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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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민(閔)씨는 중국 노나라 민손의 후예로, 고려 시대 민칭도를 시조로 하는 여흥 민씨가 대표적이다. 여흥 민씨는 고려 시대부터 고위 관료를 배출하며 왕실과 혼인하는 등 명문가로 자리 잡았으며, 조선 시대에는 4명의 왕비를 배출하여 외척 가문으로 명성을 떨쳤다. 구한말에는 명성황후를 배출하며 세도 정치를 이끌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와 친일파가 함께 존재했다. 2000년 대한민국 인구 조사에서 약 14만 명으로, 47번째로 흔한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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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성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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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정보 | |
한자 | 閔 |
로마자 표기 | Min |
한국어 읽기 | 민 |
2. 기원
민(閔)씨는 중국 노(魯)나라 무당읍(武棠邑) 출신인 민손(기원전 536년 ~ 기원전 487년)의 후예이다.[4] 민손은 공자의 제자인 공문(孔門) 칠십이현(七十二賢) 중 한 사람으로서 민자건(閔子騫)으로도 불린다.[4]
여흥 민씨는 고려 시대 민칭도(閔稱道)를 시조로 한다. 그의 증손 민영모(閔令謨)가 문하시랑평장사 등에 오르며 가문이 번성하기 시작했다.[7] 민영모의 후손들은 고려 시대에 고위 관료를 지속적으로 배출했으며, 왕실과 혼인이 가능한 재상지종 가문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후백제 견훤의 신하인 민합(閔郃),[5] 고려 태조 원년(918년) 내군장군(內軍將軍)에 임명된 민강(閔剛), 덕종 즉위년(1031년) 공부상서(工部尙書)에 임명된 민가거(閔可擧),[6] 문종 때의 민창수(閔昌壽), 민창소(閔昌素) 등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지만 민칭도 이전의 계보는 알 수 없다.
3. 여흥 민씨
민식(閔湜)의 증손 민지(閔漬)는 첨의정승에 오르고 여흥부원군에 봉해졌다.[9]
민공규(閔公珪)의 증손 민종유(閔宗儒)는 찬성사를 지내고 복흥군에 봉해졌으며,[10] 그의 아들 민적(閔頔)은 진현관대제학에 올랐다. 민적(閔頔)의 후손들은 조선 시대에 4명의 왕비(원경왕후, 인현왕후, 명성황후, 순명효황후)를 배출하며 왕실의 외척으로 명성을 떨쳤다.
3. 1. 조선 시대
민변(閔抃)은 여흥군(驪興君)에 봉해졌고, 그의 아들 민제(閔霽)의 딸이 태종의 비 원경왕후(元敬王后)가 되었다.[7][8][9][10] 태종의 외척 숙청으로 민제의 네 아들이 제거되었으나, 세종 이후 복권되었다. 민적(閔頔)의 둘째 아들 민유(閔愉)의 후손 중에서 인현왕후(仁顯王后), 명성황후(明成皇后) 등 왕비가 배출되었다.
민적(閔頔)의 12세손인 민광훈(閔光勳)을 파조로 하는 삼방파(三房派)에서 숙종의 비 인현왕후(仁顯王后)가 배출되면서[7] 민유중(閔維重)은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에 봉군되었고, 민유중의 형인 민정중(閔鼎重)이 좌의정에 올랐으며, 민정중의 아들 민진장(閔鎭長)은 우의정에 올랐다. 인현왕후의 오빠인 민진후(閔鎭厚)는 좌참찬(左參贊)에 올랐고, 민진후의 동생인 민진원(閔鎭遠)은 영조 때 노론의 영수로서 좌의정에 이르렀다.
3. 2.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민치록(閔致祿)의 딸이 고종의 비 명성황후(明成皇后)가 되면서 여흥 민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순종의 비 순명효황후도 여흥 민씨 출신이다.
민영환(閔泳煥)은 개화파 관료이자 대한제국 시기 애국지사로,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자결하였다. 민상호(閔商鎬)는 대한제국 군인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는 친일 행위를 하였다. 민원식(閔元植)은 일제강점기 친일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알렉산드르 민(민영호)은 소련군 장교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활약하여 소련 영웅 칭호를 받았다.
3. 3. 대한민국
여흥 민씨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인물들을 배출해 온 성씨이다. 고려 민영모(閔令謨)의 후손들은 대대로 고위 관직을 역임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4명의 왕비(황후 2명 포함)를 배출하며 외척 가문으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하였다.[7][8][9][10]
조선 태종의 왕비 원경왕후를 시작으로, 숙종의 왕비 인현왕후, 고종의 비 명성황후, 순종의 비 순명효황후 등이 여흥 민씨 가문 출신이다.[9] 특히 명성황후의 친정 가문은 조선 말기 세도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현대에도 여흥 민씨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축구 선수 민병대, 건축가 민현식, 정치인 민병두, 펜싱 선수 민경승, 가수 민해경(본명: 민병숙), 가수 민경훈 등이 그 예이다.
4. 분파
5. 인구 분포
민(閔)씨는 한자로 閔이라 표기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2000년 대한민국 인구 조사에 따르면, 민(閔)씨는 43,887가구에 142,752명이 살고 있으며, 이는 대한민국 인구의 약 0.35%를 차지한다.[1] 286개의 성씨 중 47번째로 흔한 성씨이다.[1] 1985년 인구 조사에서는 137,317명으로 집계되었는데,[2] 2000년까지 3.8% 증가한 수치이다. 이는 같은 기간 동안 전체 대한민국 인구 증가율인 15%에 비해 낮은 증가율이다.[2]
민(閔)씨의 주요 계보는 여흥 민씨이며, 이들의 본관(선조의 고향)은 현재의 여주이다. 여주는 조선 시대에는 여흥, 고려 시대에는 황려로 불렸기 때문에, 민씨는 역사 속 다른 시대에 황려 민씨 또는 다른 변형으로 불리기도 했다.
여흥 민씨는 46개의 파(派)로 세분된다. 대한민국 인구 조사에서는 여흥 민씨 외에도 경주 민씨와 영주 민씨를 포함하여 성씨에 민(閔) 음절을 사용하는 가문을 등재하고 있으나, 이 씨족들은 여흥 민씨의 공식 족보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으며, 그 기원은 확인되지 않았다.[3]
참조
[1]
웹사이트
행정구역(구시군)/성씨·본관별 가구 및 인구
http://kosis.kr/stat[...]
Korean Statistical Information Service
2015-10-23
[2]
웹사이트
성씨인구분포데이터
http://sgis.nso.go.k[...]
National Statistics Office
2013-05-28
[3]
뉴스
여흥민씨
https://news.joins.c[...]
2019-05-11
[4]
문서
『사기 : 열전』 권67
https://terms.naver.[...]
[5]
문서
고려사 卷一 世家 卷第一 太祖 元年
http://db.history.go[...]
[6]
문서
『고려사』 卷五 世家 卷第五 德宗 卽位年
http://db.history.go[...]
[7]
문서
『고려사』 권101, 열전14 민영모
https://terms.naver.[...]
[8]
문서
『고려사』 권101, 열전14 민식
https://terms.naver.[...]
[9]
문서
『고려사』 권107, 열전20
https://terms.naver.[...]
[10]
문서
『고려사』 권108, 열전21
https://terms.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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