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U-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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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SU-152는 1943년 소련에서 개발된 자주포로, SU-152의 후속 모델이다. IS-2 전차의 차체를 기반으로 152.4mm ML-20S 곡사포를 장착하여 중(重) 돌격포, 중(重) 전차 구축차, 중(重) 자주포병 역할을 수행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독일군의 중(重)전차를 파괴하는 데 기여했으며, 이후 한국전쟁, 중동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등 여러 분쟁에서 사용되었다. ISU-152는 다양한 파생형이 존재하며, 1947년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총 3,242대가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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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U-152 | |
---|---|
개요 | |
![]() | |
종류 | 돌격포 |
형식명 | Самоходная установка на базе танка ИС с орудием калибра 152мм (자주포가 IS 전차 기반인 152mm 구경의 총으로) |
별칭 | Зверобой (즈베로보이) |
생산 및 사용 | |
개발 국가 | 소련 |
설계 | 제100호 공장 설계국 |
제작사 | 첼랴빈스크 키로프스크 공장 (1946년까지, ISU-152M도 생산) 레닌그라드 키로프 공장 (1945년 소량 생산, ISU-152K도 생산) |
생산 기간 | 1943년–1959년 |
생산량 | 4,635대 |
사용 국가 | 소련 핀란드 폴란드 중국 체코슬로바키아 북한 이집트 루마니아 |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1956년 헝가리 혁명 이집트-이스라엘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
변형 | |
변형 | ISU-152 (ML-20) ISU-152-2 (BL-10) ISU-152 모델 1945 ISU-152K (ML-20) ISU-152M (ML-20) |
제원 | |
중량 | 최대 47.3톤 |
전장 | 9.18m |
전폭 | 3.07m |
전고 | 2.48m |
승무원 | 4명 또는 5명 |
장갑 | ISU-152, ISU-152-2: 120mm (포방패, 최대) 90mm (하부 차체 전면, 하부 차체 측면, 상부 구조 전면) 75mm (상부 차체 측면) 60mm (상부 차체 전면) ISU-152 모델 1945: 320mm (포 주변) |
주무장 | 152.4mm ML-20S 곡사포 (ISU-152) (18발) 152.4mm BL-8 또는 BL-10 포 (ISU-152-2) (21발) 152.4mm ML-20SM 모델 1944 곡사포 (ISU-152 모델 1945) (20발) |
부무장 | ISU-152, ISU-152-2, ISU-152K: 12.7×108mm DShK 대공 기관총 (ISU-152, ISU-152-2: 200발, ISU-152K: 300발) ISU-152M: 12.7mm DShKM 대공 기관총 (300발) ISU-152 모델 1945: 12.7×108mm DShK 대공 기관총 (300발) 12.7×108mm DShK 동축 기관총 |
엔진 | 12기통 V-2IS 디젤 엔진 |
엔진 출력 | 520마력 (382kW) |
마력 대 중량비 | 11마력/톤 |
변속기 | 기계식 |
현가 장치 | 토션 바 |
지상고 | 470mm (ISU-152) 450mm (ISU-152 모델 1945) |
연료 용량 | 560리터 (최대, 내부 연료 탱크) 920리터 (ISU-152K, ISU-152M, 내부 연료 탱크) 360리터 (최대, 4개의 외부 연료 탱크, 공급 시스템에 연결되지 않음) |
항속 거리 | 120km (야지, 내부 연료 탱크) 200km (포장 도로, 최대, 내부 연료 탱크) 260km (포장 도로, 외부 연료 탱크 2개) 320km (포장 도로, 외부 연료 탱크 4개) 320km (ISU-152K, ISU-152M, 포장 도로, 내부 연료 탱크) |
속도 | 30km/h (포장 도로) 15-20km/h (야지) 40km/h (ISU-152 모델 1945, ISU-152K, ISU-152M, 포장 도로) |
2. 역사
ISU-152는 1943년 1월 24일 SU-152의 첫 번째 시제품 공개와 함께 시작되었다. SU-152는 KV-1S 전차 차체에 152mm 곡사포를 장착한 자주포였다. SU-152는 전투에서 성공했지만, KV-1S 전차 생산이 중단되면서 IS 전차 차체를 사용한 현대화가 필요했다. 1943년 11월 6일, 개선된 ISU-152 (ИСУ-152|ISU-152ru)가 채택되었고, 12월부터 SU-152를 대체하여 생산이 시작되었다.[2][3]
2. 1. 개발 배경
ISU-152는 SU-152의 성공적인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SU-152는 KV-1S 전차 차체에 152mm 곡사포를 장착한 자주포로, 1943년 1월에 첫 시제품이 공개되었다.[2][3] '프로젝트 236'으로 명명된 이 시제품은 첼랴빈스크의 100번 공장에서 제작되어 성공적인 시험을 거쳤고, 1943년 2월 '''KV-14'''라는 제식명칭으로 채택되어 생산에 들어갔다. 이후 4월에는 SU-152로 명칭이 변경되었다.SU-152는 전투에서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지만, KV-1S 전차 생산이 중단되면서 새로운 IS 전차 차체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화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1943년 5월, 100번 공장은 SU-152 현대화 작업을 시작했고, 요제프 코틴과 G. N. 모스크빈의 감독하에 개발이 진행되었다.
'''IS-152'''로 명명된 새로운 디자인은 1943년 9월부터 11월까지 시험을 거쳤으나, 여러 결함이 발견되어 추가 개선이 필요했다. 1943년 11월 6일, 개선된 모델이 ISU-152 (ИСУ-152ru)라는 이름으로 채택되었고, 12월부터 첼랴빈스크 키로프 공장에서 SU-152를 대체하여 생산되기 시작했다.[2][3]
KV-1S 중전차를 기반으로 한 SU-152는 강력한 화력으로 적의 방어 거점과 중전차를 파괴하며 성공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KV-1S의 후속 차체에도 동일한 섀시를 활용한 자주포 개발이 요구되었다. 신형 자주포 개발은 IS-1 중전차 개발과 함께 진행되었으며, 오브젝트 241이라는 시제 차량이 완성되었다. 이 차량은 1943년 여름 국방위원회(GKO)에 제출되어 ISU-152로 채택되었고, 12월에는 ISU-122와 함께 첫 35대가 생산되었다.
ISU-152는 SU-152의 레이아웃을 거의 그대로 계승했지만, IS형 섀시가 더 낮아 상부 전투실이 더 높아졌다. 차장 및 포수용 해치는 IS-1/2 중전차의 큐폴라와 유사한 양문형으로 변경되었고, 후기 생산 차량에는 차장용 해치에 기관총 거치대가 추가되었다. SU-152에서 사용되던 전투실 천장 주위의 고정식 잠망경은 제거되고, 회전식 MK4 잠망경이 해치 위에 장착되었다.
전투실 천장은 SU-152와 달리 전면은 용접, 후반 부분만 볼트로 고정되었다. 이는 피탄 시 폭풍을 피하기 위한 조치라는 오해가 있었으나, 실제로는 탄약고가 전투실 좌우와 하부에 분산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44년 2월, ISU-152는 독립 중자주포 연대(OTSAP)에 21대씩 배치되었고, 1944년 말부터는 전차군 직할 특별 기계화 포병 여단에 65대씩 배치되었다. ISU-152와 ISU-122는 종전까지 53개 부대에 편성되어 운용되었다. 특히 1944년 여름 바그라티온 작전에서 최소 14개 연대가 투입되어 활약했으며, 쾨니히스베르크나 베를린과 같은 시가전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ISU-152는 ISU-122에 비해 발사 속도와 포구 초속이 느려 대전차전에 불리했지만, 당시 중전차 수준의 장갑을 가진 전차는 유탄으로도 충분히 파괴할 수 있었다. 또한, 철갑탄이 관통하지 못하더라도 장갑 내부 파편을 발생시켜 승무원을 살상하거나, 충격으로 장비를 파괴하여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 수 있었다.
독일군 중전차에 대응하기 위해 더 강력한 장갑 관통력을 가진 포를 탑재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오브젝트 246(ISU-152-1)은 긴 포신의 152mm BL-8 포를, 오브젝트 247(ISU-152-2)은 BL-10 포를 탑재했다. 또한, 130mm 해군포 S-26을 탑재한 오브젝트 250(ISU-130)도 제작되었지만, 모두 양산되지는 않았다. IS-3 차체를 기반으로 전면 장갑 120mm의 경사진 전투실을 가진 오브젝트 704(ISU-152 1945년형)도 채택되었으나, 본격적인 양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 2. 개발 과정
ISU-152의 개발은 SU-152의 성공적인 데뷔에서 시작되었다. SU-152는 KV-1S 전차 차체에 152mm 곡사포를 탑재한 자주포로, 1943년 1월 24일 첫 번째 시제품 Объект 236ru이 공개되었다. 이 시제품은 첼랴빈스크의 100번 공장에서 제작되어 1943년 1월 24일부터 2월 7일까지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2월 14일 '''KV-14'''라는 이름으로 채택되어 생산에 들어갔다. 1943년 4월에는 SU-152로 명칭이 변경되었다.[2][3]SU-152가 전투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KV-1S 전차 생산이 중단되면서 IS 전차 차체를 사용한 현대화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1943년 5월 25일, 100번 공장은 SU-152 현대화 명령을 받았고, 여기에는 장갑 강화 및 기타 개선 사항이 포함되었다. 1943년 7월, 요제프 코틴과 G. N. 모스크빈의 감독하에 개발이 시작되었다.[2][3]
'''IS-152''' (''ИС''-152)로 명명된 새로운 디자인은 1943년 9월부터 11월까지 테스트를 거쳤지만, 많은 결함이 발견되어 추가 개선을 위해 되돌려졌다. 1943년 11월 6일, 개선된 ISU-152 (ИСУ-152ru)를 채택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12월에는 SU-152를 대체하여 첼랴빈스크 키로프 공장에서 생산이 시작되었다.[2][3]
KV-1S 중전차를 기반으로 한 SU-152의 성공으로, 후계 차체인 IS-85(후에 IS-1로 불림)를 사용한 자주포 개발이 요구되었다. 오브젝트 241이라는 시제차가 완성되어 1943년 여름 국방위원회(GKO)에 제시되었고, ISU-152로 채택되었다. 12월에는 ISU-122와 함께 첫 35량이 생산되었다.
ISU-152는 SU-152의 레이아웃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IS형 섀시가 낮아 상부 전투실은 높아졌다. 차장 및 포수용 해치는 IS-1/2 중전차의 큐폴라와 거의 동일한 양문형이었고, 후기 생산 차체에서는 차장용 해치에 기관총 거치대가 장착되었다. 후방의 장전수 해치 위에는 회전식 MK4 잠망경이 장착되었고, SU-152의 고정식 잠망경은 제거되었다.
전투실 천장은 SU-152와 달리 전반부는 용접, 후반 부분만 볼트 고정으로 개조되었다. 이는 피탄·유폭 시 폭풍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탄약고가 전투실 좌우와 하부에 분산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이다.
1944년 2월, ISU-152는 독립 중자주포 연대(OTSAP)에 21량씩 배치되었고, 1944년 말부터는 전차군 직할 특별 기계화 포병 여단에 65량씩 배치되었다. ISU-152와 122는 종전까지 53개 부대에 편성되었다. 중자주포 연대는 1944년 여름 바그라티온 작전부터 본격적으로 활약했으며, 최소 14개 연대가 투입되었다. 쾨니히스베르크나 베를린과 같은 시가전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ISU-152는 ISU-122보다 발사 속도와 포구 초속이 느렸지만, 당시 중전차는 유탄으로도 파괴 가능했고, 철갑탄이 관통하지 않아도 장갑 내벽을 박리·비산시켜 승무원을 살상하거나, 충격으로 고장을 일으켜 전투 불능으로 만들 수 있었다.
새로운 독일군 중전차에 대비하여, 더 강력한 포를 탑재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긴 포신의 152mm 포인 BL-8을 탑재한 오브젝트 246(ISU-152-1), BL-10을 탑재한 오브젝트 247(ISU-152-2), 130mm 해군포 S-26을 탑재한 오브젝트 250(ISU-130)이 제작되었지만, 양산되지는 않았다. IS-3 차대를 사용하고 전면 장갑 120mm의 방탄 경사각을 도입한 전투실을 가진 오브젝트 704(ISU-152 1945년형)도 채택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양산되지는 않았다.
2. 3. 제2차 세계 대전
KV-1S 중전차를 기반으로 한 SU-152가 강력한 화력으로 적의 방어 시설과 중전차를 파괴하며 성공을 거두자, KV-1S의 후속 차체를 이용한 자주포 개발이 필요하게 되었다. 새로운 자주포 개발은 IS-1이라고 불리게 된 IS-85 중전차 개발과 함께 진행되었으며, 오브젝트 241이라는 시제 차량이 완성되었다. 1943년 여름, 이 차량은 소련 국방위원회(GKO)에 제출되어 ISU-152로 채택되었고, 12월에는 ISU-122와 함께 첫 35대가 생산되었다.ISU-152는 성공적인 SU-152의 설계를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다. 전투실 형태는 비슷하지만, KV 계열보다 낮은 IS형 섀시 덕분에 상부 전투실은 더 높아졌다. 차장 및 포수용 해치는 IS-1/2 중전차의 큐폴라와 거의 동일한 양문형으로 변경되었고, 후기 생산 차량에는 차장용 해치에 기관총 거치대가 추가되었다. 이 두 해치와 후방 장전수 해치 위에는 회전식 MK4 잠망경이 장착되었고, SU-152에 사용되던 전투실 천장 주변의 고정식 잠망경은 제거되었다.
전투실 천장은 전면이 볼트로 고정되었던 SU-152와 달리, ISU-152에서는 후반부만 볼트로 고정되고 전반부는 용접되었다. 이는 포탄에 맞거나 폭발이 일어날 때 쉽게 떨어져 나가 폭풍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탄약고가 아래에 없었고 전투실 좌우와 하부에 탄약과 장약이 분산 배치되어 있었다.
1944년 2월, ISU-152는 군 또는 야전군 직할 독립 중자주포 연대(OTSAP)에 21대씩 배치되었고, 1944년 말부터는 전차군 직할 특별 기계화 포병 여단에 65대씩 배치되었다. ISU-152와 ISU-122는 종전까지 53개 부대에 편성되었다. 중자주포 연대는 1944년 여름 바그라티온 작전부터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으며, 최소 14개 연대가 투입되었다. 쾨니히스베르크나 베를린과 같은 시가전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했다. ISU-152는 ISU-122에 비해 포의 발사 속도와 포구 초속이 느려 대전차전에 적합하지 않았지만, 당시 중전차 수준이라면 많은 양의 유탄으로도 파괴할 수 있었다. 철갑탄이 관통하지 못하더라도 장갑 내부를 찢어지게 하고 파편을 흩날리게 하여 승무원을 죽이거나, 충격으로 장비를 파괴하거나 고장을 일으켜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 수 있었다.
새로운 독일군 중전차에 대응하기 위해 더 강력한 장갑 관통력을 가진 포를 탑재하는 시도도 있었다. 긴 포신의 152mm 포인 BL-8을 탑재한 오브젝트 246(ISU-152-1), BL-10을 탑재한 오브젝트 247(ISU-152-2), 130mm 해군포 S-26을 탑재한 오브젝트 250(ISU-130)이 제작되었지만, 모두 양산되지는 않았다. 또한 IS-3 차체를 사용하여 전면 장갑 120mm의 방탄 경사를 도입한 전투실을 가진 오브젝트 704(ISU-152 1945년형)도 제작되어 채택되었지만, 본격적인 양산에는 이르지 못했다.
2. 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한국 전쟁에서 조선인민군이 ISU-152를 사용했다.[3] 1960년대 이집트에 수출된 ISU-152는 제3차 중동 전쟁과 제4차 중동 전쟁에 투입되었다.[3] 이란-이라크 전쟁과 걸프 전쟁에는 구 이라크군이 사용 가능한 ISU-152를 투입했다.[3]
3. 설계
ISU-152는 SU-152와 동일한 주포를 사용했지만, KV-1S 대신 IS-1 전차의 차체를 사용했다. 전쟁 후반에는 IS-2 1944년형 전차 차체를 사용하고 포방패 장갑을 늘리는 등 개선이 이루어졌다.[4]
차장 및 포수용 해치는 IS-1/IS-2 중전차의 큐폴라와 거의 동일한 양문형이었으며, 후기 생산 차체에서는 차장용 해치에 기관총 거치대가 장착되었다. 이 두 해치와 후방 장전수 해치 위에는 회전식 MK4 잠망경이, SU-152에 있던 전투실 천장 주위 고정식 잠망경은 제거되었다.
전투실 천장은 SU-152와 달리 앞부분은 용접, 뒷부분만 볼트로 고정되었다.
현가장치는 양쪽에 6개 로드 휠을 위한 12개 토션 바로 구성되었다. 구동 스프로킷은 뒤쪽에, 앞쪽 아이들러는 로드 휠과 동일했다. 각 트랙은 90개 링크로 구성되었다. 내부 연료 탱크는 3개였으며, 보통 4개 외부 연료 탱크로 보충되었다. 전력은 4개 축전지 배터리에 공급되는 1kW 발전기에서 나왔다.[4]
일부 ISU-152에는 4개 외부 연료 탱크 외에 더 큰 외부 연료 탱크가 장착되기도 했다.
독일군 중전차에 대응하기 위해 긴 포신 152mm BL-8 (오브젝트 246, ISU-152-1), BL-10 (오브젝트 247, ISU-152-2), 130mm 해군포 S-26 (오브젝트 250, ISU-130) 탑재 시도가 있었으나 양산되지는 않았다. IS-3 차대에 전면 장갑 120mm 경사 장갑을 적용한 오브젝트 704(ISU-152 1945년형)도 채택되었지만 본격 양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3. 1. 승무원
ISU-152는 대부분의 소련 자주포와 동일한 설계를 따랐다. 차체는 완전히 장갑화되어 두 구획으로 나뉘었다. 차체 전면에는 승무원, 주포, 탄약을 위한 전투실이, 차체 후면에는 엔진과 변속기가 위치했다. 주포는 중심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장착되었으며 좌우로 12도 회전이 제한되었다. 승무원은 4명 또는 5명으로 차체 상부에 배치되었다. 주포 왼쪽에 3명이 배치되었는데, 운전수가 전면에, 포수가 그 뒤에, 마지막으로 탄약수가 배치되었다. 전차장과 약실 조작수(주포 약실 작동)는 오른쪽에 위치했는데, 전면에 전차장, 뒤에 약실 조작수가 배치되었다. 승무원이 4명일 경우, 약실 조작수가 장전을 수행했다.[4]내부 관측을 위해 모든 지붕 해치에는 잠망경이 있었고, ST-10(СТ-10) 망원 조준경과 파노라마 조준경 두 가지가 있었다. 승무원 통신을 위해 TPU-4-BisF 인터컴이 장착되었으며, 차량 간 통신을 위해 단일 10R 또는 10RK 무전기가 있었다. 이것들은 전쟁 초기 소련 장비보다 나았지만 독일 장비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했다.[4]
승무원에게는 근거리 자위용으로 PPSh-41 기관단총 2정과 탄약 1491발, F1 수류탄 20개가 지급되었다.[4]
3. 2. 주포
ISU-152는 SU-152와 동일한 주포를 사용했지만, KV-1S 대신 IS-1 전차의 차체를 사용했다. 152.4mm 주포는 여러 종류의 강력한 탄약(탄 및 장약)을 사용했다. 탄약의 종류로는 43.56kg의 고폭탄, 48.78kg의 철갑탄, 그리고 가장 무거운 56kg의 포탄을 사용하는 53-G-545(53-Г-545) 장거리 콘크리트 관통탄 등이 있었다. ISU-152는 직접 사격 방식으로 적의 요새화된 진지를 공격하는 보병 및 전차 지원, 간접 사격 방식으로 전장에서의 포병 지원, 그리고 직접 사격 방식으로 장갑차량과의 교전에 사용되었다.[4][5]
ISU-152는 판터 전차, 티거 I, 티거 II, 엘레판트, 야크트티거 등의 중장갑 전차를 파괴할 수 있었다. 그러나 152.4mm 포탄의 무게 때문에 발사 속도는 분당 2~3발로 낮았고, 장거리 명중률도 고속 전차포나 대전차포보다 떨어졌다. 하지만 대형 고폭탄의 폭발력은 티거 전차의 포탑을 날려버릴 정도였으며, 직격탄은 궤도와 현가 장치를 파괴하여 기동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152mm 고폭탄은 두꺼운 장갑을 관통하지는 못했지만, 파편과 폭발 충격으로 승무원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4][5]
쿠르스크 전투 이후 대전차 철갑탄이 개발되었으나, 비싸고 공급이 부족하여 표준 고폭탄보다 약간 더 효과적인 수준이었다. 대전차 역할에는 콘크리트 관통탄이 사용되기도 했고, 원시적인 성형작약탄도 개발되었지만 전쟁 중에는 사용되지 않았다.[4][5]
ISU-152는 독일의 야크트판터나 소련의 SU-100 같은 전문 전차 구축차에 비해 발사 속도가 매우 낮았다. 내부 탄약 적재 공간은 20~21발로 제한되었고, 탄약 보급에는 40분 이상이 소요되었다. 포탄 무게는 40kg 이상이었다. 직사 사격에는 ST-10 망원 조준경(900m까지 눈금), 간접 사격에는 파노라마 조준경(3500m)이 사용되었으나, 포수가 두 조준경을 전환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일반적인 탄약 보급은 고폭탄 13발과 철갑탄 또는 대 콘크리트 관통탄 7발이었다.[4][5]
탄약 | 탄약 종류 | 포탄 종류 | 포탄 무게 | 관통력(최대) | 1,000미터 | 1,500미터 | 2,000미터 |
---|---|---|---|---|---|---|---|
53-OF-540 | 장거리 고폭탄 | 강철 포탄 | 43.56kg | ||||
53-OF-530 | 장거리 고폭탄 | 곡사포 강철 포탄 | 40 kg | ||||
53-BR-540 | 철갑탄 | 뾰족한 노즈 포탄 (탄도 캡 없음) | 48.78 kg | RHA 125 mm, 90° (500미터) | 115 mm (123 mm) | 105 mm | 90 mm |
53-BR-540B (1944년 말 채택) | 철갑탄 | 평평한 노즈 포탄 (탄도 캡 포함) | 46.5 kg | RHA 130 mm, 90° (500미터) | 120 mm | 115 mm | 105 mm |
53-BP-540 (제2차 세계 대전 중 사용되지 않음) | 철갑탄 | 성형 작약탄 | 27.44 kg | RHA 250 mm, 90° (수직에서 30°에서 220 mm) (수직에서 60°에서 120 mm) | |||
해군, 1915/1928년 모델 | 반철갑탄 | 51.07 kg | RHA 136 mm, 90° (100미터) (500미터에서 128 mm) | 119 mm | 111 mm | 105 mm | |
53-G-530 | 장거리 대 콘크리트 관통탄 | 곡사포 포탄 | 40 kg | 약 1미터의 철근 콘크리트 | |||
53-G-545 | 장거리 대 콘크리트 관통탄 | 포탄 | 56 kg |
장갑 관통력은 탄약 배치 및 다양한 압연 균질 장갑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KV-1S 중전차를 기반으로 한 SU-152가 성공하면서, KV-1S의 후계 차체를 이용한 자주포 개발이 요구되었다. 오브젝트 241 시제차가 완성되어 1943년 여름 GKO(국방위원회)에 제시되었고, ISU-152로 채택되었다.
ISU-152의 레이아웃은 SU-152와 유사하며, 전투실 형상도 비슷하지만, IS형 섀시가 낮아 상부 전투실은 더 높아졌다.
새로운 독일군 중전차에 대응하기 위해 더 강력한 포를 탑재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오브젝트 246(ISU-152-1, 긴 포신의 152mm BL-8 탑재), 오브젝트 247(ISU-152-2, BL-10 탑재), 오브젝트 250(ISU-130, 130mm 해군포 S-26 탑재) 등이 제작되었지만, 모두 양산되지는 않았다.
3. 3. 장갑
ISU-152는 대부분의 소련 자주포와 동일한 설계를 따랐다. 완전히 장갑화된 차체는 전투실과 엔진/변속기 구획으로 나뉘었다. 주포는 중심에서 약간 오른쪽에 장착되었으며 좌우 12도 회전이 가능했다. 승무원은 차체 상부에 배치되었으며, 주포 왼쪽에 운전수, 포수, 탄약수가, 오른쪽에 전차장과 약실 조작수가 위치했다.1944년 후반에 생산된 ISU-152는 IS-2 1944년형 전차의 차체를 사용했고, 포방패 장갑이 증가했다. 또한, IS-3의 차대를 사용하여 전면 장갑 120mm에 방탄 경사를 도입한 전투실을 가진 오브젝트 704(ISU-152 1945년형)도 제작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양산되지는 않았다.
3. 4. 기타
ISU-152는 소련의 다른 자주포들과 유사한 설계를 따랐다. 차체는 전투실과 엔진/변속기 구획으로 나뉘었고, 승무원은 4~5명이었다. 주포 왼쪽에 운전수, 포수, 탄약수가 위치했고, 오른쪽에 전차장과 약실 조작수가 있었다. 승무원이 4명일 때는 약실 조작수가 장전을 겸했다.[4]내부 관측을 위해 지붕 해치에 잠망경이, ST-10 망원 조준경과 파노라마 조준경이 사용되었다. 승무원 간 통신은 TPU-4-BisF 인터컴, 차량 간 통신은 10R 또는 10RK 무전기를 사용했다. 승무원에게는 PPSh-41 기관단총 2정과 탄약 1491발, F1 수류탄 20개가 지급되었다.[4]
전쟁 후반, ISU-152는 포방패 장갑이 두꺼워지고, 주포가 교체되었으며, 12.7×108 mm DShK 대공 기관총이 설치되었다. 또한 탄약 적재량이 늘어나고, 10R 무전기가 10RK로 교체되었으며, 연료 용량이 증가했다. 일부 차량에는 더 큰 외부 연료 탱크가 장착되기도 했다.[4]
1943년 12월부터 1945년 5월까지 1,885대의 ISU-152가 생산되었고, 총 생산량은 3,242대였다.[4]
전후 ISU-152는 야간 투시 조준경, V-54K 엔진, 개량된 12.7mm 기관총, 탄약 적재량 30발로 증가, 추가 장갑, 자동차 개선 및 주 연료 용량 증가 등 현대화가 이루어졌다.[4][5]
1959년에 개발된 ISU-152의 최종 개량형인 '''ISU-152M'''은 IS-2M 프로그램과 함께 개발되었다. 야간 투시 장치, 개선된 DShKM 기관총, 내부 자동차 개선 등이 이루어졌다. ISU-152K와 같은 새로운 지휘관용 큐폴라와 조준경을 갖추었으며, 주행 거리가 증가했다. 주포의 최대 사거리는 13000m였다. 상부 포방패 전면 장갑은 더 두꺼운 추가 장갑판으로 강화되었고, 히터가 장착된 V-54K 엔진을 사용했지만 냉각 시스템은 없었다.[8]
4. 파생형
ISU-152는 다양한 파생형이 존재한다.
- '''ISU-152''' : 1943년부터 생산된 기본형으로, 152mm 곡사포를 장착했다.
- '''ISU-122''' : 122mm 포를 장착한 형식으로, 1943년부터 생산되었다.
- '''오브젝트 246''' (ISU-152-1) : 1944년에 개발된 시제형으로, 장포신 152mm 포 "BL-8"을 탑재하여 화력을 강화했다. 엘레판트, 야크트티거와 같은 중장갑 구축전차에 대항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나, 시험 결과 몇 가지 결함이 발견되어 채택되지 않았다.
- '''오브젝트 247''' (ISU-152-2) : 1944년에 개발된 또 다른 시제형으로, 개선된 장포신 152mm 포 "BL-10"을 탑재했다. 그러나 이 역시 시험에서 문제점이 발견되어 채택되지 않았다.
- '''오브젝트 250''' (ISU-130) : 장포신 130mm 포 "S-26"을 탑재한 시제형이다.
- '''오브젝트 704''' (ISU-152 1945년형) : 1945년에 개발된 시제형으로, IS-3 차체를 기반으로 경사 장갑을 채택하여 방호력을 강화했다. 152mm ML-20SM 곡사포를 장착했으나, 포구 제퇴기가 없어 승무원 작업이 복잡해지는 문제가 있어 채택되지 않았다.
- '''ISU-152K''' : 1956년에 개발된 현대화 개량형으로, T-54와 같은 엔진으로 교체하고 차장 큐폴라를 추가하는 등 여러 개선이 이루어졌다. 레닌그라드 키로프 공장에서 개량 작업이 수행되었다.
- '''ISU-152M''' : 1959년에 개발된 개량형으로, 야간 투시 장비가 추가되었다.
- '''ISU-T''' : ISU-122/152의 주포를 제거하고 야전 지휘 차량으로 개조한 형식이다.
- '''BTT-1''' : ISU-122/152의 주포를 제거하고 장갑 견인차/장갑 구난차로 개조한 형식이다.
- '''2P4''' : ISU-122/152 차체를 기반으로 한 FROG-1 로켓포 수송 거치 발사대이다. 시스템 명칭은 2К4 Филин|2K4 필린ru이다.
- '''8U218''' : ISU-122/152 차체를 기반으로 한 Р-11|R-11ru 스커드 A 탄도 미사일 수송 거치 발사대이다.
- '''2P19''' : ISU-122/152 차체를 기반으로 한 Р-11|R-11ru 스커드 A / Р-17|R-17ru 스커드 B 탄도 미사일 수송 거치 발사대이다.
5. 운용 국가
ИСУ-152ru는 여러 국가에서 운용되었다.
- 소련: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동부 전선, 계속 전쟁, 소련-일본 전쟁의 만주 침공, 헝가리 혁명 등에서 사용되었다.
- 핀란드: 계속 전쟁 중 노획한 ISU-152를 사용했다. 핀란드군은 괼스티랜얘르비 반격 작전에서 소련군으로부터 노획한 ISU-152를 운용했으나, 승무원들의 훈련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10] 또 다른 노획된 ISU-152는 바르카우스에서 수리되었지만 실전에 투입되지는 않았다.
- 폴란드: 1944년에 30대 이상의 ISU-152를 인도받아 제25 폴란드 자주포 연대를 창설하여 니아사 강 전투 및 베를린 전투에 투입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1960년대 초까지 운용되었다.

- 체코슬로바키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으로부터 ISU-152를 이전받아 1950년대 말까지 운용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인민군의 가장 강력한 장갑차 중 하나였으며, 대전차 장애물 시험에도 사용되었다.
- 루마니아: 1950년대에 20대의 ISU-152를 받았으며, 루마니아군에서는 T-152로 불렸다.[11][12]
- 유고슬라비아: 1944년 소련군에게서 노획한 단 한 대의 ISU-152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벨라 크르크바의 육군 전차 학교에서 사용되었다.[13]
- 중화인민공화국: 1955년 소련군이 다롄에서 철수하면서 남긴 67대의 ISU-152를 구매하여 인민해방군 제1기계화사단 등에 배치했다.
- 북한: 한국 전쟁 중과 이후에 조선인민군이 ISU-152를 운용했다. 현재도 현역 및 예비 부대에서 사용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보유 수량은 알려지지 않았다.
- 이집트: 1960년대 초에 최소 한 개 연대 규모의 ISU-152를 받았으며, 1967년부터 1973년까지의 아랍-이스라엘 분쟁에서 사용했다. 여러 대가 이스라엘 방위군에 포획되었고, 그 중 한 대는 현재 라트룬 전차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3]

참조
[1]
서적
Kursk 1943: The Northern Front
Osprey
2014
[2]
웹사이트
Тяжёлая самоходная установка СУ-152
http://bronetehnika.[...]
[3]
웹사이트
ИСУ-152 Самоходная артиллерийская установка
http://www.aviarmor.[...]
[4]
웹사이트
Самоходная установка ИСУ-152
http://armor.kiev.ua[...]
[5]
웹사이트
Советские тяжелые самоходные артиллерийские установки
http://armor.kiev.ua[...]
[6]
웹사이트
Объект 740
http://www.aviarmor.[...]
[7]
웹사이트
Тяжелый танк ИС-3
http://armor.kiev.ua[...]
[8]
서적
IS-2 heavy tank, 1944-1973
https://books.google[...]
Osprey
1994-01
[9]
AV media
Inside the Chieftain's Hatch: ISU-152, Episode 2
https://www.youtube.[...]
World of Tanks
2014-09-30
[10]
문서
Axworthy, p. 221.
[11]
서적
Artileria româna în date si imagini
http://www.rft.forte[...]
Editura Centrului Tehnic-Editorial al Armatei
2015-05-28
[12]
간행물
Contribuții la istoria dotării cu armament a armatei române între 1944 și 1959
https://www.academia[...]
2021-06-28
[13]
웹사이트
Samohodno orudje JSU-152
http://www.oklop.net[...]
[14]
서적
Kursk 1943: The Northern Front
Osprey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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