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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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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손기정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 국가대표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의 육상 선수이다. 그는 올림픽에서 2시간 29분 19.2초의 기록으로 우승했으며, 시상식에서 일장기를 달고 고개를 숙인 모습으로 민족의식을 표현했다. 광복 후 대한체육회 부회장, 서울 올림픽 조직 위원 등을 역임하며 한국 스포츠 발전에 기여했고,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서 성화 봉송 최종 주자로 참여했다. 90세에 사망하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으며, 손기정 투구는 보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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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36년의 손기정
1936년의 손기정
원어 이름손기정
일본어 발음(손 키테이)
출생 이름손기정
국적일본 제국대한민국
출생일1912년 8월 29일
출생지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의주부 신의주 근교
사망일2002년 11월 15일
사망지서울특별시
안장지국립대전현충원
1.70m
몸무게60kg
코치함기용, 서윤복
로마자 표기Son Gijeong
일본어 로마자 표기Son Kitei
천주교 세례명아우구스티노
부모손인석(부), 김복녀(모)
배우자강복신(첫번째 사별), 김원봉(두번째 사별)
자녀손문영(장녀), 손정인(장남)
육상 정보
종목육상
세부 종목마라톤
개인 최고 기록마라톤: 2시간 26분 42초 (1935년, 당시 세계 기록)
올림픽
올림픽 메달1936년 하계 올림픽: 남자 마라톤 금메달
수상
주요 수상1936년 하계 올림픽대회 육상 남자 마라톤 금메달
1957년 대한민국 체육상
1963년 혁명정부 문화공로상
1967년 바킬라아베베상
1967년 서울신문사 체육상
1968년 국제육상경기연맹 공로상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
1982년 국제육상경기연맹 창립 70주년 특별기념상
사후 2002년 체육훈장 청룡장 추서
관련 인물
친척강용석(초배 장인), 김태규(계배 장인), 김원룡(계배 손윗처남), 김원권(계배 손아랫처남)

2. 생애

2. 1. 소년기

손기정은 1912년 8월 29일 일제 강점기 조선 평안북도 의주부 광성면 민포리(1938년 평안북도 신의주부 남민포동으로 편입)에서 태어났다.[5][1][3] 그는 밀양 손씨였다.[6] 어린 시절부터 달리기에 재능을 보였으며, 6학년 때 지역 5km 경주에서 나이 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5]

집안은 잡화점을 운영했지만, 가세가 넉넉하지 못해 겨울에 주변 아이들이 압록강에서 즐기는 스케이트화를 살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보통학교 시절부터 달리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고학년이 되자 스스로 훈련 방법을 고안해 달리기를 했다. 1926년 압록강 홍수로 집이 피해를 입어 학업을 중단하고, 참외장사, 각설탕 장사, 군밤장사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지만, 이 기간에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53] 14세의 나이로 철따라 물건을 바꿔가며 장사를 한 덕분에 2학기부터 약죽(若竹)보통학교에 다시 다닐 수 있었으나, 6학년 졸업을 할 때까지 낮에는 학교에 가고 저녁에는 장사해야 하였다.[53]

1932년 양정고등보통학교에 스카우트되어 입학했다.[53] 양정고등보통학교는 개신교 사상가인 김교신 선생이 교사로 일한 학교였으므로, 손기정은 김교신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훗날 1936년 하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인촌 김성수의 권유로 보성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했지만, 일제의 감시 탓에 자퇴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1940년일본메이지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부를 졸업했다.

2. 2. 1936년 하계 올림픽 마라톤과 일장기 말소 사건

1936년 8월 9일에 열린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은 42.195km를 2시간 29분 19.2초에 주파하여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땄다.[53][4] 이 때 남승룡동메달을 차지하였다.[4] 아돌프 히틀러는 경기 다음 날 손기정을 면담하고 격려하였다.[54][55]

손기정, 1936 베를린 하계 올림픽


당시 대한제국은 일본의 지배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손기정은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손 기테이'''(}})라는 일본식 이름을 사용해야 했다.[11] 그러나 손기정은 한국어 이름으로만 서명하고 그 옆에 한반도를 그려 넣었으며,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모국이 대한민국임을 밝혔다.[56] 시상식에서 일장기가 게양되자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3] 경기 후 일본 선수단의 축하 파티에 참석하지 않고, 베를린에 있는 조선인 두부공장에서 열린 우승 축하 모임에 참석하였다.[56]

{{Double image aside|right|Sohn Kee-chung (Kitei Son) Medal Ceremony 1936 Summer Olympics.jpg|190|Japanese flag erasure incident by Dong-a Ilbo on 25 August 1936.jpg|150|

  • 왼쪽: 손기정(孫基禎), 1936년 베를린 하계 올림픽
  • 오른쪽: 동아일보 1936년 8월 25일자 석간 2면 이미지}}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손기정의 유니폼에 있던 일장기를 삭제하고 보도하는 일장기 말소 사건을 일으켰다.[12][13]

|섬네일|200px|오른쪽|1936년 8월 13일자 조선중앙일보에 실린 '일장기 말소 사건']]

|섬네일|200px|오른쪽|1936년 8월 25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일장기 말소 사건']]

이 사건으로 동아일보 사회부장이었던 현진건이 1년간 옥고를 치렀고, 조선중앙일보 사장 여운형도 고초를 겪었다.[57] 손기정 또한 귀국 후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아야 했으며, 보성전문학교를 중퇴해야 했다.[57] 그는 “마라톤 우승을 반납하고 싶다”고까지 말했다.[57]

손기정은 민족의식이 강했으며, 세계 신기록 수립 당시 시상식에서도 "왜 君が代가 자신에게 국가인가"라며 눈물을 흘렸고, 베를린 체류 시에는 외국인에게 사인을 할 때 "KOREA"라고 적기도 했다. 이는 특별고등경찰에 의해 "요주의 인물"로 감시받는 것으로 이어졌다.

2. 3. 광복 이후

보성전문학교를 중퇴하고 일본 메이지 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1944년까지 조선저축은행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했다.[54]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5년 3월에는 여운형과 교류하며 독립운동에 간접적으로 참여했다.[54] 1947년 7월 19일 여운형이 암살당하자, 8월 3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인민장 영결식에 참석하여 김성집 등과 함께 여운형의 관을 운구하였다.[58][59]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한체육회 부회장, 1963년 대한육상경기연맹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1966년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대표단장으로 참가하였다. 1971년 올림픽 위원회(KOC) 위원, 1981년부터 1988년까지 서울 올림픽 조직 위원을 역임하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서 성화 봉송 최종 주자로 나서 큰 감동을 주었다.[3][21] 1947년1950년에는 서윤복함기용의 전담 코치를 맡아 훈련시켰고,[60]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황영조는 손기정을 자신의 정신적 지주로 꼽았다. 1983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자서전을 통해 당시 상황과 심정을 밝혔다. 보성전문학교의 후신인 고려대학교에서 경영학과 명예 졸업장을 전달했다.

손기정에게 수여된 코린트식 투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손기정은 1948년 런던 올림픽과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며, 1948년 런던 올림픽 개회식에서는 한국의 기수였다.[19] 이후 한국에서 서윤복,[3] 함기용, 황영조 등 우수한 마라톤 선수들을 지도했다.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광복 이후인 1946년 8월 20일, 베를린 올림픽 10주년 기념 축하회가 서울의 덕수궁에서 열렸고, 이승만, 김구 등으로부터 축복의 말을 받았다.[30]

대한민국 건국 후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코치로 활동했다. 종전 직후 남승룡 등과 함께 “마라톤 보급회”를 결성하여 선수들을 지도했다.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서윤복이 손기정의 기록을 12년 만에 경신하며 우승했고, 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도 한국 선수가 상위 3위를 석권했다.

그러나 감독으로 함께 갔던 보스턴에서 귀국하자마자 한국 전쟁이 발발했고, 조선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자택에 감금되었다. 이후 탈출하여 전화가 진정되자 다시 육상 경기 지도자로 활동했다.

1961년 6월 25일, 일본의 MBS라디오(毎日放送ラジオ)가 생방송으로 진행한 특집 프로그램 「제16회 매일 마라톤 골 직전 중계」에 “동성육상연맹 회장”으로 게스트 출연했다.[31]

2. 4. 말년

손기정은 1990년대 이후 간혹 방송과 인터뷰에 참여하였다. 2002년 11월 15일 지병이던 만성 신부전증과 폐렴으로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향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34][35][36][37][38][39][40][41]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21] 사후 체육훈장 청룡장이 추서되었다.[61]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서는 마지막 성화 주자 중 한 명으로서 스타디움에 성화를 들고 등장했는데,[32][33] 본인은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보다 이때가 더 기뻤다고 한다.

모교 양정고등학교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으로 이전한 후, 서울역 서부 출구(서부역)에서 멀지 않은 만리동2가에 있었던 옛 양정고등학교 자리에 손기정공원과 손기정 기념관이 만들어졌다. 손기정 기념관은 1936년 하계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의 뜻을 기리고, 국제적인 스포츠 관광 자원으로 개발하고자 1918년 만리동에 건립된 양정의숙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손기정 탄생 100주년인 2012년 10월 14일에 개관하였다.[61] 손기정 기념관은 서울역 15번 출구에서 도보 12분 거리에 있으며, 휴관일은 월요일, 신정, 설날, 추석 연휴이고, 개관 시간은 10:00 - 18:00 (입장은 17:00까지)이다. 주소는 서울특별시 중구 손기정로 101 (공원 내)이다.

한편, 장남인 손정인은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사무부장으로 요코하마시에 거주하며, 초등학교 등에서 강연을 통해 "그 마라톤에서 일본이 이겼습니다. 하지만 일본인이 이긴 것은 아닙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42]

3. 올림픽 국적 논란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는 1936년 하계 올림픽 당시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여 손기정의 국적을 일본으로 표기하고 이름을 '손 기테이'로 표기하고 있으나,[64][65] 그의 일대기에는 손기정의 이름을 한국 이름으로, 국적을 대한민국으로 명시하고 있다.[64][65]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 세워진 기념비에는 그의 국적이 일본으로 기록되어 있다.[62] 1970년 당시 한국 국회의원이었던 박영록이 야간에 베를린 올림픽 기념 경기장에 무단 침입하여 기념비에 새겨진 손기정의 국적 "Japan"을 망치와 정으로 파내고 "Korea"라고 새긴 사건이 있었다.[46][47] 그러나 독일 당국은 나중에 기념비의 국적 표기를 "Japan"으로 되돌렸다.[46][47] 미국 캘리포니아주 컬버시티에 있는 올림픽 역대 마라톤 우승자 기념비에서는 손기정의 국적이 1986년 8월 "Korea"로 변경되었고, 기념식에 손기정 본인도 참석했다.[49]

일본 올림픽 위원회 홈페이지와 일본 올림픽 박물관에서는 손기정과 남승룡을 일본의 메달리스트로 소개하고 있다.[63] 그러나, 대한올림픽위원회가 손기정의 배경을 인정해 달라고 반복적으로 요청한 결과, 2011년 12월 9일, IOC는 손기정의 공식 프로필에서 그의 한국 국적을 인정했다.[10] IOC는 손기정이 한국 이름으로 서명하려 했던 노력과 인터뷰에서 한국을 별개의 국가로 강조했던 점을 언급했다.[10] 그럼에도 IOC는 역사적 기록의 변경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10] 한편, 서울 올림픽 당시 비트たけし는 "손기정의 금메달을 한국에 돌려줘야 한다면 칼 루이스의 금메달도 아프리카에 돌려줘야 한다."라고 발언하여 비판을 받았다.[48]

4. 수상 및 서훈

베를린 올림픽 육상 남자 마라톤 금메달(1936년), 대한민국 체육상(1957년), 국민훈장 모란장(1970년 7월 13일), 체육훈장 청룡장(2002년 12월 2일)을 수상하였다.[44] 혁명정부 문화공로상(1963년), 아베베 비킬라상(1967년), 서울신문사 체육상(1967년), 국제 육상 경기 연맹 공로상(1968년), 국제 육상 경기 연맹 창립 70주년 특별기념상(1982년)을 받았다.[44]

국민훈장 모란장(1970년 7월 13일)
체육훈장 청룡장(2002년 12월 2일)
문화포장(1962년 8월 15일), 대통령 표창(1988년 2월 4일)을 받았다. 1995년에는 명지대학교로부터 특별공로상을 수여받았다.[44]

5. 관련 문화재

5. 1. 손기정 투구

손기정 투구 (보물 제904호)


'''손기정 투구'''는 보물 제904호(지정년월일: 1987년 3월 7일)로, 기원전 7~8세기 경 제작된 그리스의 청동 투구이다. 1875년 발굴되었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14][15][16]

1936년 하계 올림픽 당시 육상 남자 마라톤 우승자에게 씌워 주려 했으나 IOC의 반대로 무산되었다.[14][15] 50년 간 베를린의 샤로텐부르크 박물관에 보관되어 오다가, 1986년 손기정에게 전달되었다.[14][15] 손기정은 1994년 국가에 기증했으며, 정부는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서양 유물로는 처음으로 보물로 지정했다.

원래 이 투구는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발견된 후 아테네의 한 신문사가 올림픽 시상품으로 제공하기 위해 구입한 것이었다. 그러나 IOC는 이처럼 귀중한 선물을 선수에게 수여하는 것은 아마추어 규정을 위반한다고 판단하여 베를린 박물관에 50년 동안 보관되었다.[14][15] 2006년 손기정 마라톤 대회 우승자들에게 이 투구의 복제품을 수여하려는 계획이 처음에는 있었지만, 결국 복제품을 착용하는 기회만 얻게 되었다.[17][18]

5. 2.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는 1936년 베를린에서 열렸던 제11회 올림픽 대회의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이 당시 독일의 총통이었던 아돌프 히틀러로부터 받아온 것을 손기정의 모교인 양정중학교와 양정고등학교가 있던 곳에 심은 나무이다. 1982년 11월 13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 1987년 양정중·고등학교가 양천구 목동으로 이전된 뒤 그 자리에 손기정체육공원이 조성되었다. 2024년 7월 11일 서울특별시 기념물에서 시도자연유산으로 변경되었다.

6. 기타

6. 1. 관련 가요


  • 마라손 제패가

6. 2. 광고 출연


  • 1984년 공익광고협의회서울 올림픽 공익광고에 출연하였다.
  • 1990년 팔도일보 광고에 출연하였다.
  • 1992년 KT&G 홍삼정 광고에 출연하였다.
  • 1998년 삼성 기업 PR 광고에 출연하였다.

6. 3. 대중문화

손기정은 재일 작가 유미리의 할아버지 양임덕에 관한 자전적 소설 『8월의 끝』(8月の果て)에 등장하는데, 젊은 시절 손기정과 라이벌 관계였던 인물로 묘사된다. 2011년 영화 《마이 웨이》(My Way)에서는 윤희원이 손기정을 연기하였다. 2023년 영화 《보스턴으로 가는 길》(Road to Boston)에서는 하정우가 손기정을 연기하였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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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World Marathon Rankings for 1935 https://www.arrs.run[...] Association of Road Racing Statisticians 2010-11-15
[3] 웹사이트 Son Gi-Jeong Bio, Stats, and Results {{!}} Olympics at Sports-Reference.com https://web.archive.[...] 2024-06-08
[4] 웹사이트 Korean Olympic Hero Championed Liberty https://www.nytimes.[...] 2021-07-27
[5] 백과사전 손기정 (孫基禎) https://encykorea.ak[...] Academy of Korean Studies 2024-06-08
[6] 웹사이트 밀성손씨 - 디지털밀양문화대전 http://www.grandcult[...] 2023-10-18
[7] 웹사이트 12th IAAF World Championships In Athletics: IAAF Statistics Handbook. Berlin 2009. http://www.iaaf.org/[...] IAAF Media & Public Relations Department 200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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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웹사이트 Boston Marathon and World Best Progressions https://www.arrs.run[...] 2017-08
[10] 뉴스 The Chosun Ilbo (English Edition): Daily News from Korea – Late Recognition for Korean Olympic Athlete Sohn Kee-chung http://english.chosu[...] 201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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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웹사이트 Athletics at the 1936 Berlin Summer Games: Men's Marathon https://web.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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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뉴스 '손기정 평화마라톤' 임진각서 열려(Korean) http://media.daum.ne[...] Media Daum/Yonhap News A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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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웹사이트 [화제의 책] 손기정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나왔다 https://sports.khan.[...] 2024-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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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서적 (서적 제목 미상)
[23] 서적 ああ月桂冠に涙 孫基禎自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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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웹사이트 孫基禎とスポーツ・平和 https://www.mindan.o[...] 2020-08-03
[26] 서적 ああ月桂冠に涙 孫基禎自伝
[27] 서적 明治大学小史―人物編 学文社
[28] 서적 ああ月桂冠に涙 孫基禎自伝
[29] 서적 ああ月桂冠に涙 孫基禎自伝
[30] 서적 ああ月桂冠に涙 孫基禎自伝
[31] 라디오 방송 第16回毎日マラソン ゴール前実況中継 毎日放送
[32] 방송뉴스 서울올림픽 개막식 KBS
[33] 방송뉴스 서울올림픽 성화 영광의 최종 주자 임춘애 선수 인터뷰 https://imnews.imbc.[...] MBC
[34] 방송뉴스 베를린의 영웅 손기정 옹 타계 KBS
[35] 방송뉴스 손기정 옹, 일제 강점기 민족 희망 KBS
[36] 뉴스 민족혼을 남기고 간 거인 https://www.kbs.co.k[...] KBS 뉴스 2002-11-15
[37] 뉴스 마라톤 영웅 손기정옹 90세 타계 온종일 조문 행렬 https://imnews.imbc.[...] MBC 뉴스데스크 2002-11-15
[38] 뉴스 손기정옹 마라톤 후진 양성에 뜨거운 열정 https://imnews.imbc.[...] MBC 뉴스데스크 2002-11-15
[39] 뉴스 NHK 등 일본 언론도 손기정옹 추모 보도 https://imnews.imbc.[...] MBC 뉴스데스크 2002-11-15
[40] 뉴스 마라톤 영웅 손기정옹 별세...조문 행렬 https://news.sbs.co.[...] SBS 8 뉴스 2002-11-15
[41] 뉴스 고 손기정옹, 한국 마라톤의 선구자 https://news.sbs.co.[...] SBS 8 뉴스 2002-11-15
[42] 뉴스 新しい100年の始まりに、「悲運のランナー」息子の孫正寅さん/日韓併合100年 http://news.kanaloco[...] 神奈川新聞 2010-08-11
[43] 서적 語りつぐ戦争 15人の伝言 河出書房新社 2002
[44] 웹사이트 孫基禎生誕100周年記念シンポジウムを開催 https://kyodonewsprw[...] Kyodo News
[45] 웹사이트 Kitei SON https://www.olympic.[...] 국제올림픽위원회 2018-08-02
[46] 웹사이트 孫基禎さんのIOC表記、今も「ギテイ・ソン」 http://japan.donga.c[...] 동아일보 2011-03-03
[47] 웹사이트 「我らが英雄・孫基禎が『日本人』だと!?」 韓国、Google検索の「国籍」に猛抗議 https://www.j-cast.c[...] J-CAST 뉴스 2013-09-17
[48] 서적 原発文化人50人斬り
[49] 뉴스 孫基禎さん ベルリン五輪マラソン優勝カブトを受ける https://www.asahi.co[...] 朝日新聞 1986-09-08
[50] 웹사이트 NHK大河『いだてん』がベルリン五輪の回で「韓国併合」の悲劇に言及 朝鮮出身マラソン選手が日本代表で表彰されたシーンで (2019年9月22日)|BIGLOBEニュース https://news.biglobe[...] BIGLOBE 뉴스 2019-09-22
[51] 웹사이트 『いだてん』が問いかけた“民族”とは何か 三宅弘城のセリフに込められた“平和の祭典”への思い https://realsound.jp[...] Real Sound|リアルサウンド 映画部 2019-09-22
[52] 기타
[53] 뉴스 그때 그일들 (1) 伯林마라톤金메달리스트 孫基禎 세계제패의 순간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76-01-01
[54] 서적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한국일보사
[55] 뉴스 그때 그일들 (18) 伯林마라톤金메달리스트 孫基禎 히틀러 인상기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76-01-23
[56] 뉴스 손기정 금메달 딴 후… 베를린 두부공장서 축하파티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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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서적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
[59] Youtube KBS 영상실록 https://www.youtube.[...]
[60] Youtube 1947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 서윤복의 개선 https://www.youtube.[...]
[61] 웹인용 헤럴드경제 http://news.heraldco[...] 2012-10-08
[62] 웹인용 [김태석의 유럽 축구 유랑기] #29 제국주의의 흉터가 남은 축구 성지 https://m.sports.nav[...] 베스트일레븐 2019-08-05
[63] 웹인용 손기정 선생을 日마라토너로 전시한 일본 https://n.news.naver[...] 동아일보 2021-06-18
[64] 웹인용 “인생은 반환점 없는 마라톤”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https://n.news.naver[...] 세계일보 2024-08-09
[65] 웹인용 IOC 홈페이지 손기정(손 기테이) 게시물 https://www.olympic.[...] 2017-01-13
[66] 웹인용 The forgotten story of Sohn Kee-chung, Korea's Olympic hero https://www.theguard[...] 2011-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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