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 프랭큰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앨 프랭큰은 미국의 코미디언, 작가, 정치인으로, 1970년대부터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작가 및 출연자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이후 자유주의 정치 사상을 바탕으로 정치적 발언과 풍자를 해왔다. 2008년 미네소타주 연방 상원 의원에 당선되어 2014년 재선에 성공했으나, 2017년 성추문 의혹으로 인해 사임했다. 그는 또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으며, 라디오 쇼를 진행하고 영화에 출연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미네소타주의 연방 상원의원 - 윌리엄 윈덤
윌리엄 윈덤은 미국의 정치인으로서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을 지냈고, 가필드 및 해리슨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철도 규제 옹호와 상무국 설립 권고 등 경제 정책에 기여했다. - 미네소타주의 연방 상원의원 - 월터 먼데일
월터 먼데일은 미네소타주 법무장관과 연방 상원의원을 거쳐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냈고, 1984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으며,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주일본 미국 대사를 역임한 미국의 정치인, 외교관, 변호사이다. - 미네소타주의 정치인 - 월터 먼데일
월터 먼데일은 미네소타주 법무장관과 연방 상원의원을 거쳐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냈고, 1984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으며,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주일본 미국 대사를 역임한 미국의 정치인, 외교관, 변호사이다. - 미네소타주의 정치인 - 팀 폴렌티
팀 폴렌티는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미네소타 주지사와 하원의원을 역임한 미국의 정치인이다. - 미네소타주의 민주당 당원 - 도널드 M. 프레이저
도널드 M. 프레이저는 미국의 정치인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미네소타주 상원의원과 미국 하원 의원을 거쳐 미니애폴리스 시장을 역임하며 인권, 환경 보전 등에 기여했다. - 미네소타주의 민주당 당원 - 제시카 랭
미국의 배우 제시카 랭은 1976년 영화 《킹콩》으로 데뷔하여 《투씨》와 《블루 스카이》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영화, 드라마, 연극,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앨 프랭큰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알 프랭컨 |
본명 | 앨런 스튜어트 프랭컨 |
출생일 | 1951년 5월 21일 |
출생지 | 미국 뉴욕주 뉴욕 시 |
배우자 | 프래니 브라이슨 (1975년 결혼) |
자녀 | 2명 |
거주지 |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
종교 | 유대교 |
순자산 | 430만 ~ 990만 달러 |
직업 | |
직업 | 코미디언 배우 작가 방송 작가 정치 평론가 정치인 사회자 |
학력 | |
출신 학교 | 하버드 대학교 (문학사) |
정치 경력 | |
정당 | 미네소타 민주농민노동당 (미국 민주당) |
미국 상원 의원 | 지역구: 미네소타주 임기 시작: 2009년 7월 7일 임기 종료: 2018년 1월 2일 이전: 놈 콜먼 이후: 티나 스미스 |
음성 정보 |
2. 초기 생애 및 교육
프랭큰은 뉴욕에서 인쇄 판매원인 조셉 필립 프랭큰(1908–1993)과 부동산 중개인 피비 제럴딘 프랭큰(née 쿤스트)(1918–2003) 사이에서 태어났다.[3][4] 그의 부계 조부모는 독일에서 이민 왔고, 외할아버지는 러시아 제국 그로드노 출신이며, 외할머니의 부모 역시 러시아 제국 출신이었다. 피비는 펜실베이니아주 앨런타운 출신이다.[3][4] 그의 부모는 모두 유대인이었고, 프랭큰은 개혁 유대교 가정에서 자랐으며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템플 이스라엘에 다녔다.[5][6] 그는 사진 저널리스트인 형 오웬(1946년경 출생)이 있으며,[7] 그의 사촌 밥은 MSNBC의 저널리스트이다.[8]
프랭큰 가족은 알이 네 살 때 미네소타주 앨버트 리로 이사했다.[9] 그의 아버지는 퀼트 공장을 열었지만 2년 만에 실패했다. 그 후 가족은 미니애폴리스 교외인 미네소타주 세인트루이스 파크로 이사했다.[10] 프랭큰은 1969년 더 블레이크 스쿨을 졸업했으며, 레슬링 팀의 일원이었다.[11] 프랭큰은 SAT 수학 섹션에서 800점 만점에 800점을 받았고 언어 섹션에서 662점을 받았다고 한다.[6]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1973년 우등으로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12] 학생 시절 프랭큰은 코미디를 썼으며, 위선과 부패에 대한 공연을 하면서 청중을 웃게 만들었던 코미디언 딕 그레고리와 레니 브루스를 우상으로 삼았다.[13]
프랭큰은 고등학교에서 공연을 시작했으며, 오랫동안 친구이자 글쓰기 파트너인 톰 데이비스와 함께 코미디로 유명했다.[14] 두 사람은 미니애폴리스의 브레이브 뉴 워크숍 극장에서 정치 풍자를 전문으로 하는 무대에 처음 섰다.[15]
3. 방송 활동
앨 프랭큰은 1970년대부터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의 작가 겸 출연자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SNL 외에도 《대역전》, 《알 프랭큰은 Mr.헬프맨》 등 여러 코미디 영화에도 출연했다.
자유주의 정치 사상을 가진 프랭큰은 방송에서 보수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발언을 자주 했으며, 이로 인해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2019년 5월, 프랭큰은 ''앨 프랭큰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코미디가 아닌 쇼를 진행하기 위해 강연 투어를 시작했으나,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중단되었다. 이후 클럽 공연을 재개했고, 2021년 가을에는 극장 쇼를 열어 2022년까지 이어갔다.[13] 2023년 3월에는 트레버 노아의 후임으로 ''데일리 쇼(The Daily Show)''의 게스트 호스트를 맡았다.[6]
3. 1.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SNL)
프랭큰과 톰 데이비스는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1975-1980, 1985-1995)의 오리지널 작가이자 가끔 출연하는 배우로 영입되었다. SNL의 첫 시즌에 두 명의 견습 작가는 주당 350USD의 급여를 받았다.[14] 프랭큰은 텔레비전 작가 및 프로듀서로서 15번의 에미상 후보에 올랐고 5번의 에미상을 수상했으며,[17] 자기 계발 구루 스튜어트 스몰리와 같은 캐릭터를 만들었다. 또 다른 코미디는 1980년대를 '앨 프랭큰의 시대'라고 선언했다.[18] 프랭큰과 데이비스는 1986년 코미디 영화 《원 모어 새터데이 나이트》의 각본을 썼고, 이 영화에서 배드 마우스라는 밴드의 록 가수로 출연했다. 그들은 또한 에디 머피와 댄 애크로이드가 출연한 영화 《올 유 니드 이즈 캐시》와 《대역전》에도 단역으로 출연했다.
시즌 5의 막바지에, 프랭큰은 《위켄드 업데이트》에서 "A Limo for a Lame-O"라는 코멘터리를 선보였다. 그는 논란이 많은 NBC 사장 프레드 실버만을 "완전하고 명백한 실패"라고 조롱하며, NBC 프로그램의 저조한 시청률을 보여주는 차트를 공개했다. 이 스케치의 결과로, 실버만은 프랭큰을 프로듀서로 임명하라는 로언 마이클스의 추천을 거절했고, 프랭큰은 1979-1980 시즌 말에 마이클스가 떠날 때 쇼를 떠났다.[19] 프랭큰은 1985년 작가이자 가끔 출연하는 배우로 쇼에 복귀했다. 그는 텔레비전에서 일하면서 코카인과 다른 불법 약물을 사용했음을 인정했고, 존 벨루시가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후 중단했다고 밝혔다.[20][21] 1995년, 프랭큰은 《위켄드 업데이트》 앵커 역할을 노름 맥도널드에게 빼앗긴 것에 항의하며 쇼를 떠났다.[22]
3. 2. SNL 이후 활동
1995년, 프랭큰은 자신의 ''SNL'' 캐릭터인 스튜어트 스멜리를 기반으로 한 영화 ''스튜어트 가족 구하기''를 쓰고 출연했다. 이 영화는 비평적, 상업적으로 실패했고, 프랭큰은 이후 그 결과로 우울해졌다.[23][24] 로튼 토마토에서 30%의 평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25] 이 영화는 ''워싱턴 포스트''[26]와 진 시스켈로부터 호평을 받았다.[27]
프랭큰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4권의 책을 썼다.[28] 1996년 저서 ''러시 림보 이즈 어 빅 팻 이디엇 앤드 아더 옵저베이션스''는 ''뉴욕 타임스'' 목록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프랭큰이 직접 읽은 오디오북은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거짓말과 거짓말쟁이: 미국 우파에 대한 공정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또 다른 그래미상을 받았는데, 이 책은 미국 정치와 보수주의에 대한 풍자적인 내용이었다.[29] 책 제목은 폭스 뉴스의 슬로건인 "공정하고 균형 잡힌"을 포함했고, 폭스 뉴스 해설가 빌 오라일리의 사진을 표지에 사용했다. 그해 8월, 폭스 뉴스는 등록된 상표 구절의 침해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30][31] 연방 판사는 이 소송이 "전혀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언론의 관심을 프랭큰의 책으로 집중시켰고, 그에 따르면, 책 판매량을 크게 증가시켰다.[32][33] 소송으로 인한 홍보 효과로 프랭큰의 아직 출시되지 않은 책이 아마존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34]
2004년 초, 프랭큰은 에어 아메리카 라디오의 간판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1년 계약을 맺었고, 공동 진행자 캐서린 램퍼는 2005년 10월까지 함께했다. 이 네트워크는 2004년 3월 31일에 시작되었다. 원래 우파 토크쇼 ''오라일리 팩터''를 풍자하여 ''The O'Franken Factor''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2004년 7월 12일 ''The Al Franken Show''로 이름을 변경한 이 쇼는 주 5일, 하루 3시간 동안 방송되었다. 이 쇼의 목표는 프랭큰이 라디오에서 보수적인 신디케이트 해설이 지배적이라고 인식한 것에 반대하기 위해 더 진보적인 견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는 2004년 ''뉴욕 타임스'' 기자에게 "나는 조지 W. 부시의 재선을 막기 위해 내 에너지를 사용하고 싶어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35] 프랭큰의 에어 아메리카 라디오에서의 마지막 라디오 쇼는 2007년 2월 14일이었고, 그 마지막에 그는 미국 상원 출마를 발표했다.[36]
프랭큰은 영화 ''사랑을 위하여''의 공동 작가였고, NBC 시트콤 ''레이트라인''을 공동 제작하고 출연했으며, 2004년 리메이크작 ''맨츄리안 켄디데이트''에 출연했다.
2003년, 프랭큰은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조앤 쇼렌스타인 언론, 정치 및 공공 정책 센터의 펠로우로 활동했다.[18] 2005년부터는 ''허핑턴 포스트''의 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37]
프랭큰은 미국 위문 협회 (USO)와 함께 이라크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38] 2009년 3월 25일, 10년 동안 이 단체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USO 메트로 공로상을 받았다.[39][40]
4. 정치 활동
프랭큰은 2009년 7월 7일, 선거 후 246일 만에 상원 의원 선서를 했다.[85][86] 그는 故 폴 웰스톤 미네소타 상원 의원의 성경으로 선서를 했으며, 상원 지도부는 프랭큰을 위해 웰스톤 의원의 자리를 비워두었다.[87][88]
2009년 8월 6일, 프랭큰은 소니아 소토마요르의 미국 연방 대법원 대법관 임명 투표를 주재했다.[89] 2010년 8월 5일에는 엘레나 케이건의 임명 투표를 주재했다. 그의 첫 번째 법안인 참전용사들을 위한 안내견 법안(Service Dogs for Veterans Act)은 공화당 상원 의원 조니 아이작슨과 공동으로 작성했으며, 만장 일치로 상원을 통과했다. 이 법안은 미국 연방 보훈부에 장애 참전용사들에게 안내견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설립하도록 했다.[90]
프랭큰은 민주당을 위한 효과적인 자금 모금가였다.[117][118][119] 2015년 말까지 그의 정치 행동 위원회는 500만달러 이상을 모금했으며,[119] 2016년에는 330만달러를 모금했다.[118][120] The Star Tribune에 따르면, 프랭큰은 "전국에서 군중과 기부를 모을" 수 있었다.[117]
2010년 8월, 프랭큰은 엘레나 케이건의 미국 대법원 임명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는 미치 매코넬 상원 원내대표를 보며 얼굴을 찡그리고 손짓을 하고 눈을 굴렸다.[106][107][108] 매코넬은 "이건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가 아니잖아, 알."이라고 응수했다.[108] 케이건의 임명이 확정된 후, 프랭큰은 매코넬에게 손으로 쓴 사과문을 전달하고 매코넬이 "의장이 존중하며 경청하는 가운데 연설할" 권리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106]
2009년 9월 2일, 프랭큰이 미네소타 주 박람회에서 건강 관리 개혁에 대해 티 파티 시위자들과 논쟁을 벌이는 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어 곧 바이럴 영상이 되었다.[91][92] 이 논쟁은 111대 국회 의원들과 그들의 지역구민들 간에 여름 동안 발생했던 몇몇 다른 격렬한 논쟁과는 대조적으로, 예의 바름으로 주목받았다.[91][93][94]
AP 통신은 2013년에 예상과 달리 프랭큰이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워싱턴 기자단과 거의 이야기하지 않고, 코미디언의 모습을 벗고 정책에 집중하며,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평가했다.[114] 인터뷰에서 그는 지역구 활동에 집중하고, 조용히 일하며,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115][116]
2013년, 프랭큰은 노숙자 문제 해결을 위한 그의 노력으로 스튜어트 B. 맥키니 상을 받았다.[110]
4. 1. 정치 입문

타임 지의 리처드 코리스 기사에 따르면, 프랭큰은 1970년대 후반부터 선거 운동을 해왔다.[41] 코리스는 프랭큰이 1980년대를 "알 프랭큰의 10년"이라고 선언하고 "나에게 투표하세요, 알 프랭큰. 당신은 기뻐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아마도 아이러니한 자기 홍보 역할"을 암시했다고 덧붙였다.[41] 1999년 프랭큰은 2000년 가상 대통령 선거 운동을 자세히 설명하는 패러디 책 ''왜 내가 아니겠어?''를 출간했다. 그는 미네소타주 상원 의원 폴 웰스톤의 강력한 지지자였으며, 2002년 선거 직전 웰스톤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인해 큰 영향을 받았다.[6] 웰스톤은 프랭큰의 멘토이자[42][43] 정치적, 개인적 역할 모델이었으며, 프랭큰은 웰스톤의 발자취를 따르겠다는 희망을 밝혔다.[44][45] 놈 콜먼 상원 의원이 그가 웰스톤보다 "99% 개선되었다"고 언급한 것은 프랭큰이 상원에 출마하도록 자극했다.[6][46]
프랭큰은 미국인의 21%가 대부분의 뉴스를 토크 라디오에서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는 거의 독점적으로 보수적인 매체였다고 말했다.[41] 그는 "나는 방관하고 싶지 않았고, 에어 아메리카가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41] 2003년 11월 프랭큰은 자신의 고향인 미네소타주로 돌아가 상원 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시 웰스톤이 한때 재직했던 자리는 공화당원 놈 콜먼이 차지하고 있었다. 2004년 민주당 대통령 선거 행사에서 프랭큰은 다른 참석자들을 위협하고 하워드 딘 주지사에게 야유를 보낸 혐의를 받는 남자를 공격했다.[47][48] 2005년 프랭큰은 미네소타로 이주하겠다고 발표했다. "솔직히 말해서, 출마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49] 2005년 말 그는 자신의 정치 행동 위원회인 미드웨스트 밸류스 PAC를 시작했다. 2007년 초까지 PAC는 100만달러 이상을 모금했다.[50][51]
프랭큰은 2006년 다큐멘터리 영화 ''알 프랭큰: 신이 말씀하셨다''의 주제였으며, 뉴욕 타임스는 이를 "이념적 유명인사의 현상에 대한 조사"라고 불렀다.[52]

프랭큰은 처음에는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지만, 2007년 증원군에 반대했다. MSNBC의 조 스칼보로와의 인터뷰에서[53] 그는 유엔에서의 발표를 통해 전쟁이 필요하다고 설득한 콜린 파월을 "믿었다"고 말했지만, 그 이후 "우리는 전쟁으로 오도되었다"고 믿게 되었고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에 이라크 철수 일정을 포함하지 않으면 전쟁 자금 조달을 위한 예산안 통과를 거부할 것을 촉구했다. 조시 마셜과의 인터뷰에서 프랭큰은 민주당에 대해 "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알았어, 나는 일정을 합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자금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말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54]
2004년 프랭큰은 모든 미국 어린이들이 즉시 건강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항과 함께 보편적 건강 관리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선호했다.[55] 2014년 그는 사회 보장을 사유화하거나 혜택을 삭감하려는 노력에 반대하며, 사회 보장세가 적용되는 임금 상한선을 높이는 것을 선호했다.[56] 2008년 선거 운동 웹사이트에서 그는 석유 회사에 대한 보조금 삭감, 대학생을 위한 자금 증가, 학자금 대출의 금리 삭감을 지지했다.[57][58]
2008년 선거 기간 동안 뉴욕 주 관계자들은 알 프랭큰 Inc.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코미디와 대중 연설을 돕는 직원에 대한 필수 근로자 보상 보험을 지키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프랭큰은 그의 회사가 주 근로자 보상법을 준수하지 못한다는 조언을 받은 후 뉴욕 주에 25000USD의 벌금을 지불했다.[59] 동시에 캘리포니아 프랜차이즈 세무 위원회는 해당 회사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캘리포니아 주에서 세금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주에서 4743USD 이상의 세금, 벌금 및 관련 벌금을 체납했다고 보고했다.[60] 프랭큰의 대변인은 회사가 캘리포니아에서 사업을 중단했을 때 더 이상 신고할 필요가 없다고 믿었던 회계사의 조언을 따랐다고 말했다.[61] 프랭큰은 이후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17개 주에서 그의 연설 및 기타 유료 출연으로 발생한 70000USD의 미납 소득세를 납부했다. 프랭큰은 자신의 거주지에서 소득세를 납부했으며, 잘못된 주에서 세금을 납부한 것에 대해 소급 공제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62]
4. 2. 정치적 입장

건강 관리 개혁 논쟁 동안 프랭큰은 단일 지불자 시스템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 중 한 명이었다.[115] 그는 환자 보호 및 적정 치료법에 대한 수정안을 작성했는데, 이를 의료 손실 비율이라고 불렀으며, 보험 회사가 실제 의료 비용에 프리미엄의 최소 80%, 대규모 단체 플랜의 경우 85%를 지출하도록 요구했다.[95] 2013년 9월 30일, 프랭큰은 정부 자금 지원 법안에서 오바마케어의 의료 기기세 폐지 조항을 삭제하는 데 찬성표를 던졌는데,[96][97] 그 조항을 지지했지만, 이 조항이 2013년 미국 연방 정부 폐쇄를 막기 위한 조건으로 사용되는 데 반대한다고 말했다.[98]
제이미 리 존스의 사건을 언급하며, 프랭큰은 2010년 국방 예산 법안에 대한 중재 정책에 제한을 두어, 직장 내 성폭행, 폭행, 차별 사건에 대해 직원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제한하는 회사에 국방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 법안은 2010년 11월 상원에서 표결 결과 68 대 30으로 통과되었다.[99][100]
2010년 5월 프랭큰은 어떤 신용 평가 기관이 특정 증권을 평가할지 선정하는 위원회를 만드는 금융 개혁 수정안을 제안했다. 당시에는 증권을 발행하는 회사가 해당 증권을 평가할 회사를 선택할 수 있었다.[101] 수정안은 통과되었지만, 금융업계는 최종 법안에서 삭제되도록 로비를 했다.[102] 금융 개혁의 상원과 하원의 버전에는 그러한 조항이 포함되지 않았고, 두 버전 간의 협상 결과 수정안은 2년 동안 이 문제에 대한 일련의 연구를 수행하는 것으로 축소되었다.[103] 연구 후, 증권 거래 위원회가 이해 상충 문제에 대한 다른 해결책을 시행하지 않으면 프랭큰의 해결책이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104][105]
National Journal은 2013년에 프랭큰이 국가 안보국의 데이터 마이닝 프로그램을 지지하며, 이는 생명을 구했다고 믿고 있으며, "미국인들을 감시하는 것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라고 보도했다.[109]
프랭큰은 미얀마에서 로힝야 무슬림 소수 민족에 대한 학살을 비난하고 위기에 대한 더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다.[121]
2016년 9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안 2334에서 이스라엘 정착촌의 점령된 팔레스타인 영토 비난에 앞서, 프랭큰은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일방적인" 결의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오바마에게 촉구하는 AIPAC가 후원하는 서한에 서명했다.[122] 프랭큰은 미국 주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에 참여하는 계약자와 거래를 거부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반 보이콧 법을 지지했다.[123]
2017년 7월 프랭큰은 이란, 러시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미국 제재를 가하는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124]
4. 3. 2008년 상원의원 선거
2007년 2월 14일, 앨 프랭큰은 2008년 미국 상원 미네소타 선거에 공식 출마를 발표했다.[63] 민주-농민-노동당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경쟁자로는 잭 넬슨-팔마이어, 마이크 시레시, 짐 코헨 등이 있었으나, 프랭큰은 65%의 득표율로 후보 지명을 받았다.
2007년 7월, 프랭큰 선거 캠페인은 공화당 상대인 놈 콜먼보다 더 많은 자금을 모금할 것으로 예상했다.[65][66] 그러나 콜먼이 더 많은 현금을 보유하면서 자금 경쟁에서 앞서나갔다.[66]
2008년 5월, 미네소타 공화당은 프랭큰이 2000년 ''플레이보이'' 잡지에 쓴 글을 문제 삼아 사과를 요구했다.[67] 프랭큰 측은 풍자 작가로서의 활동과 상원 의원으로서의 역할은 다르다고 반박했다.[67]
2008년 6월, 프랭큰은 민주-농민-노동당의 지지를 받았다.[68] 7월에는 보수적인 성향의 벤 스타인으로부터 지지를 받기도 했다.[69]
선거 운동 기간 동안 프랭큰은 SNL 제작자에게 존 매케인을 조롱하는 정치적 스케치를 조언한 것에 대해 비판을 받았다.[70]
11월 4일 선거 결과, 콜먼이 근소한 차이로 앞섰으나, 주 법에 따라 자동 재검표가 실시되었다. 2009년 1월 5일, 미네소타 주 개표 위원회는 재검표 결과 프랭큰이 225표 차이로 앞섰다고 발표했다.[72]

콜먼은 선거 소송을 제기했지만, 3명의 판사로 구성된 패널은 부적절하게 거부된 부재자 투표 용지를 개표하라고 명령했고, 프랭큰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콜먼은 미네소타 대법원에 항소했지만,[74][75][76] 2009년 6월 30일, 미네소타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콜먼의 항소를 기각하고 프랭큰이 승자로 인증될 자격이 있다고 판결했다.[80]
민주-농민-노동당 예비선거 | ||||
---|---|---|---|---|
후보 | 득표수 | 득표율 | ||
앨 프랭큰 | 164,136 | 65.34% | ||
프리실라 로드 | 74,655 | 29.72% | ||
딕 프랜슨 | 3,923 | 1.56% | ||
밥 라슨 | 3,152 | 1.25% | ||
롭 피츠제럴드 | 3,095 | 1.23% | ||
올 세이비어 | 1,227 | 0.49% | ||
알브 에릭슨 | 1,017 | 0.40% | ||
합계 | 251,205 | 100% |
총선 | ||||
---|---|---|---|---|
후보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
앨 프랭큰 | 민주-농민-노동당 | 1,212,629 | 41.994% | |
놈 콜먼 (현직) | 공화당 | 1,212,317 | 41.983% | |
딘 바클리 | 독립당 | 437,505 | 15.151% | |
찰스 올드리치 | 자유당 | 13,923 | 0.482% | |
제임스 니마클 | 헌법당 | 8,907 | 0.308% | |
기입 후보 | 2,365 | 0.082% | ||
승리 득표차 | 312 | 0.011% | ||
합계 | 2,887,646 | 100% |
4. 4. 상원의원 재직
앨 프랭큰은 상원 의원으로 재직하며 다음과 같은 위원회에서 활동했다.[170][171][172][173]- 에너지 및 천연 자원 위원회
- 에너지 소위원회
- 공공 토지, 산림 및 광업 소위원회
- 물 및 전력 소위원회
- 보건, 교육, 노동 및 연금 위원회
- 아동 및 가족 소위원회
- 고용 및 직장 안전 소위원회 (간사)
- 인디언 문제 위원회
- 법사 위원회
- 행정 감독 및 법원 소위원회
- 독점 금지, 경쟁 정책 및 소비자 권리 소위원회
- 헌법, 시민권 및 인권 소위원회
- 개인 정보 보호, 기술 및 법률 소위원회 (간사)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같은 날 실시된 미국 상원 의원 선거에 미네소타 민주 농민 노동당(민주당)에서 출마하여 경쟁 후보였던 공화당 현직 놈 콜먼을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 콜먼은 부재자 투표 처리를 둘러싸고 법정 투쟁을 벌였으나, 법원은 2009년 6월에 프랭큰의 승리를 확정했다. 프랭큰은 2009년 7월 7일에 연방 상원 의원으로 취임했으며, 2014년 연방 상원 선거에서 재선되었다.
4. 5. 2014년 상원의원 선거
프랭큰은 2014년 재선에 성공했다. 2014년 8월 12일에 열린 예비 선거에서 샌드라 헤닝스가드와 대결하여 94.5%의 득표율로 승리했다.[82] 그는 공화당 후보인 마이크 맥패든을 상대로 한 본 선거에서 53.2%의 득표율을 얻어 승리했다.[83][84]예비 선거 | ||||
---|---|---|---|---|
정당 | 후보 | 득표수 | 득표율 | |
미네소타 민주-농민-노동당 | 앨 프랭큰 | 182,720 | 94.50% | |
미네소타 민주-농민-노동당 | 샌드라 헤닝스가드 | 10,627 | 5.50% | |
총계 | 193,347 | 100% | ||
본선 | ||||
정당 | 후보 | 득표수 | 득표율 | |
미네소타 민주-농민-노동당 | 앨 프랭큰(현직) | 1,053,205 | 53.15% | |
공화당 | 마이크 맥패든 | 850,227 | 42.91% | |
미네소타 독립당 | 스티브 칼슨 | 47,530 | 2.40% | |
자유당 | 헤더 존슨 | 29,685 | 1.50% | |
기권표 | 881 | 0.04% | ||
격차 | 202,978 | 10.24% | ||
총계 | 1,981,528 | 100% |
5. 성추문 및 사임
2017년 11월 16일, 라디오 방송인이자 모델인 리앤 트위든은 블로그 게시글과 790 KABC 인터뷰에서 2006년 USO 투어 중 프랭큰이 스킷 리허설에서 자신에게 강제로 키스했다고 주장하며, "역겹고 유린당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125] 로저 스톤은 이 의혹을 우익 언론에 유포했다.[126]
같은 해, 프랭큰이 방탄복과 헬멧을 착용한 채 잠든 트위든의 가슴 위에 손을 올린 사진이 공개되었다.[127][128] 프랭큰은 "재미있게 하려는 의도였지만 그렇지 않았다"며 사과했고,[132] 이후 더 긴 사과문을 발표해 트위든이 이를 받아들였다.[133][134]
이후 며칠간 7명의 여성이 사진 촬영 중 프랭큰의 부적절한 행동을 추가로 폭로했다. 린제이 멘즈는 2010년 미네소타 주 박람회에서 프랭큰이 자신의 엉덩이를 만졌다고 비난했고,[135][136] 익명의 여성 2명도 정치 행사에서 비슷한 불만을 제기했다.[137] 또 다른 익명의 여성은 2006년 프랭큰의 라디오 쇼 출연 후 프랭큰이 강제로 키스하려 했다고 주장했다.[139][140] 2003년 이라크 USO 투어 중에는 육군 참전 용사 스테파니 켐플린의 가슴을 만졌다는 주장도 나왔다.[141][142]
미치 매코넬과 척 슈머는 트위든의 주장을 상원 윤리 위원회에 회부했고, 양당 의원들이 지지했다.[130] 11월 30일, 위원회는 조사 착수를 발표했다.[143][144] 인디비저블 운동, 샐리 콘 등 일부 진보 단체는 프랭큰의 사임을 촉구했다.[145] 12월 6일, 추가 의혹이 제기되자,[146][147] 키르스틴 질리브랜드 등 20명 이상의 민주당 상원 의원들이 윤리위 조사 전 프랭큰의 사임을 요구했다.[148]
프랭큰은 상원 윤리 위원회 출석을 요청했지만, 척 슈머는 징계를 경고하며 사임을 압박했다. 결국 12월 7일, 프랭큰은 상원 의원직 사임을 발표하며, 일부 혐의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다른 혐의는 "다르게 기억한다"고 말했다.[149][150] 그는 사임 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로이 무어의 성추문 의혹을 언급하며 "아이러니"를 지적했다.[151] 2018년 1월 2일, 프랭큰은 사임했고 마크 데이턴 주지사는 티나 스미스를 후임으로 임명했다.[152]
5. 1. 사임 이후
상원 사임 후, 프랭큰은 친구들과의 약속을 취소하고 다른 사람들의 전화를 받지 않는 등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는 "상당히 어두워졌고, 임상적으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인지적으로 백 퍼센트가 아니었습니다. 약이 필요했습니다."라고 말했다.[153]2019년 ''뉴요커'' 기자 제인 메이어는 트위든의 주장에 상당한 부정확성이 있다는 기사를 냈다.[153] 프랭큰의 사임을 요구했던 전·현직 상원 의원 7명은 메이어에게 이를 후회한다고 말했다. 패트릭 리히는 모든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프랭큰의 사임을 요구한 것은 상원 의원으로서 "가장 큰 실수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톰 유달은 "실수를 했습니다. … 그는 독립적인 조사 기관에 의해 의견을 들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 공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변호사입니다. 저는 정말 적법 절차를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전 상원 원내대표 해리 리드는 "그에게 일어난 일은 끔찍했습니다. 부당했습니다. … 그는 매우 훌륭한 상원 의원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153]
이러한 강제 사임이 부당했다는 비난은 2019년 중반 커스틴 질리브랜드의 대통령 선거 운동에 불리하게 작용했다.[154] 프랭큰 지지자들은 프랭큰이 상원에서 보여준 능력을 고려할 때 공화당이 할 수 없었던 피해를 질리브랜드가 입혔다고 비난했다. 민주당 모금자 수지 톰킨스 부엘은 이 사건이 "공정한 선수로서의 [질리브랜드]의 평판에 오점을 남겼다"고 말했다.[155]
2019년, 프랭큰은 일부 여성들을 불편하게 만든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여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유사하지 않은 종류의 행동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를 비난하는 사람이 항상 옳다는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이 현실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153]
2019년 9월, 아홉 번째 여성이 ''뉴욕'' 잡지에 2006년 프랭큰이 패티 머레이를 위한 행사에서 사진 촬영 중 자신의 엉덩이를 만졌다고 주장했다. 익명의 여성은 자신의 경력에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156] 프랭큰은 ''뉴욕''에 "2년 전, 저는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절대 없다고 맹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무언가를 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 누군가 저와의 상호 작용에서 좋지 않은 감정을 느꼈다면 정말 유감입니다."라고 말했다.[157]
2022년 2월 9일, ''워싱턴 포스트 라이브''와의 인터뷰에서 프랭큰은 상원에서 사임한 것을 후회하며 다시 공직에 출마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158]
6. 저서
- 《난 괜찮아, 난 충분히 똑똑해, 그리고 제기랄, 사람들은 날 좋아해!: 스튜어트 스말리의 일일 확언》 (Random House Publishing Group, 1992)
- 《러시 림보 그는 뚱뚱하고 멍청한 바보입니다 그리고 다른 관찰들》 (Delacorte Press, 1996)
- 《왜 내가 안 돼?: 프랑켄 대통령의 제작과 실패에 대한 내부 이야기》 (Delacorte Press, 1999)
- 《오, 내가 아는 것들!]: 성공으로 가는 길, 혹은 실패한다면 행복으로》 (Plume Books, 2003)
- 《거짓말과 거짓말을 하는 거짓말쟁이들: 우파에 대한 공정하고 균형 잡힌 시각》 (Dutton Books, 2003)
- 《진실 (농담과 함께)》 (Dutton Books, 2005)
- 《앨 프랭큰, 상원의 거인》 (Grand Central Publishing, 2017)
7. 출연 작품
역할: 사회자
역할: 제롬 와이즈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