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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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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추적(秋適)은 고려 시대의 문신으로, 1246년 양광도에서 태어났다. 1260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좌사간을 거쳐 북계 용주의 수령을 역임했다. 1302년 안향의 추천으로 국학 교수를 겸임하며 이성, 최원충 등과 함께 유학 교육을 담당했고, 정주학 도입에 기여했다. 1305년에는 《명심보감》을 편찬하여 백성들의 윤리 의식 함양에 기여했다. 민부상서와 예문관 대제학을 역임했으며, 가계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걸쳐 명문가로 이름을 떨쳤다. 주세붕은 추적을 안향과 함께 고려와 조선 유교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 평가했다. 묘소는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으며, 대구 인흥서원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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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고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추적
원어 이름秋適
출생일1246년
출생지고려 양광도 양지현 (現 대한민국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사망일1317년 (향년 72세)
사망지고려 개경
국적고려
경력민부상서(民部尙書)
예문관 대제학(藝文館 大提學)
본관추계(秋溪)
별명자(字) 관중(慣中)
호(號) 노당(露堂)
시호(諡號) 문헌(文憲)
직업문관(文官)
종교유교
자녀추진(秋震), 추뢰(秋雷)
부모추영수(秋永壽)

2. 생애

추적 초상화


노당(露堂) 추적1246년(고려 고종 33년) 양광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추영수(秋永壽)는 1209년(고려 희종 5년) 국자시에 장원급제하여 문하시중을 역임하였다.[2] 고려사 기록에 따르면, 추적은 성품이 활달하여 얽매임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안향과 함께 고려에 성리학을 도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2. 1. 관직 생활

1260년(고려 원종 1년) 문과에 급제하여 안동서기(安東書記), 직사관(直史館)을 거쳐 좌사간(左司諫)에 올랐다.[2]

1298년(충렬왕 24년) 환관 황석량(黃石良)이 자신의 고향인 합덕부곡(合德部曲, 현재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을 현(縣)으로 승격시키려 할 때, 추적이 문안에 서명을 거부하였다. 황석량은 석천보(石天補)·김광연(金光衍)과 함께 추적을 모함하여 왕이 형구를 채워 순마소(巡馬所)에 가두게 했다. 곧 복권되어 1299년 시랑으로서 북계 용주(龍州)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1302년(충렬왕 28년) 찬성사(贊成事) 안향(安珦)에 의하여 시랑(侍郞) 겸 국학 교수(國學敎授)로 발탁되어 이성(李晟)·최원충(崔元冲) 등과 함께 7품 이하의 관리 혹은 생원들에 대한 유학 교육을 담당하였다. 안향(安珦)과 더불어 정주학(程朱學)의 도입을 꾀하였다. 1305년 시랑 국학교수로서 교양서인 《명심보감(明心寶鑑)》을 편찬하였다.

1306년(충렬왕 32년) 민부상서(民部尙書)를 역임하고,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에 이르렀다.[3]

2. 2. 교육 활동

1302년(충렬왕 28년) 찬성사 안향(安珦)의 추천으로 시랑 겸 국학교수가 되어 이성(李晟), 최원충(崔元冲) 등과 함께 7품 이하의 관리 혹은 생원들에 대한 유학 교육을 담당하였다.[2] 안향과 함께 정주학(程朱學) 도입을 추진했다. 1305년 시랑 국학교수로서 교양서인 《명심보감(明心寶鑑)》을 편찬하여 백성들의 윤리 의식 함양에 기여했다.

3. 가계

추적의 가계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걸쳐 명문가로 이름을 떨쳤다. 할아버지 추엽은 추계 추씨의 시조이며, 중국 남송에서 고려로 귀화했다. 그는 남송 고종 소흥 11년(1141년) 문과에 급제하고 문하시중을 지냈다.[6] 아버지 추영수1209년(고려 희종 5년) 진사시에 장원 급제하고, 1213년(고려 강종 2) 문과에 급제하여 예부 상서, 예문관 대제학, 문하시중을 역임했다. 손자 추유는 명나라 개국공신으로 호부상서에 이르렀다. 7대손 추수경1591년(조선 선조 24) 명나라 무강자사가 되었으며, 이듬해 임진왜란이여송의 부장으로 조선에 파병되어 전공을 세운 후 완산부원군에 추봉되었다.[7]

3. 1. 가계도

1세2세3세4세
추적의 조상추엽(秋饁)추영수(秋永壽, 1198년 ~ 1259년)추진(秋震, 1296년 ∼ 1368년)추유(秋濡, 1345년 ∼ 1404년)
추뢰(秋雷, 1298년 ∼ 1341년)추형(秋瀅, 1315년 ∼ 1400년)
추협(秋浹, 1348년 ∼ 1409년)


4. 저서

명심보감

5. 사후 추모

조선 순조 35년(1825년) 10월 팔도 유림과 추적의 20대손 추세문이 뜻을 모아 대구 인흥서원에 추적을 배향하였다.[4] 조선 고종 1년(1864년) 홍문관제학을 역임한 조선의 문신 해장 신석우가 추적 신도비 비문을 지었다.[5]

6. 묘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다.

7. 평가

주세붕은 《무릉잡고》에서 "해동에서 유교를 숭상하고 학교를 건립한 도(道)가 복초당 안선생 문성공 유와 노당 추선생 문헌공 적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이제까지 누구라고 흠모하지 않겠는가"라고 적었다. 이는 고려와 조선의 유교가 안향과 추적 두 선생에서 본격 시작됐다는 평가이다.[8]

참조

[1] 웹사이트 추적 - 용인향토문화백과 http://yongin.grandc[...]
[2] 서적 《고려사》 권74, 지제28, 선거(選擧)2 http://db.history.go[...]
[3] 서적 《고려사》 권106, 열전19 https://terms.naver.[...]
[4] 웹사이트 인흥서원 - 두산백과 https://terms.naver.[...]
[5] 웹사이트 추적 신도비 - 디지털달성문화대전 http://dalseong.gran[...]
[6] 인물정보 추영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EXM_KS[...]
[7] 웹사이트 추수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s://terms.naver.[...]
[8] 뉴스 [선비 정신의 미학(38)] '명심보감' 편찬자로 알려진 노당(露堂) 추적 https://jmagazine.jo[...] 월간중앙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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