가 회의에서 VFL은 Victorian Football Association (VFA) 소속 클럽인 호손, 풋스크레이 및 노스 멜버른의 가입을 결정했다.[23]'''메이블룸스'''라고 불렸던 호손 풋볼 클럽은, 리그 초창기에는 하위권을 맴돌며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24] 칼튼, 리치몬드, 콜링우드[24]와 같은 구단과 달리, 호손은 축구 경기에 거의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고 주요 산업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선수 수급 및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버트 하이드, 버트 밀스, 스탠 스핀크스, 알렉 알비스톤, 콜 오스틴과 같은 선수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호손은 리그에 참여한 첫 17년 동안 한 시즌에 7경기 이상을 이긴 적이 없었다.
1942년, 로이 카잘리 코치는 기존 별명인 "메이블룸스" 대신 "호크스"라는 새로운 별명을 제안했다. 1943년은 클럽이 VFL에 합류한 이후 최고의 시즌이 되었지만, 곧바로 순위표 최하위로 돌아갔고, 세인트킬다와 함께 꾸준히 우든 스푼을 놓고 경쟁했다. 1944년부터 1953년까지, 클럽은 단 한 해를 제외하고 매년 꼴찌 또는 꼴찌에서 두 번째로 순위를 기록했다.

1949년, 하프백 플랭커 콜 오스틴은 브라운로 메달을 사우스 멜버른의 론 클레그와 공동 수상했지만, 당시 규정에 따라 수상은 인정되지 않았다. 리그는 이후 동점 결과에 대한 시스템을 변경했고, 1989년에 그는 사망 1년 전에 메달을 소급해서 받았다.
2. 3. 성장과 첫 결승 진출 (1950-1959)
1950년, 밥 맥캐스킬이 코치로 임명되었으나, 주장 선임 과정에서 케빈 커란을 주장으로 임명하려는 맥캐스킬과 알렉 알비스톤 전 주장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다. 브라운로 메달리스트 콜 오스틴은 알비스톤을 지지했으나, 이사회는 맥캐스킬의 편을 들어 두 선수는 팀을 떠났다. 이 여파로 팀은 1950년에 단 한 경기도 승리하지 못했다. 같은 해, 존 케네디와 로이 시몬즈가 합류했다. 케네디는 1955년부터 1959년 은퇴할 때까지 주장을 맡았고, 클럽 최우수 선수상을 4번 수상했다. 시몬즈는 1955년에 클럽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1952년, 잭 헤일이 코치로 부임했다. 그는 밥 맥캐스킬의 건강 악화로 인해 1952년 6월에 사망하면서 코치직을 승계했다. 헤일은 VFL 결승전 수익금 배당을 통해 클럽의 재정적 경쟁력을 강화하고,[24] 클럽에 만연했던 안일한 태도를 없애며 팀의 기강을 확립했다.
1954년, 호손은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클레이턴 "캔들스" 톰슨을 영입했다. 톰슨은 1953년 전국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를 상대로 10골을 넣은 선수였다. 존 펙, 앨런 우들리, 노엘 보이트, 브라이언 칸 등 젊은 선수들이 합류하며 팀은 성장했다. 1955년에는 샌드허스트 출신의 그레이엄 아서가 합류하여 존 케네디에 이어 첫 해에 클럽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브렌단 에드워즈는 1956년에 합류했다.
1957년, 호손은 멜버른 크리켓 경기장(MCG)에서 열린 준결승전에서 칼턴을 꺾고 VFL 결승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그러나 예선 결승전에서 멜버른에게 패배했다.
2. 4. 케네디 시대와 첫 프리미어십 (1960-1982)

1960년, 존 케네디가 호손의 코치로 부임하며 선수들에게 강력한 훈련 체제를 도입했다.[24] 존 위네케, 필 헤이, 말콤 힐 등이 1960년에 데뷔하였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1961년, 호손은 풋스크레이를 꺾고 첫 번째 프리미어십을 획득했다.[26] 브렌든 에드워즈는 그랜드 파이널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1962년에는 5승만을 거두며 9위로 부진했다. 1963년에는 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그랜드 파이널에서 지롱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24] 1964년 그레이엄 아서가 선수 겸 코치를 맡았지만 준결승에서 멜버른에게 패하며 5위에 그쳤고, 1965년에는 최하위로 추락했다.
1967년 존 케네디가 코치로 복귀하며, 돈 스콧등이 영입되었고, 피터 허드슨은 1967년에 영입되어 즉시 리그 최고의 풀 포워드가 되었다. 1970년대에 피터 허드슨은 홈 앤 어웨이 시즌 최다 득점 기록 (146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1971년, 호손은 세인트 킬다를 꺾고 두 번째 프리미어십을 획득했다.[27]
1970년대에 호손은 노스 멜버른과 강력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세 번의 그랜드 파이널에서 맞붙었다. 1976년, 호손은 1975년 그랜드 파이널에서 노스 멜버른에게 당한 패배를 설욕하고 세 번째 프리미어십을 획득했다.[27]
1978년, 호손은 그랜드 파이널에서 다시 노스 멜버른을 꺾고 네 번째 프리미어십을 차지했다.[27]
2. 5. 영광의 시대 (1983-1991)
1980년대는 호손 풋볼 클럽의 최고 전성기로, 7년 연속 결승 진출과 4번의 프리미어십 우승을 차지했다. 이 기간 동안 호손은 에센든과 3번의 결승전에서 만나 1승 2패를 기록했다.[30]
1983년, 호손은 1983 VFL 그랜드 파이널에서 에센든을 20.20 (140) 대 8.9 (57)로 꺾고 다섯 번째 프리미어십을 획득했다.[30] 이는 당시 그랜드 파이널 최다 점수 차 기록이었다.
1983 VFL 그랜드 파이널 | G | B | Total |
---|---|---|---|
호손 | 20 | 20 | 140 |
에센든 | 8 | 9 | 57 |
경기장: 멜버른 크리켓 그라운드 | 관중: 110,332 |
이후 1984년과 1985년 결승전에서는 에센든에게 패했다.[30]
1986년, 호손은 1986 VFL 그랜드 파이널에서 칼턴을 16.14 (110) 대 9.14 (68)로 꺾고 여섯 번째 프리미어십을 획득했다.[30] 게리 에이리스는 노엄 스미스 메달을 수상했다.
1986 VFL 그랜드 파이널 | G | B | Total |
---|---|---|---|
호손 | 16 | 14 | 110 |
칼턴 | 9 | 14 | 68 |
경기장: 멜버른 크리켓 그라운드 | 관중: 101,861 |
1988년, 앨런 진스 코치의 건강 문제로 앨런 조이스가 코치직을 맡았다.[30] 호손은 1988 VFL 그랜드 파이널에서 멜버른을 22.20 (152) 대 6.20 (56)으로 꺾고 일곱 번째 프리미어십을 획득했다.[30] 이는 당시 그랜드 파이널 최다 점수 차 기록이었다. 게리 에이리스는 두 번째 노엄 스미스 메달을 수상했다.
1988 VFL 그랜드 파이널 | G | B | Total |
---|---|---|---|
호손 | 22 | 20 | 152 |
멜버른 | 6 | 20 | 56 |
경기장: 멜버른 크리켓 그라운드 | 관중: 93,754 |
1989년, 호손은 1989 VFL 그랜드 파이널에서 질롱과 명승부를 펼친 끝에 6점 차로 승리하며 여덟 번째 프리미어십을 획득했다.[30]
1989 VFL 그랜드 파이널 | G | B | Total |
---|---|---|---|
호손 | 21 | 18 | 144 |
질롱 | 21 | 12 | 138 |
경기장: 멜버른 크리켓 그라운드 | 관중: 94,796 |
1980년대 주요 선수로는 데르모트 브레레톤, 게리 에이리스, 크리스 뮤, 마이클 터크, 제이슨 던스톨, 게리 버크네라, 존 플래튼 및 크리스 랭포드가 있었다.
1991년, 앨런 진스가 다시 코치직을 맡았고, 호손은 1991 AFL 그랜드 파이널에서 웨스트 코스트를 20.19 (139) 대 13.8 (86)으로 꺾고 아홉 번째 프리미어십을 획득했다.[30] 이 경기는 웨이벌리 파크에서 열린 유일한 그랜드 파이널이었다. 마이클 터크는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1991 AFL 그랜드 파이널 | G | B | Total |
---|---|---|---|
호손 | 20 | 19 | 139 |
웨스트 코스트 | 13 | 8 | 86 |
Venue: 웨이벌리 파크 | Crowd: 75,230 |
1991년 말, 호손은 내셔널 드래프트에서 13순위로 셰인 크로포드를 지명했다.[30]
2. 6. 침체기와 합병 위기 (1992-1996)
1990년대 초, 호손은 핵심 선수들의 부상과 이탈로 어려움을 겪었다. 크리스 뮬은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은퇴했고, 벤 앨런은 프리맨틀 도커스로, 앤드루 가워스는 브리즈번으로 이적했다.[32] 1995년에는 1981년 이후 처음으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32]1996년, 호손 풋볼 클럽은 재정난으로 인해 멜버른과 합병하여 "멜버른 호크스"가 될 뻔했으나, 돈 스콧을 중심으로 한 팬들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었다.[32]
2. 7. 재건과 발전 (1997-2004)
1996년 합병 위기 이후, 새로운 이사회가 구성되어 "자부심, 열정, 유료" 캠페인을 통해 팬들의 지지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펼쳤다. 그 결과, 27,450명의 회원을 확보하며 전년 대비 두 배 이상의 성장을 이루었다. 1999년 프리 시즌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켄 저지 코치는 웨스트 코스트 이글스(West Coast Eagles) 코치직을 수락하며 팀을 떠났다.2000년, 피터 슈왑(Peter Schwab)이 코치로 부임하여 공격적인 스타일을 추구했고, 팀은 준결승에 진출하는 성과를 냈다. 다니엘 칙(Daniel Chick)과 닉 홀랜드(Nick Holland)는 피터 크리민스 메달을 공동 수상했으며, 챈스 베이트먼(Chance Bateman)은 호손에서 두 번째로 원주민 호주인 선수로 뛰었다.
2001년, 호크스는 시즌 초 8연승을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준결승에서 포트 애들레이드 풋볼 클럽(Port Adelaide Football Club)을 꺾고 예선 결승에 진출했다. 비록 에센던 풋볼 클럽(Essendon Football Club)에게 패했지만, 이는 몇 시즌 동안 마지막 성공이었다. 오프 시즌에 트렌트 크로드(Trent Croad)와 루크 맥파린(Luke McPharlin)을 영입하고, 루크 호지(Luke Hodge), 샘 미첼 등을 드래프트했다.
2002년에는 10위를 기록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지만, 셰인 크로포드(Shane Crawford)는 피터 크리민스 메달을 수상했다. 루크 호지(Luke Hodge), 샘 미첼, 캠벨 브라운 등이 데뷔하여 2008년 프리미어십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오프 시즌에는 피터 에버릿(Peter Everitt)을 영입했다.
2003년, 시즌 초반 부진을 딛고 후반에 강세를 보이며 9위를 기록,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샘 미첼은 AFL 라이징 스타 상을 수상했고, 셰인 크로포드(Shane Crawford)는 피터 크리민스 메달을 수상하고 브라운로 메달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2004년, 피터 슈왑 코치가 프리미어십 우승을 선언했지만, 4승 18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시즌 중반 피터 슈왑(Peter Schwab) 코치가 경질되고, 주장 셰인 크로포드(Shane Crawford)가 부상으로 이탈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네이선 톰슨을 비롯한 많은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
2. 8. 클락슨 시대와 왕조 구축 (2005-2021)
2004 AFL 드래프트에서 2, 5, 7픽으로 재리드 루거드, 랜스 프랭클린, 조던 루이스를 영입하며 팀 재건의 초석을 다졌다. 2005년, 앨러스터 클락슨 코치가 부임하며 젊은 선수 육성과 규율 문화를 정착시켰다. 비록 2005년 시즌에는 5승만을 거두며 14위에 그쳤지만, 프랭클린, 루거드, 루이스 등 젊은 선수들이 AFL 라이징 스타 후보에 오르는 등 긍정적인 성장을 보였다.[34] 제프 케넷 회장과 루크 호지도 팀의 핵심 인물로 활약했다.2006년, 클락슨 감독은 "버디의 박스"라는 혁신적인 전술을 도입했지만, 장신 포워드 의존도가 높아 한계를 드러냈다. 시즌 초반 4승 1패로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이후 부진하며 11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하지만 클락슨 감독은 젊은 선수 육성과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인정받아 2년 재계약을 맺었다.
2007년, 태즈메이니아와의 스폰서십 계약을 통해 재정적 안정을 확보하고, 브렌트 게라, 스티븐 길햄 등을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했다. 13승을 거두며 5위로 결승에 진출했지만, 준결승에서 노스 멜버른 풋볼 클럽에게 패배했다. 클락슨 감독은 "클락슨 클러스터"라는 새로운 수비 전술을 도입하여 팀의 경쟁력을 높였다.
2008 AFL 시즌, 호손은 "불친절한" 축구라는 거친 플레이 스타일로 리그를 지배하며 17승 5패로 정규 시즌 2위를 차지했다.[35] 2008 AFL 그랜드 파이널에서는 질롱 풋볼 클럽을 18.7 (115) 대 11.23 (89)로 꺾고 10번째 프리미어십을 획득했다.[36] 래인스 프랭클린은 102골로 콜먼 메달을 수상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2008 AFL 그랜드 파이널 | G | B | Total |
호손 | 18 | 7 | 115 |
질롱 | 11 | 23 | 89 |
Venue: 멜버른 크리켓 경기장 | Crowd: 100,012 |
2009년,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상대 팀들의 "클락슨 클러스터" 해체 노력으로 인해 9위로 하락하며 프리미어십 방어에 실패했다. 2010년, 시즌 초반 부진을 딛고 새로운 전술을 채택하여 결승에 진출했지만, 프리맨틀 풋볼 클럽에게 패배했다.
2011년, 18승 4패로 정규 시즌 3위를 기록하고, 랜스 프랭클린이 콜먼 메달을 수상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2012년,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하며 1989 VFL 시즌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 프리미어를 달성했지만, 2012 AFL 그랜드 파이널에서 시드니 스완스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3 AFL 그랜드 파이널 | G | B | Total |
호손 | 11 | 11 | 77 |
프리맨틀 | 8 | 14 | 62 |
Venue: 멜버른 크리켓 그라운드 | 관중: 100,007 |
2013년, 다시 한번 마이너 프리미어를 차지하고, 2013 AFL 그랜드 파이널에서 프리맨틀 풋볼 클럽을 꺾고 11번째 프리미어십을 획득했다. 브라이언 레이크는 노르만 스미스 메달을 수상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2014 AFL 그랜드 파이널 | G | B | Total |
호손 | 21 | 11 | 137 |
시드니 | 11 | 8 | 74 |
Venue: 멜버른 크리켓 그라운드 | 관중: 99,460 |
2014년, 랜스 프랭클린의 이적과 앨러스터 클락슨 감독의 질병 등 어려움 속에서도 2014 AFL 그랜드 파이널에서 시드니 스완스를 꺾고 12번째 프리미어십을 차지하며 저력을 과시했다.
2015 AFL 그랜드 파이널 | G | B | Total |
호손 | 16 | 11 | 107 |
웨스트 코스트 | 8 | 13 | 61 |
Venue: 멜버른 크리켓 그라운드 | 관중: 98,632 |
2015년, 2015 AFL 그랜드 파이널에서 웨스트 코스트 이글스를 꺾고 13번째 프리미어십을 획득하며 3연패를 달성했다. 이는 브리즈번 라이온스 이후 최초의 기록이었다.
2016년, 브라이언 레이크와 데이비드 헤일의 은퇴, 재리드 루거드의 부상 등 악재 속에서도 결승에 진출했지만, 웨스턴 불독스에게 패배하며 4연패 달성에는 실패했다. 샘 미첼과 조던 루이스를 트레이드하며 세대교체를 시도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클락슨 감독의 마지막 시기로, 팀은 점진적인 세대교체를 진행했다. 2017년, 시즌 초반 부진을 딛고 후반기 반등에 성공했지만,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톰 미첼은 뛰어난 활약으로 피터 크림민스 메달을 수상했다. 2018년, 4위를 기록하며 결승에 진출했지만, 리치몬드 풋볼 클럽에게 패배했다. 2019년, 톰 미첼의 부상 속에서도 시즌 막판 반등에 성공했지만, 9위에 그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2020년, 15위로 부진하며 클락슨 감독 부임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2021년, 샘 미첼에게 감독직을 승계하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결국 클락슨 감독은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났다.[37][38]
2. 8. 1. 인종차별 논란 (2022)
2022년 9월, 호손 풋볼 클럽은 앨러스터 클락슨 감독의 재임 기간, 특히 프리미어십 우승 연도를 포함하여 원주민 선수들에 대한 역사적 처우에 대한 외부 조사를 의뢰했다. 이 보고서에 담긴 혐의에는 여러 해에 걸쳐 원주민 선수들을 가족으로부터 강제로 격리시키고 낙태를 요구하는 등 인종차별 혐의가 포함되었다.[39] 클락슨, 수석 코치 크리스 페이건, 선수 개발 책임자 제이슨 버트가 공모한 것으로 알려진 관계자 중 일부였다.[39] AFL CEO 길론 맥라클란은 이 소식이 "충격적이고, 끔찍하며, 충격적인 내용"이라고 말했으며, AFL은 혐의에 대한 외부 독립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39] (이는 명백한 호주 백인들의 원주민 탄압의 연장선에 있는 사건이며,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2. 9. 샘 미첼 시대 (2022-현재)
샘 미첼이 2022년에 호손 풋볼 클럽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다. 미첼 시대의 처음 두 시즌 동안 호크스는 2022년에 13위, 2023년에 16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러나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통해 미래를 위한 기반을 다졌다.2024 시즌, 호크스는 0-5로 시작했지만, 이후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며 정규 시즌을 7위(14승 9패)로 마감, 2018년 이후 처음으로 결승전에 진출했다. 이는 VFL/AFL 역사상 매우 드문 사례로 기록되었다. 엘리미네이션 파이널에서 웨스턴 불독스를 37점 차로 꺾었으나, 준결승에서 포트 애들레이드에게 3점 차로 석패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3. 클럽 상징
3. 1. 로고와 마스코트
호손 풋볼 클럽(Hawthorn Football Club)의 별명은 호크스(Hawks)이다.[41] 이는 1943년 로이 카잘리 코치가 에센돈과의 경기 전 선수들에게 메이블룸스(Mayblooms) 대신 호크스(Hawks)로 불릴 것이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했다.[41] "메이블룸(Maybloom)"은 호손 덤불의 또 다른 이름이다.[40]클럽 로고는 여러 차례 변경되었다. 1977년에 첫 번째 공식 로고가 도입되었는데, 금색 방패에 '플라잉 호크(Flying Hawk)'가 새겨져 있고 발톱에 "HFC"라는 글자가 새겨진 갈색 축구공을 들고 있는 형태였다. 1982년에는 스윈번 기술 연구소 학생 벨다 엘리스가 제작한 "호크 헤드(Hawk Head)" 로고가 채택되었다. 1997년에는 "뉴 호크스(New Hawks)"라는 이름으로 "플라잉 호크(Flying Hawk)"를 현대적으로 변형한 로고가 사용되었다. 2007년 10월 6일에는 30년 만에 네 번째 로고가 공개되었는데,[42] 80년대와 90년대의 호크 헤드와 유사하며, 호크의 눈과 부리가 호손의 "결의, 자부심, 집중"을 나타낸다.
공식 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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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의 마스코트는 "호카(Hawka)" 나이츠이며, 더모트 브레튼을 닮은 캐리커처이다.
3. 2. 유니폼
호손의 팀 색상은 갈색과 금색 세로 줄무늬이다.[43] 1950년부터 현재의 디자인을 사용하고 있다.[43]클럽의 색상과 디자인은 역사상 몇 차례 변경되었다. 1902년부터 1904년까지는 파란색 저지에 빨간색 어깨와 저지 앞면에 빨간색 줄무늬,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 양말을 착용했다. 1905년 Boroondara와 합병한 후에는 검은색 저지에 빨간색 띠, 검은색과 빨간색 줄무늬 양말로 변경했다. 1912~13시즌에는 노란색 저지에 파란색 V자를 착용했다. 빅토리아 풋볼 협회(VFA)에 진입하면서 윌리엄스타운이 이미 저지에 파란색과 금색 조합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갈색과 금색을 채택했고, 이후 오늘날까지 남아 있지만 디자인은 몇 차례 변경되었다. 주요 변경 사항은 다음과 같다.
- 1914–1924 – 목 주위에 금색 원과 중앙에 HFC 모노그램이 있는 갈색
- 1925–1932 – 금색 V자와 왼쪽 가슴에 작은 HFC 모노그램이 있는 갈색
- 1933–1934 – 갈색 V자가 있는 금색
- 1934–1949 – 금색 V자와 금색 상단이 있는 갈색 양말이 있는 갈색
- 1950–1974 – 앞면과 뒷면에 갈색과 금색 줄무늬, 흰색 패널에 검은색 숫자, 갈색과 금색 줄무늬 양말
- 1975–1988 – 갈색과 금색 줄무늬, 뒷면은 금색, 갈색 숫자에 갈색과 금색 줄무늬 양말
- 1989–1997 – 갈색과 금색 줄무늬, 뒷면은 금색, 갈색 숫자에 금색 양말
- 1998–2005 – 갈색과 금색 줄무늬, 뒷면은 금색, 갈색 숫자에 갈색과 금색 줄무늬 양말
- 2006–2012 – 앞면과 뒷면에 갈색과 금색 줄무늬, 흰색 패널에 검은색 숫자, 갈색과 금색 줄무늬 양말
- 2013–현재 – 앞면과 뒷면에 갈색과 금색 줄무늬, 금색 패널에 갈색 숫자, 갈색과 금색 줄무늬 양말
2018년, 호손 회장 제프 케네트는 호손의 충돌 저지에는 더 이상 흰색이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흰색은 항복의 색깔이며, 호손에서는 절대 항복하지 않습니다. 질 수도 있지만, 우리는 마지막 사이렌까지 모든 경기를 치릅니다."라고 선언했다.[44][45][46]
호손 풋볼 클럽은 특히나 매력적이지 못한 유니폼으로 명성이 자자한데, 그 중에서도 "화이트 파워 레인저"라는 별명이 붙은 유니폼[47]은 ''디 에이지(The Age)''에서 "망막을 손상시키는" 유니폼으로 묘사되었으며,[48] 1995년 프리시즌 한 경기에서 착용했던 또 다른 유니폼, 소위 "블루 다이아몬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파란색을 특징으로 했다.[48] 후자의 유니폼은 폭스 스포츠(Fox Sports)에서 "역대 최악의 호주 풋볼 리그 유니폼"이라고 불렸다.[49]
3. 3. 클럽 응원가
우리는 호손의 행복한 팀(We are the Hawthorn Happy Team)은 호손 풋볼 클럽의 클럽 응원가이다. 조지 M. 코한이 1904년 뮤지컬 ''리틀 조니 존스''를 위해 작곡한 "양키 두들 보이"의 곡조에 맞춰 불린다. 이 곡은 전쟁 중인 1942년 뮤지컬 ''양키 두들 댄디''에서 제임스 캐그니가 조지 M. 코한 역을 맡아 무대에서 조니 존스 역할을 연기하면서 유명해졌다. 1956년 칙 랜더에 의해 새로운 호손 가사로 개사되었다.4. 라이벌 관계
에센던과의 라이벌 관계는 1980년대에 두드러졌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3년 연속 그랜드 파이널에서 맞붙었고, 이 경기들과 다른 경기들에서 거친 양상이 나타나면서 치열한 경쟁 구도가 형성되었다.[70] 특히 이 시기에는 두 팀이 리그 최상위권을 다투었다.[70] 1990년대와 2004년까지는 2001년 준결승전을 제외하고는 잠잠했다.[70] 2004년 "모래 위의 선 경기"에서는 4명의 선수가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고 70,7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되었다.[70] 2009년에는 매튜 로이드가 브래드 세웰에게 가한 거친 범프로 인해 난투극이 벌어져, 로이드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70]
질롱과의 라이벌 관계는 1989년과 2008년 그랜드 파이널로 대표된다. 1989년 그랜드 파이널에서 질롱의 거친 플레이로 더멋 브레튼등 호크스 선수들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70] 호크스는 경기 대부분에서 30~40점 차로 앞섰지만, 부상자가 늘어나면서 마지막 쿼터에서 질롱에게 추격을 허용, 6점 차로 신승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경기를 역대 최고의 경기 중 하나로 꼽았다.[70] 2008년 그랜드 파이널에서는 호손이 루크 호지의 뛰어난 수비와 스튜어트 듀의 활약으로 26점 차 승리를 거두었다.[70] 이후 5년 동안 질롱은 호손을 상대로 11연승을 거두었는데, 이 연승은 "케네트의 저주"로 불리며, 2013년 준결승전에서 호손이 승리하면서 깨졌다.[70] 2008년과 2017년 사이에 두 팀 간의 20경기 중 12경기가 10점 미만의 점수 차로 결정되었으며, 질롱은 이 12경기 중 11경기에서 승리했다.[71]
노스 멜버른과의 라이벌 관계는 1970년대에 시작되어 1975년, 1976년, 1978년 그랜드 파이널에서 맞붙었다.[70] 노스 멜버른은 1975년에 창단 첫 번째 프리미어십을 차지했고, 호손은 1976년과 1978년에 승리했다.[70]
시드니 스완스와의 라이벌 관계는 비교적 최근인 2011년 준결승전부터 시작되었다. 두 클럽은 2012년과 2014년 그랜드 파이널에서 맞붙었다. 2012년에는 호손이 패했지만, 2014년에는 63점 차로 승리하며 설욕했다.[70] 랜스 프랭클린, 조쉬 케네디, 톰 미첼 등 선수 트레이드로 인해 라이벌 관계가 심화되었다.[70]
5. 선수
== 현역 선수 명단 ==
현역 선수 명단은 현재 페이지에 있지 않고, 다른 페이지로 넘겨주기 처리되어 있다.
== 주장 ==
호손 풋볼 클럽은 사망한 전 주장이었던 피터 크리민스가 착용했던 5번 저지를 1976 시즌 종료 후 영구 결번 처리했다.[72] 이 저지는 1993년까지 결번으로 남았으며, 피터의 미망인 그웬 크리민스가 앤디 콜린스를 선택하여 저지를 입게 했다.[72] 그 이후 크리민스 가족은 5번을 입을 선수를 선정했으며, 다니엘 하포드, 샘 미첼, 라이언 버튼, 제임스 워펠만이 이 번호를 받았다.[72]
2011년 3월 6일, 연례 가족의 날 행사에서 구단 대표는 2011 시즌부터 1번 저지를 선수 번호로 공식적으로 영구 결번 처리하고, 대신 팬들에게 헌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1번을 마지막으로 착용했던 맥스 베일리는 "팬들이 1번입니다"라고 말하며 이 발표를 했다. 그는 이후 응원단에게 등 뒤에 "1"이 새겨진 거대한 호손 저지를 전달했다. 이 대형 저지는 지정된 홈 경기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2018년 12월 7일, 공개 훈련 세션에서 이 번호가 다시 사용될 것이라고 발표되었으며, 호손에서 활약했던 그의 돌아가신 대부 켄 저지를 기리기 위해 해리 모리슨이 이 번호를 입게 되었다.[73]
== 개인 수상 ==
호손 풋볼 클럽의 개인 수상 부문은 다양한 선수들의 뛰어난 활약을 기념한다.
피터 크리민스 메달은 클럽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1966년부터 1975년까지 로버로 활약하고 1974년부터 1975년까지 팀을 이끌었던 피터 크리민스를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다. 그는 1976년 클럽의 프리미어십 우승 며칠 만에 암으로 사망했다. 현재는 경기 위원회의 투표를 통해 시즌 종료 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선수에게 메달이 수여된다. 역대 수상자 전체 목록은 피터 크리민스 메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브라운로 메달은 1924년부터 수여되었으며, 호손에서는 콜 오스틴(1949), 로버트 디피에르도메니코(1986), 존 플래튼(1987), 셰인 크로포드(1999), 샘 미첼(2012), 톰 미첼(2018)이 수상했다.
레이 매튜스 트로피(MVP)는 2002년부터 수여되었으며, 1982년부터 소급 적용되었다. 레이 매튜스(1982), 러셀 그린(1984), 제이슨 던스탈(1992), 셰인 크로포드(1999), 톰 미첼(2018)이 수상했다.
노름 스미스 메달은 1979년부터 그랜드 파이널 최우수 선수에게 수여된다. 콜린 로버트슨(1983), 게리 에이어스(1986, 1988), 폴 디어(1991), 루크 호지(2008, 2014), 브라이언 레이크(2013), 시릴 리올리(2015)가 수상했다.
콜먼 메달은 1981년부터 최다 득점자에게 수여되며, 1955년부터 1980년까지 선수에게 소급 적용되었다. 존 펙(1963, 1964, 1965), 피터 허드슨(1968, 1970, 1971, 1977), 레이 매튜스(1975), 제이슨 던스탈(1988, 1989, 1992), 랜스 프랭클린(2008, 2011), 자리드 로우헤드(2013)가 수상했다.
이 외에도 마이클 터크 메달, 최우수 주장 (마이클 터크(1986), 루크 호지(2014)), 로버트 로즈 상 (루크 호지(2010)), 론 에반스 메달 (닉 홀랜드(1995), 샘 미첼(2003)), 올해의 최우수 유망주 상 (시릴 리올리(2009), 자이 뉴컴(2022)), 마른 그루크 상 (랜스 프랭클린(2007)), 매든 메달 (루크 호지(2019)) 등 다양한 개인 수상 기록이 있다.
호손 선수들은 카니발 올-오스트레일리아 팀(1953–1979), VFL/AFL 올해의 팀(1982–1990), 올-오스트레일리아 팀(1991년 이후), 올-오스트레일리아 팀 주장, 올해의 골, 22세 이하 22팀, J. J. 리스턴 트로피, 노름 고스 기념 메달, 짐 '프로스티' 밀러 메달, 국제 규칙 대표, 국제 규칙 시리즈 주장, 해리 베이첼 메달, 짐 스틴스 메달 등 다양한 리그 차원의 상을 수상하며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았다.
5. 1. 현역 선수 명단
현역 선수 명단은 현재 페이지에 있지 않고, 다른 페이지로 넘겨주기 처리되어 있다.5. 2. 주장
호손 풋볼 클럽은 사망한 전 주장이었던 피터 크리민스가 착용했던 5번 저지를 1976 시즌 종료 후 영구 결번 처리했다.[72] 이 저지는 1993년까지 결번으로 남았으며, 피터의 미망인 그웬 크리민스가 앤디 콜린스를 선택하여 저지를 입게 했다.[72] 그 이후 크리민스 가족은 5번을 입을 선수를 선정했으며, 다니엘 하포드, 샘 미첼, 라이언 버튼, 제임스 워펠만이 이 번호를 받았다.[72]2011년 3월 6일, 연례 가족의 날 행사에서 구단 대표는 2011 시즌부터 1번 저지를 선수 번호로 공식적으로 영구 결번 처리하고, 대신 팬들에게 헌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1번을 마지막으로 착용했던 맥스 베일리는 "팬들이 1번입니다"라고 말하며 이 발표를 했다. 그는 이후 응원단에게 등 뒤에 "1"이 새겨진 거대한 호손 저지를 전달했다. 이 대형 저지는 지정된 홈 경기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2018년 12월 7일, 공개 훈련 세션에서 이 번호가 다시 사용될 것이라고 발표되었으며, 호손에서 활약했던 그의 돌아가신 대부 켄 저지를 기리기 위해 해리 모리슨이 이 번호를 입게 되었다.[73]
5. 3. 개인 수상
호손 풋볼 클럽의 개인 수상 부문은 다양한 선수들의 뛰어난 활약을 기념한다.피터 크리민스 메달은 클럽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1966년부터 1975년까지 로버로 활약하고 1974년부터 1975년까지 팀을 이끌었던 피터 크리민스를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다. 그는 1976년 클럽의 프리미어십 우승 며칠 만에 암으로 사망했다. 현재는 경기 위원회의 투표를 통해 시즌 종료 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선수에게 메달이 수여된다. 역대 수상자 전체 목록은 피터 크리민스 메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브라운로 메달은 1924년부터 수여되었으며, 호손에서는 콜 오스틴(1949), 로버트 디피에르도메니코(1986), 존 플래튼(1987), 셰인 크로포드(1999), 샘 미첼(2012), 톰 미첼(2018)이 수상했다.
레이 매튜스 트로피(MVP)는 2002년부터 수여되었으며, 1982년부터 소급 적용되었다. 레이 매튜스(1982), 러셀 그린(1984), 제이슨 던스탈(1992), 셰인 크로포드(1999), 톰 미첼(2018)이 수상했다.
노름 스미스 메달은 1979년부터 그랜드 파이널 최우수 선수에게 수여된다. 콜린 로버트슨(1983), 게리 에이어스(1986, 1988), 폴 디어(1991), 루크 호지(2008, 2014), 브라이언 레이크(2013), 시릴 리올리(2015)가 수상했다.
콜먼 메달은 1981년부터 최다 득점자에게 수여되며, 1955년부터 1980년까지 선수에게 소급 적용되었다. 존 펙(1963, 1964, 1965), 피터 허드슨(1968, 1970, 1971, 1977), 레이 매튜스(1975), 제이슨 던스탈(1988, 1989, 1992), 랜스 프랭클린(2008, 2011), 자리드 로우헤드(2013)가 수상했다.
이 외에도 마이클 터크 메달, 최우수 주장 (마이클 터크(1986), 루크 호지(2014)), 로버트 로즈 상 (루크 호지(2010)), 론 에반스 메달 (닉 홀랜드(1995), 샘 미첼(2003)), 올해의 최우수 유망주 상 (시릴 리올리(2009), 자이 뉴컴(2022)), 마른 그루크 상 (랜스 프랭클린(2007)), 매든 메달 (루크 호지(2019)) 등 다양한 개인 수상 기록이 있다.
호손 선수들은 카니발 올-오스트레일리아 팀(1953–1979), VFL/AFL 올해의 팀(1982–1990), 올-오스트레일리아 팀(1991년 이후), 올-오스트레일리아 팀 주장, 올해의 골, 22세 이하 22팀, J. J. 리스턴 트로피, 노름 고스 기념 메달, 짐 '프로스티' 밀러 메달, 국제 규칙 대표, 국제 규칙 시리즈 주장, 해리 베이첼 메달, 짐 스틴스 메달 등 다양한 리그 차원의 상을 수상하며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았다.
6. 기록
'''굵은 글씨'''는 현재 호손에서 활동 중인 선수를 나타냅니다.
== 개인 기록 ==
2024년 2차 결선 주간 기준[76], 호손 풋볼 클럽의 최다 경기 출전 기록은 마이클 터크가 426경기로 보유하고 있다.[76] 그 뒤를 이어 리 매튜스가 332경기로 2위를 기록했다.[76]
순위 | 선수 이름 | 활동 연도 | 총 경기 수 |
---|---|---|---|
1 | 마이클 터크 | 1972–1991 | 426 |
2 | 리 매튜스 | 1969–1985 | 332 |
3 | 샘 미첼 | 2002–2016 | 307 |
4 | 셰인 크로포드 | 1992–2008 | 305 |
루크 호지 | 2002–2017 | 305 | |
6 | 크리스 랭포드 | 1983–1997 | 303 |
7 | 돈 스콧 | 1967–1981 | 302 |
8 | 루크 브루스트 | 2009– | 300 |
켈빈 무어 | 1970–1984 | 300 | |
10 | 자리드 루그헤드 | 2005–2019 | 283 |
2024년 플레이오프 2주차 기준[76], 최다 득점 기록은 제이슨 던스톨이 1,254골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리 매튜스가 915골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76]
번호 | 이름 | 연도 | 총 득점 |
---|---|---|---|
1 | 제이슨 던스톨 | 1985–1998 | 1,254 |
2 | 리 매튜스 | 1969–1985 | 915 |
3 | 피터 허드슨 | 1967–1974, 1977 | 727 |
4 | 마이클 몽크리프 | 1971–1983 | 629 |
5 | 랜스 프랭클린 | 2005–2013 | 580 |
6 | 자리드 러프헤드 | 2005–2019 | 578 |
7 | 루크 브루스트 | 2009– | 549 |
8 | 존 펙 | 1954–1966 | 475 |
9 | 잭 건스턴 | 2012–2022, 2024– | 439 |
10 | 더멋 브러튼 | 1982–1992 | 427 |
2024년 파이널스 2주차 기준[77], 선수 개인별 최다 처리 횟수는 마이클 터크가 8,423회로 가장 많고, 샘 미첼이 8,095회, 레이 매튜스가 7,374회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최다 킥 횟수 역시 마이클 터크가 6,353회로 1위를 기록했으며, 레이 매튜스 (6,017회), 루크 Hodge (4,308회) 순이다. 핸드볼 횟수는 샘 미첼(3,852회), 조던 루이스(3,040회), 셰인 크로포드(2,883회) 순으로 나타났다.
마크 횟수는 제이슨 던스탈이 1,779회로 가장 많았으며, 조던 루이스, 루크 Hodge, 레이 매튜스가 각각 1,521회, 1,508회, 1,505회로 뒤를 이었다. 히트아웃 횟수는 돈 스콧이 4,184회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고, 벤 맥에보이(3,627회), 조나단 세글라(2,110회) 순으로 나타났다.
태클 횟수는 리암 쉴스(1,426회), 샘 미첼(1,174회), 루크 Hodge(1,069회) 순이며, 리바운드 50 횟수는 루크 Hodge(851회), 제임스 시실리(745회), 그랜트 버찰(663회) 순이다. 50야드 안쪽 횟수는 샘 미첼(1,152회), 루크 Hodge(1,057회), 조던 루이스(969회) 순으로 기록되었다.
클리어런스 횟수는 샘 미첼(1,700회), 조던 루이스(1,040회), 루크 Hodge(966회) 순이며, 경합 소유 횟수는 샘 미첼(3,181회), 루크 Hodge(2,486회), 조던 루이스(2,299회) 순이다. 비경합 소유 횟수는 샘 미첼(4,946회), 루크 Hodge(4,246회), 그랜트 버찰(4,186회) 순으로 나타났다.
경합 마크 횟수는 재리드 루프헤드(317회), 랜스 프랭클린(281회), 벤 맥에보이(246회) 순이며, 50야드 안쪽 마크 횟수는 재리드 루프헤드(633회), 랜스 프랭클린(561회), 루크 브루스트(441회) 순이다. 1% 횟수는 조쉬 깁슨(1,334회), 벤 스트래턴(1,107회), 루크 Hodge(904회) 순이며, 골 어시스트 횟수는 루크 브루스트(237회), 샘 미첼(191회), 시릴 리올리(187회) 순으로 기록되었다.
== 팀 기록 ==
호손 풋볼 클럽의 최다 점수 차 승리는 2011년 포트 애들레이드 풋볼 클럽을 상대로 기록한 165점 차 승리이다. 반면, 최다 점수 차 패배는 1926년 멜버른 풋볼 클럽에게 당한 141점 차 패배이다.
호손은 1961년과 2013년에 각각 12연승을 기록했다. 최다 연패 기록은 1927년부터 1929년까지 이어진 27연패이다.
1982년부터 1994년까지 13시즌 연속 결승전에 진출했으며, 1983년부터 1989년까지는 7시즌 연속 그랜드 파이널에 진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6. 1. 개인 기록
2024년 2차 결선 주간 기준[76], 호손 풋볼 클럽의 최다 경기 출전 기록은 마이클 터크가 426경기로 보유하고 있다.[76] 그 뒤를 이어 리 매튜스가 332경기로 2위를 기록했다.[76]순위 | 선수 이름 | 활동 연도 | 총 경기 수 |
---|---|---|---|
1 | 마이클 터크 | 1972–1991 | 426 |
2 | 리 매튜스 | 1969–1985 | 332 |
3 | 샘 미첼 | 2002–2016 | 307 |
4 | 셰인 크로포드 | 1992–2008 | 305 |
루크 호지 | 2002–2017 | 305 | |
6 | 크리스 랭포드 | 1983–1997 | 303 |
7 | 돈 스콧 | 1967–1981 | 302 |
8 | 루크 브루스트 | 2009– | 300 |
켈빈 무어 | 1970–1984 | 300 | |
10 | 자리드 루그헤드 | 2005–2019 | 283 |
2024년 플레이오프 2주차 기준[76], 최다 득점 기록은 제이슨 던스톨이 1,254골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리 매튜스가 915골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76]
번호 | 이름 | 연도 | 총 득점 |
---|---|---|---|
1 | 제이슨 던스톨 | 1985–1998 | 1,254 |
2 | 리 매튜스 | 1969–1985 | 915 |
3 | 피터 허드슨 | 1967–1974, 1977 | 727 |
4 | 마이클 몽크리프 | 1971–1983 | 629 |
5 | 랜스 프랭클린 | 2005–2013 | 580 |
6 | 자리드 러프헤드 | 2005–2019 | 578 |
7 | 루크 브루스트 | 2009– | 549 |
8 | 존 펙 | 1954–1966 | 475 |
9 | 잭 건스턴 | 2012–2022, 2024– | 439 |
10 | 더멋 브러튼 | 1982–1992 | 427 |
2024년 파이널스 2주차 기준[77], 선수 개인별 최다 처리 횟수는 마이클 터크가 8,423회로 가장 많고, 샘 미첼이 8,095회, 레이 매튜스가 7,374회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최다 킥 횟수 역시 마이클 터크가 6,353회로 1위를 기록했으며, 레이 매튜스 (6,017회), 루크 Hodge (4,308회) 순이다. 핸드볼 횟수는 샘 미첼(3,852회), 조던 루이스(3,040회), 셰인 크로포드(2,883회) 순으로 나타났다.
마크 횟수는 제이슨 던스탈이 1,779회로 가장 많았으며, 조던 루이스, 루크 Hodge, 레이 매튜스가 각각 1,521회, 1,508회, 1,505회로 뒤를 이었다. 히트아웃 횟수는 돈 스콧이 4,184회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고, 벤 맥에보이(3,627회), 조나단 세글라(2,110회) 순으로 나타났다.
태클 횟수는 리암 쉴스(1,426회), 샘 미첼(1,174회), 루크 Hodge(1,069회) 순이며, 리바운드 50 횟수는 루크 Hodge(851회), 제임스 시실리(745회), 그랜트 버찰(663회) 순이다. 50야드 안쪽 횟수는 샘 미첼(1,152회), 루크 Hodge(1,057회), 조던 루이스(969회) 순으로 기록되었다.
클리어런스 횟수는 샘 미첼(1,700회), 조던 루이스(1,040회), 루크 Hodge(966회) 순이며, 경합 소유 횟수는 샘 미첼(3,181회), 루크 Hodge(2,486회), 조던 루이스(2,299회) 순이다. 비경합 소유 횟수는 샘 미첼(4,946회), 루크 Hodge(4,246회), 그랜트 버찰(4,186회) 순으로 나타났다.
경합 마크 횟수는 재리드 루프헤드(317회), 랜스 프랭클린(281회), 벤 맥에보이(246회) 순이며, 50야드 안쪽 마크 횟수는 재리드 루프헤드(633회), 랜스 프랭클린(561회), 루크 브루스트(441회) 순이다. 1% 횟수는 조쉬 깁슨(1,334회), 벤 스트래턴(1,107회), 루크 Hodge(904회) 순이며, 골 어시스트 횟수는 루크 브루스트(237회), 샘 미첼(191회), 시릴 리올리(187회) 순으로 기록되었다.
6. 2. 팀 기록
호손 풋볼 클럽의 최다 점수 차 승리는 2011년 포트 애들레이드 풋볼 클럽을 상대로 기록한 165점 차 승리이다. 반면, 최다 점수 차 패배는 1926년 멜버른 풋볼 클럽에게 당한 141점 차 패배이다.호손은 1961년과 2013년에 각각 12연승을 기록했다. 최다 연패 기록은 1927년부터 1929년까지 이어진 27연패이다.
1982년부터 1994년까지 13시즌 연속 결승전에 진출했으며, 1983년부터 1989년까지는 7시즌 연속 그랜드 파이널에 진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7. 명예의 전당
7. 1. 호주 축구 명예의 전당
호손 풋볼 클럽에는 클럽에 기여한 25명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선수 22명, 코치 3명)가 있다.호손 풋볼 클럽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
선수 | |||||||||
이름 | 연도 | 경기 | 골 | 헌액 | 이름 | 연도 | 경기 | 골 | 헌액 |
그레이엄 아서 | 1955–1968 | 232 | 201 | 1996 | 앨버트 채드윅 | 1929 | 17 | 8 | 1996 |
피터 허드슨 | 1967–1974 1977 | 129 | 727 | 1996 | 피터 나이츠 | 1969–1985 | 264 | 201 | 1996 |
리 매튜스 | 1969–1985 | 332 | 915 | 1996 | 댄 미노그 | 1926 | 1 | 2 | 1996 |
마이클 터크 | 1971–1991 | 426 | 320 | 1996 | 게리 에이어스 | 1978–1993 | 269 | 70 | 1999 |
더머트 브레러턴 | 1982–1992 | 189 | 427 | 1999 | 돈 스콧 | 1967–1981 | 302 | 133 | 2001 |
제이슨 던스톨 | 1985–1998 | 269 | 1,254 | 2002 | 존 플래튼 | 1986–1998 | 258 | 228 | 2003 |
게리 에이블렛 시니어 | 1981–1983 | 6 | 10 | 2005 | 켈빈 무어 | 1970–1984 | 300 | 21 | 2005 |
로버트 디피어도메니코 | 1975–1991 | 240 | 130 | 2007 | 대런 자먼 | 1991–1995 | 109 | 122 | 2007 |
크리스 랭포드 | 1983–1997 | 300 | 33 | 2009 | 셰인 크로포드 | 1992–2008 | 305 | 224 | 2012 |
릭 데이비스 | 1981 | 20 | 37 | 2013 | 폴 새먼 | 1996–2000 | 100 | 41 | 2016 |
테리 왈러스 | 1978–1986 | 174 | 96 | 2018 | 샘 미첼 | 2002–2016 | 307 | 67 | 2023 |
코치 | |||||||||
이름 | 연도 | 경기 | 승리 | 헌액 | 이름 | 연도 | 경기 | 승리 | 헌액 |
앨런 진스 | 1981–1987 1989–1990 | 221 | 159 | 1996 | 존 케네디 시니어 | 1957 1960–1963 1967–1976 | 299 | 181 | 1996 |
데이비드 파킨 | 1977–1980 | 94 | 57 | 2002 |
굵은 글씨는 레전드 지위이다.
7. 2. 호손 풋볼 클럽 명예의 전당
클럽 명예의 전당 헌액자 목록은 다음과 같다. '''굵은 글씨'''는 전설적인 지위를 나타낸다.- 알렉 알비스톤
- '''그레이엄 아서'''
- 게리 에이리스
- 더모트 브레튼
- 게리 버케나라
- 브라이언 콜먼
- 앤드루 콜린스
- 론 쿡
- 셰인 크로포드
- 피터 크리민스
- 이안 디커
- 로버트 디피어도메니코
- '''제이슨 던스톨'''
- 로드니 이데
- 브렌던 에드워즈
- 맥스 엘머
- A.S. 퍼거슨 박사
- 켄 고다드
- 러셀 그린
- 잭 헤일
- 루크 호지
- '''피터 허드슨'''
- 버트 하이드
- '''앨런 진스'''
- J. 조나 박사
- 브라이언 칸
- 존 케네디 주니어
- '''존 케네디 시니어'''
- J.W. 케넌
- '''피터 나이츠'''
- 크리스 랭포드
- 이안 로
- 앨런 마르텔로
- '''리 매튜스'''
- 크리스 묘
- 해리 E. 밀러
- 버트 밀스
- 샘 미첼
- 켈빈 무어
- 존 오마호니
- '''데이비드 파킨'''
- 존 펙
- 존 플래튼
- 테드 풀
- 대린 프리처드
- 필 라이언
- '''돈 스콧'''
- 밥 셀러스
- 로이 시몬즈
- 스탠 스핑크스
- '''마이클 턱'''
- 언 어팅
- 테리 윌리스
- W. '보' 윌리스
8. 홈 구장 및 시설
호손 풋볼 클럽은 역사 동안 여러 홈 구장을 사용해 왔다. 1906년부터 1973년까지는 글렌퍼리 오벌을 홈 구장으로 사용했으며,[79][80] 1906년부터 2006년까지는 훈련 및 행정 기지로도 활용했다.[80] 글렌퍼리 오벌은 호손 시의회가 1905년 10월에 개장한 곳으로, 호손 FC와 호손 로버스가 합병하여 호손 시티 풋볼 클럽을 결성하면서 홈 구장으로 채택되었다.[79] 1974년부터 1991년까지는 프린세스 파크를 홈 구장으로 사용했다.[79][80] 1990년, 오스트레일리아 풋볼 리그(AFL)의 지원을 받아 웨이벌리 파크로 이전을 추진하여, 1992년부터 1999년까지 홈 경기를 개최했다.[79][80] 1999년 웨이벌리 공원 폐쇄 이후, 홈 경기는 멜버른 크리켓 그라운드(MCG)로 옮겨졌다. 2006년에는 훈련 및 행정 센터를 웨이벌리로 다시 이전하면서 동남부 지역과의 관계를 회복했다.
2000년 3월 13일부터 호손은 멜버른 크리켓 그라운드(MCG)에서 홈 경기를 치르고 있다.[81] 2001년부터는 태즈메이니아의 요크 파크(현재는 후원사 이름을 따서 태즈메이니아 대학교 스타디움으로도 불림)를 "두 번째"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82] 호손은 요크 파크에서 매우 성공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82] 태즈메이니아 주 정부와의 협약을 통해 현지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83]
호손 풋볼 클럽은 웨이벌리 공원에 있던 본사를 딩글리의 28 헥타르 부지로 이전하는 계획을 발표했다.[50] 이 부지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클럽인 아스널과 토트넘을 모델로 하여 선수, 행정 및 서포터를 위한 호화로운 새 본부로 건설될 예정이다. 호손 회장 앤드류 뉴볼드는 "우리는 목적지 클럽이라는 우리의 가치에 맞춰 엘리트 훈련 시설과 행정 시설을 원합니다."라고 말했다.[51] 이 부지는 전 호손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존 케네디 시니어의 이름을 따서 '''케네디 커뮤니티 센터'''로 명명될 예정이다.
2024년 2월에 첫 삽을 떴으며, 호손 회장 앤디 가워스, CEO 애쉬 클라인, 수석 코치 샘 미첼,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를 비롯한 주 및 지방 대표가 참석했다. 케네디 커뮤니티 센터 건설은 단계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1단계는 방송 기능을 갖춘 커뮤니티 파빌리온과 AFLW 구장, 실내 훈련장, 고성능 체육관, 수영 시설 및 MCG 크기의 구장으로 구성된 해리스 엘리트 훈련 및 행정 시설 건설로 구성된다. 완공되면 호손은 자체 시설과 부지를 소유한 유일한 팀이 될 것이며, 2025년 하반기에 이 시설로 이전할 예정이다.[52][53]
8. 1. 홈 구장
호손 풋볼 클럽은 역사 동안 여러 홈 구장을 사용해 왔다. 1906년부터 1973년까지는 글렌퍼리 오벌을 홈 구장으로 사용했으며,[79][80] 1906년부터 2006년까지는 훈련 및 행정 기지로도 활용했다.[80] 글렌퍼리 오벌은 호손 시의회가 1905년 10월에 개장한 곳으로, 호손 FC와 호손 로버스가 합병하여 호손 시티 풋볼 클럽을 결성하면서 홈 구장으로 채택되었다.[79] 1974년부터 1991년까지는 프린세스 파크를 홈 구장으로 사용했다.[79][80] 1990년, 오스트레일리아 풋볼 리그(AFL)의 지원을 받아 웨이벌리 파크로 이전을 추진하여, 1992년부터 1999년까지 홈 경기를 개최했다.[79][80] 1999년 웨이벌리 공원 폐쇄 이후, 홈 경기는 멜버른 크리켓 그라운드(MCG)로 옮겨졌다. 2006년에는 훈련 및 행정 센터를 웨이벌리로 다시 이전하면서 동남부 지역과의 관계를 회복했다.2000년 3월 13일부터 호손은 멜버른 크리켓 그라운드(MCG)에서 홈 경기를 치르고 있다.[81] 2001년부터는 태즈메이니아의 요크 파크(현재는 후원사 이름을 따서 태즈메이니아 대학교 스타디움으로도 불림)를 "두 번째"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82] 호손은 요크 파크에서 매우 성공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82] 태즈메이니아 주 정부와의 협약을 통해 현지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83]
8. 2. 딩글리 개발
호손 풋볼 클럽은 웨이벌리 공원에 있던 본사를 딩글리의 28 헥타르 부지로 이전하는 계획을 발표했다.[50] 이 부지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클럽인 아스널과 토트넘을 모델로 하여 선수, 행정 및 서포터를 위한 호화로운 새 본부로 건설될 예정이다. 호손 회장 앤드류 뉴볼드는 "우리는 목적지 클럽이라는 우리의 가치에 맞춰 엘리트 훈련 시설과 행정 시설을 원합니다."라고 말했다.[51] 이 부지는 전 호손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존 케네디 시니어의 이름을 따서 '''케네디 커뮤니티 센터'''로 명명될 예정이다.2024년 2월에 첫 삽을 떴으며, 호손 회장 앤디 가워스, CEO 애쉬 클라인, 수석 코치 샘 미첼,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를 비롯한 주 및 지방 대표가 참석했다. 케네디 커뮤니티 센터 건설은 단계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1단계는 방송 기능을 갖춘 커뮤니티 파빌리온과 AFLW 구장, 실내 훈련장, 고성능 체육관, 수영 시설 및 MCG 크기의 구장으로 구성된 해리스 엘리트 훈련 및 행정 시설 건설로 구성된다. 완공되면 호손은 자체 시설과 부지를 소유한 유일한 팀이 될 것이며, 2025년 하반기에 이 시설로 이전할 예정이다.[52][53]
9. 기타 팀
빅토리안 여자 풋볼 리그(Victorian Women's Football League)가 2016년에 재편되어 VFL 브랜드로 편입된 후, 호손 풋볼 클럽은 2017년에 녹스 팰컨스(Knox Falcons)로부터 라이선스를 획득하여 VFLW 팀을 창단했다.[84] 이 팀은 박스힐(Box Hill)로 이전되어 2017 시즌에 세 경기를 승리했다.
VFLW 팀은 대부분의 경우 박스 힐 남자팀 경기에 앞서 경기를 치르며, 홈 구장은 박스 힐 시티 오벌이다. 이는 호손 팬들에게 모든 홈 경기에서 양 팀을 모두 응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84]
2018년, 호손 여자팀은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VFLW 프리미어십에서 지롱을 4.6.30으로 2.5.17로 꺾고 우승했다.[85] 수비수 샨텔라 페레라는 그랜드 파이널에서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되는 리사 하드먼 메달을 수상했다.
클럽 회장 제프 케넷은 "호손은 여자 축구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AFL이 아직 우리에게 참가 날짜를 주지 않았지만, 올해의 성과를 보면 2020년 AFLW 대회에 진출할 자격을 얻었다고 믿습니다."라고 썼다.[86]
2021 시즌의 코치는 벡 고다드이며 주장은 제스 트렌드이다.[87]
'''호손 리저브'''는 클럽의 리저브 팀으로, AFL 리저브 대회가 해체될 때까지 참가했다. 2000년부터 호손은 VFL의 박스 힐 풋볼 클럽과 제휴를 맺고 있다. 제휴에 따라 AFL에 선발되지 않은 호손 선수들은 VFL 대회에서 박스 힐 시니어 선수들과 함께 뛸 수 있다. 박스 힐은 2001년, 2013년, 2018년 세 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호손은 1972년 VFL 19세 이하 대회에서 노스 멜버른을 상대로 승리했다.[27] 이 경기에서 버니 존스, 론 비티, 마이클 젬스키, 이안 스크림쇼가 선수로 뛰었다. 1969년에는 리치몬드에게 패배했다.
호손은 지역 교외 대회에서 U-17 팀을 운영했다. 1968년까지 멜버른 보이즈 리그에서 활동하다가 1969년부터 1973년까지 사우스 이스트 서버번 FL로 이적했다. 1970년 프리미어십 팀에는 버니 존스, 폴 레인무스, 웨인 베반이 포함되었다. 1973년에는 모든 VFL 클럽을 포함하는 U-17 대회를 창설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했다. 로버트 디피에르도메니코는 시니어 랭크에 진출한 유일한 선수였다.[94]
U-17 팀은 1960년부터 1962년까지 3년 연속 프리미어십에서 우승했다. 데이비드 알비스톤, 닐 퍼거슨, 퍼시 커밍스, 앨런 파이퍼는 이 팀 출신으로 시니어 팀에서 뛰었다. 앨런 파이퍼는 1987년 브리즈번 베어스를 통해 퀸즐랜드에 AFL 풋볼을 설립하고, 1993년 골드 코스트에서 브리즈번으로 클럽을 이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호손 풋볼 클럽은 2019년부터 빅토리아 시각 축구 리그(Victorian Blind Football League, VBFL)에 참가하고 있다.[95] 2019년 프리미어십에서 7점 차로 우승을 차지했다.[95] 2023년에는 호손 골드와 호손 브라운 두 팀이 참가하여 브라운 팀이 그랜드 파이널에서 골드 팀을 꺾고 우승했다.[96] 그러나 2024년에는 포트 멜버른 풋볼 클럽(Port Melbourne Football Club)이 VBFL에 합류하면서 두 팀은 해체되고 단일 호손 팀으로 운영되고 있다.[96]
9. 1. VFL Women's (VFLW)
빅토리안 여자 풋볼 리그(Victorian Women's Football League)가 2016년에 재편되어 VFL 브랜드로 편입된 후, 호손 풋볼 클럽은 2017년에 녹스 팰컨스(Knox Falcons)로부터 라이선스를 획득하여 VFLW 팀을 창단했다.[84] 이 팀은 박스힐(Box Hill)로 이전되어 2017 시즌에 세 경기를 승리했다.VFLW 팀은 대부분의 경우 박스 힐 남자팀 경기에 앞서 경기를 치르며, 홈 구장은 박스 힐 시티 오벌이다. 이는 호손 팬들에게 모든 홈 경기에서 양 팀을 모두 응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84]
2018년, 호손 여자팀은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VFLW 프리미어십에서 지롱을 4.6.30으로 2.5.17로 꺾고 우승했다.[85] 수비수 샨텔라 페레라는 그랜드 파이널에서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되는 리사 하드먼 메달을 수상했다.
클럽 회장 제프 케넷은 "호손은 여자 축구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AFL이 아직 우리에게 참가 날짜를 주지 않았지만, 올해의 성과를 보면 2020년 AFLW 대회에 진출할 자격을 얻었다고 믿습니다."라고 썼다.[86]
2021 시즌의 코치는 벡 고다드이며 주장은 제스 트렌드이다.[87]
9. 2. Reserves team (VFL)
호손 리저브는 1924년 빅토리아 주니어 풋볼 협회(VJFA)의 2부 리그에 '호손 주니어 풋볼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전했다.[88] 준결승전에서 노스 멜버른을 꺾고 챌린지 결승전에서도 승리했지만,[89][90][91] 결승전에서 1부 리그 마이너 프리미어인 사우스 멜버른 디스트릭트에 패했다.[92][93] 1925년 호손이 VFL에 참가하면서 VFL 세컨즈에 팀을 출전시켰다.리저브 팀은 1958년 콜링우드를 4점 차로 꺾고 첫 우승을 차지했으며, 1959년에는 피츠로이를 31점 차로 꺾고 2연패를 달성했다. 1972년에는 제프 앵거스, 켄 백, 마이클 포터, 레이 윌슨 등 전년도 시니어 우승팀 선수들이 포함된 팀이 멜버른을 상대로 막판 역전승을 거두며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1985년에는 제임스 모리시, 그렉 디어, 피터 커런, 크리스 위트먼, 폴 애벗 등 미래의 우승 선수들과 피터 나이츠, 게리 버케나라, 로드니 이데, 콜린 로버트슨 등 베테랑 선수들이 활약하며 네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1997년 마지막 그랜드 파이널에서는 리치몬드에 44점 차로 패했다.
호손 리저브는 클럽의 리저브 팀으로, AFL 리저브 대회가 해체될 때까지 참가했다. 2000년부터 호손은 VFL의 박스 힐 풋볼 클럽과 제휴를 맺고 있다. 제휴에 따라 AFL에 선발되지 않은 호손 선수들은 VFL 대회에서 박스 힐 시니어 선수들과 함께 뛸 수 있다. 박스 힐은 2001년, 2013년, 2018년 세 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9. 3. Under-19s, Under-17s
호손은 1972년 VFL 19세 이하 대회에서 노스 멜버른을 상대로 승리했다.[27] 이 경기에서 버니 존스, 론 비티, 마이클 젬스키, 이안 스크림쇼가 선수로 뛰었다. 1969년에는 리치몬드에게 패배했다.호손은 지역 교외 대회에서 U-17 팀을 운영했다. 1968년까지 멜버른 보이즈 리그에서 활동하다가 1969년부터 1973년까지 사우스 이스트 서버번 FL로 이적했다. 1970년 프리미어십 팀에는 버니 존스, 폴 레인무스, 웨인 베반이 포함되었다. 1973년에는 모든 VFL 클럽을 포함하는 U-17 대회를 창설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했다. 로버트 디피에르도메니코는 시니어 랭크에 진출한 유일한 선수였다.[94]
U-17 팀은 1960년부터 1962년까지 3년 연속 프리미어십에서 우승했다. 데이비드 알비스톤, 닐 퍼거슨, 퍼시 커밍스, 앨런 파이퍼는 이 팀 출신으로 시니어 팀에서 뛰었다. 앨런 파이퍼는 1987년 브리즈번 베어스를 통해 퀸즐랜드에 AFL 풋볼을 설립하고, 1993년 골드 코스트에서 브리즈번으로 클럽을 이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9. 4. 빅토리아 시각 축구 리그 (VBFL)
호손 풋볼 클럽은 2019년부터 빅토리아 시각 축구 리그(Victorian Blind Football League, VBFL)에 참가하고 있다.[95] 2019년 프리미어십에서 7점 차로 우승을 차지했다.[95] 2023년에는 호손 골드와 호손 브라운 두 팀이 참가하여 브라운 팀이 그랜드 파이널에서 골드 팀을 꺾고 우승했다.[96] 그러나 2024년에는 포트 멜버른 풋볼 클럽(Port Melbourne Football Club)이 VBFL에 합류하면서 두 팀은 해체되고 단일 호손 팀으로 운영되고 있다.[96]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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