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조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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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상주 조공제는 1871년 9월부터 1873년 10월까지 상주 목사로 재임한 조병노가 치농을 목적으로 축조한 제방이다. 길이는 370m, 높이 2.5m, 폭 5m로 밤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임진왜란 때 정기룡 장군이 상주성 탈환 시 군사를 숨겨 두었던 곳이기도 하며, 현재는 도로가 관통하여 일부 훼손되었다. 조공제비에는 제방 축성 내력이 기록되어 있고, 『상산지』의 기록을 통해 풍수지리적 의미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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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조공제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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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상주 조공제 |
한자 표기 | 尙州 趙公堤 |
유형 | 경상북도 기념물 |
지정 번호 | 140 |
지정일 | 2002년 7월 15일 |
주소 | 경북 상주시 복룡동 504-1번지 외 1필지 |
시대 | 조선시대 |
면적 | 3,369m2 |
2. 역사
조공제는 1871년 9월부터 1873년 10월까지 상주 목사로 재임한 조병노(趙秉老)가 치농(治農) 목적으로 쌓은 제방이다. 제방의 길이는 370m, 높이는 2.5m, 폭은 5m이며 밤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조공제가 있는 자리는 일찍부터 율수(栗藪)라고 불렸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정기룡 장군이 상주성 탈환 시 군사를 숨겨 두었다가 도망가는 왜군을 섬멸하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시내로 들어가는 폭 20m 도로가 관통되어 손상되었지만, 더 이상 훼손해서는 안 되는 역사적인 곳이다.
제방 남쪽 끝에는 조공제비가 있는데, 비문에는 "동편은 물길이 허하여 가둘 수 없음에 흙을 쌓고 나무를 키우게 하였다. .... 일꾼들에게 명하여 돌을 실어다 쌓도록하니 그 제방이 마침 성과 같았다"고 적혀 있어 제방의 축성 내력을 알 수 있다.
『상산지』 임수조(林藪條)에는 "율수는 주 동쪽 5리에 있다. 옛이야기에 읍기(邑基) 서쪽에 있는 산의 형상이 지네와 같아 이를 제독하기 위하여 서로 바라보는 곳에 밤나무를 심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조공제에 밤나무를 심은 것이 풍수지리학적으로 서쪽에 있는 산이 지네의 형상이므로, 지네가 싫어하는 밤나무를 심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 1. 축조 배경 및 목적
조공제는 1871년 9월부터 1873년 10월까지 상주 목사로 재임한 조병노(趙秉老)가 치농(治農) 목적으로 쌓은 제방이다. 제방의 길이는 370m, 높이는 2.5m, 폭은 5m이며 밤나무로 이루어져 있다.조공제가 있는 자리는 일찍부터 율수(栗藪)라고 불렸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정기룡 장군이 상주성 탈환 시 군사를 숨겨 두었다가 도망가는 왜군을 섬멸하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시내로 들어가는 폭 20m 도로가 관통되어 손상되었지만, 더 이상 훼손해서는 안 되는 역사적인 곳이다.
제방 남쪽 끝에는 조공제비가 있는데, 비문에는 "동편은 물길이 허하여 가둘 수 없음에 흙을 쌓고 나무를 키우게 하였다. .... 일꾼들에게 명하여 돌을 실어다 쌓도록하니 그 제방이 마침 성과 같았다"고 적혀 있어 제방의 축성 내력을 알 수 있다.
『상산지』 임수조(林藪條)에는 "율수는 주 동쪽 5리에 있다. 옛이야기에 읍기(邑基) 서쪽에 있는 산의 형상이 지네와 같아 이를 제독하기 위하여 서로 바라보는 곳에 밤나무를 심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조공제에 밤나무를 심은 것이 풍수지리학적으로 서쪽에 있는 산이 지네의 형상이므로, 지네가 싫어하는 밤나무를 심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 2. 임진왜란과 조공제
2. 3. 현재 상황 및 훼손
조공제는 조병노(趙秉老) 목사(재임기간 1871년 9월∼1873년 10월)가 치농 목적으로 쌓은 제방(길이 370m, 높이 2.5m, 폭 5m)으로 밤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제방은 일찍부터 율수(栗藪)라고 불렸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정기룡 장군이 상주성 탈환시 군사를 숨겨 두었다가 도망가는 왜군을 섬멸하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시내로 들어가는 폭 20m 도로가 관통되어 손상되었지만, 더 이상 훼손해서는 안 되는 역사적인 곳이다.제방 남쪽 끝에는 조공제비가 있는데, 비문의 내용을 보면 ".... 동편은 물길이 허하여 가둘 수 없음에 흙을 쌓고 나무를 키우게 하였다. .... 일꾼들에게 명하여 돌을 실어다 쌓도록하니 그 제방이 마침 성과 같았다 ...."고 적어 제방의 축성 내력을 알 수 있다. 또 『상산지』임수조(林藪條)에 "율수는 주 동쪽 5리에 있다. 옛이야기에 읍기(邑基) 서쪽에 있는 산의 형상이 지네와 같아 이를 제독하기 위하여 서로 바라보는 곳에 밤나무를 심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제방에 밤나무를 심은 것은 풍수지리학적으로 서쪽에 있는 산이 지네의 형상이라 조공제의 자리에 지네가 싫어하는 밤나무를 심은 것으로 볼 수 있다.
3. 구조 및 특징
3. 1. 규모 및 형태
3. 2. 조공제비
3. 3. 풍수지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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