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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나쓰의 21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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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나쓰의 21구'는 1979년 일본 시리즈 7차전 9회말,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에나쓰 유타카 투수가 긴테쓰 버펄로스를 상대로 던진 21개의 공에 대한 기록이다. 이 경기는 양 팀 모두 첫 일본 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상황에서, 에나쓰가 7회부터 등판하여 마지막 9회말 무사 만루의 위기를 맞이하며, 21구의 투구 끝에 삼진으로 경기를 마무리하고 히로시마의 우승을 확정지은 명승부였다. 이 경기를 야마기와 준지가 선수, 감독 인터뷰를 통해 심리 묘사, 전략 등을 담아 '에나쓰의 21구'라는 작품으로 엮어냈으며, NHK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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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나쓰의 21구
일본 시리즈 제7차전
1979년 일본 시리즈 제7차전이 열린 오사카 구장 (1985년, 국토항공사진)
1979년 일본 시리즈 제7차전이 열린 오사카 구장 (1985년, 국토항공사진)
개최 연도1979년
경기일본 선수권 시리즈 제7차전
방문팀히로시마 도요 카프
방문팀 득점4
방문팀 안타10
방문팀 실책1
방문팀 총 득점4
방문팀 협회[[File:Hiroshima Toyo Carp insignia.svg|80px]]
홈팀긴테쓰 버펄로스
홈팀 득점3
홈팀 안타9
홈팀 실책1
홈팀 총 득점3
홈팀 협회[[File:Osaka Kintetsu Buffaloes insignia.png|80px]]
개최 구장오사카 구장
개최지오사카부오사카시
방문팀 감독고바 다케시
홈팀 감독니시모토 유키오
경기 시간3시간 29분

2. 1979년 일본 시리즈 7차전 9회말

'에나쓰의 21구'는 1979년 일본 시리즈 7차전 9회말에 에나쓰 유타카가 보여준 투구를 소재로 한 단편 논픽션이다. Sports Graphic Number 창간호에 실려 큰 반향을 일으켰고, 야마기와 준지를 스포츠 논픽션 작가로 인정받게 했다.[19] 경기 장면 자체를 '에나쓰의 21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1979년 11월 4일 오사카 구장에서 열린 일본 시리즈 7차전에서 긴테쓰히로시마 도요 카프는 3승 3패로 맞붙었다. 7회까지 히로시마가 4대 3으로 앞선 상황에서, 히로시마는 구원 에이스 에나쓰를 투입했다.[19]

9회말 긴테쓰 공격 때, 선두 타자 하다 고이치의 안타와 후지세 시로의 대주자 투입으로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에나쓰는 21개의 공을 던지며 위기를 자초했지만, 결국 삼진으로 경기를 마무리하며 히로시마의 첫 우승을 이끌었다.[19]

style="text-align:left;"|9회말 투수 = 에나쓰, 포수 = 미즈누마
투구타순/타자카운트/주자결과내용
1구째6번
하다 고이치
중전 안타하다, 초구 가운데 높은 스트레이트를 센터 앞으로 안타, 무사 1루. 긴테쓰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은 곧바로 대주자 도루 기록을 가진 후지세 시로를 대주자로 내보낸다.
2구째7번
크리스 아놀드
초구 아웃 코스 슈트. 히로시마는 후지세의 도루를 경계하여 바깥쪽으로 던져 볼.
3구째히로시마 배터리, 다시 한 구 바깥쪽으로. 높은 볼.
4구째스트라이크한가운데 직구를 놓치고 스트라이크.
5구째
(1루 주자) 2루 도루 성공, 악송구로 3루로
후지세가 스타트. 투구는 아웃 코스 직구로 볼. 미즈누마가 2루로 송구하지만 쇼트 다카하시 요시히코가 잡지 못하고 볼은 센터로. 후지세는 순식간에 3루로 진루. 무사 3루. 카운트도 1스트라이크 3볼이 되었다.
6구째볼(고의사구)1루가 비어있기 때문에 고의 사구 기질의 볼, 1루로. 무사 1, 3루. 니시모토는 아놀드 대신 대주자 후키이시 도쿠이치를 내보낸다. 이후 히로시마 벤치에서 이케가이 코지로・키타벳푸 마나부가 불펜으로 향한다.
7구째8번
히라노 미츠야스
초구는 스트레이트가 높게 떠서 볼.
8구째스트라이크인코스 낮은 커브. 히라노는 하프 스윙을 당해 스트라이크. 판정에 히라노가 불만을 드러낸다.
9구째
(1루 주자) 2루 도루 성공
1루 주자 후키이시가 스타트. 투구는 높게 벗어나 볼. 후지세의 홈 쇄도를 경계하여 미즈누마는 2루로 송구하지 않음. 후키이시 도루 성공. 무사 2, 3루, 역전 끝내기 찬스가 된다.
10구째만루 작전을 펼치며, 미즈누마가 일어나 고의사구를 시작. 볼.
11구째
고의사구
볼. 고의 4구로 히라노는 1루로 걸어 나간다. 무사 만루가 된다.
12구째9번
대타 사사키 쿄스케
9번에는 투수 야마구치 테츠지가 들어와 있었지만, 니시모토는 전년도 수위 타자이자 이 해에도 타율 .320을 기록한 "좌타자 킬러"라는 이명을 가진 오른손 타자 카드인 사사키를 대타로 내보낸다. 사사키에게 초구는 바깥쪽으로 크게 벗어나는 커브로 볼.
13구째스트라이크2구째는 놓친 스트라이크. 바깥쪽 스트레이트.
14구째파울안쪽으로 바짝 붙어 사사키의 벨트 부근의 스트레이트. 사사키가 강하게 휘둘러 바운드된 타구는 3루 선상으로. 3루수 미무라 토시유키가 몸을 날려 잡으려 했지만 닿지 않았다. 끝내기인 줄 알았지만 파울 볼이 되어 관객들은 술렁였다.
15구째파울포수와의 사인을 교환하기 전에 1루수 키누가사 사치오가 에가와에게 달려가 말을 나눈다. 투구는 안쪽 높은 커브로, 파울 볼.
16구째안쪽 낮은 스트레이트가 벗어나 볼.
17구째스트라이크
(헛스윙 삼진)
앞의 공과 같은 궤적에서 안쪽으로 파고드는 커브가 무릎 아래로 들어가 사사키는 헛스윙 삼진. 1사 만루, 병살타가 나오면 히로시마의 일본 제일이 결정된다.
18구째1번
이시와타 시게루
스트라이크초구, 커브를 놓치고 스트라이크. 에가와가 기어를 한 단계 올렸다.
19구째스트라이크
스크루 실패
주자 전원이 스타트. 이시와타가 스퀴즈 자세를 취한다. 미즈누마도 일어나고, 에가와는 바깥으로 던진 공. 이시와타는 달려들어 배트를 내밀어 스퀴즈를 시도하지만, 볼은 미즈누마의 미트 안으로. 스퀴즈 실패. 후지세는 3루로 돌아가려 하지만, 이미 2루 주자 후키이시가 3루에 도달하여 돌아갈 수 없어 미즈누마에게 태그 아웃. 이 스퀴즈 실패로 2사 2, 3루가 된다.
20구째파울인코스 낮은 직구. 이시와타 배트에 맞지만, 파울 볼.
21구째스트라이크
(헛스윙 삼진)
경기 종료
앞의 공과 같은 궤적에서 인코스 낮은 커브가 파고든다. 이시와타, 헛스윙 삼진. 경기 종료, 히로시마 첫 일본 제일 결정.


2. 1. 경기 전개

1979년 11월 4일 오사카 구장에서 열린 일본 시리즈 7차전, 긴테쓰 버펄로스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경기에서 9회말 긴테쓰의 공격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양 팀은 3승 3패로 맞섰고, 7회까지 히로시마가 4대 3으로 앞서고 있었다. 히로시마는 구원 에이스 에나쓰 유타카를 7회말부터 투입했다.[19]

9회말, 긴테쓰의 선두 타자 하다 고이치가 초구 안타를 치고 나가면서 긴박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니시모토 유키오 긴테쓰 감독은 하다를 대신해 대주자 후지세 시로를 투입했다. 이후 에나쓰가 던진 21구의 상세 내용은 다음과 같다.

style="text-align:left;"|9회말: 투수=에나쓰, 포수=미즈누마 시로
투구타순타자볼카운트 / 주자결과내용
1구째6번하다 고이치중전 안타하다가 초구 한가운데 높은 직구를 쳐 중견수 앞 안타를 만들었다. 무사 1루. 니시모토 감독은 대주자 후지세를 투입했다.
2구째7번크리스 아놀드후지세의 도루를 경계해 공을 높게 뺐다. 초구 바깥쪽 슈토.
3구째다시 한번 높은 볼.
4구째스트라이크한가운데 직구를 놓쳐 스트라이크.
5구째

(1루 주자)
2루 도루 성공
악송구로 3루에 출루
후지세가 스타트, 바깥쪽 직구는 볼. 포수 미즈누마의 송구가 유격수 키를 넘어 중견수 쪽으로 빠지면서 후지세는 3루까지 갔다. 무사 3루, 볼카운트 1-3.
6구째8번히라노 미쓰야스볼(볼넷)사실상 고의 사구. 아놀드는 볼넷으로 1루에 나갔다. 무사 1, 3루. 니시모토는 대주자 후키이시 도쿠이치를 투입했다. 이케가야 고지로기타벳푸 마나부가 히로시마 불펜에서 투구 연습을 시작했다.
7구째초구 직구가 높게 떴다.
8구째스트라이크안쪽 낮은 커브에 히라노가 하프 스윙, 스트라이크. 히라노는 배트를 내던지며 불만을 표시했다.
9구째

(1루 주자)
2루 도루 성공
후키이시가 스타트, 투구는 높게 빗나갔다. 미즈누마는 후지세의 홈 쇄도를 경계해 송구하지 않았다. 후키이시는 2루 도루 성공. 무사 2, 3루.
10구째9번
대타
사사키 교스케미즈누마가 일어서서 고의 사구를 시작했다.
11구째

볼넷(고의 사구)
고의 사구로 히라노는 1루에 나갔다. 무사 만루.
12구째니시모토는 1978년 수위 타자 출신 좌완 킬러 사사키 교스케를 대타로 투입했다. 사사키에게 초구는 몸쪽으로 크게 벗어나는 커브.
13구째스트라이크바깥쪽 직구 스트라이크.
14구째파울몸쪽 직구를 강하게 쳤으나 3루 쪽 파울볼. 관중석이 술렁였다.
15구째1번이시와타 시게루파울1루수 기누가사 사치오가 에나쓰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눴다. 안쪽 높은 커브는 파울.
16구째안쪽 낮은 직구가 빗나갔다.
17구째스트라이크
(헛스윙 삼진)
몸쪽 커브에 사사키는 헛스윙 삼진. 1사 만루.
18구째스트라이크초구 커브 스트라이크.
19구째style="background-color: #ffff80;"스트라이크

스퀴즈 실패
주자 전원 스타트, 이시와타 스퀴즈 시도. 미즈누마가 일어서면서 빗나가는 공을 던졌다. 이시와타가 방망이를 내밀었지만 공은 미즈누마 미트에 들어갔다. 후지세는 3루로 돌아가지 못하고 미즈누마에게 태그 아웃. 2사 2, 3루.
20구째파울몸쪽 낮은 직구에 이시와타가 배트를 맞혔지만 파울.
21구째스트라이크
(헛스윙 삼진)

경기 종료
몸쪽 낮은 커브에 이시와타 헛스윙 삼진. 경기 종료. 히로시마는 창단 이후 처음으로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2. 2. 경기 결과

1979년 일본 시리즈 7차전 경기 결과[3]
히로시마 도요 카프긴테쓰 버펄로스
스코어4 - 3
승리 투수야마네 가즈오 (2승 1패)패전 투수야나기다 유타카 (2패)
세이브 투수에나쓰 유타카 (2세이브)홈런미즈누마 시로 (6회 2점, 히로시마)
히라노 미쓰야스 (5회 2점, 긴테쓰)
경기 시간3시간 29분관중자료 없음



9회말 21구로 명승부를 펼친 끝에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1979년 일본 시리즈'''에서 '''긴테쓰'''를 4승 3패로 꺾고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다.[3]

2. 3. 출장 선수

{| class="wikitable" style="font-size:smaller; 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left;"|9회말: 투수=에나쓰 유타카, 포수=미즈누마 시로

|-style="background-color: #EEEEEE;"

!투구||style="white-space:nowrap;"|타순||타자||볼카운트 / 주자||결과||내용

|-

|1구째||6번||하다 고이치||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중전 안타'''||style="text-align:left;"|하다가 초구 한가운데 높은 직구를 중견수 앞쪽에 안타를 때려내면서 무사 1루가 됐다. 긴테쓰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은 하다를 대신해서 시즌 대주자 도루 기록을 가진 ‘비장의 카드’ 후지세 시로를 대주자로 투입했다.[19]

|-

|2구째||rowspan="5"|7번||rowspan="5" nowrap|크리스 아놀드||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볼||style="text-align:left;"|초구 바깥쪽의 슈토, 히로시마는 후지세의 도루를 경계하며 공을 뺌, 높은 볼.

|-

|3구째||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볼||style="text-align:left;"|히로시마 배터리가 공 하나를 더 뺌, 볼.

|-

|4구째||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스트라이크||style="text-align:left;"|한가운데 직구를 놓침, 스트라이크.

|-

|5구째||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볼

(1루 주자)
'''2루로 도루 성공'''
악송구로 '''3루에 출루'''||style="text-align:left;"|후지세가 스타트, 투구는 바깥쪽 직구로 향한 볼. 포수 미즈누마 시로가 2루로 송구했지만 유격수 다카하시 요시히코가 잡지 못한 바람에 공은 중견수쪽으로 빠져나갔고 후지세는 단번에 3루로 출루했다. 무사 3루. 볼카운트도 1스트라이크 3볼이 됐다.

|-

|6구째||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볼('''볼넷''')||style="text-align:left;"|사실상 고의 사구가 되는 볼, 아놀드는 볼넷으로 1루에 출루했다. 무사 1·3루. 니시모토는 아놀드를 대신해서 역시 빠른 발을 가진 후키이시 도쿠이치를 내보냈다. 이 투구 후에 히로시마 벤치에서 이케가야 고지로기타벳푸 마나부가 불펜에서 투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

|7구째||rowspan="5"|8번||rowspan="5"|히라노 미쓰야스||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볼||style="text-align:left;"|초구는 직구가 높이 떠서 볼.

|-

|8구째||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스트라이크||style="text-align:left;"|안쪽 낮은 커브. 히라노는 하프 스윙이 되어 스트라이크. 주심의 스트라이크 판정에 히라노는 배트를 내팽개치며 불만을 드러냈다.

|-

|9구째||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볼

(1루 주자)
'''2루로 도루 성공'''||style="text-align:left;"|1루 주자 후키이시가 스타트를 끊음. 투구는 높게 빗나가면서 볼. 후지세의 홈 돌입을 경계하며 미즈누마는 2루로 송구하지 않았다. 후키이시가 도루 성공하면서 무사 2·3루가 됨, 즉 한방이면 역전 끝내기 승리가 되는 상황이다.

|-

|style="white-space: nowrap;"|10구째||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볼||style="text-align:left;"|만루 작전을 취하고 미즈누마가 일어서서 고의 사구로 걸러보내기 시작, 볼.

|-

|11구째||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볼

'''볼넷(고의 사구)'''||style="text-align:left;"|볼. 고의 사구로 히라노는 1루로 걸어 나갔다. 무사 만루가 됐다.

|-

|12구째||rowspan="6"|9번
대타||rowspan="6"|사사키 교스케||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볼||style="text-align:left;"|9번에는 투수 야마구치 데쓰지가 들어가 있지만[20] 니시모토는 작년 시즌인 1978년에 수위 타자로서 1979년에도 타율 3할 2푼을 기록할 정도로 ‘좌완 킬러’라는 별명을 가진 비장의 카드 사사키 교스케를 대타로 투입했다. 우타자 사사키에게의 초구는 몸쪽을 크게 벗어나는 커브로 볼이 됐다.

|-

|13구째||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스트라이크||style="text-align:left;"|2구째는 놓치는 스트라이크. 바깥으로 붙는 직구였다.

|-

|14구째||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파울||style="text-align:left;"|3구째는 아슬아슬하게 몸쪽으로 빠지면서 사사키의 벨트 가까이 떨어지는 직구였다. 사사키가 강하게 휘두른 배트에 맞아 바운드한 타구는 3루 쪽으로 날아갔다. 3루수 미무라 도시유키가 몸을 날렸음에도 손이 닿지 않아 안타를 맞았나 싶었으나 결과는 파울볼이었다. 관중들은 끝내기인가 싶었지만 파울볼이 되는 바람에 잠시 술렁거렸다.

|-

|15구째||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파울||style="text-align:left;"|포수와의 사인을 주고받기 전에 1루수 기누가사 사치오가 마운드에 선 에나쓰쪽으로 달려가 대화를 나눴다. 투구는 안쪽으로 높이 뜬 커브로 파울볼이었다.

|-

|16구째||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볼||style="text-align:left;"|안쪽으로 낮게 깔리는 직구가 빗나가서 볼.

|-

|17구째||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스트라이크
('''헛스윙 삼진''')||style="text-align:left;"|앞서 던진 공과 구종은 같되 몸쪽으로 파고드는 커브가 무릎께로 들어오자 사사키는 헛스윙을 하면서 삼진이 됐다. 1사 만루가 되면서 이후 병살로 이어진다면 히로시마의 일본 시리즈 우승이 결정될 수도 있는 상황.

|-

|18구째||rowspan="4"|1번||rowspan="4"|이시와타 시게루||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스트라이크||style="text-align:left;"|초구는 커브로 잘못 본 스트라이크. 에나쓰가 기어를 한 단계 올렸다.

|-style="background-color: #ffff80;"

|19구째||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스트라이크

'''스퀴즈 실패'''||style="text-align:left;"|주자 전원이 스타트를 끊으면서 이시와타가 스퀴즈 자세를 취했다. 미즈누마가 일어서면서 에나쓰는 빗나가는 공을 던졌다. 이시와타가 덤벼들다시피 방망이를 내밀어 스퀴즈를 시도했지만 공은 미즈누마의 미트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스퀴즈는 실패했다. 후지세는 3루로 복귀하려 했으나 이미 2루 주자인 후키이시가 3루에 출루했기에 돌아가지 못해서 미즈누마에게 터치 아웃당했다. 이 스퀴즈 실패에 의해서 2사 2·3루가 됐다.

|-

|20구째||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파울||style="text-align:left;"|몸쪽 낮은 직구. 이시와타의 배트에 맞혔지만 파울볼.

|-

|21구째||style="text-align:left;"|

style="border: none;"|style="border: none;"|



|style="white-space:nowrap;"|스트라이크
('''헛스윙 삼진''')

경기 종료||style="text-align:left;"|앞서 던진 공과 같은 구종에서 몸쪽 낮은 커브가 파고들었다. 이시와타의 헛스윙 삼진으로 경기 종료. 히로시마는 창단 이후 처음으로 일본 시리즈 우승을 결정지었다.

|}

3. 야마기와 준지 ‘에나쓰의 21구’

江夏の21球일본어는 1979년 일본 시리즈 7차전 9회말,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투수 에나쓰 유타카가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팀을 우승으로 이끈 21개의 투구를 소재로 한 야마기와 준지의 단편 논픽션이다. 1980년 분게이슌주에서 발행한 《Sports Graphic Number》 창간호에 실려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야마기와 준지를 스포츠 논픽션 작가로 인정받게 한 작품이다.[19] 또한 NHK 특집 다큐멘터리(1983년 1월 24일)와 닛폰 TV의 '알고 있나?!' (1999년 9월 19일) 등을 통해 영상화되기도 했다.

이 작품의 유명세로 인해, 소재가 된 1979년 일본 시리즈 7차전 9회말 긴테쓰와 히로시마의 경기 장면 자체를 '에나쓰의 21구'라고 부르기도 한다.[19] 당시 오사카 구장에서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3승 3패로 맞선 양 팀의 경기에서 히로시마가 4대 3으로 앞선 7회말부터 고바 다케시 감독은 구원 에이스 에나쓰를 투입했다.

9회말, 히로시마는 우승까지 아웃 카운트 3개만을 남겨두고 있었지만, 긴테쓰의 6번 타자 하다 고이치가 초구 안타를 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후 에나쓰가 던진 21구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에 표로 정리되어 있다.

야마기와 준지는 에나쓰와의 인터뷰를 통해 단순한 투타 정보 교환 외에 발생했던 전술 등을 취재했다. 야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야마기와는 '걸작을 위해서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취재에 임했고, 에나쓰는 이 작품을 "스포츠 논픽션 장르를 확립한 인상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3. 1. 작품의 특징

江夏の21球일본어는 단순한 경기 기록을 넘어선 작품이다. 야마기와 준지는 에나쓰 유타카를 비롯한 선수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경기 중 선수들의 심리 상태, 감독의 전략,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들을 상세하게 묘사했다.[1] 야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야마기와는 '걸작을 위해서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취재에 임했고, 그 결과 에나쓰에게서 "스포츠 논픽션 장르를 확립한 인상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1]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들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 1구째: 하다 고이치가 초구부터 안타를 친 것에 대해 에나쓰는 자신의 방심을 후회하며, 시즌 중 초구에 피홈런을 많이 맞았던 경험을 떠올린다.[2]
  • 5구째: 후지세 시로의 도루는 사실 히트 앤드 런 사인이었으나 크리스 아놀드가 사인을 놓쳐 발생한 일이었다.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은 작전 실패에도 불구하고 쓴웃음을 지었다.[3]
  • 아놀드와의 승부: 에나쓰는 상대 팀의 작전을 감지했지만, 주자보다는 타자에게 집중하기로 결정했다.[3]
  • 6구째 이후: 고바 다케시 감독은 전진 수비를 지시하고, 불펜에 기타벳푸 마나부를 대기시켰다. 이를 본 에나쓰는 분노하며, 유니폼을 벗을 각오까지 했다.[4]
  • 7, 8, 9구째: 에나쓰는 스퀴즈를 경계하며 높은 공을 던졌고, 히라노 미쓰야스의 하프 스윙을 보고 자신의 커브가 통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히라노는 에나쓰가 동요하고 있다고 생각했다.[5]
  • 11구째 이후: 에나쓰는 사사키 쿄스케에게 강한 승부구를 던지며 번트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13구째에 바깥쪽 직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았다.[6]
  • 14구째: 사사키의 파울 타구를 보며 에나쓰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기누가사 사치오는 에나쓰에게 벤치를 신경 쓰지 말라고 격려했다.[7]
  • 15, 16, 17구째: 노무라 가쓰야는 에나쓰가 17구째를 위한 포석으로 15, 16구째를 던졌다고 분석했다.[8]
  • 18, 19, 21구째: 이시와타 시게루는 에나쓰의 19구째 공이 우연히 빗나갔다고 생각했지만, 에나쓰는 의도적으로 빗나가게 했다고 주장했다. 21구째는 17구째와 같은 커브로 이시와타를 삼진 처리했다.[9]

3. 2. 1구째부터 10구째까지

1979년 11월 4일 오사카 구장에서 열린 일본 시리즈 7차전, 9회말 긴테쓰히로시마의 경기에서 에나쓰 유타카가 던진 1구째부터 11구째까지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19]

style="text-align:left;"|9회말: 투수=에나쓰, 포수=미즈누마
투구타순타자볼카운트 / 주자결과내용
1구째6번하다 고이치중전 안타하다가 초구 한가운데 높은 직구를 중견수 앞쪽에 안타를 때려내면서 무사 1루가 됐다. 긴테쓰의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은 하다를 대신해서 시즌 대주자 도루 기록을 가진 ‘비장의 카드’ 후지세 시로를 대주자로 투입했다.
2구째7번크리스 아놀드초구 바깥쪽의 슈토, 히로시마는 후지세의 도루를 경계하며 공을 뺴서 높은 볼이 되었다.
3구째히로시마 배터리가 공 하나를 더 뺌, 볼.
4구째스트라이크한가운데 직구를 놓침, 스트라이크.
5구째

(1루 주자)
2루로 도루 성공
악송구로 3루에 출루
후지세가 스타트, 투구는 바깥쪽 직구로 향한 볼. 포수 미즈누마 시로가 2루로 송구했지만 유격수 다카하시 요시히코가 잡지 못한 바람에 공은 중견수쪽으로 빠져나갔고 후지세는 단번에 3루로 출루했다. 무사 3루. 볼카운트도 1스트라이크 3볼이 됐다.
6구째볼(볼넷)사실상 고의 사구가 되는 볼, 아놀드는 볼넷으로 1루에 출루했다. 무사 1·3루. 니시모토는 아놀드를 대신해서 역시 빠른 발을 가진 후키이시 도쿠이치를 내보냈다. 이 투구 후에 히로시마 벤치에서 이케가야 고지로기타벳푸 마나부가 불펜에서 투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7구째8번히라노 미쓰야스초구는 직구가 높이 떠서 볼.
8구째스트라이크안쪽 낮은 커브. 히라노는 하프 스윙이 되어 스트라이크. 주심의 스트라이크 판정에 히라노는 배트를 내팽개치며 불만을 드러냈다.
9구째

(1루 주자)
2루로 도루 성공
1루 주자 후키이시가 스타트를 끊었다. 투구는 높게 빗나가면서 볼. 후지세의 홈 돌입을 경계하며 미즈누마는 2루로 송구하지 않았다. 후키이시가 도루를 성공하면서 무사 2·3루가 되었다. 즉, 한 방이면 역전 끝내기 승리가 되는 상황이다.
10구째만루 작전을 취하고 미즈누마가 일어서서 고의 사구로 걸러보내기 시작, 볼.
11구째

볼넷(고의 사구)
볼. 고의 사구로 히라노는 1루로 걸어 나갔다. 무사 만루가 되었다.


  • 1구째: 에나쓰는 6번 타자 하다 고이치가 신중하게 공략해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초구부터 바깥쪽 직구로 스트라이크를 노렸지만, 하다는 초구부터 직구를 노리고 중견수 앞 안타를 쳐냈다. 에나쓰는 하다의 역량을 경시했던 부분이 있었고, 이 안타에 대해 아픔을 느꼈다고 회고했다.[19]
  • 5구째: 후지세 시로의 도루는 단순한 도루가 아니라 히트 앤드 런 작전이었으나, 크리스 아놀드가 사인을 간과하여 결과적으로 후지세의 단독 도루가 되었다. 미즈누마 시로의 송구가 악송구가 되면서 후지세는 3루까지 진루했다. 니시모토 감독은 작전 실패에도 불구하고 쓴웃음을 지었다.[19]
  • 6구째: 아놀드에게 볼넷을 내준 후, 고바 다케시 감독은 내야진에게 전진 수비를 지시했다. 이는 후키이시 도쿠이치의 도루를 저지하기보다 3루 주자 후지세의 홈 쇄도를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 고바 감독은 불펜에 기타벳푸 마나부를 내보냈고, 이를 본 에나쓰는 감독의 신뢰에 대한 분노와 함께 유니폼을 벗을 각오까지 했다.[19]
  • 7~8구째: 에나쓰는 스퀴즈 플레이를 경계하여 높은 공을 던졌고, 8구째에 히라노 미쓰야스가 하프 스윙을 하자 커브가 통한다는 것을 파악했다.

3. 3. 11구째부터 21구째까지

11구째의 고의 사구로 무사 만루가 되면서 에나쓰는 실점과 패전을 각오했다. 여기서 다음 타자인 사사키 교스케에 대해서는 밀어내기희생 플라이와 같은 어중간한 결과가 나오는 것을 싫어해 ‘칠 수 있으면 쳐 봐라!’라고 승부를 전개했다. 그런데 그것이 완벽한 조합이 됐다. 한편,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은 무사 만루에 승리를 확신했고 오히려 침착성을 잃고 있었다.[19] 12구째인 커브에 사사키는 휘두르려던 방망이를 멈췄다. 이것으로 에나쓰는 사사키가 안타를 노리고 있다는(스퀴즈 없이) 것을 알았다. 에나쓰는 사사키가 커브로 바꾼 것을 눈치채고 13구째인 바깥쪽 직구를 던졌는데 사사키는 이것을 놓치면서 스트라이크가 됐다.[19]

14구째에 사사키가 3루선상을 향해 아슬아슬한 파울을 쳤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안타로 보이는 타구였기 때문에 긴테쓰는 이겼다고 생각하여 1루측 벤치에 색종이가 날렸다. 하지만 에나쓰는 ‘저런 코스는 끌어당겨 쳐봐야 절대로 안타가 되진 않는다’, ‘파울 아니면 내야 땅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경기를 관전하고 있던 노무라 가쓰야도 “카운트 잡으려는 공을 휘둘렀다”라고 분석해서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19] 그 직후, 1루를 지키고 있던 기누가사 사치오가 에나쓰 곁으로 향해 “나도 너랑 똑같은 기분이다. 벤치나 불펜 따위는 신경쓰지 말아라”며 말을 걸었다. 에나쓰는 이에 대해 자신이 결정타를 맞고 기누가사가 그만두는 것은 ‘생각해 보면 참 바보같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팀 동료가 있었던 것에 ‘기뻤다’, ‘마음이 참 든든했다’라고 생각하여 마음 속에 있던 답답한 응어리가 풀리고 평정심과 집중력을 되찾게 됐다. 그 직후 사사키와의 결정구가 히라노에게 던졌던 8구째와 똑같은 구질을 사용했던 것이 떠올라 실제로 17구째에 던져 사사키를 삼진으로 물러나게 했다.[19]

노무라 가쓰야에 의하면, 15구째와 16구째는 결정구인 17구째를 위한 포석이었다고 한다. 15구째를 가슴쪽에 ‘버리는 공’으로 던져 16구째는 동일하게 ‘버리는 공’으로서 안쪽이 낮은 직구였다고 한다. 17구째는 16구째와 완전히 같은 궤도에서 타자 가까이서 뚝 떨어지는 커브이며, 사사키의 ‘눈의 착각’을 이용하여 헛스윙을 뺏어낸 것이다.[19]

18구째, 바깥쪽으로부터의 커브에 이시와타 시게루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에나쓰는 이 타석에서 스퀴즈가 나올거라고 확신했다. 7차전에 들어간 긴테쓰측의 블록사인은 거의 알고 있었지만 이 상황으로는 스퀴즈 사인이 나와 있었는지 어떨지는 몰랐다고 한다.[19] 3루 주자 후지세 시로에 의하면, 스퀴즈 가능성이 있는 것은 무사 3루에 도달했을 때부터였다고 밝히면서 이 18구째의 후에 스퀴즈 사인이 나왔다고 한다.[19]

이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된 19구째의 장면을 둘러싸고 투수 에나쓰·타자 이시와타의 엇갈리는 증언이 백미다. 이때 에나쓰는 커브를 쥔 채로 공을 웨스트볼로 던지면서 스퀴즈를 빗맞게 했는데 에나쓰는 이것을 '''의도적으로 빗맞힌 것'''이라고 주장했다. 에나쓰의 투구폼은 일단 1루 쪽을 보고 나서 공을 던지기 직전에 타자를 보는 버릇이 있었다. 이것은 한신 타이거스 시절에 가네다 마사이치로부터 배운 것이어서 이렇게 하면 타자의 호흡을 읽고 그 순간에 공을 빼낼 수 있다는 기술이다. 이 공이 그야말로 그 진면목이며, 공이 손에서 떠나기 직전에 이시와타가 번트 자세를 취하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에 공을 쥔 자세를 바꿀 틈도 없이 순간적으로 내린 판단이었는데 커브를 쥔 채로 공을 뺀 것이다. 이건 언젠가 이시와타가 스퀴즈를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알았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포수 미즈누마 시로가 3루 주자의 움직임을 보고 일어난게 보였다고 한다(에나쓰는 좌완 투수라서 투구 시에 3루 주자는 사각지대가 된다). 에나쓰는 두 가지 종류의 커브를 갖고 있었지만 이때 던진 커브는 바로 위에서부터 던져 내리는 커브였기 때문에 직구로 바꿀 수 없는 손잡이였다.

한편 이시와타는 ‘'''우연히 실투한게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시와타는 이 공을 포크볼이라고 인식했다. 이시와타는 “방망이에 맞힐 수 없는 공은 아니었다”라면서도 스퀴즈는 속구의 타이밍에 맞춰서 하는 것이며 통상적인 웨스트도 속구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구에 의한 웨스트는 믿을 수가 없고 정말 의도적으로 공을 뺀 것이라면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19] 이시와타를 삼진으로 잡은 21구째는 17구째와 똑같이 무릎께로 떨어지는 커브였다.[19]

4. NHK 특집: 스포츠 다큐멘터리 ‘에나쓰의 21구’

《에나쓰의 21구》는 1979년 일본 시리즈 7차전 9회 말, 에나쓰 유타카가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우승을 확정 짓는 순간을 담은 야마기와 준지의 단편 논픽션이다. 1980년 분게이슌주에서 발행한 《Sports Graphic Number》 창간호에 실려 큰 반향을 일으켰고, 야마기와 준지를 스포츠 논픽션 작가로 각인시킨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83년 1월 24일 NHK 특집 스포츠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으며, 닛폰 TV 계열 《알고 있나?!》에서도 '야마기와 준지: 에나쓰의 21구 이야기' (1999년 9월 19일 방영)로 다루어졌다. 작품의 유명세 덕분에 경기 장면 자체가 '에나쓰의 21구'로 불리기도 한다.

노무라 가쓰야는 프로그램 해설에서 "프로 야구 반세기 역사상 이 정도의 명장면은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4. 1. 제작 과정

1983년 1월 24일에 방영된 NHK 특집 스포츠 다큐멘터리 《에나쓰의 21구》는 야마기와 준지의 동명 논픽션을 원작으로 한다. 긴테쓰 팬이자 NHK 보도 디렉터였던 사토 도시미가 기획했다. 사토는 스포츠 프로그램 제작 경험이 없었기에 야마기와의 작품을 뛰어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스포츠 프로그램 제작 경험이 전무했던 사토는 《Sports Graphic Number》의 초대 편집장 오카자키 미쓰요시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오카자키와 야마기와의 협력을 얻어 사실상 NHK와 《Sports Graphic Number》의 공동 제작 형태로 진행되었다. 프로그램 스태프롤에는 '협력'으로 야마기와의 이름이 명시되었다.

에나쓰 유타카와의 인터뷰는 야마기와, 오카자키, 사토 세 명이 번갈아 가며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에나쓰는 투구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상세히 설명했고, 이 과정은 무려 8시간이나 소요되었다. 공교롭게도 에나쓰, 야마기와, 사토는 모두 1948년생 동갑이었고, 에나쓰와 사토는 같은 종류의 담배를 즐겨 피우는 등 사적인 공통점도 있어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당시 경기 영상은 중계를 담당했던 마이니치 방송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히 NHK 히로시마 방송국 직원이 우연히 녹화해 둔 비디오 테이프가 발견되었지만, 뉴스용으로 제작된 탓에 실황 음성은 없었다. 결국 라디오 중계를 했던 NHK 시마무라 도시하루 아나운서가 개인적으로 녹음한 테이프를 활용하여 영상과 음성을 결합할 수 있었다.

노무라 가쓰야는 해설을 통해 한 구 한 구의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했고, 화면에는 공의 궤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이해를 도왔다. 또한 전광판에 '대타 사사키'가 표시되는 장면과 같이 경기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영상은 오사카 구장에서 추가로 촬영하여 완성도를 높였다.

노무라는 프로그램 시작 부분에서 "프로 야구 반세기 역사상 이 정도의 명장면은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라며 1979년 일본 시리즈 7차전 9회 말의 감동을 회상했다.

2010년 10월 22일에는 NHK 엔터프라이즈에서 이 프로그램의 DVD가 발매되었다.

4. 2. 프로그램 내용

이 프로그램은 긴테쓰 팬이자 NHK 보도 디렉터였던 사토 도시미가 기획했다. 스포츠 프로그램 제작 경험이 없었던 사토는 야마기와 준지의 원작을 뛰어넘는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조건을 받았다. 이를 위해 《Sports Graphic Number》의 편집장 오카자키 미쓰요시와 야마기와의 협력을 얻어, 사실상 NHK와 공동으로 제작했다.[41] 에나쓰 유타카에 대한 인터뷰는 야마기와, 오카자키, 사토 세 명이 번갈아 가며 질문했고, 에나쓰가 각 투구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8시간이 소요됐다. 에나쓰, 야마기와, 사토는 모두 1948년생 동갑이었고, 에나쓰와 사토는 같은 담배를 즐겨 피우는 등 공통점이 많아 프로그램 제작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당시 경기 영상은 마이니치 방송에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NHK 히로시마 방송국 직원이 우연히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실황은 포함되지 않았고, NHK 아나운서 시마무라 도시하루[41]가 직접 녹음한 라디오 중계 테이프 덕분에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은 노무라 가쓰야의 해설에 독창성을 부여하기 위해 각 투구마다 해설을 덧붙였고, 화면에 공의 궤적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전광판에 '대타 사사키'가 표시되는 장면 등 경기 당시에는 없었던 영상을 오사카 구장에서 추가 촬영하여 완성도를 높였다.

노무라는 프로그램 시작 부분에서 "프로 야구 반세기 역사상 이 정도의 명장면은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1979년 히로시마와 긴테쓰의 일본 시리즈가 바로 그런 명장면이었다"라고 회고했다.

2010년 10월, NHK 엔터프라이즈에서 DVD가 발매되었으며, 발매 당시 사토는 NHK 엔터프라이즈의 상무 이사였다. DVD에서는 방송 당시 사용되었던 반젤리스의 음악이 모두 교체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야마기와는 NHK와 인연을 맺어, 이후 메이저 리그 소개 프로그램과 스포츠 정보 프로그램의 캐스터를 맡기도 했다.

NHK 크로니클(NHK 아카이브스)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여러 아카이브 프로그램과 특별 편성을 통해 재방송되었으며, 2021년에는 4K 해상도 복원판으로도 방송되었다.[43]

4. 3. DVD 발매

2010년 10월 22일에 NHK 엔터프라이즈에서 DVD가 발매되었다.[43] 사토 도시미는 이 DVD 발매 당시 NHK 엔터프라이즈 상무 이사를 맡고 있었고, 발매 후인 2011년 2월부터 2013년 6월까지 NHK 엔터프라이즈 사장을 역임했다. DVD화되면서 방송에 사용된 반젤리스의 음악(앨범 《Heaven and Hell》)은 전부 교체되었다.[43]

5. 기타 에피소드

야마기와 준지의 작품에서는 구체적인 묘사가 없었지만, 훗날 다른 매체를 통해 알려진 에피소드들은 다음과 같다.


  • 후지세의 도루: 미즈누마 시로의 송구가 원 바운드가 되면서 다카하시 요시히코가 잡지 못했다. 미즈누마는 이후 집에서 이 장면을 বারবার 비디오로 확인했고, 다카하시 역시 "막았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에나쓰는 미즈누마가 신중하려 했던 것으로 추측했지만, 미즈누마는 타이밍이 너무 좋아 당황해서 제대로 쥐지 못하고 던졌다고 밝혔다.[19]
  • 투수 교체: 6구째 직후 기타벳푸 마나부이케가야 고지로가 불펜에 들어간 것에 대해 에나쓰는 "믿지 못하는 건가"라며 분노했다.[22] 고바 다케시 감독은 "에나쓰 정도의 투수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에나쓰는 동점은 각오하고 있었으며, 훗날 "고바 감독의 행동은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23] 이케가야는 "감독이 가라고 해서 불펜에 들어갔을 뿐"이며, "거의 투구 연습도 하지 않고 경기를 지켜봤다"고 회상했다.[24]
  • 대주자 후이시: 돈 아놀드의 대주자로 후이시가 나갈 때,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은 "달리지 마"라고 지시했다.[25] 따라서 9구째 후이시의 도루는 니시모토의 의도와는 달랐고, 긴테쓰도 완벽하게 계획된 공격으로 무사 만루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 만루 작전: 다나카 다카시 코치가 히라노 미쓰야스를 고의 사구로 보내 만루 작전을 할 것인지 물었을 때, 에나쓰는 "만루가 되면 투수가 얼마나 괴로운지 알고 있는 건가?"라고 생각했지만, 야수에게 맞추는 것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히라노는 고교 시절 에나쓰에게 유일하게 홈런(런닝 홈런)을 맞힌 타자였다.
  • 사사키의 증언: 사사키 교스케는 34년 후 인터뷰에서 2구째 공을 놓친 것에 대해 "야구 인생 최대의 후회"라고 말했다.[27]
  • 14구째: 에나쓰는 14구째 사사키의 3루 선상 타구가 "쳐도 파울"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판정은 착지점이 아닌 베이스 위 공간 통과 여부로 결정되었고, 실제로는 매우 아슬아슬했다. 긴테쓰 3루 코치 아오키 아키라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니시모토도 항의하려다 아오키를 보고 멈췄다. 아오키는 1978년 일본 시리즈에서 우에다 감독의 항의 사건[28] 때문에 항의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니노미야 세이준은 "항의해도 판정은 뒤집히지 않는다. 이 기세를 멈추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29] 3루수 미무라는 볼에 글러브가 닿았다고 고백했다.
  • 9회말 수비 위치: 9회말부터 3루수 기누가사 사치오가 1루로, 2루수 미무라가 3루로 이동했다. 키가 작은 미무라가 닿지 않는 파울이었기에, 기누가사가 3루를 지켰다면 잡아서 페어가 되어 긴테쓰가 이겼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19] 미무라는 사사키에게 "글러브에 스쳤다"고 말했지만,[14] 후지세는 "닿았다면 항의했을 것"이라고 부정했다.[19]
  • 기누가사의 격려: 15구째를 던지기 전 기누가사는 에나쓰에게 "네 마음과 나도 같다. 신경 쓰지 마. 마음껏 던져서 맞으면 된다"라고 격려했고, 에나쓰는 이 말에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30]
  • 16구째: 16구째 낮은 스트라이트는 에나쓰 자신이 인정한 "이 날 최고의 볼"이었다. TV 중계 MBS의 스피드건 표시는 137km/h였다. 노무라 가쓰야도 이 공이 에나쓰다운 투구이고 타자의 노림수를 혼란시키는 최고의 버리는 공이라고 평가했다.
  • 이시와타 압박: 18구째 전, 미즈누마 시로는 주오 대학 후배인 이시와타 시게루에게 "언제 할 건데?"라고 압박했다. 평소와 달리 이시와타가 반응이 없어 스퀴즈를 확신했다고 한다.[19] 이시와타에게 스퀴즈 사인을 전달한 아오키는 미즈누마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봐 스퀴즈 실패를 예감했다.
  • 마에카와의 질문: 19구째 전, 구심 마에카와 요시오가 "어때? 던질 수 있겠어?"라고 묻자, 에나쓰는 "땅이 질어서 던질 수 없다"고 했지만, 마에카와는 "모두 같은 조건이니 던지세요"라고 타일렀다. 마에카와는 악천후를 고려해 "9회 종료 시 동점이면 무승부로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스퀴즈 실패: 고바 감독은 "시즌 중 이런 사태를 상정해 투수에게 변화구 웨스트를 연습시켰다"고 했지만, 에나쓰는 "그런 사실은 없었다"고 한다. 에나쓰는 손가락이 짧아 포크를 던지기 어려웠고, 그의 커브가 피치 아웃을 가능하게 했다.
  • 니시모토의 독백: 스퀴즈 실패 직후, 니시모토는 다이마이 오리온스 감독 시절 나가타 마사카즈에게 해임된 1960년 일본 시리즈 2차전의 스퀴즈 실패를 떠올리며 "스퀴즈의 신에게 버림받은 건가…"라고 중얼거렸다. 미즈누마는 이시와타에게서 "쳐주겠다"는 기개가 느껴지지 않았고, 니시모토가 풀이 죽어있어 스퀴즈 실패 시점에서 승리를 확신했다고 한다.[19]
  • 21구째: 야마기와의 저서에 "커브"로 기록된 21구째를, 미즈누마는 "혼신의 스트레이트"라고 자서전에 적었다.[19] 미즈누마는 이 위닝볼을 보관하다가, 훗날 타임캡슐에 기증했다.[19]
  • 무언의 신뢰: 21구 동안 에나쓰는 미즈누마의 사인에 한 번도 고개를 젓지 않았다고 한다.[19]
  • 우승 직후: 첫 일본 시리즈 우승 후, 히로시마 선수들은 맥주 뿌리기를 하지 않고 히로시마로 돌아가 방송사들 우승 특집에 출연했다. 히로시마는 환희로 가득 찼기에, 선수들은 혼란을 피하고자 귀가 후 외출하지 않았다.[19]

5. 1. 선수들의 증언

1979년 11월 4일 오사카 구장에서 열린 일본 시리즈 7차전, 긴테쓰 버펄로스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9회말 공방전은 '에나쓰의 21구'라는 논픽션으로 기록될 만큼 극적인 순간들로 가득했다. 다음은 주요 장면에 대한 선수들의 증언이다.

  • 후지세 시로의 도루: 포수 미즈누마 시로는 송구가 낮고 어려운 바운드가 되어 유격수 다카하시 요시히코가 잡을 수 없었다고 회상하며, 자택에서 비디오를 বারবার 돌려봤다고 한다. 다카하시는 "잡는 것은 안되더라도 멈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걸로 자신은 단번에 긴장해서 결국은 못했다"라고 말했다. 에나쓰는 미즈누마의 송구에 대해 '너무 신중했던 거 아니냐'라고 추측했지만, 미즈누마는 타이밍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당황했기 때문에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19]

  • 고바 다케시 감독의 투수 교체: 에나쓰는 기타벳푸 마나부이케가야 고지로가 불펜에 들어간 것에 대해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분노했다.[22] 고바 감독은 “에나쓰 정도의 투수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에나쓰는 내심으로는 적어도 동점이 될 것은 각오하고 있었으며, 꽤 오래 지난 후에는 “그때의 고바 감독의 행동은 이해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23] 이케가야는 당시 상황에 대해 “감독님이 가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불펜에 들어갔을 뿐”, “거의 투구 연습을 하지 않고 기타벳푸와 함께 경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전당하면 경기가 끝나고, 동점이 되더라도 10회초 사이에 어깨를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24]

  • 히라노 미쓰야스의 고의 사구: 다나카 다카시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와 ‘타자 히라노를 고의 사구로 걸러내서 만루 작전을 취하는 게 어떠냐’라고 묻자, 에나쓰는 내심 ‘만루가 되면 투수가 얼마나 난처한지 알고 있는가’라고 생각했지만 야수에게 물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만루 작전을 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에나쓰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유일하게 히라노에게 홈런(런닝 홈런)을 맞은 적이 있었다.

  • 사사키 교스케의 타석: 34년 후, 사사키는 자신의 타석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 에나쓰가 사사키에게 던진 2구째(21구 중 13구째)는 사사키 정도의 타자라면 ‘쉽게 외야 플라이로 만들 수 있는’ 공이었다. 사사키는 이 공을 놓친 것에 대해 “야구 선수 생활에 있어서 최대의 후회”라고 토로했다.[27]

  • 이시와타 시게루의 스퀴즈 실패: 에나쓰는 커브를 쥔 채로 웨스트로 던지면서 스퀴즈를 빗맞게 했는데, 이를 '''의도적인 빗맞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에나쓰는 한신 타이거스 시절 가네다 마사이치로부터 타자의 호흡을 읽고 그 순간에 공을 빼낼 수 있다는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포수 미즈누마는 3루 주자의 움직임을 보고 일어난게 보였다고 한다. 한편, 이시와타는 ‘'''우연히 실투한게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공을 포크볼이라고 인식했다. 이시와타는 “방망이에 맞힐 수 없는 공은 아니었다”라면서도 스퀴즈는 속구의 타이밍에 맞춰서 하는 것이며 통상적인 웨스트도 속구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구에 의한 웨스트는 믿을 수가 없고 정말 의도적으로 공을 뺀 것이라면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 기타 증언들:
  • 15구째를 던지기 전, 1루수 기누가사 사치오는 에나쓰에게 “(신뢰받지 못한다면 그만두겠다는) 네 마음과 나도 마찬가지다. 신경쓰지 마라. 어중간하게만은 맞지 말아라(마음껏 던져서 맞는다면 좋지 않은가)”라고 말을 걸었다.[30]
  • 18구째를 던지기 전, 미즈누마는 주오 대학 후배인 이시와타에게 “이봐! 언제 할 거야?”라는 말로 압박을 가했다.
  • 19구째를 던지기 전, 구심 마에카와 요시오는 에나쓰에게 “이봐, 유타카(에나쓰를 이렇게 불렀다), 어떤가? 던질 수 있겠나?”라고 물었다. 에나쓰는 “아래쪽이 질퍽거려서 못 던지겠다”라고 대답했다.
  • 다이마이 오리온스 감독 시절 나가타 마사이치에게 해임된 1960년 일본 시리즈 2차전 때 스퀴즈 실패가 니시모토의 뇌리를 스쳤다. “나는 스퀴즈의 신한테 버림받은 것은 아닌가….” 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5. 2. 19구째에 대한 논란


스퀴즈 실패주자 전원이 스타트를 끊고 이시와타가 스퀴즈 자세를 취함. 미즈누마가 일어서면서 에나쓰는 공을 바깥쪽으로 뺌. 이시와타는 방망이를 내밀어 스퀴즈를 시도했지만 공은 미즈누마의 미트 속으로 들어감. 3루 주자 후지세는 귀루하지 못하고 미즈누마에게 태그 아웃됨.



이 공에 대해 에나쓰는 '''의도적으로 공을 뺐다(웨스트볼)'''고 주장했다. 한신 타이거스 시절 가네다 마사이치에게서 배운 기술을 활용, 타자의 움직임을 읽고 공을 던지기 직전에 순간적으로 판단하여 커브를 쥔 채로 공을 뺐다는 것이다.[34] 반면 이시와타는 '''우연한 실투'''라고 주장하며, 이 공을 포크볼로 인식했다. 그는 "방망이에 맞힐 수 없는 공은 아니었다"라고 회상했다.[34]

이후 여러 관계자들의 증언이 엇갈렸다.



결론적으로, 19구째 공은 에나쓰의 의도적인 웨스트볼이었는지, 아니면 우연한 실투였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공이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5. 3. 그 외의 이야기

경기 직후 히로시마 선수들은 맥주 뿌리기를 생략하고 곧바로 히로시마로 돌아가, 방송사들의 우승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했다.[19] 당시 히로시마 시내는 열광적인 분위기였기에, 선수들은 혼란을 피하고자 귀가 후 외출을 삼갔다.[19]

미즈누마 시로는 승리구를 유니폼 주머니에 넣어 개인 소장했고, 훗날 한 TV 프로그램 기획으로 이 공을 타임캡슐에 넣었다.[19]

한편, '에나쓰의 21구' 내내 에나쓰는 미즈누마의 사인에 단 한 번도 고개를 젓지 않았다고 전해진다.[19]

참조

[1] 뉴스 江夏の21球 “赤ヘル野球”軌道乗った1979年 https://www.daily.co[...] 2022-07-18
[2] 인터뷰 「江夏の21球」続きあれば…次打者席の小川亨氏「勝負したかった」/パ伝説 https://www.nikkansp[...] 2022-11-05
[3] 웹사이트 1979年度日本シリーズ 試合結果(第7戦) https://npb.jp/bis/s[...] 日本野球機構 2021-07-15
[4] 웹사이트 NHK特集「スポーツドキュメント 江夏の21球」 https://www4.nhk.or.[...] NHK 2021-10-23
[5] Youtube 【一気見】池谷公二郎編!広島カープ初優勝の立役者!沢村賞も獲った大エース【高橋慶彦】【広島東洋カープ】【プロ野球OB】 https://www.youtube.[...] 2024-07-28
[6] 뉴스 【プロ野球三国志 時代を生きた男たち】 佐々木恭介(近鉄)(8) 79年日本S江夏の21球 悪魔の囁き…1球見逃しから悪夢の結末 シリーズ後も地獄『外出られず、犯罪者の気分』 [[産業経済新聞社]] 2013-12-08
[7] 뉴스 ヤクルト初の日本一、勇者のサブマリンの告白 https://column.sp.ba[...] 2022-11-05
[8] 웹사이트 【魚拓】退場歴ゼロも私生活で大乱闘「助けに入った仰木(彬)さんの浴衣の帯が…」結婚式場で何が? それでも栗橋茂が“近鉄の初優勝”に必要だったワケ(4/4) - プロ野球... https://megalodon.jp[...]
[9] 문서
[10] 뉴스 江夏豊(25)21球 無死満塁、奇跡の脱出劇 日本シリーズ決戦で「最高傑作」 https://www.nikkei.c[...] 2022-11-05
[11] 뉴스
[12] 잡지
[13] 인터뷰 江夏豊×伊東勤(千葉ロッテマリーンズ)「なんでこんなに勝ってるんだ?」「それはですね……」 http://wpb.shueisha.[...] 2022-11-05
[14] 서적 名将たちはなぜ失敗したか [[草思社]] 2003-05-20
[15] 서적 プロ野球残侠伝 サムライ達のいる風景 [[パロル舎]] 2009-04-01
[16] 웹사이트 江夏豊、田淵幸一バッテリーと長嶋茂雄さんの因縁…阪神入団60年・安藤統男の球界見聞録<14> https://hochi.news/a[...] 報知新聞社 2021-07-15
[17] 뉴스 江夏の21球 “赤ヘル野球”軌道乗った1979年 https://www.daily.co[...] 2022-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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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Youtube 【一気見】池谷公二郎編!広島カープ初優勝の立役者!沢村賞も獲った大エース【高橋慶彦】【広島東洋カープ】【プロ野球OB】 https://www.youtube.[...] 202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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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뉴스 【プロ野球三国志 時代を生きた男たち】 佐々木恭介(近鉄)(8) 79年日本S江夏の21球 悪魔の囁き…1球見逃しから悪夢の結末 シリーズ後も地獄『外出られず、犯罪者の気分』 産業経済新聞社 2013年12月8日
[27] 문서
[28] 문서
[29] 뉴스 ヤクルト初の日本一、勇者のサブマリンの告白 https://column.sp.ba[...] 2022-11-05
[30] 간행물
[31] 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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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뉴스 江夏豊(25)21球 無死満塁、奇跡の脱出劇 日本シリーズ決戦で「最高傑作」 https://www.nikkei.c[...] 202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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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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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서적 名将たちはなぜ失敗したか 소시샤 2003-05-20
[39] 서적 プロ野球残侠伝 サムライ達のいる風景 파롤샤 2009-04-01
[40] 웹인용 江夏豊、田淵幸一バッテリーと長嶋茂雄さんの因縁…阪神入団60年・安藤統男の球界見聞録<14> https://hochi.news/a[...] 호치 신문사 2021-07-15
[41] 기타
[42] 기타
[43] 웹인용 NHK特集「スポーツドキュメント 江夏の21球」 https://www4.nhk.or.[...] NHK 202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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