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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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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경왕후는 고려 말, 조선 초의 인물로, 조선 태종의 왕비이자 조선 세종의 어머니이다. 1365년에 태어나 여흥 민씨 가문 출신으로, 1382년 이방원(태종)과 결혼하여 조선 건국에 기여했다. 왕자의 난을 겪으며 정안군 이방원을 도왔으며, 정빈, 정비를 거쳐 태종 즉위 후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태종의 후궁 섭취와 외척 숙청으로 인한 갈등을 겪었고, 4남 4녀를 낳았으며, 특히 세종의 즉위는 그녀에게 큰 기쁨이었다. 1420년에 사망했으며, 헌릉에 태종과 함께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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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왕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헌릉
헌릉 (그녀의 능묘)
왕비 정보
휘호창덕소열(彰德昭烈)
시호원경(元敬)
존호후덕왕대비(厚德王大妃), 원경왕태후(元敬王太后)
별칭정비(靜妃), 정빈(貞嬪), 정녕옹주(靖寧翁主)
생애
출생일1365년 8월 6일
출생지고려 송경(松京) 철동(鐵洞) 사저
사망일1420년 8월 27일
사망지조선 한성부 수강궁 별전
묻힌 곳헌릉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인릉길 42)
가족 관계
아버지여흥부원군 민제(閔霽)
어머니삼한국대부인 여산 송씨
배우자태종
자녀양녕대군, 효령대군, 세종, 성녕대군, 정순공주, 경정공주, 경안공주, 정선공주 (4남 4녀, 또는 8남 4녀)
가문여흥 민씨
왕후 및 대비 책봉
세자빈 책봉1400년 3월 4일 ~ 1401년 1월 10일 (음력)
왕비 책봉1401년 1월 10일 ~ 1418년 8월 10일 (음력)
왕대비 책봉1418년 8월 10일 ~ 1420년 7월 10일 (음력)
계승 정보
세자빈 이전세자빈 김씨 (정안왕후)
세자빈 이후폐세자빈 김씨 (수성부부인)
왕비 이전정안왕후 김씨
왕비 이후소헌왕후 심씨
왕대비 이전순덕왕대비 김씨 (정안왕후)
왕대비 이후의덕왕대비 송씨 (정순왕후)

2. 생애

1382년 (고려 우왕 8년), 왜구를 토벌하여 명성이 높던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과 혼인하였다. 조선 건국 후, 남편 이방원이 정안군에 책봉되면서 민씨 또한 '''정녕옹주'''(靖寧翁主)에 봉해졌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1400년 제2차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정종이방원을 왕세자로 책봉하고 왕위에서 물러났다. 이에 따라 민씨는 1400년 정빈(靜嬪)으로, 1401년 정비(靜妃)로 책봉되었다.

태종이 즉위하면서 왕후가 되었으나, 태종이 후궁을 많이 들이면서 부부 관계는 악화되었다. 또한 태종의 외척 세력 일소로 그녀의 친동생 네 명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양녕대군의 폐세자 문제로도 갈등을 겪었으며, 넷째 아들 성녕대군이 요절하는 슬픔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셋째 아들 충녕대군이 세종으로 즉위하는 것을 보았다. 1418년 태종이 양위하면서 왕대비가 되었고, 1420년에 승하하였다.

2. 1. 탄생과 가계

1365년(고려 공민왕 14년) 7월 11일, 송경 (현 개성시) 철동의 사제에서 아버지 민제와 어머니 삼한국대부인 송씨 사이에서 4남 4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본관은 여흥이다.

원경왕후의 친정 가문인 여흥 민씨는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권문세족 중 하나이며, 아버지 민제는 고려 충혜왕의 왕비인 희비 윤씨의 외사촌 동생이었다. 또한 원경왕후는 고려 충정왕과 6촌지간이었다.

colspan="2" |본관생몰년부모비고
여흥부원군
민제
여흥1339년 - 1408년민변
송씨
삼한국대부인
송씨
여산1342년 - 1424년[13]송선
하씨



민유는 인현왕후의 12대조, 민씨 빈(흥선대원군의 어머니)의 16대조, 순목부대부인(흥선대원군의 부인)과 명성황후의 17대조, 순명황후의 18대조였다.

원경왕후는 고려 충혜왕의 후궁인 폐평 윤씨와 사촌 형제였다. 또한 5대조의 형제를 통해 정안왕후와는 4촌 관계였다.

외조부를 통해 원경왕후는 남편인 조선 태종의 후궁인 명빈과 5촌, 조선 문종의 왕비인 폐비 김씨와는 6촌 관계였다.

어머니 송씨를 통해서는 한확과 4촌, 장순왕후공혜왕후와는 5촌 관계였다.

2. 2. 혼인과 옹주 시절

1382년(우왕 8년), 왜구를 토벌하여 명성이 높던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과 혼인했다.

1392년 시아버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여 왕으로 즉위하자 남편 이방원이 정안군(靖安君)에 책봉되면서, 민씨 또한 '''정녕옹주'''(靖寧翁主)에 봉해졌다. 이 시기에 경안공주양녕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세종)을 낳았다.[1]

2. 3. 왕자의 난과 세자빈 책봉

1394년, 수도가 개경(현재 개성)에서 한성(현재 서울)으로 옮겨졌다. 태조는 새로운 왕조를 공식적으로 출범하면서 후계자 문제를 제기하였다. 태조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은 왕위 계승에 큰 공을 세웠으나, 정도전남은을 매우 싫어하였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1400년 제2차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정종이방원을 왕세자로 책봉하고 왕위에서 물러났다. 이에 따라 민씨는 1400년 정빈(靜嬪)으로, 1401년 정비(靜妃)로 책봉되었다.

2. 3. 1. 제1차 왕자의 난

1398년(태조 7년), 정도전은 사병 혁파법을 강행하여 왕자들의 사병 보유와 무기 소유를 금지시켰다. 이에 이방원을 비롯한 신의왕후 소생 왕자들은 크게 반발하였고, 신덕왕후와 정도전을 지지하는 세력과 대립하였다. 이때 민씨(원경왕후)는 변란에 대비하여 무기들을 숨겨놓았다.[5]

날이 이미 어두워졌다.중국어

이때 여러 왕자들이 거느린 시위패를 폐하게 한 것이 이미 10여 일이 되었는데, 다만 방번(무안대군)만은 군사를 거느림이 그전과 같았다.중국어

정안군(태종)이 처음에 군사를 폐하고 진영 안에 있는 무기를 모두 불에 태워버렸는데, 이때에 와서 부인('''원경왕후''')이 몰래 병장기를 준비하여 변고에 대응할 계책을 하였던 것이다.중국어

처음에 정안군(태종)의 부인('''원경왕후''')이 자기 스스로 정안군이 서서 있는 곳까지 이르러 그와 화패(禍敗)를 같이하고자 하여 걸어서 나오니, 정안군의 심복인 최광대 등이 극력으로 간하여 이를 말렸으나, 종(奴) 김부개가 정도전의 갓과 칼을 가지고 온 것을 보고 그제야 돌아왔다.|《태조실록》 14권, 태조 7년(1398년 명 홍무(洪武) 31년) 8월 26일 (기사)중국어

태조가 병석에 눕자, 민씨 일파는 이방원에게 반정을 독려하였다. 이방원은 처남인 민무구, 민무질을 비롯해 방의, 방간 등 여러 왕자들과 함께 정변을 일으켰다. 이들은 신덕왕후 소생의 이복 동생인 방번세자 방석을 죽이고 정도전, 남은, 심효생을 비롯한 일파들을 모조리 주살한 뒤에 정권을 장악하였다.[5]

이에 태조는 정변에 순응하고 둘째 아들인 영안대군 방과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2. 3. 2. 제2차 왕자의 난

1400년(정종 2년) 1월, 정종의 후계를 두고 정안군 방원회안대군 방간이 다투었고, 회안군은 패배하여 토산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정종은 정안군 방원을 세자로 책봉하였고, 부인 민씨 또한 세자빈에 책봉되어 '''정빈'''(貞嬪)의 작호를 받았다.[6]

1400년 초, 회안대군 이방간이 제안대군(齊安大君)을 공격하면서 제2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였다. 제안대군은 민씨 부인과 그녀의 가족과 함께 회안대군과 그의 지지자들을 토벌하였다.

3. 왕비 시절

조선 건국 후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태종)과 혼인한 민씨는 1400년(태종 즉위년) 남편 태종이 정종에게 선위를 받아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다. 왕비 책봉식에서 민씨는 '''정비'''(靜妃)로 책봉되었다.[7]

민씨는 고려 말기 개경(현 개성)에서 민제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집안은 유교 명문가였으며, 17세 무렵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과 혼인하여 4남 4녀를 두었다. 민씨는 남편과 함께 조선 건국에 공헌하였고, 정적들에게 위협받던 이방원을 암살 위기에서 구해내어 정권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태종이 즉위하면서 민씨는 왕후가 되었지만, 이후 그녀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태종이 많은 후궁을 두면서 부부 관계는 악화되었고, 태종의 외척 세력 제거로 친동생 네 명이 모두 사사되었다. 또한, 왕세자(후의 양녕대군)의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3. 1. 태종과의 갈등

태종 즉위 초, 원경왕후는 태종이 후궁을 들이는 문제로 크게 다투었다.[8]

1401년(태종 1년), 태종이 어떤 궁인을 가까이하자 원경왕후는 분노하여 궁인을 따로 불러 힐문하였고, 이를 안 태종은 원경왕후전의 시녀와 환관을 내쫓았다.[8]

1402년(태종 2년), 원경왕후가 왕비가 되기 전 사가에서 거느리던 여종 김씨(효순궁주)가 태종의 아이를 임신하자, 원경왕후는 계집종 삼덕(三德)을 시켜 김씨를 감시하게 하였다. 김씨가 아들 경녕군을 낳자, 원경왕후와 그 형제들은 김씨의 해산을 방해하고 구호 조치를 못하게 하는 등 핍박하여 경녕군 모자를 사지로 몰았으나, 이들은 목숨을 부지하였다.

태종은 경녕군 모자가 죽을 뻔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가 13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는데, 경녕군 모자를 핍박한 죄를 물어 처남인 민무휼민무회를 숙청하였다.

태종은 원경왕후의 투기가 심한 것을 비판하며, 역대 제왕들의 비빈의 숫자와 빈첩의 제도를 상고하게 하였고, 새로운 간택 후궁을 맞이하기로 결정한다.[9] 이에 성균악정 권홍의 딸인 의빈 권씨를 새로운 후궁으로 간택하였는데, 원경왕후는 태종의 옷을 붙잡고 원망의 말을 하며 울고 식음을 전폐하여 태종과 권씨의 가례색이 중지되었다.

원경왕후는 이 일로 마음의 병을 얻었고 태종은 수일동안 조회를 열지 않았다.[10]

1407년(태종 7년), 원경왕후는 태종이 강무를 나간 늦은 시각에 남동생인 민무질의 아내 한씨에게 미복을 입히고 몰래 입궁하게 하였는데, 이 사실을 안 태종이 격노하여 함부로 궁궐 문을 열어 입궁시킨 내관들을 처벌하였다.[11] 민무구민무질은 당시 태종에 의해 황해도 연안과 경기도 장단에 안치되어 있던 상태였다. 이 사건 이후 민무구민무질은 각각 여주대구로 이송되었다.

3. 2. 민씨 가문의 몰락

태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외척 세력을 경계하였고, 이 과정에서 원경왕후의 남동생 4형제(민무구, 민무질, 민무휼, 민무회)가 모두 숙청되었다. 태종은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귀양 보냈다가 민제가 죽은 후 사약을 내렸고, 6년 뒤에는 민무휼, 민무회 형제에게 자결을 명하였다.

원경왕후의 친정 가문은 고려 말 유교 명문가였으나, 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외척 세력 제거의 대상이 되었다.

3. 2. 1. 민무구 · 민무질 숙청

태종은 왕권 강화 과정에서 외척의 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경계하여 원경왕후의 아우들을 숙청하였다. 원경왕후의 남동생 4형제는 모두 남편 태종에 의해 사사되었다. 1406년 태종이 양위 문제를 거론했다가 철회하는 과정에서, 閔無咎중국어와 閔無疾중국어은 태종의 양위 소식에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1410년 제주도로 유배된 후 살해당했다.[1] 1408년에는 아들들의 유배 생활에 괴로워하던 원경왕후의 아버지 민제가 사망했다.

1416년에는 원경왕후의 남은 동생인 閔無恤중국어과 閔無悔중국어가 왕세자 (훗날의 양녕대군)가 가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가족을 잘 돌볼 것이라고 말한 것이 태종에게 전해졌다. 태종은 이를 위협으로 간주하여 두 사람을 유배 보낸 후 자살하게 만들었다.[2]

3. 2. 2. 민무휼 · 민무회 숙청

태종은 왕권 강화 과정에서 외척 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경계하여 원경왕후의 남동생들을 숙청하였다. 원경왕후의 남동생 4형제는 모두 남편 태종에 의해 사사되었다. 태종은 처음에 민무구민무질을 귀양보냈다가, 장인인 민제가 죽은 후에 사약을 내렸으며, 6년 후에는 민무휼민무회 형제에게 자결을 명하였다.[2]

1406년 태종이 양위 문제를 거론했다가 철회하는 과정에서, 민무구와 민무질은 태종의 양위 소식에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1410년 제주도로 유배된 후 살해당했다. 1416년에는 원경왕후의 남은 동생인 민무휼과 민무회가 왕세자 제(훗날 양녕대군)가 가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가족을 잘 돌볼 것이라고 말한 것이 태종에게 알려졌다. 태종은 이를 위협으로 간주하여 두 사람을 유배 보낸 후 자살하게 만들었다.[2]

4. 최후

1418년 남편 태종이 셋째 아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상왕으로서 3년 동안 철권 통치를 지속하며 1419년 사위 심온1418년 두 처남을 처형하는 등 중요한 사안들을 결정했다.[12]

원경왕후는 1418년 9월 9일부터 1420년 사망할 때까지 2년 남짓 왕대비로 있었다.

4. 1. 사망

1420년(세종 2년) 7월 10일, 수강궁의 별전에서 승하하였다.[12] 춘추는 56세였다. 승하 당시 상황은 다음과 같다.

薨|훙중국어하니, 춘추가 56세이고, 중궁에 정위(正位)한 지 21년이다. 모든 범절을 한결같이 옛 예법을 좇아, 임금(세종)이 옷을 갈아 입고, 머리 풀고, 발 벗고, 부르짖어 통곡하였다. 상왕(태종)이 거적자리에 나아가 미음을 전하였는데, 이 때 임금이 음식을 입에 대지 않은 지 이미 수일이라, 상왕이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권하였다.

원경왕후는 55세의 나이로 수강궁 별전에서 사망했다. 태종은 그녀보다 2년 더 오래 살았고, 두 사람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릉에 함께 묻혔다.

4. 2. 시호 및 능묘

시호는 '''원경왕태후'''(元敬王太后)이며 능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헌릉으로 태종과 쌍릉을 이루고 있다.[1]

5. 가족 관계

구분이름본관생몰년부모비고
여흥부원군 민제여흥1339년 - 1408년민변 / 여산 송씨colspan="1" |
삼한국대부인 송씨여산1342년 - 1424년[13]송선 / 달성 하씨colspan="1" |
배우자태종colspan="1" |1367년 - 1422년colspan="2" |조선 제3대 국왕



원경왕후는 여흥 민씨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 민제는 고려 후기의 권문세족이자 희비 윤씨의 외사촌 동생이었다. 어머니는 여산 송씨이다. 원경왕후는 고려 충정왕과 6촌 지간이기도 하다.

1382년, 왜구 토벌로 명성이 높던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과 혼인하였다. 1392년 시아버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남편 이방원이 정안군에 책봉되자, 정녕옹주에 봉해졌다.

왕자의 난 당시 친정 식구들과 함께 태종을 도와 왕위에 오르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태종의 외척 숙청 과정에서 원경왕후의 아우들이 모두 사사되면서 친정은 멸문의 화를 입었다.

5. 1. 자녀

원경왕후와 태종 사이에서는 4남 4녀가 태어났다.

작호이름생몰년배우자비고
장녀정순공주1385년 - 1460년청평부원군 이백강
차녀경정공주1387년 - 1455년평양부원군 조대림
3녀경안공주1393년 - 1415년길창군 권규
장남양녕대군
폐세자
1394년 - 1462년수성부부인 김씨태종 18년(1418년) 폐세자
차남효령대군1396년 - 1486년예성부부인 정씨
3남세종대왕
충녕대군
1397년 - 1450년소헌왕후 심씨제4대 국왕
4녀정선공주1404년 - 1424년의산군 남휘남이의 할머니
4남성녕대군1405년 - 1418년삼한국대부인 성씨


6.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원경왕후가 등장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연도작품명방송사배우
1983년추동궁 마마MBC김영란
1996년~1998년용의 눈물KBS최명길
2008년대왕 세종KBS최명길
2014년정도전KBS강세정
2015년퐁당퐁당 LoveMBC임예진
2015년~2016년육룡이 나르샤SBS공승연
2015년간신영화김사희
2021년조선구마사SBS서영희
2021년~2022년태종 이방원KBS1박진희
2025년왕이 되는 여자tvN차주영 [3]


6. 1. 드라마


6. 2. 영화

참조

[1] 서적 Women in Korean History 한국 역사 속의 여성들 https://books.google[...] Ewha Womans University Press
[2] 문서 조선왕조실록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Translation: In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it is recorded that he took his own life)
[3] 뉴스 https://n.news.naver[...] 2023-05-09
[4] 웹사이트 https://sillok.histo[...]
[5] 실록 태조실록 1398-08-26
[6] 실록 정종실록 1400-03-04
[7] 실록 태종실록 1401-01-10
[8] 실록 태종실록 1401-06-18
[9] 실록 태종실록 1402-01-08
[10] 실록 태종실록 1402-03-07
[11] 실록 태종실록 1407-11-10
[12] 실록 세종실록 1420-07-10
[13] 실록 세종실록 1424-06-10
[14] 실록 세종실록 1419-02-03
[15] 실록 태종실록 141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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