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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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심성사는 뤼시앵 푸브르와 마르크 블로크가 1929년 창간한 『사회경제사 연보』 그룹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사람들의 심성과 상상력, 일상적인 사고방식을 통해 역사를 기술하는 학문 흐름이다. 아날 학파, 미시사, 역사인구학 등의 연구 분야에 영향을 미쳤으며, 가족, 교육, 공포, 죽음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심성사 연구는 일기, 편지, 문학 작품 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며, 민족학, 인류학, 사회학 등과 학제간 연구를 지향한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은 심성사 연구가 이성을 경시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심성사(心性史)는 1929년 뤼시앵 푸브르와 마르크 블로크가 창간한 《아날(Annales)》 학파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사람들의 심성과 상상력의 세계, 일상적인 사고, 사회심리학적인 부분을 밝혀 역사를 기술하는 학문의 흐름을 만들었다.[3]
심성사는 특정 시대와 사회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무의식적 신념, 감정, 가치관, 사고방식 등을 탐구한다. 이는 개인의 심리뿐만 아니라 집단의 심리, 즉 사회심리학적 측면까지 포괄한다.
2. 역사
비슷한 시기,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문명화의 과정』, 『궁정 사회』를 저술했고, 요한 후이징가는 『중세의 가을』을 저술하여 심성사 연구에 영향을 주었다.
초기 아날 학파는 경제사 연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과 생각하는 바를 읽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2세대부터는 경제사 연구에 더 무게를 두면서 심성 연구가 상대적으로 소홀해졌다. 이는 정량적인 취급이 어렵고, 과학적인 처리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후 심성사 연구는 역사인구학 분야에서 다시 제기되었다. 1946년 장 무브르의 논문과 1948년 필리프 아리에스의 저서는 인구 데이터를 심리학적인 요소와 연결하여 해석하였다. 1960년 아리에스의 『앙시앙 레짐기의 아이와 가정 생활』과 피에르 구베르의 저서는 역사인구학 분야에서 심성사 연구를 다시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1960년대에 심성사 연구는 가족, 교육, 공포, 건강, 제사, 성, 죽음, 식생활, 신체적 특징, 연령별 삶, 범죄, 질병, 민간신앙, 민중문화, 노동 생활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활발하게 진행되었다.[6] 미셸 푸코 등은 유언장을 연구했다.[6]
타케오카 케이온에 따르면, 1960년대 심성사 연구의 활발함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과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생겨난 진보에 대한 믿음(진보사관)에 대한 의문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6]
2. 1. 아날 학파
1929년 뤼시앵 푸브르와 마르크 블로크가 창간한 《아날(Annales)》 학파는 사람들의 심성과 상상력의 세계, 일상적인 사고, 사회심리학적인 부분을 밝혀 역사를 기술하는 학문의 흐름을 만들었다. 이들은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총체사'를 추구했으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심리와 상상력, 일상적인 사고방식을 역사 기술의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했다.[3] 초기 아날 학파는 경제사 연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으나, 2세대부터는 경제사 연구에 더 무게를 두면서 심성 연구가 상대적으로 소홀해졌다. 이는 정량적인 취급이 어렵고, 과학적인 처리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2. 2. 미시사
심성사 방법론은 미시사 연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카를로 진즈부르크의 『치즈와 벌레』는 16세기 이탈리아 농민의 심성을 재구성하기 위해 메노키오라는 한 제분업자의 재판 기록을 조사하여, 단편적이고 불분명한 증거 속에서 유사성을 찾으려고 시도했다.[4]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은 미시사를 사용하여 프랑스 사회 여러 계층 집단의 심성을 확립했다. 단턴은 사람들이 주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졌다. 그는 길드 제본공들이 이웃 고양이들을 학살한 것을 성장하는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좌절감의 표출로 해석했다.[5] 또한, 단턴은 한 부르주아가 자신의 도시를 묘사한 내용을 분석하여, 특정 사회적 상황에 있는 개인이 주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는 이 묘사를 통해 사건이 묘사되는 방식이 당시 사람들이 그 사건을 해석했을 방식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5]
2. 3. 역사인구학의 영향
필리프 아리에스는 1948년 『18세기 이후의 프랑스 인구와 삶에 대한 태도의 역사』를 출판하여 인구 데이터를 인구 변동 이면에 있는 심리학적인 요소와 연결하여 해석하고 기술하였다.[6] 1960년 출판된 그의 저서 『앙시앙 레짐기의 아이와 가정 생활』은 역사인구학 분야에서 심성사 연구를 다시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다.[6]
2. 4. 1960년대 이후의 발전
1960년대에 심성사 연구는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가족, 교육, 공포, 건강, 제사, 성, 죽음, 식생활, 신체적 특징, 연령별 삶, 범죄, 질병, 민간신앙, 민중문화, 노동 생활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6]
1972년 『아나르』는 "가족과 사회"를, 1973년 역사인구학회는 기관지에 "아이와 가족"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1975년 프랑수아 르블랑은 『앙시앙 레짐기의 부부 생활』을, 1976년 장 루이 플랑동은 『전통 사회의 가족, 친척, 집, 성』을 출판했다. 미셸 푸코와 피에르 쇼뉴는 유언장을 연구하는 등 심성사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6]
타케오카 케이온에 따르면, 1960년대 심성사 연구의 활발함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과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생겨난 진보에 대한 믿음(진보사관)에 대한 의문과 관련이 있다. 연구자들은 심성을 알고자 역사를 연구할 때, 진보한 현재보다 뒤떨어진 단계에 있는 존재로 묘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다른 인간과학이 그 연구 대상으로 사회를 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공시적 연구를 하려는 경향을 보였다.[6]
타케오카 케이온은 동시대 다른 인간과학은 반대로 역사적 변화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으며, 그 접점에서 가장 두드러진 예가 L'Histoire de la folie à l'âge classique(일본어 번역판 제목 『광기의 역사』)를 저술한 철학자 미셸 푸코라고 설명한다.[7]
3. 주요 특징 및 방법론
1929년 뤼시앵 페브르와 마르크 블로크가 창간한 『사회경제사 연보』(Annales d'histoire economique et sociale), 즉 아날 학파는 사람들의 심성, 상상력의 세계, 일상적인 사고, 사회심리학적인 부분을 밝혀 역사를 기술하는 학문의 흐름을 만들었다.
1948년 필리프 아리에스는 『18세기 이후의 프랑스 인구와 삶에 대한 태도의 역사』에서 인구 데이터를 인구 변동 이면에 있는 심리학적인 요소에 관심을 가지고 해석하고 기술하였다. 1960년 출판된 그의 『앙시앙 레짐기의 아이와 가정 생활』과, 같은 해 출판된 장 무브르의 제자 피에르 구베르의 『1600년부터 1730년까지의 보베와 보베주(부제: 17세기 프랑스 사회사에 대한 공헌)』는 역사인구학 분야에서 심성사를 재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60년대 이후 심성사 연구는 가족, 교육, 공포, 건강, 제사, 성, 죽음, 식생활, 신체적 특징, 연령별 삶, 범죄, 질병, 민간신앙, 민중문화, 노동 생활 등 다양한 주제로 확장되었다. 1972년 『아날』은 “가족과 사회”를, 1973년 역사인구학회는 기관지에 “아이와 가족”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1975년 프랑수아 르블랑은 『앙시앙 레짐기의 부부 생활』을, 1976년 장 루이 플랑동은 『전통 사회의 가족, 친척, 집, 성』을 출판하고, 미셸 푸코와 피에르 쇼뉴는 유언장을 연구하는 등 심성사 연구는 활발해졌다.
다케오카 케이온(竹岡敬温일본어)에 따르면, 1960년대 심성사 연구의 활발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과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생겨난 진보에 대한 믿음(진보사관)에 대한 의문과 무관하지 않았다. 연구자는 심성을 알고자 역사(의 한 시점)를 연구할 때, 진보한 현재보다 뒤떨어진 단계에 있는 존재로 묘사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다른 인간과학이 그 연구 대상으로 사회를 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공시적 연구를 하려는 경향을 보였다.[6]
심성사는 민족학, 인류학, 사회학, 사회심리학 등과 연계하여 학제간적인 연구를 지향하며, 각 학문 분야에서 활용되는 방법과 기술적인 수단을 활용하고 응용한다.[10]
3. 1. 연구 자료
심성사 연구에서도 사료에 접근하는 방식은 전통적인 역사학과 같다. 다만 심성사 연구에서는 그러한 사료가 드러내는 심성 메커니즘을 읽어내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다케오카 케이온(竹岡敬温|일본어)은 저서 『아날학파와 사회사』에서 말하고 있다.[9]
3. 2. 마르크스주의와의 관계
심성사 개념은 1세대 《아날》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의 저술에서 기원했으며, 이후 조르주 뒤비와 로제 샤르티에 같은 이론가들이 이어받았다. 《아날》 역사가들은 당시 유행하던 마르크스주의 역사관과 같이 목적론적 결론에 크게 의존하는 결정론적 역사를 만드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했다.[2] 이들은 사회 구조를 창조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이는 "기본적인 경제 분석의 뼈대를 인구 통계, 문화, 심성, 사건 정신분석적 데이터의 살로 덮는 것"을 의미했다.[2]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은 '아날' 학파 역사가들의 심성사 연구가 "믿음에 대한 기본적인 의존을 반영하고 이성을 경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2] 카를로 긴즈부르크도 심성사의 방법론이 "뚜렷하게 계급 없는 성격"을 띤다고 비판했다.[4]
다케오카 요시아츠는 저서 『『아날』학파와 사회사』에서 심성사가 유행하게 된 배경에는 사회경제사의 경직된 경향, 즉 속화된 마르크스주의 중독을 중화하는 기분 전환으로 확산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8]
4. 한국 사회에서의 심성사 연구
한국 사회에서 심성사 연구는 일제강점기, 한국 전쟁, 군사독재, 민주화 운동 등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형성된 한국인의 집단 심성과 그 변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사회적 갈등과 문화적 변화를 심성사적 관점에서 분석함으로써, 보다 심층적인 사회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
참조
[1]
서적
The Three Orders: Feudal Society Imagine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0
[2]
논문
Total History: The Annales School
1978-01-00
[3]
논문
The History of Mentalities: The New Map of Cultural History
1981-10-00
[4]
서적
The Cheese and the Worms: The Cosmos of a Sixteenth-Century Miller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13
[5]
서적
The Great Cat Massacre and Other Episodes in French Cultural History
Basic Books
1984
[6]
서적
アナール学派と社会史
同文館
1993
[7]
서적
アナール学派と社会史
同文館
1993
[8]
서적
アナール学派と社会史
同文館
1993
[9]
서적
アナール学派と社会史
同文館
1993
[10]
서적
アナール学派と社会史
同文館
1993
[11]
서적
歴史学再考 - 生活世界から権力秩序へ
日本エディタースクール出版部
1994
[12]
서적
アナール学派と社会史
同文館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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