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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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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총은 화승식 발사 방식을 사용하는 초기 형태의 총기이다. 동남아시아에서는 15세기부터 사용되었으며, 포르투갈을 통해 전래된 아르케부스의 영향을 받았다. 조선은 임진왜란을 거치며 일본 조총을 모방하여 자체적인 조총을 개발했고, 이후 청나라의 요청으로 조총 부대를 파병하기도 했다. 조총은 기술 발전을 거쳐 부싯돌식, 공이식 화승총, 소총 등으로 발전했으며, 초기에는 성능이 조잡했지만 개량을 통해 사거리와 위력이 향상되었다. 조총이라는 명칭은 하늘을 나는 새를 쏘아 맞힐 수 있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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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뇌는 활을 가로로 얹어 활시위를 고정하는 장치와 방아쇠를 갖춘 활의 일종으로, 활시위를 당긴 상태 유지가 용이하고 훈련 없이도 사용 가능하여 군사적, 사냥, 스포츠, 특수 목적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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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
이스팅가르
역사
종류화승총
매치락
사용 국가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브루나이
특징
유형해양 동남아시아 화승총
발사 방식매치락
참고 문헌Wan Mohd Dasuki Wan Hasbullah (2013년 9월). "Teknologi Istinggar Beberapa Ciri Fizikal dalam Aplikasi Teknikalnya". International Journal of the Malay World and Civilisation (IMAN). 1: 51–59
조총
역사
종류화승총
매치락
사용 국가한국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특징
발사 방식매치락
재료나무, 금속
작동 방식화승을 점화하여 화약을 폭발시켜 탄환 발사
관련 정보
탄환납탄
화약흑색 화약
관련 기술화약, 야금, 기계 공학

2. 역사

화기의 전신인 장총(베딜 툼박, bedil tombak)은 1413년 자바에서 사용된 기록이 있다.[12][13] 15세기 중반 이후 서아시아 이슬람 국가, 아마도 아랍인들에 의해 "진정한" 화기 제조 기술이 전래되었다. 정확한 도입 시기는 알 수 없지만, 1460년 이전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4] 포르투갈이 동남아시아에 도착하기 전, 말레이시아인들은 이미 초기 화기인 자바 아르케뷰스를 소유하고 있었다.[15] 이 화기는 매우 긴 총열(최대 2.2m 길이)을 가졌으며, 1511년 포르투갈의 말라카 정복 당시 배의 선체를 관통할 정도로 강력했지만,[16][14] 격발 장치와 총열은 매우 조악했다.[15][17]

포르투갈은 고아에서 독자적으로 화승총을 생산했다. 1513년부터 독일-보헤미아의 총 제조 전통이 터키의 총 제조 전통과 결합되어,[18] 인도-포르투갈식 화승총 전통이 만들어졌다. 인도의 장인들은 조준 시 어깨가 아닌 볼에 대는 매우 짧은, 거의 권총과 같은 개머리판을 도입하고, 구경을 줄여 총을 가볍고 균형 있게 만들었다. 이는 배와 강에서 전투가 잦았던 포르투갈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18][19]

알폰소 드 알브케르케는 말라카의 주철공들을 독일 주철공들과 동등하게 평가했지만, 민족성은 언급하지 않았다.[20][21][22] 두아르테 바르보사는 말라카의 아르케뷰스 제작자가 자바인이라고 밝혔다.[23] 자바인들은 말라카에서 자체적으로 대포도 제조했다.[24] 앤서니 레이드는 1511년 이전 말라카와 17세기 파타니에서 자바인들이 많은 생산 활동을 담당했다고 주장했다.[23]

완 모드 다수키 완 하스불라는 1511년 함락 이전 말라카의 화약 무기 존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25]


  • 말레이 국가에서 총, 대포, 화약이 제조되었다는 증거는 없다.
  • 말레이 출처에서조차 포르투갈의 공격 이전에 말라카 술탄국이 총을 사용했다는 증거는 없다.
  • 포르투갈이 보고한 대부분의 대포를 바탕으로, 말레이인들은 소형 포병을 선호했다.


인도-포르투갈식 총에는 두 가지 격발 장치가 사용되었다. 하나는 루시타니아 총 프로토타입의 단일 잎판 메인스프링으로, 실론, 말레이 반도, 수마트라, 베트남에서 발견되었고, 다른 하나는 V자형 메인스프링으로, 자바, 발리, 중국, 일본, 한국에서 발견되었다.[18][26] 이스팅가르의 격발 장치는 일반적으로 황동으로 만들어졌다.[27] 말레이인들은 화승총 아르케뷰스 총열에 대나무 덮개를 사용하고 라탄으로 묶어 습한 날씨에 총열이 젖지 않도록 했다.[27][28] 이스팅가르는 일본 총보다 긴데, 램로드 홈이 없는 것은 벽에 기대거나 렐라, 렌타카처럼 배 난간에서 사용했음을 나타낸다.[29] 말레이인들은 총알을 총열에 밀어 넣는 작은 나무망치도 만들었다.[27]

미낭카바우족은 내륙 수마트라의 화약 무기 제조로 유명하다. 주앙 드 바로스의 기록(1496-1570)에 따르면, 유럽인 도착 전 수마트라인들은 화기를 사용하지 않았다.[22] 그들은 용광로에서 철과 강철을 생산했지만, 19세기에는 유럽인들에게 더 의존하게 되었다.[30] 미낭카바우의 화승총 아르케뷰스는 "이스텐가라 메낭카보웨"(이스팅가르 미낭카바우, 사팅가)라고 불렸다.[31][5][32] 생산량은 지역 수요를 충족했고, 아체, 말라카, 시아크 술탄국 등에 화기를 수출했다.[30][33] 총열은 평평한 철 막대를 원형 막대 주위에 나선형으로 감고 두들겨 만들었으며, 천공 기술은 아마도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30] 화승총이 구식이 된 19세기까지도 이러한 제조는 계속되었다.[2][33] "일무 베딜"(화기 지식)은 이스팅가르에 대한 논문이다. 미낭카바우는 "테라쿨"(드래군 권총)도 생산했다.[5] 바탁족은 구리 격발 장치가 달린 화승총을 사용했으며, 마르스덴은 그들을 명사수로 여겼지만, 바탁의 총은 미낭카바우 상인들이 공급했다.[30]

1528년부터 포르투갈과 우호 관계였던 고와 왕국의 마카사르족[34]은 포르투갈 지원으로 군사력을 강화했다. 1600년대 초 이슬람으로 개종한 그들은 비신자 이웃 부기스족에 대한 성전(지하드)를 수행했다.[35] 마카사르인들은 16세기 후반이나 17세기 초 포르투갈 에스핑가르다에서 유래한 머스켓을 제조했을 것이다. 18세기 유럽인들은 부기스 이웃이 생산한 직선형 총신과 정교한 상감 세공이 특징인 총을 칭찬했다.[35] 부기스와 마카사르인 병사들은 와주 란테(사슬 갑옷)와 자체 제작 머스켓을 착용했다.[35] 1603-1606년 이베리아 연합군은 테르나테를 두 차례 공격했고, "모로스"(무어인, 무슬림)가 머스켓과 아르케뷰스를 사용했다고 보고했다.[36] 니콜라스 저베이스는 마카사르를 "동인도에서 말을 타고, 활을 쏘고, 화승총을 쏘고, 대포를 조준하는 데 가장 능숙한 사람들"이라고 언급했다.[37]

이스팅가르는 필리핀 군도 무슬림 통제 지역으로 퍼져 "아스팅갈"로 알려졌다. 1613년 산 부에나벤투라 타갈로그 사전은 "아스팅갈"을 "보르네오에서 온, 옛날 전쟁에서 사용하던 아르케뷰스"로 정의한다. 이는 북 루손에서 처음 언급된 것으로 보인다.[38] 스페인인들은 민다나오와 달리 루손에서 아스팅갈을 마주친 적이 없다.[39] 1609년 스페인인들은 잠발레스 원주민들이 스페인 무기를 본 후 아르케뷰스와 머스켓을 능숙하게 다룬다고 보고했다.[36]

마자파히트 힌두교의 잔재인 발리와 롬복의 힌두교 주민들은[40] 화승총 제조로 유명하다. 1800년대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는 그들이 제조한 약 1.83m 길이의 총 두 정을 보았는데, 나무 개머리판은 잘 만들어졌고 총열 앞쪽 끝까지 확장되었으며, 총열은 비틀리고 마감되었고 장식이 있었다.[19] 긴 총열을 만들기 위해 원주민들은 먼저 작게 천공한 다음 약 45.72cm 길이의 총열 조각을 직선 철봉에 용접하고, 점차 크기가 커지는 천공기로 3일 만에 가공했다.[41]

화문석 기전 화기는 현지 대장장이가 복잡한 부품을 생산할 수 없어 누산타라 군도 주민들은 서구 열강에 의존했다.[42][19][43] 이 화기는 네덜란드어 snappaan에서 유래한 '세나판', '세나팡'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알려졌다.[14] 누산타라 총 제조 지역에서는 총열과 나무 부분은 현지에서 제작했지만, 기전은 유럽 상인들로부터 수입했다.[43][5][19] 자바인들은 현대화에 가장 먼저 나섰다. VOC가 1680년대 화승총을 화문석으로 교체한 후, 자바인들은 1690년대에 이미 이를 요청했고, 1700년대 초 자바 병기고에 화문석 '세나판'이 등장했다.[17]

2. 1. 포르투갈로부터의 전래와 동남아시아의 발전

말레이 조총의 격발장치 및 손잡이 부위.


수마트라식 조총 격발장치.


중부 수마트라 출신으로 추정되는 길이 151cm의 사팅가르


일본 아르케뷰스()와 발리 이스팅가르() 길이 비교


인도네시아산 총의 화승총 메커니즘 상세 사진(아마도 발리산). 자바어로 새겨진 글씨, 총열의 상감된 금은 중국식 키 패턴, 남인도식 은도금 마운트를 가지고 있음. 격발 장치는 말레이시아 또는 버마 전통의 기괴한 괴물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음


서양의 아르카부스가 전래되기 전에도, 동양에서는 중국으로부터 비롯된 핸드캐논류 무기들이 각지에서 사용되었다. 인도네시아의 베딜톰박,[44][45] 조선의 총통 등이 그 사례였다. 그러나 “화포”가 아닌 “총기”로서의 진정한 개인화기는 15세기에야 외부로부터 전래되었다. 최초의 전래는 서아시아의 이슬람 세력, 특히 아랍인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늦어도 1460년 이전에 동남아시아는 중국보다 먼저 개인화기의 개념을 받아들였다.[46] 그래서 포르투갈이 남아시아에 진출하기 전부터 동남아시아인들은 소위 조와총이라고 불리는 개인화기를 이미 가지고 있었다.[47] 조와총은 총열이 아주 길었고(최대 2.2m에 달함), 1511년 포르투갈의 말라카 정복 때 말레이인들은 이 총을 들고 맞서 싸웠다.[48][46] 그러나 포르투갈 기술이 전래되기 전의 조와총은 격발장치가 매우 조잡했다.[47][49]

포르투갈은 인도 고아를 정복하고 거기서 자체적으로 화승식 개인화기를 제조했다. 1513년부터 고아에서 독일-체코식 총기제조 전통이 튀르크식 총기제조 전통과 융합되어,[50] 인도-포르투갈식 화승총 전통이 만들어졌다. 이때 탄생한 조총의 중요한 특징은 개머리판의 부재다. 인도인 직공들은 아르카부스의 개머리판을 극단적으로 축소시켜 거의 권총 손잡이처럼 만들었다. 이 때문에 조총은 어깨 견착이 불가능하고 조준할 때 뺨에 손잡이를 갖다 대야 한다. 또한 구경도 작아지고 무게도 가볍게 만들었다. 당시 인도의 포르투갈인들이 주로 배를 타고 식민지 정복에 나서던 상황에서 위력보다 선상전투에서의 휴대성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이런 설계가 탄생했던 것이다.[50][51]

조총의 격발장치 제조방식은 용수철을 기준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포르투갈 루시타니아 유역의 총기에서 비롯된, 한 장짜리 판형 용수철을 그냥 넣어 사용하는 방식으로, 실론・말레이반도수마트라섬베트남에서 사용되었다. 둘째는 V자 모양으로 접은 용수철(일본에서는 족집게 모양이라고 모발기금(毛拔き金)이라고 불림)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자와섬발리섬중국일본조선에서 사용된 방식이다.[50][52] 조총의 격발장치는 대개 황동으로 만들었다.[53]

알폰소 드 알브케르케는 말라카의 주철공들을 독일의 주철공들과 같은 수준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말라카 주철공의 민족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20][21][22] 두아르테 바르보사는 말라카의 아르케뷰스 제작자는 자바인이라고 밝혔다.[23] 자바인들은 말라카에서 자체적으로 대포도 제조했다.[24] 앤서니 레이드는 1511년 이전 말라카와 17세기 파타니에서 자바인들이 많은 생산 활동을 담당했다고 주장했다.[23]

완 모드 다수키 완 하스불라는 1511년 함락 이전 말라카의 화약 무기 존재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설명했다.[25]

# 말레이 국가에서 총, 대포, 화약이 제조되었다는 증거는 없다.

# 말레이 출처에서조차 포르투갈의 공격 이전에 말라카 술탄국이 총을 사용했다는 증거는 없다.

# 포르투갈이 보고한 대부분의 대포를 바탕으로, 말레이인들은 소형 포병을 선호했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의 와양 베베르에 묘사된 이스팅가르를 든 한 남자


말레이인들은 화승총 아르케뷰스 총열에 대나무 덮개를 사용하고 라탄으로 묶어 습한 날씨에 총열이 젖지 않도록 했다.[27][28] 이스팅가르는 일반적으로 일본 총보다 길다. 램로드를 위한 홈이 없다는 것은 벽에 기대어 사용하거나 렐라 또는 렌타카처럼 배의 난간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경우 램로드에는 수납 공간이 필요하지 않았다.[29] 말레이인들은 또한 총알을 총열에 밀어 넣는 작은 나무망치를 만들었다.[27]

미낭카바우족은 내륙 수마트라의 화약 기반 무기 제조로 유명하다. 주앙 드 바로스(1496-1570)의 당시 기록에 따르면,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전에 수마트라인들은 화기를 사용하지 않았다.[22] 그들의 용광로에서 철과 강철이 생산되었지만, 19세기가 되면 유럽인들에게 더 의존하게 되었다.[30] 미낭카바우의 화승총 아르케뷰스는 "이스텐가라 메낭카보웨"(또는 이스팅가르 미낭카바우, 또는 간단히 사팅가)라고 불렸다.[31][5][32] 생산량은 지역 수요를 충족하기에 충분했고, 미낭카바우는 아체, 말라카, 시아크 술탄국과 같은 다른 지역으로 화기를 수출하기도 했다.[30][33] 총열은 비례적인 크기의 평평한 철 막대를 원형 막대 주위에 나선형으로 감아서 만들고, 부품이 합쳐질 때까지 두들겨서 만들었으며, 천공 기술은 아마도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30] 이러한 제조는 화승총이 이미 구식이 된 19세기까지도 계속되었다.[2][33] "일무 베딜"(화기 지식을 의미)이라는 원고는 이러한 유형의 이스팅가르에 대한 논문이다. 미낭카바우는 "테라쿨"(드래군 권총)과 같은 다른 화기도 생산했다.[5] 바탁족은 구리로 만든 격발 장치가 달린 화승총을 사용했으며, 마르스덴에 의해 명사수로 여겨졌다. 그러나 바탁의 총은 미낭카바우 상인들이 공급했다.[30]

1528년부터 포르투갈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고와 왕국의 마카사르족[34]은 군사력 강화에 있어 포르투갈의 지원으로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 1600년대 초 이슬람으로 개종한 그들은 비신자 이웃인 부기스족에 대한 성전(지하드)를 수행했다.[35] 마카사르인들은 아마도 16세기 후반이나 17세기 초에 포르투갈의 에스핑가르다에서 유래한 머스켓을 이미 제조하고 있었다. 18세기가 되면 유럽인들은 직선형 총신과 정교한 상감 세공이 특징인 부기스 이웃이 생산한 총을 칭찬했다.[35] 수년간의 전쟁 동안, 부기스와 마카사르인 병사들은 와주 란테(사슬 갑옷)와 직접 제작한 머스켓을 착용했다.[35] 1603년에서 1606년 사이에 이베리아 연합군은 테르나테를 두 차례 공격했고, "모로스"(즉, 무어인 또는 무슬림)가 머스켓과 아르케뷰스를 사용했다고 보고했다.[36] 니콜라스 저베이스는 마카사르에 대해 "동인도에는 말을 타는 것, 활을 당기는 것, 화승총(머스켓)을 발사하는 것, 대포를 조준하는 것에 더 능숙한 사람들이 없다(마카사르인들보다)"라고 언급했다.[37]

결국 이스팅가르는 필리핀 군도의 무슬림 통제 지역으로 퍼져 "아스팅갈"로 알려지게 되었다. 1613년 산 부에나벤투라 타갈로그 사전은 "아스팅갈"을 "그들이 옛날 전쟁에서 사용하던 종류의 아르케뷰스로, 보르네오에서 온 것"으로 정의한다. 이는 북 루손에서 처음 언급된 것으로 보인다.[38]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인들은 민다나오에서와 같이 루손에서의 조우에서 아스팅갈을 마주친 적이 없다.[39] 1609년 스페인인들은 잠발레스에서 많은 원주민들이 스페인인들이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본 이후로 아르케뷰스와 머스켓을 매우 능숙하게 다룬다고 보고했다.[36]

마자파히트 힌두교의 잔재인 발리와 롬복의 힌두교 주민들은[40] 화승총 제조로 유명하다. 1800년대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는 그들이 제조한 두 정의 총을 보았는데, 약 1.83m 길이에 비례적으로 큰 구경을 가지고 있었다. 나무 개머리판은 잘 만들어졌고 총열의 앞쪽 끝까지 확장되었다. 총열은 비틀리고 마감되었으며 장식이 있었다.[19] 긴 총열을 만들기 위해 원주민들은 먼저 작게 천공한 다음 직선 철봉에 용접하는 약 45.72cm 길이의 총열 조각을 사용한다. 전체 총열은 점차 크기가 커지는 천공기를 사용하여 가공되며, 3일 만에 천공이 완료된다.[41]

화문석 기전을 사용하는 화기의 경우, 누산타라 군도 주민들은 서구 열강에 의존했는데, 현지 대장장이가 그러한 복잡한 부품을 생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42][19][43] 이러한 화문석 화기는 완전히 다른 무기이며, 네덜란드어 단어 snappaan에서 유래한 '세나판' 또는 '세나팡'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14] 누산타라의 총 제조 지역에서는 이러한 '세나판'을 만들 수 있었지만, 총열과 나무 부분은 현지에서 제작되었지만, 기전은 유럽 상인들로부터 수입되었다.[43][5][19] 자바인들은 현대화에 가장 먼저 나섰다. VOC가 1680년대에 화승총을 화문석으로 교체하기 시작한 후, 자바인들은 이미 1690년대에 이를 요청했다. 화문석 '세나판'은 1700년대 초 자바 병기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17]

2. 2. 일본으로부터의 전래와 임진왜란

선조실록》(권 39)에 따르면, 선조는 일본군이 지상 전투에서 연승한 이유가 화기(火器), 즉 조총 때문이며, 조선군의 약점은 화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점이라고 보았다.[54]

조선군의 승자총통과 일본군의 조총 대결로 유명한 전투는 1593년 행주대첩이다. 전라도 관찰사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당시 일본군 총대장 우키타 히데이에는 승자총통에 가슴을 맞고 거의 죽을 뻔했지만 간신히 도망쳐서 살았다.[54]

다음은 일본으로부터 조총이 전래되고 임진왜란이 발발하기까지의 주요 사건이다.

연도사건
1575년나가시노 전투에서 오다 노부나가의 3천 명 규모 조총부대가 일본 최강 기마부대에 승리함.
1590년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센고쿠 시대를 통일함. 황윤길 일행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쓰시마국주로부터 조총 몇 자루를 받아옴. (일본 조총 최초 입수)
1592년임진왜란 발발
1593년 2월전리품인 조총을 모방하여 제조하는 과정에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기록됨. (《선조실록》)
1593년 12월비변사에서 조총 제조법이 교묘하여 세심하고 정교한 기술 없이는 제조가 불가능하다고 보고함. (《선조실록》)
1594년 3월비변사에서 포수 훈련용 총이 부족하다고 보고함. (《선조실록》)


2. 3. 동남아시아 군도의 조총

화기의 전신인 장총(베딜 툼박, bedil tombak)은 1413년 자바에서 사용된 기록이 있다.[12][13] 그러나 군도에서 "진정한" 화기를 제조하는 기술은 15세기 중반 이후 서아시아 이슬람 국가, 아마도 아랍인들에 의해 전래되었다. 도입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1460년 이전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4] 포르투갈이 동남아시아에 도착하기 전에 말레이시아인들은 이미 초기 화기인 자바 아르케뷰스를 소유하고 있었다.[15] 이 화기는 매우 긴 총열(최대 2.2m 길이)을 가지고 있었으며, 1511년 포르투갈의 말라카 정복 당시 배의 선체를 관통하여 반대편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으로 증명되었다.[16][14] 하지만 이 총의 격발 장치와 총열은 매우 조악했다.[15][17]

포르투갈은 고아에서 독자적으로 화승총을 생산했다. 1513년부터 독일-보헤미아의 총 제조 전통이 터키의 총 제조 전통과 결합되어[18] 인도-포르투갈식 화승총 전통이 만들어졌다. 인도의 장인들은 조준 시 어깨가 아닌 볼에 대는 매우 짧고, 거의 권총과 같은 개머리판을 도입하여 디자인을 수정했다. 또한 구경을 줄이고 총을 더 가볍고 균형 있게 만들었다. 이것은 배나 강에서 많은 전투를 치렀던 포르투갈인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더욱 소형화된 총을 선호했기 때문이다.[18][19]

알폰소 드 알브케르케는 말라카의 주철공들을 독일의 주철공들과 같은 수준으로 평가했지만, 말라카 주철공의 민족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20][21][22] 두아르테 바르보사는 말라카의 아르케뷰스 제작자는 자바인이라고 밝혔다.[23] 자바인들은 말라카에서 자체적으로 대포도 제조했다.[24] 앤서니 레이드는 1511년 이전 말라카와 17세기 파타니에서 자바인들이 많은 생산 활동을 담당했다고 주장했다.[23]

완 모드 다수키 완 하스불라는 1511년 함락 이전 말라카의 화약 무기 존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25]

  • 말레이 국가에서 총, 대포, 화약이 제조되었다는 증거는 없다.
  • 말레이 출처에서조차 포르투갈의 공격 이전에 말라카 술탄국이 총을 사용했다는 증거는 없다.
  • 포르투갈이 보고한 대부분의 대포를 바탕으로, 말레이인들은 소형 포병을 선호했다.


인도-포르투갈식 총에는 두 가지 다른 격발 장치가 사용되었다. 하나는 루시타니아 총 프로토타입의 단일 잎판 메인스프링으로, 실론, 말레이 반도, 수마트라, 베트남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다른 하나는 V자형 메인스프링으로, 자바, 발리, 중국, 일본, 한국에서 발견할 수 있다.[18][26] 이스팅가르의 격발 장치는 일반적으로 황동으로 만들어졌다.[27] 말레이인들은 화승총 아르케뷰스 총열에 대나무 덮개를 사용하고 라탄으로 묶어 습한 날씨에 총열이 젖지 않도록 했다.[27][28] 이스팅가르는 일반적으로 일본 총보다 길다. 램로드를 위한 홈이 없다는 것은 벽에 기대어 사용하거나 렐라 또는 렌타카처럼 배의 난간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경우 램로드에는 수납 공간이 필요하지 않았다.[29] 말레이인들은 또한 총알을 총열에 밀어 넣는 작은 나무망치를 만들었다.[27]

미낭카바우족은 내륙 수마트라의 화약 기반 무기 제조로 유명하다. 주앙 드 바로스의 기록(1496-1570)에 따르면,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전에 수마트라인들은 화기를 사용하지 않았다.[22] 그들의 용광로에서 철과 강철이 생산되었지만, 19세기가 되면 유럽인들에게 더 의존하게 되었다.[30] 미낭카바우의 화승총 아르케뷰스는 "이스텐가라 메낭카보웨"(또는 이스팅가르 미낭카바우, 또는 간단히 사팅가)라고 불렸다.[31][5][32] 생산량은 지역 수요를 충족하기에 충분했고, 미낭카바우는 아체, 말라카, 시아크 술탄국과 같은 다른 지역으로 화기를 수출하기도 했다.[30][33] 총열은 비례적인 크기의 평평한 철 막대를 원형 막대 주위에 나선형으로 감아서 만들고, 부품이 합쳐질 때까지 두들겨서 만들었으며, 천공 기술은 아마도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30] 이러한 제조는 화승총이 이미 구식이 된 19세기까지도 계속되었다.[2][33] "일무 베딜"(화기 지식을 의미)이라는 원고는 이러한 유형의 이스팅가르에 대한 논문이다. 미낭카바우는 "테라쿨"(드래군 권총)과 같은 다른 화기도 생산했다.[5] 바탁족은 구리로 만든 격발 장치가 달린 화승총을 사용했으며, 마르스덴에 의해 명사수로 여겨졌다. 그러나 바탁의 총은 미낭카바우 상인들이 공급했다.[30]

1528년부터 포르투갈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고와 왕국의 마카사르족[34]은 군사력 강화에 있어 포르투갈의 지원으로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 1600년대 초 이슬람으로 개종한 그들은 비신자 이웃인 부기스족에 대한 성전(지하드)를 수행했다.[35] 마카사르인들은 아마도 16세기 후반이나 17세기 초에 포르투갈의 에스핑가르다에서 유래한 머스켓을 이미 제조하고 있었다. 18세기가 되면 유럽인들은 직선형 총신과 정교한 상감 세공이 특징인 부기스 이웃이 생산한 총을 칭찬했다.[35] 수년간의 전쟁 동안, 부기스와 마카사르인 병사들은 '''와주 란테''''(사슬 갑옷)와 직접 제작한 머스켓을 착용했다.[35] 1603년에서 1606년 사이에 이베리아 연합군은 테르나테를 두 차례 공격했고, "모로스"(즉, 무어인 또는 무슬림)가 머스켓과 아르케뷰스를 사용했다고 보고했다.[36] 니콜라스 저베이스는 마카사르에 대해 "동인도에는 말을 타는 것, 활을 당기는 것, 화승총(머스켓)을 발사하는 것, 대포를 조준하는 것에 더 능숙한 사람들이 없다(마카사르인들보다)"라고 언급했다.[37]

결국 이스팅가르는 필리핀 군도의 무슬림 통제 지역으로 퍼져 "아스팅갈"로 알려지게 되었다. 1613년 산 부에나벤투라 타갈로그 사전은 "아스팅갈"을 "그들이 옛날 전쟁에서 사용하던 종류의 아르케뷰스로, 보르네오에서 온 것"으로 정의한다. 이는 북 루손에서 처음 언급된 것으로 보인다.[38]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인들은 민다나오에서와 같이 루손에서의 조우에서 아스팅갈을 마주친 적이 없다.[39] 1609년 스페인인들은 잠발레스에서 많은 원주민들이 스페인인들이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본 이후로 아르케뷰스와 머스켓을 매우 능숙하게 다룬다고 보고했다.[36]

마자파히트 힌두교의 잔재인 발리와 롬복의 힌두교 주민들은[40] 화승총 제조로 유명하다. 1800년대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는 그들이 제조한 두 정의 총을 보았는데, 약 1.83m 길이에 비례적으로 큰 구경을 가지고 있었다. 나무 개머리판은 잘 만들어졌고 총열의 앞쪽 끝까지 확장되었다. 총열은 비틀리고 마감되었으며 장식이 있었다.[19] 긴 총열을 만들기 위해 원주민들은 먼저 작게 천공한 다음 직선 철봉에 용접하는 약 45.72cm 길이의 총열 조각을 사용한다. 전체 총열은 점차 크기가 커지는 천공기를 사용하여 가공되며, 3일 만에 천공이 완료된다.[41]

화문석 기전을 사용하는 화기의 경우, 누산타라 군도 주민들은 서구 열강에 의존했는데, 현지 대장장이가 그러한 복잡한 부품을 생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42][19][43] 이러한 화문석 화기는 완전히 다른 무기이며, 네덜란드어 단어 snappaan에서 유래한 ''세나판'' 또는 ''세나팡''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14] 누산타라의 총 제조 지역에서는 이러한 ''세나판''을 만들 수 있었지만, 총열과 나무 부분은 현지에서 제작되었지만, 기전은 유럽 상인들로부터 수입되었다.[43][5][19] 자바인들은 현대화에 가장 먼저 나섰다. VOC가 1680년대에 화승총을 화문석으로 교체하기 시작한 후, 자바인들은 이미 1690년대에 이를 요청했다. 화문석 ''세나판''은 1700년대 초 자바 병기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17]

3. 기술 발전

화승식 발화 장치를 갖춘 화승총은 이후에 바퀴식 방아쇠 화승총을 거쳐 부싯돌식 화승총으로 발전했다. 부싯돌식 화승총의 경우, 화승(불심지)이 필요없이 격발하면 부싯돌의 스파크를 통해서 바로 화약이 폭발, 탄환이 발사된다. 조선은 1656년에 귀화네덜란드인 박연이 부싯돌식 화승총을 제작하였다. 이후 19세기 중엽에 공이식 화승총이 개발된 이후 실탄만 넣고서 쏘면 되는 소총이 개발되었고, 19세기 말에 한 번에 수백 발씩 쏠 수 있는 기관총이 개발되었다.

4. 성능

초창기 조총의 성능은 매우 조잡했다. 한 발을 쏘고 난 후 다시 쏘려면 30초에서 45초 정도의 장전 시간이 필요했다. 또한 화력도 약해서, 당시 장수들이 주로 입던 갑옷으로도 유효 사거리에서 발사되는 조총 탄환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개량을 거쳐 성능이 개선되었다.

천공개물에 따르면, 약 47m 이내에서는 새의 몸통이나 깃털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고, 약 78m 거리에서는 몸통은 남아나며, 약 155m 거리에서는 위력이 없어진다. 목표물이 기병인 경우, 50m 거리 이내에서 치명적이다.[1]

개선된 조총의 성능은 다음과 같다.[1]

항목내용
사거리100m
발사 속도분당 2~3회
가늠자/가늠쇠있음
격발 방식화승식


5. 어원

처음 화승총을 들여왔을 당시 조선명나라에서는 하늘을 나는 새를 쏘아 맞혀서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의미(能中飛鳥)에서 조총(鳥銃)이라고 불렀다.

포르투갈어 단어 ''espingarda''에서 유래한 ''istinggar''는 화승총 또는 총기를 의미한다. 이 용어는 ''estingarda''로 변형되어 결국 setinggar 또는 istinggar가 되었다.[4] 군도에서 이 단어는 satinggar, satenggar, istenggara, astengger, altanggar, astinggal, ispinggar, tinggar 등 여러 변형이 있다.[6][7][8][9][10][31][1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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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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