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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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자유민주연합은 1995년 김종필을 중심으로 창당된 대한민국의 정당이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약진했고,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50석을 확보하여 제2야당으로 성장했다. 1997년에는 김대중 후보와 연합하여 정권 창출에 기여했으나, 2000년 DJP 연합 결별 이후 2004년 총선에서 참패하며 해체되었다. 주요 사건으로는 DJP 연합, 노무현 대통령 탄핵 참여, 의원 꿔주기 논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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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연합 - [정당]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약칭 | 자민련 |
정당 색상 | 녹색 |
창립일 | 1995년 3월 30일 |
해산일 | 2006년 4월 7일 |
창립자 | 김종필 |
해산 이유 | 자진 해산 |
분당 | 신한국당 |
합당 | 신민당 |
후계 정당 | 국민중심당 |
본부 위치 | 서울, 대한민국 |
정치 | |
이념 | 보수주의 (대한민국) 충청 지역주의 |
정치 성향 | 우익 |
마지막 대표 | 김학원 |
기타 | |
로마자 표기 | Jayuminjuyeonhap |
한자 표기 | 自由民主聯合 |
2. 역사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창당되었으나, 민주계(통일민주당 출신), 민정계(민주정의당 출신), 공화계(신민주공화당 출신) 간의 계파 갈등이 격화되었다.[6] 이 과정에서 김종필은 1992년 5월 민자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김영삼을 지지했고, 김영삼은 1993년 제14대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김영삼의 민주계는 '개혁'과 '세계화'를 내세워 김종필의 후퇴를 요구했고, 김종필은 1995년 1월 19일 당 대표위원직을 사임하고 2월 9일 민자당을 탈당했다.[6] 이후 3월 30일, 김종필을 총재로 하여 자유민주연합이 창당되었다.
자유민주연합은 민주자유당의 계파갈등으로 탈당한 공화계 인사들을 주축으로 창당했으며, 지역적으로 충청도에 지지기반을 두었다.[6]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참패하여 군소정당으로 전락했으며, 2006년 1월 17일 심대평과 신국환 등 탈당파가 국민중심당을 창당했다. 이후 2006년 4월 7일[6], 김학원 등 잔류파만 남고 자진 해산한 뒤 한나라당에 개별 합류하면서 자유민주연합은 소멸되었다.[6]
2. 1. 창당 이전
민주자유당 창당 이전, 공화계 인사들은 민자당 내 계파 갈등으로 인해 탈당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창당되었으나, 이는 제13대 총선 이후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신군부 세력의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나 민주계(통일민주당 출신), 민정계(민주정의당 출신), 공화계의 당내 주도권 다툼은 더욱 심화되었다.[6]노태우는 민정계 후계자를 세우려 했으나, 김영삼을 필두로 한 민주계는 정권 퇴진까지 불사하며 반발했다. 김종필 또한 1992년 5월 민자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김영삼을 지지했다. 결국 김영삼은 공화계의 지지를 얻어 민정계의 저항을 이겨내고 대통령 후보로 선출, 1993년 제14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6]
하지만 김영삼의 민주계는 1994년 말부터 '개혁'과 '세계화'를 명분으로 김종필의 퇴진을 요구했고, 이는 김종필과 김영삼 간의 갈등을 불러왔다. 결국 1995년 1월 19일, 김종필은 당 대표직을 사임하고 2월 9일 민자당을 탈당, 3월 30일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게 된다.[6]
2. 2. 창당 과정 (1995년)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창당되었으나, 민주계(통일민주당 출신), 민정계(민주정의당 출신), 공화계(신민주공화당 출신) 간의 계파 갈등이 격화되었다.[6] 이 과정에서 김종필은 1992년 5월 민자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김영삼을 지지했고, 김영삼은 1993년 제14대 대선에서 승리했다.그러나 김영삼의 민주계는 '개혁'과 '세계화'를 내세워 김종필의 후퇴를 요구했고, 김종필은 1995년 1월 19일 당 대표위원직을 사임하고 2월 9일 민자당을 탈당했다.[6] 이후 3월 30일, 김종필을 총재로 하여 자유민주연합이 창당되었다.
자유민주연합의 창당 과정은 다음과 같다.
날짜 | 사건 |
---|---|
1995년 1월 19일 | 김종필, 민주자유당 대표직 사퇴 |
1995년 2월 9일 | 김종필, 민주자유당 탈당 및 신당 창당 의사 표명 |
1995년 2월 21일 | 자유민주연합 창당준비위원회 발족 |
1995년 3월 30일 | 창당대회, 김종필을 총재로 선출 |
1995년 5월 11일 | 신민당과 통합, 김복동 대표를 수석부총재로 선출[6] |
2. 3. 창당 이후 활동과 해산
민주자유당의 계파갈등으로 탈당한 공화계 인사들을 주축으로 창당했다. 지역적으로 충청도에 지지기반을 두었었다.[6] 2004년 제17대 총선의 참패 이후 군소정당으로 전락했으며, 심대평과 신국환 등 탈당파를 중심으로 2005년 10월부터 '중부권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움직임이 일었고 2006년 1월 17일에 이러한 움직임이 본격화돼 국민중심당 창당에 참여했다.[6] 이후 2006년 4월 7일[6], 김학원 등 잔류파만 남고 자진해산 한 뒤 한나라당에 개별 합류하면서 자유민주연합은 소멸되었다.[6] 본래 당의 재산을 한나라당에 이관시킬 계획이었으나 정당은 기부를 받을 수 없다는 유권해석으로 청산되었다.[6]- 1995년
- * 3월 21일: 민주자유당을 탈당한 김종필과 현역 의원 9명이 창당하였다.
- * 6월 1일: 신민당을 흡수 합당하였다.
- * 6월 27일: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충청남도지사, 대전광역시장, 충청북도지사, 강원도지사 등 4명의 광역자치단체장을 당선시켰다.
- 1996년 4월 12일: 제15대 총선에서 50석을 획득해 제3당의 위치에 올랐다.
- 1997년 12월 18일: 제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와 김종필 후보 단일화를 통해 공동 여당이 되었고 김종필은 국무총리가 되었다.
- 2000년
- * 4월 14일: 제16대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3석이 모자란 17석을 기록해 원내교섭단체에서 제외되었다.
- * 12월 30일: 새천년민주당 소속 의원 4명을 영입하여 교섭단체를 구성하였다. 이는 '의원 꿔주기'라 불렸다.
- 2001년 9월 4일: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안에 한나라당과 함께 동의를 표시해 새천년민주당과의 공조가 파기된다.
- 2004년 4월 16일: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여 통과시킴으로써 국민적 지지를 잃었고, 그 여파로 제17대 총선에서 지역구 4석에 지지율 2.8%에 그쳐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했던 김종필이 낙선해 정계은퇴를 선언함으로써 당이 존폐 위기에 몰렸다.
- 2005년 10월: 탈당파가 발생하였고 탈당파는 2006년 1월에 국민중심당 창당에 참여한다.
- 2006년
- * 1월 17일: 당을 탈당한 심대평 충청남도지사가 신국환과 국민중심당을 창당하여 일부 당원들이 국민중심당에 입당함으로써 당세가 위축되었다. 이때 현역 국회의원 중에서는 김학원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국민중심당에 입당했다.
- * 2월 20일: 잔류파는 한나라당과의 합당을 발표하고 한나라당에 개별 합류 방식으로 흡수되었다.
3. 주요 사건 및 논란
2004년 3월 9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발의되었을 때, 자유민주연합은 처음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3월 11일 대통령의 사과 기자회견이 변명으로 가득 차 있다고 판단하여 탄핵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4] 이로 인해 탄핵소추안은 3월 12일 투표 결과 찬성 193표, 반대 2표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되었으며, 이는 한 달 후 치러진 총선에서 참패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4]
3. 1. DJP 연합과 결별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와 자민련 김종필 후보의 단일화를 통해 공동 여당이 되었고, 김종필은 국무총리가 되었다.[1] 이를 DJP 연합이라고 한다. 1996년 총선 승리 이후, 내각제를 매개로 야권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던 김종필 총재는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에게 재보궐선거 시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당이 후보를 내는 연합공천을 제의했고, 김대중 총재가 이를 수용하여 1996년 9월 노원구청장 재선거부터 연합공천을 실시하였다.[4] 이때부터 1997년 12월 광주 동구 보궐선거까지 국민회의-자민련의 연합공천 후보는 6승 1패의 높은 승률을 기록하여,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병역 비리 의혹과 맞물려 정권 교체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4]그러나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필요한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위기를 맞았다.[1] 새천년민주당 소속 의원 4명을 영입하여 교섭단체를 구성하였으나, 이는 '의원 꿔주기'라는 비판을 받았다.[1]
2001년 9월 4일,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안에 한나라당과 함께 찬성표를 던지면서 새천년민주당과의 공조가 파기되었다.[1] 이로써 DJP 연합은 사실상 붕괴되었다. 2001년 10월 9일, 자민련 전당대회는 DJP 연합 붕괴에도 불구하고 국무총리직에 남아 제명된 이한동 총재를 대신해 김종필 명예총재를 총재로 추대했다.[5]
3. 2. 노무현 대통령 탄핵 참여
2004년 3월 9일에 발의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에 대해 처음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3월 11일에 있었던 대통령의 사과 기자회견이 변명으로 가득 차 있다며 크게 분노하여 탄핵소추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했다.[4] 이로 인해 당초 가결 여부가 불투명했던 탄핵소추안이 3월 12일 투표 결과 찬성 193표, 반대 2표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되었다.[4] 이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한 달 후 치러진 총선에서 참패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4]3. 3. 의원 꿔주기 논란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자유민주연합은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3석이 모자란 17석을 획득하여 원내교섭단체에서 제외되었다.[1] 이때, 김대중 대통령의 공동 여당 구제 방침에 따라 그해 12월, 새천년민주당 소속이었던 유성구 국회의원 송석찬이 '의원 꿔주기'를 주도했다.[1] 송석찬과 함께 장재식, 송영진, 배기선 의원이 자유민주연합으로 당적을 옮겼다.[1]이러한 의원 꿔주기는 민의를 배반하고 정당 정치의 근간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았다.[1] 자유민주연합 내에서도 강창희 의원 등이 반대했지만 제명되었다.[1] 송석찬 의원은 탈당하면서 "연어의 심정으로 민주당을 떠납니다"라는 말을 남겨 화제가 되었다.[1]
4. 역대 지도부 및 전당대회
대수 | 역대 지도부 | 직함 | 임기 | 비고 |
---|---|---|---|---|
1 | 김종필 | 총재 | 1995년 3월 30일 ~ 1997년 6월 23일 | |
2 | 김종필 | 총재 | 1997년 6월 24일 ~ 1997년 11월 13일 | DJP연합 성사 후 사퇴 |
(임시) | 김복동 | 총재권한대행 | 1997년 11월 13일 ~ 1997년 11월 21일 | 수석부총재, 김종필 사퇴로 대행 |
3 | 박태준 | 총재 | 1997년 11월 21일 ~ 2000년 2월 15일 | 국무총리 임명으로 사퇴 |
(임시) | 이한동 | 총재권한대행 | 2000년 1월 11일 ~ 2000년 2월 15일 | 박태준 총리 임명으로 대행 |
4 | 이한동 | 총재 | 2000년 2월 16일 ~ 2001년 9월 7일 | DJP연합 붕괴에도 총리직 유임으로 제명 |
(임시) | 김종호 | 총재권한대행 | 2000년 5월 23일 ~ 2001년 10월 9일 | 이한동 총리 임명으로 대행 |
5 | 김종필 | 총재 | 2001년 10월 9일 ~ 2004년 4월 19일 | 대한민국 제17대 총선 참패로 정계 은퇴 |
(임시) | 이인제 | 총재권한대행 | 2002년 12월 5일 ~ 2004년 4월 20일 | |
(임시) | 조부영 | 비상대책위원장 | 2004년 4월 21일 ~ 2004년 6월 7일 | 대한민국 제17대 총선 참패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
6 | 김학원 | 대표최고위원 | 2004년 6월 8일 ~ 2006년 2월 9일 | |
7 | 김학원 | 대표최고위원 | 2006년 2월 10일 ~ 2006년 4월 7일 | 한나라당에 흡수합당 |
1995년 3월 30일, 자민련 창당대회에서 김종필 전 총리를 총재로 선출하였다.
1995년 5월 11일, 자민련 당무회의에서 신민당과의 통합을 추인하고, 신민당 김복동 대표를 수석부총재로 선출했다.
1997년 11월 21일, 자민련 중앙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박태준 의원을 총재로, 김종필 전 총재를 명예총재로 각각 추대했다.
2000년 2월 16일, 자민련 중앙위원회에서 국무총리로 임명된 박태준 총재를 대신해 이한동 총재권한대행을 총재로 추대했다.
2001년 10월 9일, 자민련 전당대회에서 DJP연합 붕괴에도 불구하고 국무총리직에 남아 제명된 이한동 총재를 대신해 김종필 명예총재를 총재로 추대했다.
2004년 4월 21일, 자민련 당무회의에서 대한민국 제17대 총선 참패로 조부영 부총재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을 의결했다.
2004년 6월 8일, 집단지도체제로 당헌당규를 개정한 자민련은 찬성 1093표, 반대 45표, 무효 10표로 단독 입후보한 김학원 의원을 대표로 선출하였다.
2006년 2월 10일, 자민련 전당대회에서 김학원 대표를 대표로 재선출하였다.
5. 역대 선거 결과
선거 | 지도자 | 지역구 | 비례대표 | 의석수 | 순위 | 상황 | ||||||
---|---|---|---|---|---|---|---|---|---|---|---|---|
득표수 | % | 의석 | ± | 득표수 | % | 의석 | ± | 총 의석 | ± | |||
1996년 | 김종필 | 3,178,474 | 16.17 | 41 | 신규 | 9 | 신규 | 50 | 신규 | 3위 | 여당 연합 | |
2000년 | 1,859,331 | 9.84 | 12 | 29 | 5 | 4 | 17 | 26 | 야당 | |||
2004년 | 569,083 | 2.67 | 4 | 8 | 600,462 | 2.82 | 0 | 5 | 4 | 13 | 5위 | 야당 |
선거 | 지도자 | 광역자치단체장 | 광역의회 | 기초자치단체장 |
---|---|---|---|---|
1995년 | 김종필 | 3 | 94 | 23 |
날짜 | 대수 | 의석 수 | 득표율[4] | ||
---|---|---|---|---|---|
합계 | 지역구 | 비례대표[5] | |||
1996년 4월 11일 | 제15대 총선 | 50 | 41 | 9 | 16.7% |
2000년 4월 13일 | 제16대 총선 | 17 | 12 | 5 | 9.8% |
2004년 4월 15일 | 제17대 총선 | 4 | 4 | 0 | 2.8% |
참조
[1]
서적
Korea
https://books.google[...]
Polity
[2]
서적
Imported democracy: The South Korean experience
https://books.google[...]
Routledge
[3]
서적
Crisis on the Korean Peninsula
https://books.google[...]
Potomac Books
[4]
기타
[5]
기타
[6]
뉴스
동지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난 한나라-자민련, 이제 함께 희망의 대한민국을 만들자!
https://news.naver.c[...]
한나라당
2006-04-07
[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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