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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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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준태는 1948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난 시인이다. 조선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전남고등학교 교사, 광주매일 편집국 부국장 등을 역임했다. 1969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으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주제로 한 시 "아, 광주여! 우리들의 십자가여"를 발표하여 널리 알려졌다. 그는 한국작가회의 부회장과 5·18 기념재단 이사장을 지냈으며, 농촌과 농민에 대한 애정과 현실 비판, 통일 염원 등을 담은 시들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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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 (시인)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김준태
원어명金準泰
로마자 표기Gim Jun-tae
출생일1948년 7월 10일
국적대한민국
직업시인
경력5.18 기념재단 이사장

2. 생애

1948년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태어났으며, 조선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69년 《시인》지에 시를 발표하고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 대표작으로는 《참깨를 털면서》 등이 있다.

1980년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겪었으며, 당시의 참상을 담은 시 〈아, 광주여! 우리들의 십자가여〉를 《전남매일》에 발표했다.[4] 이 시의 발표로 인해 그는 체포되어 고초를 겪고 교사직에서 해직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으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경험은 그의 문학 세계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김준태는 시뿐만 아니라 판소리오페라 극본, 소설 등 다양한 문학 장르에서 활동하며 사회 현실에 대한 참여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주요 시집으로는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국밥과 희망》, 《오월에서 통일로》 등이 있으며, 5·18을 주제로 한 영문 시집 'Gwangju, Cross of Our Nation'을 출간하기도 했다.

한국작가회의 부회장, 5·18 기념재단 이사장(2011-2013) 등을 역임하며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6][7] 광주문학상(1983), 현산문학상(1985), 제1회 자랑스런 시인상(1999) 등을 수상했다.

2. 1. 출생과 등단

1948년 대한민국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태어났다. 1968년 조선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했으며,[3] 이후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9년, 시 전문 잡지 《시인(詩人)》에 《시작(詩作)을 그렇게 하면 되나》, 《어메리카》, 《신김수영 (新金洙瑛)》, 《서울역》, 《아스팔트》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처음 이름을 알렸다.[3] 같은 해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시 《참깨를 털면서》가 당선되었고, 《전남매일》 신춘문예에도 당선되어 공식적으로 등단하였다.

2. 2. 교직 생활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대학 졸업 후, 김준태는 1980년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이 해는 광주 민주화 운동이 발발한 해이기도 하다. 그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참상을 목격하고 이를 주제로 한 시 〈아, 광주여! 우리들의 십자가여〉를 썼다. 이 시는 《전남매일》 1980년 6월 2일자 1면에 게재되었다.[4] 시가 발표된 후, 〈아, 광주여! 우리들의 십자가여〉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준태는 이 시를 발표한 직후 당국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고문을 당하는 고초를 겪었으며, 한 달 만에 풀려났지만 교사직을 잃게 되었다.

교사직에서 해고된 후, 그는 처음 시를 발표했던 《전남매일》에서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신문사에서 근무하면서도 꾸준히 시 창작 활동을 이어가, 1981년에는 시집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를, 1984년에는 《국밥과 희망》을 출간했다. 특히 1989년에 발표한 시집 《오월에서 통일로》는 당시 선전 매체로 인기가 있었던 판화와 함께 그의 시를 묶어, 김준태의 문학적 의도와 신념을 특히 잘 보여준다. 이 시기 그는 유럽, 미국, 중국,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지를 여행하며 문학 강연을 하기도 했다.[5] 1983년에는 광주문학상을, 1985년에는 현산문학상을 수상하며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았다.

2. 3. 언론 활동과 문학 활동

대학 1학년 재학 중이던 1969년, 전문 시 잡지 《시인》에 〈시작(詩作)을 그렇게 하면 되나〉, 〈어메리카〉, 〈신김수영 (新金洙瑛)〉, 〈서울역〉, 〈아스팔트〉 등 5편의 시를 발표하고, 같은 해 《전남일보》 및 《전남매일》 신춘문예에 시 〈참깨를 털면서〉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3]

조선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전남고등학교 교사가 되었으나, 그해 발발한 광주 민주화 운동의 참상을 다룬 시 〈아, 광주여! 우리들의 십자가여〉를 《전남매일》 6월 2일자 1면에 발표한 후[4]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다. 이 시는 이후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한 달 만에 풀려났지만 교사직에서는 해고되었고, 이후 《전남매일》(이후 광주매일신문)에서 근무하며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광주매일 편집국 부국장, 문화부 부장 등을 지냈다.

교사직에서 해고된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주요 시집으로는 《참깨를 털면서》,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1981), 《국밥과 희망》(1984), 《오월에서 통일로》(1989), 《통일을 꿈꾸는 슬픈 색주가》(1991), 《꽃이, 이제 지상과 하늘을》(1994), 《지평선에 서서》(1999), 《불이냐 꽃이냐》, 《칼과 흙》, 《밭詩》, 《달팽이 뿔》 등이 있다. 특히 1989년 시집 《오월에서 통일로》는 판화와 함께 시를 엮어 그의 문학적 신념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문 시집 'Gwangju, Cross of Our Nation'을 출간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유럽, 미국, 중국,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지를 여행하며 문학 강연을 하기도 했다.[5]

1990년대 이후 문학 활동 영역을 넓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주제로 한 판소리 극본 《무등진혼곡》(1992)과 오페라 〈무등둥둥〉(1999)의 각본을 썼다. 문예지 《문예중앙》에 단편 소설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를 발표하며 소설가로도 활동했다. 이 외에도 세계문학 기행집 《세계문학의 거장을 만나다》, 남북 및 해외동포 시인들의 통일시 해설집 《백두산아 훨훨 날아라》 등을 저술했다.

문학 및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진보적 작가 단체인 한국작가회의 부회장[6], 한국문학평화포럼 부회장(2003)을 역임했으며, 2011년부터 2013년까지 5·18 기념재단 이사장을 지냈다.[7] 또한 신북중학교 교사, 조선대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수상 경력으로는 광주문학상(1983), 현산문학상(1985), 제1회 자랑스런 시인상(1999) 등이 있다.

2. 4. 민주화 이후의 활동

1990년대 군사 독재가 끝나고 민주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김준태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91년에는 시집 《통일을 꿈꾸는 슬픈 색주가》, 1994년에는 《꽃이, 이제 지상과 하늘을》, 1999년에는 《지평선에 서서》를 출간하며 시인으로서 활동을 계속했다.

이 시기 김준태는 문학 활동 영역을 넓혔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주요 소재로 삼아 1992년에는 판소리 극본 《무등진혼곡》을 썼다. 또한 1999년에는 오페라 "무등둥둥"의 각본을 쓰는 등 5·18 민주화 운동을 기리는 여러 공연 작업에 참여했다. 문예지 《문예중앙》에 단편 소설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를 발표하며 소설가로도 활동을 시작했다. 1999년에는 제1회 자랑스런 시인상을 수상했다.

김준태는 진보적인 작가들이 모여 만든 단체인 한국작가회의[6]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으며,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2003년에는 한국문학평화포럼의 부회장을 지냈고, 2011년부터 2013년까지는 5·18 기념재단 이사장을 역임하며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7]

3. 작품 세계

김준태의 작품 세계는 초기 농촌과 농민의 삶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출발하여,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을 겪으며 현실 비판과 민중의 저항 정신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그의 시는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며, 민주주의와 생명 존중의 가치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특히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참상을 고발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 대표작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는 그의 시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시는 광주의 비극을 절절하게 그려내며 자유와 인간 존엄성에 대한 갈망을 강렬하게 표현하여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후 김준태는 통일에 대한 염원과 '밭'으로 상징되는 생명 사상을 시의 주요 주제로 삼으며,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향한 희망을 노래하는 데 집중했다. 그의 시는 한국 현대사의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키고, 인간과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3. 1. 농촌과 농민에 대한 애정

김준태 시인의 1969년 시 "참깨를 털면서"는 그를 시인으로 인정받게 한 작품이며,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시에서 김준태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노동자들의 현실에 집중한다. 농촌 마을의 일상을 따라가며 그들이 농사를 짓고 노동의 결실을 거두는 과정을 그리면서, 김준태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연의 생명력을 찬양한다.

하지만 이 시가 단순히 농촌에서의 삶을 찬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도시 생활의 비인간성을 비판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참깨를 털면서"의 화자는 약 10년 동안 도시에서 살다가 참깨를 털면서 "세상의 일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즐거움"을 느낀다. 참깨가 털리고 쭉정이가 떨어져 나가는 광경이, 빡빡하고 답답한 도시 생활과는 정반대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의 화자는 "어디를 쳐도 참깨가 쏟아져 나오는 저 참깨처럼" 많은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곧 참깨를 너무 세게 쳐서 할머니에게 꾸중을 듣는다. 참깨에서 참깨를 털 때는 "씨앗 하나라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작은 씨앗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으며, 이는 농민들이 수확 시 결코 잊지 않는 것이다.[8] 이처럼 김준태의 시는 농부와 농촌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구축되었다.

3. 2.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현실 비판

: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 죽음과 죽음 사이에

: 피눈물을 흘리는

: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 우리들의 아들은

: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버렸나

: 하느님도 새떼들도

: 떠나가버린 광주여

: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 아침저녁으로 살아남아

: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 빼앗을 수 없는

: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 아아, 우리들의 도시

: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 때로는 파도처럼 밀리고

: 때로는 무덤을 뒤집어쓸지언정

: 아아, 광주여 광주여

: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 무등산을 넘어

: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 아아, 온몸에 상처뿐인

: 죽음뿐인 하느님의 아들이여

: 정말 우리는 죽어버렸나

: 더 이상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없이

: 더 이상 우리들의 아이들을

: 사랑할 수 없이 죽어버렸나

: 정말 우리들은 아주 죽어버렸나

: 충장로에서 금남로에서

: 화정동에서 산수동에서 용봉동에서

: 지원동에서 양동에서 계림동에서

: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

: 아아, 우리들의 피와 살덩이를

: 삼키고 불어오는 바람이여

: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이여

: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 어렵구나 무섭구나

: 무서워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가

: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 이 나라의 하느님 아들이여

: 예수는 한 번 죽고

: 한 번 부활하여

: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 그러나 우리들은 몇백 번을 죽고도

: 몇백 번을 부활할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 지금 우리들은 더욱 살아나는구나

: 지금 우리들은 더욱 튼튼하구나

: 지금 우리들은 더욱

: 아아, 지금 우리들은

: 어깨와 어깨뼈와 뼈를 맞대고

: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 아아,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 해와 달을 입맞추는구나

: 광주여 무등산이여

: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 꿈이여 십자가여

: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 더욱 젊어져 갈 청춘의 도시여

: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 굳게 뭉쳐 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민간인 학살을 목격하면서 김준태 시인의 현실 비판 의식은 더욱 깊어졌다. 그는 대표작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자신이 직접 쓴 것이라기보다는 광주에서 희생된 수많은 영혼들이 진정한 저자였다고 회고했다.[9] 이 시는 광주 학살의 참상을 국내외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김준태는 1980년대 이후 자신의 시를 통해 민중의 정치적 힘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즉,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경험은 그의 시 세계를 확장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1989년 발간된 시집 『오월에서 통일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시집은 시와 함께 판화 작품을 배치하여 독자들이 시의 이미지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판화는 제작이 비교적 쉽고 대량 복제가 가능했기 때문에, 당시 군사 정권의 억압에 맞서 저항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김준태는 『오월에서 통일로』를 통해 시적 지향과 판화라는 매체가 지닌 저항의 힘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시집 제목에 포함된 '통일'이라는 단어 역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남긴 정신이 단순히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을 넘어, 남북 통일을 향한 염원이라는 더 넓은 가치로 확장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김준태의 시는 국가 폭력에 대한 비판과 함께 한반도 통일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990년대 민주화 이후, 그의 시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희망과 상상력을 노래하는 데 더욱 집중하게 된다. 결국 『오월에서 통일로』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의미를 문학적으로 확장시킨 중요한 실천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3. 3. 통일 염원과 생명 사상

김준태 시인의 시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이미지는 이다.[10] 그는 5·18 민주화 운동을 경험하고 현실 비판적인 시를 쓰기 시작한 이후에도 밭에 대한 시적 상상력을 꾸준히 이어갔다. 밭은 단순히 농작물을 생산하는 공간을 넘어, 인간이 들인 노동만큼 정직한 대가를 돌려주는 공간이자 자연의 섭리가 지배하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이는 인간 사회의 복잡한 억압 구조와 대비된다. 김준태 시인은 이러한 밭의 속성에 주목하여 1989년 시집 『칼과 흙』과 1999년 시집 『지평선에 서서』에 "밭의 시학"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그는 흙과 밭이 지닌 생명력에 대한 깊은 믿음을 바탕으로 "칼보다 흙이 강하다"고 시 속에서 강조해왔다. 2014년 발표한 시 "밭시"에서는 "자신을 찾는 길"이 결국 땅과 흙 위에 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농경 사회가 해체되고 도시화가 진행되는 현대 사회 속에서도 인류는 밭과 흙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11]

그의 시에서 "밭"으로 상징되는 자연의 섭리는 신에 대한 사유와 연결된다. 대표적인 예로, 그의 유명한 시 "아, 광주여"의 원래 제목은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였다. 김 시인은 이 시를 쓸 당시 마치 신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다.[12] 또한 다른 자리에서는 광주 학살의 희생자들이야말로 이 시의 진정한 작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 시인에게 광주 학살 희생자들은 신의 또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1981년 시집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를 통해 광주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에게서 '신'을 보았다는 생각을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김 시인에게 신은 "사랑과 평화가 풍성한 존재"이다.[13] 따라서 그가 광주의 참혹한 비극 속에서 오히려 "사랑"을 발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로 보인다. 1984년 시 "금남로 사랑"에서 그는 "금남로는 사랑이다"라고 선언하며, 폭압에 맞섰던 시민들의 용기와 함께 밭을 갈고 나무를 심는 농부의 모습을 동시에 떠올린다.[14] 이를 통해 그는 광주와 금남로를 단순한 비극의 현장이 아니라 "사랑"이 피어나고 "용서"와 "평화"가 깃들 수 있는 장소로 재해석한다. 궁극적으로 김준태 시인의 시는 자연이 모든 것을 포용하듯, 인간 역시 역사의 아픔과 비극을 끌어안고 극복해 나아가야 한다는 윤리적 태도를 보여준다.

4.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내용 없음)

4. 1. 전문

아아, 광주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아아,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리고

때로는 무덤을 뒤집어쓸지언정

아아, 광주여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아아, 온몸에 상처뿐인

죽음뿐인 하느님의 아들이여

정말 우리는 죽어버렸나

더 이상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없이

더 이상 우리들의 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이 죽어버렸나

정말 우리들은 아주 죽어버렸나

충장로에서 금남로에서

화정동에서 산수동에서 용봉동에서

지원동에서 양동에서 계림동에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

아아, 우리들의 피와 살덩이를

삼키고 불어오는 바람이여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이여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나라의 하느님 아들이여

예수는 한 번 죽고

한 번 부활하여

오늘가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백 번을 죽고도

몇백 번을 부활할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살아나는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튼튼하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아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뼈와 뼈를 맞대고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아아,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맞추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져 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 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4. 2. 시의 영향

김준태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는 5.18 민주화운동의 참상 속에서 광주를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예수에 비유하고,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불사조'로 묘사하며 광주의 저항 정신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이 시는 발표 이후 국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외신을 통해 전문이 번역되어, 당시 철저히 고립되었던 광주의 상황과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시인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 하버드 대학교 영문과의 데이비드 맥캔 박사에 의해 시집 'Gwangju, Cross of Our Nation'이라는 제목으로 영역되어 미국 등 영어권 국가에 소개되었다. 또한 1980년 7월에는 일본의 월간지 世界|세카이일본어에 시 전문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실렸으며, 대만 타이페이의 주립희 교수에 의해 중국어로도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이외에도 시카고 메리글로브대 영문과 교수였던 송재평(2013년 작고) 박사 등이 김 시인의 다른 작품 수십 편을 영역하여 해외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19]

5. 수상 경력

6. 저서

wikitext

제목출판사출판 연도
《참깨를 털면서》 / Chamkkaereul teolmyeonseo창작과비평사1977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 Naneun haneunimeul boatda한마당1981
《국밥과 희망》 / Gukbapgwa himang풀빛1984
《넋통일》 / Neoktongil전예원1986
《불이냐 꽃이냐》 / Burinya kkochinya청사1986
《아아 광주여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 Aa gwangjuyeo yeongwonhan cheongchunui dosiyeo실천문학사1988
《오월에서 통일로》 / Oworeseo tongillo광주1989
《칼과 흙》 / Kalgwa heuk문학과지성사1989
《통일을 꿈꾸는 슬픈 색주가》 / Tongireul kkumkkuneun seulpeun saekjuga미래사1991
《저 혼자 퍼덕이는 마음은》 / Jeo honja peodeogineun maeumeun북토피아1994
《꽃이 이제 지상과 하늘을》 / Kkochi ije jisanggwa haneureul창작과비평사1994
《지평선에 서서》 / Jipyeongseone seoseo문학과지성사1999
《한 손에 붓을 잡고 한 손에 잔을 들고》 / Han sone buseul japgo han sone janeul deulgo이화문화출판사2000
《백두산아 훨훨 날아라》 / Baekdusana hwolhwol narara글누림2007
《님이여, 우리들 모두가 하나되게 하소서》 / Nimiyeo, urideul moduga hanadoege hasoseo화남출판사2009
《나는 왜 여기에 서 있지》 / Naneun wae yeogie seo itji책열린시2010
《형제》 / Hyeongje지식을만드는지식2012
《달팽이 뿔》 / Dalpaengi ppul푸른사상2014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 / Ssangdungi harabeojiui norae도서출판b2018
《밭시, 강낭콩》 / Batsi, gangnangkong모악2018
《도보다리에서 울다 웃다》 / Dobodarieseo ulda utda작가2018


참조

[1] 문서 The May 18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is a civic movement that began on May 1980 in the city of Gwangju, South Korea. Resisting the militaristic authoritarian regime, the citizens of Gwangju demanded the establishment of a democratic government and the resignation of the military regime among other demands. The military regime responded swiftly and harshly in order to suppress the citizens, creating many innocent casualties. Films such as ''A Petal'' (1996), ''May 18'' (2007), and ''A Taxi Driver'' (2017) are all based on the real-life events of the May 18 Democratic Uprising. In 2011, documents and records related to the May 18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were officially recorded in the UNESCO "Memory of the World" Register. See the Wikipedia page on the May 18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for more information
[2] 뉴스 Poet Kim Jun Tae's Poem Receives Favorable Reviews in Numerous Journals. https://jnilbo.com/2[...] Jeonnam Ilbo 2019-05
[3] 웹사이트 literature http://www.mudeung.o[...] Mudeungsan Online Museum
[4] 뉴스 Interview: Kim Jun Tae, Chairman of the May 18 Foundation. http://www.hnews.co.[...] Haenam Shinmun 2011-05-09
[5] 웹사이트 Kim Jun Tae siin segyemunhagui geojangeul mannada http://www.yes24.com[...] Yes24 Bookstore
[6] 웹사이트 Introduction to the Foundation http://www.hanjak.or[...] Writers Association of Korea
[7] 웹사이트 May 18 Memorial Foundation http://www.518.org/s[...]
[8] 뉴스 "[100 of Your Favorite Poems – No. 92] 'Chamkkaereul teolmyeonseo.'" http://news.chosun.c[...] Chosun Ilbo 2008-04-24
[9] 뉴스 Interview: Kim Jun Tae, Chairman of the May 18 Foundation. http://www.hnews.co.[...] Haenam Shinmun 2011-05-09
[10] 웹사이트 Jipyeongseone seoseo http://moonji.com/bo[...] Moonji Publisher
[11] 웹사이트 Batsi, gangnangkong http://book.interpar[...] Interpark Books
[12] 뉴스 In Honor of the Souls of Gwangju, Carry a Bouquet of Flowers When You Cross Geumnam Street. http://www.hani.co.k[...] Hankyoreh 2018-05-31
[13] 뉴스 Kim Jun Tae, 'One May in Gwangju, I Saw God.' http://www.catholicn[...] Catholic News 2011-05-17
[14] 뉴스 "'Geumnam-ro was love…' Poet Kim Jun Tae's Commemorative Poem to be Installed in Front of the Old Provincial Office." https://jnilbo.com/2[...] Jeonnam Ilbo 2019-04
[15] 서적 The Things They Carried Tim O'Brien 1990
[16] 서적 Gwangju, Cross of Our Nation Hans Media 2014
[17] 웹사이트 Gwangju Writers Association http://www.gjmunin.o[...]
[18] 뉴스 검열된 신문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15-05-12
[19] 뉴스 문화예술로 형상화… '오월 광주' 영원하라 http://www.jnilbo.co[...] 전남일보 2015-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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