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ile (비치 보이스의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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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Smile (비치 보이스의 음반)은 1966년 비치 보이스의 열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으로, 브라이언 윌슨의 음악적 시야 확장과 마약 사용, 창작 집단의 협업을 통해 제작되었다. 앨범은 미국적인 주제와 유머, 신비주의를 담아 비틀즈의 음악에 대항하려 했으며, 모듈식 접근 방식을 통해 실험적인 사운드를 시도했다. 그러나 기업의 압력, 기술적 문제, 윌슨의 정신 건강 악화 등으로 인해 발매가 무산되었고, 여러 부틀렉과 팬들의 노력 끝에 2004년 브라이언 윌슨이 재구성한 형태로 발매되었다. 2011년에는 오리지널 세션 자료를 담은 The Smile Sessions가 발매되어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미발매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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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le (비치 보이스의 음반) | |
---|---|
음반 정보 | |
이름 | Smile |
종류 | 정규 음반 (미완성) |
아티스트 | 비치 보이스 |
![]() | |
녹음 | 1966년 2월 17일 – 1967년 5월 18일 (초기 세션) 1967년 6월 3일 – 1971년 7월 (후기 녹음) |
녹음 장소 | 웨스턴 컬럼비아 골드 스타 사운드 레코더스 캐피틀 비치 보이스 (로스앤젤레스) |
장르 | 아트 팝 프로그레시브 팝 사이키델리아 실험적 |
프로듀서 | 브라이언 윌슨 |
비치 보이스 녹음 연대표 | |
이전 음반 | Pet Sounds |
이전 연도 | 1966년 |
다음 음반 | Smiley Smile |
다음 연도 | 1967년 |
2. 배경
1964년 말, 브라이언 윌슨은 로스앤젤레스 음악계의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음악적 시야를 넓혔다. 그는 마리화나, LSD, 데스부탈 등의 마약에 심취하며 정신적, 창작적으로 변화를 겪었다. 당시 그의 아내였던 마릴린에 따르면, 윌슨의 새로운 친구들은 "수다를 잘 떨었고 [...] 갑자기 [브라이언]은 할리우드에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그에게 매혹적인 언어를 사용했다. 특이하고 우주적인 이야기를 하든 뭐든 그는 그것을 좋아했다."라고 회상했다. 윌슨은 첫 LSD 체험에서 종교적인 경험을 하고 신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1965년 11월, 비치 보이스의 열한 번째 스튜디오 앨범 ''펫 사운즈'' 세션 초기에 윌슨은 유머와 웃음에 초점을 맞춘 앨범을 녹음하는 아이디어를 실험했다. 그는 ''펫 사운즈''를 이전 비치 보이스 앨범과 완전히 차별화하고 싶어했고, 그의 평소 작사가인 마이크 러브와 함께 작업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앨범의 대부분의 곡에서 징글 작가인 토니 애셔와 함께 작업했다. 1966년 2월 17일, 윌슨은 ''펫 사운즈''에 포함될 예정이었지만 녹음에 대한 윌슨의 불만족으로 제외된 "굿 바이브레이션"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윌슨은 "나는 한 가지 이상으로 [노래]를 쓰고 싶었다. 결국 더 긴 싱글을 보고 싶었다. 그래야 노래가 더 의미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5월 4일부터 그는 "굿 바이브레이션"을 섹션별로 녹음하기 시작했다.
5월 16일에 발매된 ''펫 사운즈''는 비치 보이스의 명성을 록 혁신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미국에서는 팬들을 혼란스럽게 했지만, 영국에서는 매우 호평을 받았다. 영국의 성공은 윌슨이 더 큰 창의적인 위험을 감수하도록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밴드의 레이블인 캐피톨 레코드가 그의 다음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고 홍보하도록 설득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21]
2. 1. 브라이언 윌슨의 성장과 변화
1964년 말, 브라이언 윌슨은 로스앤젤레스 음악계의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음악적 시야를 넓혔다. 그는 마리화나, LSD, 데스부탈 등의 마약에 심취하며 정신적, 창작적으로 변화를 겪었다. 당시 그의 아내였던 마릴린에 따르면, 윌슨의 새로운 친구들은 "수다를 잘 떨었고 [...] 갑자기 [브라이언]은 할리우드에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그에게 매혹적인 언어를 사용했다. 특이하고 우주적인 이야기를 하든 뭐든 그는 그것을 좋아했다." 윌슨은 첫 LSD 체험에서 종교적인 경험을 하고 신을 보았다고 주장했다.1965년 11월, 비치 보이스의 열한 번째 스튜디오 앨범 ''펫 사운즈'' 세션 초기에 윌슨은 유머와 웃음에 초점을 맞춘 앨범을 녹음하는 아이디어를 실험했다. 그는 ''펫 사운즈''를 이전 비치 보이스 앨범과 완전히 차별화하고 싶어했고, 그의 평소 작사가인 마이크 러브와 함께 작업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앨범의 대부분의 곡에서 징글 작가인 토니 애셔와 함께 작업했다. 1966년 2월 17일, 윌슨은 ''펫 사운즈''에 포함될 예정이었지만 녹음에 대한 윌슨의 불만족으로 제외된 "굿 바이브레이션"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윌슨은 "나는 한 가지 이상으로 [노래]를 쓰고 싶었다. 결국 더 긴 싱글을 보고 싶었다. 그래야 노래가 더 의미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5월 4일부터 그는 "굿 바이브레이션"을 섹션별로 녹음하기 시작했다.
5월 16일에 발매된 ''펫 사운즈''는 비치 보이스의 명성을 록 혁신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미국에서는 팬들을 혼란스럽게 했지만, 영국에서는 매우 호평을 받았다. 영국의 성공은 윌슨이 더 큰 창의적인 위험을 감수하도록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밴드의 레이블인 캐피톨 레코드가 그의 다음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고 홍보하도록 설득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21]
2. 2. 《Pet Sounds》와 "Good Vibrations"
3. 창작 집단
3. 1. 밴 다이크 파크스와의 협업
1966년, 브라이언 윌슨은 더 버즈의 음반 프로듀서 테리 멜처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작곡가, 편곡가이자 세션 뮤지션인 반 다이크 파크스를 소개받았다. 윌슨은 파크스의 특이하고 명확한 말투에 주목했고, 새로운 작사가를 찾고 있던 윌슨은 곧 파크스에게 비치 보이스의 다음 앨범 가사를 써달라고 제안했다. 파크스는 토니 애셔가 윌슨과 비치 보이스로부터 멀어졌다는 소식에 걱정했지만, 협력에 동의했다.
7월과 9월 사이,[38] 윌슨과 파크스는 윌슨의 비벌리 힐스 자택에서 ''Dumb Angel''이라는 임시 제목으로 앨범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작곡 세션은 10월 또는 11월까지 연장되었을 수도 있다. 파크스는 몇몇 ''Smile'' 녹음 날짜에 참여한 것 외에는, 윌슨의 멜로디에 가사를 쓰는 데 그쳤다. 그는 "저는 음악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완전한 작사가였고 때로는 악기 연주자였습니다."라고 회고했다. 토니 애셔와 마찬가지로 파크스는 작사가로서의 경험이 거의 없었고, 윌슨은 그의 협력자의 음악적 배경에 대해 사전 지식이 거의 없었다.
파크스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과 윌슨이 앨범의 아메리카나 주제에 대한 이해를 공유했다고 암시했지만, 2005년 그는 반대의 내용을 담은 ''뉴욕 서평'' 기사에 대한 반박문을 썼다.[6]
3. 2. 윌슨의 측근들
비치 보이스의 콘서트 투어에서 물러난 브라이언 윌슨은 자신과 밴드 멤버들 사이의 거리를 두었고, 자신의 사교, 사업, 창작 활동에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전기 작가 스티븐 게인스는 그의 측근이 곧 "새로운 무리로 확대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빨대'였지만, [다른 이들은] 재능 있고 근면했다"고 썼다.갑자기 방에는 브라이언과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브라이언과 나, 데이비드 앤더리, 마이클 보스, 로렌 슈워츠, 테리 사첸을 비롯하여 브라이언을 여러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수많은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밴 다이크 파크스
윌슨의 측근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 데이비드 앤더리: 지하 언론으로부터 "힙의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은 MGM 레코드의 탤런트 스카우트. 그는 1965년 가족을 통해 처음 윌슨을 만났다. 게인스는 앤더리가 윌슨과 그를 둘러싼 "힙"한 관계자들 사이의 주요 통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 대니 허튼: 파크스가 1964년 트루바두어에서 함께 공연했던 가수. 그는 1964년 말 윌슨과 처음 만났으며, 1965년 말 허튼의 매니저인 앤더리의 소개로 다시 만나 친분을 쌓았다. 허튼은 또한 파크스에게 앤더리를 소개했고, 앤더리는 곧 파크스의 매니저가 되었다.
- 데릭 테일러: 비틀즈의 전 홍보 담당자. 그는 1966년 3월부터 비치 보이스의 홍보를 맡았다. 테일러는 밴드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고용되었다고 말하며, 이를 위해 그는 윌슨을 "천재"라고 선언하는 미디어 캠페인을 주도했다.
- 마크 볼먼: 터틀스의 가수.[2] 그는 허튼에 의해 윌슨에게 소개되었으며[2] 윌슨과의 관계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와의 관계가 "항상 브라이언의 추종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3]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윌슨의 집과 스튜디오 세션의 주요 멤버가 되었다. 다양한 언론인들 또한 윌슨과 함께 스튜디오를 드나들도록 배치되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다.
- 마이클 보스: 앤더리와 대학 동창이었던 잡지 기자. 파크스가 보스를 윌슨에게 소개했고, 테일러는 보스가 "Good Vibrations"의 발매를 앞두고 윌슨을 인터뷰하도록 주선했다. 윌슨은 만남 다음 날 보스에게 전화를 걸어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는 일을 제안했다.
- 폴 제이 로빈스: ''로스앤젤레스 프리 프레스'' 출신. 로빈스는 1966년 선셋 스트립 폭동을 보도하고 참여했던 뉴 레프트 정치 운동가였다. 그는 버즈 콘서트에 참석하면서 파크스를 만났고, 파크스는 로빈스를 윌슨의 측근으로 데려왔다.
- 폴 윌리엄스: 18세의 ''Crawdaddy!''의 창립자이자 편집자. 윌리엄스는 ''Pet Sounds''와 "Good Vibrations"에 감명을 받아 "1966년 크리스마스에 브라이언의 저택을 찾아갔고[...] 결국 뉴욕으로 돌아가 다른 저널리스트들처럼 소식을 전했다"고 말했다.
- 줄스 시겔: ''더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출신. 그는 앤더리에 의해 윌슨에게 소개되었고[4] 이후 두 달 동안 윌슨의 집과 스튜디오에서 그와 동행했다.[5]
- 리처드 골드스타인: ''더 빌리지 보이스'' 출신.
앤더리가 말했듯이, 앨범은 관련된 사람들 사이에서 웅대한 중요성을 지녔다. "'Smile'은 기념비가 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그렇게 말했고, 기념비로 여겼습니다." 앤더리, 시겔, 보스와 같은 인물들의 신뢰성에 대해 논평하면서, 저널리스트 닉 켄트는 그들의 주장이 종종 "너무나 화려해서, 브라이언 윌슨이 그 당시 이 운명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하늘의 가장 먼 곳까지 궤도를 돌았다고 잠시나마 믿는 것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썼다. 게인스는 "앨범을 둘러싼 사건들이 각자의 관점에 따라 너무 달라서, 누구도 [사실을] 확신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윌리엄스는 자신, 윌슨, 앤더리, 파크스, 테일러 및 다른 저널리스트들이 "매우 취해" 있었고, 아마도 "진행 상황에 대한 우리의 평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4. 영감과 콘셉트
4. 1. 브라더 레코드 프로젝트와의 연관성
윌슨은 원래 사운드 효과 콜라주, 코미디 앨범, "건강 식품" 앨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계획했다.[45] 비치 보이스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실행하기위해 자체 레이블인 브라더 레코드를 설립하려 했다.[45] 1966년 8월 안델을 수장으로 하여 레이블 설립 계획은 시작되었다.[45] 안델은 보도 자료에서 브라더 레코드가 "레코딩 업계에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비치 보이스에게 제품에 대한 완전한 창작 및 홍보 통제 권한을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45] 안델은 나중에 이 레이블이 브라이언을 위한 "특별한" 프로젝트를 발표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레이블의 제품이 캐피틀에 의해 유통될지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45]안델은 브라이언이 "이때 너무 창의적이어서 모든 것을 묶어두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말하며 "유머 앨범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했고, ''스마일''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으며, '요소'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유머 컨셉은 원래 ''스마일''과는 별개였다. ''스마일''은 브라이언의 모든 지적 활동의 정점이 될 것이었다."[45] 언론인 톰 놀란은 나중에 윌슨의 "믿을 수 없는 환상"에는 "사운드 효과로 만들어진 음악 앨범, 전체 LP를 통해 함께 연결된 코드"가 포함되었다고 보도했다. 놀란은 윌슨이 잠시 영화로 초점을 옮겼을 때 "더 많은 것을 포착하기가 더 쉬워 보였다. 당근에서 소리를 얻을 수 없다면, 당근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는 정말로 '당근'이었던 음악을 만들고 싶어했다."라고 보도했다.[45]
4. 2. 미국의 정체성

''Smile''은 당시 록 음악을 지배했던 영국의 감성에 대한 반격으로 스타일과 주제 면에서 명백히 미국적이 될 예정이었다.[1] 브라이언 윌슨은 조지 거슈윈이 재즈와 클래식 음악을 "미국화"한 것과 유사하게 "초기 미국과 중부 미국을 '미국화'"하고자 했다.[1] 파크스에게 거슈윈의 1924년 작곡 "랩소디 인 블루"는 미국을 "음악적 만화경"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그와 윌슨이 모방하고자 하는 품질이었다.
파크스는 그들이 "미국적인 이미지를 연구하고 싶어했다. [...] 모두가 모든 것을 완전히 영국적인 것에 매달리고 집착했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의 속어를 탐구하는, 우리가 선택한 어설픈 노선을 택하기로 결정했고, 그것이 우리가 얻은 것이다."라고 회고했다.[6]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더 나아가 "다른 모든 사람들은 영국의 구유에 주둥이를 들이밀고 있었다. 모두가 '더 좋게
마크 프렌더개스트는 윌슨이 비틀즈를 "따라잡기" 위해 1966년 대부분을 "Good Vibrations" 작업에 썼다고 쓰고있으며, 많은 작가들은 윌슨이 ''Smile''을 비틀즈의 1966년 8월 발매작인 ''Revolver''에 대한 응답으로 의도했다고 말한다. 2004년 인터뷰에서 윌슨은 1965년 앨범 ''Rubber Soul''이 그에게 ''Pet Sounds''에서 비틀즈의 예술적 기준에 맞추도록 영감을 주었지만, "''Smile''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고, 비틀즈와 전혀 같지 않았다. 팝 음악이 아니라 더 발전된 것이었다."라고 밝혔다.[38]
4. 3. 유머와 신비주의
브라이언 윌슨은 점성술, 수비학, 오컬트 등 신비주의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이는 ''Smile''의 영감으로 작용했다.[9] 그는 할리우드 서점인 픽윅 북샵에서 다양한 책을 접하며 독서에 몰두했고, 이러한 경험은 그의 음악에 영향을 주었다.[9][45] 특히 아서 쾨슬러의 저서 《창조의 행위》는 윌슨의 자아와 유머에 대한 이해에 큰 영향을 주었다.[10] 윌슨은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이 다른 무엇보다 유머 감각에 자아를 붙인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언급했다.[10]윌슨은 유머와 영성에 깊이 빠져 있었으며, 웃음이 신성의 가장 높은 형태 중 하나라고 믿었다.[11]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그는 유머 앨범을 만들고자 했다.[11] 그는 ''Smile''이 "남부 캘리포니아 스타일의 컨트리가 아닌, 매우 정교한 수준의 가스펠 앨범"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11]
윌슨은 "백색 영가"를 통해 종교적이고 영적인 음악을 추구했다.[12] 그는 자신이 "신을 위한 십대 교향곡"을 쓰고 있다고 말하며, "백색 영적 사운드"로의 이동을 예고했다.[12]
5. 주제와 가사
《Smile》은 개념 음반이지만, 명확한 내러티브보다는 주제와 경험에 집중했다.[21] 아메리카나, 신체 건강, 어린 시절, 자연 환경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15] 밴 다이크 파크스는 《Smile》이 개념 음반으로 계획되었다는 주장을 반박하며, 이 작품은 "주변에 사운드가 유사한 비틀즈풍 음악이 많았던 시기에 미국의 방언을 사용하기 위해" 구상되었다고 말했다.[16]
음악학자 필립 램버트는 《Smile》을 "플리머스 록에서 하와이까지 여행하는 시간 여행 자전거 타는 사람의 시각으로 본 미국 역사 수업"이라고 묘사한다. 반 다이크 파크스의 가사는 언어 유희, 암시 및 인용을 사용했다. 미국의 역사에 대한 언급은 철도와 자동차의 등장에서부터 서구 식민주의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에 미친 영향까지 다양하다.
일부 노래는 "Wonderful", "Child Is Father of the Man", "Surf's Up"과 같은 하나님과 어린 시절과 관련된 테마를 따랐다.[15] 파크스는 윌슨의 작품의 영적인 측면과의 연관성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종교적 신념을 다루는 가사를 쓰는 것을 싫어했으며, 그것이 "잘난 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상을 준다고 믿었다.[89]
2011년, 브라이언 윌슨은 《Smile》을 표현하는 단어로 "어린 시절, 자유, 어른의 규칙과 어른의 순응 거부"를 꼽으며, "젊음의 정신"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21][18] 다른 인터뷰에서는 《Smile》이 "인상주의적인 방식으로 아이가 되는 것이 어떤지 표현"하며 "어린 시절의 사이키델릭 마법을 묘사"한다는 기자들의 평에 동의했다.[19]
카터는 《Smile》의 주제가 역사, 문화 및 사회와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동시에 "국가적 충성도와 이념적 설득에서 종교적 신념과 영적 헌신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복잡한 풍경"을 가로지른다고 요약했다.
6. 작곡 및 제작
6. 1. 모듈식 접근 방식
우리는 부분을 나눠서 작업을 했어요. 음악의 몇 마디, 또는 한 소절, 또는 특정한 그루브나 반복적인 연주가 있을 수 있겠죠 [...] 모두가 들어맞았죠. 앞뒤로 배치하거나 원하는 방식으로 배열할 수 있었어요. [...] 영화를 만드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칼 윌슨, 1973[21]
1960년대에는 팝 음악을 한 번에 녹음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비치 보이스는 다른 접근 방식을 사용했다.[21] 1964년부터 브라이언 윌슨은 녹음에 테이프 편집을 사용했는데, 주로 그룹이 어려운 보컬 부분을 연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20] 1966년이 되자 "Good Vibrations"는 ''Smile''의 윌슨의 작곡 방식을 확립했다. 그는 "명확한 대규모 구문 구조"를 가진 전체 곡을 작업하는 대신, 짧고 교환 가능한 단편(또는 "모듈")을 녹음하는 데 집중했다.[21] 테이프 편집 방식을 통해 각 단편을 선형 시퀀스로 조립하여 나중에 원하는 수만큼의 더 큰 구조와 다양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21] 이러한 단편적인 접근 방식은 영화 편집에서도 흔하며, "매달린 원인"이라는 용어로 사용된다.[22]
밴 다이크 파크스는 그와 윌슨이 ''구체 음악''을 의식하고 있었으며 "그것으로 무언가를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21] 자료는 매일 지속적으로 수정, 재작성 및 재배열되었다. 예를 들어 "'Cabin Essence'의 시작 부분이 'Vega-Tables'의 중간 부분이 되거나, 엔딩이 브릿지가 되기도 했다."[21] "Heroes and Villains"와 "Surf's Up"과 같이 명확한 절-코러스 구조를 가진 곡도 있었지만, 다른 곡들은 분위기나 설정을 설명하기 위해 설계된 짧은 부분들이었다.[21]
1960년대 중반, 혼합물을 시험하기 위해서는 테이프 릴을 물리적으로 잘라내고(면도칼로) 함께 접착하는 행위가 필요했다. 이러한 과정에 의존하는 전체 LP를 만드는 것은 윌슨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21] 엔지니어 마크 리네트는 윌슨의 야망이 디지털 기술 이전에는, 특히 "이 퍼즐을 조립할 수 있는 무한한 수의 방법" 때문에 달성하기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23]
6. 2. 오케스트레이션과 편곡
《Smile》은 아트 팝,[25][26] 사이키델릭 록,[27] 아방 팝,[28] 프로그레시브 팝,[29] 실험 록, 포크 록,[19][30] 구체 음악,[21] 아메리카나 음악 등 다양한 장르로 묘사된다. 윌슨의 오케스트레이션은 밴조, 스틸 기타, 바이올린, 만돌린, 하모니카, 택 피아노와 같은 전통적인 미국 악기를 강조했다.[37] 다른 악기에는 "티베트 호른"처럼 "침전하는 금관 악기", 음소거 (테이프) 피아노, 바리톤 기타, 더블 베이스를 틱택 스타일로 연주, 도브로, 부주키, 베이스 하모니카가 포함되었다.[37]
하프시코드와 택 피아노(일반적으로 유니슨으로 연주됨)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말렛과 "기발하고/에코가 있는 타악기"도 사용된다.[21] 파크스는 윌슨과 함께 "스튜디오에서 기억나는 첫 번째 것"은 "피아노나 중국 징과 같은 선율적인 타악기"를 사용한 것이며, 이는 파크스에게 퍼시 그레인저와 같은 20세기 초의 오케스트레이션, 특히 그레인저가 편곡한 "Country Gardens"를 떠올리게 했다.[79]
보컬 편곡은 "다양한 음정 중심, 반향 효과, 리듬 변주, 레가토와 스타카토 구절의 병치, 라운더스(미국 민요)와 유사한 에코, 1960년대 중반 록 레코드와 일반적으로 관련이 없는 보컬 효과"를 사용한다.[21]
6. 3. 동시대적 맥락
《Smile》은 두왑, 이발소 음악, 래그타임, 이국적인 음악, 프리 록 앤 롤 팝, 카우보이 영화 등 당시 록 스타들이 구식으로 여겼던 요소들에서 영감을 얻었다.[34] 찬트, 인도 및 하와이 음악, 재즈, 고전 톤 시, 만화 효과음, 구체 음악, 요들링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포함했다.[35] 성스러운 하프, 셰이커 찬송가, 멜레, 원주민의 찬트에서 파생된 요소들도 포함되었다.[37]음악 평론가 에릭 데이비스는 이 앨범이 동시대 록 음악의 진부함과 단절되어 있다고 언급하며, "''Smile''에는 시타르 대신 밴조가 있었다"고 적었다.[36] 브라이언 윌슨은 《Smile》에 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사용하고 싶었기 때문에 전통적인 록 악기 사용을 의도적으로 피했다고 말했다.[38] 또한 "Gee", "I Wanna Be Around", "The Old Master Painter", "You Are My Sunshine"과 같은 오래된 곡들의 연주도 녹음되었는데, 이는 윌슨이 "60년대 이전의 작곡법 [...]을 사이키델릭 시대에 노출시키려는 시도"였다.
《Smile》의 음악 유산 속에 "숨겨져" 있다고 느낀 많은 "모순된 템플릿" 중에는 프랭크 시나트라, 레터맨, 포 프레쉬멘, 마틴 데니, 패티 페이지, 척 베리, 스파이크 존스, 넬슨 리들, 재키 글리슨, 필 스펙터, 밥 딜런, 펭귄스, 밀스 브라더스가 있었다.[37] 마일스 데이비스와 길 에반스의 협업이 " 'Look (Song for Children)'와 'Child Is Father of the Man'과 같은 ''SMiLE'' 트랙을 괴롭힌다"고 언급되기도 했다.[37] 이 프로젝트의 "음향 현상 탐구"는 찰스 아이브스, 레즈 백스터의 주제 앨범, 리차드 맥스필드의 곤충 소리나 수중에서 연주된 악기에 대한 전자 실험과 유사한 경향에 비유되기도 했다.[37] 2004년, 윌슨은 ''Smile''이 그가 팝 음악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앞서 있었고,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존경하고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38]
브라이언 윌슨은 ''Smile''을 로큰롤이 아닌 동시대 미국 음악이라고 불렀다. 반 다이크 파크스는 ''Smile''을 완전히 미국의 신념의 표현으로 만들고 싶었으며, 반문화에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7. 수록 예정 곡
이 LP에는 "Good Vibrations"와 "Heroes And Villains"를 포함한 10개의 다른 트랙 [및] 많은 유머—일부는 음악적이고 일부는 말로 표현될 것입니다. 코미디 LP와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식의 말하는 트랙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절 사이에 무언가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브라이언 윌슨, 1966년 11월
; 윌슨의 1966년 메모에 수록된 곡
1966년 12월 15일, 브라이언 윌슨은 앨범 발매 지연에 대한 캐피틀 레코드의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 손으로 쓴 메모를 전달했는데, 여기에는 순서가 정해지지 않은 예비 트랙 목록이 포함되어 있었다.[96] 이 메모를 바탕으로 캐피틀 레코드는 뒷면에 이 곡들을 나열하고 "정확한 재생 순서는 라벨을 참조하십시오"라는 문구를 넣은 레코드 슬리브를 제작했다.[96]
- "Good Vibrations": 이미 싱글로 발매되어 큰 성공을 거둔 곡이다. 윌슨은 밴 다이크 파크스에게 가사를 다시 써달라고 요청했지만, 파크스는 마이크 러브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거절했다.[39]
- "Heroes and Villains": 서부 시대를 배경으로 한 3분짜리 뮤지컬 코미디로 구상되었다.[21] 윌슨은 이 곡의 다양한 버전을 만들었으며, 그 중 일부는 길이가 6분에서 8분에 이르렀다. 파크스는 마티 로빈스의 노래 "엘 파소"에서 영감을 받아 첫 소절을 즉시 구상했다.
- "I'm in Great Shape": 원래 "Heroes and Villains"의 일부로 포함되었다가, 12월 윌슨의 메모에서 별개의 트랙으로 분리되었다.
- "Wind Chimes": 풍경 소리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곡으로, 1967년 7월 베이스 라인이 "Can't Wait Too Long"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 "원더풀": 윌슨이 아내에게 사용했던 애칭에서 유래한 곡으로, 1966년 8월과 12월 사이에 세 가지 편곡이 녹음되었지만 모두 미완성이었다.
- "Cabin Essence": 철도에 관한 곡으로, 왈츠 코러스에는 "악마적인 창가, 윙윙거리는 첼로, 철도 스파이크 두드리는 소리"가 특징이다.[31]
- "Child Is Father of the Man": 키보드, 트럼펫, 보컬 라운드 및 잔향으로 가득 찬 드론 기타가 특징이다.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My Heart Leaps Up"에서 제목을 따왔다.[74]
- "Surf's Up": 윌슨과 파크스가 함께 쓰기 시작한 두 번째 곡으로, 2악장 형식으로 구성되었다.[42] 1969년, 보세는 "Surf's Up"이 ''Smile''의 의도된 마지막 클라이맥스이며, "합창 아멘 같은 것"으로 묘사된 섹션 다음에 이어질 것이라고 썼다.[11]
- "Do You Like Worms?": 아메리카 대륙의 재식민지화에 관한 노래로, 가사에는 벌레에 대한 언급이 없다. 1967년 1월, 이 노래의 키보드 브레이크 멜로디는 "Heroes and Villains"의 코러스로 다시 녹음되었다.
- "채소 - 베지 테이블스(Vega-Tables)": 채소 섭취를 장려하는 곡으로, 윌슨은 풍자적인 접근 방식을 취했다.
- "나의 유일한 햇살": "늙은 명화가"와 "You Are My Sunshine"의 메들리로, 데니스 윌슨이 "You Are My Sunshine"의 리드 보컬을 불렀다.
- "The Elements": 네 가지 고전 원소인 불, 물, 공기, 흙을 순서대로 담은 4부작의 개념적인 악장이었다.

"The Elements"의 첫 번째 파트인 "The Elements – Part 1" (일명 "Mrs. O'Leary's Cow", 일반적으로 "Fire"로 불림)은 특이한 조건에서 녹음되었다. 윌슨은 스튜디오에 있는 모두에게 소방 헬멧을 착용하게 하고, 타는 나무가 담긴 양동이를 가져와 연기 냄새가 가득하게 했다.
; 목록에 없는 곡
Prayer는 앨범의 시작을 의도한 무언가 없는 찬송가이다.[96] 램버트는 이 곡을 "윌슨이 지금까지 듣거나 상상했던 모든 반음계적 화성의 기법"이라고 묘사한다.[96]
I Ran(또한 "Look"으로 알려져 있으며 원래 "무제 곡 #1"로 표기됨)은 업라이트 베이스, 비브라폰, 키보드, 프렌치 호른, 기타, 오르간, 트롬본 및 목관 악기가 특징인 곡이다.
He Gives Speeches는 1966년 9월 1일에 "Good Vibrations"를 위한 세션에서 녹음되었으며, 1967년 7월에 "She's Goin' Bald"의 첫 번째 섹션으로 재작업되었다.
Holidays(부트렉에서는 "Tones" 또는 "Tune X"로 잘못 표기됨)는 1967년 버전의 Wind Chimes에 재활용된 마림바 멜로디로 끝나는 이국적인 기악곡이다.
I Wanna Be Around는 세이디 비머스테드와 조니 머서의 팝 스탠다드 곡을 비치 보이스가 연주한 것이다. 1968년에 이 곡의 세션에서 나온 소음들은 "Do It Again" 앨범 버전의 페이드 아웃에 사용되었다.
You're Welcome은 1967년 싱글 "Heroes and Villains"의 B면에 수록된, 강한 리버브가 특징인 보컬 챈트이다.
Love to Say Dada(혹은 "All Day")는 후에 "Cool, Cool Water"로 발전한 곡이다.[21]
; 오디오 베리테 및 기타 녹음
브라이언 윌슨은 유머와 유머의 중요성에 사로잡혀 디스크에 유머를 담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아이디어에 매료되었다. 이에 윌슨은 "유머러스한" 상황을 포착하는 데 전념하는 세션을 가졌다. 칼린에 따르면 윌슨은 "자신과 친구들이 구호를 외치거나, 게임을 하거나, 가짜 논쟁을 하거나, 그냥 잡담을 하는 모습을 녹음하는 데 몇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현존하는 테이프는 다음과 같다.
- '''Lifeboat 릴''' (1966년 10월 18일 녹음): 24분 길이로, 윌슨, 파크스, 앤더리, 보스, 윌슨의 처제 다이앤 로벨, 던이라는 여성, 시겔이 등장한다. 테이프 전체에서 시겔은 다른 사람들에게 난파된 생존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누구를 바다에 버릴지 결정해야 하는 파티 게임 ''Lifeboat''을 하도록 권유한다. 나중에는 참가자들 간의 날카로운 대화로 이어진다. 분위기가 악화되자 윌슨은 "너무 우울해. 정말 진심이야. 계속 가라앉고 있어. 웃기에는 너무 기분이 가라앉았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 '''두 번째 파티 릴''' (1966년 11월 4일 녹음): 윌슨, 파크스, 허튼, 보스, 밥이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이 그룹은 "Good Vibrations"의 오르골 버전을 연주하는 사이키델릭 아이스크림 밴에서 간식을 주문하는 척한다. 윌슨은 피아노에 빠지고, 마이크에 빠지는 코미디 루틴을 이끈다. 그룹은 또한 봉고에서 리듬을 연주하며 "내 비트와 당근은 어디에 있어"와 "나는 채소 한 보따리를 가지고 있어"를 외친다. 파크스는 나중에 "나는 모든 것이 파괴적이라는 것을 감지했고, 그래서 나는 그러한 사회적 만남에서 물러났다."라고 말했다.
- '''"채소 논쟁"''' (1966년 11월 16일 녹음): 보스와 세션 드러머 할 블레인 간의 가짜 불일치를 보여주는데, 블레인은 보스가 자신의 정원에 무단 침입한 것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 역할을 한다. 나중에는 블레인, 보스, 윌슨 간의 행성 정렬에 대한 진지한 대화로 이어진다. 윌슨은 블레인과 자신의 가짜 불일치를 통해 세션을 마무리한다. 배드맨은 "어떤 시점에서 이러한 녹음이 어떻게든 'Vegetables' 트랙 자체에 포함될 것으로 믿어진다."라고 썼다.
1967년 초, 브라이언의 형제 칼과 데니스는 스튜디오에 들어가 각자 쓴 곡을 녹음했다. 데니스의 "I Don't Know"는 1월 12일에 녹음되었고, 칼의 "Tune X"(나중에 "Tones")는 3월 3일과 31일에 녹음되었다. 배드맨은 이 녹음이 "[''Smile'']을 브라이언의 솔로 프로젝트보다 그룹의 노력으로 만들려는 의식적인 노력의 일부였거나, 칼과 데니스가 제작 실력을 시험하기 위한 것일 뿐일 수 있다."라고 추측했다.
브라이언은 또한 사진작가 재스퍼 데일리와 함께 "Teeter Totter Love", "Crack the Whip", "When I Get Mad I Just Play My Drums"와 같은 코미디 곡을 녹음했다. 러브는 "Teeter Totter Love"를 "단순하지만 감동적"이라고 특징지었다. 이 트랙에 대한 AFM 계약에는 "고용주 이름" 아래에 "Brother Records"가 나열되어 있다. 게인스는 이 녹음이 윌슨의 별도의 "유머 앨범" 콘셉트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썼다. 이 컬렉션은 A&M Records에 제안되었지만 거절되었다. 보스는 윌슨이 A&M의 책임자인 척 케이에게 "Crack the Whip"을 제안했을 때, "그가 얼마나 끔찍한지 들었을 때 [Kaye의] 얼굴에 당황한 모습이 보였다. '빌어먹을, 내가 뭘 해야 하지?'라는 표정이었다."라고 말했다.
7. 1. 윌슨의 1966년 메모에 수록된 곡
1966년 12월 15일, 브라이언 윌슨은 앨범 발매 지연에 대한 캐피틀 레코드의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 손으로 쓴 메모를 전달했는데, 여기에는 순서가 정해지지 않은 예비 트랙 목록이 포함되어 있었다.[96] 이 메모를 바탕으로 캐피틀 레코드는 뒷면에 이 곡들을 나열하고 "정확한 재생 순서는 라벨을 참조하십시오"라는 문구를 넣은 레코드 슬리브를 제작했다.[96]- "Good Vibrations": 이미 싱글로 발매되어 큰 성공을 거둔 곡이다. 윌슨은 밴 다이크 파크스에게 가사를 다시 써달라고 요청했지만, 파크스는 마이크 러브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거절했다.[39]
- "Heroes and Villains": 서부 시대를 배경으로 한 3분짜리 뮤지컬 코미디로 구상되었다.[21] 윌슨은 이 곡의 다양한 버전을 만들었으며, 그 중 일부는 길이가 6분에서 8분에 이르렀다. 파크스는 마티 로빈스의 노래 "엘 파소"에서 영감을 받아 첫 소절을 즉시 구상했다.
- "I'm in Great Shape": 원래 "Heroes and Villains"의 일부로 포함되었다가, 12월 윌슨의 메모에서 별개의 트랙으로 분리되었다.
- "Wind Chimes": 풍경 소리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곡으로, 1967년 7월 베이스 라인이 "Can't Wait Too Long"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 "원더풀": 윌슨이 아내에게 사용했던 애칭에서 유래한 곡으로, 1966년 8월과 12월 사이에 세 가지 편곡이 녹음되었지만 모두 미완성이었다.
- "Cabin Essence": 철도에 관한 곡으로, 왈츠 코러스에는 "악마적인 창가, 윙윙거리는 첼로, 철도 스파이크 두드리는 소리"가 특징이다.[31]
- "Child Is Father of the Man": 키보드, 트럼펫, 보컬 라운드 및 잔향으로 가득 찬 드론 기타가 특징이다.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My Heart Leaps Up"에서 제목을 따왔다.[74]
- "Surf's Up": 윌슨과 파크스가 함께 쓰기 시작한 두 번째 곡으로, 2악장 형식으로 구성되었다.[42] 1969년, 보세는 "Surf's Up"이 ''Smile''의 의도된 마지막 클라이맥스이며, "합창 아멘 같은 것"으로 묘사된 섹션 다음에 이어질 것이라고 썼다.[11]
- "Do You Like Worms?": 아메리카 대륙의 재식민지화에 관한 노래로, 가사에는 벌레에 대한 언급이 없다. 1967년 1월, 이 노래의 키보드 브레이크 멜로디는 "Heroes and Villains"의 코러스로 다시 녹음되었다.
- "채소 - 베지 테이블스(Vega-Tables)": 채소 섭취를 장려하는 곡으로, 윌슨은 풍자적인 접근 방식을 취했다.
- "나의 유일한 햇살": "늙은 명화가"와 "You Are My Sunshine"의 메들리로, 데니스 윌슨이 "You Are My Sunshine"의 리드 보컬을 불렀다.
- "The Elements": 네 가지 고전 원소인 불, 물, 공기, 흙을 순서대로 담은 4부작의 개념적인 악장이었다.
"The Elements"의 첫 번째 파트인 "The Elements – Part 1" (일명 "Mrs. O'Leary's Cow", 일반적으로 "Fire"로 불림)은 특이한 조건에서 녹음되었다. 윌슨은 스튜디오에 있는 모두에게 소방 헬멧을 착용하게 하고, 타는 나무가 담긴 양동이를 가져와 연기 냄새가 가득하게 했다.
7. 2. 목록에 없는 곡
Prayer는 앨범의 시작을 의도한 무언가 없는 찬송가이다.[96] 램버트는 이 곡을 "윌슨이 지금까지 듣거나 상상했던 모든 반음계적 화성의 기법"이라고 묘사한다.[96]I Ran(또한 "Look"으로 알려져 있으며 원래 "무제 곡 #1"로 표기됨)은 업라이트 베이스, 비브라폰, 키보드, 프렌치 호른, 기타, 오르간, 트롬본 및 목관 악기가 특징인 곡이다.
He Gives Speeches는 1966년 9월 1일에 "Good Vibrations"를 위한 세션에서 녹음되었으며, 1967년 7월에 "She's Goin' Bald"의 첫 번째 섹션으로 재작업되었다.
Holidays(부트렉에서는 "Tones" 또는 "Tune X"로 잘못 표기됨)는 1967년 버전의 Wind Chimes에 재활용된 마림바 멜로디로 끝나는 이국적인 기악곡이다.
I Wanna Be Around는 세이디 비머스테드와 조니 머서의 팝 스탠다드 곡을 비치 보이스가 연주한 것이다. 1968년에 이 곡의 세션에서 나온 소음들은 "Do It Again" 앨범 버전의 페이드 아웃에 사용되었다.
You're Welcome은 1967년 싱글 "Heroes and Villains"의 B면에 수록된, 강한 리버브가 특징인 보컬 챈트이다.
Love to Say Dada(혹은 "All Day")는 후에 "Cool, Cool Water"로 발전한 곡이다.[21]
7. 3. 오디오 베리테 및 기타 녹음
브라이언 윌슨은 유머와 유머의 중요성에 사로잡혀 디스크에 유머를 담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아이디어에 매료되었다. 이에 윌슨은 "유머러스한" 상황을 포착하는 데 전념하는 세션을 가졌다. 칼린에 따르면 윌슨은 "자신과 친구들이 구호를 외치거나, 게임을 하거나, 가짜 논쟁을 하거나, 그냥 잡담을 하는 모습을 녹음하는 데 몇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현존하는 테이프는 다음과 같다.
- '''Lifeboat 릴''' (1966년 10월 18일 녹음): 24분 길이로, 윌슨, 파크스, 앤더리, 보스, 윌슨의 처제 다이앤 로벨, 던이라는 여성, 시겔이 등장한다. 테이프 전체에서 시겔은 다른 사람들에게 난파된 생존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누구를 바다에 버릴지 결정해야 하는 파티 게임 ''Lifeboat''을 하도록 권유한다. 나중에는 참가자들 간의 날카로운 대화로 이어진다. 분위기가 악화되자 윌슨은 "너무 우울해. 정말 진심이야. 계속 가라앉고 있어. 웃기에는 너무 기분이 가라앉았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 '''두 번째 파티 릴''' (1966년 11월 4일 녹음): 윌슨, 파크스, 허튼, 보스, 밥이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이 그룹은 "Good Vibrations"의 오르골 버전을 연주하는 사이키델릭 아이스크림 밴에서 간식을 주문하는 척한다. 윌슨은 피아노에 빠지고, 마이크에 빠지는 코미디 루틴을 이끈다. 그룹은 또한 봉고에서 리듬을 연주하며 "내 비트와 당근은 어디에 있어"와 "나는 채소 한 보따리를 가지고 있어"를 외친다. 파크스는 나중에 "나는 모든 것이 파괴적이라는 것을 감지했고, 그래서 나는 그러한 사회적 만남에서 물러났다."라고 말했다.
- '''"채소 논쟁"''' (1966년 11월 16일 녹음): 보스와 세션 드러머 할 블레인 간의 가짜 불일치를 보여주는데, 블레인은 보스가 자신의 정원에 무단 침입한 것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 역할을 한다. 나중에는 블레인, 보스, 윌슨 간의 행성 정렬에 대한 진지한 대화로 이어진다. 윌슨은 블레인과 자신의 가짜 불일치를 통해 세션을 마무리한다. 배드맨은 "어떤 시점에서 이러한 녹음이 어떻게든 'Vegetables' 트랙 자체에 포함될 것으로 믿어진다."라고 썼다.
1967년 초, 브라이언의 형제 칼과 데니스는 스튜디오에 들어가 각자 쓴 곡을 녹음했다. 데니스의 "I Don't Know"는 1월 12일에 녹음되었고, 칼의 "Tune X"(나중에 "Tones")는 3월 3일과 31일에 녹음되었다. 배드맨은 이 녹음이 "[''Smile'']을 브라이언의 솔로 프로젝트보다 그룹의 노력으로 만들려는 의식적인 노력의 일부였거나, 칼과 데니스가 제작 실력을 시험하기 위한 것일 뿐일 수 있다."라고 추측했다.
브라이언은 또한 사진작가 재스퍼 데일리와 함께 "Teeter Totter Love", "Crack the Whip", "When I Get Mad I Just Play My Drums"와 같은 코미디 곡을 녹음했다. 러브는 "Teeter Totter Love"를 "단순하지만 감동적"이라고 특징지었다. 이 트랙에 대한 AFM 계약에는 "고용주 이름" 아래에 "Brother Records"가 나열되어 있다. 게인스는 이 녹음이 윌슨의 별도의 "유머 앨범" 콘셉트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썼다. 이 컬렉션은 A&M Records에 제안되었지만 거절되었다. 보스는 윌슨이 A&M의 책임자인 척 케이에게 "Crack the Whip"을 제안했을 때, "그가 얼마나 끔찍한지 들었을 때 [Kaye의] 얼굴에 당황한 모습이 보였다. '빌어먹을, 내가 뭘 해야 하지?'라는 표정이었다."라고 말했다.
8. 삽화 및 포장
그래픽 아티스트 프랭크 홈즈가 《Smile》의 커버 아트와 책자를 디자인했다. 홈즈는 1966년 6월경 윌슨과 파크스를 만나 그들의 노래 가사지를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펜화를 그렸다. 홈즈의 기억에 따르면 그의 기여는 10월까지 마무리되었다.
홈즈는 자신의 집 근처 패서디나에 있는 버려진 보석 가게를 바탕으로 커버를 디자인했다. 그는 "저는 가게에 들어갈 때마다 어떤 곳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좋은 이미지라고 생각했습니다 [...] 이것은 ''Smile''의 세계, 즉 Smile Shoppe으로 여러분을 끌어들일 것이고, 그 주변에는 작은 미소들이 있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상점 안에는 "남편과 아내, 즉 일종의 초기 미국적인, 옛날 스타일의, 19세기의 이미지"가 묘사되어 있다. 윌슨은 커버를 승인하고 캐피틀로 가져갔다. 파크스는 나중에 이 삽화가 ''Smile'' 제작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이를 앨범의 "세 번째 방정식"으로 여겼다. 그는 만약 만화적인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았다면 자신과 윌슨이 그들의 방식대로 프로젝트를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67년 초, 캐피틀은 홈즈의 원래 디자인에는 없었던 앨범 커버에 "Good Vibrations"을 반복해서 썼다. 뒷면 커버에는 별자리 기호로 둘러싸인 브라이언이 없는 그룹의 흑백 사진 묘사가 담겨 있었다. 캐피틀은 레코드 슬리브 466,000장과 부속 책자 419,200부를 제작했다. 이들은 1990년대까지 펜실베이니아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9. 오리지널 녹음 세션과 붕괴
구상과 실현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컸고, 브라이언 윌슨은 그것을 파악하고 테이프에 담을 때까지 아무것도 만족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그 순간은 지나갔다 [...] 다른 많은 훌륭한 예술가들처럼, 브라이언은 원했던 때에 ''Smile''의 원래 구상을 실현할 수 없었고, 얼마 후에는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같은 비전을 갖지 못했다.[17]
''Smile''은 기업의 압력, 기술적인 문제, 내부 권력 투쟁, 법적 지연, 그리고 윌슨의 정신 건강 악화로 인해 보류되었다.[14] 그는 프로젝트에 몇 달을 투자한 후, ''Smile''이 대중에게 너무 난해하다고 결론 내리고 대신 더 간단한 음악을 녹음하기로 결정했다.[62] 칼은 브라이언이 앨범을 완성할 수 없다고 느꼈고, 부정적인 대중 반응에 대해 극도로 두려워했다고 말했다.[41] 브라이언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와 그의 밴드는 "우리는 너무 이기적으로 예술적이었고 대중을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다"고 느꼈다.
9. 1. 윌슨 밴드 동료들의 비판 (1966-1967)
밴드 멤버들이 윌슨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42] 작가들은 윌슨의 심리적 쇠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데릭 테일러는 브라이언이 "무서운" 기분 변화를 보였지만, 그의 밴드 동료들은 대체로 그를 지지했다고 회상했다. 테일러는 또한 윌슨이 끔찍할 정도로 불안정하고 비판에 매우 민감했으며, 윌슨이 음악에 대한 의견을 물을 때마다 그를 "결코 내버려 두지 않았다"고 회상했다.칼 윌슨, 데니스 윌슨, 알 자딘은 일부 트래킹 세션에 기악적으로 참여했고, 칼은 브라이언을 제외하고 밴드 내에서 가장 많이 세션에 참여했다. 스테빈스는 "심지어 칼도 이 프로젝트에 불만을 품었다"고 언급했다. 1967년 1월경 일부 세션에 참석했던 언론인 트레이시 토마스는 ''NME''에 브라이언의 "완벽함에 대한 헌신은 항상 비치 보이스 동료들, 그들의 아내들, 그리고 저녁 식사를 할 예정이었던 옆집 이웃들에게 호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 하지만 완성된 결과물이 'Good Vibrations'나 ''Pet Sounds'' 또는 ''Smile''일 때는 불만을 참는다."라고 보도했다.

마이크 러브가 이 프로젝트의 붕괴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자주 제기된다. 러브는 그러한 주장을 과장이라고 일축하고, 윌슨의 마약 공급업자에 대한 그의 공개적인 반대가 그와 밴드의 다른 멤버들, 그리고 윌슨의 가족들이 이 프로젝트를 방해했다는 비난을 촉발했다고 말했다. 윌슨의 이 문제에 대한 진술은 일관성이 없었다. 그는 러브에 의해 이 프로젝트에 대한 그의 신뢰가 훼손되었는지에 대해 지지하기도 하고 부인하기도 했다.[49]
밴 다이크 파크스는 때때로 러브의 지시에 따라 프로젝트에서 해고되었다고 말했다. 1974년 인터뷰에서 그는 러브와 "가장 덜 알려진 멤버들"이 "이해할 수 없고 불필요한 단어들을 썼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그가 "사임"했고 "해고"되었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2년 후, 1976년 텔레비전 특집 ''The Beach Boys: It's OK!'' 인터뷰에서 그는 러브가 특정 구절에 대해 질문한 후 러브에게 자신의 가사를 버리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했다".[43] 2013년 인터뷰에서 그는 윌슨의 "바보짓"과 러브의 "질투심"을 피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었다"고 말했다.[50]
저널리스트 클린턴 헤일린의 추정에 따르면, 다른 보고서에서는 윌슨 자신이 파크스의 가사에 불만을 갖게 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지만, "러브는 확실히 윌슨의 의견 변화를 기쁘게 먹였다". 윌슨에게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어 프로젝트 붕괴에 기여했다는 비난에 대해, 러브는 정신 활성 약물의 영향 아래 있는 윌슨이 "태도, 즉 신체 언어 또는 무엇이든에 대해 매우 민감해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인정했지만, 그가 사촌의 마약으로 인한 편집증과 쇠약해진 정신 상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두들겨 맞아야" 한다는 암시에는 이의를 제기했다.[49] 이는 당시에는 훨씬 덜 이해되었던 주제였다.[44]
9. 2. 마약 사용, 윌슨의 정신 상태와 완벽주의 (1966-1967)
브라이언 윌슨의 타협 없는 완벽주의와 마약 사용은 《Smile》 프로젝트 붕괴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밴 다이크 파크스는 윌슨이 반복되는 테이크와 재녹음을 요구하며 세션에 참여한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고 회상했다. 한 세션에서 호른 연주자는 프로듀서의 반복적인 재녹음 요구에 대해 "완벽합니다 – 딱 한 번만 더요"라고 비꼬는 말을 하기도 했다.윌슨은 앨범 준비를 위해 약 2천 달러 상당의 마리화나와 해시시를 구입했다.[45] 그는 집에 3만 달러짜리 핫박싱 텐트를 설치하고, 그랜드 피아노 아래에 모래 상자를 설치했으며, 거실 가구를 체육관 매트로 교체하는 등 기행을 보였다. 윌슨의 집을 방문했던 데이비드 오펜하임은 그곳을 "돈으로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이상하고 격리된 가정"이라고 묘사했다.
칼 윌슨은 멤버들이 마약에 취해 있어 프로젝트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회상했으며,[41] 데니스 윌슨은 그룹이 대중을 잃을까 봐 편집증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46] 브라이언 윌슨은 1976년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 짓을 끝내기에는 너무 뿅 가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윌슨은 양극성 및 분열정동 장애 진단을 받았지만, 초기 ''Smile'' 세션 동안에는 정신 질환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는 증언도 있다. 그러나 줄스 지겔은 윌슨이 데스부탈 남용으로 인해 편집증적 망상, 이상한 행동, 예술적 자신감 상실 등 전형적인 암페타민 정신증을 앓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9. 3. 초기 세션과 홍보 (1966년 5월-12월)

1966년 5월 11일, 브라이언 윌슨은 Gold Star Studios에서 "Heroes and Villains"의 기악 버전을 녹음했지만, 이는 실험적인 세션으로 본격적인 녹음은 아니었다. 8월 3일, 윌슨은 "Wind Chimes" 트래킹을 위해 스튜디오로 돌아왔고, 이는 앨범 세션의 비공식적인 시작을 알렸다.[21] 이후 10개월 동안 앨범을 위해 80번 이상의 세션이 진행되었다.[21] 9월 21일에 "Good Vibrations"가 완성되었다. 그 무렵, ''Dumb Angel''은 ''Smile''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Smile''은 록 음악 언론에서 가장 많이 논의된 앨범 중 하나였으며,[96] 1966년 12월 발매를 처음 목표로 했다. 데릭 테일러는 음악 언론에 기사를 계속 작성하며 때로는 익명으로 앨범에 대한 추측을 부추겼다. "Good Vibrations"는 싱글로 발매되어 비치 보이스의 세 번째 미국 1위 히트곡이 되었고, 12월에 ''Billboard'' Hot 100에서 정상을 차지했으며, 영국에서도 첫 번째 1위를 차지했다. 윌슨은 ''Melody Maker''에 ''Smile''이 "''Pet Sounds''가 ''Summer Days''보다 훨씬 더 발전된 것처럼 될 것"이라고 말했고, 데니스는 ''Hit Parader''에 "제 생각에는 ''Pet Sounds''를 형편없게 만들 거예요. 그만큼 훌륭하다는 거죠."라고 말했다. 윌슨은 마이클 보세와 함께 어느 시점에서 ''The Lloyd Thaxton Show''에 출연하여 채소 섭취의 이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12월에 캐피톨은 앨범에 대한 광고를 ''Billboard''에 게재했는데, "Good Vibrations. 영국 1위. 'Good Vibrations' 사운드로 곧 출시됩니다. ''Smile''. 비치 보이스."라고 적혀 있었다. 이어서 ''TeenSet''에 "보세요! 들으세요! 진동하세요! SMILE!"이라고 외치는 컬러 광고가 게재되었다. 이 광고는 "Good Vibrations"와 "다른 새롭고 환상적인 비치 보이스 노래[...]''그리고''[...] 브라이언 윌슨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흥미진진한 풀 컬러 스케치북"의 포함을 약속했다. 앨범 커버 아트워크의 판지 디스플레이가 음반 매장에 전시되었고, 캐피톨은 직원을 위한 프로모션 광고를 배포했는데, 광고 배경으로 "Good Vibrations"를 사용하며 다음과 같이 내레이션했다. "행복한 앨범 커버, 안에 정말 행복한 소리, 그리고 행복한 매장 디스플레이로, 놓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1월에 백만 장의 판매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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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uote = 비치 보이스의 앨범 ''Smile''과 싱글 "Heroes And Villains"는 그들을 세계 최고의 그룹으로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비틀즈가 떠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 source = —''Hit Parader'', 1966년 12월
}}
영국에서 한 헤드라인은 비치 보이스의 영국 배급사인 EMI Records가 밴드에게 "비틀즈 이후 최대 규모의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12월 10일, ''NME''는 윌슨을 4위의 "세계 음악 인물"로 선정하는 독자 투표 결과를 발표했다. 밥 딜런보다 약 1,000표 앞섰고 존 레논보다 500표 뒤졌다. 또한 비치 보이스는 비틀즈, the Walker Brothers, 롤링 스톤스, the Four Tops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밴드로 선정되었다. 링고 스타는 "우리는 별로 하는 일이 없었고, 비치 보이스가 좋은 것을 내놓았을 때 딱 맞춰서 진행되었습니다. 우리 넷 다 비치 보이스의 팬입니다. 아마 그들을 위해 투표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48] 12월 17일, KRLA Beat는 윌슨이 쓴 "Vibrations – Brian Wilson Style"이라는 넌센스 기사를 게재했는데, 여기에는 많은 비밀 유머와 언급이 포함되어 있었다.
톰 놀란의 ''Los Angeles Times West Magazine'' 기사는 윌슨을 "팝 음악에서 잠재적으로 혁명적인 운동의 리더"로 언급했다. 전기 작가 데이비드 리프는 "Good Vibrations"의 성공으로 "브라이언에게 약간의 시간을 벌어주었고 브라이언의 새로운 방식이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모든 사람의 입을 막았습니다[...] 그의 [싱글을] ''빠르게'' 후속 작업할 수 없었던 것이 문제로 눈덩이처럼 커졌다"라고 적었다. 산체스는 윌슨이 "팝 음악의 거장들 보드에서 비틀즈와 밥 딜런의 옆자리를 차지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Smile''에 대한 과대 광고는 "기대"에서 "의심"과 "당혹감"으로 바뀌었다"라고 썼다.
9. 4. 문제와 저항의 첫 징후 (1966년 11월-12월)
머리 윌슨은 브라이언 윌슨이 〈Good Vibrations〉를 발표한 것이 끔찍한 실수였다고 말했다. 브라이언이 모든 청중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큰 논쟁거리였으며, 기존 이미지를 잃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이미지를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었다.[11]1966년 후반, 윌슨은 프로젝트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10월 25일부터 11월 14일까지 윌슨의 밴드 동료들은 유럽 투어(영국에서의 첫 공연 포함)를 진행했고, 11월 16일부터 24일까지는 네 번째 미국 추수감사절 투어를 진행했다. 마이클 보세는 밴드가 영국 투어를 떠났을 때 ''Smile''은 "완전히 구상된 실체"였지만, 돌아온 후 프로젝트가 "미쳐가기 시작했다"고 썼다.[11] 게인스의 설명에 따르면, 윌슨의 밴드 동료들은 "브라이언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캘리포니아로 돌아왔을 때 "격분"했다. 그들에게 데이비드 앤더리는 "비치 보이스를 침투하고 장악한 낯선 사람들의 집단"의 리더로 보였고, 윌슨의 기행을 부추겼다. 앤더리는 "나는 그 점에 대해 유죄입니다. [...] 나는 침입자였고 확실히 그의 창의성에 불을 지폈습니다. 제한은 없었습니다. 규칙도 없었습니다."라고 인정했다.
윌슨의 친구, 가족, 동료들은 종종 프로젝트가 무너지는 시점을 11월 28일에 그가 "Fire"를 녹음한 시점으로 잡는다. 밴 다이크 파크스는 세션에 참석하지 않았고, 나중에 윌슨의 "퇴행적인 행동"으로 인해 "전염병처럼" 그것을 피했다고 밝혔다. "Fire" 세션 며칠 안에 스튜디오 건너편 건물이 불탔다. 윌슨은 음악이 화재를 일으켰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며 트랙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나중에 마리화나와 해시시를 사용한 것이 그가 마법 음악을 만들고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시기에 녹음 세션 동안 긴장이 고조되었고, 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즐거운 분위기와 대조를 이루었다. 앤더리는 "The Elements"에 대한 실패가 그가 프로젝트의 붕괴에서 가장 큰 요인이라고 느꼈던 것과 일치한다고 기억했다. 즉, 윌슨이 스튜디오에서 겪기 시작한 저항, 특히 "엔지니어", "스튜디오 시간 확보", "친구 중 한 명 또는 친구 그룹에게 파트 주기" 등이었다. 그는 윌슨이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에 엄청난 편집증을 겪었고, 논쟁에 직면해야 할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9. 4. 1. "공식을 망치지 마라"
"Don't fuck with the formula"는 마이크 러브가 한 말로 자주 인용되지만,[45] 러브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으며, 비치 보이스에게는 "공식"이 없다고 주장했다.[86] 이 말은 1971년 ''롤링 스톤'' 기사에서 유래되었는데,[51] 당시 록 저널리즘으로는 드물게 그룹의 음악보다는 밴드의 내부 역학 관계와 역사, 특히 ''스마일'' 세션과 관련된 사건에 초점을 맞췄다. 기사에서 데이비드 앤더리는 마이크 러브가 돈을 원했고, "공식을 망치지 마라."라고 말했다고 붕괴의 책임을 마이크 러브에게 묻고 있다.[45]1968년 인터뷰에서 앤더리는 윌슨의 밴드 멤버들이 "단순하고 멍청한 것" 이상으로 너무 "과하게" 나아가서 "비치 보이스가 무엇인지"를 잃을까 봐 처음에는 걱정했으며, "비치 보이스가 창조한 형태 내에서 거의 머물고 싶어했다"고 말했다.[11]
러브는 1993년 인터뷰에서 윌슨의 "자신", "다른 사람들", 그리고 "밴드의 명성"에 대한 대처 방식, 그리고 "우리 생계"의 파괴 가능성에 대해 깊이 우려했었다고 밝혔다.[86] 2015년 인터뷰에서 그는 "미친 바보 같은 소리"에 문제가 없었고, 윌슨의 이상한 요구를 수용하는 것에도 문제가 없었지만, 여전히 "상업적으로 성공적인 팝 레코드를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나는 ''스마일''의 몇몇 가사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49] 칼 윌슨에 따르면, "마이클이 ''스마일''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많이 쓰여지고, 아마도 언급되었을 것이다. 내 생각에 그의 주된 문제는 [가사가]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너무 예술적이었고, 그에게는 정말 공허하고 너무 추상적이었다."[50] 알 자딘은 러브가 명확하고 뚜렷한 후크가 없다고 느껴지는 노래를 일반적으로 거부했기 때문에 "공식 사냥꾼"이라고 주장했다.[53]
그 후 수십 년 동안 "공식을 망치지 마라"는 무수한 책, 기사, 웹사이트, 블로그에서 반복되었다.[51] 1978년 전기 ''비치 보이스와 캘리포니아 신화''에서 앤더리는 이 구절이 "맥락에서 약간 벗어났다"고 말한 것으로 인용되었으며, 러브는 실제로 "사업적인 수준에서" 앤더리에게 동의했다고 밝혔다.[52] 1998년 회고록 ''얼마나 좋을까: 나의 이야기''와 관련된 증언에서 브라이언 윌슨은 러브가 그에게 그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51]
9. 5. 캐피톨 소송과 파크스의 탈퇴 (1966년 12월-1967년 3월)
1966년 12월 15일, 브라이언 윌슨은 캐피톨 레코드의 A&R 이사 칼 엥게만에게 음반과 리드 싱글 〈Heroes and Villains〉가 "1967년 1월 15일 전"에 나올 것이라고 알렸다. 이에 캐피톨은 《Smile》과 〈Heroes and Villains〉의 발매일을 1967년 3월로 연기했다. 윌슨은 캐피톨이 밴드에게 지급해야 할 돈을 주지 않고 있다고 의심했고, 그리에게 레이블의 재정 기록을 감사하도록 지시했다. 곧 불일치가 발견되었다. 아마도 캐피톨이 싱글 발매를 고집했기 때문일 것이며, 윌슨은 1966년 12월 19일에 〈Heroes and Villains〉 작업을 재개한 후 1967년 4월까지 앨범의 다른 트랙 작업을 중단했다.1967년 1월, 브라이언은 마감일을 놓쳤고 앨범 작업에 덜 몰두하게 되었고, 칼은 미국 육군으로부터 징집 통지서를 받았다. 〈Good Vibrations〉는 10위 안에 7주 동안 머무른 후 20위 차트 순위에서 떨어지기 시작했고, 반 다이크 파크스는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로부터 솔로 아티스트 계약을 제안받았다.
2월 28일, 밴드는 캐피톨을 상대로 25만 달러(2023년 기준 2,350,000달러)에 달하는 로열티 미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과 함께, 1969년 11월 만료되기 전에 레코드 계약을 종료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소송 이후, 윌슨은 앨범의 리드 싱글이 아직 녹음을 시작하지 않은 〈Vega-Tables〉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반 다이크 파크스는 〈Vega-Tables〉를 앨범의 리드 싱글로 발매하는 것에 강력히 반대했는데, 그는 이 곡을 그들의 약한 곡 중 하나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2월 이후, 작사가들이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파크스와 윌슨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었는데, 윌슨은 파크스의 "가사가 너무 세련되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브라이언의 음악이 [반 다이크에게] 충분히 세련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월 2일, 〈Heroes and Villains〉 세션 후, 윌슨과 파크스는 가사를 두고 의견 충돌을 겪었고, 잠정적으로 파트너십을 해체했다. 이 사건은 때때로 《Smile》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사건으로 인용된다. 파크스 자신은 자신이 관련이 없다고 느꼈던 가족 간의 싸움에 계속 연루되기를 원하지 않았고, 그의 지속적인 참여 없이도 《Smile》이 완성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9. 6. 윌슨의 벨 에어 이사와 붕괴된 집단 (1966년 말-1967년 4월)
브라이언 윌슨의 편집증적 망상은 1966년 겨울 내내 심해졌고,[45] 그의 불안정한 행동은 동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음반 프로듀서 필 스펙터와 영화감독 존 프랑켄하이머가 유대인 음모의 일환으로 자신을 파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믿었다. 윌슨은 롤링 스톤스와 특히 비틀즈에 대한 경쟁심에 사로잡혀 있었고, 다른 아티스트를 자신만큼 좋아하지 않기를 바랐다. 1967년 초, 비틀즈가 ''Revolver''의 후속작을 작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윌슨은, 먼저 출시되는 앨범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67년 2월, 윌슨은 세코날의 영향을 받은 상태에서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를 처음 듣고 "그들이 이미 내가 ''Smile''로 하고 싶었던 것을 해냈다"며 좌절감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1967년 3월, 세션 "진동"이 너무 적대적이라고 판단하여 취소되었고, 다른 두 날짜도 취소되었다. 3월 18일, KMEM은 윌슨이 "Heroes and Villains"와 ''Smile''을 준비하는 데 바쁘다고 보도했다. 3월 30일, KFXM은 소송으로 인해 새 싱글 발매가 지연되었다고 보도했다. 다음 날, 반 다이크 파크스가 잠시 프로젝트에 복귀했다. 4월, 폴 매카트니가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하여 곧 발매될 비틀즈의 노래 "She's Leaving Home"을 윌슨에게 들려주었다. 이 무렵, 윌슨은 데릭 테일러가 비틀즈에게 ''Smile'' 테이프의 일부를 들려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듣고 "강간당한" 느낌을 받았고,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충성심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1967년 중반, 윌슨은 벨 에어의 새 저택으로 이사하고, 개인 홈 스튜디오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반 다이크 파크스와 로렌 슈왈츠를 포함한 대부분의 측근들은 4월까지 윌슨의 사교 집단에서 벗어나거나 추방되었다.
9. 7. 중단기 (1967년 4월-5월)
반 다이크 파크스는 1967년 4월 14일 "Vega-Tables" 세션을 마지막으로 《Smile》 앨범 작업에서 손을 뗐다. 윌슨은 이후 4주 동안 스튜디오에서 휴식을 취했다. 안데를은 "《Smile》을 파괴한 가장 중요한 것은 반 다이크가 관계를 끊은 것"이라고 회고했다.4월 25일, CBS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Inside Pop: The Rock Revolution》을 방영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윌슨이 피아노에서 "Surf's Up"을 부르는 영상이 포함되었으나, 《Smile》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켄트에 따르면, 윌슨은 완성된 다큐멘터리를 보고 불안감을 느껴 앨범 작업이 더욱 붕괴되었다고 한다.
4월 28일, EMI는 밴드의 승인 없이 "Then I Kissed Her"를 싱글로 발매했다. 4월 29일, 데릭 테일러는 ''Disc & Music Echo''에 "새 비치 보이스 앨범의 12곡이 모두 완성되었다"고 발표했으나, 같은 날 ''Record Mirror''와 ''NME''에 "Heroes and Villains"가 "기술적 어려움"으로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5월 6일, 테일러는 ''Disc & Music Echo''에 윌슨이 《Smile》 앨범을 "폐기"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윌슨은 테일러의 발표를 몰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5월 11일, 윌슨은 "Heroes and Villains" 작업을 재개했다. 5월 14일, 밴드 동료들은 암스테르담에서 기자 회견을 열었으나, 윌슨과의 소통 단절로 인해 《Smile》의 발매 시기에 대한 혼선이 있었다. 5월 18일 "Love to Say Dada" 세션을 마지막으로, 《Smile》 앨범 작업은 완전히 중단되었다.
9. 8. 《Smiley Smile》 (1967년 6월-9월)
1967년 6월, 윌슨은 밴드 멤버들에게 《Smile》을 위해 녹음된 대부분의 자료가 금지되었다고 선언했다.[62][61][21] 6월부터 7월까지 비치 보이스는 윌슨의 집에서 재회하여 그의 즉석 스튜디오에서 《Smiley Smile》의 대부분을 녹음했다. 이 앨범은 《Smile》보다 훨씬 덜 야심찬 작품으로, 스타일 면에서 《Beach Boys' Party!》와 유사하며 선택된 《Smile》 자료의 단순화된 리메이크를 포함한다. 단 두 트랙만 《Smile》 세션에서 시작된 모듈을 사용했다("Heroes and Villains" 2개와 "Vegetables" 2개).[21] 파크스는 앨범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밴드가 《Smile》이 "너무 이상하다"는 이유로 보류되었다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Smiley Smile》의 음악적 내용을 일반 청중에게 덜 기괴하게 보이려는 시도는 없었다.
9월 18일, 프로덕션이 "비치 보이스"로 크레딧된 밴드의 첫 앨범인 《Smiley Smile》은 압도적이지 않은 비평적 및 상업적 반응으로 발매되었다.
10. 여파
10. 1. 윌슨의 고군분투와 《Song Cycle》
1967년 내내, 브라이언 윌슨은 불안하고 성숙해져 가는 젊은 층을 위한 혁신적인 록 앨범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괴짜" 인물로 이미지가 축소되었다. 그는 점차적으로 프로듀싱과 작곡 업무를 나머지 그룹 멤버들에게 넘겨주고, 음식, 술, 약물의 과도한 섭취로 자가 치료했다. 앨범이 중단된 후 수년 동안 윌슨은 이 프로젝트로 인해 정신적 외상을 입었고, 그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모든 실패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다.[38] 그는 이 음반이 "영혼 없이 조작된" "촌스러운 약물에 영향을 받은 음악" 이고, "그에게는 전혀 미치지 못하는" 필 스펙터의 작품을 모방한 것이라고 말했다.[64] ''Smile''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는 보통 언급을 피하거나 궁금해하는 사람에게서 그냥 걸어 나가곤 했다.[38] 그는 2000년대 초까지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했다.[24]밴 다이크 파크스는 처음에는 앨범의 전설에서 거리를 두려고 했다. 1998년, 그는 ''Smile''을 "수년 전 계약직으로 했던 몇 달간의 작업일 뿐입니다. 인생은 계속됩니다. [...] 제 생각에는 저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훨씬 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2006년 윌슨에 관한 그의 전기에서 칼린은 파크스가 "1967년에 제대로 완성되지 못한 무언가"에 의해 그의 경력이 가려진 것에 대해 분개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1967년 초 프로젝트에서 벗어난 후 파크스는 워너 브라더스와 솔로 계약을 맺었고, 프로듀서 레니 워론커와 작곡가 랜디 뉴먼을 포함한 창작 서클의 일원이 되었다. 그해 말, 회사는 파크스의 데뷔 앨범인 ''Song Cycle''을 발매했는데, 이 앨범은 종종 ''Smile''과 비교되었고, 지금도 그렇다. ''Song Cycle''은 판매 부진을 겪었지만, 파크스는 워너에서 편곡자로 계속 일했다.
10. 2. 추가 녹음 및 폐기된 Reprise 발매
《Smile》 자료 중 일부는 후속 비치 보이스 앨범에 계속해서 조금씩 등장했는데, 종종 윌슨의 기여 의지 부족을 상쇄하기 위한 채우기 곡으로 사용되었다. 1969년, 칼 윌슨, 데니스 윌슨, 존스턴은 1968년 11월에 추가 보컬을 녹음하여 "Cabin Essence"( "Cabinessence"로 제목 변경)와 "Prayer"("Our Prayer"로 제목 변경)를 밴드의 앨범 《20/20》에 수록했다. 브라이언 윌슨은 "Prayer"와 "Cabin Essence"의 수록에 반대했으며, 오버더빙 세션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했다. "Workshop" 또한 《20/20》 버전의 "다시 해봐"에 통합되었다.
《20/20》 이후, 비치 보이스는 밴 다이크 파크스가 중개한 계약으로 Reprise Records와 계약을 맺었다. 밴드의 음반 계약에는 1973년까지 완성된 《Smile》 앨범을 전달하는 조건으로 5만 달러의 선급금을 보장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1970년, 그들의 첫 번째 레프라이즈 앨범인 《선플라워》에는 "Love to Say Dada"에서 발전한 곡인 "Cool, Cool Water"가 수록되었다.

1971년, 밴드는 《서프스 업》 앨범을 위해 "Surf's Up"을 완성하여 수록했다. 1971년 6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 칼과 밴드 매니저 잭 리일리는 Capitol의 금고에서 《Smile》 멀티 트랙을 꺼내 "Surf's Up" 마스터를 찾고 테이프를 수리하고 연결하려 했다.
1972년, 칼은 런던 기자 회견에서 《Smile》의 임박한 발매를 발표했지만,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그는 앨범 작업을 해왔느냐는 질문에, 지난 6월부터 해왔으며, 그룹이 모든 테이프의 안전 복사본을 만들었다고 답했다. 그는 이 테이프들이 현재 완전히 조립되었고 필요한 경우 새로운 보컬이 오버더빙되었다고 주장했다.
1973년, 밴드의 계약 조건에 따라 《Smile》 앨범을 전달해야 했지만, 결국 발매되지 않았다. 앨범은 전달되지 않았고, 위협대로 5만 달러가 그룹의 다음 지불액에서 보류되었다.
11. 부틀렉, 부분 발매 및 팬들의 노력
1970년대 말까지, 오리지널 《Smile》 녹음 자료의 상당수는 부틀렉으로만 공개되었다. 이러한 부틀렉들은 종종 완성된 앨범에 대한 가상의 비전을 제시했으며, 컴파일러들은 시퀀싱 선택을 설명하는 라이너 노트를 포함했다. 앨범 내용에 대한 가장 신뢰할 만한 출처 중 하나는 1966년 말 캐피틀에서 제작한 폐기된 《Smile》 앨범 재킷에 포함된 곡 제목 목록이었다.
《Smile》로 추정되는 오디오 부틀렉은 1970년대 후반 팬들 사이에서 유통되기 시작했고, 《Smiley Smile》, 《20/20》, 그리고 《Surf's Up》에 수록된 자료를 활용했다. 컴파일러들은 《Smile》 앨범 재킷에 나열된 곡 제목에만 의존했으며, 발매된 자료의 대부분이 오리지널 《Smile》 세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앤드루 플로리에 따르면, "[실제] ''Smile'' 자료가 부틀레거의 손에 어떻게 들어갔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라고 한다. 1970년대 후반에 테이프 전송과 아세테이트 디스크가 유출되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1980년대 초까지 부틀레거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자료는 최소한에 불과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비치 보이스의 팬 클럽은 데이비드 리프(David Leaf), 돈 커닝햄(Don Cunningham), 마티 테이버(Marty Tabor), 도메닉 프리오레(Domenic Priore)를 포함한 최소 12명의 사람들에 의해 조직되었다. 대부분의 팬 서신은 뉴스레터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이는 정보 전파를 돕고 밴드의 음악에 대한 세부 정보를 수집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그룹이 확산된 것은 부분적으로 1976년 앨범 《15 Big Ones》의 뒷면에 밴드의 공식 팬 클럽인 비치 보이스 프리크스 유나이티드(Beach Boys Freaks United)에 대한 광고가 게재된 데 기인한다.
1978년 밴드에 대한 공인된 전기 작성을 돕기 위해 바이런 프라이스(Byron Preiss)는 《Smile》 녹음 자료의 테이프를 받았고, 그 내용은 다음 몇 년 동안 소수의 사람들에게 배포되었다.[71] 그해 리프가 저술한 또 다른 밴드의 전기가 출판되었다. 리프는 그의 책에서 《Smile》이 "브라이언이 의도한 대로 결코 완성될 수 없기 때문에, 생존한 테이프와 아웃테이크를 엘비스의 《선 세션》과 같은 《The Smile Sessions》라는 일련의 레코드로 발매하는 것이 타협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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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 그것에 대해 너무 많은 언론 보도가 있었어요. 마치 '67 롤스로이스를 꺼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결국 [현대]에 보여주는 것과 같아요. "아, 안돼."라고 말할 거예요.
|source =—브루스 존스턴(Bruce Johnston)이 1981년 《Smile》의 완전한 발매에 반대하며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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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프의 책에는 브루스 존스턴(Bruce Johnston)의 발언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는 그러한 발매가 상업적으로 "나쁜 생각"이며 "주빈 메타와 같은 사람이 젊은 작곡가의 작품을 분석하는 경우에만 기대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1983년, 48분짜리 카세트 테이프가 유포되기 시작했고, 곧 "Brother Records" 《Smile》이라고 불리는 LP 부틀렉으로 찍혀 나왔다. 여기에는 《Smile》에서 파생되었거나 프로젝트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지는 다양한 자료와 함께,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1959년 녹음인 "Here Come de Honey Man"이 "Holidays"로 잘못 표기되어 포함되었다. LP는 표지에 저작 출처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Cunningham의 ''Add Some Music'', Tabor의 ''Celebrate'', Beach Boys Freaks United, 그리고 호주 간행물 ''California Music''의 조직 주소를 특징으로 했다.
1985년 4월, 비디오 다큐멘터리 《더 비치 보이스: 아메리칸 밴드》(The Beach Boys: An American Band)에는 "Fire"의 발췌 부분을 포함하여 이전에 공개되지 않은 비치 보이스(Beach Boys)의 음악이 실렸다. 또한 그 해에, Brother Records LP의 "Second Edition"이 주소가 표시되지 않은 채로, 상당히 다른 배열 순서로 등장했다. 이 세트에는 새롭게 이용 가능한 《Smile》 녹음의 확산을 시사하는 다른 믹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개선된 음질은 비치 보이스 내부자가 밴드의 테이프 금고에 접근하여 녹음의 카세트 사본을 만들었음을 시사했다.[71]
언론인 데이비드 카바나(David Cavanaugh)에 따르면, "캐피톨 임원들을 위해 편집된 카세트가 대중에게 유출되면서 상황이 악화되었고, 브라이언은 흥미를 잃었다."[71]
'스마일' 부트렉의 광범위한 유포는 대중에게 윌슨이 인터뷰에서 인정했던 것보다 앨범이 완성에 더 가까이 다가섰다는 것을 알렸다. 1980년대 중반부터 CD가 부트렉의 주요 매체로 비닐을 대체했고, 리넷 테이프 유출 이후 수십 개의 다른 '스마일' CD가 우편 주문, 독립 레코드 상점, 그리고 헤드 샵을 통해 상업적으로 거래되고 판매되었다.
1993년, 캐피톨은 박스 세트 《Good Vibrations: Thirty Years of the Beach Boys》에 40분 이상 분량의 오리지널 《Smile》 녹음을 발매했다. 이전에 발매되지 않은 트랙에는 〈Do You Like Worms?〉, 〈I Love to Say Da Da〉, 〈Wonderful〉, 〈Wind Chimes〉, 〈Vegetables〉의 '스마일' 버전, 〈Surf's Up〉과 〈Cabinessence〉의 세션 하이라이트, 그리고 일부 잘못된 제목의 〈Heroes and Villains〉 아웃테이크가 포함되었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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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홈메이드 카세트 레코더가 없는 분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있다면, 빈 홈메이드 카세트에 이 제안을 시도해 보세요: 직접 집에서 '스마일' 앨범을 만들어보세요!!!
|source =—음악 역사학자 도메닉 프리오레의 저서 'Look! Listen! Vibrate! 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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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Vibrations》 세트는 리프, 페일리, 리넷이 시퀀싱한 컴파일된 《Smile》 앨범을 최초로 공식 발매했다. 그러나 자료는 완성된 앨범이 어떤 소리가 날지에 대한 근사치를 실제로 보여주지 않고, 대부분 "있는 그대로" 제시되었다.[21] 리프의 《Good Vibrations》 라이너 노트에 있는 제안에 따라, 많은 청취자들이 박스 세트에 제공된 자료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앨범 버전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12. 공식 버전
2004년, 브라이언 윌슨은 1970년대부터 발전해 온 《Smile》 팬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 《'''Brian Wilson Presents Smile'''》(''BWPS'')을 완성했다. 윌슨이 2000년대 초에 《펫 사운즈》 앨범을 라이브로 공연한 후, 사하나자는 밴드 리허설에서 《Smile》 곡들을 제안하기 시작했고, 이는 《Smile》 테마의 세트리스트로 구성된 콘서트 계획으로 이어졌다. 사하나자는 이 프로젝트의 "음악 비서" 역할을 맡았고 파크스는 시퀀싱과 새로운 가사 작성을 돕기 위해 영입되었다. 윌슨과 함께 그들은 프레젠테이션을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했다. 스티븐 게인스에 따르면 윌슨은 1980년 초에 이미 《Smile》을 세 개의 악장으로 완성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BWPS''는 2004년 2월 런던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초연되었다. 6주 후 스튜디오 앨범이 녹음되어 9월에 발매되었다. 리프의 다큐멘터리 영화 ''아름다운 몽상가: 브라이언 윌슨과 스마일 이야기''(Beautiful Dreamer: Brian Wilson and the Story of Smile)는 다음 달 쇼타임에서 초연되었다. 윌슨의 밴드 멤버 중 누구도 ''BWPS''나 다큐멘터리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앨범에 원본 녹음은 사용되지 않았다. 이 앨범은 ''빌보드'' 핫 100에서 13위로 데뷔했는데, 이는 1976년 ''15 Big Ones'' 이후 비치 보이스 또는 브라이언 윌슨의 앨범 중 가장 높은 순위였다. 앨범 홍보를 위해 윌슨은 미국, 유럽, 일본을 포함한 월드 투어를 시작했다.
=== 2011년 - 《The Smile Sessions》 ===
2011년 10월, 비치 보이스의 《Smile》에 헌정된 최초의 공식 패키지인 《The Smile Sessions》가 5개의 CD 박스 세트로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는 광범위한 세션 하이라이트와 아웃테이크, 그리고 2004년 버전을 모델로 하여 완성된 앨범이 어떤 소리를 냈을지에 대한 근사치가 담겨 있다. 제작에는 프리오레와 럼 등 수십 년 동안 비치 보이스 팬 커뮤니티에 참여해 온 사람들이 참여하여 에세이를 기고하고 자문 역할을 했다. 이 세트는 즉각적인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롤링 스톤의 "역대 최고의 앨범 500장" 2012년 목록에 이름을 올렸고, 제55회 그래미상에서 최우수 역사적 앨범을 수상했다.
수록곡은 다음과 같다:
제목 | 작곡가 | 길이 |
---|---|---|
Our Prayer | 브라이언 윌슨 | 1:05 |
Gee | 데이비스, 레비 | 0:51 |
Heroes and Villains | 브라이언 윌슨, 밴 다이크 파크스 | 4:52 |
Do You Like Worms (Roll Plymouth Rock) | 브라이언 윌슨, 밴 다이크 파크스 | 3:35 |
I'm in Great Shape | 브라이언 윌슨 | 0:28 |
Barnyard | 브라이언 윌슨 | 0:48 |
My Only Sunshine (The Old Master Painter / You Are My Sunshine) | 기레스피, 데이비스, 미첼 | 1:55 |
Cabin Essence | 브라이언 윌슨, 밴 다이크 파크스 | 3:30 |
Wonderful | 브라이언 윌슨, 밴 다이크 파크스 | 2:04 |
Look (Song for Children) | 브라이언 윌슨, 밴 다이크 파크스 | 2:31 |
Child Is Father of the Man | 브라이언 윌슨, 밴 다이크 파크스 | 2:10 |
Surf's Up | 브라이언 윌슨, 밴 다이크 파크스 | 4:12 |
I Wanna Be Around / Workshop | 머커, 윌슨 | 1:23 |
Vega-Tables | 브라이언 윌슨, 밴 다이크 파크스 | 3:49 |
Holidays | 브라이언 윌슨 | 2:32 |
Wind Chimes | 브라이언 윌슨 | 3:06 |
The Elements: Fire (Mrs. OLearys Cow) | 브라이언 윌슨 | 2:35 |
Love to Say Dada | 브라이언 윌슨 | 2:32 |
Good Vibrations | 브라이언 윌슨, 마이크 러브 | 4:15 |
12. 1. 2004년 - 《Brian Wilson Presents Smile》
2004년, 브라이언 윌슨은 1970년대부터 발전해 온 《Smile》 팬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 《'''Brian Wilson Presents Smile''》(이하 ''BWPS'')을 완성했다. 윌슨이 2000년대 초에 《펫 사운즈》 앨범을 라이브로 공연한 후, 사하나자는 밴드 리허설에서 《Smile》 곡들을 제안하기 시작했고, 이는 《Smile》 테마의 세트리스트로 구성된 콘서트 계획으로 이어졌다. 사하나자는 이 프로젝트의 "음악 비서" 역할을 맡았고 파크스는 시퀀싱과 새로운 가사 작성을 돕기 위해 영입되었다. 윌슨과 함께 그들은 프레젠테이션을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했다. 스티븐 게인스에 따르면 윌슨은 1980년 초에 이미 《Smile》을 세 개의 악장으로 완성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BWPS''는 2004년 2월 런던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초연되었다. 6주 후 스튜디오 앨범이 녹음되어 9월에 발매되었다. 리프의 다큐멘터리 영화 ''아름다운 몽상가: 브라이언 윌슨과 스마일 이야기''(Beautiful Dreamer: Brian Wilson and the Story of Smile)는 다음 달 쇼타임에서 초연되었다. 윌슨의 밴드 멤버 중 누구도 ''BWPS''나 다큐멘터리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앨범에 원본 녹음은 사용되지 않았다. 이 앨범은 ''빌보드'' 핫 100에서 13위로 데뷔했는데, 이는 1976년 ''15 Big Ones'' 이후 비치 보이스 또는 브라이언 윌슨의 앨범 중 가장 높은 순위였다. 앨범 홍보를 위해 윌슨은 미국, 유럽, 일본을 포함한 월드 투어를 시작했다.
12. 2. 2011년 - 《The Smile Sessions》
2011년 10월, 비치 보이스의 《Smile》에 헌정된 최초의 공식 패키지인 《The Smile Sessions》가 5개의 CD 박스 세트로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는 광범위한 세션 하이라이트와 아웃테이크, 그리고 2004년 버전을 모델로 하여 완성된 앨범이 어떤 소리를 냈을지에 대한 근사치가 담겨 있다. 제작에는 프리오레와 럼 등 수십 년 동안 비치 보이스 팬 커뮤니티에 참여해 온 사람들이 참여하여 에세이를 기고하고 자문 역할을 했다. 이 세트는 즉각적인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롤링 스톤의 "역대 최고의 앨범 500장" 2012년 목록에 이름을 올렸고, 제55회 그래미상에서 최우수 역사적 앨범을 수상했다.수록곡은 다음과 같다:
제목 | 작곡가 | 길이 |
---|---|---|
Our Prayer | 브라이언 윌슨 | 1:05 |
Gee | 데이비스, 레비 | 0:51 |
Heroes and Villains | 브라이언 윌슨, 밴 다이크 파크스 | 4:52 |
Do You Like Worms (Roll Plymouth Rock) | 브라이언 윌슨, 밴 다이크 파크스 | 3:35 |
I'm in Great Shape | 브라이언 윌슨 | 0:28 |
Barnyard | 브라이언 윌슨 | 0:48 |
My Only Sunshine (The Old Master Painter / You Are My Sunshine) | 기레스피, 데이비스, 미첼 | 1:55 |
Cabin Essence | 브라이언 윌슨, 밴 다이크 파크스 | 3:30 |
Wonderful | 브라이언 윌슨, 밴 다이크 파크스 | 2:04 |
Look (Song for Children) | 브라이언 윌슨, 밴 다이크 파크스 | 2:31 |
Child Is Father of the Man | 브라이언 윌슨, 밴 다이크 파크스 | 2:10 |
Surf's Up | 브라이언 윌슨, 밴 다이크 파크스 | 4:12 |
I Wanna Be Around / Workshop | 머커, 윌슨 | 1:23 |
Vega-Tables | 브라이언 윌슨, 밴 다이크 파크스 | 3:49 |
Holidays | 브라이언 윌슨 | 2:32 |
Wind Chimes | 브라이언 윌슨 | 3:06 |
The Elements: Fire (Mrs. OLearys Cow) | 브라이언 윌슨 | 2:35 |
Love to Say Dada | 브라이언 윌슨 | 2:32 |
Good Vibrations | 브라이언 윌슨, 마이크 러브 | 4:15 |
13. 영향과 유산
《Smile》은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미발매 앨범으로, 강렬한 추측과 신비주의의 대상이었다.[96][72] 앨범 미발매 이후 수십 년 동안, 《Smile》에 대한 신화적 지위는 당시 윌슨 주변의 작가들과 "주변 인물들"에 의해 더욱 커졌다.[72] 특히 1967년 10월 잡지 《치타》에 게재된 줄스 시겔의 회고록 "굿바이 서핑, 헬로 갓!"은 《Smile》과 관련된 많은 신화와 전설을 만들어냈다.[4][72]
1970년대 동안, 프로젝트를 둘러싼 신비주의는 음악 평론가들 사이에서 점차 공유되었다.[31] 데이브 마쉬는 이를 "쇼 비즈니스에서 거의 비할 데 없는 신화 조작"이라고 비판했다.[31] 2014년, 루이스 산체스는 앨범의 신화가 과장과 소문으로 유지되었지만, "유혹하고 설득하는" 힘을 잃었다고 말했다.[91]
세션 부트렉은 그 자체로 영향력을 얻게 되었고,[65] 앨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더욱 증폭시켰다.[96] 1999년까지 팬들은 인터넷을 통해 앨범에 대한 많은 에세이를 발표했다.[78] 2000년대 초반에는 앨범에 헌정된 여러 권의 책이 출판되었다.[78] 롭 채프먼은 2002년에 앨범이 "팝의 황금기"의 은유가 되었다고 평가했다.[88] 2011년, 《언컷》은 《Smile》을 역대 최고의 부트렉 녹음 목록에서 1위로 선정했다.[80]
브라이언 윌슨은 《Smile》을 통해 디지털 시대에 일반화된 편집 기법을 예견했다.[22] 《Smile》 앨범 커버는 록 음악에서 가장 전설적인 것 중 하나로 여겨지며,[89] 폴 윌리엄스는 윌슨이 《Smile》을 통해 샘플링의 초기 선구자 중 한 명이 되었다고 주장했다.[89]
《Smile》은 인디 록에 영향을 미쳤으며,[89] 챔버 팝과 포스트펑크의 시금석이 되었다.[91] The Elephant 6 Recording Company는 1960년대 팝 음악에 대한 상호 존경을 통해 설립되었으며, 《Smile》은 "그들의 성배"였다.[92]
《Smile》의 결정적인 형태나 내용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으며, 《Smile》을 "앨범"으로 간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21] 2004년, 파크스는 《Smile》을 통해 최초의 대화형 앨범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21]
14. 가상 발매 시나리오
많은 지지자들은 《Smile》이 발매되었다면 비치 보이스의 방향을 바꾸고 록 혁신가들의 선두 자리를 굳건히 했을 것이라고 믿는다.[81] 앨런 무어는 이 앨범이 개념 앨범의 발전에 완전히 다른 가능한 노선을 제시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하워드는 ''소닉 알케미''에서 "윌슨이 모든 점을 연결할 수 있었다면, ''Smile''은 악명 높고 불행한 각주가 아니라 팝 음악의 주요 예술적 성명 중 하나로 여겨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Stylus Magazine의 에드 하워드는 이 앨범이 비치 보이스와 팝 음악 전체의 경계를 넓혔을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81]
Pitchfork의 스펜서 오웬은 2001년에 이 앨범이 대중 음악 역사의 흐름을 극적으로 바꿨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82] 안데를은 ''Smile''이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만큼 큰 영향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보았다.[83] The Irish Times의 브라이언 보이드는 윌슨이 비틀즈와 경쟁하려는 욕망이 이 프로젝트의 붕괴에 기여했다고 비난했지만, 이러한 경쟁 본능은 그의 라이벌들도 공유했기 때문에 ''Smile''의 발매가 그룹의 해체를 연장시켰을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83]
《Smile》을 위해 녹음된 내용의 대다수는 바이닐 디스크의 런타임 제약으로 인해 앨범에서 제외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프랭크 자파와 밥 딜런과 같은 동시대 인물들이 더블 앨범을 실험했지만, 1966년이나 1967년에 ''Smile''을 위한 멀티 디스크 형식이 "고려되었다는 징후"는 없다고 한다.[76] ''Mojo''의 짐 어빈은 "완성되었다면 ''Smile''이 완벽했을 것이라는 가정"에 이의를 제기했다.[84]
''Smile''을 둘러싼 추측의 일부는 이 앨범이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을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87년 인터뷰에서 ''Smile''이 라이벌의 후속 앨범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을지 질문을 받은 윌슨은 "아니요. 그렇게 가까이 가지 못했을 겁니다. ''Sgt. Pepper''가 우리를 ''이기게'' 했을 겁니다."라고 대답했다.[85] 이후 그는 자신의 작품이 1967년의 청중들에게 "너무 앞섰을 것"이라고 주장했다.[24] 1993년, 마이크 러브는 ''Smile''이 "훌륭한 앨범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미완성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고, 단지 파편일 뿐"이라고 말했다.[86] 클린턴 헤일린은 파크스의 가사를 비판하며, 남아있는 ''Smile''의 많은 녹음 자료가 "윌슨이 ''Revolver''에 필적하는 앨범을 완성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사이키델릭한 후속작조차 완성할 수 없었음을 확인시켜준다"고 선언했다. Kicks 공동 편집인 빌리 밀러는 ''Smile''이 ''Sgt. Pepper'' 이후 발매되었다면 누구도 크게 흥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AllMusic의 리치 언터버거는 "수많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구절"이 유통되고 있었지만, "윌슨은 그들을 훌륭하고 상업적인 팝 명작으로 결합하는 데 필요한 규율이 부족했다."라고 말했다.[87] 전 Record Collector 편집자 피터 도겟은 ''Smile''이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지만 상업적인 실패를 겪었을 Song Cycle과 같은 반응을 얻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Smile''의 발매가 "분명히 비틀즈를 몇 달 동안 좌절하게 만들면서 적절한 답변을 고려하게 했을 것이다 [...] 그러나 도어스, 러브, 제퍼슨 에어플레인처럼 상업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썼다.
15. 대중문화 속 《Smile》
루이스 시너의 1991년 SF 소설 《Glimpses영어》에는 주인공이 1966년 11월로 시간 여행을 하여 비치 보이스의 앨범 《Smile》 완성을 돕는 내용의 챕터가 포함되어 있다.[78] 2007년 코미디 영화 《워크 하드: 듀이 콕스 스토리》에는 《Smile》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걸작" (제목은 "Black Sheep")을 녹음하는 데 몰두하다가 정신 붕괴를 겪는다.[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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