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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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붕제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리였으며, 광복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 한국 전쟁 중 납북된 인물이다. 1910년생으로 오산학교와 일본 마쓰야마고등학교, 교토 제국대학을 졸업했다.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경상북도 내무부에서 근무했으며, 군위군수를 역임했다. 중일전쟁 당시 군수품 공출을 지휘하여 공적조서에 이름이 올랐다. 광복 후에는 백인제와 함께 백병원을 설립하고 수선사를 운영하며 문학 서적을 출간했다. 한국 전쟁 중 백인제와 함께 납북되었으며, 맏아들은 인제대학교 설립자 백낙환, 차남은 서울대학교 교수 백낙청이다. 2008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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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붕제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백붕제 |
출생일 | 1910년 2월 19일 |
출생지 | 대한제국 평안북도 정주 |
사망일 | ? |
사망지 | ? |
국적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가족 관계 | |
아버지 | 백희행 |
어머니 | 청주 한씨 부인 |
배우자 | 안숙온(사별), 최귀란(재혼) |
자녀 | 백낙환(장남), 백낙청(차남) |
형제 | 백용제(첫째 형) 백봉제(둘째 형) 백인제(셋째 형) |
친인척 | 김치열(사돈) |
학력 | |
대학 | 교토 제국대학교 법학과 |
관력 | |
임기 시작 | 1937년 7월 8일 |
임기 종료 | 1938년 8월 8일 |
직책 | 경상북도 군위군 군수 |
소속 정당 | 무소속 |
주요 경력 | 법조인 출신 |
정부 | |
국가 | 조선총독부 |
총독 | 미나미 지로 |
군주 | 히로히토 |
총리 | 고노에 일본 총리 |
2. 생애
백붕제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한국 사회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관리로 근무했으며, 광복 후에는 변호사, 사업가, 출판인 등으로 활동했다.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생사가 불분명해졌다. 맏아들은 인제대학교 설립자 백낙환[3]이며, 차남 백낙청은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낸 평론가이다.[4] 3남 백낙서는 김치열의 딸과 결혼하여 백붕제와 김치열은 사돈 관계이다.
2. 1. 일제강점기
1910년 2월 19일 정주 오산학교와 1930년 3월 일본 에히메현의 마쓰야마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30년 4월 교토 제국대학에 입학하여 1933년 3월 졸업했다. 이후 귀국해 1934년 11월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1935년 10월에는 행정과에 합격했다. 1936년부터 경상북도 내무부 지방과에서 근무했으며, 1937년 7월까지 경상북도 내무부 지방과 속 겸 의성군 속을 지냈다. 1937년 7월 군수로 승진해 경상북도 군위군수로 발령받았다. 경상북도 산업부 이사관을 지내는 등 조선총독부 관리로 근무했다. 재직 당시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군수품 공출을 지휘하였고 이의 공을 인정받아 〈지나사변공적조서〉에 신상의 성함이 올랐다.[2]2. 2. 광복 이후
광복 후 서울에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백인제와 함께 백병원을 설립하고, 출판사 수선사(首善社)를 운영하며 문학서적을 출간했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후 백인제가 체포되면서 서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납북되었다.[2] 이때 백인제도 납북되어 형제가 함께 실종되었다.2. 3. 가족 관계
항목 | 내용 |
---|---|
부 | 백희행(1869년 ~ 1954년) |
모 | 청주 한씨 |
형 | 백용제(1887년 ~ 1909년) |
형 | 백봉제(1896년 ~ 1946년) |
형 | 백인제(1898년 1월 28일 ~ ? ), 의사, 백병원 설립자 |
조카 | 백낙조(1934년 ~ 2000년), 독일 본대 의학박사 |
부인 | 안숙온( ? ~ 1927년), 순흥 안씨 |
아들 | 백낙환(1926년 ~ 2018년 ), 인제대학교 이사장 |
계실 | 최귀란(1911년 ~ ? ), 월성 최씨 |
아들 | 백낙청(1938년 ~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장 |
며느리 | 한지현, 대학교수 |
아들 | 백낙돈(1939년 ~ ) |
아들 | 백낙서(1945년 ~ ), 인제대학교 석좌교수 |
며느리 | 김윤희(1949년~ ), 대학교수 (김치열의 딸) |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이는 그의 일제강점기 행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백붕제의 삶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 한국 사회의 격변기를 관통하며, 그의 행적은 한국 근현대사의 복잡성을 반영한다.
[1]
웹인용
民族正氣의 審判 (하)
http://db.history.go[...]
국사편찬위원회
2007-12-14
3. 사후
참조
[2]
웹사이트
백붕제 (白鵬濟)
http://kwari.org/sub[...]
[3]
뉴스
"[이사람] “의학은 봉사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http://www.hani.co.k[...]
한겨레
2008-07-28
[4]
뉴스
"[부고] 백낙환(인제학원 이사장)씨 모친상"
http://article.joins[...]
중앙일보
200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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