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제 (11월)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신상제(新嘗祭)는 일본의 궁중 제사로, 음력 11월 마지막 토끼의 날에 거행되었으나, 메이지 시대 이후 양력 11월 23일로 고정되어 근로감사절과 같은 날이다. 고대부터 행해진 이 제사는 그 해 수확에 감사하고 다음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천황이 새로운 곡물을 신에게 바치는 의례를 포함한다. 신상제는 황궁의 신가전에서 열리며, 이세 신궁 등 다른 신사에서도 비슷한 의식이 거행된다. 제례는 진혼제로 시작하여 신가전의 의식, 신찬행립, 어찬의식 등으로 진행되며, 신찬은 쌀, 생선, 과일 등 다양한 음식으로 구성된다. 이즈모 대사에서는 고전신상제가 별도로 거행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일본의 축제 - 칠석
칠석은 견우와 직녀 설화에서 비롯된 동아시아의 전통 명절로, 음력 7월 7일에 한국에서는 바느질 솜씨를 빌고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었으며, 일본에서는 다나바타 축제로 소원을 적어 대나무에 매달고, 중국에서는 치차오제 또는 연인의 날로 기념한다. - 일본의 축제 - 히나마쓰리
히나마쓰리는 매년 3월 3일에 일본에서 여자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히나 인형을 장식하고 특별한 음식을 먹는 축제로, 모모노세쿠라고도 불리며 히나카자리가 중심이 되고 나가시비나, 쓰루시비나 등 지역적 풍습도 존재하며 현대 일본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신상제 (11월) | |
---|---|
개요 | |
이름 | 신상제 |
유형 | 아시아의 축일 |
종류 | 신토의 축일 |
의미 | 수확 의례 |
날짜 | 11월 23일 |
관련 행사 | 대상제, 진혼제 |
상세 정보 | |
설명 | 일본 천황이 천진신과 국진신에게 수확을 감사하고 스스로 햇곡식을 먹는 식전 |
내용 | 일본에서 궁중과 신궁이 천조대신에게 햇곡식을 바치는 추수 감사절 |
행사 내용 | |
주요 행사 | 시호하이 세탄-사이 겐시-사이 소지 하지메 신덴-사이 진무 덴노-사이 고레-덴 세쓰오리 가시코 도로 미카구라 |
같이 보기 | |
관련 기념일 | 근로감사의 날 |
2. 역사
고대부터 일본 각지에는 오곡 수확을 축하하는 풍습이 있었고, 궁중 제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제사로서 고대부터 행해졌다.[4] 고기 신화에는 "대상"(''고사기'') 또는 "신상"(''일본 서기'')에 대한 기술이 있다.[5]
고하나조노 천황 칸쇼 4년(1463년)에 신상제가 행해진 이후, 오닌의 난과 조정의 궁핍으로 오랫동안 중단되었다. 히가시야마 천황 겐로쿠 원년(1688년)에 레이겐 상황의 강한 의향으로 "신상 어기원"이라는 약식 형태로 부활했고(이 전년의 조쿄 4년(1687년)에 대상제도 부활), 제장이 되는 신카덴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전을 대신하여 사용했다. 이어서 사쿠라마치 천황 겐분 5년(1740년)에 원래 형태로 부활했으며, 고카쿠 천황 칸세이 3년(1791년)에는 내리 조영에 따라 신카덴이 재건되었다. 그 해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매년 궁중 제사로서 계속되고 있다.[9]
메이지 5년(1872년)부터 신상제에 맞춰 신궁(이세 신궁)에 칙사가 파견되기 시작했다. 메이지 41년(1908년) 9월 19일 제정된 「황실 제사령」에서는 대상으로 지정되었으며, 이 법령은 쇼와 22년(1947년) 5월 2일 폐지되었지만 이후에도 이에 따라 신상제가 행해지고 있다.
헤이세이 25년(2013년) 12월 23일, 궁내청은 당시 천황 탄생일 (상황 아키히토 80세 생일)을 맞아 처음으로 신상제 모습의 일부를 영상으로 공개했다.[10] 고대부터 신상제까지 햅쌀을 먹지 않는 풍습이 있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쇠퇴했다.[11]
2. 1. 기원과 고대
고대부터 일본 각지에는 오곡 수확을 축하하는 풍습이 있었다.[4] 궁중 제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제사로서 고대부터 행해졌다.고기 신화에는 "대상"(『고사기』) 또는 "신상"(『일본 서기』)의 기술이 있다.[5]
신상에 관한 기록 중 최초의 것은 『일본 서기』 진무 천황 즉위 전기의 다음 기술이다.
이에 의 를 서, 을 여 주셨다. 이로부터 시작하여 의 는 것이 있었다. 때에 에게 하시기를, "지금 ]]를 가지고 짐히 를 고자 한다. 를 하여 로 삼아, 주기를 의 로 하리라. 그 놓인 를 하여 라 한다. 또, 불의 이름을 라 한다. 물의 이름을 라 한다. 의 이름을 라 한다。의 이름을 라 한다. 풀의 이름을 라 한다"고 말씀하셨다. 겨울 10월의 계사의 , 천황, 의 을 '''}}하시고[6], 병사를 하여 나오셨다. 먼저 를 에서 쳐서, 리고 었다.}}
히고 카즈오는 이 이야기가 신상의 역사에 매우 중요한 전승으로, 청정하고 신성한 재료를 제물로 사용하는 것과, 음력 10월 1일이 새로운 곡식이 나오는 시기이므로 신상에 적합한 시기라는 것 등, 고대 신상제의 방식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6] 마유미 츠네타다는 이 기술에 대해 "최소한 대상제의 원형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삼을 수 있다"고 말하며,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의 어명은 보이지 않고, 천황은 타카미무스비를 모시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라는 인격신이 형성되기 이전의 단계를 나타내고 있다는 설을 말하고 있다.[6]
"'''신상'''"이라는 말을 사용한 기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7]은 『일본 서기』 닌토쿠 천황 40년 조에 , 의 달에 하여, 의 날을 가지고, 을 에게 하였다.}}라고 있다. 이러한 기술이 실제 사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신상제의 의식 속에 야요이 시대에 기원을 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원형은 야요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설도 있다.
「고사기」 유랴쿠 천황의 단의 "아마고토노우타"도 당시의 신상제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큰 나무 아래에서 신상의 제사가 열리고, 벼슬아치가 술잔을 대왕에게 바치며 "빛나는 날의 아들 야스미시시 왕대왕(오오키미)"라고 칭송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후, 율령에 의해 국가 제사로서의 체제를 정비해 갔다.[8] 또한, 황위 계승 의례에 통합되어(''대상제를 참조''), 이세 신궁의 신사의 형식을 도입하면서 궁중 제사로서 이어져 왔다.
2. 2. 근현대
고기 신화에는 "대상"(『고사기』) 또는 "신상"(『일본 서기』)에 대한 기술이 있다.[5]신상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일본 서기』 진무 천황 즉위 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의 를 서, 을 여 주셨다. 이로부터 시작하여 의 는 것이 있었다. 때에 에게 하시기를, "지금 를 가지고 짐히 를 고자 한다. 를 하여 로 삼아, 주기를 의 로 하리라. 그 놓인 를 하여 라 한다. 또, 불의 이름을 라 한다. 물의 이름을 라 한다. 의 이름을 라 한다.|ja|}}。라 한다. 풀의 이름을 라 한다"고 말씀하셨다. 겨울 10월의 계사의 , 천황, 의 을 '''}}하시고, 병사를 하여 나오셨다. 먼저 팔십교수를 에서 쳐서, 리고 었다.|ja|}}[6]
"'''신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가장 오래된 기록[7]은 『일본 서기』 닌토쿠 천황 40년 조에 나오는
, 의 달에 하여, 의 날을 가지고, 을 에게 하였다.|ja|}}
이다.
이후 율령제에 따라 국가 제사로서 체제가 정비되었다.[8] 또한 황위 계승 의례에 통합되어(''대상제 참조''), 이세 신궁의 신사 형식을 도입하면서 궁중 제사로 이어져 왔다.
고하나조노 천황 칸쇼 4년(1463년) 이후 오닌의 난과 조정의 궁핍으로 오랫동안 중단되었으나, 히가시야마 천황 겐로쿠 원년(1688년) 레이겐 상황의 강한 의향으로 "신상 어기원"이라는 약식 형태로 부활했다. 사쿠라마치 천황 겐분 5년(1740년)에 원래 형태로 복원되었고, 고카쿠 천황 칸세이 3년(1791년)에는 내리 조영에 따라 신카덴이 재건되었다. 이후 현재까지 매년 궁중 제사로 이어지고 있다.[9]
메이지 5년(1872년)부터 신상제에 맞춰 신궁(이세 신궁)에 칙사가 파견되기 시작했다.
메이지 41년(1908년) 9월 19일 제정된 「황실 제사령」에서는 대상으로 지정되었으며, 이 법령은 쇼와 22년(1947년) 5월 2일 폐지되었지만 이후에도 이에 따라 신상제가 행해지고 있다.
헤이세이 25년(2013년) 12월 23일, 궁내청은 당시 천황 탄생일 (상황 아키히토 80세 생일)을 맞아 처음으로 신상제 모습의 일부를 영상으로 공개했다.[10]
신상제까지 햅쌀을 먹지 않는 풍습이 고대부터 있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쇠퇴했다.[11]
3. 의의
천황이 그 해에 수확한 햇곡식 등을 천신지기(天神地祇)에게 바쳐 감사의 보고를 올리고, 이러한 제물을 신으로부터 받은 것으로서 스스로도 먹는 의식이다.
신상제의 의의에 관해서는, "천황이 새로운 곡물을 신에게 바치고, 수확에 감사한다"는 것이 본래의 의미라는 설, "천황이 대상을 드신다"는 것이 본래의 의미라는 설, "천황이 신 앞에서 새로운 곡물을 드심으로써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의 영위를 몸에 받아 그것을 갱신하는 것"이 본래의 의미라는 설 등이 있다.
직원령(職員令) 내 "대상"(大嘗)의 주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말하길, 새로운 곡물을 맛보아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아침에는 여러 신의 아이니메(相嘗祭), 저녁에는 새로운 곡물을 지존에게 바친다.
또한, 『궁주비사구전(宮主秘事口伝)』[17] 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대상회는, 신찬의 헌상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비사이다.
그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천황이 새로운 곡물을 신에게 바치는, 수확 감사 축제"라고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연희식(延喜式)』에 보이는 대상제 의 축사(祝詞)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18]…
이에 대해 스즈키 시게타네(鈴木重胤)와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는 황어손명(천황)이 대상을 드시는(드시는) 것이 신상제의 목적임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대상제(大嘗祭)에 즈음하여 발해지는 "나카토미노 토토(中臣寿詞)"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높은 하늘의 원에 신께서 머무시는 황친 신로기 신로미 명을 가지고 팔백만 신들을 신집하시고, 황손의 존은 높은 하늘의 원에 일을 시작하여, 풍요로운 갈대밭의 미즈호의 나라를 평안한 나라로 편안하게 다스리시고, 하늘의 해의 천자 하늘의 높은 옥좌에 앉으시어, 하늘의 어찬의 긴 어찬의 먼 어찬과, 천추의 오백 가을에, 미즈호를 평안하고 편안하게, 재정원에 다스리시라고, 일을 부탁하여 바치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후에…
이는 의 벼이삭[19] 을 가지고 미즈호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의 중요성, 그 기원을 담아, 그것을 드시는(드시는) 것의 의의를 말하고 있다.
또한, 일설에는 태양의 빛을 받아 성장한 벼이삭에는 황조신, 태양신인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의 영위가 깃들어 있으며, 니니기노미코토의 자손인 천황(황손의 존)이 쌀을 드심으로써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의 영위를 몸에 옮겨(대상제), 그것을 해마다 갱신하는 것이 신상제의 의의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설의 근거로는, 원래 신상제가 거행되었던 음력 11월의 두 번째 묘일은 태양의 힘(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의 영위)가 가장 약해지는(죽음과 재생을 의미하는) 동지에 가깝고, 더욱이 묘일은 음양오행 사상에 따르면 재생·갱신을 의미하는 날이라는 점이 제시된다. 또한, 신상제가 행해지는 해각(오후 10시)은 가장 태양이 쇠퇴한 시각이며, 그 음극에 달하여 꺼리고 저녁 어찬을 드시고 일신의 영위를 몸에 체득하여, 자각(오전 10시)에는 일단 퇴출하지만, 새벽의 인각(오전 4시)에 다시 신가전에 들어가 아침 어찬을 드시고, 부활한 태양 = 일신과 함께, 천황으로서의 영성을 갱신하고, 젊은 날의 아들, 날의 아들로서 현현한다고 해석된다.
4. 명칭
'''니이나메사이'''(일본어: 新嘗祭 (にいなめさい))는 이 축제의 일반적인 이름이지만, 같은 한자는 '''진조사이'''じんじょうさい일본어 또는 '''니이나메노마쓰리'''로도 읽을 수 있다. ''니이나메''는 ''니이나에'', ''니이나이'', ''니와나이'', ''니와나미'' 또는 ''뉴나미''로도 읽힐 수 있다.[3]
새로운 천황 즉위 후 첫 번째 니이나메사이는 다이조사이(大嘗祭 (おおなめまつり))( ''오나메마쓰리'', ''오니에노마쓰리''로도 읽음)라고 불린다.
고대부터 일본 각지에는 오곡 수확을 축하하는 풍습이 있었고,[4] 궁중 제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제사로서 고대부터 행해졌다.
고대 신화에는 "대상"(『고사기』) 또는 "신상"(『일본 서기』)의 기술이 있다.[5] 신상에 관한 기록 중 최초의 것은 『일본 서기』 진무 천황 즉위 전기의 다음 기술이다.
"'''신상'''"이라는 말을 사용한 기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7]은 『일본 서기』 닌토쿠 천황 40년 조의 기록이다.
「고사기」 유랴쿠 천황의 단에 나오는 "아마고토노우타"도 당시의 신상제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신상(新嘗)」(니이나메)의 어원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고어에서는 「니후나미」, 「니히나메」, 「니히나헤」, 「니히나히」, 「니하나미」, 「니하나히」, 「니헤나미」 등 다양한 표현으로 불렸다.
- '''「니히노아헤」, 「니히아헤」의 약어라는 설'''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고지키덴』에서 「니히나헤」는 「니히노아헤」(새로운 제사)의 약어이고, 「니헤」는 「니히아헤」(새로운 제사)의 약언이라고 주장했고, 이 설이 오랫동안 주류였다.
- '''「니히」(「니에(贄)」의 파생어) + 「나후」(보조 동사)의 명사형이라는 설'''
니시미야 가즈미는 모토오리 설에 대해, 「니히나헤」=「新之饗」에서 「니헤」와 동일하며, 「니헤」가 「니히아헤」(새로운 제사)의 약어라면, 「之」의 유무에 따라 「니히나헤」와 「니헤」라는 두 가지 어형이 생겼을 텐데,「니히아헤」의 약어는 「니하헤」이며 「니하헤」는 「니헤」가 될 수 없다고 논했다.
- '''「니히」(「니에(贄)」의 파생어) + 「나미」(「의 이(忌)」의 약어)라는 설'''
오리구치 시노부는 「니하나히」, 「니후나미」, 「니히나메」, 「니헤나미」 네 단어의 「니헤」, 「니하」, 「니후」는 「니에」와 동어근이라고 보았다. 또한, 신상제를 「오곡이 성숙한 후, 니에로서 신에게 바칠 때, 물건을 꺼리고 몸을 깨끗이 하는 생활」로 보고, 「의 이(忌)」가 단축되어 「나미」가 되었다고 한다.
- '''「니후」(산실을 의미) + 「나미」(「의 이(忌)」의 약어)라는 설'''
구도 다카시는, 하나의 한자에 하나의 야마토어 표기로 읽기를 전하고 있는 것은 『일본서기』 「유략 천황」 기의 「니히나헤」와 『만엽집』 권14 「동가」의 「니후나미」뿐임을 들어, 중앙의 「니히나헤」보다 동쪽의 「니후나미」가 고형을 전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5. 제례
신상제(新嘗祭)는 신토의 고대 의식으로, 그 해의 수확에 감사하고 다음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이다. 일본 천황은 가을 수확에 대해 신에게 감사를 표한다.[1] 이 행사는 황궁, 이세 신궁, 이즈모 신사 등 여러 신사에서 거행된다.[1]
5. 1. 날짜
전통적으로 구 음력 11월의 마지막 토끼의 날에 신상제가 거행되었다.[4]메이지 시대 이후 날짜는 11월 23일로 고정되었으며, 이는 1948년에 도입된 현대 공휴일 근로감사절에 해당한다.
메이지 6년(1873년)에 태음태양력(구력)으로 실시하면 다음 해 1월이 되기 때문에 그레고리력(신력)을 채용, 그 해 11월의 두 번째 토끼의 날(11월 23일)에 거행되었다. 11월의 두 번째 토끼의 날은 11월 13일부터 11월 24일 사이에서 매년 변동하지만, 이후 매년 11월 23일에 거행되고 있다.[13]
「연중 제일 축일 노휴일을 정함」 및 「휴일에 관한 건」에 의해, 메이지 6년(1873년)부터 쇼와 22년(1947년)까지 동명의 제일(휴일)이었다. 쇼와 23년(1948년) 국민의 공휴일에 관한 법률(쇼와 23년 법률 제178호)에 의해 근로감사의 날로 개칭되어 국민의 공휴일이 되었다.[14][15]
고정된 날의 휴일 중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는 휴일이다.[16]
5. 2. 장소
이 행사는 황궁과 이세 신궁, 이즈모 신사 등 다른 신사에서도 열린다.[1]5. 3. 절차
신상제(11월) 기간 동안, 고대 신토 의식으로 전년도의 수확에 감사하고 다음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이 거행된다. 일본 천황은 가을 수확에 대해 신에게 감사를 표한다. 이 행사는 황궁에서 열리며 이세 신궁과 이즈모 신사를 포함한 다른 신사에서도 열린다.신상제는 천황이 그 해에 수확한 햇곡식 등을 천신지기(天神地祇)에게 바쳐 감사의 보고를 올리고, 이러한 제물을 신으로부터 받은 것으로서 스스로도 먹는 의식이다. 매년 11월 23일에 궁중삼전 근처에 있는 신가전에서 거행된다. 같은 날에는 전국의 신사에서도 거행된다.
천황이 즉위의 예 후에 처음으로 거행하는 신상제를 특별히 '''대상제'''(다이죠사이, 오니에마쓰리, 오나메마쓰리)라고 한다.

- '''진혼제'''
먼저, 신상제의 전날에 능기전에서 진혼제가 행해진다. 진혼제에는 신상제에 임하는 천황의 영을 강화한다는 의의가 있다고 여겨진다. 가구라의 봉납이 행해진다.
- '''신상제 현소·황령전·신전의 의식'''
신상제 당일, 14시에 궁중 삼전에서 「신상제 현소·황령전·신전의 의식」이 행해진다. 이 의식에서는, 천황을 대신하여 장전직이 궁중 삼전에 신찬과 폐백을 바치고, 대배를 행한다. 또한, 오후에 장전장 이하가 신가전 내의 모옥에 신좌, 침좌, 어좌를 봉안한다.
- '''신가전의 의식'''
밤, 「신가전의 의식」이 행해진다. 먼저, 시종이 검새를, 동궁시종이 호절어검을 봉안한다. 이어서, 황태자가 재계 목욕을 하고, 동궁 변전에서 제복으로 갈아입고, 천황보다 먼저 신가전에 들어가 어좌에 앉는다. 이어서, 천황도 재계 목욕 후에 능기전에서 흰색의 어제복을 착용하고, 횃불의 불빛이 비추는 가운데 신가전에 들어간다. 이때, 악사에 의해 가구라가가 연주된다.
다음으로, 신찬행립이 행해진다. 천황은 신가전 내의 모옥에서 신좌 앞의 어좌에 정좌하고, 신찬이 준비되면, 어수수의 후, 옛날 방식에 따라 핀셋형 대나무 젓가락으로 떡갈나무 잎 접시에 신찬을 옮겨 신전에 바친다. 친공이 끝나면, 스스로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 및 천신지기의 제신에게 고한다. 이때, 황태자는 자리를 떠서, 남비의 사이의 중앙의 자리(모옥 어비구의 배좌)에 앉아, 배례한다. 장사의 참례자는 기립한다. 이어서 장사의 참례자가 정면 계단 아래에서 배례한다. 그 후 천황이, 신전에 바친 것과 같은 것(자세한 내용은 ''신찬''의 절을 참조)을 먹는다[25]. 그것이 끝나면, 배선 채녀의 봉사로 신찬이 내려지고, 천황은 어수수의 후, 능기전에 돌아간다.
이 후, 천황은 능기전에서 다시 재계 목욕, 갈의, 신가전에 들어가고, 완전히 같은 소작을 다시 행한다. 이 2번의 소작을 각각 「저녁 어찬의 의식」, 「아침 어찬의 의식」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구례에서는 각각 해각에서 자각(22시부터 0시) 및 인각에서 묘각(4시부터 6시), 현재는 18시부터 20시 및 23시부터 1시에 행해지고 있다.
- '''풍명절회'''
나라 시대 무렵부터 헤이안 시대에 걸쳐서는, 신상제의 다음 날에 풍명절회가 행해졌다.
- '''이세 신궁의 제례'''
신상제 당일에는 신궁(이세 신궁)에서도 외궁과 내궁에서 신찬을 바친다(「신상제 대어찬의 의식」). 또한, 신궁에 칙사를 파견하고(16일에 황거에서 「신궁 칙사 파견의 의식」을 행한다), 외궁, 내궁의 순으로 폐백과 오곡을 바친다(「신상제 봉폐의 의식」). 신궁에서는 양궁에 이어, 7일간에 걸쳐 관련되는 모든 궁사에서 신상제의 일련의 의식을 행한다.
5. 4. 신찬(神饌)
신찬(神饌)은 일본 천황이 그 해에 수확한 햇곡식 등을 천신지기(天神地祇)에게 바쳐 감사의 보고를 올리고, 이러한 제물을 신으로부터 받은 것으로서 스스로도 먹는 의식이다.[17] 매년 11월 23일에 궁중삼전 근처에 있는 신가전에서 거행되며,[17] 같은 날 전국의 신사에서도 거행된다.천황이 즉위 후 처음으로 거행하는 신상제는 특별히 '''대상제'''(다이죠사이, 오니에마쓰리, 오나메마쓰리)라고 한다.
신상제의 의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 "천황이 새로운 곡물을 신에게 바치고, 수확에 감사한다"는 것이 본래의 의미라는 설
- "천황이 대상을 드신다"는 것이 본래의 의미라는 설
- "천황이 신 앞에서 새로운 곡물을 드심으로써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의 영위를 몸에 받아 그것을 갱신하는 것"이 본래의 의미라는 설
직원령(職員令)에는 "새로운 곡물을 맛보아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아침에는 여러 신의 아이니메(相嘗祭), 저녁에는 새로운 곡물을 지존에게 바친다."라고 되어 있다.[17] 일반적으로는 "천황이 새로운 곡물을 신에게 바치는, 수확 감사 축제"라고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대상제(大嘗祭)에 즈음하여 발해지는 "나카토미노 토토(中臣寿詞)"에는, 황손의 존이 하늘의 높은 옥좌에 앉으시어, 미즈호를 평안하고 편안하게 다스리시라고, 일을 부탁하여 바친다는 내용이 있다.
태양의 빛을 받아 성장한 벼이삭에는 황조신, 태양신인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의 영위가 깃들어 있으며, 천황이 쌀을 드심으로써,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의 영위를 몸에 옮겨(대상제), 그것을 해마다 갱신하는 것이 신상제의 의의라고 생각하는 설도 있다.[17]
; 제구
신가전(神嘉殿)의 전내(殿内)에는 신좌(神座), 침좌(寝座), 어좌(御座) (천황의 자리)가 마련된다.
- '''신좌''': 황단(黄端)의 짧은 다다미 (탄조).
- '''어좌''': 백단(白端)의 반장(半畳).
- '''침좌''': 얇은 첩(薄い畳)을 여러 장 겹쳐 깔고, 남쪽에 언덕 모양의 베개(坂枕)를 놓고, 하부타에아와세(羽二重袷)로 지은 어불(御衾)이 덮인다.
신좌와 어좌는 서로 마주보며 이세 신궁(伊勢神宮) 방향을 향하고 있으며, 침좌는 신좌・어좌의 동쪽, 전내의 거의 중앙에 남북으로 깔린다.[17]
; 제복
어제복(御祭服)은 대상제(大嘗祭)와 신상제 때에만 천황이 입는다. 천황이 입는 신사의 복장 중에서 가장 청정하고 신성한 복장으로, 순백 생사로 짠 채로의 견직으로 제작된다. 관(冠)은 책(幘)의 관으로, 흰 평견으로 킨코(巾子)에 꼬리를 묶어 놓았다. 포(袍)는 어재의(御斎衣)라고 한다.
; 신찬(11월)
신상제에 사용되는 신찬(神饌)은 다음과 같다.
종류 | 내용 |
---|---|
곡물류 | 쌀밥, 쌀죽, 조밥, 조죽, 햇곡으로 빚은 白酒|시로키일본어, 黒酒|쿠로키일본어 |
생선류 | 도미, 오징어, 전복, 연어를 달게 절여 세 장으로 나누고, 등 부분을 작은 네모꼴로 잘라 각 품목을 네 개의 함에 담는다. |
건어물 | 말린 도미, 가다랑어, 찐 전복, 말린 대구로, 함에 담는다. |
과일류 | 곶감, 볶은 밤, 생밤, 나츠메로, 함에 담는다. |
그 외 | 재첩 조림, 해초 조림, 전복 경단, {{lang 경단 |
여기서 사용되는 "함"은 칡을 엮어 만든 것이다. 요리에 사용되는 불은 鑽火|키리비일본어의 이마를 사용한다("부정"은 더할 나위 없이 청정하다는 의미). 이것들을 담는 용기는 술이나 국물에는 토기가 사용되지만, 나머지는 쿠보테, 枚手|히라테일본어로, 모두 떡갈나무 잎에 대나무 꼬챙이를 꽂아 만든 것이다.
신찬은 그 자체가 신으로 취급되어, 받들어 운반하는 것을 "신찬 행립(행립)"이라고 한다.[23]
6. 이즈모 대사의 고전 신상제
이즈모 대사에서는 같은 날 밤에 고전신상제가 거행된다. 제전에 사용되는 모든 음식은 구마노 대사에서 불을 지펴 낸 신성한 불로 조리되며, 가마노야시의 신성한 가마를 안치하고, 신관이 "오자레마우(=오시데마세)"라고 외치면 이즈모 국조가 참진한다. 신관은 해수(海獸)의 가죽 위에 신화(神火)로 조리한 햇곡식 현미의 강반(強飯, 굳은 밥), 하룻밤 술을 놓는다. 국조는 이 공물을 사방에 헌납하고 서로 맛본다. 그 후, "이빨 굳히기 신사", "백 번의 춤", "가마의 신사", "신내림", "미케노이 제" 등의 중요 의식이 행해진다[26].
참조
[1]
서적
Shinto: A History
Oxford University Press
2016-11-11
[2]
웹사이트
Encyclopedia of Shinto詳細
https://d-museum.kok[...]
2023-04-15
[3]
웹사이트
國學院大學 デジタルミュージアム
http://k-amc.kokugak[...]
[4]
문서
万葉集の東歌に「誰れぞこの屋の戸押(お)そぶる新嘗(にふなみ)に我が背を遣りて斎(いは)ふこの戸を」(巻14-3460)という歌が見える。
[5]
문서
『古事記』上巻、『日本書紀』神代第七段本文、神代第九段本文、神代第九段第三の一書
[6]
문서
「嘗」は「にひなへする」以外に「たてまつる」「なむ」と訓読することもできる。
[7]
문서
神代(記紀神話)を除く。
[8]
문서
[[飛鳥浄御原令]]あるいは[[大宝律令]]において明文化されたと考えられている。
[9]
서적
宮中歳時記
[10]
뉴스
知っておきたい「新嘗祭」貴重映像で解説
https://news.ntv.co.[...]
2019-12-09
[11]
서적
『神社のいろは』
扶桑社
[12]
문서
真弓常忠は「陰暦十一月の二の卯の日は冬至の前後にあたり、持統天皇の大嘗祭が冬至であったことによって判るように、元来は冬至の日に行うのが本旨であろう」と推測している。
[13]
문서
新嘗祭は明治6年以降新暦を採用し続けているが、同時に一旦は新暦を採用した神嘗祭が、イネの生育の問題から明治12年([[1879年]])以降は[[月遅れ]]を採用して新暦[[10月17日]]に行われるようになったため、神嘗祭と新嘗祭の間隔は約1ヶ月縮まっている。
[14]
문서
昭和23年(1948年)7月20日公布。
[15]
웹사이트
国民の祝日に関する法律
https://laws.e-gov.g[...]
[16]
문서
ただし改暦以降も、大嘗祭は(新暦)11月の二回目の卯の日に行われたために、大正・昭和の大嘗祭が行われた大正4年(1915年)と昭和3年(1928年)は11月23日は休日とはならなかった。
[17]
문서
14世紀後半に成立。
[18]
문서
珍なふ(うずなう)は(神が)承諾する、の意味。
[19]
문서
稲作の起源について、[[日本神話|記紀神話]]においては、[[ニニギノミコト]]が天上界から地上に降りる([[天孫降臨]])に際し、[[天照大神]]がこれに稲穂を授けたことを起源とする(斎庭(ゆにわ)の稲穂の神勅)。
[20]
문서
現代語に残存するところでは「オコナフ」(行う)・「アキナフ」(商う)・「ウベナフ」(諾う)の「ナフ」であり、これを語尾につけて「贄」を動詞化したもの。
[21]
문서
ここでの「嘗める」は、「試みる」の意。
[22]
서적
稲の産屋
1953
[23]
문서
「行立」は生きつつ立ち、立ちつつ行くの意。
[24]
문서
神霊の動座に際し、「オーシー」と唱えること。
[25]
웹사이트
http://www.isejingu.[...]
[26]
간행물
出雲大社教布教師養成講習会
1989-09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