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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토레 마요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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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토레 마요라나는 이탈리아의 이론 물리학자로, 1906년 시칠리아 카타니아에서 태어났다. 수학에 재능을 보이며 엔리코 페르미 연구소에서 조수로 일했으며,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그는 중성자의 존재를 최초로 예측했으나 출판하지 않았고, 1937년 나폴리 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다. 1938년 실종되었으며, 자살, 아르헨티나 이민, 베네수엘라 이민 등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었지만, 2015년 베네수엘라에서 생존했다는 새로운 증거를 바탕으로 실종 사건이 종결되었다. 마요라나는 전자와 양전자의 대칭 이론을 정교화하여 마요라나 페르미온을 예측했고, 중성미자 질량 연구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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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토레 마요라나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30년대의 마요라나
출생일1906년 8월 5일
출생지카타니아, 이탈리아
사망일1938년 실종, 1959년까지 생존했을 가능성 있음
사망 장소불명
직장페데리코 2세 나폴리 대학교
모교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교
연구 분야
분야입자 물리학
주요 업적교환 상호작용
상대론적 파동 방정식
마요라나 방정식
마요라나 페르미온
마요라나 표현

2. 생애

시칠리아 카타니아에서 태어난 마요라나는 어릴 때부터 수학에 재능을 보였다. 엔리코 페르미의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교 소속 연구소에서 조수로 일했다.

1923년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교에 입학하여 공학을 연구하였으나, 1928년 물리학으로 전공을 바꾸었고, 1929년 졸업하였다. 졸업 후 로런츠 군의 무한 차원 표현에 대한 논문을 저술하고, 이렌 퀴리와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의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중성자의 존재를 예측하였으나[46], 이를 발표하지 않아 제임스 채드윅에게 중성자 발견의 공로가 돌아갔다.

1933년 초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코펜하겐에서 닐스 보어와 연구했으나, 같은 해 가을 급성 위염으로 귀국하여 4년간 은둔 생활을 했다.[47] 1937년 나폴리 대학교 이론물리학 정교수로 임용되었다.

엔리코 페르미1938년 마요라나에 대해 "갈릴레이뉴턴과 같은 천재"라고 평가했다.[2]

2. 1. 어린 시절과 교육

에토레 마요라나는 1906년 8월 5일 이탈리아 시칠리아카타니아에서 태어났다.[2] 그의 삼촌 퀴리노 마요라나도 물리학자였다.[3] 마요라나는 어릴 때부터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2]

1923년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교에 입학하여 공학을 전공했으나, 1928년 에밀리오 세그레의 권유로 물리학으로 전공을 변경했다.[3][25] 1928년 학부생 시절에 원자 분광학 문제를 다룬 첫 물리학 논문을 발표했다.[25] 이 논문은 조반니 젠틸레 주니어와 공동으로 작성한 것으로, 토머스-페르미 모형을 원자 분광학에 적용한 초기 정량적 연구였다. 이들은 가돌리늄우라늄의 내부 전자 에너지와 세슘의 광학 스펙트럼에서 관찰된 미세 구조 분열을 잘 설명했다.

1929년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교에서 물리학 라우레아 학위를 받았다.[4]

2. 2. 초기 연구 활동

1923년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교에 입학하여 공학을 공부하였으나, 1928년 에밀리오 세그레의 권고로 물리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25] 엔리코 페르미의 연구팀 "라가치 디 비아 파니스페르나(Via Panisperna boys)"(그 이름은 연구실이 위치한 거리의 주소에서 유래)의 일원이었다.

1928년 학부생 시절 조반니 젠틸레 주니어와 공동으로 첫 물리학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연구는 페르미의 원자 구조 통계 모델(토머스-페르미 모델)을 원자 분광학에 처음으로 적용한 정량적 연구로, 가돌리늄우라늄의 실험적으로 관찰된 내부 전자 에너지와 세슘의 광학 스펙트럼에서 관찰된 미세 구조 분열을 잘 설명했다.

1931년 원자 스펙트럼에서 자동 이온화 현상에 대한 첫 번째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는 이것을 "자발적 이온화"라고 불렀다. 같은 해 프린스턴 대학교의 앨런 쉔스톤은 이를 "자동 이온화"라고 불렀는데, 이 용어는 피에르 빅토르 오제가 처음 사용했다.

1929년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교에서 물리학 라우스레아 학위를 받았다. 1932년 시간 변화 자기장 내에서 정렬된 원자의 행동에 관한 원자 분광학 분야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문제는 I. I. 라비 등도 연구했으며, 이는 원자 물리학의 중요한 하위 분야인 라디오 주파수 분광학의 발전을 이끌었다.

같은 해, 임의의 고유 운동량을 가진 입자의 상대론적 이론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로렌츠 군의 무한 차원 표현을 개발하고 적용하여 기본 입자의 질량 스펙트럼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이탈리아어로 쓰인 마요라나의 논문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이 논문은 수십 년 동안 상대적으로 잊혀졌다.[4][26]

1932년 이렌 졸리오-퀴리와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의 실험은 감마선이라고 제안한 미지의 입자의 존재를 보여주었다. 마요라나는 이 실험을 중성 전하를 가지고 양성자와 질량이 거의 같은 새로운 입자, 즉 중성자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정확하게 해석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엔리코 페르미는 논문을 쓰도록 조언했지만, 마요라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임스 채드윅은 그 해 말에 실험으로 중성자의 존재를 증명했으며, 이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5][27]

마요라나는 자신의 발견에 대한 공로를 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자신의 연구를 사소한 것으로 여겼다. 그는 평생 동안 단 9편의 논문을 썼다.

2. 3. 독일 유학 및 귀국

1933년 초, 마요라나는 이탈리아를 떠나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함께 연구했다.[46] 그는 하이젠베르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를 과학적 동료일 뿐만 아니라 따뜻한 개인적인 친구로도 여기고 있다고 밝혔다.[3][28] 마요라나는 나치가 정권을 잡은 독일에서 원자핵 이론을 연구했는데, 이는 교환력을 다루는 방식에서 하이젠베르크의 원자핵 이론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었다. 같은 해, 마요라나는 코펜하겐으로 가서 닐스 보어와도 함께 연구했다.[47]

1933년 가을, 마요라나는 독일에서 심각한 위염과 신경 쇠약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로마로 돌아왔다.[47][28] 엄격한 식이요법을 해야 했던 그는 은둔 생활을 시작했고, 가족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어머니에게 함께 여름 휴가를 가지 않겠다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연구소에 가는 횟수도 줄어들었고, 곧 집에만 틀어박히게 되었다. 촉망받던 젊은 물리학자는 은둔자가 되어 거의 4년 동안 친구들과의 교류를 끊고 논문 발표도 중단했다.[28]

2. 4. 나폴리 대학교 교수 임용

1937년 마요라나는 나폴리 대학교 이론물리학 정교수로 임용되었다.[47] 엔리코 페르미는 마요라나에 대해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과학자가 있다. 2류 또는 3류 과학자들은 최선을 다하지만 결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다음은 1류 과학자들로, 과학 발전에 중요한 발견을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갈릴레이뉴턴과 같은 천재들이 있다. 마요라나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라고 평가했다.[2]

1933년 가을, 마요라나는 독일에서 심각한 위염과 신경 쇠약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로마로 돌아왔다. 이후 은둔 생활을 하며 4년 가까이 연구 발표를 중단했지만, 지구물리학, 전기 공학, 수학, 상대성 이론 등에 관한 소규모 연구들을 진행했다. 이 미발표 논문들은 피사의 도무스 갈릴레아나에 보관되어 있다.[28]

1937년, 마요라나는 "이론 물리학 분야에서 도달한 특출한 전문 지식에 대한 높은 명성"으로 시험 없이 나폴리 대학교 이론 물리학 정교수가 되었다.[6][7] 같은 해 발표한 마지막 논문에서는 전자양전자의 대칭 이론을 정교화하고, 페르미온 중 자신과 반입자 관계에 있는 마요라나 페르미온의 존재를 예측했다.

3. 실종

1938년 3월 25일, 나폴리 물리학 연구소 소장 안토니오 카렐리에게 편지를 보낸 후, 3월 27일 팔레르모에서 나폴리로 가는 배에 탑승하고 나서 실종되었다. 그의 삼촌이자 물리학자인 퀴리노 마요라나에게 의미심장한 내용의 편지를 보낸 뒤였다.[48]

1955년 베네수엘라의 한 정비공이 같은 해 자신의 정비소에서 차량 수리를 의뢰하고 함께 사진을 찍은 남자가 에토레 마요라나였다고 주장했고, 이탈리아 경찰은 그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특히 그에 대해 상당히 정확하게 묘사하는 증인들이 나오면서, 이탈리아 당국은 그가 베네수엘라로 떠나 살았을 것이라는 설에 무게를 두고 2015년 수사를 종결했다.[48] 그러나 이를 반박하는 의견도 많으며, 실종 전 몇 년 간 그가 보인 심한 우울 증세를 근거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유력하다. 에밀리오 세그레 등 동료 학자들 또한 이 설을 지지하였다.

엔리코 페르미는 마요라나를 갈릴레이뉴턴과 같은 천재라고 평가했다.[2]

3. 1. 실종 정황

1938년 3월 25일, 마요라나는 나폴리 물리학 연구소 소장 안토니오 카렐리에게 편지를 보내 번복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실종으로 인해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과하는 내용을 편지에 담았다. 같은 해 3월 27일, 마요라나는 팔레르모에서 나폴리로 가는 배에 탑승한 후 실종되었다. 그는 자신의 삼촌이자 물리학자인 퀴리노 마요라나에게 의미심장한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48]

마요라나는 나폴리에서 팔레르모로 떠나기 전 은행 계좌에서 모든 돈을 인출한 것으로 알려졌다.[6] 그는 팔레르모에 있는 대학교 교수이자 친구인 에밀리오 세그레를 방문하려 했을 수도 있지만, 세그레는 당시 캘리포니아에 있었다.

실종 당일, 마요라나는 카렐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 친애하는 카렐리에게,

저는 피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결정에는 조금의 이기심도 없지만, 저의 갑작스러운 실종이 당신과 학생들에게 어떤 어려움을 초래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도, 특히 지난 몇 달 동안 저에게 보여준 신뢰, 진실한 우정, 그리고 호의를 배신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저는 당신의 연구소에서 알게 되고, 존경하게 된 모든 사람, 특히 스키우티에게 저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저는 오늘 밤 11시까지, 아마 그 이후에도 그들 모두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간직할 것입니다.

— 에. 마요라나

이 편지 직후, 마요라나는 이전 여행 계획을 취소하는 전보를 보냈다. 그는 팔레르모에서 나폴리로 돌아가는 배표를 구입했지만, 그 이후로는 다시 목격되지 않았다.[6]

마요라나의 실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제시되었다.

  • 자살: 에두아르도 아말디, 에밀리오 세그레 등의 설
  • 아르헨티나로의 도주: 에라스모 레카미와 카를로 아르테미의 설
  • 베네수엘라로의 도주: Rai 3의 토크쇼 "''Chi l'ha Visto?''"에서 마요라나가 1955년부터 1959년까지 발렌시아에 살았다는 진술이 발표되었다.
  • 수도원으로의 도주: 레오나르도 샤샤의 설
  • 유괴 또는 살해: 벨라, 바르토치 등의 설. 핵무기 제조에 참여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 도주하여 거지꼴이 되었다: 바스코네와 벤투리니의 설 ("''omu cani''" 또는 "dog man" 가설이라고도 함)[33]


1955년베네수엘라의 한 정비공이 자신의 정비소에서 차량 수리를 의뢰하고 함께 사진을 찍은 남자가 에토레 마요라나였다고 주장했고, 이탈리아 경찰의 분석 결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었다. 증인들의 묘사도 상당히 정확하여, 이탈리아 당국은 그가 베네수엘라로 떠나 살았을 것이라는 설에 무게를 두고 2015년 수사를 종결했다.[48] 그러나 이를 반박하는 의견도 많으며, 여러 정황상 증거와 실종 전 몇 년 간 그가 보인 심한 우울 증세를 근거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유력하다. 에밀리오 세그레 등 동료 학자들 또한 이 설을 지지하였다.

3. 2. 실종 이후의 조사와 가설

1938년 마요라나가 실종된 이후, 그의 행방을 찾기 위한 여러 차례의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의 실종에 대한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었다.[6]

  • 자살 가설: 에두아르도 아말디, 에밀리오 세그레 등 동료 학자들은 마요라나가 실종 전 몇 년간 심한 우울 증세를 보였고, 나폴리 물리학 연구소 소장 안토니오 카렐리에게 보낸 편지 내용 등을 근거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14] 엔리코 페르미는 마요라나를 갈릴레이뉴턴과 같은 천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2]

  •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 이민 가설: 에라스모 레카미 등은 마요라나가 아르헨티나 또는 베네수엘라로 이민하여 새로운 삶을 살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10][11][12] 1955년 베네수엘라에서 마요라나를 만났다는 증언과 함께, 카라비니에리 RIS가 1955년 아르헨티나에서 촬영된 남성의 사진에서 마요라나의 얼굴과 10가지 유사점을 발견했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이 가설에 무게가 실렸다.[41] 2015년 2월 4일, 로마 검찰청은 마요라나가 1955년부터 1959년 사이에 베네수엘라 발렌시아에서 생활했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수사를 종결했다.[42][48]

  • 수도원 은둔 가설: 레오나르도 시아시아는 마요라나가 세라 산 브루노의 카르투시오 수도원등의 수도원에 은둔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9]

  • 납치 또는 살해 가설: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마요라나가 납치 또는 살해되었다는 가설도 제기되었다.

3. 3. 이탈리아 당국의 수사 종결

2011년, 이탈리아 검찰은 에토레 마요라나의 실종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발표했다.[17][18] 같은 해 6월, 이탈리아 언론은 카라비니에리의 과학 수사대가 1955년 아르헨티나에서 찍힌 한 남성의 사진을 분석한 결과, 마요라나의 얼굴과 10개의 유사점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19]

2015년 2월 4일, 로마 검찰청은 마요라나가 1955년부터 1959년까지 베네수엘라 발렌시아에서 생존했다는 증거를 바탕으로 수사를 종결한다고 발표했다.[20] 검찰은 마요라나의 실종과 관련된 범죄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으며, 그의 실종이 개인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고, 베네수엘라로 이민을 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지었다.[20][21]

4. 과학적 업적

엔리코 페르미는 1938년에 마요라나를 갈릴레오 갈릴레이아이작 뉴턴과 같은 천재라고 평가했다.[2]

마요라나는 학부생 시절인 1928년에 원자 분광학에 대한 첫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토마스-페르미 모델을 원자 분광학에 적용한 연구로, 가돌리늄우라늄의 내부 전자 에너지와 세슘의 광학 스펙트럼의 미세 구조 분열을 잘 설명했다. 1931년에는 원자 스펙트럼에서 자동 이온화 현상에 대한 첫 번째 논문을 발표했다.

1932년에는 시간 변화 자기장에서 정렬된 원자의 행동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여 라디오 주파수 분광학 발전에 기여했다. 같은 해, 임의의 고유 운동량을 가진 입자의 상대론적 이론에 관한 논문에서 로렌츠 군의 무한 차원 표현을 개발하고 적용하여 기본 입자의 질량 스펙트럼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이렌 졸리오-퀴리와 프레데릭 졸리오의 1932년 실험을 중성자의 존재로 정확하게 해석했으나, 논문을 발표하지 않아 제임스 채드윅이 중성자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1933년에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를 만나 원자핵 이론을 연구했고, 코펜하겐에서 닐스 보어와 함께 연구했다.

4. 1. 마요라나 방정식과 마요라나 페르미온

1937년, 마요라나는 전자양전자의 대칭 이론을 상세하게 설명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그는 페르미온으로 알려진 입자 부류에 자신과 반입자가 같은 입자가 존재해야 한다고 예측했다. 마요라나 방정식의 해는 이러한 입자들을 산출하며, 현재는 마요라나 페르미온으로 불린다. 중력의 영향으로 추론될 수 있을 뿐, 감지할 수 없는 우주의 암흑 물질의 적어도 일부가 마요라나 입자로 구성될 수 있다는 추측이 있다.[2]

4. 2. 중성미자 질량 연구

마요라나는 중성미자 질량에 관해 선구적인 이론적 연구를 수행했으며, 이는 현재까지 활발하게 연구되는 주제이다.[8],[31]

4. 3. 기타 연구

마요라나는 지구물리학, 전기 공학, 수학, 상대성 이론에 관한 소규모 연구들을 수행했다. 이 미발표 논문들은 피사의 도무스 갈릴레아나에 보관되어 있으며, 에라스모 레카미와 살바토레 에스포지토에 의해 편집되었다.[4]

5. 유산 및 기념

엔리코 페르미는 1938년에 마요라나에 대해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과학자가 있다. 2류 또는 3류 과학자들은 최선을 다하지만 결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다음은 1류 과학자들로, 과학 발전에 중요한 발견을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갈릴레이뉴턴과 같은 천재들이 있다. 마요라나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2]

2006년은 마요라나 탄생 100주년이었다. 이를 기념하여 2006년 10월 5~6일 이탈리아 카타니아에서 "에토레 마요라나의 유산과 21세기 물리학"에 관한 국제 학술 대회가 개최되었다.[22] 이 학술대회 논문집은 A. 비안코니, D. 브링크, N. 카비보, R. 카살부오니, G. 드라고니, S. 에스포시토, E. 피오리니, M. 잉구시오, R. W. 재키우, L. 마이아니, R. 만테냐, E. 미네코, R. 페트론치오, B. 프레지오시, R. 푸치, E. 레카미, 그리고 안토니노 지키치와 같은 국제적으로 명성 있는 과학자들의 논문으로 구성되었으며, Andrea Rapisarda (의장), Paolo Castorina, Francesco Catara, Salvatore Lo Nigro, Emilio Migneco, Francesco Porto, 그리고 Emanuele Rimini에 의해 편집되어 ''SISSA의 과학 회보 POS''에 출판되었다.

2006년에는 그의 9편의 논문을 모아 해설과 영어 번역을 덧붙인 기념 서적이 이탈리아 물리학회에 의해 출판되었다.[23]

또한,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Electronic Journal of Theoretical Physics''(EJTP)는 마요라나의 유산의 현대적 발전에 헌정된 20편의 논문으로 구성된 특별호를 출판하고, 그의 이름을 딴 마요라나 상을 제정했다. 마요라나 상은 이론 물리학(가장 넓은 의미에서)에서 독창성, 비판적 사고 및 수학적 엄밀성을 보여준 연구자에게 매년 수여되는 상이다. 2006년 마요라나 상 수상자는 Erasmo Recamiit (베르가모 대학교 및 INFN)와 조지 수다르샨 (텍사스 대학교)이었고, 2007년 수상자는 리 스몰린 (이론물리학 페리미터 연구소, 캐나다), Eliano Pessait (파비아 대학교 Centro Interdipartimentale di Scienze Cognitive 및 Dipartimento di Psicologia), 그리고 Marcello Ciniit (로마 라 사피엔자 대학교 Dipartimento di Fisica)였다.

참조

[1] Youtube "Quantum Computation possible with Majorana Fermions" XHUgetdkJmg 2013-04-19
[2] 웹사이트 Ettore Majorana: genius and mystery https://cerncourier.[...] 2006-07-24
[3] 서적 Great Mysteries of the Past https://archive.org/[...] Reader's Digest Association
[4] 논문 Comments on a Paper by Majorana Concerning Elementary Particles
[5] 웹사이트 Ettore Majorana: genius and mystery http://cerncourier.c[...] CERN 2006-07-24
[6] 웹사이트 The mysterious disappearance of Ettore Majorana http://astr.psc.sc.e[...] USC Neutrino Symposium 2009-04-05
[7] 논문 The mysterious disappearance of Ettore Majorana 2009-06-01
[8] arXiv Distinguishing Dirac and Majorana neutrinos with astrophysical fluxes
[9] 서적 La Scomparsa di Majorana 'Einaudi, 1975; Carcanet, 1987'
[10] 서적 Il caso Majorana: Lettere, testimonianze, documenti Di Renzo Editore
[11] 논문 I nuovi documenti sulla scomparsa del fisico Ettore Majorana
[12] 논문 New evidence on the disappearance of the physicist Ettore Majorana
[13] 서적 Che cos'è reale? La scomparsa di Majorana Neri Pozza
[14] 서적 il promemoria "Tunisi": un nuovo tassello del caso Majorana http://www.sif.it/SI[...] il Nuovo Saggiatore 2020-10-28
[15] 웹사이트 'Il mistero Majorana risolto grazie a "Chi l''ha visto"' https://www.sorrisi.[...] 2020-12-20
[16] 웹사이트 'La vera storia di Ettore Majorana' al Teatro Flavio http://www.ilfaroonl[...] 2015-10-17
[17] 웹사이트 Il mistero Majorana si riapre dopo 73 anni - Cronaca http://www.ansa.it/w[...] ANSA.it 2013-04-29
[18] 웹사이트 Adnkronos Cronaca http://www.adnkronos[...] Adnkronos.com 2013-04-29
[19] 웹사이트 È il volto di Majorana, 10 punti uguali http://www.corriere.[...] Corriere della Sera 2013-04-29
[20] 웹사이트 La Procura: Ettore Majorana vivo in Venezuela fra il 1955 e il 1959 http://roma.corriere[...] Corriere della Sera 2015-02-04
[21] 웹사이트 Ettore Majorana mystery might be solved http://www.science20[...] 2014-08-27
[22] 웹사이트 Ettore Majorana's legacy and the Physics of the XXI century https://pos.sissa.it[...] 2017-07-11
[23] 서적 Scientific Papers on occasion of the centenary of the birth SIF 2006
[24] 서적 伊和中辞典 小学館
[25] 간행물 Great Mysteries of the Past Reader's Digest Association
[26] 간행물 Am. J. Phys.
[27] 뉴스 Ettore Majorana: genius and mystery http://cerncourier.c[...] CERN courier
[28] 간행물 Great Mysteries of the Past Reader's Digest Association
[29] 웹사이트 The Mysterious Disappearance of Ettore Majorana http://astr.psc.sc.e[...] USC Neutrino Symposium 2009-04-05
[30] 뉴스 Majorana particle glimpsed in lab https://www.bbc.co.u[...] BBC News, Science and Environment 2012-04-12
[31] arXiv Distinguishing Dirac and Majorana neutrinos with astrophysical fluxes.
[32] 논문 On Majorana's Theory of Gravitation 1921-12
[33] 웹사이트 'La vera storia di Ettore Majorana' al Teatro Flavio http://www.ilfaroonl[...] 2015-10-17
[34] 서적 La Scomparsa di Majorana 'Einaudi, 1975; Carcanet, 1987'
[35] 서적 Il caso Majorana: Lettere, testimonianze, documenti Di Renzo Editore
[36] 논문 I nuovi documenti sulla scomparsa del fisico Ettore Majorana
[37] 논문 New evidence on the disappearance of the physicist Ettore Majorana
[38] 서적 Che cos'è reale? La scomparsa di Majorana Neri Pozza
[39] 웹사이트 Il mistero Majorana si riapre dopo 73 anni - Cronaca http://www.ansa.it/w[...] ANSA.it 2013-04-29
[40] 웹사이트 Adnkronos Cronaca http://www.adnkronos[...] Adnkronos.com 2011-04-01
[41] 웹사이트 È il volto di Majorana, 10 punti uguali http://www.corriere.[...] Corriere della Sera 2013-04-29
[42] 웹사이트 La Procura: Ettore Majorana vivo in Venezuela fra il 1955 e il 1959 http://roma.corriere[...] Corriere della Sera 2015-02-04
[43] 웹사이트 Ettore Majorana mystery might be solved http://www.science20[...] 2019-06-01
[44] 웹사이트 Ettore Majorana's legacy and the Physics of the XXI century https://pos.sissa.it[...] 2017-07-11
[45] 서적 Scientific Papers on occasion of the centenary of the birth SIF 2006
[46] 간행물 Ettore Majorana: genius and mystery http://cerncourier.c[...] CERN
[47] 서적 Great Mysteries of the Past https://archive.org/[...] Reader's Digest Association
[48] 웹사이트 Ettore Majorana mystery might be solved https://www.scienc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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