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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바타야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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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바타야키는 홋카이도 어부들이 이로리(공동 화로)에서 해산물을 구워 먹던 방식에서 유래된 일본의 전통 요리이다. 1950년 센다이에 최초의 로바타야키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고, 이후 1965년에는 전국에 1만 개 이상의 로바타야키 식당이 존재했다. 현재는 손님이 직접 식재료를 구워 먹는 "셀프 로바타" 형태의 점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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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바타야키
로바타야키
로바타야키
롯폰기의 이나카야 레스토랑에서 로바타야키에 구워진 음식
분류일본 요리
종류구이
주요 재료해산물, 야채

2. 역사

로바타야키는 일본 최북단 섬인 홋카이도에서 유래되었다.[1] 홋카이도 어부들이 배 위에서 사용하던 이로리(囲炉裏|이로리일본어) 주변에서 음식을 조리하던 것에서 시작되었다.[1] 1965년에는 전국에 10,000개 이상의 로바타야키 식당이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셀프 로바타", "셀프 로바타야키" 등으로 불리는, 이로리와 좌석만 제공하는 점포도 있다. 이러한 점포에서는 식재료를 가져오거나 가게에서 구매하여 직접 굽는 (셀프) 방식이다. 이러한 점포는 상설 또는 가설 형태로, 바비큐나 셀프 굴 굽는 곳과 유사하다.

2. 1. 기원

로바타야키는 일본 최북단 섬인 홋카이도에서 유래된 요리 방식이다.[1] 홋카이도 어부들이 배 위에서 사용하던 이동식 화로인 이로리(囲炉裏|이로리일본어) 주변에서 음식을 조리하던 것에서 시작되었다.[1] 어부들은 빈초탄 숯을 돌 상자에 넣어 배를 보호하며 요리했다.[1] 홋카이도가 목가적인 시골 지역으로 묘사되는 정부 캠페인 이후, 이 요리 스타일은 일본 전역에서 인기를 얻었다.[1]

최초의 로바타야키 식당은 미야기현 센다이시에 문을 연 '로바타'였다.[1] 이후 오사카시를 시작으로 일본 전역에 로바타야키 식당이 생겨났으며, 1965년에는 전국에 10,000개 이상의 식당이 있었다.

1950년 도호쿠 지방민속학에 정통한 센다이시 출신의 아마에 도미야가 미야기현 센다이에 음식점 '로바타'를 열면서 '로바타야키'라는 명칭이 생겨났다고 알려져 있다.[25]

센다이 공습으로 센다이시 도심부가 불타 없어진 후,[10][11] 1950년 아마에 도미야가 센다이 유곽의 중심지였던 혼야구라초(현재 고쿠분초의 일부)에 향토 주점 '''로바타'''를 열었다.[10] 이 가게가 "로바타야키"의 발상지로 여겨진다.[25] 가게 이름인 "로바타"는 린코인의 주지가 지었다.[10]

도미야는 다이쇼 시대부터 아동 문화 활동가이자 향토사학자로 알려져 있었으며, 미야기현 민예 협회의 초대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27] "로바타"는 이로리를 둘러싸고 도미야와 대화를 즐기는 일종의 살롱과 같은 곳이었다.

어느 날, 가게 주인의 지인이 개점 축하 선물로 큰 나무 주걱을 선물했는데, 이것이 장식 대신 손님에게 술이나 요리를 내는 쟁반처럼 사용되었다. 이것이 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로바타야키의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

"로바타"의 첫 번째 제자는 오사카부에서, 두 번째 제자는 홋카이도 구시로시에서 로바타야키 가게를 열었다. 1953년 구시로의 제자는 센다이와 마찬가지로 "로바타"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열었고,[32][33] 구시로항에서 잡히는 어개류도 굽기 시작했다. 이 구시로의 "로바타" 메뉴를 따라 일본 각지에 로바타야키 가게가 퍼져나갔다고 한다.

1960년대에는 전국에 1만 개 이상의 로바타야키 가게가 있었다고 한다.[34]

2. 2. 센다이 로바타

미야기현센다이시제2차 세계 대전센다이 공습 (1945년7월 10일)으로 센다이시 도심부가 불타 없어졌다.

전후 점령기인 1950년7월 2일[10][11], 오사키하치만구의 미즈(御神酒) 술집인 텐쇼 주조(당시 센다이시 하치만초)[12][13][14]의 셋째 아들[15] 아마에 도미야[16][17][18][19][20][21]가 일본 술 판로 확대를 위해 센다이 유흥가 중심지인 혼야구라초(현재 고쿠분초의 일부)[10][15]에 연 향토 주점 "로바타"가 "로바타야키"의 발상지로 여겨진다[25]. 가게 이름 "로바타"는 린코인[26] 주지가 지었다[10].

도미야는 다이쇼 시대부터 아동 문화 활동가이자 쇼와 초기 "제1차 고케시 붐"을 일으킨[19][21] 향토사학자로, 훗날 미야기현 민예 협회 초대 부회장을 역임했다[27]. 노구치 우조, 야마무라 보초[28], 다케히사 유메지[18], 3대 규슈 가인 야나기하라 하쿠렌・쿠조 타케코・하라 아사오[10], 미야자와 겐지[29], 나가이 잇세이[30] 등과 교류했다[17][31]. "로바타"의 성냥 라벨은 무나카타 시코가 그렸다. 즉, "로바타"는 손님이 센다이 문화인 도미야와 이로리를 둘러싸고 대화하는 살롱 같은 가게였다. 1960년경 제임스 커캡도 방문했다[10]. 도미야는 1924년 민예품점 "코케시동"을 열었고, "로바타"에도 골동품이 장식되었는데, 어느 날 지인이 선물한 큰 나무 주걱을 손님에게 술이나 요리를 내는 쟁반처럼 사용했다. 이것이 훗날 로바타야키의 특징이 되었다. 시내에 본점과 지점이 함께 있던 시기도 있었고 번성했다[10]. 이후 가게는 여러 번 이전, 주인도 바뀌었지만, 현재도 같은 시 "고쿠분초" (이나리코지 길)에 "원조 로바타"라는 이름으로 있다[25].

"로바타"의 첫 제자는 오사카부에서, 두 번째 제자는 홋카이도구시로시 사카에초에서, 다른 세 제자는 아오모리현이나 후쿠시마현 등에서 로바타야키 가게를 열었다 (오사카부 가게는 폐점).

1953년, 구시로 제자는 센다이와 같이 "로바타"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열었다[32][33]. 이 가게에서는 구시로항에서 잡히는 어개류도 구웠다. 이 구시로 "로바타"의 메뉴를 따라 일본 각지에 로바타야키 가게가 퍼졌다.

쇼와 40년대에는 "로바타야키" 가게가 전국에 1만 개 이상 있었다고 한다[34].

2. 3. 전국적 확산

''로바타''는 일본 최북단 섬인 홋카이도에서 유래된 요리 방식으로, 어부들이 배 위에서 요리할 때 빈초탄 숯을 사용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홋카이도를 목가적인 시골 지역으로 묘사하는 정부 캠페인 이후, 이 요리 스타일은 일본 전역에서 인기를 얻었다.[1]

최초의 ''로바타'' 레스토랑은 미야기현 센다이에 문을 열었으며, 이후 오사카를 비롯한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1965년에는 전국에 10,000개 이상의 로바타 레스토랑이 있을 정도로 확산되었다.[1]

1953년, 홋카이도 구시로시에는 센다이의 "로바타"에서 수행한 제자가 구시로항에서 잡히는 어개류를 굽는 "로바타"라는 가게를 열었다.[32][33] 이 가게의 메뉴를 따라 일본 각지에 로바타야키 가게가 퍼져나갔다.

쇼와 40년대(1965년~1974년)에는 전국에 1만 개 이상의 "로바타야키" 가게가 있었다고 한다.[34]

3. 특징

어패류의 숯불구이는 센다이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적으로 오래전부터 행해졌다고 생각되지만, 전후 점령기(1945년 - 1952년) 1950년도호쿠 지방의 민속학에 정통한 아마에 도미야가 미야기현 센다이에 연 음식점 '로바타'에서 이 명칭이 생겨났다고 여겨진다.

센다이 공습으로 피해를 입은 센다이시에서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층을 주 고객으로 하는 시내 유곽에 '로바타'가 개업했다. 일반 서민은 골목길 가게나 센다이역 주변의 포장마차를 이용했다.

당시 센다이에는 GI가 많았고, 그들은 센다이역 북쪽의 X다리(미야기노 다리) 주변이나, 센세키선・쿠다케역(진주군・쿠다케 캠프)에 인접한 쿠다케 골목길 등 GI 대상 음식점을 이용했다. 미국 달러가 압도적으로 강했기 때문에 일본인과 GI는 구별되어 생활했다.

현재 센다이의 음식점 '로바타'는 이전・대체되면서 이어지고 있다. 구시로항을 보유한 홋카이도구시로시는 '로바타야키'를 명물로 하며, '로바타야키 발상지'로서 시티세일즈도 하고 있다[8]. 센다이시 남동쪽에 인접한 나토리시 유리아게항에서 1980년경부터 시작된 '유리아게항 아침시장'에서는 셀프 로바타야키가 명물이 되고 있다[9].

1950년(쇼와 25년) 센다이에서는 사노 게이시로가 우설로 우설 정식이라는 명물 메뉴를 자신의 점포 '타스케'에서 만들었는데, 아마에의 로바타야키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에너지, 식량 사정, 식중독 대책 등이 그 배경이 되었다.

3. 1. 조리 방식

'''로바타'''는 1950년(쇼와 25년), 도호쿠 지방민속학에 정통한 아마에 도미야가 미야기현 센다이시에 연 음식점 이름이며, 여기서 로바타야키의 조리 방식이 생겨났다고 여겨진다. '로바타'에서는 이로리 가에 점주(요리사)가 자리를 잡고 숯불로 제철 야채와 어패류를 구워, 완성된 음식들을 '호리반베라'라는 긴 주걱으로 멀리 떨어진 손님에게 전달하는 스타일을 사용했다.[8]

당시 일본에서는 인분을 사용했기 때문에[5] 기생충 문제가 있어 생야채를 먹는 일은 없었으며[6], 냉장고도 보급 전이었기 때문에 야채는 가열하거나 소금 절임을 하는 등 식중독을 피했다. 게다가 에너지 혁명 전으로 도시 가스가 보급되지 않았고[7], 식재료의 가열에는 숯불(직화구이)이 사용되었다. 육식메이지 시대 이래 이미 보급되었지만, 전후의 하이퍼인플레이션 속에서 육류는 고급품이었고, 어패류가 당시 식생활의 중심이었다.

이러한 스타일은 일본 각지에 전파되었고, 현재는 더욱 간략화되어 손님 스스로 숯불로 요리하는 '일본식 바비큐'(주로 어패류의 석쇠구이)를 '로바타야키', 혹은 '로바타'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

3. 2. 식재료

1960년대 이전 일본 농업에서는 인분을 사용했기 때문에[5] 기생충 문제가 있어, 생야채를 먹는 일은 없었다.[6] 냉장고 보급 전이었기 때문에 야채는 가열하거나 소금 절임을 하는 등 식중독을 피했다. 당시에는 에너지 혁명 전으로 도시 가스가 보급되지 않아[7], 식재료 가열에는 숯불(직화구이)이 사용되었다. 육식메이지 시대 이래 보급되었지만, 전후 하이퍼인플레이션 속에서 육류는 고급품이었고, 어패류가 당시 식생활의 중심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바탕으로, '로바타'에서는 제철 야채와 어패류를 숯불로 구워 제공하였다.

3. 3. 분위기

일반적인 로바타야키 식당의 배치는 중앙에 석쇠가 있고, 손님들이 이를 둘러싼 형태이다. 이는 전통적인 '''이로리'''처럼 모래 구덩이 속 난로 형태일 수도 있고, 턱이 져 있는 형태일 수도 있다. 일본에서 로바타야키 식당은 남성 중심의 음주 장소(''이자카야'')인 경우가 많으며, 고객들 사이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4]

'로바타'에서는 '''이로리''' 가에 점주(요리사)가 자리를 잡고 숯불로 제철 채소와 어패류를 구웠다. 그리고 대화 중인 점주(요리사)가 자리를 비우지 않아도 되도록, 완성된 음식들을 '호리반베라'라는 긴 주걱으로 멀리 떨어진 손님에게 전달하는 스타일이 정착되었다. 당시, 요리 외에 아마에의 토크를 내세웠던 '로바타'에는 다양한 부유층이나 지식인들이 모여 일종의 '''살롱'''이 되었다. 이 스타일은 살롱을 열 정도의 말솜씨나 지식을 갖지 못한 점주(요리사)라도 모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로바타'와 같은 특성을 갖지 않은 (살롱이 아닌) 스테레오타입으로 일본 각지에 전파되었다.

4. 문화적 의미

일반적인 배치는 중앙에 위치한 석쇠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전통적인 이로리처럼 모래 구덩이 속 난로 형태일 수도 있고, 손님들이 둘러앉을 수 있도록 턱이 진 형태일 수도 있다. 일본에서 로바타 레스토랑은 종종 남성 중심의 음주 장소(이자카야)이기도 하며, 이는 고객들 사이에서 매우 소중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4]

5. 현대의 로바타야키

1950년 센다이시 출신의 민속학자 아마에 도미야가 미야기현 센다이시에 연 음식점 '로바타'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게는 이로리 가에 점주(요리사)가 자리를 잡고 숯불로 제철 채소와 어패류를 구워, 긴 주걱으로 멀리 떨어진 손님에게 전달하는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이는 당시 살롱과 같은 역할을 하며, 다양한 부유층과 지식인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8]

이러한 스타일은 일본 각지에 퍼져 나갔고, 현재는 더욱 간략화되어 손님 스스로 숯불로 요리하는 '일본식 바비큐'(주로 어패류의 석쇠구이)를 '로바타야키'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

구시로시는 '로바타야키 발상지'로서 시티세일즈를 하고 있으며[8], 나토리시의 유리아게항 아침시장에서는 셀프 로바타야키가 명물이 되고 있다.[9]

6. 로바타야키를 즐길 수 있는 곳

로바타야키의 발상지로 알려진 미야기현 센다이시의 향토 주점 '로바타'는 현재도 같은 시의 유흥가인 고쿠분초 (이나리코지 길을 따라)에 '원조 로바타'라는 가게 이름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25]

'로바타'의 첫 번째 제자는 오사카부에서, 두 번째 제자는 홋카이도 구시로시 사카에초에서, 그 외 세 명의 제자는 아오모리현이나 후쿠시마현 등에서 로바타야키 가게를 열었다 (오사카부의 가게는 이미 폐점).

1953년 구시로의 제자는 센다이와 마찬가지로 '로바타'라는 가게 이름으로 가게를 열었다.[32][33] 이 가게에서는 구시로항에서 잡히는 어개류도 구워 팔기 시작했다. 이 구시로 '로바타'의 메뉴를 따라 하는 형태로 일본 각지에 로바타야키 가게가 퍼져나갔다고 한다.

쇼와 40년대에는 전국에 1만 개 이상의 로바타야키 가게가 있었다고 한다.[34]

현재는 '셀프 로바타', '셀프 로바타야키' 등으로 불리는, 이로리와 그것을 둘러싼 좌석만 제공하는 점포도 있다. 이러한 점포에서는 식재료 등을 가져가거나 가게에서 사거나 하지만, 굽는 것은 손님 스스로 하는 (셀프 형식)이다. 점포는 상설인 것과 가설인 것이 있으며, 바비큐나 셀프 굴 굽는 곳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참조

[1] 논문 Suzuki's Method 1979-03-05
[2] 서적 Lonely Planet Japan Lonely Planet Publications
[3] 논문 Gourmet Gemstones are the Specialty of the House
[4] 서적 The Essence of Japanese Cuisine: An Essay on Food and Culture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5] 문서 化学肥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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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웹사이트 今日の馬込文学 二人の対面 大正14年12月24日(推定)、石川善助、宮沢賢治と会う http://www.designroo[...] DesignroomRUNE「馬込文学マラソン」
[30] 서적 奇人変人御老人 文芸春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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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웹사이트 北海道の旅 http://asahi.co.jp/t[...] 朝日放送テレビ 2014-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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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웹사이트 元祖 炉ばた http://www.night-gui[...] 有限会社 国分堂 201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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