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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FIFA 월드컵 아프리카·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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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6년 FIFA 월드컵 아프리카·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은 1966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예선으로,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에 배정된 1장의 티켓을 놓고 경쟁했다. 아프리카 지역 예선은 FIFA의 결정에 항의하여 15개 팀이 기권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인해 실격, 일본은 올림픽 규정으로 불참했다. 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오스트레일리아만이 예선에 참가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승리하여 본선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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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FIFA 월드컵 아프리카·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 [국제 축구 대회 정보]에 관한 문서
대회 정보
대회 명칭1966년 FIFA 월드컵 예선 (AFC 및 OFC)
연도1966년
개최국해당 없음
기간1965년 11월 21일 – 1965년 11월 24일
참가 팀 수2
참가 연맹2
경기 수2
총 득점11
최다 득점자박승진 (3골)
이전 대회1962 (AFC) ← 1962 (CAF)
다음 대회1970 (AFC 및 OFC) → 1970 (CAF)

2. 예선 방식

1966년 FIFA 월드컵 아프리카·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은 당초 4라운드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 '''아프리카 1라운드''': 아프리카 15개 팀이 2~3개 팀으로 구성된 6개 조로 나뉘어 경기를 치러 각 조의 승자가 2라운드에 진출한다.
  • '''아프리카 2라운드''': 6개 조 승자는 3개 조로 나뉘어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대결, 각 조 승자가 최종 라운드에 진출한다.
  • '''아시아-오세아니아 1라운드''': 오스트레일리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한민국이 중립 지역에서 풀 리그 방식으로 경기를 치른다. 원래 일본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캄보디아에서 개최되었다.
  • '''최종 라운드''': 아시아/오세아니아 승자는 아프리카 3개 팀과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경기를 치러 승리 팀이 본선에 진출한다.


하지만 FIFA가 아프리카 팀에게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직접 배정하는 것을 거부하자, 아프리카 15개 팀이 모두 항의하며 기권하여 아프리카 지역 예선은 취소되었다.[1]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에서는 대한민국은 물류 문제, 남아프리카 공화국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인해 기권하였다. 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오스트레일리아만 경기를 치렀고, 노로돔 시아누크 국가 원수가 김일성과의 동맹 관계를 통해 프놈펜에서 경기를 개최하도록 허가하여, 두 팀의 경기는 모두 캄보디아에서 개최되었다.

결과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프리카와의 대륙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으나, 모든 아프리카 팀들이 기권하면서 최종 라운드는 취소되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본선에 진출했다.

2. 1. 아프리카 지역 예선

아프리카 축구 연맹 소속 15개 팀이 참가하였다. 아프리카 지역 예선은 본래 다음과 같이 치를 예정이었다.



2라운드 대진은 1조 우승팀 대 5조 우승팀, 2조 우승팀 대 4조 우승팀, 3조 우승팀 대 6조 우승팀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 경기는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되며, 승자는 최종 라운드로 진출하게 된다.

그러나, FIFA가 아프리카 팀에게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직접 배정하는 것을 거부하자, 15개 팀이 모두 항의하며 기권함에 따라, 아프리카 1라운드와 2라운드는 취소되었다.[1]


  • 1차 예선: 2팀 소속 4개 그룹과 3팀 소속 2개 그룹, 총 6개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각 그룹 1위 6개 팀이 2차 예선에 진출한다.
  • 2차 예선: 각 그룹 2팀, 총 3개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각 그룹 1위 3개 팀이 3차 예선에 진출한다.
  • 3차 예선: 3팀 풀 리그 방식으로 진행되며, 1위가 최종 예선에 진출한다.

2. 2.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AFC영어, OFC영어 소속 4개 팀이 참가하여 1차 예선을 치렀다.

팀 1합계팀 21차전2차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9-2오스트레일리아6-13-1



원래 이 대회는 일본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며, 오스트레일리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한민국 4개 팀 간의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해 FIFA로부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아 실격되었고, 대한민국은 토너먼트가 캄보디아로 변경된 후 물류 문제로 기권하게 되었다.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부분의 국가와 외교 관계가 없었고 FIFA 기준의 경기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당시 시행 중이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이민법 때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팀이 비자를 받기 어려웠다는 점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기를 개최할 장소를 찾는 것이 어려워졌는데, 노로돔 시아누크 국가 원수가 김일성과의 동맹 관계를 통해 프놈펜에서 경기를 개최하도록 허가했다. 이에 따라 두 팀의 홈 앤 어웨이 경기는 모두 제3국인 캄보디아에서 개최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 경기의 결과로 아프리카와의 대륙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이후 모든 아프리카 팀들이 기권하면서 최종 라운드는 취소되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본선에 진출했다.

2. 3. 최종 라운드

최종 예선은 아프리카 예선 1위와 아시아·오세아니아 예선 1위, 총 2개 팀이 2경기를 치러 승리한 팀이 본선 출전권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3. 아프리카 지역 예선 (취소)

아프리카 지역 예선은 본래 15개 팀이 참가하여 1라운드와 2라운드를 거쳐 최종 라운드 진출 팀을 가릴 예정이었다. 2라운드는 1조와 5조, 2조와 4조, 3조와 6조 승자 간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될 계획이었다.[1] 그러나 FIFA가 아프리카 팀에게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직접 배정하는 것을 거부하자, 15개 팀이 모두 항의하며 기권하면서 모든 경기가 취소되었다.[1]

3. 1. 1라운드 조 편성 (취소)

원래 조 추첨은 다음과 같았다.

1조2조3조4조5조6조



FIFA가 아프리카 팀에게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직접 배정하는 것을 거부하자, 15개 팀이 모두 항의하며 기권함에 따라 아프리카 1라운드는 취소되었다.[1]

4.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원래 이 대회는 일본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오스트레일리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한민국 4개 팀 간의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인해 FIFA로부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아 실격되었고, 대한민국은 토너먼트 장소가 캄보디아로 변경된 후 물류 문제로 기권하게 되었다.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부분의 국가와 외교 관계가 없었고 FIFA 기준의 경기장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오스트레일리아의 이민법 때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팀이 비자를 받기 어려웠다는 점도 문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캄보디아의 국가 원수 노로돔 시아누크가 김일성과의 동맹 관계를 바탕으로 프놈펜에서 경기를 개최하도록 허가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오스트레일리아의 경기가 캄보디아에서 열리게 되었다.

4. 1. 경기 결과



두 팀의 홈 앤 어웨이 경기는 모두 제3국인 캄보디아에서 개최되었다.

승점경기득점실점득실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4220092+7
호주0200229-7


  • ---

1965년 11월 21일, 캄보디아 프놈펜의 국립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첫 경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호주를 6-1로 대파했다. 박두익이 전반 15분에 선제골을 넣었고, 박승진이 두 골(54분, 80분), 임승휘가 58분에, 한봉진이 두 골(65분, 88분)을 추가하며 대승을 이끌었다. 호주는 셰인플루그가 페널티킥(70분)으로 한 골을 만회하는 데 그쳤다. 이 경기에는 60,000명의 관중이 운집했으며, 주심은 말레이시아의 패트릭 나이스였다.[1]

1965년 11월 24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두 번째 경기에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호주를 3-1로 꺾었다. 호주의 셰인플루그가 전반 15분에 선제골을 넣었지만, 김승일이 두 골(18분, 75분)을 터뜨리며 역전했고, 박승진이 53분에 추가골을 넣어 승리를 확정지었다. 이 경기에는 40,000명의 관중이 들어찼으며, 주심은 싱가포르의 A. G. 데 실바였다.[2]

두 경기 합계 9-2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크게 승리했다. 원래 아프리카 팀들과의 대륙간 플레이오프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모든 아프리카 팀들이 기권하면서 최종 라운드는 취소되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자동으로 1966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3]

5. 논란

원래 이 대회는 일본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여러 문제로 인해 변경되었다. 당초 오스트레일리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한민국 4개 팀이 참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회가 시작되기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인해 FIFA로부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아 실격되었다.[1] 대한민국은 대회가 캄보디아로 변경된 후 물류 문제로 기권하였다.[1]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부분의 국가와 외교 관계가 없었고, FIFA 기준에 맞는 경기장도 없었다.[1]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이민법 때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팀이 비자를 받기 어려웠다.[1]

이러한 상황에서 노로돔 시아누크 국가 원수가 김일성과의 동맹 관계를 바탕으로 프놈펜에서 경기를 개최하도록 허가하면서 문제가 해결되었다.[1]

결국 최종 예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두 팀 간의 경기로 진행되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합계 9-2로 승리하여 본선 진출권을 획득하였다.[1]

한편, 아프리카 축구 연맹은 3개 지역(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에 단 1장의 출전권이 주어진 것에 대해 FIFA에 항의했으나 기각되었고, 이에 반발하여 아프리카 연맹 소속 15개 팀이 기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1]

6. 최종 결과

1966년 FIFA 월드컵 아프리카·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최종 결과, 아프리카 팀들이 모두 기권함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자동으로 본선에 진출하였다.

경기승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부전승
아프리카 지역 승자 A기권
아프리카 지역 승자 B기권
아프리카 지역 승자 C기권


참조

[1] 문서 At the start of the qualification for the 1966 FIFA World Cup, there were 21 teams from three confederations who entered, but the entries of the [[Philippines national football team|Philippines]] and the [[Congo national football team|Republic of the Congo]] were rejected. Subsequently, all 15 African teams withdrew in protest after [[FIFA]], citing competitive and logistical issues, confirmed that there would be no direct qualification for an African team. [[South Korea national football team|South Korea]], [[South Africa national soccer team |South Africa]], [[North Korea national football team|North Korea]] and [[Australia men's national soccer team|Australia]] were entered in the Asia/Oceania First Round, but [[South Africa national soccer team |South Africa]] were disqualified after being suspended due to apartheid, and after the matches were moved from [[Japan national football team|Japan]] to [[Cambodia national football team |Cambodia]], [[South Korea national football team|South Korea]] were forced to withdraw due to logisticial issues. Thus, only [[North Korea national football team|North Korea]] and [[Australia men's national soccer team|Australia]] played.
[2] 문서 There were three confederations entered, but all African teams withdrew.
[3] 웹사이트 History of the FIFA World Cup Preliminary Competition (by year) https://web.archive.[...] 2022-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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