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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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금오신화》는 조선시대 초기의 문신인 김시습이 지은 한문 단편 소설집으로, 한국 소설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초자연적인 현상과 비현실적인 사건을 다루는 다섯 편의 단편 소설, 즉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을 담고 있다. 《금오신화》는 전기 소설의 형식을 확립했으며, 한국적 배경과 인물을 통해 당시 사회와 작가의 사상을 반영한다. 작품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개인의 고뇌와 시대적 아픔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현대에는 소설, 희곡, 창극,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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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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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제목 | 금오신화 |
한자 표기 | 金鰲新話 |
로마자 표기 | Geumo Sinhwa |
다른 제목 | 금오산 이야기 새로운 금거북 이야기 금오산에서 쓰여진 새로운 이야기 |
작품 정보 | |
작가 | 김시습 |
창작 시기 | 15세기 |
국가 | 조선 |
언어 | 한문 |
장르 | 소설 |
형태 | 단편 소설 모음집 |
내용 | 한국 최초의 소설 작품으로 알려짐 다양한 환상적 소재를 다룸 불교적 세계관과 현실 비판 의식 반영 다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됨 |
구성 | |
단편 목록 |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
평가 | |
문학사적 의의 | 한국 소설의 효시로 평가 전기소설의 전형 독자적인 설화 문학의 발전 기여 몽유록 형식의 원형을 제시 |
특징 |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독특한 서사 구조 불교, 도교, 유교 사상 복합적 반영 뛰어난 문장력과 섬세한 심리 묘사 사회 비판적 성격 내포 다양한 소재와 자유로운 상상력 |
참고 자료 | |
관련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금오신화 |
2. 수록 작품
《금오신화》는 한자로 쓰인 다섯 편의 단편 소설을 담고 있다. 모두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비현실적인 사건을 경험하는 사람들에 관한 판타지 이야기이다.
〈만복사저포기〉는 어린 시절 고아가 된 양씨 성을 가진 젊은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만복사에서 홀로 생활하던 그는 부처와의 저포 게임에서 이겨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한다. 그러나 그 여인은 실제로 침략 중에 죽은 귀신이며 곧 저승으로 가야 한다. 양씨는 귀신이 된 아내와 헤어진 후 슬퍼하며 남은 생애를 홀로 독신으로 지낸다.
〈이생규장전〉은 이씨와 최 부인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날, 유교 경전을 공부하러 가던 중 이씨는 우연히 담 너머를 보게 되고, 최 부인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서로 시를 주고받고 결국 결혼한다. 하지만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최 부인은 홍건적의 난 중에 죽는다. 그러나 죽은 최 부인은 이씨에게 돌아오고, 이씨는 그녀가 귀신임을 알면서도 이전처럼 행복한 생활을 한다. 3, 4년 후 최 부인은 이 세상을 떠나고, 몇 달 후 이씨는 병들어 죽는다.
〈취유부벽정기〉는 홍씨 성을 가진 젊은 남자가 평양성을 방문하여 술에 취해 시를 읊조리다 선녀를 만나는 이야기이다. 선녀는 자신이 고조선의 위만이 왕위를 찬탈하자 방황하다 결국 선녀가 된 기자의 딸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홍씨와 함께 시를 짓고 읊조리다 동이 트면 떠난다. 그 후 홍씨는 선녀를 다시 만나고 싶어하며 병들어 죽고, 신선이 되는 꿈을 꾼다.
〈남염부주지〉는 세조 때 과거를 준비하던 박씨 성을 가진 젊은 남자의 꿈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불교의 가르침과 귀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불교 지옥 중 하나인 남염부주에 간 꿈을 꾼다. 거기서 그는 저승의 왕인 염라를 만난다. 불교, 귀신, 정치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박씨와 대화를 나눈 후, 염라왕은 박씨의 지식과 열정에 감명받아 자신의 왕위를 박씨에게 물려준다. 박씨는 꿈에서 깨어나지만 곧 병들어 죽는다. 죽은 후, 불멸의 존재들이 박씨의 이웃들의 꿈에 나타나 박씨가 다음 저승의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용궁부연록〉은 고려 시대 글재주로 이름난 한씨 성을 가진 젊은 남자가 박연폭포에 사는 용왕의 초청으로 수중 용궁을 방문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저녁, 한씨는 두 명의 관리에게 이끌려 용궁으로 가는데, 거기서 용왕은 한씨의 명성을 칭찬하고 건물 기초 공사 완료를 알리는 의식(상량문)을 위한 글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글을 쓴 후 한씨는 연회를 즐기고 궁궐을 둘러본다. 집으로 돌아온 후, 그는 일어났던 모든 일이 꿈이었음을 깨닫는다. 그 후 한씨는 산으로 들어가 은둔 생활을 한다.
2. 1. 만복사저포기 (萬福寺樗蒲記)
양생(梁生)이라는 총각이 일찍 부모를 여의고 만복사(萬福寺)에서 홀로 지냈다. 그는 어느 날 배필을 구해 달라며 부처에게 빌었고, 저포 놀이에서 이겨 한 처녀를 얻었다.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었으나, 며칠 뒤 처녀는 자신이 왜구의 난에 죽은 양반집 딸의 귀신임을 밝혔다. 처녀는 저승으로 떠나야 했고, 양생은 슬픔에 잠겨 홀로 살았다.2. 2. 이생규장전 (李生窺墻傳)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은 이씨와 최 부인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날, 유교 경전을 공부하러 가던 중 이씨는 우연히 담 너머를 보게 되고, 최 부인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서로 시를 주고받고 결국 결혼한다. 하지만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최 부인은 홍건적의 난 중에 죽는다. 그러나 죽은 최 부인은 이씨에게 돌아오고, 이씨는 그녀가 귀신임을 알면서도 이전처럼 행복한 생활을 한다. 3, 4년 후 최 부인은 이 세상을 떠나고, 몇 달 후 이씨는 병들어 죽는다.2. 3. 취유부벽정기 (醉遊浮碧亭記)
평양에 사는 홍생은 어느 날 부벽정에 올라 술에 취해 시를 읊는다. 이때 홀연히 나타난 한 선녀는 홍생에게 자신의 내력을 밝히는데, 그녀는 기자의 딸로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정처 없이 떠돌다 하늘로 올라가 선녀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홍생과 더불어 시를 지어 읊다가 날이 새자 하늘로 올라간다. 그 후 홍생은 선녀를 그리워하다 병이 들어 죽었는데, 죽은 뒤 신선이 되었다는 꿈을 꾸었다.2. 4. 남염부주지 (南炎浮洲志)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는 세조 때 과거를 준비하던 박씨 성을 가진 젊은 남자의 꿈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불교의 가르침과 귀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불교 지옥 중 하나인 남염부주에 간 꿈을 꾼다. 거기서 그는 저승의 왕인 염라를 만난다. 불교, 귀신, 정치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박씨와 대화를 나눈 후, 염라왕은 박씨의 지식과 열정에 감명받아 자신의 왕위를 박씨에게 물려준다. 박씨는 꿈에서 깨어나지만 곧 병들어 죽는다. 죽은 후, 불멸의 존재들이 박씨의 이웃들의 꿈에 나타나 박씨가 다음 저승의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2. 5. 용궁부연록 (龍宮赴宴錄)
한씨 성을 가진 젊은 남자가 박연폭포에 사는 용왕의 초청으로 수중 용궁을 방문하는 이야기이다. 어느 저녁, 한씨는 두 명의 관리에게 이끌려 용궁으로 가는데, 거기서 용왕은 한씨의 명성을 칭찬하고 건물 기초 공사 완료를 알리는 의식(상량문)을 위한 글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글을 쓴 후 한씨는 연회를 즐기고 궁궐을 둘러본다. 집으로 돌아온 후, 그는 일어났던 모든 일이 꿈이었음을 깨닫는다. 그 후 한씨는 산으로 들어가 은둔 생활을 한다.3. 작품 배경 및 작가
한국 전기체(傳奇體) 소설 즉, 용궁, 저승, 신선 세계처럼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소재들로써 쓴 소설의 효시로 평가받으며, 초기 소설의 형태로 등장인물은 모두 재자가인이며,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한가적이고, 비현실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세조의 쿠데타(계유정난)가 일어나자 세상에 나아갈 뜻을 꺾고 생육신으로 살았던 김시습의 철학이 담긴 단편소설들이기 때문에 방외인 문학이라고 불린다.
『금오신화』의 저자는 김시습(金時習)이다. 그의 자(字)는 렬경(悅卿)이며, 천한자(淸寒子), 매월당(梅月堂), 동봉산인(東峯山人)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成均館) 북쪽 마을에서 태어난 김시습은 어린 시절부터 매우 총명했다. 다섯 살 때 이미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을 읽고 이해할 정도였다고 한다. 세종 대왕이 그의 천재성을 듣고 궁궐로 불러 비단을 하사하고 재능을 격려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전해진다.
1455년, 17세의 나이에 김시습은 단종이 그의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왕위를 물려주자 학업을 중단하고 불교 승려가 되었다. 단종은 12세에 왕위에 올랐고, 그의 숙부 수양대군은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단종의 측근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하여 결국 3년 후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했다. 이 사건으로 김시습은 관직에 나아갈 의지를 잃고 미친척하며 방랑 생활을 했다. 얼마 후 단종 복위를 모의했던 6명의 신하가 처형당했는데, 김시습은 사람들이 감히 다가가지 못하는 그들의 시신을 거두어 노량진(鷺梁津)에 매장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처형당한 6명의 신하는 사육신(死六臣)으로 알려져 있으며, 김시습은 단종에게 충절을 지킨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곳곳을 떠돌며 시와 산문을 짓던 김시습은 금오산(金鰲山)에 정착하여 승려로 살았다. 그는 세조가 시작한 불경 번역 사업에도 참여했다.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지은 것은 31세에서 36세 사이(1465년~1470년)로 추정된다.
세조가 죽고 성종이 즉위하자, 김시습은 새로운 왕 밑에서 관직에 나아가기를 바라며 다시 유학(儒學)을 공부하고 당시 고위 관직에 있던 서거정(徐居正)과 접촉했다. 그러나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자 다시 은둔하여 불교와 도교를 연구하고 시와 산문을 지었다. 여러 해를 방랑한 끝에 김시습은 1493년 홍산 무량사(無量寺)에서 병을 얻어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3. 1. 생애와 사상
김시습(金時習)의 자(字)는 렬경(悅卿)이며, 천한자(淸寒子), 매월당(梅月堂), 동봉산인(東峯山人)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成均館) 북쪽 마을에서 태어난 김시습은 어린 시절부터 매우 총명하여, 다섯 살 때 이미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을 읽고 이해할 정도였다고 한다. 세종 대왕이 그의 천재성을 듣고 궁궐로 불러 비단을 하사하고 재능을 격려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전해진다.1455년, 17세의 나이에 김시습은 단종이 그의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왕위를 물려주자 학업을 중단하고 불교 승려가 되었다. 단종은 12세에 왕위에 올랐고, 그의 숙부 수양대군은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단종의 측근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하여 결국 3년 후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했다. 이 사건으로 김시습은 관직에 나아갈 의지를 잃고 미친척하며 방랑 생활을 했다. 얼마 후 단종 복위를 모의했던 6명의 신하가 처형당했는데, 김시습은 사람들이 감히 다가가지 못하는 그들의 시신을 거두어 노량진(鷺梁津)에 매장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처형당한 6명의 신하는 사육신(死六臣)으로 알려져 있으며, 김시습은 단종에게 충절을 지킨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곳곳을 떠돌며 시와 산문을 짓던 김시습은 금오산(金鰲山)에 정착하여 승려로 살았다. 그는 세조가 시작한 불경 번역 사업에도 참여했다.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지은 것은 31세에서 36세 사이(1465년~1470년)로 추정된다.
세조가 죽고 성종이 즉위하자, 김시습은 새로운 왕 밑에서 관직에 나아가기를 바라며 다시 유학(儒學)을 공부하고 당시 고위 관직에 있던 서거정(徐居正)과 접촉했다. 그러나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자 다시 은둔하여 불교와 도교를 연구하고 시와 산문을 지었다. 여러 해를 방랑한 끝에 김시습은 1493년 홍산 무량사(無量寺)에서 병을 얻어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3. 2. 창작 배경
세조의 쿠데타(계유정난)이 일어나자 세상에 나아갈 뜻을 꺾고 생육신으로 살았던 김시습의 철학이 담긴 단편소설들이기 때문에 방외인 문학이라고 불린다. 한국 전기체(傳奇體) 소설 즉, 용궁, 저승, 신선 세계처럼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소재들로써 쓴 소설의 효시로 평가받으며, 초기 소설의 형태로 등장인물은 모두 재자가인이며,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한가적이고, 비현실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금오신화』의 창작은 국내외적 영향을 모두 받았다. 국내적으로는 귀신 이야기, 귀신과 인간의 사랑 이야기, 효녀 이야기 등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되어 온 다양한 민담과,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의 전기(傳奇) 소설인 최치원 등의 작품, 그리고 한문으로 쓰인 가전(假傳, 의인화된 우화적 전기)의 영향을 받았다.
해외적으로는 중국의 『전등신화(剪燈新話, New Tales for the Trimming of the Lamps)』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김시습은 『전등신화』를 칭찬하며 서평까지 남겼다. 『금오신화』는 소재와 구성 면에서 『전등신화』의 영향을 강하게 보여주지만, 단순한 모방은 아니다. 김시습은 전기 소설의 미학과 특징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고, 그의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창의성이 『금오신화』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4. 작품의 특징 및 의의
금오신화는 한국 전기체(傳奇體) 소설, 즉 용궁, 저승, 신선 세계처럼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소재들로써 쓴 소설의 효시로 평가받으며, 초기 소설의 형태로 등장인물은 모두 재자가인이며,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한가적이고, 비현실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세조의 쿠데타(계유정난)이 일어나자 세상에 나아갈 뜻을 꺽고 생육신으로 살았던 김시습의 철학이 담긴 단편소설들이기 때문에 방외인 문학이라고 불린다.
4. 1. 전기소설(傳奇小說)
금오신화는 한국 전기체(傳奇體) 소설, 즉 용궁, 저승, 신선 세계처럼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소재들로써 쓴 소설의 효시로 평가받으며, 초기 소설의 형태로 등장인물은 모두 재자가인이며,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한가적이고, 비현실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세조의 쿠데타(계유정난)가 일어나자 세상에 나아갈 뜻을 꺽고 생육신으로 살았던 김시습의 철학이 담긴 단편소설들이기 때문에 방외인 문학이라고 불린다.《금오신화》는 한국 초기의 소설로, 전기(傳奇) 소설의 전형을 완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전기(傳奇)는 당나라에서 유래한 중국 고전 문학의 한 장르이다. 전기 소설은 한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문화권 국가들에서 널리 읽히고 향유되었다. 서정성과 서사성을 결합하고 다양한 문체로 쓰여진 전기는 근본적으로 당시 지식인들이 높이 평가한 문학 장르였다.
한국 지식인들은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부터 전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장르가 설화(說話)와 관련되어 생성되었기 때문에, 이 시대의 초기 전기 소설은 줄거리, 인물 형성, 세부 묘사 면에서 설화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 문학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을 준다. 김시습은 《금오신화》에서 전기 소설의 문법을 사용하여 전기 소설의 장르적 관습과 미학에 혁신을 가져왔다. 《금오신화》에서 완성된 전기 소설의 전통적 문법은 17세기에 큰 변화를 겪었는데, 서술의 길이가 길어지고 줄거리가 사회 문제를 반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식과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전기 소설의 관습은 18세기와 19세기에는 이어지지 않았고, 이 시대의 전기 소설은 더 이상 한국 문학의 중심이 아니었다.
《금오신화》는 대표적인 전기 소설이며, 이 작품에서 완성된 장르의 문법은 16세기 신광한(申光翰)의 단편 소설집 《기재기이(奇載記異)》를 비롯하여 17세기의 전기 소설인 《주생전(周生傳)》, 《운영전(雲英傳)》, 《최척전(崔陟傳)》 등 후대 한국 문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구운몽》과 같은 소설의 서술에도 영향을 주었다.
《금오신화》는 일본에도 소개되었고, 《금오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각색한 작품들이 1666년에 쓰여진 단편 소설집 《오토기보코(伽婢子)》에 실렸다.
4. 2. 문학적 특징
금오신화는 한국 전기체(傳奇體) 소설, 즉 용궁, 저승, 신선 세계처럼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소재들로써 쓴 소설의 효시로 평가받으며, 초기 소설의 형태를 띈다. 등장인물은 모두 재자가인이며,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한가적이고 비현실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세조의 쿠데타(계유정난)이 일어나자 세상에 나아갈 뜻을 꺽고 생육신으로 살았던 김시습의 철학이 담긴 단편소설들이기 때문에 방외인 문학이라고 불린다.『금오신화』는 많은 고전 한국 소설이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것과 달리, 고조선, 고려, 조선 시대 등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등장인물 또한 한국인이며, 시대적 배경 또한 사실적이다. 귀신, 도교의 신선, 염라, 용왕, 염부주, 용궁 등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요소들이 등장하여, 소외되고 고독한 주인공들의 고통과 고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초자연적인 세계를 경험한 주인공들은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아, 이야기는 비극적인 경향을 띤다.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불행에 직면하더라도 자신의 정절과 충절을 지킨다. 이러한 정절과 충절에 대한 강조는 작가 김시습이 세조의 왕위 찬탈을 겪은 경험과 관련이 있다. 많은 서정시가 삽입되었고, 시적인 서술 방식은 인물의 심리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작품의 서정적인 성격을 강조한다.
4. 3. 문학사적 의의
한국 전기체(傳奇體) 소설 즉, 용궁, 저승, 신선 세계처럼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소재들로써 쓴 소설의 효시로 평가받으며, 초기 소설의 형태이다. 등장인물은 모두 재자가인이며,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한가적이고, 비현실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과거시험을 준비하다가 세조의 쿠데타(계유정난)이 일어나자 세상에 나아갈 뜻을 꺽고 생육신으로 살았던 김시습의 철학이 담긴 단편소설들이기 때문에 방외인 문학이라고 불린다.5. 현대적 재해석
최인훈의 단편소설 「금오신화」(1963)와 심상대의 『신금오신화』(1999-2004) 전 4권이 금오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에 해당한다. 또한, 이하륜의 희곡 「저포놀이」(1981), 국립창극단의 창극 「이생규장전-어지러울사 꽃잎은 담 넘어 피고」(1993), 국립국악원의 정가 음악극 「영원한 사랑-이생규장전」(2011, 2012), 황의성이 각색하여 2002년 남원에서 공연된 창극 「만복사저포기」 등 공연으로도 각색되었다. 김인웅 감독의 애니메이션 「이생규장전」(2016)도 있다.
6. 판본
《금오신화》는 일본에서 전해오던 목판본을 최남선이 발견하여 1927년 잡지 《계명》 19호에 소개하였다. 이 목판본은 1884년 도쿄에서 간행된 것으로 상하 두 권으로 되어 있다.[4] 1999년 9월에는 16세기 경 조선 중기의 문신 윤춘년[5] 이 필사한 필사본이 발견되기도 했다.[6]
『금오신화』는 15세기 여러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데, 이는 조선 시대에 널리 읽혔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로는 『금오신화』에 대한 기록은 물론이고 책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워 희귀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는 김집(金集, 1574-1656)이 『신독재수택본전기집』(愼獨齋手澤本傳奇集)에 옮겨 적은 아홉 이야기 중 두 이야기인 『이생규장전』과 『만복사저포기』의 본문만 전해진다.
『금오신화』는 임진왜란(1592년~1598년)을 통해 일본으로 전래되었다. 1653년 목판본으로 간행되기까지 개인 소장되어 감상되었는데, 이 판본이 1653년, 1660년, 1673년 일본에서 재판되는 원본이 되었다. 이후 『금오신화』는 일본 전역에서 널리 읽히게 되었고, 1884년 도쿄에서 새롭게 편집된 『금오신화』가 여러 서평과 함께 출판되었다. 이 책을 보았던 최남선은 1927년 잡지 『계명』 제19권에 사진 인쇄본을 게재하여 『금오신화』를 한국에 다시 소개했다. 1990년대까지 한국에서는 주로 이 판본이 유통되었다.
1999년에는 중국 대련 도서관에서 윤춘년(尹春年, 1514-1567)이 1546년부터 1567년까지 인쇄소 부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간행한 판본이 발견되었고, 이후 이 판본이 가장 잘 보존된 판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6. 1. 현전하는 판본
《금오신화》는 일본에서 전해오던 목판본을 최남선이 발견하여 1927년 잡지 《계명》 19호에 소개하였다. 이 목판본은 1884년 도쿄에서 간행된 것으로 상하 두 권으로 되어 있다.[4] 1999년 9월에는 16세기 경 조선 중기의 문신 윤춘년[5] 이 필사한 필사본이 발견되기도 했다.[6]『금오신화』는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이어진 임진왜란을 통해 일본으로 전래되었다. 1653년 목판본으로 간행되기까지 개인 소장되어 감상되었는데, 이 판본이 1653년, 1660년, 1673년 일본에서 재판되는 원본이 되었다. 이후 『금오신화』는 일본 전역에서 널리 읽히게 되었고, 1884년 도쿄에서 새롭게 편집된 『금오신화』가 여러 서평과 함께 출판되었다. 이 책을 보았던 최남선은 1927년 잡지 『개명』 제19권에 사진 인쇄본을 게재하여 『금오신화』를 한국에 다시 소개했다.
1999년에는 중국 대련 도서관에서 윤춘년(尹春年, 1514-1567)이 1546년부터 1567년까지 인쇄소 부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간행한 판본이 발견되었고, 이후 이 판본이 가장 잘 보존된 판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6. 2. 김집의 신독재수택본전기집
《금오신화》는 일본에서 전해오던 목판본을 최남선이 발견하여 1927년 잡지 《계명》 19호에 소개하였다. 이 목판본은 1884년 동경에서 간행된 것으로 상하 두 권으로 되어 있다.[4] 1999년 9월에는 16세기 경 조선 중기의 문신 윤춘년[5] 이 필사한 필사본이 발견되기도 했다.[6]『금오신화』(Geumo sinhwa)는 15세기 여러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데, 이는 조선 시대에 널리 읽혔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로는 『금오신화』에 대한 기록은 물론이고 책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워 희귀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는 김집(金集, 1574-1656)이 『신독재수택본전기집』(愼獨齋手澤本傳奇集)에 옮겨 적은 아홉 이야기 중 두 이야기의 본문만 전해진다.
『금오신화』는 임진왜란(1592년~1598년)을 통해 일본으로 전래되었다. 1653년 목판본으로 간행되기까지 개인 소장되어 감상되었는데, 이 판본이 1653년, 1660년, 1673년 일본에서 재판되는 원본이 되었다. 이후 『금오신화』는 일본 전역에서 널리 읽히게 되었고, 1884년 도쿄에서 새롭게 편집된 『금오신화』가 여러 서평과 함께 출판되었다. 최남선은 이 책을 보고 1927년 잡지 『개명』 제19권에 사진 인쇄본을 게재하여 『금오신화』를 한국에 다시 소개했다. 1990년대까지 한국에서는 주로 이 판본이 유통되었다.
1999년에는 중국 대련 도서관에서 윤춘년(尹春年, 1514-1567)이 1546년부터 1567년까지 인쇄소 부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간행한 판본이 발견되었고, 이후 이 판본이 가장 잘 보존된 판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7. 같이 보기
참조
[1]
서적
New history of Korea
[2]
서적
Encyclopaedia of Asian civilizations -Vol.3
[3]
서적
Korean literature: its classical heritage and modern breakthroughs
UNESCO Korea Committee
[4]
웹인용
금오신화
http://www.seelotus.[...]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08-11-13
[5]
문헌
[6]
뉴스
중국서 '금오신화' 최고본 발견...16세기 추정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1999-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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