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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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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언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 이후 관직에 복귀했다. 그는 기묘사화, 을사사화 등 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영의정에까지 올랐으며, 시서화에도 능했다. 1526년에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했으며,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김안로의 모함으로 파직되기도 했으나, 이후 복귀하여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인종 즉위 후에는 을사사화에 앞장섰으며, 사후에는 익성부원군에 봉해졌다. 저서로는 《묵재집》이 있으며, 검소한 생활과 엄격한 집안 법도로 칭송받았다. 그는 중종과 겹사돈 관계였으며, 선조와도 인척 관계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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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언필
기본 정보
홍언필의 초상
홍언필의 초상
본관남양(南陽)
언신(彦信)
허주(虛舟)
시호문경(文敬)
생애
출생1476년
사망1561년
가족
아버지홍심(洪深)
어머니정경부인 청주 한씨(淸州 韓氏)
배우자정경부인 파평 윤씨(坡平 尹氏)
아들홍섬
이조판서 심수경에게 출가
관력
과거문과 급제
주요 관직대사헌
이조판서
좌찬성
우찬성
영의정

2. 생애

홍언필은 1504년 갑자사화 때 전라도 진도로 유배되었다가,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났다. 1507년 중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쳤다. 1519년 기묘사화에 휘말려 조광조의 일파로 몰렸으나, 영의정 정광필의 변호로 풀려났다.

이후 형조참판, 대사헌, 공조참판, 동지사, 예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1526년 형조참판으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대사헌을 6번이나 지냈다. 각 조의 판서를 거쳐 1535년 우찬성이 되었으나, 김안로의 모함으로 파직당했다.

1537년 김안로가 실각하자 호조판서로 복직되었고, 우의정에 올랐다. 좌의정을 거쳐 1544년 영의정에 이르렀다. 인종 즉위 후 유관 등과 함께 원상이 되었다가 중추부영사로 전임되었다. 1545년 을사사화를 일으키는 데 앞장서 위사공신 2등에 책록되고 익성부원군에 봉해졌다.

1548년 좌의정영의정에 다시 임명되었고 궤장을 하사받았다. 시서화에 모두 능했으며, 문집으로 《묵재집》이 있다. 평소 검소하고 사치를 멀리했으며, 엄격한 집안 법도로 주변의 칭송을 받았다.

2. 1. 초기 생애

1504년 갑자사화에 휘말려 전라도 진도로 유배당했다가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와 1507년 중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전경, 저작, 설경, 사경, 부수찬, 정언, 검토관, 교리, 시독관, 지평, 전부, 헌납, 시강관, 응교, 장령, 부응교, 사간을 지냈다. 이후 홍문관 직제학, 동부승지, 우부승지, 병조참지를 지내고 1519년 사가독서 후 우승지가 되었으나 기묘사화에 휘말려 조광조의 일파로 몰려 투옥되었다. 그러나 영의정 정광필의 변호로 풀려났다. 이후 황해도관찰사와 병조참의, 도승지, 대사헌, 대사간, 동지성균관사 등을 지냈다.

2. 2. 관직 생활과 유배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에 휘말려 전라도 진도로 유배당했다가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와 1507년 중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전경, 저작, 설경, 사경, 부수찬, 정언, 검토관, 교리, 시독관, 지평, 전부, 헌납, 시강관, 응교, 장령, 부응교, 사간을 지내다가 이후 홍문관 직제학, 동부승지, 우부승지, 병조참지를 지냈다. 1519년 사가독서 후 우승지가 되었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에 휘말려 조광조(趙光祖)의 일파로 몰려 투옥되었으나 영의정 정광필의 변호로 풀려났다. 이후 황해도관찰사와 병조참의, 도승지, 대사헌, 대사간, 동지성균관사 등을 지냈다.

이후 형조참판, 대사헌, 공조참판, 동지사, 예조참판을 두루 거쳤다.

1526년 형조참판으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대사헌을 6번이나 역임하고 각 조의 판서를 거쳐 1535년 우찬성이 되었다가 김안로(金安老)의 모함으로 파직당했다. 당시 그는 대사헌, 이조판서,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호조판서, 병조판서, 좌참찬, 경기도관찰사를 거쳐 우찬성이 되었던 것이다.

1537년 김안로가 실각하자 호조판서로 복관되고 우의정에 올라 좌의정을 거쳐 1544년 영의정에 이르렀다. 인종이 즉위하자 유관 등과 함께 원상이 되었다가 중추부영사로 전임하고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일으키는 데 앞장서 위사공신 2등에 책록되고 익성부원군에 봉해졌다.

1548년 좌의정영의정에 재임되고 궤장을 하사받았다.

2. 3. 중종 대의 정치 활동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에 휘말려 전라도 진도로 유배되었다가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와 1507년 중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전경, 저작, 설경, 사경, 부수찬, 정언, 검토관, 교리, 시독관, 지평, 전부, 헌납, 시강관, 응교, 장령, 부응교, 사간을 지냈다. 이후 홍문관 직제학, 동부승지, 우부승지, 병조참지를 거쳐 1519년 사가독서 후 우승지가 되었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에 휘말려 조광조(趙光祖)의 일파로 몰려 투옥되었다. 그러나 영의정 정광필의 변호로 풀려났다. 이후 황해도관찰사, 병조참의, 도승지, 대사헌, 대사간, 동지성균관사 등을 역임했다.

이후 형조참판, 대사헌, 공조참판, 동지사, 예조참판을 두루 거쳤다.

1526년 형조참판으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대사헌을 6번이나 역임했다. 각 조의 판서를 거쳐 1535년 우찬성이 되었다가 김안로(金安老)의 모함으로 파직당했다. 당시 그는 대사헌, 이조판서,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호조판서, 병조판서, 좌참찬, 경기도관찰사를 거쳐 우찬성이 되었던 것이다.

2. 4. 인종 대의 활동과 을사사화

1544년 영의정에 이르렀다. 인종이 즉위하자 유관 등과 함께 원상이 되었다가 중추부영사로 전임하고,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일으키는 데 앞장서 위사공신 2등에 책록되고 익성부원군에 봉해졌다.

2. 5. 죽음과 평가

1548년 좌의정영의정에 재임되었고 궤장을 하사받았다. 시서화에도 모두 능했으며, 문집으로는 《묵재집》이 있다. 평소 몸가짐이 검소하고 사치스러운 것을 멀리하였으며, 집안의 법도가 엄격하여 주변의 칭송이 높았다고 전한다.[1]

3. 가계

홍언필의 가계는 다음과 같다.

3. 1. 혼인 관계

구 분내용
아버지홍형(洪泂)
어머니조충손의 딸
정실 부인여산 송씨[1]
자부측실
장녀남양 홍씨
사위윤진(尹珍) - 정현왕후의 조카이자 윤탕로의 아들
외손자윤유후
계실 부인정숙은의 딸
장인송질
처남송지한
처남댁의령 남씨
처조카송인 - 남곤의 외손자
처조카댁정순옹주 - 중종의 서녀


3. 2. 자녀

3. 3. 중종, 선조와의 관계

홍언필은 중종과 이중으로 사돈관계를 형성한다.

그는 중종과 겹사돈이 되는데, 그의 사위 윤진은 중종의 어머니 정현왕후의 오빠 윤탕로의 아들로, 중종과 내외종사촌이 된다. 홍언필의 처조카댁인 정순옹주는 중종과 숙원 이씨 소생 서녀 정순옹주이다.[1] 아들 홍섬의 딸인 손녀딸 남양군부인은 중종의 서자 덕흥대원군 이초의 장남 하원군 이정과 결혼한다.

이러한 관계들로 인하여 중종은 홍언필의 사위 윤진의 고종사촌형이면서, 처조카댁 정순옹주의 친정아버지이고, 손녀딸 남양군부인의 시할아버지가 된다.

선조는 홍언필의 사위 윤진의 내종질이면서 처조카댁 정순옹주의 조카이고, 손녀딸 남양군부인의 시숙이 된다.

4. 저서


  • 《묵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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