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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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광산 이씨는 이정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이순백, 이숙백, 이승백 3형제 대에서 상서공파, 한림공파, 제학공파로 분파되었으며, 특히 상서공파는 광산 이씨의 주류를 이룬다. 주요 인물로는 이순백, 이선제, 이조원, 이발 등이 있으며, 이발은 기축옥사에 연루되어 가문이 큰 피해를 입었다. 광산 이씨는 낙안 이씨를 분적시켰으며, 강진과 진도를 중심으로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다. 201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 광주, 경기 지역에 비교적 많은 인구가 분포한다. 조선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었으며, 광산 김씨, 광산 탁씨 등과 인접 본관 관계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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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이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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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관향 | 광주광역시 |
다른 이름 | 광주 이씨(光州李氏) |
시조 | 이정(李靖) |
중시조 | 이순백(李珣白), 이숙백(李淑白), 이승백(李升白) |
집성촌 | 전남 화순군 전남 강진군 전남 나주군 경북 고령군 전남 광산군 충북 괴산군 경북 달성군 |
인구 | 36,741명 (2000년) |
주요 인물 | |
인물 | 이선제 이달선 이중호 이발 이길 이서 |
2. 역사
2. 1. 광산 이씨 계보
광산 이씨는 시조 이정(李靖)의 7대손인 이순백(李珣白)·이숙백(李淑白)·이승백(李升白) 3형제 대에서 상서공파(尙書公派)·한림공파(翰林公派)·제학공파(提学公派) 로 분파되었다. 1856년(철종 7년) 광주 증심사 선당에서 병진대동보(족보)를 발간하였는데, 이 책은 상서공 순백, 한림공 숙백, 제학공 승백 삼조(三祖)의 후손을 모두 등재한 광산이씨 유일의 대동보이다.이순백(李珣白)을 일세(一世)로 한 상서공파는 광산 이씨가 가장 많이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 이순백을 一世로 하여 내려 오다가 五世인 이선제(李先齊) 때 이르러 다섯 아들(五元)대에 이르러 세부적으로 분파가 나뉘게 된다.
- 첫째 아들인 이시원(양심당)의 후손: 익산파, 낙안파, 광주파
- 둘째 아들인 이찬원(제학공)의 후손: 영광파
- 셋째 아들인 이조원(청심당)의 후손: 능주파, 봉황산파, 강진파, 순천파, 화순파
- 넷째 아들인 이한원(세심당)의 후손: 세심당파
- 다섯째 아들인 이형원(성심당)의 후손: 죽청파, 나주파, 진천 동복파, 진도 동외파, 진도 폐동파, 일곡파
1589년(선조 22년) 정여립의 역모사건이 일어났다. 정여립의 집에서 당시 동인의 영수였던 이발(순백부터 十世에 해당되며 이선제의 다섯째 아들인 이형원의 후손이다)과 주고 받았던 편지가 발견되었다. 이 때문에 이발을 비롯한 천여명의 동인이 죽게되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기축옥사로 기록되고 있다. 이발의 조상이었던 이선제까지도 직위가 박탈되었고, 동인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삼족을 멸하였으며, 이발 선생의 82세된 노모와 어린 아들까지도 참형을 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발 선생의 친인척까지 죽게 되었으니 이선제의 다섯 아들에게서 퍼져나간 많은 광산이씨 후손들이 죽게되면서 그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숙백의 한림공파 중에는 그의 아들 이순(順)이 1374년(공민 왕23) 문과에 급하여 헌납(獻納)을 거쳐 풍해 안렴사를 지냈으며, 그의 맏아들 이초(椒)는 조선(朝鮮)이 개국한 후 대사성을, 차남 이매(枚)는 영광 교도를 거쳐 참판을 역임했다.
회령 판관을 지낸 이림(林)의 아들 형제 중 차남 이근생(根生)은 단종이 폐위되고 수양대군(세조)이 등극하자 이를 개탄하여 경북 고령군 성산면 고곡동(慶北高靈郡星山面高谷洞)으로 은거하여 학문에 진력하다가 생(生)을 마치니 그후로 영남파조(嶺南派祖)가 되었다.
한림공파는 장성파, 봉연파, 영남파, 칠곡파, 성주파, 단사동파, 합천파 등으로 이어졌고, 이승백의 제학공파는 개성파로 이어졌다.
2. 2. 광산 이씨 육도보(六度譜)
광산 이씨 최초의 족보는 1762년(영조 38년)에 만들어진 임오보(壬午譜)이다. 전라도 화순 능주 개천사에서 발간되었으며, 전 2권으로 경창부원군(이선제) 유서를 근거로 하고 호산공(이달선) 비문을 기준으로 하였다. 순백 祖를 一世祖(일세조)로 한다.1827년(순조 27년)에는 임오보 간행 후 65년 만에 상서공 순백 祖의 후손만의 족보인 정해보(丁亥譜)가 전라도 화순 능주 개천사 약사전에서 간행되었다. 전 3권이다.
1856년(철종 7년)에는 이정을 시조로 하고 상서공 순백을 一世祖(일세조)로 하여 전 7권의 병진대동보(丙辰大同譜)가 광주 증심사 선당에서 발간되었다. 상서공 순백, 한림공 숙백, 제학공 승백 삼조의 후손을 모두 등재한 광산이씨 유일의 대동보이다.
1881년(고종 18년)에는 상서공 순백 祖 후손의 족보인 신사보(辛巳譜)가 앵남 영모각에서 발간되었다. 전 9권이며, 최초로 항열을 도입하였다.
1912년(순종 6년)에는 상서공 순백 祖 후손의 족보인 임자보(壬子譜)가 전 8권으로 영모각에서 발간되었다.
임자보 이후 100년이 지난 2012년에 족보 수보 편찬을 시작하여 2013년에 완성한 임진보(壬辰譜)는 문헌록 1권, 손록 3권 등 총 4권으로 영모각을 보청으로 하였다.
2. 3. 분적된 관향
'''낙안 이씨'''(樂安 李氏) 등이 광산 이씨에서 분적되었다.3. 주요 인물
이정(李靖)은 광산 이씨의 성을 사용한 첫 번째 조상으로 향공진사를 지냈다.[2] 1856년(철종 7년) 광주 증심사 선당에서 병진대동보를 발간할 때 시조로 정해졌다.[2]
이순백은 이정(李靖)의 8세손으로, 1320년(충숙왕 7년) 상왕이 원나라 환자의 참소로 토번(吐蕃)으로 유배될 때 홀로 상왕을 호종했다.[2] 1322년(충숙왕 10년) 방환하는데 공을 세워 한림학사 사공 상서좌복야에 이르렀고, 은청광록대부 광산부원군에 봉해지고 시호 충장(忠莊)을 받았다.[2] 1856년(철종 7년) 병진대동보에서 상서공파의 일세(一世)로 정해졌다.[2]
이선제는 호가 필문(蓽門)으로, 1389년 광주시 대촌면 이장리에서 태어나 권근, 권우에게 글을 배웠다.[2]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학사, 예문관사관 등을 역임하고, 문종 때 예문관 제학, 춘추관 동지사, 세자 시강원을 지냈다.[2] 특히 사관으로서 태종실록,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의 편찬에 참여했다.[2] 세종과는 많은 정사를 논의하였고, 세종은 필문(公의 호)의 초상화를 병풍에 그려놓을 정도로 신임했다.[2] 훈민정음 창제와 용비어천가 주해, 동국정운 등에도 참여했다.[2]
이조원은 호가 청심당(淸心堂)으로, 1433년(세종 15년) 광주시 대촌면 이장리에서 이선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1510년(중종 5년)에 죽었다.[2]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독학으로 학문을 대성하였고, 부친 필문의 학통을 이었다.[2] 단종 폐위와 세조의 왕위 찬탈에 실망하여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으나, 전라 경상 양도의 어사에 특명되어 탐관오리를 정리했다.[2] 성종 초에 이조정랑의 벼슬을 제수하였으나 끝내 출사하지 않고 고향에서 제자들 학문지도에 힘썼다.[2] 훈민정음 창제 당시 국한문을 혼용한 시조인 "연화조(蓮花操)"와 「환향가(還鄕歌)」는 귀중한 국문 사료로 꼽힌다.[2]
이발(李潑)은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으로 동인의 영수였다.[2] 1544년(중종 39년) 출생하여 1589년(선조 22년) 4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2] 호는 동암(東巖)이다.[2] 선조 조에 알성 장원급제 하시고 호당(독서당)에 올라 학문을 연구하였으며 이조정랑, 홍문관 응교, 부제학, 사간원 대사간, 성균관 대사성 등을 역임했다.[2] 사림의 추앙을 받다가 동서인 당색에서 동인의 영수로 서인인 수구파와 대립하고 국정을 혁신하고 조광조의 지치주의와 왕도정치를 펴고자 헌신했다.[2] 1589년 정여립 역모사건(기축옥사)에 휘말려 삭탈관직 당하고 신문중에 죽었다.[3]
이길은 1550년(명종 5년)에 중호의 3남으로 태어나 1589년 (선조 22년) 39세의 일기로 사망했고, 호는 남계(南溪)이며 이발은 자신의 형이 된다.[2] 조선 중기 1577년(선조 10년) 태묘 별시 문과 부장원으로 급제하여 사간원 정언, 홍문관 수찬, 강원도 순무어사, 의정부사인, 홍문관 직제학으로 선조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했다.[2] 형인 이발과 함께 조광조의 왕도정치를 실현하다가 1589년 기축옥사에 연류되어 사망했다.[2] 1624년(인조 2년)에 신원되고 1691년(숙종 17년)에 부제학으로 추증되었다.[2]
이수강(李壽岡)은 1566(명종 21)∼1651(효종 2)년간 생존한 조선 중·후기의 문신·학자이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이직(以直), 호는 동호(東湖)이다.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합격한 뒤 황산찰방에 잠시 재직하였다. 1620년(광해군 12) 스승이 타계하자 심상(心喪) 3년을 입고 회연서원(檜淵書院)과 비각을 세웠다. 1626년(인조 4) 사축서별제에 임명되었고, 정묘호란에 임금을 호위한 공로로 6품에 승진하였다. 만년에는 고향인 승호(承湖)에서 후진교육에 힘썼다.
4. 지역별 현황
4. 1. 강진 광산 이씨
광산 이씨의 시조 이정으로부터 그의 8세손인 순백(맏아들)을 중시조로 하여 1세(世)가 시작되고 5세가 고려사를 편찬했던 이색(李穡)선생이다. 8세에 이르러 행강 이희(李憙) 선생에 이르러 전남 강진에 정착을 하게 된다. 행강 이희 선생은 조선 성종 때 태어나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고 대사간의 벼슬을 하신 덕망이 높은 분이셨다. 이로부터 강진 광산 이씨는 전라도 강진을 중심으로 주거지가 확장이 되었다. 현재 전남 강진군 성전면 수양리에 수암서원이 있는데 이희 선생은 그곳에 배향되어 있다.다른 광산 이씨 상서공파에 비해 기축옥사 때 받은 피해가 적다고 한다. 그 이유는 행강 이희 선생의 조부에 해당되는 청심당 이조원 선생의 딸이 고경명 선생의 할머니가 되신다. 기축옥사 당시의 서인에 속했던 고경명 선생의 도움으로 큰 화를 피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4. 2. 진도 광산 이씨
광산 이씨가 진도군에 많이 모여 사는 이유는 1589년 기축옥사의 화를 피해 진도로 피신했기 때문이다. 기축옥사는 정여립의 모반을 조작해 동인들을 숙청했던 사건이다. 이때 동인계의 실권 배후 인물이었던 광산 이씨 이발(1544~1589)과 그의 형제, 어머니, 아들 등 삼족이 죽임을 당하는 참화를 입었다. 이때의 화를 피해 이발의 6촌 이윤(1573~?)의 아들 이근(1602~1630)은 목포 달리도를 거쳐 이길(1550~1589)의 아들 이원섭과 함께 진도군 고군면 원포로 들어왔고, 이발의 또 다른 6촌인 이원준은 진도군 의신면 중리에 자리를 잡았다.진도군 임회면 피동에 자리를 잡은 광산 이씨 집안의 일부 사람들은 용산으로 거주지를 옮겼고, 고군면 원포에 자리를 잡은 광산 이씨 집안은 의신면 거룡과 읍내 동외리로 주거지를 확장했다. 의신면 중리로 들어온 이원준 후손들은 임회면 죽림, 읍내 남동, 지산면 삼당리, 임회면 팽목리, 지산면 사천리, 의신면 옥대 등에 자리를 잡았다. 이 집안을 남외파라 한다. 이원섭의 집안은 동외파라 하는데 동외파 중 일부가 조도면 성남도를 거쳐 조도면에 퍼졌다.
2002년에 광산 이씨 5백 위를 모신 경모사를 진도군 진도읍 남산리에 세웠다.
5. 주요 세거지
광산 이씨는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검승리,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죽청리, 도암면 천태리 및 등광리, 이서면 도석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또한 전라남도 나주시 왕곡면 옥곡리, 강진군 성전면 수양리, 신안군과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고탄리, 삼대리, 성주군 선남면 취곡리, 김천시 봉산면 광천리(돈목)에도 광산 이씨가 모여 살고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삼리리, 광주광역시 광산구, 북구 일곡동, 운암동,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1동에도 광산 이씨 세거지가 있다.
6. 전국 분포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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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 가구 수 | 남 | 여 | 계 |
---|---|---|---|---|
서울특별시 | 2,574 | 4,260 | 4,137 | 8,397 |
부산광역시 | 396 | 708 | 599 | 1,307 |
대구광역시 | 676 | 1,195 | 951 | 2,146 |
인천광역시 | 425 | 679 | 709 | 1,388 |
광주광역시 | 2,195 | 3,799 | 3,436 | 7,235 |
대전광역시 | 146 | 239 | 230 | 469 |
울산광역시 | 96 | 169 | 145 | 314 |
경기도 | 1,718 | 2,962 | 2,866 | 5,828 |
강원도 | 95 | 148 | 151 | 299 |
충청북도 | 91 | 134 | 163 | 297 |
충청남도 | 151 | 243 | 270 | 513 |
전라북도 | 471 | 712 | 710 | 1,422 |
전라남도 | 1,837 | 2,775 | 2,593 | 5,368 |
경상북도 | 261 | 417 | 406 | 823 |
경상남도 | 181 | 297 | 302 | 599 |
제주도 | 104 | 184 | 152 | 336 |
7.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
8. 인접 본관
참조
[1]
간행물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
[2]
문서
고려사와 조선왕조 실록에 기록된 역사적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이선제, 이조원, 이중호, 이발, 이길은 광산 이씨에서 오현으로 일컫는 이들이고, 상서공파의 후손이다. 이서는 한림공파의 후손이다.
[3]
문서
정여립의 집에서 이발선생과 주고받은 편지가 발견되어 이를 계기로 이발을 비롯한 천여명의 동인들이 죽거나 유배를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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