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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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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치성은 일본 고치현 고치시에 위치한 성으로, 1338년 오다카사카 마쓰오마루가 축성한 오다카사카 산성에서 유래한다. 남북조 시대와 센고쿠 시대를 거치며 조소카베 모토치카에 의해 재건되었고, 에도 시대에 야마우치 가즈토요가 현재의 고치성을 건설했다. 1959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천수각 등 15개 동의 건물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고치성은 고치 공원으로 운영되며, 벚꽃 명소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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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성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이름고치성
일본어 이름高知城
로마자 표기Kōchi-jō
별칭다카조
종류히라야마시로 (언덕 위 성)
위치일본 고치현 고치시 마루노우치 1-2-1
좌표33°33′40″N 133°31′53″E
문화재 지정일본 국가 사적
중요문화재
고치성
건축 및 역사
건축 시작1601년
건축 완료1611년
건축가야마노우치 가즈토요
재료흙, 돌, 나무
높이5층 (천수)
사용 기간1611년 ~ 1868년
해체해당 사항 없음
현재 상태혼마루(가장 안쪽 해자)의 모든 건물은 1729년에서 1753년 사이에 지어진 원본임.
소유권해당 사항 없음
관리 주체해당 사항 없음
주둔군해당 사항 없음
지휘관해당 사항 없음
점유자해당 사항 없음
전투해당 사항 없음
사건해당 사항 없음
구조 정보
구조 방식계곽식 평산성
천수 구조독립식 망루형 4중 6층 (1601년 축조, 1747년 재건, 현존)
건축자오타카사카 씨?
건축 시기남북조 시대 (14세기경)
재건조소카베 모토치카, 야마노우치 가즈토요, 야마노우치 도요시게
통치자야마노우치 씨
폐지1871년 (메이지 4년)
잔존물현존 천수
어전
야구라

석벽
해자
종루
문화재중요문화재 (천수 등 15동)
국가 사적
기타
외부 링크문화청 문화재 온라인

2. 역사 및 연혁

센고쿠 시대 당시 도사(土佐)국은 오코(岡)성을 거점으로 시코쿠 대부분을 정복한 조소카베 모토치카(長宗我部元親)가 다스렸다. 그러나 오코 성은 산성이었고, 조카마치(城下町, 성하 마을)를 개발할 공간이 부족했다. 1585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패한 후, 모토치카는 오타카야마(帯屋山) 언덕과 헤이안 후기 또는 가마쿠라 시대에 오타카사 마쓰오마루(大高坂松丸)가 건설한 고대 요새의 폐허에 새로운 성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성은 공간과 중심 위치라는 이점이 있었지만, 당시 언덕 주변 지역은 가가미가와(鏡川)에서 유입된 충적토로 인해 매우 습지였고, 홍수가 빈번했다.[2] 이후 모토치카는 함대와 더 가깝다는 이점이 있는 해안의 우라도 성(浦戸)성으로 이동했다.

모토치카의 후계자 조소카베 모리치카(長宗我部盛親)는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에서 서군에 가담하여 영지를 몰수당했다. 도쿠가와 막부(徳川幕府)는 도토미(遠江)국 가케가와성(掛川)의 영주 야마우치 가즈토요(山内一豊)에게 도사 번(土佐藩) 다이묘(大名)로서 202,600석(石)을 주고 도사국을 통치하도록 명령했다.[3] 가즈토요는 먼저 우라도 성에 입성했지만, 방어가 허술했기 때문에 1601년부터 1611년까지 오타카야마 성을 재건했다. 그는 성의 이름을 가와나카야마(川中城)성으로 바꾸고, 나중에 고치(高知)성으로 변경했다.[4]

1727년 화재로 성의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1729년부터 1753년 사이에 원래 스타일로 재건되었다. 보신 전쟁(戊辰戦争)과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에도 살아남았으며, 제2차 세계 대전(第二次世界大戦)도 무사히 견뎌냈다. 1948년부터 1959년까지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거쳤다. 고치 성은 전투가 벌어진 적은 없지만, 성 건물이 모두 역사적 구조물이고 전후 복제품이 아니라는 점이 특징이다. 일본에서 역사적인 텐슈(天守, 천수각)와 다이묘의 거주지인 궁궐을 모두 보존한 유일한 성이자, 혼마루(本丸, 본성)의 모든 원래 건물(18세기 재건)이 여전히 남아 있는 유일한 성이다.[5]

2006년 일본성곽협회(日本城郭協会)에 의해 일본 100대 명성(日本100名城)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6] 고치역(高知駅)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다.[7]

고지 평야 중심에 위치한 다카사카야마(大高坂山) (표고 45m)[23] 위에 축조된 계단식 평산성으로, 산 남쪽을 흐르는 거울강(鏡川), 북쪽의 에노구치 강(江ノ口川)이 각각 외호로 이용되었다.

전국 시대 이전에는 다카사카야마 성(大高坂山城/大高坂山-) 또는 다카사카 성이라 불리는 성이 있었으며, 최초 축조 시기는 남북조 시대[23]이다. 토사(土佐)의 전국 다이묘 장종가부 모토치카(長宗我部元親)는 1588년(덴쇼(天正) 16년), 오코조 성(岡豊城)에서 이곳으로 본거지를 옮기려 했으나 저습지인 산록의 공사가 난항을 겪어, 대신 항구(우라토 만(浦戸湾))에 면한 우라도 성(浦戸城)을 선택했다[23](다른 설도 있음).

장종가부 씨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한 서군에 가담하여 개역되었고, 1601년(게이초(慶長) 6년), 야마우치 가쓰토요(山内一豊)가 토사 국(土佐国)을 받아 도사 번을 세웠다. 카츠토요는 다카사카야마에서 성을 쌓기 시작하여 1603년(게이쵸 8년)에 본마루와 니노마루는 완성되었지만, 성 전체의 완공은 1611년(게이쵸 16년)[23], 카츠토요 사후 두 번째 번주인 야마우치 다다요시(山内忠義) 시대가 되어서였다. 3층 6층의 천수각은 카츠토요가 가증·전봉 전에 거성으로 삼았던 가케가와 성(掛川城)(시즈오카 현(静岡県))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카츠토요에 의해 고치야마 성(河中山城)으로 명명되었으나, 고치야마 성으로 이름을 바꾼 후 현재의 성명이 되었다.

에도 시대 초기의 건물은 1727년(교호(享保) 12년)의 대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어 1753년(호레키(宝暦) 3년)까지 25년에 걸쳐 재건되었고, 현존 천수각은 1749년(간엔(寛延) 2년) 건조로 추정된다.[23]

고치 성은 본마루의 건물이 완벽하게 남아 있고, 천수각과 본마루 고텐(御殿)이 모두 현존하는 유일한 성이다.[26] 메이지(明治) 6년(1873년) 폐성령과 태평양 전쟁 전재를 면하여 천수각, 본마루 고텐, 추수문 등 15동의 건물이 현존하며, 모두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고치현 소유물이다. 토사야마우치가 보물자료관에 우시토라야구(丑寅櫓)의 일부라고 전해지는 부재가 소장되어 있다.

성 전체는 '''고치 공원'''으로 무료 개방, 천수각 및 본마루 고텐(「懐徳館」) 입장은 유료이다. 고치 시청, 고치 현청, 고치 지방 법원, 고치 지방 검찰청 등 행정·사법 기관이 성 주변에 있으며, 고치 현 행정 중심지이다(현청사만 공원 내). 성 내에는 카츠토요, 아내 치요(겐쇼인(見性院)), 이타가키 다이스케(板垣退助)의 동상이 있다.

2. 1. 남북조 시대 (무로마치 시대 초기)

1338년 남조 측 호족 오다카사카 마쓰오마루가 고다이고 천황의 7번째 아들 미쓰나가 친왕을 오다카사카 산성으로 맞이했다.[23] 1341년 마쓰오마루는 북조 측 호소카와 젠조, 사에키 쓰네사다와의 싸움에 패하여 성이 함락되고 폐성되었다.[23]

2. 2.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조소카베 모토치카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서 도사 국 1국을 인정받았다. 1587년 히데요시의 규슈 정벌에 참전한 후, 모토치카는 이 지역에 성을 축성하기 시작했다.[2]

1591년, 모토치카는 잦은 수해에 시달리던 오다카사카 산성을 떠나, 가쓰라하마와 가까운 우라토에 우라토 성을 쌓았다. 센고쿠 시대에 도사 국은 오코 성을 중심으로 시코쿠 대부분을 장악한 조소카베 모토치카가 다스렸다. 그러나 오코 성은 산성이어서 성 아래 마을을 발전시킬 공간이 부족했다. 1585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패한 후, 모토치카는 오타카야마 언덕과 헤이안 시대 후기 또는 가마쿠라 시대에 오타카사 마쓰오마루가 건설했던 옛 요새 터에 새로운 성을 건설하기로 결심했다. 새 성은 공간과 중심 위치라는 장점이 있었지만, 당시 언덕 주변은 가가미가와 강에서 유입된 충적토로 인해 습지가 많았고, 홍수가 자주 발생했다.[2] 모토치카는 얼마 후 그의 함대와 더 가깝다는 이점이 있는 해안의 우라토 성으로 다시 옮겼다.

덴쇼 15년(1587년), 조소카베 모토치카도요토미 히데요시규슈 정벌에 참전하고 돌아온 후, 다시 다카사카야마에 성을 쌓았다. 다만, 덴쇼 13년(1585년)에 이미 모토치카가 다카사카야마를 거점으로 삼았다는 설도 있다.[27]

덴쇼 19년(1591년), 배수가 잘 되지 않아 모토치카는 3년 만에 다카사카야마 성을 버리고, 게이힌과 가까운 우라토의 우라토 성을 고쳐 자신의 거점으로 삼았다. 그러나 모토치카가 다카사카야마 성을 버렸다는 견해는 야마우치 가문 지배하의 에도 시대 2차 사료에서 처음 등장했다. 우라토 성의 규모가 작았고, 우라토로 옮긴 후에도 다카사카 주변 정비가 계속 진행되었다는 흔적이 있다는 점에서, 우라토 성은 임진왜란에 대응하기 위한 일시적인 거점이었고, 다카사카야마 성의 정비도 계속되었다는 설도 있다.[27]

2. 3. 에도 시대

1601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모리치카가 서군에 가담했기 때문에 영지가 몰수되고, 이를 대신해 야마우치 가즈토요가 가케가와에서 이봉되어 우라토성에 입성한다.[3]

1601년 8월, 우라토는 성하마을을 건설하기에 좁았기 때문에, 다음 달인 9월부터 도도 쓰나이에 책임하에 오다카사카 산에 혼마루 조성과 성하 마을 정비를 위한 주변 강의 치수 공사가 시작되었다.

1603년 혼마루와 니노마루가 완성되었다. 9월 26일 가쓰토요는 새로운 성에 입성하고, 이때 신뇨지의 승려 자이센으로부터 성의 이름을 고치 산성(河中山城)으로 명명되었다.

1610년 홍수가 계속되자, 2대 번주 야마우치 다다요시는 '고치(河中)'라는 글자를 기피하여 지쿠린지의 승려 구쿄에 의해 성의 이름을 고치 산성(高智山城)으로 개명하였다. 이 시기부터 성의 이름을 간략하게 고치 성(高知城)이라고 불렀으며, 이 지역의 명칭도 고치(高知)라고 불리게 되었다.

1611년 산노마루가 준공되어 고치 성의 성곽 배치가 모두 완성되었다.

1727년 고치 성 주변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여 추수문을 제외한 성의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1729년 8대 번주 야마우치 도요노부가 후카오 다테와키를 총책임자로 성의 재건을 시작하였다.

1748년 천수 및 망루, 문 등이 완성되었다. 천수의 규모는 이전보다 작아졌지만, 소실 전 천수의 외관을 그대로 재현하였다.

1753년 성의 재건이 완료되었다. 현재 보이는 건물 대부분은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2. 4. 메이지 시대 이후

1873년(메이지 6년) 폐성령에 의해 고치 성은 고치 공원이 되었다. 이때 현존하는 건물 외의 건물은 파괴, 매각되었다.[2]

1934년(쇼와 9년) 천수 등 15개 동의 건물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1950년 (쇼와 25년) 문화재보호법 재정에 따라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59년 (쇼와 34년) 6월 18일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2006년(헤세 18년) 4월 6일 일본 100대 명성(84번)으로 선정되었다.[6]

옛 천수각 사진


옛 국보 고치성의 비석

3. 구조

고치 성은 제곽식 평산성으로, 고치 평야 중앙에 위치하며 주변의 가가미가와 강과 에노구치 강을 바깥 해자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의 성은 에도 시대 초기 도사번야마우치 가즈토요가 축성을 시작하여 2대 번주 야마우치 다다요시 때 완성되었다.

1873년 폐성령과 태평양 전쟁에도 불구하고 천수, 오테 문 등 15개 동의 건물이 현존하여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성 전체는 고치 공원으로 개방되어 있으며, 천수 및 혼마루 어전은 자료관으로 활용되어 별도 입장료가 필요하다(18세 미만 무료). 성 주변은 고치 시청, 고치 현청 등 행정 및 사법 기관이 밀집한 행정 중심지이다.

고치 성은 고지평야의 거의 중심에 위치한 다카사카야마(大高坂山) (표고 45m)[23] 위에 축조된 계단식 평산성으로, 산의 남쪽을 흐르는 거울강(鏡川), 북쪽의 에노구치강(江ノ口川)이 각각 외호로 이용되었다.

전국 시대 이전에는 다카사카야마성(大高坂山城) 또는 다카사카성이라 불리는 성이 축조되어 있었다. 최초 축조 시기는 남북조 시대[23]이다. 토사(土佐)의 전국 다이묘로 두각을 나타낸 장종가부 모토치카(長宗我部元親)는 1588년(덴쇼(天正) 16년), 오코조성(岡豊城)에서 이곳으로 본거지를 옮기려 했으나 저습지인 산록의 공사가 난항을 겪어, 대신 항구(우라토만(浦戸湾))에 면한 우라토성(浦戸城)을 선택했다[23](다른 설도 있음).

장종가부 씨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한 서군에 가담하여 개역되었고, 대신 이듬해 1601년(게이쵸(慶長) 6년), 야마우치 가쓰토요가 토사 국(土佐国)을 받아 도사 번을 세웠다. 가쓰토요는 다카사카야마에서 성을 쌓기 시작하여 1603년(게이쵸 8년)에 본마루와 니노마루는 완성되었지만, 성 전체의 완공은 1611년(게이쵸 16년)[23], 가쓰토요 사후 두 번째 번주인 야마우치 다다요시 시대가 되어서였다.

에도 시대 초기의 건물은 1727년(쿄호(享保) 12년)의 대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어 1753년(호레이(宝暦) 3년)까지 25년에 걸쳐 재건되었다[23].

고치성은 본마루의 건물이 완벽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한 천수각과 본마루 고텐(御殿)이 모두 현존하는 유일한 성이다[26].

원경


고치성 원경


조명을 받은 고치성 천수각

3. 1. 주요 건물

오테 문


구로가네 문


쓰메 문


야마우치 가쓰토요 동상


이타가키 다이스케 동상


고치 성에는 다음과 같은 주요 건물들이 현존하고 있다.

  • 천수각: 1727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747년에 복원된 건물이다. 4층 6층의 구조로, 가케가와 성의 천수를 모방했다고 한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양식으로, 남북에는 치도리 박공(破風)을, 동서로는 당파풍(唐破風)을 달았다. 최상층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허가를 받아 만든 고란(高欄)이 설치되어 있다. 평면 크기는 1층과 2층을 총이층으로 8칸×6칸, 3층과 4층을 4칸 정사각형으로 하고, 5층과 최상층은 3칸 정사각형이다. 높이는 18.5m이다.[29]

  • 본마루 궁전 (가이토쿠칸): 천수각에 인접해 있으며, 에도 시대 중기에 재건되었다. 성을 쌓았을 당시에는 도사 번 초대 번주 야마우치 가쓰토요와 그의 정실 치요 부인의 거처였다. 궁전이 완전한 형태로 현존하는 것은 고치 성뿐이다. 상단노마, 이노마, 사노마, 시노마, 창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30]

  • 오테 문 (추수문): 에도 시대부터 현존하는 문으로, 적을 3방향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 구로가네 문 (철문): 2층짜리 문으로, 철판을 박은 문이 있었다.

  • 쓰메 문: 본마루와 니노마루 사이에 걸쳐진 누문(櫓門)으로, 2층은 니노마루와 본마루를 잇는 복도다리이다.


이 외에도 니노마루에는 번주의 거주 공간이었던 니노마루 궁전이 있었고, 사노마루에는 사노마루 궁전이 있었다. 현재 성곽 내에는 야마우치 가쓰토요와 이타가키 다이스케의 동상이 있다.

4. 문화재

1873년(메이지 6년) 폐성령과 이후 태평양 전쟁에도 불구하고 고치성은 파괴되지 않았다. 천수오테 문 등 15개 동의 건물이 현존하며, 이들은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8][9][10][11][12][13][14][15][16][17][18][19][20][21][22] 또한, 우시토라 망루의 일부로 추정되는 부재가 도사 야마우치가 보물자료관에 소장되어 있다.

1959년 6월 18일, 고치성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2006년 4월 6일에는 일본 100대 명성에 선정되었다.

현재 고치 성 전체는 고치 공원으로 무료 개방되어 있으나, 천수 및 혼마루 어전(자료관)은 유료로 운영된다. (단, 18세 미만은 무료)

4. 1. 중요문화재

1934년 (쇼와 9년) 천수 등 15개 동의 건물이 국보로 지정되었다.[8][9][10][11][12][13][14][15][16][17][18][19][20][21][22] 1950년 (쇼와 25년) 문화재보호법 재정에 따라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일본에 현존하는 12개의 완전한 본래 천수각 중 하나인 고치성(高知城)은 1950년 문화재보호법(文化財保護法) 시행 이전에 국보(国宝, National Treasure)로 지정되었다. 법 시행 후, 성 내의 여러 건축물들이 개별적으로 중요문화재(重要文化財, Important Cultural Property)로 지정되었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은 다음 15동이다.

명칭비고
천수[8]--
카이토쿠칸(懐徳館)[9]
난도쿠라(納戸蔵)[10]
쿠로가네몬(黒鉄門)[11]
쿠로가네몬
니시타몬(西多聞)[12]
히가시타몬(東多聞)[13]
츠메몬(詰門)[14]--
로카몬(廊下門)[15]
오테몬(追手門)[16]--
텐슈 동남 야사마베이(天守東南矢狭間塀)[17]
텐슈 북서 야사마베이(天守西北矢狭間塀)[18]
쿠로가네몬 북서 야사마베이(黒鉄門西北矢狭間塀)[19]
쿠로가네몬 동남 야사마베이(黒鉄門東南矢狭間塀)[20]
오테몬 남서 야사마베이(追手門西南矢狭間塀)[21]
오테몬 동북 야사마베이(追手門東北矢狭間塀)[22]--
--


4. 2. 사적


  • 1934년 (쇼와 9년) 천수 등 15개 동의 건물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 1950년 (쇼와 25년) 문화재보호법 재정에 따라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1959년 (쇼와 34년) 6월 18일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2006년 (헤세 18년) 4월 6일 일본 100대 명성에 선정되었다.


; 고치성(高知城)터

1959년 6월 18일 지정.

5. 현대의 고치성



1873년(메이지 6년)에 발효된 폐성령과 뒤이은 태평양 전쟁으로 성이 파괴될 위험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성은 파괴되지 않아 천수 및 어진 오테 문등 15개 동의 건물이 현존해 있다.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26] 또, 15개 동 외에도 우시토라 망루의 일부라고 전해지는 부재가 도사 야마우치가 보물자료관에 수장되어 있다.

고치 성 전 지역은 고치 공원으로 개방되어 있지만, 천수 및 혼마루 어전은 자료관으로 활용되어 있어 별도의 입장료가 있어야 한다. (단, 18세 미만은 무료이다.)[5] 고치 성 주변에는 고치 시청, 고치 현청, 지방 재판소, 지방 검찰청 등 행정기관과 사법기관이 모여있는 행정의 중심지이다. 또 성 안에는 야마우치 가쓰토요와 이타가키 다이스케의 동상이 있다.

고지평야의 거의 중심에 위치한 다카사카야마(大高坂山) (표고 45m)[23] 위에 축조된 계단식 평산성으로, 산의 남쪽을 흐르는 가가미가와 강(鏡川), 북쪽의 에노구치 강(江ノ口川)이 각각 외호로 이용되었다.

전국 시대 이전에는 다카사카야마성(大高坂山城/大高坂山-)[25] 또는 다카사카성이라 불리는 성이 축조되어 있었다. 최초 축조 시기는 남북조 시대[23]이다. 토사의 전국 다이묘로 두각을 나타낸 장종가부 모토치카(長宗我部元親)는 1588년(덴쇼(天正) 16년), 오코조성(岡豊城)에서 이곳으로 본거지를 옮기려 했으나 저습지인 산록의 공사가 난항을 겪어, 대신 항구(우라토만(浦戸湾))에 면한 우라토성(浦戸城)을 선택했다[23](다른 설도 있음, 후술).

장종가부 씨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한 서군에 가담하여 개역되었고, 대신 이듬해 1601년(게이초(慶長) 6년), 야마우치 가쓰토요(山内一豊)가 토사 국(土佐国)을 받아 토사 번을 세웠다. 가쓰토요는 다카사카야마에서 성을 쌓기 시작하여 1603년(게이쵸 8년)에 본마루와 니노마루는 완성되었지만, 성 전체의 완공은 1611년(게이쵸 16년)[23], 가쓰토요 사후 두 번째 번주인 야마우치 다다요시(山内忠義) 시대가 되어서였다. 3층 6층의 천수각은 가쓰토요가 가증·전봉 전에 거성으로 삼았던 가케가와성(掛川城)(시즈오카현(静岡県))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가쓰토요에 의해 고치야마성(河中山城)으로 명명되었으나, 고치야마성으로 이름을 바꾼 후 현재의 성명이 되었다.

에도 시대 초기의 건물은 1727년(교호(享保) 12년)의 대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어 1753년(호레이 3년)까지 25년에 걸쳐 재건되었고, 현존 천수각은 1749년(간엔(寛延) 2년) 건조로 추정된다.[23]

고치성은 본마루의 건물이 완벽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한 천수각과 본마루 고텐(御殿)이 모두 현존하는 유일한 성이다.[26]

성 전체는 '''고치 공원'''으로 무료로 개방되어 있지만, 천수각 및 본마루 고텐(別名「懐徳館」) 입장은 유료이다. 성 주변에는 고치 시청, 고치 현청, 고치 지방 법원, 고치 지방 검찰청과 같은 행정·사법 기관이 늘어서 있으며, 고치현의 행정 중심지가 되고 있다(현청사만 실질적으로는 공원 내에 있다).

또한, 성 내에는 가쓰토요와 그의 아내 치요(겐쇼인(見性院)), 이타가키 타이스케(板垣退助)의 동상이 서 있다.

6. 교통


  • JR 시코쿠 고치 역에서 버스 또는 전차로 10분, 도보로 25분 거리에 있다.
  • 고치 나들목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다.
  • 고치 전차(토사덴 교통(とさでん交通) 이노선(伊野線)) 고치성앞 정류장(高知城前停留場)에서 하차 후, 도보 약 5분 거리에 있다.
  • 시코쿠 여객철도(JR 시코쿠(JR四国)) 도잔선(土讃線) 고치 역에서 도보 약 25분, 버스 약 10분 거리에 있다.
  • 이루메 역(入明駅)에서 500m 거리에 있다.
  • 주차장은 다음과 같다.

주차장명운영 시간주차 가능 대수(요금)
고치공원 주차장연중무휴, 7시 30분~18시 30분65대(유료)
현청앞 지하주차장8시~22시222대(유료)
기타근처에 다수 있음


참조

[1] 웹사이트 高知城跡 https://kunishitei.b[...]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2] 웹사이트 History https://web.archive.[...] 2008-06-03
[3] 서적 The making of modern Japan Harvard University Press 2002
[4] 웹사이트 Sightseeing in Kochi City https://web.archive.[...]
[5] 서적 Architecture in the Feudal Style: Japanese Feudal Residences Kodansha International Ltd. and Shinonbu 1981
[6] 웹사이트 Japan Castle Foundation https://web.archive.[...]
[7] 서적 (国指定史跡事典) National Historic Site Encyclopedia 学生社 2012
[8] 웹사이트 高知城 https://kunishitei.b[...]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9] 웹사이트 高知城 懐徳館 https://kunishitei.b[...]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10] 웹사이트 高知城 納戸蔵 https://kunishitei.b[...]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11] 웹사이트 高知城 黒鉄門 https://kunishitei.b[...]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12] 웹사이트 高知城 西多聞 https://kunishitei.b[...]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13] 웹사이트 高知城 東多聞 https://kunishitei.b[...]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14] 웹사이트 高知城 詰門 https://kunishitei.b[...]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15] 웹사이트 高知城 廊下門 https://kunishitei.b[...]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16] 웹사이트 高知城 追手門 https://kunishitei.b[...]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17] 웹사이트 高知城 天守東南矢狭間塀 https://kunishitei.b[...]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18] 웹사이트 高知城 天守西北矢狭間塀 https://kunishitei.b[...]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19] 웹사이트 高知城 黒鉄門西北矢狭間塀 https://kunishitei.b[...]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20] 웹사이트 高知城 黒鉄門東南矢狭間塀 https://kunishitei.b[...]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21] 웹사이트 高知城 追手門西南矢狭間塀 https://kunishitei.b[...]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22] 웹사이트 高知城 追手門東北矢狭間塀 https://kunishitei.b[...]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23] 뉴스 千田嘉博【お城探偵】高知県・高知城 秘密の扉に「土佐侍」の https://www.sankei.c[...] 産経新聞 2022-05-02
[24] 문서 天守と本丸御殿が両方現存しているのは高知城のみである。天守と追手門が両方現存している城は全国で弘前城、丸亀城、高知城の3ヶ所である。
[25] 문서 大高坂の読み方が「おおたかさ」か「おおたかさか」かは議論がある。なお、対になる高知市内の地名・小高坂は「こだかさ」と読む。
[26] 웹사이트 天守と本丸御殿が現存する唯一の城 高知城【高知県】|高知県|たびよみ https://tabiyomi.yom[...] 2024-08-05
[27] 서적 戦国末~豊臣期土佐国における城下町の形成と展開 高志書院 2010
[28] 웹사이트 高知城追手門東北矢狭間塀及び石垣工事の実施について http://www.pref.koch[...]
[29] 서적 図解 天守のすべて 学習研究社 2007
[30] 웹사이트 南海の名城 高知城へようこそ 重要文化財 https://kochipark.jp[...] 高知城管理事務所 202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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