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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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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제기》는 《일본서기》에 인용된 백제의 역사 기록으로, 백제와 왜의 교류, 목라근자, 목만치 부자 등의 활동을 중심으로 백제의 역사를 서술한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대성팔족 중 하나인 목씨 가문의 전승 기록 형식을 띠며, 가야 왕족의 백제 망명, 백제 내부 사정에 대한 기록을 포함하고 있다. 《백제기》는 백제를 왜에 종속된 것처럼 묘사하기도 하지만, 《삼국사기》와 유사한 용어 사용과 인명, 지명 표기를 보이며, 일본을 '귀국' 등으로 지칭하는 특징을 보인다. 기년 표기는 왕의 이름과 간지, 계절을 함께 사용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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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기
개요
국가백제
위치한반도 중서부
존속 기간기원전 18년 ~ 660년
주요 도시위례성
웅진
사비
정치
정치 체제군주제
국왕역대 국왕 목록 참고
관직좌평
달솔
은솔
덕솔
한솔
나솔
역사
건국기원전 18년
멸망660년
주요 사건고구려-백제 전쟁
나당 전쟁
황산벌 전투
사회
계급왕족
귀족
평민
노비
문화
언어백제어
종교불교
건축미륵사지 석탑
유물무령왕릉
경제
주요 산업농업
화폐오수전
군사
군대백제군
주요 전투관산성 전투
기벌포 해전

2. 《백제기》의 내용과 성격

《일본서기》에 《백제기》가 직접 인용된 부분은 신공기 62년조[2], 응신기 8년 봄 3월조[3]와 25년조[4], 웅략기 20년조[5]이다.[6]

《백제기》는 백제와 왜의 교류, 목라근자(木羅斤資)와 목만치(木滿致) 부자의 활동을 중심으로 백제의 역사를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 대성팔족 중 하나인 목(木)씨 가문의 전승 기록 형식을 띠며, 일본 열도에서 만들어졌지만,[7] 가야 왕족들의 백제 망명, 목만치와 구이신왕 어머니 사이의 추문 등 백제 내부 사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어, 백제의 원사료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8]

2. 1. 《백제기》에 나타난 주요 사건

《일본서기》 신공기 49년(369년)에는 목라근자와 사사노궤 등이 이끄는 병력이 가야 7국과 전라도 지역을 평정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기록은 원래 《백제기》에 수록되었던 내용으로 추정된다.[2]

웅략기 20년(475년)에 백제의 수도 한성이 함락되고, 목만치(목례만치)가 문주왕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였다는 내용이 《백제기》의 마지막 인용 기사이다.[5]

3. 용어 사용

《백제기》는 전반적으로 백제를 왜에 종속된 신하국처럼 묘사하지만, 응신기 8년 봄 3월조에 인용된 《백제기》에서 '선왕의 우호를 닦았다'는 표현은 《삼국사기》에서 전하는 삼국과 왜의 관계에 대한 인식과 공통된다.[9] 인명과 지명은 진구 황후의 삼한정벌기사와는 다르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그것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9] 또한 '대성(大城)', '대후(大后)' 등 한국의 다른 사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용어가 등장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9]

3. 1. 일본을 지칭한 용어

일본 즉 왜국과 그 왕을 가리켜 《백제기》는 귀국(貴國)ㆍ대왜(大倭) 내지는 천황(天皇)이라고 부르고 있는데,[10] '귀국'이라는 용어는 《백제기》 안에서만 보이는 용어이며, 일본을 지칭하는 2인칭의 용어로 보든 '귀한 나라' 내지는 '존엄한 나라'라는 뜻으로 읽든 간에 원래 백제에서 쓰이던 용어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밖에 왜 조정을 국한해서 지칭하는 용어로 천조(天朝)라는 용어도 사용되고 있으나 모두 《일본서기》 편찬 단계에서 원문이 개서된 것으로 여겨진다.[11]

3. 2. 백제에 대한 호칭

일본서기》에 인용된 《백제기》의 기록에는 백제가 주체로 되어 있는 기록(응신기 8년ㆍ25년조, 웅략기 20년조)과 제3자로 취급된 기록(신공기 62년조)이 함께 나타난다. 하지만 신공기 62년조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에 우리(我)의 침미다례를 빼앗았다'[12]거나, 목만치의 행적을 기록하면서 '우리 나라(我國)로 들어와서[來入我國]', '우리 나라(我國)의 국정을 잡았다[執我國政]'[13]라고 적는 등 대체로 백제가 주체가 된 기록이 주를 이루고 있다.

4. 기년 표기

《일본서기》 웅략기 20년조에 인용된 《백제기》는 '개로왕 을묘년 겨울'과 같이 왕의 이름, 간지, 계절을 사용하여 기년을 표기하였다. 이는 《삼국사기》에서 자주 나타나는 기년 표기 방식이지만, 왕의 재위년수로 기년을 나타내는 《삼국사기》와는 다른 기년법이며, 《일본서기》의 원칙과도 다르다.[14]

무령왕릉 매지권이나 사택지적비와 같은 백제 금석문을 포함하여 신라와 일본의 고대 금석문에서도 간지로 기년을 표시한 사례가 많다. 연호 또는 국왕의 재위년수로 기년을 표기하는 방식(예: '○○왕 ○○년' 또는 '□□ ○년')은 간지로만 기년을 나타내는 방식보다 새로운 것이다. 《백제기》에서 왕의 이름과 간지를 함께 사용하여 적은 기년 표기 방식은, 기존의 간지만을 사용하여 기년을 표기하던 전통 방식과 왕 즉위년 표기법이 결합된 과도기적 단계의 기년 표기법으로 추정된다. 이를 통해 기록 대상이 된 시점에서 멀지 않은 시기의 원본 《백제기》가 《일본서기》에 인용된 《백제기》의 모본으로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14]

참조

[1] 서적 백제문화사대계 연구총서 제12권 '백제의 문화와 생활'
[2] 백제기
[3] 백제기
[4] 백제기
[5] 백제기
[6] 문서
[7] 서적 백제문화사대계 연구총서 제12권, '백제의 문화와 생활'
[8] 문서
[9] 문서
[10] 문서
[11] 서적 백제문화사대계 연구총서 제12권, '백제의 문화와 생활'
[12] 일본서기 일본서기 권제10, 응신기 8년 봄3월조
[13] 일본서기 일본서기 권제10, 응신기 25년조
[14] 서적 백제문화사대계 연구총서 제12권, '백제의 문화와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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