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스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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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율리시스의 귀환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가 작곡한 오페라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각색한 작품이다. 1640년 베네치아에서 초연되어 성공을 거두었으며, 1922년 악보 출판 이후 다양한 편집본으로 현대에도 공연되고 있다. 몬테베르디는 대본과 음악의 결합을 통해 율리시스의 귀환을 표현했으며, 30개의 배역과 소규모 밴드를 위한 음악으로 구성되었다. 작품은 율리시스의 귀환, 페넬로페와의 재회, 구혼자들을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시간, 행운, 사랑의 신들의 등장과 인간의 나약함을 조롱하는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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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의 귀환 | |
---|---|
기본 정보 | |
제목 | 율리시스의 귀환 |
원어 제목 | Il ritorno d'Ulisse in patria (일 리토르노 디 울리세 인 파트리아) |
종류 | 오페라 |
작곡가 |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
원어 작곡가 | Claudio Monteverdi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
대본가 | 자코모 바도아로 |
원어 대본가 | Giacomo Badoaro (자코모 바도아로) |
언어 | 이탈리아어 |
원작 |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
초연 날짜 | 1639–1640 사육제 시즌 |
초연 장소 | 베네치아, 테아트로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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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적 배경
몬테베르디는 베네치아를 위해 ''율리시스의 귀환''을 작곡했다. 1637년 테아트로 산 카시아노가 개장하면서 베네치아에 본격적인 오페라가 등장했다.[1]
자코모 바도아로는 베네치아에서 음악극을 장려하는 데 관심이 있었던 자유 사상가 집단인 아카데미아 델리 인코그니티의 일원으로, 테아트로 노비시모에 재정적 이해관계가 있었다.[2] 바도아로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13~23권을 바탕으로 5막의 대본을 썼고, 잠바티스타 델라 포르타의 희곡 ''페넬로페''에서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이 대본은 몬테베르디가 베네치아 오페라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쓰였으며, 노년의 작곡가에게 영감을 주었다.[3]
몬테베르디는 1606년부터 1608년 사이에 오르페오와 아리아나를 작곡하여 만토바의 빈첸초 1세 곤차가 공작 궁정 작곡가로 명성을 떨쳤다. 프란체스코 4세 곤차가 공작과 사이가 틀어진 후, 1613년 베네치아로 이주하여 성 마르코 대성당의 음악 감독이 되었고, 평생 이 직책을 맡았다.
1637년, 부유한 트론 가문이 후원한 테아트로 산 카시아노는 오페라만을 위해 특별히 지어진 세계 최초의 극장이었다. 1637년 3월 6일 이 극장의 개막 공연은 프란체스코 마넬리와 베네데토 페라리의 ''안드로메다''였다. 공화국을 통치하는 가문들이 새로운 음악적 유행에 투자하여 부와 지위를 과시하려 하면서, 3개의 오페라 하우스가 연이어 문을 열었다.
3. 창작
몬테베르디는 바도아로의 대본을 바탕으로 1639년에서 1640년 사이 카니발 공연을 위해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는 대본을 3막으로 재구성하고, 서곡과 결말을 바꾸고, 많은 장면과 구절을 생략하거나 재배치하는 등 과감하게 수정했다. 링거는 이를 두고 "몬테베르디는 바도아로의 글을 음악 드라마를 위한 일관되고 매우 효과적인 기초로 과감하게 재구성했다"고 평했다.[5]
당시 베네치아 오페라의 일반적인 특성에 따라, 이 작품은 약 5명의 현악 연주자와 다양한 콘티누오 악기를 위한 소규모 밴드로 구성되었다. 이는 오페라 하우스를 후원하는 상인 귀족들의 재정적 동기를 반영한 것이었다.[5]
1922년 악보 출판 이후, 학자들은 이 작품이 진정으로 몬테베르디의 작품인지 의문을 제기했다.[25] 그러나 몬테베르디가 작곡가임을 확인해주는 동시대 문서들이 발견되면서 이러한 의문은 대부분 해소되었다. 바르톨로는 이러한 발견들이 몬테베르디를 의심할 여지 없이 주요 작곡가로 확립한다고 보았다.[5]
3. 1. 대본
자코모 바도아로 (1602–1654)는 베네치아 방언으로 작품 활동을 한 시인이자 아카데미아 델리 인코그니티의 일원이었다. 이 단체는 베네치아에서 음악극을 장려하는 데 관심이 있었던 자유 사상가들의 모임이었다.[2] 바도아로는 테아트로 노비시모에 재정적 관심을 갖고 있었다.[2] ''율리시스의 귀환''은 그의 첫 번째 대본이었으며, 1644년에는 프란체스코 사크라티를 위해 또 다른 율리시스 기반 대본을 쓰기도 했다.[2]
원래 5막으로 쓰였으나 나중에 3막으로 재구성된 ''율리시스의 귀환''의 텍스트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13~23권을 대체로 충실하게 각색한 것이다. 다만, 일부 등장인물의 성격 묘사는 변경되거나 확장되었다. 바도아로는 1591년 잠바티스타 델라 포르타의 희곡 ''페넬로페''에서 영감을 받았을 수도 있다. 이 대본은 몬테베르디가 베네치아 오페라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도록 하기 위해 쓰였으며, 노년의 작곡가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던 것으로 보인다.[3] 바도아로와 몬테베르디는 고전적인 이야기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시대의 인간적인 상황을 묘사했다.
몬테베르디 학자 엘렌 로잔드는 초연 이후 발견된 12개의 출판된 대본 버전을 확인했다. 대부분은 18세기 사본으로, 아마도 단일 출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일부는 어떤 연극 공연과도 관련이 없는 문학적 버전이다. 12개 중 11개는 바도아로를 저자로 명시하고 있으며, 나머지 하나는 익명이다. 몬테베르디를 작곡가로 언급하는 것은 단 두 개뿐이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 작곡가의 이름은 인쇄된 대본에 거의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텍스트는 모두 대체로 동일하며, 몬테베르디의 악보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본과는 모두 다르다. 이 악보는 3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5막이 아니고, 다른 서곡과 다른 결말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장면과 구절이 생략되거나 재배치되어 있다. 일부 대본 사본은 오페라의 초연 장소를 테아트로 산 카시아노로 표기하고 있지만, 현재는 테아트로 SS 조반니 에 파올로가 초연 장소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몬테베르디가 바도로부터 언제 대본을 받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1639~40년 카니발 공연을 위해 이 작품이 준비되었으므로, 아마도 1639년 또는 그 이전에 받았을 것이다. 베네치아 오페라의 일반적인 특성에 따라, 이 작품은 약 5명의 현악 연주자와 다양한 콘티누오 악기를 위한 소규모 밴드로 구성되었다. 당시 흔히 그랬듯이, 정확한 악기 편성은 악보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악보 연구를 통해 몬테베르디가 무대 작곡가로서, 그리고 인간의 목소리를 위한 다른 작품들을 작곡해 온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많은 특징들을 알 수 있다. 로산드는 악보와 대본 사이의 상당한 차이점이 몬테베르디의 저작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다고 믿는데, 몬테베르디가 자신에게 제시된 텍스트를 각색하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3] 링거는 "몬테베르디는 바도로의 글을 음악 드라마를 위한 일관되고 매우 효과적인 기초로 과감하게 재구성했다"고 썼으며, 바도로는 더 이상 자신의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3. 2. 작곡
몬테베르디가 바도아로로부터 언제 율리시스의 귀환 대본을 받았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1639~40년 베네치아 카니발 공연을 위해 작품을 준비한 것을 보면, 아마도 1639년 또는 그 이전에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3]
당시 베네치아 오페라의 일반적인 경향에 따라, 몬테베르디는 약 5명의 현악 연주자와 다양한 콘티누오 악기로 구성된 소규모 밴드를 위한 곡을 썼다. 이는 오페라 하우스를 후원하는 상인 귀족들이 예술적 성공뿐만 아니라 상업적 성공도 원했고, 비용을 최소화하고자 했기 때문이다.[5] 당시 흔히 그랬듯이, 정확한 악기 편성은 악보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5]
악보를 연구하면 몬테베르디가 무대 작곡가로서, 그리고 인간의 목소리를 위한 다른 작품들을 작곡해 온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다. 엘렌 로잔드는 악보와 대본 사이의 상당한 차이점이 몬테베르디의 저작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뒷받침한다고 주장하는데, 몬테베르디가 자신에게 제시된 텍스트를 각색하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3] 링거는 "몬테베르디는 바도로의 글을 음악 드라마를 위한 일관되고 매우 효과적인 기초로 과감하게 재구성했다"고 쓰며 이를 뒷받침했고, 바도로는 더 이상 자신의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5]
3. 3. 진정성 논란
1922년 악보 출판 전후, 학자들은 이 작품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몬테베르디 귀속에 대한 의문은 195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이탈리아 음악학자 자코모 벤베누티는 1942년 밀라노 공연을 근거로 이 작품이 몬테베르디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형편없다고 주장했다.[25] ''율리시스의 귀환''과 몬테베르디의 다른 현존하는 후기 오페라 ''포페아의 대관''의 양식적 차이 외에도, 악보와 대본 사이의 불일치가 주요 문제점으로 제기되었다.[3]
그러나 몬테베르디가 작곡가임을 확인해주는 동시대 문서들이 발견되면서 귀속에 대한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여기에는 ''라비니아의 아에네아의 결혼''의 익명 대본 작가가 몬테베르디의 ''율리시스의 귀환'' 작곡에 대해 논의한 편지가 포함된다. 바도아로가 작곡가에게 보낸 ''율리시스의 귀환'' 대본 서문에는 "내 율리세스는 실제 율리세스가 은혜로운 미네르바에게 그랬던 것보다 당신에게 훨씬 더 큰 빚을 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4] 1644년 바도아로가 미켈란젤로 토르칠리아니에게 보낸 편지에는 "''율리시스의 귀환''은 명성이 높고 영원히 기억될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음악으로 장식되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4] 1640년에 출판된 책자 ''음악의 영광''은 바도아로-몬테베르디 조합을 오페라 창작자로 명시하고 있다. 지휘자이자 연주자인 바르톨로는 이러한 발견이 몬테베르디를 의심할 여지 없이 주요 작곡가로 확립한다고 보았다. 비록 음악 일부가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쳤을지라도, 이 작품이 실질적으로 몬테베르디의 작품이며 그의 원래 구상에 가깝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5]
4. 등장 배역
이 작품은 30개의 배역으로 구성된 대규모 출연진을 위해 쓰여졌다. 여기에는 천상의 존재, 세이렌과 파이아케스의 작은 합창단이 포함되어 있지만, 적절한 역할 중복을 통해 14명의 성악가(3명의 소프라노, 2명의 메조 소프라노, 1명의 알토, 6명의 테너, 2명의 베이스)로 구성할 수 있다. 이는 베네치아 오페라에서 사용되는 일반적인 규모와 비슷하다.
악보에서 에우메테의 역할은 2막 중간에 테너에서 카스트라토 소프라노로 바뀌는데, 이는 현존하는 필사본이 두 개 이상의 출처에서 만들어졌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현대 공연에서는 에우메테 역할의 후반부가 일반적으로 전체적으로 테너 음역에 맞게 더 낮은 음역으로 조옮김된다.[6]
역할 | 성부 | 등장 횟수 | 비고 |
---|---|---|---|
L'humana Fragilità (인간의 허약함) | 메조 소프라노 | 서곡 | |
Il Tempo (시간) 신 | 베이스 | 서곡 | |
La Fortuna (행운) 여신 | 소프라노 | 서곡 | |
L[큐피드|Amore]] (큐피드) 신'' | 소프라노 | 서곡 | 이 역할은 원래 소년 소프라노, 아마도 Costantino Manelli가 맡았을 수 있다.[6] |
페넬로페 율리시스의 아내 | 메조 소프라노 | 1막: I, X 2막: V, VII, XI, XII 3막: III, IV, V, IX, X | 이 역할은 원래 베네치아와 볼로냐에서 줄리아 파올렐리가 불렀다.[6] |
Ericlea (에우리클레이아) 페넬로페의 유모 | 메조 소프라노 | 1막: I 3막: VIII, X | |
Melanto (멜란토) 페넬로페의 시녀 | 소프라노 | 1막: II, X 2막: IV 3막: III | |
Eurimaco (에우리마코) 페넬로페의 구혼자 하인 | 테너 | 1막: II 2막: IV, VIII | |
Nettuno (넵투누스) 바다의 신 | 베이스 | 1막: V, VI 3막: VII | 이 역할은 아마도 베네치아와 볼로냐에서 흥행주 프란체스코 마넬리가 불렀을 것이다.[6] |
Giove (유피테르) 최고신 | 테너 | 1막: V 3막: VII | 유명한 베네치아 테너인 조반 바티스타 마리노니가 초기 베네치아 공연에서 조베로 출연했을 수 있다.[6] |
Coro Feaci (파이아케스 합창단) | 알토, 테너, 베이스 | 1막: VI | |
Ulisse (율리시스 또는 오디세우스) 이타카의 왕 | 테너 | 1막: VII, VIII, IX, XIII 2막: II, III, IX, X, XII 3막: X | |
미네르바 여신 | 소프라노 | 1막: VIII, IX 2막: I, IX, XII 3막: VI, VII | 이 역할은 원래 베네치아와 볼로냐에서 프란체스코의 아내인 마달레나 마넬리가 불렀다.[6] |
Eumete (에우메테) 양치기 | 테너 | 1막: XI, XII, XIII 2막: II, VII, X, XII 3막: IV, V, IX | |
Iro (이로) 기생충 | 테너 | 1막: XII 2막: XII 3막: I | |
Telemaco (텔레마코) 율리시스의 아들 | 테너 | 2막: I, II, III, XI 3막: V, IX, X | |
Antinoo (안티노오) 페넬로페의 구혼자 | 베이스 | 2막: V, VIII, XII | |
Pisandro (피산드로) 페넬로페의 구혼자 | 테너 | 2막: V, VIII, XII | |
Anfinomo (암피노모) 페넬로페의 구혼자 | 알토 또는 카운터테너 | 2막: V, VIII, XII | |
Giunone (주노) 여신 | 소프라노 | 3막: VI, VII | |
Coro in Cielo (천상의 합창단) | 소프라노, 알토, 테너 | 3막: VII | |
Coro marittimo (세이렌 합창단) | 소프라노, 테너, 베이스 | 3막: VII |
5. 줄거리
트로이 전쟁 이후, 이타카 섬과 그 주변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율리시스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이타카 궁전에서 페넬로페는 율리시스의 오랜 부재에 슬퍼하고, 그녀의 시녀 멜란토는 구혼자 중 한 명인 에우리마코와 사랑을 나눈다. 한편, 파이아케인(파에키) 사람들에 의해 이타카 해안에 옮겨진 율리시스는 잠에서 깨어나 자신을 버린 그들을 저주한다. 미네르바 여신은 양치기 소년으로 변장하여 율리시스에게 그가 이타카에 있으며, 페넬로페가 정절을 지키고 있음을 알려준다. 미네르바는 율리시스에게 변장을 하고 궁에 잠입할 것을 조언하고, 율리시스는 충실한 하인 에우메테를 찾아 나선다.
궁전으로 돌아온 멜란토는 페넬로페에게 구혼자 중 한 명을 선택하라 설득하지만, 페넬로페는 거절한다. 숲에서는 에우메테가 목가적인 삶을 즐기는 동안, 율리시스는 거지로 변장하여 에우메테에게 왕이 살아 돌아올 것이라 확신시킨다.
미네르바와 텔레마코가 이타카로 돌아오고, 텔레마코는 에우메테와 변장한 율리시스를 만난다. 율리시스는 아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재회를 기뻐한다. 궁전에서 멜란토는 에우리마코에게 페넬로페가 여전히 구혼자를 선택하지 않고 있다고 불평한다. 안티노오, 피산드로, 안피노모 세 구혼자는 페넬로페에게 구애하지만, 페넬로페는 모두 거절한다. 에우메테는 페넬로페에게 텔레마코의 도착 소식을 전하지만, 페넬로페는 의심한다. 구혼자들은 텔레마코를 죽이려 하지만, 상징적인 독수리의 출현으로 계획을 포기하고 금으로 페넬로페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
미네르바는 율리시스에게 구혼자들을 물리칠 방법을 알려준다. 율리시스는 거지로 변장하여 궁전에 들어가 이로와 싸워 이긴다. 페넬로페는 율리시스의 활을 쏠 수 있는 자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하고, 율리시스는 변장한 채로 활쏘기에 성공하여 구혼자들을 모두 죽인다.
구혼자들의 후원을 잃은 이로는 자살하고, 멜란토는 페넬로페에게 위험을 경고하지만 페넬로페는 율리시스를 그리워한다. 에우메테와 텔레마코는 페넬로페에게 거지 행색을 한 사람이 율리시스임을 알리지만, 페넬로페는 믿지 않는다. 유노는 미네르바의 요청으로 조베와 넷투네에게 율리시스의 왕위 복귀를 설득한다. 간호사 에리클레아는 율리시스의 흉터를 알아보고 그의 정체를 확인하지만, 바로 알리지 않는다. 페넬로페는 율리시스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침대 시트 무늬를 묘사한 후에야 그를 믿게 된다. 마침내 재회한 두 사람은 사랑을 노래한다.
5. 1. 프롤로그
트로이 전쟁이 끝난 직후,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다. 인간의 나약한 정신(l'humana Fragilitàit)은 시간의 신(il Tempoit), 행운의 신(la Fortunait), 사랑의 신(l'Amoreit)에게 차례로 조롱받는다. 그들은 인간이 그들의 변덕에 굴복한다고 주장한다. "영원히 덧없이 흐르는 시간으로부터, 행운의 달콤함으로부터, 사랑과 그 화살로부터... 나에게 자비란 없다!"[1] 그들은 인간을 "연약하고, 비참하며,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라고 한다.[2]5. 2. 1막
트로이 전쟁이 끝난 직후, 이타카 궁전에서 페넬로페는 율리시스의 오랜 부재를 슬퍼한다. "기다리던 이는 돌아오지 않고 세월은 흘러갑니다."[1] 그녀의 슬픔은 간호사 에리클레아가 공감한다. 페넬로페가 떠나자 그녀의 시녀 멜란토가 페넬로페의 구혼자 중 한 명인 에우리마코와 함께 들어온다. 둘은 서로의 사랑을 열정적으로 노래한다 ("당신은 나의 달콤한 삶입니다").[2]장면은 이타카 해안으로 바뀌고, 잠자는 율리시스는 파이아케인(파에키)에 의해 해안으로 옮겨진다. 이는 신인 조베와 네투노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이었다. 파이아케인인들은 신들의 처벌을 받아 그들과 그들의 배는 돌로 변한다.

율리시스는 깨어나 파이아케인인들이 그를 버린 것을 저주한다. "가장 거짓된 파이아케인인들이여, 당신의 돛에 보레아스가 영원히 적대적이기를!"[3] 양치기 소년으로 변장한 여신 미네르바로부터 율리시스는 자신이 이타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악한 구혼자들의 끊임없는 구애에도 불구하고 "정숙한 페넬로페의 변함없는 굳건함"[4]에 대해 듣게 된다. 미네르바는 율리시스가 자신의 충고를 따른다면 왕좌로 되돌려 보낼 것을 약속한다. 그녀는 그에게 궁정에 몰래 잠입할 수 있도록 변장하라고 말한다. 율리시스는 그의 충실한 하인 에우메테를 찾아 나서는 동안 미네르바는 왕국을 되찾도록 아버지를 도울 율리시스의 아들 텔레마코를 찾기 위해 떠난다.
궁전으로 돌아온 멜란토는 페넬로페에게 구혼자 중 한 명을 선택하도록 설득하려 하지만 헛된 시도였다. "죽은 자의 재에서 위안을 기대하며 왜 살아있는 구혼자들의 사랑을 경멸합니까?"[5] 숲 속에서 에우메테는 구혼자들에 의해 궁정에서 추방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목가적인 삶을 즐기고, 구혼자들의 기생적인 추종자인 이로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즐거워한다. 이로는 조롱한다. "나는 왕들 사이에서 살고, 당신은 여기서 무리들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6] 이로가 쫓겨난 후, 율리시스는 거지로 변장하여 들어와 그의 주인인 왕이 살아있으며 돌아올 것이라고 에우메테에게 확신한다. 에우메테는 매우 기뻐한다. "나의 오랜 슬픔은 당신에 의해 정복당할 것입니다."[7]
5. 3. 2막
미네르바와 텔레마코는 전차를 타고 이타카로 돌아온다. 텔레마코는 숲속에서 에우메테와 변장한 율리시스의 기쁨에 찬 인사를 받는다. "오, 위대한 율리시스의 아들이여, 그대가 정말 돌아왔구나!" 에우메테가 텔레마코의 도착을 페넬로페에게 알리러 간 후, 불덩이가 율리시스에게 내려와 그의 변장을 벗기고 아들에게 그의 진짜 정체를 드러낸다. 율리시스와 텔레마코는 재회를 축하하고, 율리시스는 텔레마코를 궁전으로 보내고 곧 따라가겠다고 약속한다.궁전에서 멜란토는 에우리마코에게 페넬로페가 여전히 구혼자를 선택하지 않고 있다고 불평한다. "요컨대, 에우리마코, 그 부인은 돌처럼 차가운 마음을 가졌소."[1] 얼마 후 페넬로페는 안티노오, 피산드로, 안피노모 세 명의 구혼자를 맞이하고, 그들이 노래와 춤으로 궁정을 활기차게 만들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각 구혼자를 차례로 거절한다. "이제 즐거움, 춤과 노래로!"[2] 구혼자들이 떠난 후 에우메테는 페넬로페에게 텔레마코가 이타카에 도착했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의심한다. "그렇게 불확실한 소식은 내 슬픔을 더한다."[3] 에우메테의 메시지는 구혼자들에게 들리고, 그들은 텔레마코를 죽일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상징적인 독수리가 머리 위로 날아가자 그들은 불안해하며 계획을 포기하고 이번에는 금으로 페넬로페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노력을 새롭게 한다.
다시 숲속에서 미네르바는 율리시스에게 그가 구혼자들에게 도전하고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했다고 말한다. 거지로 변장한 율리시스는 궁전에 도착하고, 이로에게 싸움을 걸어온다. "네 수염을 하나씩 뽑아주마!"[4] 이로는 그 도전을 받아들이고 율리시스가 승리한다. 페넬로페는 이제 율리시스의 활을 쏠 수 있는 구혼자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세 구혼자 모두 그 과제를 실패한다. 변장한 율리시스는 페넬로페의 손을 얻는 대가 대신 시도해 보겠다고 요청하고, 모두가 놀랍게도 그는 성공한다. 그는 분노하여 구혼자들을 비난하고, 신들의 이름을 불러 활로 세 구혼자를 모두 죽인다. "활은 이렇게 상처를 입힌다! 죽음으로, 학살로, 파멸로!"[5]
5. 4. 3막
구혼자들의 후원을 잃은 이로는 비통한 독백("오 슬픔이여, 영혼을 슬프게 하는 고통이여!"[1]) 이후 자살한다. 구혼자들과 함께 연인 에우리마코가 죽은 멜란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살해범이 초래할 새로운 위험을 페넬로페에게 경고하려 하지만 페넬로페는 감동하지 않고 율리시스를 계속 애도한다. 에우메테와 텔레마코는 이제 그녀에게 거지 행색을 한 사람이 변장한 율리시스라고 알리지만, 그녀는 그들을 믿지 않는다. "너희 소식은 끈질기고 너희 위로는 해롭다."[2] 장면은 잠시 하늘로 옮겨져 유노가 미네르바의 요청을 받고 조베와 넷투네에게 율리시스가 왕좌를 되찾아야 한다고 설득한다. 궁전으로 돌아온 간호사 에리클레아는 그의 등에 있는 흉터를 알아보고 율리시스의 정체를 밝혀냈지만, 즉시 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때로는 현명한 침묵이 최선이다."[3] 페넬로페는 율리시스가 진정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조차, 그리고 에리클레아가 흉터에 대한 지식을 밝혔을 때조차 믿지 않는다. 마침내 율리시스가 오직 그만이 알 수 있는, 페넬로페의 사적인 침대 시트 무늬를 묘사한 후 그녀는 확신하게 된다. 재회한 두 사람은 그들의 사랑을 찬양하며 황홀하게 노래한다.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나의 태양! 새롭게 빛나는 나의 빛!"[4]6. 음악
''율리시스의 귀환''의 음악은 몬테베르디의 초기 르네상스 간주곡과 전원 양식의 요소를 유지하면서도, 최초의 현대 오페라로 평가받는다.[19] 1막을 여는 페넬로페의 애가는 오르페오의 ''Redentemi il mio ben''과 ''라리아나''의 애가를 떠올리게 한다. 전투와 구혼자 살해 장면의 군사적인 음악은 ''탄크레디와 클로린다의 전투''에서 가져온 것이며, 노래 에피소드는 1632년 ''스케르치 무지칼레''에서 개발된 기법을 활용한다.[22]
몬테베르디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음악으로 생생하게 묘사한다.[22] 페넬로페와 율리세는 "정직한 음악적이고 언어적인 낭송"으로 표현되는 반면,[22] 구혼자들은 "과장되고 장식적인" 스타일로 나타난다.[22] 이로는 "오페라 최초의 위대한 코믹 캐릭터"일 수 있으며,[22] 그의 고통은 8마디에 걸친 독백으로 표현된다.[22] 페넬로페의 애가는 E플랫의 반복으로 시작하여 그녀의 "정지된 감정적 정체성"을 드러낸다.[22]
''율리시스의 귀환''의 음악은 "말 같은" 발화와 "음악적" 발화로 나뉜다.[23] 말은 레시타티보 형태로 정보를 전달하고, 음악적 발화는 감정을 표현한다.[23] 몬테베르디는 아리오소나 아리아를 사용하여 정보를 전달하며, 이는 선율성과 음조의 통일성을 높인다.[5] 인간과 신은 음악적으로 구별되지만, 대부분의 인간 등장인물에게도 서정적인 표현 기회가 주어진다.[5]
몬테베르디의 레시타티보 스타일은 낭송과 아리오소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실내 2중창과 앙상블 같은 형식을 구식 레시타티보와 결합한다.[16][19] "stilo concitato"(빠른 음표 반복)는 율리시스와 이로의 싸움, 구혼자 살해 장면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된다.[19]
7. 공연 역사
1925년 파리에서 뱅상 댕디의 지휘로 이 오페라의 첫 현대 공연이 이루어졌으며, 19세기까지 악보 필사본이 발견되기 전까지 추가 공연 기록은 없다.[8] BBC는 1928년 1월 16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영국 청취자들에게 이 오페라를 소개했는데, 이때도 당디 버전을 사용했다.[8]
1942년 피렌체에서 루이지 달라피콜라의 버전이, 1959년 독일 부퍼탈에서 에른스트 크레네크의 버전이 상연되었다.[3][8] 1970년대 초에는 빈(1971)과 글라인드본(1972)에서의 공연을 통해 더 넓은 레퍼토리에 진입했다.[8] 빈 공연에서는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의 새로운 판본이 사용되었고, 프랑스 오페라 연출가 장 피에르 포넬과의 협력으로 많은 유럽 도시에서 상연되었다.
1974년 1월, 케네디 센터에서 워싱턴 오페라 협회가 하르농쿠르 판을 토대로 제작한 공연으로 미국 초연을 가졌다.[13][12] 최근에는 링컨 센터에서 뉴욕 시티 오페라가 공연하는 등 미국 전역에서 공연되었다.[14]
2006년 웨일스 국립 오페라 공연은 데이비드 올덴이 연출하고 이안 맥닐이 디자인했는데, 독특한 현대적 해석을 선보였다.[15] 1985년 8월 11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독일 작곡가 한스 베르너 헨체의 2막 버전 초연이 이루어졌으나, 비평가들의 반응은 엇갈렸다.[16] 1998년 요하네스버그에서 초연된 남아프리카 예술가 윌리엄 켄트리지의 버전은 인형과 애니메이션 영화를 사용하여 전 세계를 순회했다.[17][18]
7. 1. 초기 공연
이 작품은 베네치아를 위해 몬테베르디가 작곡한 첫 번째 오페라였다.[3] 1639-40년 베네치아 카니발 기간에 프란체스코 마넬리와 베네데토 페라리의 극단에 의해 초연되었다.[3] 초연 날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카터에 따르면, 이 작품은 첫 시즌에 최소 10번 공연되었으며, 이후 마넬리는 볼로냐로 가져가 테아트로 카스트로빌라니에서 공연한 후 1640-41년 카니발 시즌을 위해 베네치아로 돌아왔다.[3] 현존하는 악보의 표시에 따르면, 첫 베네치아 공연은 5막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으며, 3막 형식은 볼로냐 또는 두 번째 베네치아 시즌에 도입되었다.[7] 초연 후 단 한 시즌 만에 베네치아에서 오페라가 부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17세기에는 거의 유일무이한 일로, 오페라의 대중적인 성공을 증명한다. 링거는 이를 "세기 최고의 성공적인 오페라 중 하나"라고 부른다.[3]
''율리시스의 귀환''의 초연 장소는 한때 테아트로 산 카시아노로 여겨졌지만, 학자들은 1639-40년과 1640-41년 공연 모두 테아트로 SS 지오반니 에 파올로에서 열렸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그리마니 가문 소유의 테아트로 SS 지오반니 에 파올로는 몬테베르디의 ''아에네아의 결혼''(Le nozze d'Enea)과 ''포페아의 대관식''(Poppea)의 초연 장소가 되기도 했다. 카터는 ''율리시스의 귀환''이 무대 연출 면에서 꽤 까다롭지 않으며, 초기 베네치아 오페라에 거의 표준으로 사용되는 궁전, 해안 풍경, 숲 장면의 세 가지 기본적인 세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파에키아인 배가 돌로 변하고, 하늘을 나는 전차가 미네르바를 수송하며, 불꽃이 율리시스를 변화시키는 등 몇 가지 특별한 효과가 필요했다.[7]
7. 2. 현대 리바이벌
1925년 파리에서 뱅상 댕디가 편집한 오페라의 첫 번째 현대 공연이 이루어졌다.[8] BBC는 1928년 1월 16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영국 청취자들에게 이 오페라를 소개했는데, 이때도 당디 버전을 사용했다.[8] 루이지 달라피콜라는 자신의 버전을 만들어 1942년 피렌체에서 공연했고, 에른스트 크레네크의 버전은 1959년 독일 부퍼탈에서 상연되었다.[3][8]1970년대 초, 이 오페라는 빈(1971)과 글라인드본(1972)에서의 공연으로 더 넓은 레퍼토리에 진입했다.[8] 빈 공연에서는 니콜라우스 하르농쿠르가 준비한 새로운 판본이 사용되었으며, 프랑스 오페라 연출가 장 피에르 포넬과의 협력은 많은 유럽 도시에서 이 오페라의 상연으로 이어졌다. 1974년 1월, 『일 리토르노』는 케네디 센터에서 워싱턴 오페라 협회가 하르농쿠르 판을 토대로 제작한 공연으로 미국 초연을 가졌다.[13][12]
최근에는 링컨 센터에서 뉴욕 시티 오페라가 이 오페라를 공연했으며, 미국 전역의 다른 장소에서도 공연되었다.[14] 2006년 웨일스 국립 오페라 공연은 데이비드 올덴이 연출하고 이안 맥닐이 디자인했는데, 독특한 현대적 해석을 선보였다.[15] 독일 작곡가 한스 베르너 헨체는 2막 버전의 초연을 담당했으며, 1985년 8월 11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제작되어 비평가들의 엇갈린 반응을 받았다.[16] 남아프리카 예술가이자 애니메이터 윌리엄 켄트리지는 인형과 애니메이션 영화를 사용하여 이 오페라의 버전을 고안했으며, 1998년 요하네스버그에서 상영된 후 전 세계를 순회했다.[17][18]
8. 음악 목록
장면 | 출연 | 첫 번째 줄 | 참고 |
---|---|---|---|
서곡 | |||
서곡 | 인간의 연약함, 시간, 운명, 사랑 | 나는 필멸의 존재이다 | 리브레토 서곡에서 신들은 파토, 포르테차, 프루덴차(운명, 힘, 신중함)이다. |
1막 | |||
1: 제1장 | 페넬로페, 에리클레아 | 불쌍한 여왕, 고통스러운 슬픔은 결코 끝나지 않네! | |
1: 제2장 | 멜란토, 에우리마코 | 쓰라리고 고통스러운 사랑하는 자들의 잔혹한 고통이네 | |
1: 제3장 | 해상 장면, 악보에서 음악 누락됨 | ||
1: 제4장 | 음악만 | 잠자는 율리시스는 파에키에 의해 해안으로 옮겨짐 | |
1: 제5장 | 넵투누스, 조베 | 인간은 오만하다 | 일부 판본에서 이 장면은 다른 음악을 사용하여 사이렌 합창으로 시작된다.[5] |
1: 제6장 | 파에키 합창, 넵투누스 | 이 비천한 세상에서 | |
1: 제7장 | 율리시스 | 아직 자고 있나, 깨어 있나? | |
1: 제8장 | 미네르바, 율리시스 | 사랑스럽고 기쁜 청춘이여 | |
1: 제9장 | 미네르바, 율리시스 | 그 동안 아레투사의 샘으로 가라 | 5막 리브레토에서 1막은 여기서 끝남 |
1: 제10장 | 페넬로페, 멜란토 | 언젠가 신들이여, 내 소원에 만족을 주소서 | |
1: 제11장 | 에우메테 | 아, 어떻게 사랑하는 왕이 자신을 구원하는가 | |
1: 제12장 | 이로, 에우메테 | 가축을 지키는 자는 목초지와 숲을 칭찬할 수 있네 | |
1: 제13장 | 에우메테, 율리시스 | 고귀한 율리세! 고귀한 일을 시작했네 | 1막 끝 (악보) |
2막 | |||
2: 제1장 | 텔레마코스, 미네르바 | 행복한 여정, 달콤한 항해 | |
2: 제2장 | 에우메테, 율리시스, 텔레마코스 | 오, 율리세의 위대한 아들이여! 정말 네가 돌아왔는가? | |
2: 제3장 | 텔레마코스, 율리시스 | 내가 무엇을 보는가, 아, 내가 무엇을 보는가? | 5막 리브레토에서 2막은 여기서 끝남 |
2: 제4장 | 멜란토, 에우리마코 | 에우리마코! 요컨대 그 여자는 돌 같은 마음을 가졌네 | |
2: 제5장 | 안티노오, 피산드로, 안피노모, 페넬로페 | 다른 여왕들은 하인들의 왕관을 쓰고, 당신은 연인들의 왕관을 썼네 | |
2: 제6장 | "무어인의 발레", 악보에서 음악 누락됨 | ||
2: 제7장 | 에우메테, 페넬로페 | 다른 소식의 전달자로 왔소! | |
2: 제8장 | 안티노오, 안피노모, 피산드로, 에우리마코 | 동료들이여, 들었는가? | |
2: 제9장 | 율리시스, 미네르바 | 하늘을 호위로 삼는 자는 멸망할 수 없네 | |
2: 제10장 | 에우메테, 율리시스 | 나는 방랑자여, 구혼자들을 보았소 | 5막 리브레토에서 3막은 여기서 끝남. 헨체의 2막 버전에서 1막은 여기서 끝남 |
2: 제11장 | 텔레마코스, 페넬로페 | 내 오랜 여행의 험난한 길을 이미 이야기했소 | |
2: 제12장 | 안티노오, 에우메테, 이로, 율리시스, 텔레마코스, 페넬로페, 안피노모, 피산드로 | 항상 촌뜨기, 에우메테... | 5막 리브레토에서 4막은 여기서 끝남 |
3막 | |||
3: 제1장 | 이로 | 오 슬픔, 오 영혼을 슬프게 하는 고통 | |
3: 제2장 | 몬테베르디가 "너무 우울하다"고 여겨서 음악으로 설정되지 않은 장면.[20] 죽은 구혼자들의 영혼이 지옥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임. | ||
3: 제3장 | 멜란토, 페넬로페 | 그리고 무슨 이상한 소란이 | |
3: 제4장 | 에우메테, 페넬로페 | 숨겨진 애정의 힘이 당신의 가슴을 진정시킬 것입니다 | |
3: 제5장 | 텔레마코스, 페넬로페 | 에우메우스는 정말 현명하네! | |
3: 제6장 | 미네르바, 주노 | 불꽃과 분노, 오 위대한 여신, 혐오가 불이네! | |
3: 제7장 | 주노, 조베, 넵투누스, 미네르바, 천상의 합창, 사이렌 합창 | 위대한 조베, 신들의 영혼이여, | |
3: 제8장 | 에리클레아 | 에리클레아, 무엇을 하려 하는가? | |
3: 제9장 | 페넬로페, 에우메테, 텔레마코스 | 모든 우리의 이성은 바람에 실려 가네 | |
3: 제10장 | 율리시스, 페넬로페, 에리클레아 | 오, 내 고생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종착역 | |
오페라의 끝 |
9. 음반 목록
이 오페라의 첫 번째 녹음은 1964년 Vox에서 발매되었으며, 상당 부분이 잘린 버전이었다.[25] 1971년 하르농쿠르와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Concentus Musicus Wien)의 첫 번째 완전 녹음이 나왔다.[26] 1972년 레이먼드 레파드의 글린데본 버전은 로열 앨버트 홀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녹음되었으며, 이듬해 같은 글린데본 출연진이 전체 무대 공연으로 녹음했다. 1980년에 발매된 레파드의 세 번째 글린데본 버전은 현악기와 금관악기를 사용한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해 데니스 아놀드가 ''Gramophone'' 리뷰에서 "원래 단순한 바소 콘티누오 라인으로 남겨진 음악의 너무 많은 부분이 현악기와 금관악기로 완전히 오케스트라화되어, 레치타티보, 아리오소, 아리아 사이의 표현적인 움직임이 모호해졌다"고 비판했다.[27] 아놀드는 하르농쿠르의 1971년 녹음에도 거의 같은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고 말한다.[27]
1992년 르네 야콥스가 콘체르토 보칼레와 함께 한 공연은 펜론에 따르면 "모든 진지한 몬테베르디 연구자들이 자주 다시 찾고 싶어할 음반"이다.[24] 야콥스 버전은 오리지널 5막 형식으로, 몬테베르디 악보에는 없지만 대본에 나오는 일부 합창을 위해 루이지 로시와 줄리오 카치니의 음악을 사용한다. 2002년에는 하르농쿠르가 취리히 오페라와 함께 한 버전이 DVD 형식으로 라이브 녹음되었다. ''Gramophone''의 평론가 조나단 프리먼-애트우드는 보컬 기여의 품질은 칭찬했지만, 하르농쿠르의 "빅 밴드 스코어"와 대담한 악기 편성은 미래의 논쟁의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28]
10. 판본
1922년 빈 필사본 악보 출판 이후 오페라는 특정 공연이나 녹음을 위해 자주 편집되었다. 다음은 2010년까지의 주요 출판본이다.
편집자 | 출판 장소 | 출판 연도 | 비고 |
---|---|---|---|
로베르트 하스 | 빈 | 1922년 | 시리즈 오스트리아의 음악 기념물[3] |
뱅상 댕디 | 파리 | 1926년 | [3] |
잔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 | 빈 | 1930년 |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모든 작품에서[3] |
루이지 달라피콜라 | 밀라노 | 1942년 | [3] |
에른스트 크레네크 | 부퍼탈 | 1959년 | [8] |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 빈 | 1971년 | [8] |
레이먼드 르파드 | 런던 | 1972년 | [3] |
한스 베르너 헨체 | 잘츠부르크 | 1985년 | [3] |
앨런 커티스 | 런던 | 2002년 | [7]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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