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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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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교유는 후한 말 원술 휘하의 장수이다. 원술이 남양군을 잃고 구강군에 거점을 마련했을 때 장훈과 함께 핵심 장수가 되었으며, 여포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포로로 잡혔다가 석방된 후 다시 원술에게 돌아갔다. 이후 조조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군과의 전투에서 하후돈에게 죽는 것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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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유

2. 생애

193년(초평 4년), 원술남양군을 잃고 구강군 일대에 새로운 거점을 마련하면서 교유는 장훈과 함께 원술의 핵심 장수가 되었다.[3] 이들은 젊은 손책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같은 해 3월, 원술이 양주 자사 진온을 살해하고 진유를 추방하여 양주로 거점을 옮기자, 교유는 장훈과 함께 대장군에 임명되었다. 건안 2년(197년) 봄, 원술이 황제를 참칭했을 때도 교유는 이에 따랐다.

2. 1. 여포와의 전투와 배신

197년(건안 2년) 황제를 참칭한 원술서주여포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장훈, 교유, 한섬, 양봉 등에게 수만 명의 대군을 주어 일곱 길에서 밀고 올라가게 했다. 진규는 한섬·양봉과 원술의 관계가 긴밀하지 않은 것을 알아채고 그 둘을 구슬릴 것을 제안하였다. 여포군이 응전하여 장훈군과의 거리가 100보가량 되었을 때 한섬과 양봉도 돌아서서 장훈군을 동시에 타격하였다. 그 탓에 대패하여 살상되거나 에 빠져 죽은 자를 이루 헤아릴 수 없었으며 교유는 사로잡혔다.[4]

같은 해 9월(음력), 원술이 진국을 침입하였다. 연주조조가 직접 응징에 나섰고 원술은 장훈, 이풍, 양강, 악취, 그리고 복귀한 교유를 남겨두고 돌아갔다. 호현(苦縣) 부근에서[5] 참패하여 장훈만 가까스로 퇴각하고[6] 교유는 다른 세 장수와 같이 목숨을 잃었다.

2. 2. 원술에게 복귀와 최후

193년(초평 4년) 원술남양군을 잃고 구강군 일대에 새로운 거점을 마련하자, 교유와 장훈은 원술의 핵심 장수가 되었다.[3] 197년(건안 2년) 황제를 참칭한 원술은 서주여포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장훈, 교유, 한섬, 양봉 등에게 수만 명의 대군을 주어 일곱 길에서 밀고 올라가게 했다. 진규는 한섬·양봉과 원술의 관계가 긴밀하지 않은 것을 알고 그 둘을 구슬릴 것을 제안하였다. 여포군이 응전하여 장훈군과의 거리가 100보가량 되었을 때 한섬과 양봉도 돌아서서 장훈군을 동시에 타격하였다. 그 탓에 대패하여 살상되거나 에 빠져 죽은 자를 이루 헤아릴 수 없었으며 교유는 사로잡혔다.[4]

9월(음력), 원술이 진국을 침입하자 연주조조가 직접 응징에 나섰다. 원술은 장훈과 이풍, 양강, 악취, 그리고 복귀한 교유를 남겨두고 돌아갔다. 호현(苦縣) 부근에서[5] 참패하여 장훈만 가까스로 퇴각하고[6] 교유는 다른 세 장수와 같이 목숨을 잃었다.

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삼국지연의》에서 교유는 상장(上將)의 지위로 일곱 부대 중 제2로군을 이끌고 소패(小沛)로 향한다. 조조, 여포, 유비, 손책 연합군이 수춘(壽春)으로 쳐들어오자, 교유는 5만 명을 거느리고 밖에서 조조군을 맞이한다. 그러나 하후돈과의 일기토에서 3합도 안 되어 찔려 죽는다.[1]

교유는 서주의 여포를 토벌할 때 제2군 상장에 임명된다. 그러나 진규의 계략에 빠져 아군의 배신을 당해 전군이 붕괴되고, 자신도 여포 휘하의 고순에게 패한다. 이후 조조가 수춘으로 쳐들어오자 성 밖으로 나가 맞이하여 싸우지만, 하후돈에게 일기토에서 죽임을 당한다.[1]

참조

[1] 서적 後漢書
[2] 서적 삼국지
[3] 서적 삼국지
[4] 서적 구주춘추
[5] 서적 삼국지
[6] 서적 후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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