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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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애플 코어는 비틀즈의 세금 문제를 해결하고, 아티스트 중심의 회사를 만들고자 1968년 설립된 기업이다. 음반, 영화, 전자 제품, 출판, 소매업 등 다양한 사업을 계획했으나, 경영 문제와 비틀즈의 해체로 인해 주로 애플 레코드라는 음반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애플 코어는 애플(Apple Inc.)과의 상표권 분쟁, EMI와의 로열티 분쟁, 나이키의 광고 음악 사용 분쟁 등 여러 법적 다툼을 겪었으며, 현재는 비틀즈 관련 권리 관리 및 상표 관리 사업을 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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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코어 - [회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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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개요 | |
회사명 | 애플 코어 리미티드 |
![]() | |
회사 종류 | 비상장 회사 |
설립 | 1963년 6월 20일 (비틀즈 주식회사로 설립) 1967년 11월 17일 (애플 뮤직 주식회사로 설립) 1968년 4월 2일 (애플 코어) |
설립자 | 비틀즈 |
소재지 | 런던, 영국 |
주요 인물 | 제프 존스 (CEO) |
서비스 제공 지역 | 전 세계 |
산업 | 엔터테인먼트 대중 매체 |
매출 | 1,860만 파운드 (2019년) |
영업 이익 | 550만 파운드 (2019년) |
순이익 | 440만 파운드 (2019년) |
소유주 | 비틀즈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의 유산) |
자회사 | 애플 코어 자회사 목록 |
공식 웹사이트 | 애플 코어 공식 웹사이트 |
관련 정보 | |
관련 항목 | 비틀즈 |
자회사 | |
애플 코어 자회사 목록 | 애플 전자 애플 필름 애플 뮤직 애플 출판 비틀즈 |
2. 설립 배경 및 초기 역사
비틀즈는 1960년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막대한 수입에 대한 세금 문제에 직면했다. 1967년, 비틀즈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세금 대책의 일환으로 비틀즈의 경영을 다각화하고 투자 대상을 늘리기 위해 애플 퍼블리싱이라는 음악출판사를 설립했다.[7] 1967년 8월, 엡스타인의 사망 이후 비틀즈는 NEMS 엔터프라이즈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스스로 매니지먼트를 하기로 결정했다.[9]
애플 코어는 1968년 1월, 비틀즈가 설립한 회사이다. 비틀즈의 회계사들은 비틀즈에게 사업 투자를 권유했고, 비틀즈는 이를 계기로 애플 코어를 설립하게 되었다. 존 레논은 "우리 회계사가 와서 '저희가 이만큼의 돈이 있는데, 정부에 줄까요, 아니면 다른 데 쓸까요?'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잠시 사업가 흉내를 내기로 했죠."라고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5]
1968년 1월, 비틀즈는 여러 회사를 통합하여 '''애플 코어'''를 설립하고, "뮤지션 혹은 아티스트 본위의 회사"를 만들겠다는 이상을 내걸었다. 존 레논은 "비즈니스 시스템 속에서 예술적인 자유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고,[5] 폴 매카트니는 "애플은 일종의 공동체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꿈을 제공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13]
초기 애플 코어는 사무실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경영진의 경험 부족과 방만한 운영으로 인해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3. 사업 내용
애플 코어는 설립 당시 음반, 영화, 전자 제품, 출판, 소매업 등 5가지 주요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었다.사업 분야 설명 전자 제품 가전 업계에 혁명을 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한 디자인성이 높은 가전의 제조 및 판매. 영화 높은 독자성을 표방하는 자체 제작 영화의 제작 배급. 애플 필름 참고. 출판 비틀즈 및 그 관련 퍼블리싱 전반. 주로 음악 출판. 애플 퍼블리싱 참고. 레코드 이른바 "애플 레코드", 및 스튜디오(Apple Studio)의 운영. 애플 레코드 참고. 소매업 애플 부티크(1967년 12월 7일 - 1968년 7월 30일)의 기획과 운영. 콘셉트는 "아름다운 물건을 살 수 있는 아름다운 가게". 애플 부티크 참고.
폴 매카트니는 애플을 "아름다운 것을 살 수 있는 아름다운 곳… 통제된 기묘함… 일종의 서구 공산주의"라고 묘사했다.[12] 존 레논은 "우리가 설립하고 있는 회사로, 레코드, 영화, 전자 제품을 다루고, 부수적으로 제조든 무엇이든 다 할 겁니다. 우리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누군가의 사무실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13]
그러나, 애플 레코드를 제외한 많은 사업은 곧 중단되거나 중지되었다. 결국 애플의 사업은 축소되었고, 주로 레코드 레이블 회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3. 1. 애플 레코드
1968년부터 비틀즈의 신규 음반은 애플 레코드에서 발매되었지만, 저작권은 EMI에 있었고, 파롤폰/캐피틀의 카탈로그 번호가 계속 사용되었다.[11] 비틀즈 외 다른 아티스트의 애플 발매 음반은 새로운 번호 체계를 사용했으며, 저작권은 대부분 애플 코어가 소유했다. "자신만을 위한 레이블" 이상을 추구한 애플 레코드는 라비 샹카, 메리 홉킨, 배드핑거, 존 타베너, 빌리 프레스턴, 제임스 테일러, 도리스 트로이, 엘리펀츠 메모리, 로니 스펙터, 재키 로맥스, 모던 재즈 쿼텟, 런던의 라다 크리슈나 템플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음반을 발매하며 다채로운 라인업을 구축했다.[30]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은 애플 설립 이후 30년 후에 "오디오 북"으로 알려지게 될 저가형 레이블을 시작하는 데 매우 관심이 있었다. 1968년 10월, 애플은 인디카 서점을 존 던바, 피터 애셔와 공동 소유했던 배리 마일스를 고용하여 제안된 음성 음반 레이블을 관리하게 했다. 재플 레코드의 초기 아이디어는 아방가르드와 스포큰 워드 음반을 페이퍼백 소설과 비슷한 저렴한 가격으로 발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재플에서 발매된 몇 안 되는 음반들은 결국 다른 정가 음반과 같은 가격으로 상점에 출시되었다.[30] 재플 레코드는 1969년 2월 3일에 시작되었지만, 앨런 클라인이 애플 코어의 업무를 맡게 된 후, 레논과 오노의 ''Unfinished Music No. 2: Life with the Lions'', 해리슨의 ''Electronic Sound'' 두 개의 음반만 발매한 채 문을 닫았다.
3. 2. 애플 필름
'''애플 필름'''은 애플 코어의 영화 제작 부서이다. 비틀즈의 1967년 TV 영화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가 첫 작품이었다. 비틀즈의 영화 ''옐로우 서브마린''과 ''렛 잇 비''도 애플 필름에서 제작되었다.
다른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라비 샹카르에 관한 1971년 다큐멘터리 ''라가'', ''방글라데시를 위한 콘서트''(1972년), ''리틀 말콤''(1974년) 등이 있다. ''리틀 말콤''은 조지 해리슨이 제작했으며, 다크 호스 레코드 밴드인 스플린터의 "Lonely Man"이라는 곡이 포함되었다. 애플 필름은 또한 애플 군단의 텔레비전 프로모션 제작도 담당했다.
다음은 애플 필름에서 제작한 작품 목록이며, 일반적으로 제작사 역할을 했다.[19]
연도 | 제목 | 감독 | 비고 |
---|---|---|---|
1967 |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 | 비틀즈 | 비틀즈 주연, 비틀즈가 제작 및 감독, 1967년 9월~10월 촬영, 54분. 월드 프리미어: BBC1 (TV), 1967년 12월 26일. |
1968 | 옐로우 서브마린 | 조지 더닝 | 비틀즈가 출연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알 브로드액스 제작, 하인츠 에델만 애니메이션 디자인, 리 민노프, 알 브로드액스, 잭 멘델슨, 에리히 시걸 각본, 85분.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배급. 월드/영국 프리미어: 런던, 1968년 7월 17일. 미국 프리미어: 뉴욕, 1968년 11월 13일. |
1969 | 영국이 한래티를 살해했는가? | 존 레논 | 존 레논이 의뢰하고 애플 필름 리미티드가 제작한 4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영화. 전체 영화의 유일한 공개 상영은 1970년 2월 17일 런던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교회 지하 묘지에서였다.[20][21] |
1970 | 렛 잇 비 | 마이클 린제이-호그 | 비틀즈가 출연하는 다큐멘터리, 닐 아스피날 제작, 1969년 1월~2월 촬영, 88분.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배급. 월드/미국 프리미어: 뉴욕, 1970년 5월 13일. 영국 프리미어: 런던, 1970년 5월 20일. |
1971 | 라가 | 하워드 워스 | 라비 샹카르, 예후디 메뉴인, 조지 해리슨, 우스타드 알라딘 칸 출연, 하워드 워스와 낸시 바칼 제작, 96분. 애플 필름 배급. 월드/미국 프리미어: 뉴욕, 1971년 11월 23일. |
1972 | 방글라데시를 위한 콘서트 | 사울 스위머 | 조지 해리슨, 라비 샹카르, 링고 스타, 밥 딜런, 알리 아크바르 칸, 빌리 프레스턴, 에릭 클랩튼, 레온 러셀 출연 콘서트 다큐멘터리, 조지 해리슨과 앨런 클라인 제작, 1971년 7월~8월 촬영, 103분. 20세기 폭스 배급. 월드/미국 프리미어: 뉴욕, 1972년 3월 23일. 영국 프리미어: 런던, 1972년 7월 27일. |
1972 | 본 투 부기 | 링고 스타 | 마크 볼란, T. 렉스, 엘튼 존 및 링고 스타 출연 다큐멘터리, 1972년 3월~4월 촬영. 애플 필름 배급. 월드/영국 프리미어: 런던, 1972년 12월 18일. |
1974 | 드라큘라의 아들 | 프레디 프랜시스 | 해리 닐슨, 링고 스타, 수자나 레이, 프레디 존스 및 데니스 프라이스 주연, 링고 스타, 제리 그로스, 팀 반 렐림 제작, 제니퍼 제인 각본, 1972년 8월~10월 촬영, 90분. 시네메이션 인더스트리즈 배급. 월드/미국 프리미어: 애틀랜타, GA, 1974년 4월 19일. |
1974 | 리틀 말콤 | 스튜어트 쿠퍼 | 존 허트, 존 맥에너리, 레이몬드 플랫, 로잘린드 에이어스 및 데이비드 워너 주연, 조지 해리슨과 개브릭 로시 제작, 데이비드 핼리웰과 데릭 우드워드 각본, 109분. 애플 필름 배급. 월드/유럽 프리미어: 베를린, 1974년 7월. |
3. 3. 애플 일렉트로닉스
'''애플 일렉트로닉스'''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보스턴 플레이스 34번지에 피프티셰이프스(Fiftyshapes Ltd.)로 설립된 애플 코어(Apple Corps)의 전자 사업부였다. 비틀즈의 측근인 야니 알렉시스 마르다스(Yanni Alexis Mardas)가 이 사업부를 이끌었는데, 그는 레논으로부터 매직 알렉스(Magic Alex)라는 별명을 얻었다.[17]소비재 전자 제품 시장에 혁명을 일으키려는 의도로, 주로 마르다스의 독창적이지만 상업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설계를 기반으로 한 제품을 통해 혁신을 이루려 했으나, 전자 사업부는 어떠한 획기적인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1969년, 클라인(Klein)의 애플 코어 정리 과정에서 마르다스가 해고된 후, 애플 일렉트로닉스는 비틀즈의 해체를 포함하여 회사 전체를 괴롭혔던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었다. 마르다스의 아이디어와 프로젝트로 인해 비틀즈는 최소 30만 파운드 (300000GBP)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17][18]
3. 4. 애플 퍼블리싱
애플의 음악 출판 부서는 음반 회사보다 먼저 생겼다. 1967년 9월, 애플 퍼블리싱에 처음으로 계약된 아티스트는 리버풀 출신의 작곡가 폴 테넌트와 데이비드 로즈였다. 이들은 하이드 파크에서 폴 매카트니를 만난 후 계약을 제안받았다.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그들의 데모를 듣고 밴드를 결성하라고 조언했고, 그 그룹을 포컬 포인트라고 불렀다. 엡스타인이 밴드를 매니지할 예정이었지만, 관여하기 전에 사망했다. 애플 퍼블리싱의 MD인 테리 도란이 그들의 매니저가 되었고, 데람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다. 애플은 1968년 초부터 그 그룹의 자작곡을 출판했다. 애플의 출판 라인업에 포함된 또 다른 초창기 밴드는 그레이프프루트였다.해리슨과 스타는 자신의 곡에 대한 통제권을 노던 송스에서 옮기려고 할 때 애플 퍼블리싱 유한회사를 출판 임시 방편으로 사용했다. 그들의 지위는 단순한 계약 작가에 불과했다. (해리슨은 나중에 해리송스를 시작했고, 스타는 스타틀링 뮤직을 만들었다.) 애플의 가장 큰 출판 성공작은 배드핑거의 히트곡 "노 매터 왓", "데이 애프터 데이", "베이비 블루"였는데, 이 곡들은 모두 그룹 멤버 피트 햄이 작곡했다. 배드핑거의 "위다웃 유"는 햄과 밴드 동료 톰 에반스가 작곡한 곡으로, 1972년 해리 닐슨과 1993년 머라이어 캐리에게 세계적인 차트 1위 히트곡이 되었다. 그러나 2005년, 애플은 햄과 에반스의 작품에 대한 미국 출판권을 잃었다. 그 권리는 현재 BMG Rights Management의 지사인 버그 뮤직으로 이전되었다.
애플은 요코 오노, 빌리 프레스턴, 라다 크리슈나 사원 등 다른 애플 아티스트들을 위해 다양한 시기에 출판 업무를 수행했다. 애플은 많은 수의 데모 테이프를 받았고, 일부 곡은 출판되었으며, 일부는 다른 레이블에서 발매되었다. 베니 갤러거와 라일만은 사내 작가로 유지된 후 맥기네스 플린트를 공동 설립했다. 이 데모들 중 다수는 체리 레드 레코드에서 발매된 일련의 CD에 수집되었다. 이 음반들은 ''94 베이커 스트리트'',[22] ''애플 포 더 데이'',[23] ''트리클 토피 월드'',[24] ''로버스 프롬 더 스카이: 팝 사이크 프롬 디 애플 에라 1968-1971'' 그리고 ''94 베이커 스트리트 리비지티드: 팝타스틱 사운즈 프롬 디 애플 에라 1967-1968''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
애플 북스는 대체로 활동이 없었고, 발매된 책도 거의 없었다. 주목할 만한 발매작 중 하나는 ''렛 잇 비'' 앨범 초판과 함께 제공된 ''비틀스 겟 백''이라는 책으로, 에단 러셀의 사진과 ''롤링 스톤'' 작가 조나단 코트와 데이비드 달튼의 글이 수록되었다. 이 책은 애플 퍼블리싱의 저작으로 표기되었지만, 이 프로젝트의 모든 작업은 실제로 프리랜서들이 수행했다.[25][26][27][28][29]
3. 5. 애플 부티크
'''애플 부티크'''는 런던 베이커 스트리트 94번지에 위치한 소매점으로, 애플 레코드의 첫 사업 중 하나였다. 존 레논의 학창 시절 친구인 피트 쇼튼이 매니저로 고용되었으며, 네덜란드 디자인 집단 더 풀이 매장과 상품 대부분을 디자인했다.[13] 1967년 12월 7일, 레논과 조지 해리슨이 참석한 가운데( 링고 스타는 촬영 중이었고, 폴 매카트니는 휴가 중이었다) 개장했다.폴 매카트니는 애플 부티크를 "아름다운 것을 살 수 있는 아름다운 곳… 통제된 기묘함… 일종의 서구 공산주의"라고 묘사했다.[12]
하지만 부티크는 고객과 직원들의 상점 절도로 인해 수익을 내지 못했다.[13] 쇼튼이 사임한 후, 존 린든이 인계받았지만 경영 경험 부족으로 사업을 살리지 못했다.[13] 결국 비틀즈 멤버들이 문을 닫기 전날 밤에 원하는 물건을 가져간 후, 남은 재고는 모두에게 나누어 주면서 정리되었다.[13] 부티크는 1968년 7월 31일에 문을 닫았다.[13]
4. 경영 문제 및 사업 축소
애플은 일렉트로닉스를 비롯하여 많은 부문을 떠안고 수많은 사람들의 꿈을 실현하고자 시작되었다.[5] 그러나 모든 사업이 순조롭게 운영되던 것은 아니었고, 결국 애플에 건 꿈이 너무나 장대했던 바람에 사업 축소 이후에는 주로 레코드 레이블 회사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회사로 온 요망이나 각본, 오디션 테이프가 너무나 방대했던 나머지 "성심성의껏 전형하겠습니다"라는 표어도 달성하지 못하였다. 애플에서 발매한 레코드는 멤버들이 자기 스스로 발굴한 사람들의 것밖에 없었다.
1968년에 애플이 올해 가장 성공적인 신생 음반 회사로 선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곧 밴드 멤버들의 재정 및 행정에 대한 무지와 알려지지 않은 고군분투하는 아티스트에게 자금을 지원하려는 순진하고 유토피아적인 사명이 결합되어 애플 코퍼스는 확고한 사업 계획을 세울 수 없게 되었다. 비틀즈의 순진함과 자체 계정을 추적할 수 없는 능력은 애플 직원들에게도 악용되었는데, 그들은 마약과 알코올 음료, 런던의 비싼 레스토랑에서의 회사 점심, 사무실 전화로 정기적으로 국제 전화를 걸었으며, 이 모든 것이 사업 비용으로 처리되었다. 작가 앨런 클레이슨과 스펜서 리는 소유주들이 자신의 창조물을 관리하는 데 무능력하다고 묘사했다.
닐 아스피날은 마침내 임시로 회사를 감독하는 데 동의했는데, 이는 누군가가 마침내 책임을 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1969년, 비틀즈가 앨런 클라인을 매니저로 고용했을 때, 그는 또한 애플 코퍼스의 회장직을 물려받았고, 이는 회사의 업무를 즉시 간소화했다. 클레이슨과 리는 "하룻밤 사이에, 무책임함이 날카로운 질문으로 바뀌었다"고 썼다. "어떤 여비서가 매일 오후 캔버라에 전화를 걸까? 왜 그는 일주일에 60파운드를 인상했을까? 왜 그는 봉급날에만 보이는가? 갑자기 점심은 포트넘 & 메이슨의 벨루가 캐비어가 아니라 사무실 주방에서 콩과 토스트를 의미하게 되었다."[11]
1969년 레논,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의 재무 매니저가 된 앨런 클라인이 사장으로 취임했다. 클라인은 수많은 적자 사업을 폐지하고, 수많은 관계자 및 사원을 해고하여 재무적인 건전화를 꾀했다. 아스피놀과 로드 매니저인 말 에반스도 해고되었지만, 멤버들의 항의로 인해 곧 복직했다. 적어도 동사의 경영 상태는 이전보다 현저하게 개선되었다. 같은 해 이후, 클레인은 비틀즈의 수입 증가를 목적으로 NEMS 및 음악 출판사 노던 송스와의 협상에 임했다.
5. 비틀즈 해체 이후
1970년 4월, 폴 매카트니의 성명으로 비틀즈의 해산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지만, 애플 코어는 존속하기로 결정되었다. 앨런 클레인은 계속 사장직을 맡았지만, 1973년에 퇴임 후 수년간에 걸쳐 비틀즈와 소송을 벌였다. 이후 복직한 닐 아스피날을 다시 사장으로 맞이하여 현재까지 비틀즈와 관련된 권리 관리를 주된 사업으로 활동을 이어왔다.[14][15] 또한 "Beatles" 상표도 보유하고 있다. 2007년에는 닐 아스피날이 은퇴하고 제프 존스가 사장직을 승계했다.[16] 이전에는 비틀즈 관련 음반권은 EMI가 관리하고 있었지만, 2012년에 유니버설 뮤직과 합작하여 칼더스톤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음반권 관리에도 참여하고 있다.
6. 법적 분쟁
1962년 EMI(Electric and Musical Industries) 파롤폰을 통해 데뷔한 비틀즈는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비틀즈의 막대한 수입에는 고액의 소득세가 부과되어 멤버와 관계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비틀즈의 매니저였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세금 대책을 위해 비틀즈의 경영을 다각화하고, 여러 투자 대상을 갖는다는 회계사의 조언에 따라 1967년 4월에 Beatles & Co.사를 설립했다.
애플 코어는 여러 회사들과 법적 분쟁을 겪었다.
상대 회사 | 분쟁 내용 | 결과 | 발생 시기 |
---|---|---|---|
나이키, 와이든+케네디(나이키의 광고 대행사), EMI, 캐피톨 레코드 | 나이키가 1987년 광고에 비틀즈의 노래 "Revolution"을 무단으로 사용[48] | 법정 밖 합의 (1989년). 합의 조건은 비밀이지만, 상당한 금액이 오갔으며, 나이키는 1988년 3월 광고에서 해당 노래 사용을 중단.[49] | |
EMI | 비틀즈가 EMI와 캐피틀에 1050만파운드 이상의 로열티를 덜 지불받았다고 주장.[46] | 1989년에 합의. 밴드에게 증가된 로열티율을 부여했으며, EMI와 캐피틀이 더 엄격한 감사 요구 사항을 준수. | |
EMI | 비틀즈와 밴드의 고(故) 멤버들의 유족을 대신하여 미지급된 로열티를 이유로 소송.[46][47] | 2007년 4월에 "상호 수용 가능한" 결론으로 합의되었으며, 그 내용은 기밀.[15] |
6. 1. 애플(Apple Inc.)과의 상표권 분쟁
1978년, 애플 레코드(Apple Records)는 애플사(Apple Inc.)를 상표권 침해로 고소했다. 이 소송은 1981년 애플 코어(Apple Corps)에 80000USD를 지불하는 것으로 합의되었으며, 합의 조건으로 애플사는 음악 사업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37][38]이후 1989년, 애플 코어는 애플사의 기기가 MIDI 음악을 재생하는 기능이 1981년 합의를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991년에는 약 2650만달러의 또 다른 합의가 이루어졌다.[37][38]
2003년 9월, 애플 코어는 애플사가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와 아이팟을 출시한 것이 애플이 음악을 배포하지 않겠다는 합의를 위반했다며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은 2006년 3월 29일 영국에서 시작되었고,[39] 2006년 5월 8일에 내려진 판결에서 애플 코어는 패소했다.[38][40]
2007년 2월 5일, 애플사와 애플 코어는 상표권 분쟁에 대한 합의를 발표했는데, 이 합의에 따라 애플사가 "애플"과 관련된 모든 상표(유명한 "Granny Smith" 애플 코어(Apple Corps Ltd.) 로고의 모든 디자인 포함)의 소유권을 갖게 되었고,[41] 해당 상표 중 일부를 애플 코어에 계속 사용하도록 라이선스를 부여했다. 이 합의로 양사 간의 진행 중이던 상표 소송이 종결되었고, 각 당사자는 자체 법적 비용을 부담했으며, 애플사는 아이튠즈에서 자사의 이름과 로고를 계속 사용했다. 이 합의에는 기밀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42][43]
Harmonix의 비디오 게임 ''The Beatles: Rock Band'' 웹사이트는 애플사(Apple, Inc.)/애플 코어(Apple Corps Ltd.) 합의의 첫 번째 증거였다. "Apple Corps"가 웹사이트 전체에 걸쳐 두드러지게 언급되어 있으며, "Granny Smith" 애플 로고가 나타나지만 로고 아래 텍스트는 이전의 "Apple" 대신 "Apple Corps"로 표시된다. 웹사이트의 감사는 "'Apple' 및 'Apple logo'가 Apple Corps Ltd에 독점적으로 라이선스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6. 2. EMI와의 로열티 분쟁
비틀즈는 1979년 소송에서 EMI와 캐피틀이 밴드에 1050만파운드 이상을 덜 지불했다고 주장했다. 이 소송은 1989년에 합의되었고, 밴드에게 증가된 로열티율을 부여했으며, EMI와 캐피틀이 더 엄격한 감사 요구 사항을 준수하도록 했다.[46] 2005년에 시작된 소송에서 애플은 생존한 비틀즈와 밴드의 고(故) 멤버들의 유족을 대신하여 미지급된 로열티를 이유로 다시 소송을 걸었다.[46][47] 이 소송은 2007년 4월에 "상호 수용 가능한" 결론으로 합의되었으며, 그 내용은 기밀로 유지되었다.[15]6. 3. 나이키와의 광고 음악 사용 분쟁
1987년 7월, 애플 코어는 나이키 주식회사, 와이든+케네디(나이키의 광고 대행사), EMI, 캐피톨 레코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나이키가 1987년 광고에 비틀즈의 노래 "Revolution"을 무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48] 애플 코어는 노래 사용에 대해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고, 지속적인 사용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며 4개 회사를 상대로 1,500만 달러(1500만달러)의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EMI는 오노 요코가 "적극적인 지원과 격려"를 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이 "근거 없다"고 반박했다. 오노 요코는 존 레논의 유산을 통해 애플 코어 지분의 25%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광고]는 존의 음악을 새로운 세대에게 접근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 코어의 변호사는 애플 코어가 소송을 제기하려면 4개 지분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며, 이는 오노 요코 역시 소송에 찬성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답변했다.
조지 해리슨은 비틀즈 노래의 무단 광고 사용과 이 소송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음, 우리 입장에서 보면, 만약 이런 일이 허용된다면 비틀즈가 녹음한 모든 노래가 여성 속옷과 소시지 광고에 사용될 것이다. 우리는 선례를 세우기 위해 이것을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법천지가 될 것이다. 당신이 죽으면 상관없지만,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 그들은 우리가 그 노래를 쓰고 녹음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삶이었다는 사실에 존경심을 가지지 않는다.
1989년 11월 9일, 소송은 법정 밖에서 합의되었다. 합의 조건은 비밀로 유지되었지만, 오노 요코의 대변인은 "혼란스러운 무수한 문제"의 끝에서 상당한 돈이 오갔다고 밝혔다. 나이키는 1988년 3월에 광고에서 해당 노래 사용을 중단했다.[49]
7. 평가 및 의의
애플 코어는 비틀즈가 이상과 예술적 자유를 실현하고자 했던 야심찬 시도였으나, 경영 미숙 및 외부 환경 변화로 인해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 코어는 비틀즈의 유산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비틀즈의 음악과 문화적 영향력을 지속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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