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풍 (후한)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이풍은 후한 말기의 인물로, 원술 휘하의 장수였다. 197년 조조의 공격으로 원술이 진군을 침입하자, 장훈, 교유, 양강, 악취와 함께 원술을 대신하여 군을 지휘했으나 조조군에게 패배하여 전사했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여포와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수춘에서 조조 연합군에 맞서 싸우다 붙잡혀 참수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97년 사망 - 진기 (원술 부하)
진기는 영웅기에 기록된 원술 휘하 장수로, 원술이 황제를 칭하려 할 때 반대하다 죽임을 당했으며, 구강태수로 임명되어 손책과의 동맹 관계에 갈등을 빚었고, 여포 공격에 참여했다 패배하기도 했다. - 197년 사망 - 곽사
후한 말 동탁의 부하였던 곽사는 이각 등과 장안을 점거하고 헌제를 옹립하여 권력을 장악했으나, 이각과의 다툼 끝에 조조에게 패하고 부하에게 살해당한 인물이다. - 원술과 주변 인물 - 손견
손견은 후한 말의 군벌이자 오나라의 시조이며 손책과 손권의 아버지로, 황건적의 난 진압 등 공을 세웠고 반동탁 연합군에 참여하여 낙양 함락에 기여했으나, 향양 전투 중 전사했으며, 뛰어난 무력과 리더십으로 인정받는 동시에 과감한 성격으로 비판받기도 하는 인물이다. - 원술과 주변 인물 - 진기 (원술 부하)
진기는 영웅기에 기록된 원술 휘하 장수로, 원술이 황제를 칭하려 할 때 반대하다 죽임을 당했으며, 구강태수로 임명되어 손책과의 동맹 관계에 갈등을 빚었고, 여포 공격에 참여했다 패배하기도 했다. - 전사한 사람 - 정지용
정지용은 충청북도 옥천 출생으로 모더니즘 문학을 선도했으며, 시문학 동인과 구인회 활동을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으나 한국 전쟁 중 행방불명되었다. - 전사한 사람 - 정기원 (1559년)
정기원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1585년 문과 급제 후 임진왜란 때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정유재란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하여 예조판서에 추증되고 충렬사에 배향, 시호는 충의이며 저서로 《현산집》, 《현산실기》가 있다.
이풍 (후한) | |
---|---|
기본 정보 | |
![]() | |
성 | 이(李) |
휘 | 풍(豊) |
생애 | |
출생 | 알 수 없음 |
사망 | 알 수 없음 |
활동 시기 | 후한 말기 |
소속 | 원술 |
관직 | |
직위 | 치중(治中) |
가족 관계 | |
아버지 | 이업(李業) |
기타 | |
관련 인물 | 교유 장훈 낙준 |
2. 생애
이풍의 생애는 정사 《삼국지》에는 비교적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그 행적이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하위 문단을 참고할 수 있다.
2. 1. 정사에서의 기록
197년(건안 2년) 9월(음력), 원술이 진국을 침입하였다. 연주목 조조가 직접 토벌에 나섰고, 원술은 장훈·교유·이풍·양강·악취를 남겨두고 돌아갔다. 이들은 호현(苦縣) 부근에서[5] 조조군에게 크게 패하여 장훈만 가까스로 퇴각하고[6] 이풍은 다른 세 장수와 함께 전사하였다.2. 2.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원술이 여포를 공격할 때 최진사(催進使)[3] 중 한 명으로 등장한다. 원술의 본영까지 육박한 여포에 맞서 창을 들고 싸우지만, 3합이 안 되어 손에 부상을 입고 달아난다.[3][4] 그 후 조조, 여포, 유비, 손책 연합군이 수춘(壽春)으로 쇄도해오자, 이풍은 악취, 양강, 진기와 더불어 10만 명으로 농성한다. 한 달 남짓 버티지만 결국 성이 함락되고 이풍 등은 붙잡혀 참수당한다.[4]3. 평가
정사 기록에는 이풍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그에 대한 평가는 주로 소설 《삼국지연의》의 묘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삼국지연의》에서 이풍은 원술 휘하의 장수로 등장한다. 여포와의 전투에서는 3합 만에 손에 부상을 입고 달아나는 모습으로 그려져, 무력이 특별히 뛰어난 장수로는 보기 어렵다.[1] 그러나 조조, 여포, 유비, 손책 연합군이 수춘(壽春)을 공격했을 때, 이풍은 악취, 양강, 진기와 함께 성을 지키며 한 달 가까이 항전했다. 비록 성이 함락되고 참수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지만, 끝까지 주군을 위해 싸운 모습은 그의 충성심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평가할 수 있다.[1]
참조
[1]
서적
三国志
s:zh:三國志/卷01
[2]
서적
三国志
s:zh:三國志/卷17#于禁
[3]
서적
三国志연의 2
ちくま文庫
[4]
문서
s:zh:三國演義/第017回
[5]
서적
삼국지
[6]
서적
후한서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