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래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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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래깅은 군인들이 동료를 살해하는 행위를 의미하며, 특히 베트남 전쟁 시기 미군에서 파편 수류탄 등 폭발성 무기의 손쉬운 접근과 사기 저하로 인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프래깅은 장교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상급자의 부하 괴롭힘, 인종차별, 약물 통제 시도 등이 동기로 작용했다. 베트남 전쟁 이후에도 프래깅은 지속적으로 발생했으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내부자 공격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프래깅에 대응하기 위해 미군은 무기 접근 제한, 부대 격리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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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깅 | |
---|---|
용어 | |
정의 | 아군에 의한 고의적인 살해 또는 살인 시도 |
관련 용어 | 동료 살해 전우 살해 전선에서의 살인 |
개요 | |
발생 시점 | 전시 전투 상황 |
대상 | 지휘관 동료 병사 |
사용 무기 | 수류탄 기타 무기 |
배경 | |
원인 | 부당한 명령에 대한 불복종 인종 갈등 사기 저하 정신 질환 지도력 부재 |
역사 | |
베트남 전쟁 | 높은 빈도로 발생 |
원인 | 전쟁에 대한 불만 징집병의 낮은 사기 엄격한 군율에 대한 반발 |
결과 | 군 기강 약화 사기 저하 미군 철수 요인 중 하나로 작용 |
처벌 | 군법에 따라 처벌 |
사회적 영향 | |
군대 내 | 사기 저하 불신 심화 전투 효율성 감소 |
사회 전체 | 전쟁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강화 반전 운동 확산 |
같이 보기 | |
관련 항목 | 전쟁 범죄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군사 재판 |
2. 역사적 배경 및 동기
군인들은 무력 분쟁이 시작된 이래 동료를 살해해 왔으며, 역사상 많은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프래깅 행위는 베트남 전쟁 이전까지는 미국군에서 비교적 드물었던 것으로 보인다. 프래깅이 만연하게 된 것은 파편 수류탄과 같은 폭발성 무기의 손쉬운 입수와 부분적으로 관련이 있었다. 수류탄은 소유자를 추적할 수 없었고 탄도 증거도 남기지 않았다. M18 클레이모어 지뢰와 다른 폭발물들도 프래깅에 사용되었으며, 총기도 사용되었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 군대에서 정의한 바에 따르면 이 용어는 동료 군인을 살해하기 위한 폭발물 사용에만 적용되었다.[5][6] 프래깅 사건의 대부분은 육군과 해병대에서 발생했다. 해군과 공군에서는 수류탄과 무기에 대한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낮아 프래깅이 드물었다.[5]
남베트남에서 프래깅 사건이 처음 발생한 것은 1966년이었지만, 1968년에 발생한 사건들이 프래깅 증가를 촉진한 것으로 보인다. 1968년 1월과 2월의 구정 공세 이후, 베트남 전쟁은 미국과 베트남 주둔 미국 군인들 사이에서 점점 인기를 잃어갔다. 또한 1968년 4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암살 이후 백인과 흑인 군인과 해병대원 사이의 인종적 긴장이 고조되었다.[5]
미국군은 인종차별, 약물 남용, 권위적인 지도자에 대한 불만과 같은 미국의 사회 문제를 반영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군대를 철수하기 시작하면서, 일부 미국 사병들과 젊은 장교들은 베트남에 있는 목적 의식을 잃었고, 사병과 장교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인력 수요로 인해 군대는 장교와 사병 모두의 임명 기준을 낮추었다. 특히 지휘 역할에서 (평균) 6개월 미만 복무하는 장교의 급속한 인사이동은 군대의 안정성과 결속력을 감소시켰다.[5]
2. 1. 베트남 전쟁
베트남 전쟁 시기 프래깅은 미군 내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프래깅의 주요 동기는 다음과 같다.[5][6]- 전쟁의 비인기성: 1968년 구정 공세 이후, 베트남 전쟁은 미국과 베트남 주둔 미군(대부분 징집병) 사이에서 인기가 떨어졌다.
- 인종 갈등: 1968년 4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암살 이후 백인과 흑인 군인 및 해병대원 간의 인종적 긴장이 고조되었다.
- 사기 저하: 병사들이 잃어버린 전쟁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목숨을 걸기를 꺼리면서, 프래깅은 일부 사병들에게 지휘관의 전투 의욕을 꺾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겨졌다.
- 상관의 괴롭힘: 상관의 괴롭힘 또한 프래깅의 동기가 되었다.
- 약물 사용 통제: 장교들의 약물 사용 통제 시도는 프래깅 사건을 유발했다.

1971년, 한 해병대 대령은 ''무력지(Armed Forces Journal)''에 "미국 무력의 사기, 규율 및 전투 능력은 몇 가지 두드러진 예외를 제외하고는 이 세기, 어쩌면 미국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낮고 나쁘다"라고 선언할 정도로 군의 사기는 급락했다.[7][8]
프래깅은 주로 사병들이 장교를 대상으로 저질렀으며, 특히 전투에 지나치게 열성적인 지휘관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5] 알려진 대부분의 프래깅 사건은 전투 부대가 아닌 지원 부대의 군인들에 의해 수행되었다.[5]
군인들은 때때로 비살상 연막탄과 최루탄을 사용하여 지휘관에게 경고하기도 했다. 사병들이 특정 장교나 부사관을 프래깅하는 군인에게 보상하는 "현상금"을 내건 사례도 있었다.[5]
1969년 | 1970년 | 1971년 | 1972년 | |
---|---|---|---|---|
육군 | 96 | 209 | 222 | 28 |
해병대 | 30+ | 50+ | 30+ | 5 |
의심 | 30 | 62 | 111 | 31 |
총계 | 156+ | 321+ | 363+ | 64 |
사망 | 46 | 38 | 12 | 3 |
참고: 1969년 이전에는 통계가 유지되지 않았다. |
1969년부터 1972년까지 베트남에서 폭발물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프래깅 사건은 거의 900건에 달했으며, 99명이 사망하고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 통계는 불완전하며, 실제 사건은 더 많을 수 있다.[5][9]
2. 2. 아프가니스탄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2021)에서 "청록 공격(Green-on-blue attack)"으로 불리는 내부자 공격으로 인해, 연합군 병사들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군에 의해 고의로 살해되는 사건이 증가했다. 2012년 아프가니스탄 꾸란 소각 시위와 칸다하르 학살과 같은 사건 이후 이러한 공격은 더욱 늘어났다.[15][16]NATO에 따르면, 2012년에만 아프가니스탄군 구성원의 고의적인 공격으로 51명의 연합군 병사가 사망했으며, 2007년부터 2011년 사이에는 65명의 NATO 군인이 내부자 공격으로 사망했다.[17] 이러한 "청록 공격"의 증가는 미국 관리들이 아프가니스탄 신병에 대한 심사 과정을 강화하도록 만들었으며, 아프가니스탄 군 지도부는 탈레반과 연계되거나 반미적 견해를 가진 아프가니스탄 군인들을 "수백 명"이나 확인했다.[18][19][20]
이러한 공격을 수행한 자들 중 다수는 지역 부족 군대로 활동하며 탈레반과 연계된 것으로 알려진 아프가니스탄 지방 경찰 (ALP) 부대원이었다.[21][22] 이들은 마약 사용과 민간인 학대 등의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23]
''롱 워 저널''은 2008년부터 2017년 6월 11일까지 155건의 공격으로 연합군 152명이 사망하고 193명이 부상당했다고 보도했다.[24] ANA 전투원 중 일부는 탈레반으로 도망쳤으며, 탈레반은 이들을 '환영'하는 비디오를 게시하기도 했다. NATO 사령관은 초기에는 공격의 약 90%가 문화적 차이와 개인적 적대감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외국 첩보 기관의 침투"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24]
내부자 공격을 줄이기 위해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군의 합동 작전은 축소되었고, 연합군은 아프가니스탄 군인들에게 존중심을 가질 것을 상기받았다.[15]
3. 주요 사건
1745년 자코바이트 봉기 이후 1815년 콰트르 브라스 전투와 같이 19세기 이전에도 프래깅 사건이 여럿 있었다.[25] 20세기에도 프래깅은 계속되었으며, 특히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 사이에 널리 퍼졌다.
베트남 전쟁 동안, 1969년부터 1972년까지 거의 900건에 달하는 프래깅 사건으로 인해 미군에서 99명이 사망했다.[5][9] 그러나 실제 프래깅 사건은 보고되지 않은 사건과 1969년 이전 통계 부재로 인해 더 많을 수 있다.[5][9]
1969년 | 1970년 | 1971년 | 1972년 | |
---|---|---|---|---|
육군 | 96 | 209 | 222 | 28 |
해병대 | 30+ | 50+ | 30+ | 5 |
의심 | 30 | 62 | 111 | 31 |
총계 | 156+ | 321+ | 363+ | 64 |
사망 | 46 | 38 | 12 | 3 |
참고: 1969년 이전에는 통계가 유지되지 않았다. |
베트남 전쟁 이후에도 프래깅은 계속 발생했으며, 21세기에도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사건이 보고되었다. 아래 표는 20세기 및 21세기에 발생한 주요 프래깅 사건들을 정리한 것이다.
발생일 | 사건 | 국가 | 가해자 및 피해자 | 비고 |
---|---|---|---|---|
1944년 11월 18일 | 조지 그린 주니어 일병의 토미 리 개릿 상병 살해[40] | 미국 | 가해자: 조지 그린 주니어 일병 피해자: 토미 리 개릿 상병 | |
1969년 | Hamburger Hill 전투 이후 웰던 허니컷 대령 암살 시도[41] | 미국 | 가해자: 불명 피해자: 웰던 허니컷 대령 (미수) | |
1969년 4월 21일 | 로버트 T. 로휠러 제1중위 살해[5][42][43] | 미국 | 가해자: 레지날드 F. 스미스 일병 피해자: 로버트 T. 로휠러 제1중위 | |
1971년 3월 15일 | 토마스 A. 델로 중위와 리처드 E. 할란 중위 살해[5] | 미국 | 가해자: 빌리 딘 스미스 일병 (무죄) 피해자: 토마스 A. 델로 중위, 리처드 E. 할란 중위 | |
1969년 11월 23일 | 로버트 토마스 컨버리 중위 살해[44] | 호주 | 가해자: 피터 덴질 "페드로" 앨런 일병 피해자: 로버트 토마스 컨버리 중위 | |
1970년 12월 25일 | 앨런 브라이언 모스 상사와 윌리스 제임스 갈빈 상사 살해[45][46] | 호주 | 가해자: 폴 레이먼드 "라몬" 페리데이 일병 피해자: 앨런 브라이언 모스 상사, 윌리스 제임스 갈빈 상사 | |
1982년 10월 27일 | 그레고리 "게리" 모로우 상병, 토머스 머피 이병, 피터 버크 이병 살해[47] | 아일랜드 | 가해자: 마이클 맥알리비 이병 피해자: 그레고리 "게리" 모로우 상병, 토머스 머피 이병, 피터 버크 이병 | |
1992년 5월 9일 | 중대 주임상사 살해[53] | 영국 | 가해자: 영국 육군 병사 (과실치사) 피해자: 중대 주임상사 | |
1999년 7월 6일 | 배리 윈첼 살해[31] | 미국 | 가해자: 캘빈 글로버 피해자: 배리 윈첼 (트랜스젠더 여성과 데이트) | |
2009년 11월 5일 | 포트 후드 총기 난사[32] | 미국 | 가해자: 니달 하산 (정신과 의사) 피해자: 13명 사망, 32명 부상 (하반신 마비) | |
2012년 5월 28일 | 카자흐-중국 국경 부대 발포[33] | 카자흐스탄 | 가해자: 카자흐스탄 국경 경비병 피해자: 15명 사망 | |
2013년 9월 16일 | 워싱턴 해군 공창 총기 난사[34] | 미국 | 가해자: 에런 알렉시스 (미 해군 부사관) 피해자: 12명 사망, 8명 부상 | |
2016년 11월 4일 | 킹 파이잘 공군 기지 총격[35] | 요르단 | 가해자: 요르단군 병사 피해자: 미국 병사 3명 사망, 요르단 병사 치명상 | |
2019년 10월 25일 | 고르니 군사 기지 총격[36] | 러시아 | 가해자: 러시아군 병사 피해자: 8명 사망, 2명 부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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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18세기 이전
- 1704년 블레넘 전투: 영국군 이스트 요크셔 연대의 인기 없던 소령이 전투에서 승리한 후 부하에게 머리에 총을 맞아 사망했다.[25]
- 1718년 스웨덴 찰스 12세는 할덴 포위 공격 중 총에 맞아 사망했는데, 총알은 그의 병사 중 한 명이 발사했을 가능성이 있다.[26]
- 1745년 자코바이트 봉기: 1746년 8월 31일, 컬로든 전투 이후 로커버를 습격하던 영국군 조지 먼로 대위가 클랜 캐머런 지역 로크 아르카이그를 따라 숨어 있던 저격수에게 사살되었다. 클랜 캐머런 내 다른 용의자들이 지목되었지만, 지하의 로마 가톨릭 주교 존 제디스는 먼로 대위가 최근 태형을 가한 불만을 품은 부하에 의한 의도적인 프래깅이라고 믿었다.[27]
- 1777년 사라토가 전투: 브런즈윅 군대 하인리히 폰 브레이만 중령은 벤닝턴 전투와 사라토가 전투에서 패배할 당시 독일 친영 군대와 아메리카 원주민 동맹군의 최고위 장교였는데, 부하들의 행동에 너무 역겨워 검으로 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부상당한 부하 중 한 명이 권총을 꺼내 폰 브레이만 중령을 사살했다.[28]
- 1815년 콰트르 브라스 전투: 92 (고든 하이랜더) 연대 지휘관 존 캐머런 대령은 최근 채찍질을 한 사람에게 총에 맞아 사망했다.[25]
- 1847년 미국-멕시코 전쟁: 브랙스턴 브래그 중령(훗날 남부 연합 장군)은 두 번의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았는데, 각각의 경우 포탄이 그의 침대 아래에서 폭발했다.[29]
- 1894년 압록강 해전: 딩루창 제독의 다리가 부서졌는데, 이는 구조적 결함이나 함장의 의도적인 오발로 인한 것이다.[30]
3. 2. 18세기
- 1704년 블레넘 전투: 영국군 이스트 요크셔 연대의 인기 없던 소령이 전투에서 승리한 후 부하에게 머리에 총을 맞아 사망했다.[25]
- 1718년 스웨덴 찰스 12세: 할덴 포위 공격 중 총에 맞아 사망. 총알은 그의 병사 중 한 명이 발사했을 가능성이 있다.[26]
- 1745년 자코바이트 봉기: 1746년 8월 31일, 컬로든 전투 이후 로커버를 습격하던 영국군 조지 먼로 대위가 클랜 캐머런 지역 로크 아르카이그를 따라 숨어 있던 저격수에게 사살됨. 로마 가톨릭 주교 존 제디스는 먼로 대위가 최근 태형을 가한 불만을 품은 부하에 의한 의도적인 프래깅이라고 믿었다.[27]
- 1777년 사라토가 전투: 브런즈윅 군대 하인리히 폰 브레이만 중령은 벤닝턴 전투와 사라토가 전투 패배 당시 독일 친영 군대와 아메리카 원주민 동맹군의 최고위 장교였는데, 부하들의 행동에 역겨워 검으로 공격하다 부상당한 부하 중 한 명이 쏜 권총에 맞아 사망했다.[28]
3. 3. 19세기
- 1815년: 콰트르 브라스 전투에서 92 (고든 하이랜더) 연대의 지휘관 존 캐머런 대령은 최근 채찍질을 가한 병사에게 총을 맞아 사망했다.[25]
- 1847년: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브랙스턴 브래그 중령(훗날 남부 연합 장군)은 두 차례의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았는데, 각각의 경우 포탄이 그의 침대 아래에서 폭발했다.[29]
- 1894년: 압록강 해전에서 딩루창 제독의 다리가 부서졌는데, 이는 구조적 결함이나 함장의 의도적인 오발로 인한 것이다.[30]
3. 4. 20세기 (베트남 전쟁 이전)
- 1704년: 블레넘 전투에서 영국군 이스트 요크셔 연대의 인기 없던 소령이 전투에서 승리한 후 부하에게 머리에 총을 맞아 사망했다.[25]
- 1718년: 스웨덴의 찰스 12세가 할덴 포위 공격 중에 총에 맞아 사망했는데, 총알은 그의 병사 중 한 명이 발사했을 가능성이 있다.[26]
- 1745년 자코바이트 봉기: 1746년 8월 31일, 컬로든 전투 이후 로커버를 습격하던 영국군의 조지 먼로 대위가 클랜 캐머런 지역의 로크 아르카이그를 따라 숨어 있던 저격수에게 사살되었다. 클랜 캐머런 내 다른 용의자들이 지목되었지만, 지하의 로마 가톨릭 주교 존 제디스는 먼로 대위가 최근 태형을 가한 불만을 품은 부하에 의한 의도적인 프래깅이라고 믿었다.[27]
- 1777년: 사라토가 전투에서 브런즈윅 군대의 하인리히 폰 브레이만 중령은 벤닝턴 전투와 사라토가 전투의 패배 당시 독일 친영 군대와 그들의 아메리카 원주민 동맹군의 최고위 장교였는데, 부하들의 행동에 너무 역겨워 검으로 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부상당한 부하 중 한 명이 권총을 꺼내 폰 브레이만 중령을 사살했다.[28]
- 1815년: 콰트르 브라스 전투에서 92 (고든 하이랜더) 연대의 지휘관 존 캐머런 대령은 최근 채찍질을 한 사람에게 총에 맞아 사망했다.[25]
- 1847년: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브랙스턴 브래그 중령(후에 남부 연합 장군)은 두 번의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았는데, 각각의 경우 포탄이 그의 침대 아래에서 폭발했다.[29]
- 1894년: 압록강 해전에서 딩루창 제독의 다리가 부서졌는데, 이는 구조적 결함이나 함장의 의도적인 오발로 인한 것이다.[30]
3. 5. 베트남 전쟁 (미군)
베트남 전쟁 중 미군 사이에서 프래깅 사건이 발생했다. 1969년부터 1972년까지 폭발물을 사용한 프래깅 사건은 거의 900건에 달했고, 이로 인해 99명이 사망하고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5][9] 하지만 일부 사건은 보고되지 않았고, 1969년 이전에는 통계가 없었기 때문에 실제 발생 건수는 더 많을 수 있다.[5][9] 희생자 대부분은 장교나 부사관이었다.[5][9]1969년 | 1970년 | 1971년 | 1972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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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 96 | 209 | 222 | 28 |
해병대 | 30+ | 50+ | 30+ | 5 |
의심 | 30 | 62 | 111 | 31 |
총계 | 156+ | 321+ | 363+ | 64 |
사망 | 46 | 38 | 12 | 3 |
참고: 1969년 이전에는 통계가 유지되지 않았다. |
미군이 철수하고 베트남 주둔 미군 수가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래깅 건수는 1970년과 1971년에 오히려 증가했다.[5][9] 다른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최대 1,017건의 프래깅 사건이 발생하여 86명이 사망하고 714명이 부상당했으며, 이들 역시 대부분 장교와 부사관이었다.[10] 전쟁이 끝날 무렵, 최소 450명의 장교가 프래깅으로 사망했다는 기록도 있다.[11][12]
프래깅 통계는 주로 수류탄과 같은 폭발물 관련 사건만 포함한다. 총기에 의한 살인 사건도 수백 건 발생했지만, 대부분은 비슷한 계급의 사병 간 살인이었다. 총기로 살해된 장교는 10명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5]
몇몇 구체적인 프래깅 사건 사례는 다음과 같다.
- 1969년: Hamburger Hill 전투 이후, G.I 지하 신문 "G.I Says"는 웰던 허니컷 대령에게 1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고, 여러 차례 프래깅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했다.[41]
- 1969년 4월 21일: 남베트남 꽝찌 전투 기지에서 제9 해병연대 K 중대 사무실에 수류탄이 투척되어 로버트 T. 로휠러 제1중위가 사망했다. 레지날드 F. 스미스 일병이 체포되어 40년형을 선고받았다.[5][42][43]
- 1971년 3월 15일: 비엔호아 기지 장교 숙소에 수류탄이 투척되어 제1 기병 사단(공중 기동)의 토마스 A. 델로 중위와 리처드 E. 할란 중위가 사망했다. 빌리 딘 스미스 일병이 기소되었으나 무죄로 풀려났다.[5]
3. 6. 베트남 전쟁 (호주군)
- 1969년 11월 23일, 남베트남 누이닷에서 제9연대 왕립 호주 연대의 격렬한 음주 다음 날 밤, 수류탄이 로버트 토마스 컨버리 중위의 텐트로 굴러 들어가 폭발하여 컨버리 중위가 사망했다. 피터 덴질 "페드로" 앨런 일병은 컨버리 중위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리스던 교도소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10년 8개월 복역했다.[44]
- 1970년 12월 25일, 폴 레이먼드 "라몬" 페리데이 일병은 호주 왕립 육군 병참 군단의 누이닷 상사 식당에서 하루 종일 술을 마신 후 SLR 소총을 난사하여 앨런 브라이언 모스 상사와 윌리스 제임스 갈빈 상사가 사망하고, 프레데릭 에드윈 보우텔 상사가 부상을 입었다. 군사 재판에서 육군 정신과 의사는 페리데이 일병을 "편집증적 성격"을 가지고 분노 발작을 일으키기 쉽다고 묘사했지만, 목격자들은 그가 자신의 행동을 인지하고 이전의 위협적인 언쟁에 대한 세부 사항을 제시했다고 증언했다.[45] 페리데이 일병은 과실 치사 2건과 흉기 사용 폭행 1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펜트리지 교도소에서 10년 형을 선고받고 8년을 복역했다.[46]
3. 7. 기타 20세기 사건
- 1982년 10월 27일, 레바논 주둔 유엔 임시군 소속 아일랜드 육군의 마이클 맥알리비 이병은 FN FAL 전투 소총으로 사격하여 동료 3명을 사살했다. 맥알리비는 살인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2010년에 가석방되었다.[47]
- 1992년 5월 9일, 타이론 주 파이브마일타운에서 임시 IRA의 공격으로 파괴된 보안 기지를 재건하던 중, 영국 육군 병사가 중대 주임상사를 총으로 쏴 살해했다. 이 병사는 과실치사 혐의로 2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53]
- 1999년 7월 6일, 미 육군 병사 배리 윈첼은 트랜스젠더 여성과 데이트를 한다는 이유로 캘빈 글로버에게 야구 방망이로 맞아 사망했다.[31]
3. 8. 21세기
발생일 | 사건 | 국가 | 가해자 및 피해자 | 비고 |
---|---|---|---|---|
1999년 7월 6일 | 배리 윈첼 살해[31] | 미국 | 가해자: 캘빈 글로버 피해자: 배리 윈첼 (트랜스젠더 여성과 데이트) | |
2009년 11월 5일 | 포트 후드 총기 난사[32] | 미국 | 가해자: 니달 하산 (정신과 의사) 피해자: 13명 사망, 32명 부상 (하반신 마비) | |
2012년 5월 28일 | 카자흐-중국 국경 부대 발포[33] | 카자흐스탄 | 가해자: 카자흐스탄 국경 경비병 피해자: 15명 사망 | |
2013년 9월 16일 | 워싱턴 해군 공창 총기 난사[34] | 미국 | 가해자: 에런 알렉시스 (미 해군 부사관) 피해자: 12명 사망, 8명 부상 | |
2016년 11월 4일 | 킹 파이잘 공군 기지 총격[35] | 요르단 | 가해자: 요르단군 병사 피해자: 미국 병사 3명 사망, 요르단 병사 치명상 | |
2019년 10월 25일 | 고르니 군사 기지 총격[36] | 러시아 | 가해자: 러시아군 병사 피해자: 8명 사망, 2명 부상 | |
2022년 10월 15일 | 솔로티 군사 기지 총기 난사[37][38] | 러시아 | 가해자: 러시아 병사 2명 피해자: 11명 사망, 15명 부상 | |
2023년 6월 14일 | 일본 군사 시설 총격[39] | 일본 | 가해자: 일본 육상자위대 병사 피해자: 2명 사망, 1명 부상 | |
2002년 8월 17일 | 카불 국제공항 총격[54] | 아프가니스탄 | 가해자: 존 그레고리 (영국 육군 병장) 피해자: 로버트 버서트 (왕립 병참 군단 중사) | |
2012년 1월 20일 | 아프가니스탄 군인의 프랑스 군인 총격[55][56] | 아프가니스탄 | 가해자: 아프가니스탄 군인 피해자: 프랑스 군인 4명 사망, 15명 부상 | |
2014년 8월 5일 | 마샬 파힘 국립 국방 대학교 총격[58][59] | 아프가니스탄 | 가해자: 아프가니스탄 군인 피해자: 해럴드 J. 그린 (미국 소장) 사망, 미하엘 바르처 (독일 공군 장교) 포함 14명 부상 | |
2003년 3월 23일 | 쿠웨이트시티 수류탄 투척 및 총격[60][61] | 쿠웨이트 | 가해자: 하산 카림 아크바르 (미 육군 상병) 피해자: 크리스토퍼 S. 자이퍼트 (육군 대위), 그레고리 L. 스톤 (공군 소령) 사망, 14명 부상 | |
2005년 6월 7일 | 클레이모어 지뢰 폭발[62] | 이라크 | 가해자: 부대 보급 상사 (무죄 판결) 피해자: 필립 에스포지토 (대위), 루이스 앨런 (소위) 사망 | |
2005년 7월 19일 | 라베나 존슨 사망 사건 (프래깅 의심)[63][64][65] | 이라크 | 가해자: 불명 (미 육군: 자살 결론) 피해자: 라베나 존슨 | |
2008년 | 동료 병사 2명 살해[66][67] | 불명 | 가해자: 조셉 보지세비치 (육군 상사) 피해자: 동료 병사 2명 | |
2009년 5월 11일 | 캠프 리버티 총격[68] | 이라크 | 가해자: 존 러셀 (미 육군 상사) 피해자: 미군 5명 사망 | |
2010년 9월 7일 | 이라크 병사의 미군 총격[69] | 이라크 | 가해자: 이라크 지상군 병사 피해자: 미군 2명 사망, 9명 부상 | |
2010년 9월 23일 | 팔루자 룸메이트 총격[70][71] | 이라크 | 가해자: 네프탈리 플라테로 (미 육군 일병) 피해자: 룸메이트 2명 사망, 1명 부상 | |
2011년 6월 12일 | 이라크 병사의 미군 기지 훈련 센터 총격[72] | 이라크 | 가해자: 이라크 병사 피해자: 미군 2명 사망, 3명 부상 | |
2011년 4월 28일 | HMS 아스튜트 잠수함 총격[73][74] | 영국 | 가해자: 라이언 도노반 (수병) 피해자: 이안 몰리뉴 (중령) 사망, 크리스토퍼 호지 (중령) 부상 | |
2022년 1월 27일 | 드니프로 기계 공장 총격[75][76] | 우크라이나 | 가해자: 아르테미 리아브추크 (우크라이나 징집병) 피해자: 동료 병사 5명 사망, 5명 부상 | |
2022년 3월 | 제37 근위 자동차 소총 여단 지휘관 공격 (확인되지 않음)[77][78] | 우크라이나 | 가해자: 러시아 징집병 그룹 (추정) 피해자: 유리 메드베데프 (대령, 추정) |
4. 대응 및 영향
프래깅은 베트남 전쟁 이전까지 미군에서 드물었지만, 베트남 전쟁 중 파편 수류탄과 같은 폭발성 무기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만연해졌다. 수류탄은 소유자를 추적하기 어렵고 탄도 증거를 남기지 않아 프래깅에 자주 사용되었다.[5][6] M18 클레이모어 지뢰 등 다른 폭발물도 사용되었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 군대에서 정의한 프래깅은 동료 군인을 살해하기 위한 폭발물 사용에만 적용되었다.[5][6] 프래깅 사건은 육군과 해병대에서 주로 발생했고, 해군과 공군에서는 드물었다.[5]
1968년 구정 공세 이후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과 베트남 주둔 미군의 여론은 악화되었고, 같은 해 4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암살 이후 인종적 긴장이 고조되었다.[5] 이러한 상황에서 프래깅은 일부 사병들에게 "지휘관이 전투에 대한 열정을 보이는 것을 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겨졌다.[6]
1971년, 한 미 해병대 대령은 ''무력지(Armed Forces Journal)''에 "미국 무력의 사기, 규율 및 전투 능력은... 미국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낮고 나쁘다"라고 할 정도로 군의 사기가 떨어졌다.[7][8]
미국이 베트남에서 군대를 철수하면서, 많은 미군 사병들과 젊은 장교들은 베트남에 있는 목적 의식을 잃었고, 사병과 장교 사이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특히 지나치게 규정을 강요하는 장교들에 대한 반감은 신체적 폭력 위협으로 이어지기도 했다.[5]
프래깅 발생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인력 수요 때문에 군은 장교와 사병 임명 기준을 낮추었고, 장교들의 잦은 인사이동은 군의 안정성과 결속력을 약화시켰다.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철수한다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전쟁 수행 목적을 상실한 병사들의 사기와 규율이 저하되었다.[5]
프래깅은 대부분 사병들이 장교를 대상으로 저질렀으며, "존 웨인 전술을 수행하고... 훈장을 받고... 신문에 사진이 실리기를 원하는" 지휘관에 대한 두려움이 주된 동기 중 하나였다.[5] 상급자의 부하 괴롭힘, 인종차별, 장교들의 약물 사용 통제 시도 등도 프래깅의 원인이 되었다. 알려진 대부분의 프래깅 사건은 지원 부대 군인들에 의해 수행되었다.[5]
사병들은 때때로 비살상 연막탄과 최루탄을 사용하여 지휘관에게 경고하기도 했다. 특정 장교나 부사관을 프래깅하는 군인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현상금"이 내걸린 사례도 있었다.[5]
4. 1. 미군 대응 (베트남 전쟁)
미국 군대는 프래깅에 대응하기 위해 비전투 부대 병사들의 무기, 특히 수류탄 접근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프래깅 사건 발생 후에는 전체 부대를 조사 완료 시까지 격리하는 봉쇄 조치를 시행했다.[5] 1971년 5월, 베트남 주둔 미군은 거의 모든 부대와 병사들에게 수류탄 지급을 일시 중단하고, 무기 재고를 조사했으며, 병사들의 숙소를 수색하여 무기, 탄약, 수류탄, 칼 등을 압수했다.[5] 그러나 병사들이 인근 베트남 지역 사회의 암시장에서 쉽게 무기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프래깅은 줄어들지 않았다. 또한 미국 군대는 프래깅과 이를 줄이기 위한 보안 조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줄이려고 시도했다.[5]식별되어 기소된 프래거는 소수에 불과했다. 프래깅과 적의 공격을 구분하는 것은 종종 어려웠다. 참호나 텐트에 던져진 수류탄은 프래깅일 수도 있고, 적의 침투 또는 파괴 공작일 수도 있었다. 사병들은 동료에 대한 두려움이나 연대 의식 때문에 프래깅 수사에 협조를 거부했다. 프래깅 유죄 판결에 대한 형량은 무거웠지만, 유죄 판결을 받은 소수의 병사들은 비교적 짧은 기간의 징역형을 살았다.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10명의 프래거는 10개월에서 40년까지 복역했으며, 평균 수감 기간은 약 9년이었다.[5]
4. 2. 군사적 영향
베트남 전쟁 이전까지 미군에서 프래깅은 비교적 드문 현상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중 파편 수류탄과 같은 폭발성 무기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프래깅이 만연하게 되었다. 수류탄은 소유자를 추적하기 어렵고 탄도 증거도 남지 않아 프래깅에 자주 사용되었다. M18 클레이모어 지뢰 등 다른 폭발물도 사용되었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 군대의 정의에 따르면 프래깅은 동료 군인을 살해하기 위해 폭발물을 사용하는 경우만을 의미했다.[5][6] 프래깅 사건의 대부분은 육군과 해병대에서 발생했으며, 해군과 공군에서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5]1968년 구정 공세 이후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이 악화되면서, 징집병을 포함한 많은 미군 병사들 사이에서 전쟁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또한, 1968년 4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암살 이후 백인과 흑인 군인 간의 인종적 긴장이 고조되었다.[5] 이러한 상황에서 프래깅은 일부 사병들에게 "지휘관이 전투에 대한 열정을 보이는 것을 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겨졌다.[6]
1971년, 한 미 해병대 대령은 ''무력지(Armed Forces Journal)''에 "미국 무력의 사기, 규율 및 전투 능력은 몇 가지 두드러진 예외를 제외하고는 이 세기, 어쩌면 미국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낮고 나쁘다."라고 언급할 정도로 군의 사기는 급락했다.[7][8]
미국이 베트남에서 군대를 철수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미군 사병들과 젊은 장교들은 베트남에 있는 목적 의식을 잃었고, 사병과 장교 사이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특히 지나치게 규정을 강요하는 장교들에 대한 반감은 신체적 폭력 위협으로 이어지기도 했다.[5]
프래깅 발생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인력 수요 때문에 군은 장교와 사병 임명 기준을 낮추었고, 장교들의 잦은 인사이동은 군의 안정성과 결속력을 약화시켰다. 또한,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철수한다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전쟁 수행 목적을 상실한 병사들의 사기와 규율이 저하되었다.[5]
프래깅은 대부분 사병들이 장교를 대상으로 저질렀으며, "존 웨인 전술을 수행하고... 훈장을 받고... 신문에 사진이 실리기를 원하는" 지휘관에 대한 두려움이 주된 동기 중 하나였다.[5] 상급자의 부하 괴롭힘, 인종차별, 장교들의 약물 사용 통제 시도 등도 프래깅의 원인이 되었다. 알려진 대부분의 프래깅 사건은 전투 부대가 아닌 지원 부대 군인들에 의해 수행되었다.[5]
사병들은 때때로 비살상 연막탄과 최루탄을 사용하여 지휘관에게 경고하기도 했다. 특정 장교나 부사관을 프래깅하는 군인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현상금"이 내걸린 사례도 있었다.[5]
프래깅의 위협은 많은 장교와 부사관들이 후방 지역에서 무장을 하고 수면 방식을 바꾸도록 만들었다. 프래깅은 종종 목표가 잠자고 있는 텐트에 수류탄을 던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일부 지휘관들은 프래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병사들의 마약 사용이나 기강 문란 행위를 눈감아주기도 했다. 프래깅, 프래깅의 위협, 그리고 프래깅에 대한 조사는 때때로 전술 작전을 방해하거나 지연시켰으며, 장교들은 위험한 순찰을 수행하기 전에 부대원들과 협상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5]
프래깅을 포함한 기강 붕괴는 미국이 징병제 대신 모병제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마지막 징집병은 1973년에 입대했으며,[13][14] 모병제는 군대 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일부 강압적인 규율 방식을 완화했다.[5]
5. 더불어민주당 관점에서의 주요 인물 평가 (별도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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