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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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광성군은 조선 인조 때의 종실로, 서궁 폐비 문제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인조 즉위 후 풀려났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항전하다가 1637년 오이도 덕물 섬에서 전사하였다. 사후 명의대부 광성군에 증직되었고, 정려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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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군 | |
---|---|
지도 | |
일반 정보 | |
국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도 | 평안북도 |
행정 구역 | |
읍 | 1읍 |
리 | 20리 |
2. 생애
광성군은 1604년(선조 37) 한성 정동에서 태어나 광성부령(廣城副令)에 제수되었다. 1617년(광해 9) 인목왕후 폐비 문제에 대한 상소 논의에 참여하였으나, 1618년(광해 10) 이이첨 등의 모함으로 거제도로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난 후, 사옹원 제조 등을 역임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당시 왕을 강화도로 호종하였으며, 1632년(인조 10) 광성도정(廣城都正)에 봉작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부인상으로 인해 어가 호종을 하지 못했으나, 이복형 영가군 이효길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그러나 1637년(인조 15) 청나라 군대와 교전 중 오이도 덕물 섬에서 전사하였다.
사후 손자 이홍모의 노력으로 1707년(숙종 33) 광성군(廣城君)으로 증직되었고, 1729년(영조 5) 정려(旌閭)가 내려졌다.[1]
2. 1. 출생과 초기 활동 (1604년 ~ 1623년)
1604년 한성 정동에서 태어났다. 초수 광성부령(廣城副令)에 제수되었다. 1617년 11월 25일 서궁 폐비 문제에 대한 상소를 논의할 때 여러 종실과 함께 "공론은 흔쾌히 따름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였다.[1]1618년 2월 6일 서궁 폐비 문제로 연일 논의가 있었는데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않은 종실(宗室)로 처음부터 끝까지 정청의 대열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하여 이이첨 무리가 양사(사헌부와 사간원)를 시켜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그들의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면서 멀리 유배보내도록 명하소서." 상소하여 거제도로 유배되었다.[1]
1623년 인조가 즉위하고 귀양에서 풀려났다.[1]
2. 2. 관직 복귀와 호란 (1623년 ~ 1637년)
1623년(인조 1) 인조가 즉위하고 귀양에서 풀려나 1625년(인조 3) 사옹원 제조(司饔院 提調)를 역임하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강화도로 몽진[1]할 때 어가를 호종하였다.1632년(인조 10) 광성부정(廣城副正)을 거쳐 명선대부(明善大夫) 광성도정(廣城都正)에 봉작되었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몽진하였다. 이때 광성군은 부인상을 당하여 장례 관계로 안산에 있어서 어가를 호종하지 못하였다. 인조가 남한산성에 청나라 군대에게 포위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복형 영가군 이효길(永嘉君 李孝吉)과 논의하여 "주상이 남한산성에 포위되어 계시니 우리들은 종실(宗室)의 신하로서 국난에 마땅히 함께 죽어야지 구차히 초야에 끼치게 해서는 옳지않다."라고 하였다. 이에 전 찰방 원성모(元成模), 전 첨절제사 장운상(張雲翔), 사인 원이길, 무인 원영길, 주부 홍요경(洪堯儆), 장사 기득윤(奇得胤) 등이 서로 약속하여 맹세하고 의병을 모으니 모두가 광성군과 이복형 영가군(永嘉君)을 추대하여 선봉장으로 삼아 남한산성에 다다라서 왕을 배알할 계책을 세웠다.
1637년(인조 15) 1월 초7일 길에서 적을 만나 반나절의 교전 끝에 죽이고, 빼앗은 것이 매우 많았으며, 행재소에 노획한 병기를 바치려 하였으나 적의 병사에 의해 길이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이에 부대를 교외에 주둔하여 기회를 살펴 수로를 이용하여 강화도에 이르고자 하였다. 이해 1월 13일 청나라 군대가 사방에서 일어나고 산처럼 모여드니 중과부적으로 대적할 수 없어 안산으로 급히 후퇴하여 오이도 덕물 섬에 웅거하였다.
2. 3. 최후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몽진하였을 때, 광성군은 부인상을 당하여 안산에서 장례를 치르느라 어가를 호종하지 못하였다.[1]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청나라 군대에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복형 영가군 이효길과 "주상이 남한산성에 포위되어 계시니 우리들은 종실(宗室)의 신하로서 국난에 마땅히 함께 죽어야 한다."라며 의병을 일으킬 것을 논의하였다.원성모, 장운상 등과 맹세하고 의병을 모아 광성군과 이복형 영가군을 선봉장으로 추대하여 남한산성으로 진격하려 하였다.
1637년(인조 15) 1월 초7일 길에서 적을 만나 반나절 동안 교전하여 많은 적을 죽이고 병기를 노획하였으나, 적에게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강화도로 가려 하였다. 1월 13일 청나라 군대가 사방에서 공격해오자 안산 오이도 덕물 섬으로 후퇴하였다.
적의 추격과 공격이 계속되고 구원군도 없어 병사들이 거의 부상당하거나 전사하였다. 광성군은 남한산성을 바라보며 네 번 절하고 통곡하며, 이복형 영가군과 함께 돌진하여 많은 적병을 죽였다. 광성군과 의병들은 모두 같은 날 전사하였다. 청나라 장수가 그 충절에 감탄하여 흙으로 덮어주고 빈소를 만들어 순절자들의 성명을 기록하고 떠났다. 당시 광성군의 나이는 34세였다.
1699년(숙종 25) 자손들이 표패를 통해 순절한 곳을 알게 되어 안양 산본 의곡에 장사 지냈다가 충남 청양군 목면 본의리 미궐산하로 이장하였다. 1707년(숙종 33) 손자 이홍모의 호소로 명의대부 광성군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에 증직되었다.
1729년(영조 5) 손자 이홍모가 다시 영조에게 상주하여, 조정에서 조사 결과 순절의사의 실적이 밝혀지고 향리의 여론도 일치하여 특별히 정려를 세울 것을 명하였다.
3. 가계
- 아버지 : 이복령
- 어머니 : 광주 이씨 백금(白今) (이건)
- 형 : 이지길
- 동생 : 이신길
- 부인 : 현부인 풍천 임씨 (임대원의 딸, 1603년 - 1636년)
- 장남 : 이방준(李邦俊, 1621년 - 1698년)
- 2남 : 이방걸(李邦傑, 1623년 - 몰년 미상)
- 3남 : 이방윤(李邦倫, 1631년 - 16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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