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류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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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성류굴은 신라 시대부터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임진왜란 때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굴 안에 모신 데서 유래하여 이름이 붙여진 석회 동굴이다. 울진군에 위치하며, 최대 넓이 18m, 총 길이 약 800m이며, 약 200m 구간이 개방되어 있다. 동굴 내에서는 신라 시대 각석문이 발견되었고, 진흥왕의 행차 기록이 확인되어 신라 시대 역사를 재구성하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지질학적으로는 선캄브리아기 원남층군 장군 석회암층에 형성되었으며, 고생대 조선 누층군의 여러 지층이 퇴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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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류굴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개요 | |
![]() | |
명칭 | 성류굴 (聖留窟) |
위치 |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산30 |
지정 종류 | 천연기념물 |
지정 번호 | 155 |
지정일 | 1963년 5월 7일 |
지정 사유 | 천연기념물 |
상세 정보 | |
위치 정보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
설명 | 성류굴은 울진에 위치한 동굴이다. |
지정일 | 1963년 5월 10일 |
문화재 정보 | |
문화재청 ID | 16,01550000,37 |
2. 역사
성류굴은 본래 신선들이 놀던 곳이라는 뜻의 선유굴(仙遊窟)이라 불렸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상을 굴 안에 피신시키면서 성류굴(聖留窟)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2. 1. 신라 시대
2019년 3월 21일 울진 성류굴 제8광장에서 정원 14년명을 비롯한 다수의 신라 시대 각석문(刻石文; 암석에 새긴 문자)이 발견되었다.[2] 동굴 내 암벽과 석순, 석주 등에 새겨진 명문에는 경진년, 신유년, 갑진년, 정원 14년, 병부사, 화랑과 승려의 이름, 향도 등이 포함되어 있다.[2]심현용 학예연구사와 이용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가 공동판독한 결과,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성류굴에 행차하였음이 확인되었다.[2] "경진년(560년) 6월 일, 잔교(棧橋=柵)를 만들고, 뱃사공[榏父]을 배불리 먹였다. 여자 둘이 교대로 보좌하며 펼쳤다. 진흥왕이 다녀가셨다(행차하셨다). 세상에 도움이 된 이(보좌한 이)가 50인이었다."와 같이 해독되는 각석문은 삼국사기와 같은 기존 문헌에도 없었던 것으로 신라 역사를 재구성하고 울진 성류굴의 역사적 위상을 밝힐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2]
굴 입구에는 신라 시대의 여행기가 새겨진 돌이 있어 이 동굴이 고대부터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성스러운 장소였음을 확인해 준다.[1]
2. 2. 임진왜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파괴와 약탈로부터 불상을 지키기 위해 굴 안으로 옮긴 데서 유래하여, 부처가 머물렀던 곳이라는 의미로 성류굴(聖留窟)이 되었다.[1] 500여 명의 주민들이 굴속으로 피신하였으나 왜병이 굴 입구를 막아 모두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3. 지질
성류굴은 울진군 일대에 분포하는 선캄브리아기 원남층군 장군 석회암층에 형성되었다.[3] 이후 고생대 조선 누층군의 대기층, 화절층, 동점층, 근남층 등이 차례로 퇴적되었다.[4]
3. 1. 대기층
성류굴 주변의 대기층은 주로 유백색의 괴상 결정질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층리는 거의 없다.[2]3. 2. 화절층
성류굴 주변의 화절층은 주로 리본암으로 구성되며 대기층과의 점이적인 경계를 잘 보여준다.[2]3. 3. 동점층
동점층은 성류굴 입구 부분까지 나타나며, 주로 암록색의 사암 내지 규암으로 구성된다.[2]3. 4. 근남층
근남층은 동점층을 정합적으로 덮고 있으며, 주로 담회색 내지 암회색의 석회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암석 내에는 화석이 거의 없고, 심한 변성과 변형 작용을 받아 대부분 결정질 석회암으로 나타난다.[2] 이 지층은 층서상 동점층 위에 있지만 암석의 구성은 태백 지역의 두무골층과는 많이 다르다. 또한 성류굴 주변에는 막골층과 대비되는 암석이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김련 외(2010)는 성류굴 주변 지역에서 두무골층과 막골층을 설정하지 못하고 이 두 지층을 합하여 근남층을 제안했다.[2]3. 5. 고지진
최진혁 등(2012)은 울진 성류굴 내 동굴생성물들의 파괴 특성과 고지진과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를 시도하였다.[5] 이 연구에서는 종유석, 석순, 석주, 동굴커튼 등 비교적 뚜렷한 파괴를 보이는 총 4종류의 동굴생성물에 대한 정밀 동굴조사를 실시하여 이들에 대한 기하 및 운동학적 특성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석순과 석주 그리고 동굴커튼에 발달하는 단열이 고지진에 의해 파열되었을 가능성을 지시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는 천연기념물 보호법으로 인해 동굴 생성물들에 대해 접근과 시료 채취가 허가되지 않아 파괴된 생성물과 재성장한 생성물의 연대 측정은 실시하지 못하였다.[5]울진군에는 제4기에 활동한 매화 단층과 구산 단층이 발달한다. 두 단층에 대한 ESR 연대측정 결과는 각각 최소 약 22만년, 37만년 전으로 보고된 바 있다. 매화 단층과 구산 단층의 제4기 활동과 성류굴 내 동굴생성물의 파괴를 유발시킨 고지진이 서로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5]
4. 동굴 특징
동굴의 최대 넓이는 18미터, 전체 길이는 약 800미터이며, 이 중 약 200미터 구간이 개방되어 있다. 9곳의 광장과 수심 4~5미터의 물웅덩이 3개가 있다. 종유석, 석순, 석주 등 다양한 동굴생성물이 분포한다. 특히 호수 물속에 잠겨 있는 종유석과 석순은 국내 최대 규모이다. 2015년에는 입구 부근에서 석회암에 새겨진 금석문이 발견되었다.
5. 문화적 가치
굴 입구에는 신라 시대의 여행기가 새겨진 돌이 있어 이 동굴이 고대부터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성스러운 장소였음을 확인해 준다.[1] 2019년 3월 21일 울진 성류굴 제8광장에서 정원 14년명을 비롯한 다수의 신라 시대 각석문(刻石文; 암석에 새긴 문자)이 발견되었다. 동굴 내 암벽과 석순, 석주 등에 새겨진 명문에는 경진년, 신유년, 갑진년, 정원 14년, 병부사, 화랑과 승려의 이름, 향도 등이 포함되어 있다.[2] 심현용 학예연구사와 이용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가 공동판독한 결과,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성류굴에 행차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삼국사기와 같은 기존 문헌에도 없었던 것으로 신라 역사를 재구성하고 울진 성류굴의 역사적 위상을 밝힐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2]
"경진년(560년) 6월 일, 잔교(棧橋=柵)를 만들고, 뱃사공[榏父]을 배불리 먹였다. 여자 둘이 교대로 보좌하며 펼쳤다. 진흥왕이 다녀가셨다(행차하셨다). 세상에 도움이 된 이(보좌한 이)가 50인이었다."[2] 통일 신라 시대 보질도 태자 이야기, 고려 말의 책, 조선 초의 시, 조선 말의 그림 등 다양한 시대의 역사적 자료에 성류굴이 등장한다.[1]
6. 교통
동해선 울진역에서 하차하여 성류굴로 접근할 수 있다. 울진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성류굴 방면 농어촌 버스를 이용하면 약 20분 정도 걸린다.
7. 사진
참조
[1]
웹사이트
울진 Uljin Seongnyu Cave
https://encykorea.ak[...]
2023-07-19
[2]
논문
울진 성류굴 제8광장 신라 刻石文 발견 보고 (Discovery Report of Silla Rock Inscriptions at the 8th Plaza in Seongnyugul Cave, Uljin)
https://www.dbpia.co[...]
2019-06-00
[3]
논문
Early Paleozoic strata of Uljin
The Korean Society of Economic and Environmental Geology
2002-00-00
[4]
웹인용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의 과학적 중요성 (Scientific Significances of the Seongryu Cave (Natural Monument No. 155)
https://scienceon.ki[...]
국립문화재연구원
2010-00-00
[5]
논문
A paleoseismological study based on the damage characteristics of speleothems in limestone cave: a case study from Seongryu Cave in Uljin, Korea (경북 울진 성류굴의 예 : 석회동굴 내 동굴생성물의 파괴특성을 이용한 고지진 연구)
https://www.dbpia.co[...]
2012-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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