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자키 스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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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마자키 스스무는 신선조의 대원으로, 출신지는 불분명하나 교토에서 주로 활동했다. 그는 신선조 입대 후 정보 수집, 자금 조달,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으며, 특히 이케다야 사건, 금문의 변, 조슈 정벌 등 주요 사건에서 정보를 제공하며 곤도 이사미의 신임을 받았다. 가토리류 봉술과 의학 지식을 갖추었고, 온순하고 과묵한 성격으로 묘사된다. 도바-후시미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사망했으나, 정확한 최후는 불분명하다. 야마자키 스스무는 여러 대중 매체에서 닌자로 묘사되기도 하며,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등 다양한 작품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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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자키 스스무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야마자키 스스무 |
본명 | 야마자키 스스무 |
한자 표기 | 山崎 烝 |
로마자 표기 | Yamazaki Susumu |
출생 | 1833년경 |
출생지 | 오사카 |
사망 | 1868년 2월 6일 (향년 35세) |
사망 장소 | 불명 |
사인 | 불명 |
묻힌 곳 | 불명 |
신상 정보 | |
직업 | 로닌, 간첩 |
소속 | 신센구미 |
직위 | 간사쓰 (監察, 감찰) |
활동 정보 | |
활동 시기 | 불명 |
주요 전투 | 불명 |
기타 | |
특이 사항 | 게이오 전쟁 중 사망 |
2. 생애
야마자키 스스무의 출신지는 셋쓰국 오사카 혹은 야마시로국이라는 설이 있어 명확하지 않으며, 생가는 의사나 약종 도매상 집안으로 추정된다. 교토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 분큐 3년(1863년) 말경 신센구미에 입대하여, 겐지 원년(1864년)경부터 주로 감찰로서 대원 동향 조사 및 정보 탐색 임무를 맡았다. 뛰어난 능력과 문필 재능을 인정받아 입대 후 빠르게 상급 직책인 제사조역(諸士調役)과 감찰을 겸임하게 되었으며, 교토와 오사카 지리에 밝아 간부들의 길 안내를 맡거나 오사카 상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조직의 자금 조달에 기여하는 등 신센구미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곤도 이사미의 깊은 신임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가토리류 봉술에 능했으며, 나가마키를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성격은 온순하고 과묵했으며, 키가 크고 용모가 단정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마쓰모토 료준에게서 의학을 배워 동료들 사이에서 의사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겐지 원년(1864년) 이케다야 사건 당시 정보 수집 활동에 참여했으며, 이후 금문의 변, 제1차 조슈 정벌, 제2차 조슈 정벌 등 주요 사건에서도 정보 보고 역할을 수행하며 활약했다.
게이오 4년(1868년) 도바-후시미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에도로 후퇴하던 중 군함 후지산마루 선상에서 사망하여 기슈 앞바다에 수장되었다는 설이 유력하게 전해진다. 당시 곤도 이사미가 그의 죽음을 깊이 애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최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존재하여 명확하지 않다.
동료 대원 야마자키 린고로와의 관계나 결혼 여부 등 개인사에 대해서도 불확실한 점이 많다. 시바 료타로의 소설 『신선조 혈풍록』 등 창작물에서는 아코 낭사와 관련된 극적인 설정이 추가되기도 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리자키 죠(入崎 丈)라는 이름은 야마자키 스스무의 다른 이름이거나 잘못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2. 1. 출신 및 초기 생애
야마자키 스스무의 출신에 대해서는 셋쓰국 오사카라는 설과 야마시로국이라는 설이 있어 정확하지 않다. 생가는 의사 또는 약종 도매상 집안으로 여겨진다. 교토에서 오랫동안 생활했으며, 분큐 3년(1863년) 말경 신선조에 입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 2. 신센구미 활동
분큐 3년(1863년) 말경 신센구미에 입대하였으며, 겐지 원년(1864년)경부터 대원들의 동향 조사 및 정보 탐색 임무인 감찰을 맡았다.[1] 문필 능력이 뛰어나고 정보 수집에 능하여 입대 후 빠르게 상급 직책을 맡았고, 이후 제사조역(諸士調役)과 감찰을 겸임하는 이례적인 대우를 받았다.[1] 교토와 오사카 지역 지리에 밝아 간부들의 길 안내를 맡아 오사카로 인솔하는 경우가 잦았으며, 오사카 부유 상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신센구미의 자금 조달에도 기여하여 조직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1]가토리류 봉술에 능숙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나가마키를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1] 성격은 온순하고 과묵했다고 전해진다.[1] 교토에서 대원들의 진료를 담당했던 의사 마쓰모토 료준에게서 의학을 배워, "나는 신선조의 의사"라고 농담하며 동료들을 웃게 했다는 일화가 마쓰모토 료준의 저서에 남아있다.[1] 또한 이 저서에는 야마자키가 "(곤도) 이사의 가장 사랑하는 자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곤도 이사미의 깊은 신임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1]
겐지 원년 6월의 이케다야 사건에서는 제사조역 겸 감찰로서 시마다 가이 등과 함께 조슈번사 및 존왕양이 과격파의 동향을 탐색했다.[1] 고타카 슌타로의 거점인 마스야(枡屋)를 찾아냈으며, 이는 미야베 데이조 등 주요 지사들의 밀회 장소였다. 미야베 하인의 뒤를 밟아 소재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 이 정보 덕분에 신선조는 존왕파의 교토 방화 및 천황 납치 계획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1]
하지만 이케다야 사건의 공로로 대원들에게 지급된 포상금 명단에 야마자키의 이름이 없어, 그의 활약상이 시부사와 간이나 시바 료타로의 창작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1] 그러나 포상금을 받은 시마다 가이의 일기에는 탐색조 명단에 야마자키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1] 일설에는 야마자키가 감찰 임무의 특성상 시노즈카 기시조(篠塚岸三)라는 가명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시노즈카는 이케다야 사건 직후 입대하여 약 1개월 만에 집안 사정으로 제대했는데, 포상금 명단에는 그의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1] 나가쿠라 신파치나 시마다 가이의 기록에는 시노즈카가 아닌 야마자키의 이름이 등장한다.[1]
이후 금문의 변, 제1차 조슈 정벌, 제2차 조슈 정벌 등 주요 사건에서도 전황 보고 및 정보 전달 능력을 발휘하여 곤도 이사미와 아이즈번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다.[1]
게이오 4년(1868년) 1월 도바-후시미 전투 중에 중상을 입었다.[1] 1월 13일, 에도로 철수하던 군함 후지산마루 선상에서 상처가 악화되어 사망했고, 기슈 앞바다에 수장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1] 당시 어깨 부상으로 누워있던 곤도 이사미는 야마자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정장을 하고 직접 추도사를 읽었으며,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며 히지카타 도시조에게 "야마자키는 좋은 녀석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전송받으니 행복한 녀석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1]
그러나 같은 배에 탔을 것으로 추정되는 나가쿠라 신파치나 시마다 가이 등의 기록에는 야마자키의 선상 사망이나 수장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1] 때문에 도바-후시미 전투 중 육상에서 전사하여 매장되었다는 설, 혹은 곤도 요스케의 증언처럼 부상자들로 가득했던 오사카 하치켄야(八軒家)의 숙소에서 사망했을 것이라는 설 등 최후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점이 많다.[1]
2. 3. 이케다야 사건
겐지 원년(1864년) 6월 이케다야 사건 당시, 야마자키 스스무는 제사조역 겸 감찰로서 시마다 가이 등과 함께 활동했다. 그는 조슈 번사와 존왕양이 과격파의 동향을 탐색하여, 과격파 인물 고타카 슌타로의 거점인 마스야를 찾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마스야는 미야베 텟조와 같은 주요 지사들의 비밀 회합 장소였으며, 야마자키는 미야베의 하인을 미행하여 이들의 소재를 파악한 것으로 전해진다.이 정보를 바탕으로 신선조는 존왕파가 계획했던 교토 어소 방화 및 천황 조슈 연행 시도를 사전에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공적에도 불구하고, 사건 후 대원들에게 지급된 포상금 명단에는 야마자키의 이름이 누락되어 있어, 그의 활약상이 시보자와 간이나 시바 료타로의 창작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포상금을 받은 시마다 가이의 일기에는 탐색조 명단에 야마자키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다른 설에 따르면, 이케다야 사건 즈음 입대한 시노즈카 키시조라는 대원이 사건 약 1개월 후 모친 사망 또는 불치병을 이유로 제대했는데, 포상금 명단에는 야마자키 대신 시노즈카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 감찰이라는 야마자키의 직책상 변장이나 가명 사용이 잦았을 가능성을 고려하여, 시노즈카가 야마자키의 가명일 수 있다는 추측도 제기된다. 실제로 시마다 가이나 나가쿠라 신파치의 기록에는 시노즈카가 아닌 야마자키의 이름으로 사건 참여가 언급되어 있다.
2. 4. 금문의 변과 조슈 정벌
금문의 변이나 제1차 조슈 정벌, 제2차 조슈 정벌 등의 중요한 전투에서도 전황의 추이 및 상황 보고에 능력을 발휘하여, 곤도 이사미와 아이즈번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다.2. 5. 도바-후시미 전투와 최후
게이오 4년(1868년) 1월의 도바-후시미 전투 중 중상을 입었다. 1월 13일 에도로 철수할 때, 군함 후지산마루 선상에서 상처가 악화되어 사망했으며, 기슈 앞바다에서 수장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당시 곤도 이사미는 자신도 어깨에 총상을 입어 누워 있었지만, 야마자키의 죽음에 작별을 고하기 위해 정장을 하고 대표로서 추도사를 읽었다고 한다. 곤도는 야마자키를 매우 신뢰하고 아꼈던 것으로 보이며,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고 히지카타 도시조에게 "야마자키는 좋은 녀석이었다. 저 녀석은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전송받아 행복하다"라고 말하며, 선장에게 깊이 머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고 전해진다.하지만 배에 동승했을 것으로 보이는 나가쿠라 신파치와 시마다 가이 등이 남긴 기록에는 선상에서의 야마자키의 죽음이나 수장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다른 설에 따르면, 야마자키는 도바-후시미 전투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고 육상에서 매장되었다고도 하며, 그의 최후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점이 많다. 곤도 요스케는 야마자키가 중상을 입고 부상자로 넘쳐나는 오사카 하치켄야의 교야(京屋) 여관에 있었던 것을 확실히 보았으며, 오사카에서 사망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편지를 다카하시 세이에게 보내기도 했다.
3. 개인적 특징 및 평가
성격은 온순하고 과묵했으며, 키가 크고 검은 피부(혹은 흰 피부였다는 설도 있다)를 가진 미남이었다고 전해진다.[1][2] 교토에서 대원들의 진료를 담당했던 마쓰모토 료준에게 의학을 배워 "나는 신선조의 의사다"라고 농담하며 주변을 웃게 했다는 기록이 료준의 저서에 남아 있다.[3] 곤도 이사미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아 "(곤도) 이사의 가장 사랑하는 자였다"라고도 기록되어 있다.[3]
1863년 말경 신센구미에 입대한 후, 1864년경부터는 주로 대원들의 동향 조사 및 정보 탐색 임무를 맡았다.[1][2] 문필의 재능과 유능함을 인정받아 입대 몇 개월 만에 상급 직책을 맡았고, 나중에는 이례적으로 제사조역(諸士調役)과 감찰(監察)을 겸임하게 되었다.[1][2] 교토와 오사카 지리에 밝아 간부들의 길 안내를 자주 맡았으며, 오사카의 부유한 상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신센구미의 자금 조달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조직 내에서 귀하게 여겨졌다.[1][2] 가토리류(香取流) 봉술에 능했다고 하며, 실제로 사용한 것은 나가마키였다는 설도 있다.[1][2]
겐지 원년(1864년) 6월의 이케다야 사건 때는 제사조역 겸 감찰로서 시마다 가이 등과 함께 조슈번 존왕양이 과격파의 거점인 마스야(枡屋)를 탐색하여 찾아내는 데 기여했다.[1][2] 이를 통해 신센구미는 존왕파의 계획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성공했다.[1][2] 하지만 이 공적에 대한 보수 지급 명단에 야마자키의 이름이 없어, 시보자와 간이나 시바 료타로의 창작이라는 설도 제기된다.[1][2] 다만, 함께 탐색에 참여했던 시마다 가이의 일기에는 야마자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1][2] 감찰이라는 직책의 특성상 변장을 위해 시노즈카 키시조(篠塚岸三)라는 가명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1][2] 나가쿠라 신파치 등의 기록에도 야마자키의 이름이 등장한다.[1][2]
이후 금문의 변, 제1차 조슈 정벌, 제2차 조슈 정벌 등 주요 사건에서도 전황 파악 및 상황 보고 능력을 발휘하여 곤도 이사미와 아이즈번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1][2] 곤도는 야마자키를 매우 신뢰하고 아꼈으며, 그의 죽음에 대해 "야마자키는 좋은 녀석이었다"고 말하며 슬퍼했다고 전해진다.[1][2]
시바 료타로의 소설 『신선조 혈풍록』에서는 아코 낭사에서 탈락한 오쿠노 쇼칸의 후손으로 묘사되었으나 이는 작가의 창작이다.[1][2]
4. 기록
야마자키 스스무가 1865년(게이오 원년)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취조 일기(야마자키 스스무 취조 일기)"가 발견되어, 도쿄도 히노시의 시립 고향 박물관이 2004년 11월 12일에 이를 공표했다[1]. 박물관 측에 따르면, 이 일기는 회고록이 아니라 당시 상황을 실시간으로 기록한 것으로, 신센구미 관련 자료 중에서는 매우 드문 귀중한 사료라고 한다.
일기는 1865년 5월부터 10월까지의 기록으로, 총 84페이지 분량이다. 일기에 기재된 곤도 이사미 이하 대원 148명의 명부는 1865년 6월 시점의 것으로 보인다. 이 일기를 통해 당시 신센구미 조직이 8개 부대로 나뉘어 있었다는 점, 같은 해 6월 21일에 세야마 타키토 등 2명의 대원이 할복했다는 사실 등이 새롭게 밝혀졌다.
5. 대중 매체에서의 묘사
야마자키 스스무는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게임 등 다양한 대중 매체에서 등장인물로 다루어지거나 창작의 모티브가 되었다. 많은 작품에서 실제 역사 속 모습과는 다르게 숙련된 닌자나 밀정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5. 1. 개요
야마자키 스스무는 실제 닌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등 여러 대중 매체에서는 종종 훈련된 닌자나 밀정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만화 바람의 검심에 등장하는 한냐는 야마자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이다.야마자키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등장하거나 캐릭터 창작에 영감을 주었다. 그가 등장하거나 모티브가 된 주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 피스메이커 쿠로가네 (애니메이션/만화)
- 바람의 빛 (만화)
- 은혼 (애니메이션/만화) - 등장인물 야마자키 사가루는 야마자키를 모델로 하고 있다.
- 그리고, 봄의 달
- 바람의 검심 (만화)
- 월명세이기 (만화)
- 신센구미! (드라마) - 하시모토 준이 연기했다.
- 막말 연가 신선조 (비디오 게임 시리즈)
- Destined to love (오토메 게임)
- 박앵귀 ~신선조 기담~ (애니메이션/오토메 게임)
- 고하토 (1999년 영화)
- 높이 날아라! 이사미 (애니메이션) - 등장인물 타카기 하루카는 야마자키를 느슨하게 기반으로 하고 있다.
- 용과 같이 유신! (2014년 비디오 게임) - 용과 같이 시리즈의 등장인물 쿠기하라 히로시가 연기했으며, 리메이크에서는 한준기가 연기한다.
또한, 시마즈 타카코는 『신선조 밀정·야마자키 스스무』(1997)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5. 2. 주요 작품
야마자키 스스무는 다양한 매체의 창작물에서 등장하거나 모티브가 되었다.만화 및 애니메이션
- 피스메이커 쿠로가네 (애니메이션/만화):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 바람의 빛: 등장한다.
- 바람의 검심 (만화):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등장인물 반야는 야마자키를 모델로 한 캐릭터이다. 실제 야마자키는 닌자가 아니었음에도, 이 작품을 포함한 여러 매체에서는 종종 닌자로 묘사된다.
- 은혼 (애니메이션/만화): 등장인물 야마자키 사가루는 야마자키 스스무를 모티브로 하였다.
- 박앵귀 ~신선조 기담~ (애니메이션): 오토메 게임 원작의 애니메이션으로,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 높이 날아라! 이사미: 등장인물 타카기 하루카는 야마자키를 느슨하게 기반으로 한 캐릭터이다.
- ''그리고, 봄의 달'' (만화)
- ''월명세이기'' (만화)
드라마
- 신센구미!: 배우 하시모토 준이 연기했다.
영화
- 고하토 (1999년): 등장인물로 묘사되었다.
게임
- 막말 연가 신선조: 비디오 게임 시리즈에 등장한다.
- ''Destined to love'': 오토메 게임에 등장한다.
- 박앵귀 ~신선조 기담~ (오토메 게임):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 용과 같이 유신!: 2014년 발매된 용과 같이 시리즈의 스핀오프 작품. 원작에서는 쿠기하라 히로시가, 리메이크에서는 한준기가 야마자키 스스무 역을 맡았다.
소설
- 시마즈 타카코, 『신선조 밀정·야마자키 스스무』 (신인물왕래사, 1997.3)
참조
[1]
뉴스
新選組隊士の日記発見/近藤勇らの名簿を記述
https://www.shikoku-[...]
2004-11-12
[2]
문서
야마자키의 참여는 시바 료타로와 시모자와 간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라는 주장도 있다.
[3]
문서
부상을 입고 탈출하는 도중 익사했다는 설이 있지만, 신선조의 모두가 보는 가운데서, 자신 역시 부상으로 혼미한 곤도 이사미가 조사를 읽는 가운데 수장되었다는 설도 있고, 부상을 입고 육지에 장례지냈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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