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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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훈(1942년)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경북대학교 법대 재학 시절 6.3 한일 굴욕회담 반대 투쟁을 주도하고 ROTC 대위로 전역한 후, 신민당 김영삼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대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당선과 낙선을 반복했으며, 1993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대구 지역 유일 야당 국회의원이 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으나, 이후 여러 차례 공천에서 낙천되었다.
경북대학교 법과대학 재학 시절 총학생회장으로서 6.3 한일 굴욕회담 반대 투쟁을 주도하였다. ROTC 대위로 전역한 후 신민당 시절 김영삼 의원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대구에서 신민당, 통일민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였으나 여러 차례 낙선하였다. 영남 지역의 재야 민주화 운동 지도자로서 활동했으며,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여 가난한 지역 학생들을 위해 팔공 재건학교와 같은 야학을 오랫동안 운영하였다. 1990년 김영삼 총재가 3당 합당을 선언하고 민주자유당을 창당했을 때, 이를 민주화 세력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하고 오랜 정치적 후원자였던 김영삼과 결별하였다.
(초선)
2. 이력
1988년 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1992년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통일국민당 공천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러나 1993년 문민정부 초기에 공직자 재산공개 파문으로 박준규 당시 국회의장이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치러진 보궐선거(대구 동구 을)에서 민주자유당 노동일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보수 성향이 강한 대구 지역에서 유일한 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주목받았으며, 자전거를 타고 국회에 출근하거나 다른 의원들이 언급하기 꺼리는 국정 현안에 대해 과감하게 질의하는 등 소신 있는 행보로 화제를 모았다.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1996년 대한민국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2000년 대한민국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총재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는 이유로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후 김윤환을 따라 민주국민당 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국민통합21을 거쳐 한나라당에 복당하였고, 2004년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와 2005년 재보궐선거에 잇달아 공천을 신청했으나 모두 탈락했다.
가족으로는 부인 김리례와의 사이에 2남 1녀(서정진, 서정현, 서정봉)를 두었다.
3. 역대 선거 결과
1996년 제15대 총선 대구 동구 을 무소속 20,715 (30.27%) 1위 (당선)
(재선)2000년 제16대 총선 대구 동구 민주국민당 10,267 (7.81%) 3위 (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