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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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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문화사는 가족, 언어, 종교, 예술, 과학 등 다양한 요소를 기반으로 사회의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이다. 19세기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처음 언급되었으며, 프랑스의 정신사 운동, 신역사, 미국학 등과 연관된다. 권력, 이데올로기, 계급, 문화 정체성 등 주요 역사적 개념과 대중 매체, 인터넷 등 현대적 현상에 대한 연구를 포함한다. 새로운 문화사는 1980~90년대에 발전하여 정치와 법을 포함한 모든 문화적 대상을 연구하며, 프랑스 혁명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문화 연구는 다양한 학문 분야를 결합하여 사회의 문화적 현상을 연구하며, 버밍엄 현대 문화 연구 센터에서 시작되었다. BBC는 인간 문화사를 다룬 교육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방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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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

2. 문화사의 개념 및 요소

문화사는 가족, 언어, 습속, 종교, 예술, 과학 등 광범위한 소재를 기반으로 서술되며, '일상'을 포함한다. 정치사나 국가의 역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적으며, 연대도 정치사만큼 중요하지 않다.

문화사는 사회의 비엘리트 집단이 공유하는 현상, 즉 사육제, 축제, 공개 의례, 서사 전통, 인간관계의 문화적 진화, 민족주의와 같은 사회 운동의 문화적 표현 등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권력, 이데올로기, 계급, 문화, 문화 정체성, 태도, 인종, 지각과 같은 주요 역사적 개념과 새로운 역사적 방법을 검토한다.[5] 대중 매체에 대한 전통 문화의 적응, 인쇄에서 영화를 거쳐 인터넷에 이르는 발전 과정도 문화사의 주요 연구 대상이다.[5]

최근 문화사의 일반적인 이론적 시금석에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시민 사회의 구조 변동''에서의 공론장 개념, 클리퍼드 기어츠의 '두터운 묘사' 개념, 폴 코네르톤의 ''사회는 어떻게 기억하는가''에서 논의된 문화사적 범주로서의 기억 개념이 있다.[5]

2. 1. 문화사의 다양한 관점

18세기 계몽주의는 "인류의 끊임없는 문화적 발전"을 강조하였다. (볼테르)[5] 독일 낭만주의에서는 "모든 관습적인 활동"을 문화사의 일부로 보고, 그 안에 국민 정신의 표현을 인정했다.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5]

20세기에는 아놀드 J. 토인비와 오스발트 슈펭글러를 대표로 하는 문화 철학에 의해, 여러 민족의 비교 문화사로부터 인식을 발전시켰다. 알프레트 베버정신사의 방향으로 문화사를 발전시켜 문화사회학을 확립했다.[5] "세기말 빈"을 대표하는 딜레탕트[6] 중 한 명인 에곤 프리델도 방대한 『근대 문화사』를 저술했다.

3. 역사학 속의 문화사

오늘날 많은 문화사학자들은 이를 새로운 접근법이라고 주장하지만, 문화사는 이미 19세기 역사가들, 특히 르네상스사 연구의 스위스 학자인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언급되었다.[2]

문화사는 프랑스의 ''정신사'' 운동(필리프 푸아리에, 2004)과 소위 신역사, 그리고 미국에서는 미국학 분야와 접근 방식이 겹친다. 부르크하르트가 19세기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관련하여 처음 구상하고 실행한 문화사는 회화, 조각, 건축뿐만 아니라 사회의 경제적 기반과 일상생활의 사회 제도까지 고려하여 특정 역사적 시대를 전체적으로 연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3] 부르크하르트의 접근 방식은 20세기에 요한 호이징가의 ''중세의 몰락''(1919)에서 찾아볼 수 있다.[4]

문화사는 사회의 비엘리트 집단이 공유하는 현상(사육제, 축제, 공개 의례; 서사의 이야기, 서사시 및 기타 언어 형태의 공연 전통; 인간관계(아이디어, 과학, 예술, 기술)의 문화적 진화; 민족주의와 같은 사회 운동의 문화적 표현)에 초점을 맞추거나, 권력, 이데올로기, 계급, 문화, 문화 정체성, 태도, 인종, 지각과 같은 주요 역사적 개념과 신체 서술과 같은 새로운 역사적 방법을 검토한다. 많은 연구에서 대중 매체(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잡지, 포스터 등)에 대한 전통 문화의 적응, 인쇄에서 영화까지, 그리고 현재는 인터넷(자본주의의 문화)까지 고려한다. 현대적 접근 방식은 미술사, 아날, 마르크스주의 학파, 미시사 및 새로운 문화사에서 비롯된다.[5]

최근 문화사의 일반적인 이론적 시금석에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시민 사회의 구조 변동''에서의 공론장의 공식화, 클리퍼드 기어츠의 '두터운 묘사' 개념(''문화의 해석''에서 설명됨), 폴 코네르톤의 ''사회는 어떻게 기억하는가''에서 논의된 문화사적 범주로서의 기억이라는 아이디어가 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수정주의" 역사는 프랑수아 퓌레가 1978년에 발표한 ''프랑스 혁명 해석'' 이후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혁명의 원인을 계급 역학에서 찾는 마르크스주의 "사회적 해석"을 대체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수정주의적 접근 방식은 "정치 문화"에 더 많은 강조를 두는 경향이 있으며,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을 통해 정치 문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읽으면서, 혁명 역사가들은 혁명 이전 프랑스 정치 문화의 맥락에서 젠더, 의례, 이데올로기와 같은 문화적 주제의 역할과 위치를 살펴보았다.

이 범주에 속하는 역사가로는 로제 샤르티에, 로버트 단턴, 파트리스 이고네, 린 헌트, 키스 베이커, 조앤 랜데스, 모나 오주프, 사라 마자 등이 있다.

문화사 개념에는 역사학의 매우 다양한 분야가 포함된다. 역사학자에 따라 '문화사' 아래에 일반적으로 정치사에 포함되지 않는 현상을 연구 대상으로 생각한다. 한편, 최근에는 특정 대상에 한정하지 않는 문화사 개념이 몇몇 역사학자에 의해 주장되고 있다.

3. 1. 문화사적 관점

문화사적 관점에서는 정치나 법률의 제도는 합리적인 구조에 따른 객관적인 소여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요구와 그 수용, 또는 그것에 대한 거절이 응축된 것으로 파악한다.[5] 커뮤니케이션은 그 당시 기호의 교환으로 이해된다.[5] 그리고 그 때문에 특히 숙고된 기호(즉, 심볼, 의식 또는 전례 등)에 대한 논의가 '새로운 문화사'에 있어서 두드러진 역할을 하고 있다.[5]

3. 2. 일본 사학사 속 문화사

도쿄 제국대학에 초빙 외국인인 리스가 오면서 과학적인 일본사 연구가 시작되었다. 리스는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랑케의 제자였으며, 그의 역사학은 실증주의를 중시하는 것이었다. 이후 도쿄 대학의 학풍은 "실증사학"이라고 칭해졌다.

한편, 일본에서 두 번째 사학과가 개설된 교토 제국대학에서는 도쿄 제국대학에 대항하는 형태로 다른 학풍을 만들어낼 토양이 있었다. 설립 당시에는 도쿄 제국대학 출신인 우치다 긴조나 법제사에 정통한 미우라 슈코가 교수를 맡았지만, 이윽고 그들 밑에서 교토 제국대학에 "문화사학"의 학풍을 만들어낸 것이 니시다 나오지로와 나카무라 나오카쓰이다. 니시다는 정신사적, 나카무라는 사회사적 학풍으로 교토 제국대학에서 문화사의 역사학 분야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전후에 공직 추방을 당했고, 니시다의 직계인 이시다 가즈라가 도지샤 대학에, 나카무라의 직계인 하야시야 신자부로가 리쓰메이칸 대학의 교수로 취임한 반면, 교토 대학의 전임 교수에는 고바타 아쓰시와 아카마쓰 도시히데와 같은 문화사학의 학풍을 갖지 않은 인선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특히 중세사에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아성이 된 이후, 문화사학의 학풍은 잊혀져 갔다. 이렇게 리쓰메이칸과 도지샤가 문화사 연구의 중심지가 된 반면, 교토 대학에는 문화사학의 학풍이 남지 않았다.

4. 새로운 문화사

20세기 후반(1980년대, 1990년대)에 발달한 새로운 역사학 영역은 예술, 음악, 문학뿐만 아니라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과거 문화를 주제로 삼는다. '전통적인 문화사 기술이 멀리했던 대상(정치, 법)'을 연구하며, 커뮤니케이션 프로세스를 중심에 둔 문화사적 분석을 특징으로 한다.[5]

오늘날 많은 문화사학자들은 이를 새로운 접근법이라고 주장하지만, 문화사는 이미 19세기 역사가들, 특히 르네상스사 연구의 스위스 학자인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언급되었다.[2] 문화사는 프랑스의 ''정신사'' 운동과 신역사, 그리고 미국에서는 미국학 분야와 접근 방식이 겹친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수정주의" 역사는 프랑수아 퓌레가 1978년에 발표한 ''프랑스 혁명 해석''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정주의적 해석"은 혁명의 원인을 계급 역학에서 찾는 마르크스주의 "사회적 해석"을 대체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수정주의적 접근 방식은 "정치 문화"에 더 많은 강조를 두는 경향이 있다.

이 범주에 속하는 역사가로는 로제 샤르티에, 로버트 단턴, 파트리스 이고네, 린 헌트, 키스 베이커, 조앤 랜데스, 모나 오주프, 사라 마자 등이 있다.

''문화 연구''는 정치 경제학, 지리학, 사회학, 사회 이론, 문학 이론, 영화/비디오 연구, 문화 인류학, 철학, 그리고 미술사/비평을 결합하여 다양한 사회의 문화적 현상을 연구한다. 문화 연구 연구자들은 종종 특정 현상이 이데올로기, 국적, 민족, 사회 계급, 그리고/또는 성별 문제와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집중한다. 이 용어는 1964년 리처드 호가트가 버밍엄 현대 문화 연구 센터를 설립하면서 만들어졌으며, 이후 스튜어트 홀과 강하게 연관되었다.

4. 1. 새로운 문화사의 특징

"새로운 문화사"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발전한 역사학의 한 분야이다. 이는 과거의 문화를 예술, 음악, 문학뿐만 아니라, 정치와 법과 같이 이전에는 문화사 연구에서 멀리했던 대상까지 포함하여 폭넓게 연구한다.[5]

"새로운 문화사"는 고정된 구조사에서 벗어나 "문화적 전회"(cultural turn)를 통해 문화에 대한 시선으로 전환하였다. 이는 "정치사, 사회사, 그리고 경제사와 같은 전통적인 학문으로는 과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통찰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접근 방식은 프랑스식 사회사(아날 학파)에서 발달하였으며, 인류학, 민속학, 심성사(지성사), 일상사, 미시사, 젠더사에 큰 영향을 받았다.[5]

"새로운 문화사"의 주요 대표자로는 1990년대 나탈리 데이비스, 카를로 긴즈부르크, 로버트 단턴과 같은 심성사 연구자나 아날 학파의 로제 샤르티에 등이 있으며, 2000년대 이후에는 피터 버크가 이 분야를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있다.

4. 2. 새로운 문화사의 방법론

클리퍼드 기어츠가 제시한 '두터운 묘사'는 문화 현상의 맥락과 의미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으로,[5] 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위르겐 하버마스의 ''시민 사회의 구조 변동''에서 제시된 공론장 개념은 시민 사회에서 공공의 의견이 형성되는 공간을 의미하며,[5] 프랑스 혁명 연구 등에 활용되었다. 폴 코네르톤은 ''사회는 어떻게 기억하는가''에서 기억을 문화사적 범주로 제시하여, 사회가 기억하는 방식과 그 의미를 연구하는 데 기여했다.[5]

5. 문화 연구(Cultural Studies)

문화 연구는 정치 경제학, 지리학, 사회학, 사회 이론, 문학 이론, 영화/비디오 연구, 문화 인류학, 철학, 미술사/비평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결합하여 여러 사회의 문화적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이다. 문화 연구자들은 특정 현상이 이데올로기, 국적, 민족, 사회 계급, 성별 문제와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주목한다. '문화 연구'라는 용어는 1964년 리처드 호가트가 버밍엄 현대 문화 연구 센터를 설립하면서 만들어졌다. 이후 그의 후임으로 센터장이 된 스튜어트 홀은 문화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6. 대중문화 속의 문화사

영국 방송 공사(BBC)는 인간 문화사의 여러 측면을 다룬 교육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제작 및 방송했다. 1969년에는 ''문명'', 1973년에는 ''인간의 발자취'', 1985년에는 ''서구의 승리'', 2012년에는 ''앤드루 마르의 세계사''가 방영되었다.

참조

[1] 논문 Learning from the historical culture of American people for the current society 2019-08-00
[2] 웹사이트 Historicising Historical Theory's History of Cultural Historiography https://www.cosmosan[...] 2016-02-00
[3] 서적 Space, Time and Architecture
[4] 논문 Johan Huizinga, ''The Waning of the Middle Ages'', and the Writing of History 2016-00-00
[5] 간행물 What Became of Cultural Historicism in the French Reclamation of Strasbourg After World War One? 2014-00-00
[6] 문서 dilett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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