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S 밸리포지 (CV-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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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USS 밸리포지 (CV-45)는 에식스급 항공모함으로, 1944년 기공되어 1946년 취역했다. 1948년 세계 일주 항해를 했으며,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4차례 파병되어 제트기를 실전 운용한 최초의 항공모함이 되었다. 대잠수함전 지원 항공모함으로 개조되어 훈련을 수행했고, 1961년 강습상륙함으로 변경되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1969년 퇴역 후 영화 촬영에 사용되기도 했으며, 1971년 고철로 매각되었다.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참전으로 다수의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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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S 밸리포지 (CV-45) - [배(Ship)]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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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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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명 | 밸리 포지 |
함명 유래 | 밸리 포지 전투 |
소속 국가 | 미국 해군 |
건조 조선소 |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 |
기공일 | 1943년 9월 14일 |
진수일 | 1945년 11월 5일 |
취역일 | 1946년 11월 21일 |
퇴역일 | 1970년 1월 16일 |
재분류 | CVA-45, 1952년 10월 1일 CVS-45, 1954년 1월 1일 LPH-8, 1961년 7월 1일 |
퇴역 후 운명 | 1971년 10월 해체 |
특징 | |
함급 | 에식스급 항공모함 |
동력 | 8 × 보일러 |
추진 | 4 × 기어 증기 터빈 4 × 축 |
승무원 | 장교 및 사병 3448명 |
무장 | 12 × 5인치 (127 mm)/38 구경 함포 32 × 보포스 40 mm 기관포 46 × 엘리콘 20 mm 기관포 |
장갑 | 벨트: 격납고 갑판: 갑판: 조타실: 1.5 인치 |
탑재 항공기 | 90–100대 |
2. 건조 및 취역
1945년 필라델피아 시민들은 ''밸리포지'' 건조를 위해 제7차 전시 채권 판매 동안 7600만달러 이상의 E 채권을 구매했다.[2] 필라델피아의 학생들은 776.9351만달러 상당의 채권을 판매했다.[2]
밸리포지는 1944년 9월 7일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에서 기공되었다. 1945년 11월 18일에 진수되었으며, 해병대 사령관 알렉산더 A. 반데그리프트의 부인인 밀드레드 반데그리프트 여사가 후원했다. 1946년 11월 3일 대위 존 W. 해리스의 지휘하에 취역했다.[5]
취역 선물로, 펜실베이니아주는 해군에 제공된 최고의 주 실버 서비스를 ''밸리포지''에 증정했다. 이 서비스는 1904년 필라델피아 은세공인들이 디자인하고 제작했으며, 원래 USS 펜실베이니아에 탑재되었다. 정교한 서비스는 바다의 신 넵투누스, 해마와 돌고래, 역사적 장면과 인물, 그리고 주 문장으로 장식되었다.[2]
2. 1. 건조 배경 및 특징
이 함선은 1944년 9월 7일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에서 기공된 "롱헐" 에식스급 항공모함 중 하나였다. 모든 롱헐 ''에식스''급 함선과 마찬가지로, 전체 길이는 약 270.66m, 수선 길이는 약 249.94m였다. 선폭은 최대 약 44.81m였고 수선에서는 약 28.35m였다. 흘수는 표준 배수량에서 약 8.53m였고, 만재 배수량에서 약 9.14m였다. 설계상 표준 배수량은 약 27941292.50kg, 만재 배수량은 약 33935969.80kg였다.[3]추진을 위해, 이 급의 함선은 565psi에서 증기를 생산하는 8개의 Babcock & Wilcox 보일러와 약 454.4°C의 온도에서 150000shp를 전달했다. 4개의 Westinghouse 기어드 터빈을 직경 약 4.27m의 4개의 프로펠러와 연결하여 사용했다.[2] 최고 속도는 33kn, 항속 거리는 15kn에서 15440nmi로 설계되었다. 해상 시험 동안, 엔진은 154000shp를 생산했고, 32.93kn의 속도를 냈다. 약 6401096.10kg의 연료유와 231650USgal의 항공 휘발유를 탑재했다.
무장으로, 원래는 12문의 5"/38구경 함포, 8문의 4연장 40mm 보포스포, 46문의 20mm 외르리콘포로 무장했다. 격납고 및 방어 갑판에는 약 3.81cm의 장갑이, 밸트 아머는 2.5to(-) 두께였다. 방어 격벽에는 약 10.16cm의 장갑이 있었다. 함교 상부에는 약 3.81cm의 특수 처리 강철(STS)이, 조타실 측면에는 약 2.54cm의 STS가 있었다. 조타 장치에는 약 6.35cm의 갑판이 있었다.[3]
비행 갑판은 862x, 격납고 갑판은 654x에 높이 약 5.18m였다. 각각 48x에 약 12700.58kg의 용량을 가진 2개의 엘리베이터, 2개의 비행 갑판 항공기 사출기, 그리고 Mark IV 착함 장치를 갖추었다. 36대의 전투기, 36대의 급강하 폭격기, 18대의 뇌격기를 탑재하도록 설계되었지만, 임무와 해군 항공기의 변화에 따라 운용 기간 동안 변경되었다.[3]
가장 젊은 ''에식스''급 항공모함 중 하나인 ''밸리포지''는 언니 함선들이 받은 SCB-27 또는 SCB-125 개장을 받지 않았다. 평생 동안 2차 세계 대전 스타일의 직선형 비행 갑판을 유지했다. 1954년 대잠 항공모함 CVS-45로 전환되면서 무장이 변경되었다. 20mm 외르리콘포는 제거되었고, 12문의 5"/38구경 함포와 총 72문의 40mm 보포스포를 탑재했다.
2. 2. 취역 및 초기 활동
밸리포지는 1946년 11월 3일, 존 W. 해리스 함장의 지휘 하에 취역했다.[1]장비 완료 후 1947년 1월 24일에 노퍽을 출항하여 파나마 운하를 경유, 쿠바의 관타나모 만으로 정조 항해를 실시했다. 3월 18일에 순항을 마치고, 오버홀을 위해 필라델피아로 귀환했다.[1] 7월 14일에 필라델피아를 출항, 8월 5일에 파나마 운하를 통과했다. 8월 14일에 모항인 샌디에이고에 도착하여, 태평양 함대에 합류했다. 제11항공단을 탑재한 후 원해에서 사격, 비행 훈련을 실시했다. 10월 9일에 하와이로 향했고, 기동 부대는 진주만 근해에서 3개월간 훈련을 실시한 후 1948년 1월 16일에 오스트레일리아로 출항했다. 시드니 방문 후 호주 해군과의 합동 훈련을 실시했고, 이어서 홍콩으로 향했다.[1]
3. 세계 일주 항해 (1948)
제11 항공단을 탑승시키고 연안 해역에서 집중적인 항공 및 사격 훈련을 거친 후, 해롤드 L. 마틴 제독이 지휘하는 제38 기동 부대 (TF 38)의 기함으로 1947년 10월 9일 하와이로 출항했다. 기동 부대는 1948년 1월 16일 오스트레일리아로 출항하기 전까지 진주만 해군 기지에서 약 3개월 동안 훈련 작전에 전념했다. 시드니 방문 후, 로열 오스트레일리아 해군 부대와 함께 훈련을 실시한 다음 홍콩으로 항해했다.
영국 식민지에서 칭다오로 항해하는 동안, 기동 부대에 호위 구축함과 함께 대서양을 경유하여 귀국하라는 명령이 도착했다. 이 배는 홍콩, 싱가포르, 실론의 트린코말리를 방문하며 세계 일주를 계속했다. 1948년 3월 21일 오전 8시, 배는 북위 18도 43분, 동경 64도 33분에 위치했으며, 세계의 절반을 돌았다. 페르시아 만을 방문하여 사우디 아라비아 라스 타누라의 아람코 정유소 근처에 정박하여 미국 정부의 선의를 표시했다. 3월 25일, 배의 승무원은 사우디 아라비아 왕세자를 위해 "선상에 정렬"했으며, 장교들은 담만 왕세자가 주최한 만찬에 참석했다. 아라비아 반도를 돌면서, 그녀는 당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가장 큰 항공모함이자 가장 긴 배가 되었다. 4월 6일, 지중해 함대 항공모함, 순양함, 구축함 6척과 합류하여 3일 동안 해상 훈련을 실시했다.[2]
지브롤터를 방문한 후 대서양에 진입한 후, 노르웨이 베르겐으로 향했다. 4월 29일, 눈보라로 시야가 때때로 30m 미만으로 줄어드는 험난한 피오르를 거쳐 약 40.23km 항해 후 베르겐에 정박했다. 승무원들은 도시의 주요 부분을 행진했는데,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점령군이 진입했던 방식이어서 우려를 자아냈다. 5월 1일, "메이데이" 퍼레이드와 축하 행사가 열렸지만, 불행히도 승무원들을 위해 모든 지역 펍이 문을 닫았다. 제11 항공단은 호콘 7세 국왕의 이름을 쓰면서 오슬로 수도 위에서 퍼레이드 편대 비행을 했다.
5월 4일, 영국의 역사적인 해군 기지인 포츠머스로 향했다. 거대한 영국 전함을 지나면서 21발의 예포를 발사한 후, 배는 호레이쇼 넬슨 제독의 기함인 영국 전열함 근처에 정박했다. 제6함대 사령관은 모든 승무원에게 72시간의 교대 휴가를 승인했다.
5월 13일 뉴욕으로 출항, 5월 22일 뉴욕 하항에 입항했다. 세계 일주를 시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해군 작전 참모총장 루이스 덴필드 제독이 방문하기 위해 탑승했다. 5월 27일 파나마 운하로 출항하여 6월 11일 샌디에이고 만에 도착했다.
4. 한국 전쟁 (1950-1953)
''밸리포지''는 1950년 5월 1일 미국 서해안을 출발하여 극동 지역에 배치되었다. 6월 25일 한국 전쟁 발발 당시 홍콩에 정박해 있었으며,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대한민국을 침공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미국 해군 제7함대의 기함으로서, 제77기동부대를 편성하여 참전했다.
1950년 7월 3일, ''밸리포지''에서 발진한 F9F 팬더는 평양을 공습하여 세계 최초의 제트 전투기 교전 기록을 세웠다. 같은 날 F4U 콜세어는 황해 상공에서 소련 해군 항공대의 A-20 해복 2대를 추격하여 1대를 격추했다. 또한 인천 상륙 작전과 부산 교두보 전투에서 항공 지원을 했으며, 중공군의 참전 이후에는 긴급 재투입되어 유엔군을 지원했다.
''밸리포지''는 1952년 10월 공격 항공모함(CVA-45)으로 재분류되었으며, 한국 전쟁에 총 4차례 파병되었다. 1953년 6월 25일까지 작전을 수행했다.
4. 1. 1차 파병 (1950.06 - 1950.11)

밸리포지함은 한국 전쟁에 참전한 최초의 미국 항공모함이다.[2] 1950년 5월 1일 미국 서해안에서 출항하여 극동지방에 배치되었으며,[2] 6월 25일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대한민국을 침공했을 당시 홍콩에 정박 중이었다.[2]
6월 26일 홍콩에서 출항하여 필리핀 수빅만 미국 해군 기지에 도착해 전시물자를 공급받고 한국을 향했다. 6월 28일, 밸리포지함은 미국 해군 제7함대 (미국)의 기함이 되었고,[2] 순양함 로체스터와 구축함 6척과 함께 태스크 포스 77 (미국 해군)을 구성했다.[2]
6월 30일, 태스크 포스 77 (미국 해군)은 영국 앤드류스 해군 중장이 이끄는 HMS 트라이엄프 (R16) 항공모함, 자메이카 순양함, 구축함 2척과 합류했다.[2]
7월 3일, 밸리포지함에서 최초의 공습 출격을 했다.[6] 더글러스 A-1 스카이레이더와 F4U 콜세어 전투기가 북한 평양 비행장의 탄약고, 연료저장소, 비행기 등을 공습했다.[7] F9F 팬더 전투기가 엄호했으며, 소련 야코블레프 Yak-9 전투기 2대를 격추하고 1대를 손상시켰다.[7] 이것은 세계 최초의 제트 전투기 교전 기록이다.[2]
유엔군의 맹렬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북한군 보병과 기갑 부대의 진격은 멈추지 않았고, 남한군은 부산 주변의 위태로운 방어선을 구축해야 했다.
1950년 9월 4일, VF-53 소속의 F4U 콜세어는 황해 상공에서 소비에트 해군 항공대의 더글러스 A-20 해복 2대를 추격하여 미군 함대가 인천 상륙 작전을 준비하는 것을 막기 위해 1대를 격추했다.[8][9]
1950년 9월 18일, 미국의 인천 상륙 작전으로 북한군을 포위하는 데 성공했고, 유엔군은 남쪽의 방어선에서 탈출했다. 인천 상륙 작전 이후 전세는 역전되었고, 한국군, 미군 및 기타 연합군이 북쪽으로 진격하여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진입했다.
밸리포지의 제5항공단은 북한 목표물을 상대로 매일 수많은 공격을 가했다. A-1 스카이레이더, F9F 팬서, F4U 콜세어는 병력 집중 지역, 방어 진지, 보급 및 통신선을 반복적으로 폭격했으며, 로켓과 기관포 사격을 가했다. 1950년 7월 3일부터 11월 19일까지 5,000회 이상의 전투 출격으로 약 1814370.00kg의 폭탄과 로켓이 투하되었다. 이 기간 동안 밸리포지함은 한국 해안을 따라 왕복하며 세계 일주 거리에 해당하는 거리를 항해하면서 높은 작전 기록을 유지했다.
4. 2. 2차 파병 (1950.12 - 1951.03)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악화되면서, 미국 해군은 밸리포지를 긴급히 한국으로 재투입했다. 당초 밸리포지는 샌디에이고에서 정비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중공군의 공세로 유엔군이 후퇴하게 되자 급히 복귀하게 된 것이다.[5] 밸리포지는 새로운 항공단과 100대의 항공기, 10대의 헬리콥터, 약 907185.00kg의 식량 및 물자, 약 771107.25kg의 탄약을 3일 만에 싣고 1950년 12월 6일 극동으로 출항했다.[5]1950년 12월 23일, 제77기동부대에 합류한 밸리포지는 즉시 공습을 시작했다. 이후 3개월 동안 밸리포지는 진격하는 중공군과 북한군을 상대로 집중적인 항공 작전을 펼쳤다.[5] F4U 콜세어와 A-1 스카이레이더는 병력 집중 지역, 보급 기지, 교량, 포대, 철도 장비 등을 공격하며 지상군과 해병대를 지원했다. 이 기간 동안 밸리포지는 약 2,580회 출격하여 약 1360777.50kg의 폭탄을 투하했다.[5] 이러한 노력으로 유엔군은 다시 북쪽으로 진격하여 38선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1951년 3월 29일, 밸리포지는 샌디에이고로 귀환하여 4월 7일에 도착했다.[10]
4. 3. 3차 파병 (1951.12 - 1952.07)
1951년 12월 11일, ''밸리포지''는 적 전선에 보급품이 도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철도 차단 작전을 시작했다.[2] 제1항공단 소속 A-1 스카이레이더, F4U 콜세어, F9F 팬서는 로켓, 기관총 사격, 폭탄으로 북한 철도(선로, 분기점, 조차장, 차량)를 공격했다.[2] 1952년 6월까지 ''밸리포지'' 항공기는 최소 5,346곳에서 철도 선로를 끊었다.[2]1952년 7월 3일, ''밸리포지''는 샌디에이고 해군 기지 모항으로 귀환했다.[2]
4. 4. 4차 파병 (1952.10 - 1953.06)
1952년 10월, 밸리포지함은 공격형 항공모함으로 재분류되어 CVA-45로 재명명되어 한국으로 파병되었다. 밸리포지함은 한국전쟁에 4번째 파병된 유일한 미국 항공모함이다.[5]1953년 1월 2일, 밸리포지함은 전선 후방의 중공군 지원 부대와 지원 물자를 공격했다. 프로펠러기인 A-1 스카이레이더와 F4U 콜세어가 중공군에 폭탄을 투하하고, 제트기인 F9F 팬서는 기관포와 로켓포로 적군의 대공포 사이트를 공격했다. 이러한 프로펠러 함재기와 제트 함재기의 팀워크는 한국 전쟁 동안 동해안에서 미국 해병대와 미국 육군 보병을 근접항공지원하는 통상적인 방법이었다.
4차 파병된 밸리포지함은 1953년 6월 25일 샌디에고로 복귀하기까지, 의 폭탄을 중공군에 퍼부었다.[5]
5. 대잠 항공모함 시대 (1954-1960)
''밸리포지''는 정비를 마친 후 대서양 함대로 전속되어 대잠수함전 지원 항공모함(CVS-45)으로 재분류되었다. 노퍽 해군 조선소에서 개조를 받고 1954년 1월 함대에 복귀했다. 이후 ''밸리포지''는 새로운 임무에 필요한 기술과 능력을 개발하고 숙달하기 위한 훈련에 돌입했다. 1954년 말 잉글랜드와 동부 대서양에서 훈련을 실시한 것을 제외하면, 1960년 말까지 동부 해안에서 작전을 수행하며, 지역 작전 및 대잠수함전 훈련을 실시했다. 이 기간 동안 사관 후보생 및 예비군 훈련 항해와 카리브해 방문도 이루어졌다.[5]
1957년 관타나모 만에서 훈련 중, ''밸리포지''는 미 해군 최초로 함정 상륙 부대와 쌍발 HR2S-1 모하비 헬리콥터를 탑재했다. 1956년 수에즈 위기 당시 영국 해군과 왕립 해병대가 처음 시도한 "수직 포위" 개념을 실험하면서, ''밸리포지''의 헬리콥터는 상륙 부대를 해안으로 공수하고, 미 해군 최초의 함정 기반 공중 강습 훈련에서 다시 함정으로 복귀시켰다. 1958년 3월에는 양륙 부대와 함께 대규모 상륙 훈련인 LANTPHIBEX 1-58에 참가하여, 약 1,400명의 해병대를 수송 헬리콥터로 해안에 상륙시켰다.[2]
1958년 4월 1일, 존 S. 테치 소장이 ''밸리포지''에 자신의 기를 게양하면서 태스크 그룹 알파(TG 알파)의 기함이 되었다. ''밸리포지''를 중심으로 구성된 TG 알파는 8척의 구축함, 2척의 잠수함, 대잠수함 헬리콥터 및 항공기 각 1개 비행대, "거피"라고 불리는 개조된 A-1 스카이레이더, 지상 기반 록히드 P-2 넵튠으로 구성되었다. 해군 전술의 중요한 발전으로, TG 알파는 핵 추진 및 심해 잠수함 시대에 적 잠수함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장치와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1959년 새해를 해상에서 맞이한 ''밸리포지''는 악천후 속에서 항해 중 상선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회피 기동을 해야 했다. 거센 파도로 비행 갑판 앞부분이 심하게 손상되어 뉴욕 해군 조선소에서 수리를 받아야 했다. 빠른 복귀를 위해 뉴저지주 베이온에 정박해 있던 유휴 항공모함 프랭클린의 비행 갑판 약 9.14m × 약 27.43m 구역을 떼어내 ''밸리포지''의 손상된 부분에 설치했다. 1945년 4월 일본 해역에서 전투 중 손상된 ''프랭클린''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 교체된 갑판 구역에 청동판이 부착되었다.[2]
''밸리포지''는 1959년 초가을까지 TG 알파와 함께 작전을 수행한 후, 뉴욕 해군 조선소에서 수리를 받았다. 1960년 1월 21일 카리브해에서 기동 훈련을 위해 출항하여 해상으로 복귀했다. 이후 작전 중 스카이훅 작전의 발사 플랫폼 역할을 했다. 이 실험에는 지구 표면 위 고도에서 1차 우주선 방출을 측정하고 기록하기 위한 장치를 탑재한, 역대 가장 큰 기구 3개를 발사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동부 지중해에 배치된 후 ''밸리포지''는 8월 30일 노퍽으로 돌아와 1960년 가을까지 TG 알파의 기함으로서 대잠수함 훈련을 계속했다.[5]
12월 19일, 프로젝트 머큐리의 일환으로 머큐리-레드스톤 1A 무인 우주 캡슐(레드스톤 로켓의 첫 비행) 회수 임무를 맡았다. ''밸리포지''의 헬리콥터는 15분간의 성공적인 비행과 스플래시다운 이후 케이프 커내버럴에서 발사된 캡슐을 회수했다.[11] 이틀 후, 케이프 해터러스 인근에서 SOS를 수신하고 폭풍으로 두 동강 난 유조선 SS ''파인 리지''를 구조하기 위해 달려갔다. 조난된 선원들이 유조선 후미에 매달려 있는 동안, 항공모함의 헬리콥터가 구조를 위해 오갔고, 28명의 생존자 전원이 ''밸리포지''에 안전하게 탑승했다.[5]
6. 강습상륙함 시대 (1961-1969)
1961년 3월 6일, 밸리포지는 노퍽 해군 조선소에 입고되어 강습상륙함으로 개조되었고, 7월 1일에 LPH-8로 재분류되었다. 이후 카리브해에서 재훈련을 실시하고, 9월에는 햄프턴 로드로 돌아와 버지니아 케이프 지역에서 병력 수송 헬리콥터와 함께 훈련을 받았다. 10월에는 히스파니올라 해역에서 대기하며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미국 시민을 대피시킬 준비를 했다.[1]
1962년 1월 6일, 밸리포지는 노퍽을 떠나 롱비치로 향하여 태평양 함대에 합류했다. 서부 해안에서 3개월간 훈련 후, 제7함대와 함께 극동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라오스에서 파테트 라오 공산 세력이 공격을 재개하자, 밸리포지는 5월 17일에 해병대를 헬리콥터로 라오스에 공수했고, 7월에 위기가 완화되자 이들을 다시 수송했다.[1]
1963년 전반기에는 캘리포니아 해안과 하와이 제도에서 상륙 훈련을 실시했다. 1963년 7월 1일, 롱 비치 해군 조선소에 입고되어 함대 재활 및 현대화 (FRAM) 정비를 받았으며, 1964년 1월 27일에 다시 출항하여 함대에 합류했다. 이후 롱 비치를 출발하여 서태평양 배치를 받았고, 동남아시아 조약 기구(SEATO) 해군과 함께 상륙 훈련에 참가했으며, 7월에는 전투 효율 "E"를 수상했다.[1]
7. 베트남 전쟁 (1964-1969)
1964년 8월 2일, 북베트남의 어뢰정이 통킹만 사건에서 미 해군 구축함 를 공격하자, ''밸리포지''는 해병대 상륙에 대비하여 57일 동안 베트남 해안에서 대기했다.
1965년부터 1969년까지 ''밸리포지''는 남베트남에서 해병대 상륙 작전을 지원했다. 더블 이글 작전, 포트리스 릿지 작전, 배저 캐치 작전 등 주요 작전에 참가하여 헬리콥터를 이용한 "수직 포위" 전술을 실험 및 적용하였다.
7. 1. 주요 작전

1964년 8월 2일 통킹만 사건이 발생하자, ''밸리포지''는 해병대 상륙에 대비하여 베트남 해역에서 57일 동안 대기했다.[5] 11월 5일에 롱비치로 돌아와 해병대와 항공기를 수송하기 위해 오키나와와 롱비치를 두 번 왕복했다.
1965년 후반부터 남중국해에 배치된 ''밸리포지''는 베트남에서의 임무에 대비하여 필리핀 해역에서 훈련을 실시했다. 11월 중순, 블루 말린 작전에서는 예비함으로 대기했고, 대거 스러스트 작전과 Operation Harvest Moon영어에서는 해병대를 수송했으며, 크리스마스는 오키나와에서 보냈다.
1966년 1월 3일, 해병 1개 대대와 수송 헬기 중대를 탑재한 ''밸리포지''는 남베트남으로 출항했다. 수빅 만과 Chu Lai영어를 경유하여 1월 27일 베트남 해역에 도착했고, 이틀 후 Operation Double Eagle영어에 참가하는 상륙 부대를 투입했다. 이후 해상에 정박하여 물류 및 의료 지원을 제공했다. 2월 17일 상륙 부대를 다시 태우고 북쪽으로 이동하여 해병대는 휴식을 취했다. "더블 이글"의 두 번째 단계는 이틀 후 시작되었고, 배의 해병대는 다시 헬리콥터를 통해 상륙하여 적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2월 26일 작전이 종료되었고, ''밸리포지''는 해병대를 다시 태우고 수빅 만으로 출항했다.
다낭으로 왕복 항해를 한 후, ''밸리포지''는 미국으로 돌아가 개조 및 현지 훈련을 수행한 후 다시 서태평양에 배치되었다. 베트남 해역으로 돌아온 후, 다낭 인근 작전에 참여했으며, 1966년 말 미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대대적인 개조를 거쳐 서해안에서 훈련을 실시한 후, ''밸리포지''는 1967년 11월 다시 극동으로 돌아와 12월 21일 시작된 포트리스 릿지 작전에 참여했다. 베트남 비무장 지대(DMZ) 바로 남쪽에 병력을 공수하여, 이 배는 미국 및 남베트남 군대를 위협하는 베트남 인민군(PAVN) 부대를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수색 및 파괴" 작전에 지속적인 보급 및 의료 후송(Medevac)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 작전이 1967년 크리스마스 전날 완료되었지만, ''밸리포지''의 작전은 올해로 끝나지 않았다.
''밸리포지''는 북부 남베트남의 꽝찌 인근 배저 투스 작전 동안 다시 작전을 수행했다. 다낭에서 정비를 거친 후, 동허이 인근의 새로운 기지로 배치되어 PAVN 부대에 맞서 작전하는 연합군에게 필요한 재보급 및 Medevac 지원을 제공했다.
1968년 1월 23일부터 2월 18일까지 시작된 배저 캐치 작전은 DMZ 남쪽 탁한강 어귀에 있는 Cửa Việt Base영어를 지원했고, 그 후 이 배는 수빅 만으로 항해하여 필요한 정비를 받았다.

그 후 베트남으로 돌아온 ''밸리포지''는 해안 기지가 PAVN 지상군 및 포병 사격으로 공격받은 해병대 헬기 부대를 위한 "헬로 헤이븐"으로 작전했다. 3월 6일부터 4월 14일까지의 배저 캐치 II 작전 동안, 해병대 헬리콥터는 육상 기지가 PAVN 군대로부터 정화되는 동안 ''밸리포지''에 착륙했다. 수빅 만에서 정기적인 개조를 거친 후, ''밸리포지''는 4월 28일부터 6월 3일까지 배저 캐치 III 작전에 참여했다. 그런 다음 다낭으로 이동하여 6월 7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된 스위프트 세이버 작전을 준비했다. 7월 초에는 힐탑 XX 훈련이 ''밸리포지''를 점령했다. 그런 다음 ''밸리포지''는 해병대와 헬리콥터를 트리폴리로 옮기고 홍콩, 오키나와, 진주만을 거쳐 귀국했다. 8월 3일 롱비치에 도착했다.
지역 작전과 개조를 포함한 서해안에서의 5개월 후, 강습 상륙함은 1969년 1월 30일 롱비치를 출발하여 마지막으로 극동으로 돌아갔다.
샌디에고에서, ''밸리포지''는 베트남 수송 비행대에 인도할 해병대 시콜스키 CH-53 시 스탤리온 헬리콥터 화물을 탑재했다. 진주만을 경유했고, 헬리콥터 중 하나가 응급 수술을 위해 아픈 승무원을 육지로 후송하는 동안 괌 근처에서 정차했다. 수빅 만에서 특수 상륙 부대 장비를 싣고, 특별 상륙 부대 브라보 사령관과 해병 보잉 버톨 CH-46 씨 나이트 수송 헬리콥터 비행대를 탑승했다. 3월 10일, ''밸리포지''는 헬리콥터가 "해변에서" 임무를 수행하면서 다낭 앞바다에서 디파이언트 메저 작전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는 3월 18일에 완료되었고, ''밸리포지''는 헬리콥터를 하역한 후 정비를 위해 수빅 만으로 이동했다.
5월 3일 다낭으로 돌아온 후, ''밸리포지''는 헬리콥터와 함께 해안에서 전투에 참여했던 해병대 상륙 부대 대대의 일부를 다시 탑승했다. ''밸리포지''는 그 후 몇 주 동안 다낭 지역에서 계속 작전했고, 헬리콥터는 빈번한 지원 임무를 수행했으며, 해병대는 추가적인 전투 상륙을 준비했다.
5월 말과 6월 초 동안, ''밸리포지''는 미국 해군 장관 존 채피와 제7함대 사령관 윌리엄 F. 브링글 중장의 방문을 받았다. 6월 10일 다낭에서 해병대를 하역하고 6월 16일 도착한 오키나와로 수송하기 위해 상륙 부대 대대를 탑승했다. 상륙 부대는 ''밸리포지''와 함께 11일 동안 상륙 훈련을 실시하고 훈련 과정을 계속하기 위해 수비크 만으로 항해했다. ''밸리포지''는 7월 8일 다낭 지역으로 돌아와 제1군단 (남베트남) 지역의 해병대 지상군에 대한 헬리콥터 지원을 재개했다. ''밸리포지''는 접근하는 태풍을 피하기 위해 회피 기동을 한 다음 상륙 작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브레이브 아르마다 작전은 7월 24일 꽝응아이성에서 베트콩 및 PAVN의 의심 지역에 대한 헬리콥터 공중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밸리포지''는 이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꽝응아이-쭈라이 지역에 머물렀으며, 8월 7일에 완료되었다. 그 후 다낭으로 이동하여 해병대를 하역했다. 레너드 F. 채프먼 주니어 해병대 사령관이 그날 ''밸리포지''를 방문했다. ''밸리포지''는 8월 13일 오키나와로 출항하여 4일 후에 도착하여 헬리콥터 비행대를 하역한 후 또 다른 태풍을 피하기 위해 다시 출항했다. 홍콩으로 이동하여 8월 22일 다가오는 비활성화를 발표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9월 3일 다낭으로 돌아와 미국으로 수송할 물품을 싣고, 극동을 떠나기 전 3일 동안 정비를 위해 미 해군 요코스카 기지로 출항했다.[5]
8. 퇴역 (1970) 및 이후
1970년 1월 15일, ''밸리포지''는 퇴역하고 해군 선박 목록에서 삭제되었다.[5] 1971년 10월 29일, 밸리포지는 캘리포니아주 비벌리힐스의 니콜라이 조프레 공사에 고철로 매각되었다.[5]
1971년 2월 14일부터 28일까지, 롱비치에 정박해 있던 ''밸리포지''는 SF 영화 ''사일런트 러닝'' 촬영에 사용되었다.[5] 영화 속에서 ''밸리포지''는 약 609.60m 길이의 우주 화물선으로, 지구의 마지막 숲을 보존하는 여섯 개의 거대한 지오데식 돔을 싣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영화 제작진은 할리우드 촬영장에 세트를 짓는 대신,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창고, 화물선, 유조선 등 다양한 대형 내부 장소를 물색했다. 미국 해군에 문의한 결과, 롱비치 해군 조선소에서 해체를 기다리고 있던 ''밸리포지''와 필리핀 해 등 여러 척의 퇴역한 ''에식스급 항공모함''을 소개받았다. ''밸리포지''가 촬영 장소로 선정되었고, 영화 속 우주 화물선의 이름도 ''밸리포지''로 명명되었다.
항공모함의 격납고 갑판은 미래형 화물 컨테이너를 나타내는 폴리스티렌 모듈로 채워지고 다시 칠해져 영화 속 화물칸으로 사용되었다. 비행 지휘 구역은 우주선 승무원의 제어실과 거주 구역을 표현하기 위해 크게 개조되었다. 격벽은 카메라와 배우의 움직임을 위해 잘려나가 더 넓은 통로로 바뀌었고, 세트 조각, 컴퓨터 콘솔, 다양한 소품들이 설치되었다. 제작진은 금속을 제거하는 것을 제외하고 배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지만, 전력과 물은 외부에서 조달해야 했다.[12]
9. 수상 내역
Valley Forge영어는 한국 전쟁 참전으로 8개의 전투 별장과 베트남 전쟁 참전으로 9개의 전투 별장을 받았으며, 해군 부대 표창도 받았다.[5]
해군 부대 표창 | 공로 부대 표창 | 중국 봉사 훈장 (확대) |
---|---|---|
제2차 세계 대전 승리 훈장 | 해군 점령 봉사 훈장 (유럽 버클 포함) | 국가 방위 복무 훈장 (2회) |
한국 전쟁 훈장 (8개의 전투 별장) | 무력 원정 훈장 | 베트남 봉사 훈장 (9개의 전투 별장) |
남베트남 군사 십자 훈장 | 베트남 공화국 캠페인 훈장 | 유엔 한국 훈장 |
대한민국 참전 기념 훈장 (소급 적용) |
참조
[1]
웹사이트
Aircraft Carrier Photo Index: USS VALLEY FORGE (CV-45)
https://www.navsourc[...]
2021-08-28
[2]
웹사이트
Histories for USS Valley Forge - CV 45
http://www.military.[...]
Military Advantage
2009-02-27
[3]
서적
U.S. Aircraft Carriers: An Illustrated Design History
https://books.google[...]
Naval Institute Press
1983
[4]
서적
Aircraft Carriers: An Illustrated History of Their Impact
https://books.google[...]
ABC-CLIO
2006
[5]
웹사이트
Valley Forge (CV-45)
http://www.history.n[...]
2004-03-29
[6]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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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avy.mil/[...]
United States Navy
2009-06-15
[7]
서적
Air Combat: An Oral History of Fighter Pilots
https://books.google[...]
Berkley
2006
[8]
간행물
1950: Le début de la guerre de Corée: La poche de Pusan et le débarquement à Pohang
2016-06
[9]
웹사이트
Cold War Era
http://aces.safariko[...]
2014-10-28
[10]
뉴스
Flyingest Navy Pilots Return
The Sun-Telegram
1951-04-08
[11]
간행물
This New Ocean: A History of Project Mercury
http://www.hq.nasa.g[...]
1989
[12]
서적
BFI Film Classics: Silent Running
https://books.google[...]
Palgrave Macmillan
201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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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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