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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방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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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숭례문 방화 사건은 2008년 2월 10일, 채종기가 숭례문에 방화하여 발생한 사건이다. 화재로 인해 국보 1호인 숭례문 2층 문루의 90%와 1층 문루의 10%가 소실되었으며, 현판은 훼손되었다. 초기에는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수사 결과 방화로 밝혀졌고, 채종기는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숭례문 화재 이후, 관리 부실과 초기 대응 미흡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며, 2013년 5월 4일 복원된 숭례문이 일반에 공개되었다. 이 사건은 문화재 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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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방화 사건
위치 정보
기본 정보
남대문 화재
사건명숭례문 방화 사건
발생일2008년 2월 10일 ~ 2008년 2월 11일
발생 시간20시 50분
위치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40
원인채종기의 방화
최초 보고자서울중부소방서
결과전각 부분 전소 및 붕괴
관련 정보
방화범방화범의 유죄 확정

2. 사건 발생 및 피해

2008년 2월 10일 20시 40분경, 채종기시너를 붓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 화재가 발생했다. 숭례문 2층에서 흰 연기와 함께 불이 시작되었고, 소방 당국은 신고를 받고 소방차 32대와 소방관 128명을 출동시켰다.[27] 소방관들은 건물 일부를 잘라내고 물과 소화 약제를 뿌렸으나, 2월 11일 0시 25분경 2층 누각 전체가 불에 휩싸였다.[27] 화재 발생 4시간 만인 0시 58분경 지붕 뒷면이 붕괴되기 시작했고 곧 2층이 붕괴되었다.[27] 이어 1층에도 불이 붙어 1시 55분에는 석반만 남은 채 누각이 모두 붕괴되었다.[27]

화재는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50분경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대원들은 즉시 화재 진압을 위해 물을 뿌렸고, 처음에는 성공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자정 이후 꺼진 듯했던 불이 다시 타올라 순식간에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다. 360명이 넘는 소방대원들이 투입되었으나, 목조 구조물 전체가 파괴되고 돌담에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2][3]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는 없었다.[4]

초기에는 우발적인 사고로 추정되었으나, 화재 직전 누군가가 성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들의 진술과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1회용 라이터 2개로 인해 방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2] 수사 결과, 화재는 방화로 밝혀졌다. 경찰은 2월 12일 채종기(69세)를 방화 혐의로 체포했고, 채종기는 30분 만에 범행을 자백했다.[5][6][7]

경찰 보고에 따르면, 채종기는 알루미늄 사다리, 페인트 희석제 1.5리터짜리 병 세 개, 라이터 두 개를 가지고 숭례문에 도착했다. 그는 사다리로 성문 서쪽 벽을 타고 올라가 2층에서 페인트 희석제를 바닥에 뿌리고 불을 질렀다.[8] 채종기는 개발업자에게 땅을 판 대금을 받지 못해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으며, 2006년 창경궁 방화 혐의로도 기소된 바 있다.[9][10] 채종기가 숭례문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접근이 쉽고 동작 감지 센서만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11]

화재 이전의 숭례문

2. 1. 피해 규모

발화 위치


2008년 2월 11일 1시 54분경, 숭례문 2층 문루의 90%, 1층 문루의 10%가 소실되었다.[27] 화재 진압 중 숭례문에 걸려있던 현판은 소방관들이 톱으로 떼어내 다른 곳으로 옮겼으나,[28][29] 화재로 인한 열기로 약간 뒤틀렸다. 현판 절단 시 예상외로 무거워 받칠 도구가 없어 지면으로 떨어졌는데, 이때 받은 충격으로 현판 전체에 크고 작은 금이 가고 일부 파편이 유실되는 등 심하게 손상되었다.[30]

3. 화재 원인 및 수사

초기에는 전기시설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추정되었으나, 화재 발화점인 2층에는 전기시설이 없었고 1층 전기시설도 정상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라 방화로 추정된다는 정정 보도가 나왔다.[31] 한 택시기사는 50대 남성이 쇼핑백을 들고 숭례문에 올라간 지 1~2분 후 불꽃과 연기가 솟아올랐다고 제보했다.[32]

경찰은 2008년 2월 11일 숭례문 1층에서 일회용 라이터 2개를 발견했다.[34] 소방당국은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라이터와 불에 탄 나뭇조각 등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34]

사건 수사는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설치된 수사본부에서 진행되었으며, 2008년 2월 11일 첫 공식 브리핑을 시작으로 수사 진전에 따라 추가 브리핑이 열렸다.[33]

3. 1. 방화범 채종기

2008년 2월 12일, 경찰은 방화 용의자 채종기(1939년생, 경상북도 칠곡군 출생)를 인천 강화군에서 붙잡았다.[35] 그는 목격자들의 증언과 비슷한 옷차림과 가방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자택에서 사다리, 의류, 시너 1병이 발견되어 유력 용의자로 지목되었다.[35] 채종기는 2006년 4월 창경궁 문정전에 방화하여 400만 상당의 피해를 입힌 전과가 있었다.[35]

경찰 조사에서 채종기는 토지 보상 문제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36] 이는 2006년 창경궁 방화 때와 같은 동기였다.[36] 그는 2006년에 작성한 '오죽하면 이런 짓을 했겠는가'라는 편지에서 창경궁 방화범으로 몰린 억울함을 호소하며, 숭례문에 불을 지른 이유를 밝혔다.[37]

채종기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20년 가까이 점쟁이로 일했으나,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토지 이전이 촉구되었다.[21] 그는 이전비로 4억을 요구했지만, 당국은 1억의 보상액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여 협상이 결렬되었다.[21] 2006년 3월 행정대집행으로 집에서 퇴거당한 후, 사회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고 창경궁과 숭례문에 방화를 저질렀다고 한다.[21]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2월 13일 채종기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38] 경찰은 채종기의 신발에서 숭례문과 동일한 성분의 시료를 채취하고, 감시 카메라 영상에서 그의 모습을 확인하여 증거로 제시했다.[39] 10월 9일, 대법원은 채종기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4. 논란

숭례문 방화 사건은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화재 초기, 소방 당국과 문화재청의 대처는 미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숭례문 내에는 소화기와 상수도 소화전이 있었지만, 화재 감지기나 경보 설비는 없었다.[49] 소방 당국은 국보 1호라는 점을 고려해 신중하게 진압했으나, 초기 진화에 실패했다.[49]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50분경 신고를 받고 소방차 32대와 소방대원 128명이 출동했지만, 자정 이후 불길이 다시 살아나면서 결국 목조 구조물 전체가 파괴되었다.[1][2][3]

숭례문 개방 이후 관리 소홀 문제도 지적되었다. 문화재 보험금이 9500만에 불과했고, 2008년 1월 예산 절감을 이유로 경비 업체가 변경되면서 경비 인원과 장비가 줄었다.[50][51]

책임 논란도 있었다. 방화범 외에도 숭례문을 개방한 서울특별시청중구청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었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숭례문 개방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문화재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방을 강행했다.[51]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제출했다.[52]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은 국민 성금으로 숭례문을 복원하자고 제안했으나,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53] 숭례문 화재 진화에 필요한 실측 도면이 늦게 전달된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55]

4. 1. 초기 대응 및 화재 진압 논란

숭례문 화재를 진압하는 데 5시간 이상이 소요되면서, 화재 초기 소방 당국과 문화재청의 대처가 미흡했다는 논란이 제기되었다. 숭례문 내에 배치된 소화기는 1, 2층에 나눠 배치되었고 상수도 소화전이 설치되었으며, 사설 경비 업체의 무인 경보 시스템에 의존했지만, 화재 감지기, 경보 설비 등은 전혀 없었다는 점도 화재 예방의 취약점으로 드러났다. 소방 당국은 초기 진화 과정에서 숭례문이 국보 1호라는 점을 고려해 신중하게 진압 작업을 펼쳤으나, 정확한 발화 지점을 찾지 못하고 소화 약재를 뿌리는 등 초기 진압에 실패했다.[49]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50분경, 숭례문에서 불이 났다는 시민의 신고가 있었고, 서울시 소방본부는 소방차 32대와 소방대원 128명을 현장에 급파했다. 소방대원들은 곧 현장에 도착하여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 당일 늦은 시간 소방대원들은 석조 구조물 위에 있는 목조 구조물에 대한 피해가 최소한에 그칠 것이라고 믿으며 화재를 진압했다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고압의 물이 구조물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당국으로부터 화재 진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1]

그러나 자정 이후, 거의 꺼진 불이 갑자기 다시 타올라 순식간에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다. 현장에 있던 360명이 넘는 소방대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화재는 결국 목조 구조물 전체를 파괴하고 석담에도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2][3]

10시 30분경에는 불길이 보이지 않고 연기만 피어오르자 진화되었다고 안도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나, 11시경 건물 내부의 불이 갑자기 맹렬하게 번져 나갔다. 당황한 소방대는 맹렬히 물을 뿌렸지만, 이미 불길은 잡을 수 없었고, 2월 11일 0시를 넘기면서 지붕이 무너지기 시작하여 기와가 굉음과 함께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1시 54분에는, TV를 통해 지켜보던 많은 한국 국민들 앞에서 건물 전체가 큰 소리와 함께 붕괴되었다.[20]

4. 2. 관리 부실 및 보험 논란

숭례문 개방 이후 관리 소홀 문제가 지적되었다. 숭례문의 문화재 보험금이 9500만밖에 되지 않아, 개방을 했음에도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50] 2005년부터 삼성 에스원에 유료로 경비를 맡겨왔으나, 2008년 1월 예산 절감을 이유로 KT텔레캅으로 경비를 넘기면서 경비 인원과 장비, 횟수가 대폭 감소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51]

4. 3. 책임 논란

숭례문 화재와 관련하여 여러 책임 논란이 있었다. 방화범 외에도 숭례문을 개방한 서울특별시청중구청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었다. 2004년 5월 27일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은 숭례문 개방을 공약하였으며, 문화재청의 부정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강행하여 2006년 6월 28일 숭례문의 홍예문까지 개방하여 일반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숭례문 개방 사업은 청계천 복원사업과 함께 이명박 당시 시장의 주요 치적으로 선전되었다. 이후 주간에는 근무자가 경비하였으나 2008년 초부터는 무선용역경비 업체인 KT텔레캅이 경비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방화범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05년부터는 삼성 에스원에게 유료로 경비를 맡겨오다가, 예산 절감을 이유로 2008년 1월 문화재 지킴이 캠페인으로 무료 경비를 자처한 KT텔레캅 측으로 경비를 넘기면서 경비 인원, 장비 및 횟수가 대폭 감소했다.[51]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2월 12일 국무회의 전 인터뷰에서 "파괴돼도 좋으니까 진화하라"고 사고 당시 소방방재청에 위임했었음을 밝혔다. 문화재 관리 책임은 지방자치단체, 즉 이 사건에서는 서울특별시청에 있지만, 총괄적 지도 감독 및 지원은 문화재청의 책임임을 인정하였다. 결국 유홍준2월 12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숭례문 화재 사건의 책임을 지고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발표했다.[52]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었던 이명박은 국민 성금으로 숭례문을 복원하자고 제안하였으며, 2008년 정부 출범 이후 국민 모금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후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희석시키고자 강제 모금을 기획한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이 당선인의 본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며 강제 모금 의도가 아니라고 해명했다.[53] 또한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숭례문 화재가 "당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며 반성한다고 말했다.[54]

한편, 숭례문 화재 진화에 필수적인 실측 도면이 화재 발생 2시간 후에 소방당국에 뒤늦게 전달된 것으로 드러나, 진화 과정에서의 문제점도 다수 지적되었다.[55]

5. 복원 과정

화재로 붕괴된 국보 1호 숭례문 복원에는 2~3년, 예산은 200억 원 정도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숭례문의 주요 부분이 불에 타 원형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1961년부터 1963년까지 한국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고자 대규모 해체 및 보수 공사를 거친 바 있다.[40]

대한민국 문화재청2008년 8월 15일 복구 현장을 공개했고[43][44], 2013년 4월 29일 복원 사업을 마쳤으며, 2013년 5월 4일 완공식과 함께 복원된 숭례문을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가림막으로 둘러싸인 숭례문 복원 현장.


잔해 상태 확인, 재활용 여부, 건축에 사용된 나무의 수령, 재질, 사용 연장 등을 조사하는 데도 장기간 소요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추가 붕괴와 훼손을 막기 위해 덧집을 씌우는 것이 시급하다고 밝혔다.[42]

문화재청은 옛 성곽 자리를 그림으로도 복원하겠다고 밝히며 도로 위에 옛 성곽 자리를 표시했다.[45]

5. 1. 복원 계획

2006년에 작성된 숭례문의 실측 도면 덕분에 기술적으로 원형 복원은 가능한 상황이었다. 복원 사업은 문화재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서울특별시 중구청 주도로 진행될 예정이었다.[40] 1961년~1963년 한국 전쟁으로 말미암은 피해를 복원하고자 대규모 해체, 보수공사를 한 적이 있으며, 그 이후에는 소규모 정비 공사만 진행되었다.[40]

문화재청은 일제강점기에 잘려나간 숭례문 양측 성벽을 복원하고, 약 1.5m 정도 올라와 있는 지표를 원상 복구하는 것을 서울시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복원에 쓸 수 있는 대한민국산 금강 소나무를 확보하고 건조하는 데만 3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최소 5년의 복원 기간이 필요하다고 보았다.[41]

대한민국 문화재청은 숭례문 복원에 3년의 기간과 21억달러 (약 200억 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14] 2006년에 작성된 182페이지 분량의 숭례문 청사진 덕분에 복원이 가능하게 되었다.[15] 문화재청은 1960년대 초의 수리 보고서와 2006년의 정밀 실측도를 바탕으로 숭례문 복원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23]

이명박 대통령은 숭례문 복원 자금 마련을 위해 민간 기부 캠페인을 제안했다.[16]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정부가 건축물을 적절히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에 복원 비용을 정부가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17]

복원된 숭례문은 전통적인 도구와 기술을 사용하여 재건되었으며, 2013년 5월 5일에 대중에게 다시 개방되었다. 이 프로젝트에는 2500억이 들었으며, 새로운 화재 진압 시스템과 폐쇄회로텔레비전 카메라가 설치되었다.[18][19]

문화재청의 복원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항목내용
현판 복원2008년 2월부터 3개월
본체 복원2010년 1월부터 2013년까지
주변 지반 복원19세기 말 높이
예상 복원 비용200억 원


5. 2. 복원 과정의 문제점

숭례문 복원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전통 재료인 대한민국산 금강 소나무를 구하기 어려웠고, 이를 건조하는 데만 3년 이상이 걸려 복원 기간이 길어졌다.[41] 전문가들은 최소 5년의 복원 기간이 필요하다고 보았다.[41]

복원 후에도 문제는 계속되었다. 2013년 5월 4일 복원된 숭례문이 일반에 공개되었으나,[24] 같은 해 10월부터 단청 벗겨짐과 목재 균열 현상이 나타나 부실 복원 논란이 제기되었다.[25] 이 때문에 12월 초부터 숭례문 출입이 금지되기도 했다.[25]

5. 3. 복원 완료 및 재개방

2008년 8월 15일 복구 현장이 공개되었고,[43][44] 2010년 2월 10일부터 2013년 4월까지 복원 공사가 진행되었다.[24] 2013년 4월 29일 복원 사업이 완료되었으며,[24] 2013년 5월 4일 복원 기념식을 거행하고 일반 시민들에게 숭례문을 다시 공개하였다.[24] 복원에는 2500억이 들었으며, 새로운 화재 진압 시스템과 폐쇄회로텔레비전 카메라가 설치되었다.[18][19]

2016년 6월 23일에는 8년 만에 숭례문 수문장 교대 의식이 재개되었다.[26]

6. 사건의 영향 및 교훈

숭례문 방화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문화재 보호 및 관리 시스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 신문들은 정부가 숭례문에 대한 충분한 보안을 제공하지 못했다고 비난하였다.[13] 대한민국 문화재청은 숭례문을 재건하고 복원하는 데 3년의 시간과 2100만달러가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14] 다행히 2006년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숭례문의 청사진 182페이지가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복원이 가능했다.[15]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숭례문 복원 자금 마련을 위해 민간 기부 캠페인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16]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정부가 건축물을 적절히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에 복원 비용을 정부가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17] 이에 이명박 당선인의 인수위원회는 정부가 복원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할 것이라고 밝혔다.[17]

전통적인 도구와 기술을 사용하여 재건된 숭례문은 2013년 5월 5일 대중에게 다시 개방되었다. 이 프로젝트에는 250억이 소요되었으며, 새로운 화재 진압 시스템과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카메라가 설치되었다.[18][19]

숭례문 화재 소식은 한국 국민들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은 정권 인수위원회 위원장 및 부위원장 등과 함께 가장 먼저 현장을 시찰하기도 했다. 또한, 숭례문 복원을 위한 많은 성금이 모금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 불평등 해소와 갈등 관리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문화재 방재 시스템 강화와 예방 대책 마련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또한 국민들의 문화재 보호 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참조

[1] 웹사이트 Koreans mourn fall of Namdaemun, national treasure No.1 http://english.yonha[...] 2008-02-14
[2] 뉴스 Korea's Historic Namdaemun Gate Toppled By Fire https://www.forbes.c[...] 2008-02-11
[3] 웹사이트 Namdaemun Great South Gate Fire Feb 10/2008 - a photoset on Flickr https://flickr.com/p[...]
[4] 웹사이트 Fire ravages South Korea landmark http://news.bbc.co.u[...] 2008-02-12
[5] 뉴스 Man 'confesses to S Korea blaze' http://news.bbc.co.u[...] 2008-02-13
[6] 뉴스 Suspect Admits Arson on Namdaemun http://www.koreatime[...] 2008-02-13
[7] 뉴스 Man 'Arsonist Blames President Roh' https://www.koreatim[...] 2008-02-14
[8] 뉴스 Gate was 'easy to approach and poorly guarded' http://joongangdaily[...] 2008-03-18
[9] 뉴스 SKorea arsonist in Namdaemun fire had grudge over land dispute: police http://afp.google.co[...] 2008-02-13
[10] 뉴스 Fire destroys South Korean landmark https://news.yahoo.c[...] Yahoo! News 2008-02-11
[11] 뉴스 Suspect held after blaze guts South Korean landmark http://www.timesonli[...] 2008-02-13
[12] 뉴스 Namdaemun Arson Suspect Confesses http://english.chosu[...] 2008-02-13
[13] 뉴스 Arrest In Burning Of S. Korean Landmark https://www.cbsnews.[...] 2008-02-13
[14] 뉴스 South Korean Gate Destroyed in Fire https://www.nytimes.[...] 2008-02-13
[15] 뉴스 Three Years Needed for Restoration https://www.koreatim[...] 2009-02-05
[16] 뉴스 Donation for Gate Restoration Proposed https://www.koreatim[...] 2008-02-13
[17] 웹사이트 Controversy erupts over fundraising for historic gate http://english.yonha[...] 2008-02-13
[18] 뉴스 South Korea's landmark Namdaemun gate to reopen http://www.staradver[...] 2013-04-29
[19] 뉴스 South Korea's No. 1 national treasure reopens after five years http://travel.cnn.co[...] CNN 2013-05-09
[20] 웹사이트 <南大門火災>消防・文化財庁「崇礼門、鎮火失敗とは考えていない」 https://japanese.joi[...]
[21] 뉴스 崇礼門放火犯“うらみ続けた10年” https://japanese.joi[...] 2008-02-13
[22] 뉴스 崇礼門放火、被告の男に懲役10年の判決 http://japanese.yonh[...] 2008-04-25
[23] 뉴스 火災で崩壊の崇礼門、復元には2~3年かかる見通し http://japanese.yonh[...] 2008-02-11
[24] 웹사이트 5年3ヶ月ぶりに 「崇礼門」復元 http://japanese.visi[...] 2013-08-11
[25] 뉴스 国宝第1号の崇礼門、ずさんな修復工事で再び立ち入り禁止に、安価な材料使用が原因―韓国 http://recordchina.c[...] 2013-12-06
[26] 웹사이트 国宝第1号・崇礼門で再現!都城を守る重要な軍礼儀式 https://www.konest.c[...] 2016-09-20
[27] 뉴스인용 `국보 1호' 숭례문 전소…완전 붕괴(종합)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08-02-11
[28] 뉴스인용 숭례문 화재,초동진화 실패가 전소 원인...방화가능성 높아져 http://www.segye.com[...] 세계일보 2008-02-11
[29] 뉴스인용 ‘국보 1호’ 숭례문 전소…방화 가능성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08-02-11
[30] 뉴스인용 ‘“땅에 떨어지는 순간 가슴도 무너졌다” 숭례문 현판 구한 박성규 소방관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08-02-14
[31] 뉴스인용 YTN 화재 최초 제보자 인터뷰 http://www.ytn.co.kr[...] YTN 2008-02-11
[32] 뉴스인용 <숭례문 화재 발화지점ㆍ원인 '미스테리'>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08-02-11
[33] 뉴스인용 방화 가능성 집중수사 http://imnews.imbc.c[...] MBC 2008-02-11
[34] 뉴스인용 경찰, 방화에 무게...화재현장서 라이터 발화 http://www.ytn.co.kr[...] 2008-02-11
[35] 뉴스인용 숭례문 방화 유력용의자 1명 강화도서 검거(종합) http://app.yonhapnew[...] 연합뉴스 2008-02-11
[36] 뉴스 숭례문 방화 유력용의자 범행 시인(종합)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08-02-12
[37] 뉴스 숭례문 방화용의자 "창경궁 방화 하지 않았다" 강변 http://www.cbs.co.kr[...] 노컷뉴스 2008-02-12
[38] 뉴스 `숭례문 방화' 채씨 구속영장 신청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08-02-13
[39] 뉴스 `숭례문 방화' 채씨 구속영장 신청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08-02-14
[40] 뉴스 문화재청"‘’숭례문 복원에 2-3년 소요될 것"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08-02-11
[41] 뉴스 숭례문, 복원까지 3년? http://www.ytn.co.kr[...] YTN 2008-02-14
[42] 뉴스 숭례문 추가 붕괴 우려..."덧집 시급하다" http://www.ytn.co.kr[...] YTN 2008-02-14
[43] 뉴스 문화재청, 숭례문 복구현장 공개관람 실시 http://app.yonhapnew[...] 연합뉴스 2008-08-11
[44] 뉴스 숭례문 복구현장 일반공개 시작 http://www.cbs.co.kr[...] 노컷뉴스 2008-08-15
[45] 뉴스 숭례문-옛 서울 성곽 자리 도로바닥 그림 형태로 되살려 http://www.kukinews.[...] 쿠키뉴스 2008-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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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뉴스 '성금모금 비난' 확산에 당황한 인수위 "오해" http://www.viewsnnew[...] 뷰스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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