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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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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자원병은 자발적인 의사로 군대에 참여하는 병사를 의미하며, 역사적으로 다양한 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미국에서는 주 방위군이 자원병으로 불렸으며, 러시아 내전,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 대전 등에서도 자원병의 참전이 두드러졌다. 특히 스페인 내전에서는 국제여단이, 2차 세계 대전에서는 각국 출신의 자원병들이 특정 진영에 참여했다. 또한, 동남아시아 독립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서도 자원병이 활동했다. 명목상의 자원병 형태로 정규군을 파병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현대에는 시리아 내전 등에서 외국인 자원병의 귀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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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르시오는 16세기에서 18세기 초까지 스페인 군대의 핵심 보병 부대로, 파이크병, 총병 등으로 구성되어 여러 전투에서 활약했으나 군사 개혁으로 인해 1704년 연대와 대대 체제로 개편되면서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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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는 국가가 국방, 안보, 정책 수행을 위해 유지하는 정규 무장 조직으로, 육해공군을 기본으로 해병대, 특수부대 등이 추가될 수 있으며, 전쟁 외 인도적 지원, 재난 구호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징병제나 모병제로 인원을 충원하여 군사 훈련, 무기 개발 등의 기능을 수행하며 문민통제 원칙하에 운영된다.
자원병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영어 명칭Military volunteer
정의자유 의지로 군 복무에 자원한 사람
배경
동기애국심
개인적인 이상
경제적 필요
사회적 의무
모험심
역사적 사례미국 남북 전쟁 중의 양측 군대
스페인 내전에서의 국제 여단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다양한 단체
특징
자발성의무 복무와 달리 자발적으로 군 복무를 선택함
다양성다양한 배경과 동기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됨
훈련 수준기본적인 군사 훈련부터 특수 훈련까지 다양함
복무 기간단기 복무부터 장기 복무까지 다양함
위험 감수전투 지역에서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경우가 많음
역할전투 요원
의료 지원
기술 지원
행정 지원
법적 측면
국제법자원병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국제법적 규정
국내법국가별 자원병 관련 법률 및 규정
논란
용병과의 구분금전적 보상이 주된 동기인 용병과 구별되는 개념
윤리적 문제자원병 참여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논쟁
현대적 의미
특수 부대현대 군대에서 특수 부대 구성에 중요한 역할
평화 유지 활동국제 평화 유지 활동 및 인도적 지원 활동에 참여
재난 구호 활동자연재해 및 재난 구호 활동에 투입

2. 역사

헤이그 육전 조약 등 전시 국제법에 따라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교전자 자격을 인정받아 포로가 된 경우 등에 정규병과 동등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3]

정규군 소속 자원병이나 정부 개입으로 조직되는 보조적인 군사 조직인 민병,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는 용병과는 구별되지만, 이들도 종종 사기 고무 목적으로 "의용병"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다.[3]

다른 나라 분쟁에 공개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국가가 정규군 일부를 "의용병"이라고 칭하여 파병하기도 하며, 의용병만으로 또는 의용병 중심으로 조직되는 군대·부대는 "'''의용군'''"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명목과 실태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3]

러시아는 ‘의용군’을 중시하는 풍조가 있어,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발생한 러시아 내전에 많은 군인과 시민이 ‘의용병’으로 참가했다.[3]

스페인 내전(1936년~1939년)에서는 인민전선군과 반란군 양측에 많은 자원병이 참전했다. [3]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여러 국가에서 자원병 부대가 조직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당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베트남에서 발생한 독립 전쟁에는 잔류 일본군과 인도인이 독립 운동 측에 자원병으로 참여했다.[3]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1979년~1989년) 당시 많은 무슬림 자원병들이 무자헤딘의 일원으로 이슬람 세력에 참여했는데, 20개국 이상에서 약 20만 명이 참여했다고도 한다.

2. 1. 미국

미국에서 주 방위군으로 창설된 부대는 징병으로 모집된 경우에도 항상 "자원병"으로 불렸다. 미군 자원병과 정규군 모두 "미군"으로 지칭되었다. 자원 부대 장교의 계급은 정규군으로서의 계급(있는 경우)과 별개였으며, 일반적으로 더 높았다.[1] 전쟁이 끝나고 자원군이 해산될 때, 두 가지 종류의 임관을 가진 장교들은 "정규군" 계급으로 돌아갔다. 예를 들어,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는 미국 남북 전쟁 동안 자원병 소장이 되었지만, 전쟁이 끝나자 대위로 돌아갔다.(그는 나중에 중령으로 진급했다.)[1] 자원병 계급은 계급과 같지 않다.[1]

2. 2. 러시아 내전

러시아에는 원래 ‘의용군’을 중시하는 풍조가 있었다. 그 때문에 1917년러시아 혁명 이후 발생한 러시아 내전과 관련된 전쟁·분쟁에는 많은 군인과 시민이 ‘의용병’으로 군대에 참가했다.[3]

‘의용병’ 참가가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백군이며, 백군 조직 중 최대 규모는 바로 의용군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반대편 적군도 사실상 의용군적인 조직이었다.[3]

독립한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은 군대를 보유했지만 정규군은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고, 우크라이나 코사크, 시민, 구 러시아 제국 군인들이 의용군을 조직하여 공화국 유지를 위해 기여했다. 특히 의용 키예프 대학교 학생 연대가 침공한 적군과 싸워 전멸한 크루티 전투는 유명하며,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후 현지에서 대대적으로 추모 행사가 개최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공식적으로 참석하고 있다.[3]

이 시기 의용군 조직에 참가한 유명 인사로는 백군에 참가하여 후에 『백위군』을 집필한 미하일 불가코프와 적군에 참가하여 후에 『기병대』를 집필한 이사크 바벨이 알려져 있다.[3]

2. 3. 스페인 내전

스페인 내전(1936년~1939년)에서는 인민전선군과 반란군 양측에 많은 자원병이 참전했다. 특히 인민전선 측의 국제여단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앙드레 말로(『희망』), 조지 오웰(『1984』, 『카탈루냐 찬가』) 등 유명 작가들이 참여하여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남겼다.[3]

아일랜드 정부는 스페인 내전 개입을 신중하게 피했지만, 민간에서는 양측 모두에 협력자가 나타났다. 프랑코 측에는 "그린셔츠"라고 불리는 아일랜드 파시즘 단체가 참가했고, 인민전선 측에는 마이클 올리어던 등 전 아일랜드 공화군의 좌파 활동가가 참가했다.[3]

그 외 유명한 것으로 콘도르 군단이 있지만, 실제로는 독일 정규군 부대였으며 명목상의 의용병·의용군이었다. 포르투갈은 프랑코 측에, 멕시코는 인민전선 측에 "의용병"을 보냈다.[3]

2. 4. 제2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여러 국가에서 자원병 부대가 조직되었다.

헤이그 육전 조약 등의 전시 국제법에 따라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교전자의 자격을 인정받아 포로가 된 경우 등에 정규병과 동등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3]

정규군에 소속된 자원병이나 정부의 개입으로 조직되는 보조적인 군사 조직인 민병,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는 용병과는 구별되지만, 이들도 종종 사기를 고무하는 목적으로 "의용병"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다.[3]

다른 나라의 분쟁에 공개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국가가 정규군 일부를 "의용병"이라고 칭하여 파병하는 경우도 있으며, 의용병만으로 또는 의용병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군대·부대는 "의용군"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명목과 실태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3]

핀란드와 소비에트 연방 사이에서 발생한 겨울전쟁(1939년)에는 핀란드 측에 많은 자원병이 참가했다.[4] 특히 스웨덴은 정규군 파병 요청은 거절했지만, 많은 자원병을 파견했고, 그중에는 명목상 자원병이었던 정규군 장병도 포함되어 있었다.[4]

독일과 소비에트 연방 사이에 발생한 독소전쟁에서는 스페인의 “청기사단”과 비시 프랑스의 “Légion des volontaires français contre le bolchevisme|반볼셰비즘 프랑스 자원군단프랑스어”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반공주의 젊은이들이 독일 진영에 참여하여 공산주의와 싸웠다.[5] 많은 자원병들은 나치 독일의 무장친위대로서 싸웠다.[5]

2. 5. 동남아시아 독립 전쟁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당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베트남에서 발생한 독립 전쟁에는 잔류 일본군과 인도인이 독립 운동 측에 자원병으로 참여했다.[3] 당시 일본군과 영국-인도군의 방침은 원칙적으로 중립을 지키는 것이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종주국 측에 서서 전투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3] 따라서 독립 운동 조직에 대한 무기 제공 등도 금지되었지만, 일부 일본군과 인도인들은 무기를 소지한 채 탈영하여 자원병이 되었다.[3]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에 참여한 잔류 일본군은 3000명, 인도인은 600명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3]

2. 6. 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1979년~1989년) 당시 많은 무슬림 자원병들이 무자헤딘의 일원으로 이슬람 세력에 참여했다. 20개국 이상에서 약 20만 명이 참여했다고도 한다.

2. 7. 기타 분쟁

헤이그 육전 조약 등 전시 국제법에 따르면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교전자포로가 되었을 때 정규군과 동등한 보호를 받을 자격이 인정된다. 정규군 소속 자원병 외에도 다른 나라의 분쟁에 자원하여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 다음은 그 예시이다.

  • 보스니아 분쟁: 무슬림 자원병들이 보스니아인 진영에 참여했다.
  • 크로아티아 전쟁: 크로아티아 측에 많은 수의 "민간인" 독일인들이 군사적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미얀마 카렌족 투쟁.
  • 미얀마 내전 (샨 주, 와 주, 카친 주): 1960년대에 많은 수의 홍위병이 버마 공산당 측으로 유입되었다. 일부 홍위병은 미얀마군에 붙잡혀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크라이나가 영토방위군 외국인 군단을 모집했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 제208회 국회에서 일본인 의용병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견해를 묻는 질의응답이 있었다.[1][2]

3. 명목상의 자원병

역사적으로 여러 국가들이 정치적, 외교적 목적을 위해 정규군을 자원병으로 위장하여 파병하는 경우가 있었다. 다른 나라의 분쟁에 공개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국가가 정규군 일부를 "의용병"이라고 칭하여 파병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의용병만으로, 또는 의용병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군대·부대는 "의용군"이라고 불리는데, 이 경우에도 명목과 실태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콘돌 군단: 스페인 내전 당시 독일이 파병하였다. 포르투갈도 안토니오 살라자르 정권 시절 소규모 "의용병"(실제로는 민병) 부대를 스페인에 파병하였다.
  • 플라잉 타이거스: 중일전쟁 당시 미국이 파병하였다. 정규군은 아니었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 청색 사단: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스페인추축국을 지원하기 위해 파병하였다. 정규군 부대가 아니었으며, 독일군 지휘하에 사단으로 편성되었다.
  • 베트남 전쟁 당시, 존 F. 케네디 정권 시절 "군사 고문단"이라는 명목으로 미군 정규군 1만 명 규모가 참전했다. 이후 필리핀은 정규군이 아닌, "시민 부대"라는 명칭으로 의무병, 경비병, 소수의 포병을 파병하였다.
  • 중국 인민지원군: 한국 전쟁 당시 중화인민공화국북한에 파병한 부대로, 지원군(의용병)은 중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피하기 위한 명목에 불과했으며, 실제로는 중국 인민해방군 정규 부대였다.
  • 국민돌격대: 1944년 9월 25일 총통 명령에 따라 본토 방위를 위해 설치된 16세부터 60세까지의 독일 국민으로 구성된 민간 군사 조직이다.
  • 국민의용전투대: 1945년 6월 의용병역법에 의해 설립된 일본의 민병 조직이다. 소집이 강제되었고 군법이 적용 또는 준용되었으므로 의용병이 아니다.
  • 오키나와 방위대: 오키나와 전투에서 조직된 방위 부대이다. 처음에는 자발적인 조직이었지만, 1944년 10월 이후에는 17세부터 45세까지의 남성 주민 대다수가 소집되었다.

4. 현대의 자원병

헤이그 육전 조약 등 전시 국제법에 따르면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자원병은 교전자 자격을 인정받아 포로가 되었을 때 정규군과 동등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정규군 소속 자원병은 정부 개입으로 조직되는 민병이나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는 용병과는 구별되지만, 사기 고무를 목적으로 이들을 "의용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른 나라의 분쟁에 공개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국가가 정규군 일부를 "의용병"으로 칭하여 파병하는 경우도 있다. 의용병만으로, 또는 의용병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군대·부대는 "의용군"이라고 불리는데, 이 역시 명목과 실태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4. 1. 자원병의 귀환 문제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되면서 ISIL과 이에 맞서는 쿠르드 인민방위군 양측에 많은 외국인 용병이 참가했다.[3] ISIL 세력이 약해지면서 이들 외국인 용병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이 세계 각지에서 테러를 일으키면서, 각국은 시리아이라크에서 돌아온 이들(귀환 FTF)을 위험 인물로 여기고 받아들이기를 꺼리기 시작했다.[4]

프랑스는 자국 출신 전투원과 그 가족들이 이라크나 시리아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며 이들의 귀환을 거부했다.[5] 미국은 미국 여권으로 출국해 ISIL에 가담한 여성에 대해 미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입국을 거부하기도 했다.[6]

쿠르드족에 의해 구금된 외국인 전투원도 많으며, 2019년 기준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출신 5,000명 이상이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수용소에 갇혀 있다.[7]

참조

[1] 간행물 日本人義勇兵に関する質問主意書 https://www.shugiin.[...] 衆議院 2022-04-22
[2] 간행물 衆議院議員松原仁君提出日本人義勇兵に関する質問に対する答弁書 https://www.shugiin.[...] 衆議院 2022-05-10
[3] 웹사이트 なぜ、若者はイスラム国を目指すのか https://ironna.jp/ar[...] iRONNA 2015-00-00
[4] 웹사이트 「イラク・レバントのイスラム国」(ISIL)の退潮と今後の展望 https://www.moj.go.j[...] 公安調査庁
[5] 웹사이트 IS戦闘員の家族だった仏人女性ら、収容キャンプからISの元に連行か https://www.afpbb.co[...] AFP
[6] 웹사이트 米出身のIS参加女性「米市民でない」 米連邦地裁、トランプ政権を支持 https://www.afpbb.co[...] AFP 2019-11-15
[7] 웹사이트 過密と悪臭 「IS戦闘員」収容施設の内側 https://www.afpbb.co[...] AFP 2019-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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