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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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식 시계, 즉 와도케이는 7세기 중반 일본에 물시계가 도입된 이후, 16세기 서양 기계식 시계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다. 에도 시대에는 일본 전통 시간 체계인 부정시법에 맞춰 제작되었으며, 다이묘나 부유층이 소유하는 고급품이었다. 1872년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식 정시법이 도입되면서 쇠퇴했으나, 현재는 감상, 연구, 수리, 복원 등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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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시계 | |
---|---|
시계 정보 | |
종류 | 기계식 시계 |
목적 | 전통적인 일본 시간 표시 |
다른 이름 | 와도케이(和時計) |
2. 역사
일본에 시계가 처음 등장한 것은 7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서기』(日本書紀|니혼쇼키일본어)에 따르면 덴지 천황이 660년과 671년에 물시계의 일종인 漏刻|로코쿠일본어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32][1] 이 물시계는 16세기 서양 문물이 들어오기 전까지 약 800년간 사용되었다.
16세기에 일본의 기독교 전파와 함께 서양식 기계식 태엽 시계가 일본에 처음 소개되었다. 예수회 소속의 스페인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551년, 센고쿠 시대의 다이묘였던 오우치 요시타카에게 기계식 시계를 선물한 것이 문헌상 확인되는 최초의 기록이다.[33][18] 이후 다른 선교사들과 외교 사절들도 당대의 권력자들에게 시계를 선물했다.
연도 | 수여자 | 수령자 | 비고 |
---|---|---|---|
1551년 |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 오우치 요시타카 | 기계식 시계[33][18] |
1569년 | 교황 사절단 | 오다 노부나가 | 기계식 시계[33][2] |
1571년 | 교황 사절단 | 도요토미 히데요시 | 기계식 시계[33][2] |
1606년 | 선교사 | 도쿠가와 이에야스 | 기계식 시계[33][2] |
1611년 | 포르투갈 특사 (로드리고 데 비베로 구출 답례) | 도쿠가와 이에야스 | 태엽 동력 랜턴 시계[33][2][18] |
1612년 | 멕시코 부왕 (누에바 에스파냐) | 도쿠가와 이에야스 | 현존 최고(最古) 서양 시계[33][2] |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11년에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로부터 선물 받은 랜턴 시계는 1581년 한스 데 에바로가 제작한 것으로, 구노 산 토쇼구에 보관되어 있다.[18] 1612년에 멕시코 부왕이 선물한 시계는 현재 일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 시계로 알려져 있다.[33][2] 그러나 당시 일본은 부정시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정시법에 맞춰진 서양 시계는 실용성보다는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다.[19]
17세기 초, 일본인 기술자들이 서양 시계를 모방하고 수리하기 시작했다. 대장장이였던 츠다 스케자에몬은 여러 수입 시계를 직접 연구하고 수리한 경험을 바탕으로 1598년에 직접 기계식 시계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일본 시계 장인의 시조로 여겨진다.[33][2][21] 또한 17세기 초 아마쿠사 섬에서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일본인들에게 시계 제작 기술을 가르치기도 했다.[34][3]
에도 시대 (1603–1868)에 들어서면서 서양 기술을 바탕으로 일본 고유의 시간 체계인 부정시법(不定時法|후테이지호일본어)에 맞는 독자적인 시계, 즉 와도케이(和時計|와도케이일본어)가 개발되었다.[35][20] 와도케이는 계절에 따라 낮과 밤의 길이가 달라지는 부정시법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대표적으로 폴리오(foliot)라는 제어 장치의 눈금을 조정하여 시간의 흐름 속도를 조절하거나,[36] 낮과 밤의 시간 변화에 맞춰 자동으로 속도를 조절하는 두 개의 저울(天府|텐푸일본어)을 사용하는 二挺天府時計|니초텐푸 토케이일본어 (두 막대 조절 시계) 등이 1780년경 개발되었다.[38][7]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와도케이는 1673년에 제작된 것이며[23], 가장 오래된 니초텐푸 토케이는 1773년에 제작된 것이다.[24]
와도케이 기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1796년 호소카와 한조가 저술한 『기교도휘』(機巧図彙|키코즈이일본어)이다. 이 책은 絡繰人形|가라쿠리 닌교일본어 (기계 인형) 제작법을 다루면서, 책의 첫 부분에서 와도케이의 구조와 제작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39][7] 당시 비교적 높았던 식자율과 활발한 도서 대여 문화 덕분에 이 책은 널리 읽혔다.[41][9]
와도케이 제작 기술은 다나카 히사시게가 만든 万年時計|만넨도케이일본어 (만년 시계)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1851년에 완성된 이 시계는 서양식 시계, 달의 위상, 동양 12지신, 일본식 부정시법 시간, 24절기, 요일 등을 표시하는 6개의 문자반을 가지고 있었으며, 한번 태엽을 감으면 1년 동안 작동했다고 전해진다.[42][10]
당시 와도케이는 다이묘나 호상 등 부유층만 소유할 수 있는 고급품이었으며, 벽시계, 야구라 시계, 탁상시계, 자(尺) 시계, 베개 시계, 인롱(印籠) 시계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일부 시계에는 알람 기능이나 가라쿠리 장치가 달려 있기도 했다.[25] 이하라 사이카쿠의 『일본영대장』(1688년) 삽화에도 야구라 시계가 등장한다.[26] 자 시계는 길이가 1자(약 30.3cm) 정도였기 때문에 이름 붙었지만[27], 2자나 4자 길이의 것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정부는 서구화를 추진하며 1872년 태양력과 함께 서양식 시간 체계(정시법)를 도입하는 조례 453호를 발표했다.[43][11] 이로 인해 일본 고유의 시간 체계에 맞춰 제작되던 와도케이는 점차 사용되지 않게 되었고, 서양식 시계 산업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2. 1. 한국의 시계 발전과의 비교 (추가)
한국에서도 고대부터 시계를 사용한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시대인 7세기경 이미 물시계를 사용했다고 하나, 이는 7세기에 일본 덴지 천황이 물시계 로코쿠(漏刻)를 제작하여 사용한 것과[32] 유사하게 주로 지배계층을 위한 것이었고 일반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조선 시대에 들어 시계 기술은 중요한 발전을 이루었다. 1434년 (세종 16년), 장영실 등은 독자적인 기술로 물시계인 자격루를 발명했다. 자격루는 단순히 시간을 측정하는 것을 넘어 자동으로 시각을 알리는 정교한 장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17세기 초, 조선의 사신들이 중국을 통해 서양식 기계 시계인 자명종을 접하고 국내로 들여왔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서양 시계의 도입은 일본의 경우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일본에서는 16세기 중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다이묘에게 기계식 시계를 선물한 것을 시작으로[33], 17세기 초에는 츠다 스케자에몬과 같은 장인이 직접 서양 시계를 모방하여 제작하고[33], 나아가 에도 시대에는 일본 고유의 시간 체계인 부정시법에 맞는 독자적인 와도케이를 개발하는 등[35] 서양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내재화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반면 조선에서 서양 시계는 기술 습득과 자체 생산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왕실이나 일부 특권층이 사용하는 진귀한 수입품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했다.
본격적으로 서양식 시계가 조선 사회에 알려지고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개화기에 이르러서였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을 통해 시계 제작 기술 및 관련 산업 기반이 일부 유입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스위스 등 서구 국가들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현대적인 시계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전통 시계는 일본의 와도케이처럼 독자적인 시간 체계에 맞춰 지속적으로 개량, 발전하는 흐름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자격루와 같은 발명품은 당시 조선의 높은 과학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성과로 평가받는다.
3. 임시 시간 (부정시법)
일본의 전통적인 시간 측정 방식은 유럽의 기계식 시계와는 다른 독특한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해가 떠 있는 낮과 해가 진 밤을 각각 여섯 개의 단위로 나누는 부정시법(不定時法|후테이지호일본어)을 기반으로 했다.[4][17]
부정시법에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계절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시간 단위(일각)의 길이 역시 일정하지 않고 계속 변했다. 예를 들어, 여름에는 낮 시간이 길어져 낮의 일각이 길어지고 밤의 일각은 짧아졌으며, 겨울에는 그 반대가 되었다. 반면, 16세기 중반 예수회 선교사들을 통해 일본에 처음 소개된 유럽의 기계식 시계는 하루를 균등하게 나누어 항상 동일한 길이의 시간을 측정하는 정시법을 따랐다.[33][2] 따라서 유럽식 시계 구조를 일본의 가변적인 시간 체계에 맞추는 것은 시계 제작자들에게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4]
일본 시계 제작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창적인 기술들을 개발했다. 에도 시대 (1603–1868)에 서양 기술을 응용하여 일본 고유의 시계 제작 방식인 와도케이(和時計|와도케이일본어)를 만들었다.[4]
- 폴리오(Foliot) 조정: 초기 기계식 시계의 속도 조절 장치인 폴리오에 여러 개의 눈금을 만들어, 사용자가 추의 위치를 조절하여 시계의 속도를 계절 변화에 맞춰 비교적 정확하게 설정할 수 있도록 했다.[36][5] 유럽에서는 폴리오 방식이 원형 밸런스 방식으로 대체되었지만, 일본에서는 부정시법에 적용하기 용이하여 계속 활용되었다.[37][6]
- 이정 천부(二挺天府) 방식: 1780년경 개발된 방식으로[38], 낮 시간용 천부(天府|텐푸일본어, 조절기)와 밤 시간용 천부를 따로 두어 새벽녘(明六|명육일본어)과 해 질 녘(暮六|모육일본어)에 자동으로 전환되도록 만들었다.[7][17] 이를 통해 매일 두 번씩 수동으로 추를 교체해야 했던 번거로움이 사라지고, 15일마다 한 번씩 조정하면 되었다.[17] 이 방식의 시계를 二挺天府時計|니초텐푸 토케이일본어라고 불렀다.[38][7]
- 할구마식(割駒式) 문자판: 시계 자체의 속도는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문자판에 새겨진 시간 표시(눈금)의 간격을 조정할 수 있도록 만든 방식이다. 15일마다 이 눈금 간격을 바꿔 낮과 밤 시간의 길이를 조절했다.[17]
- 기둥 시계: 시계 문자반 대신, 추가 아래로 내려가면서 트랙에 부착된 지표가 시간을 나타내는 방식이다. 시간 지표가 움직이는 트랙의 눈금을 계절에 따라 조정하여 낮과 밤의 길이 변화를 반영했다. 시계 태엽을 감으면 지표는 트랙 위로 다시 이동했다.
부정시법에서 낮과 밤의 경계는 단순히 해돋이나 해넘이가 아니라, 해 뜨기 전 동이 트는 박명(薄明|박명일본어)과 해가 진 뒤 어둑어둑해지는 황혼(黄昏|타소가레일본어)을 기준으로 삼았다. 일반적으로 해 뜨기 약 30분 전과 해 진 뒤 약 30분 후를 기준으로 했다.[16] 하지만 매일 미세하게 변하는 시간 길이를 시계에 정확히 반영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24절기에 맞춰 약 15일마다 한 번씩 시간 단위(일각)의 길이를 조정하여 사용했다.[16]
이러한 부정시법은 에도 시대 내내 사용되었으나,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변화를 맞이했다. 메이지 정부는 1872년 칙령 제453호를 통해 기존의 음력과 부정시법을 폐지하고, 서양식 양력과 정시법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다.[43][11] 이로 인해 일본 고유의 시계인 와도케이(和時計)는 점차 사라지고 서양식 시계 산업이 발전하게 되었다.
호소카와 한조가 1796년에 쓴 『기교도휘』(機巧図彙|카라쿠리 즈이일본어)는 가라쿠리 인형과 함께 와시계의 구조와 제작법을 상세히 설명한 중요한 자료이다.[39][7] 다나카 히사시게가 1851년에 완성한 만년 시계(万年時計|만넨도케이일본어)는 서양식 시계 기능과 함께 부정시법에 따른 시간 변화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기능을 갖춘 복잡하고 정교한 시계로, 일본 시계 기술의 정점을 보여준다.[42][10]
4. 전통적인 일본 시간 체계
일본의 전통적인 시간 체계는 낮과 밤을 각각 6개의 기간으로 나누었다. 이 때문에 각 기간의 길이는 계절에 따라 달라졌다.
일반적인 시계는 9시부터 4시까지 여섯 개의 숫자로 시간을 표시했으며, 정오부터 자정까지 거꾸로 세었다. 1, 2, 3시는 불교 신자들이 기도를 올릴 때 사용하는 숫자였기 때문에 시간 표시에 사용하지 않았다.[1] 시간을 거꾸로 센 것은 초기의 시간 측정 방식이 향을 태워 시간을 재는 것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출과 일몰 시간은 모두 일본의 시간 측정 체계에서 여섯 번째 시간으로 표시되었다.
숫자로 시간을 나타내는 것 외에도, 각 시간 단위에는 십이지 동물의 기호가 할당되었다. 일출부터 시작하는 낮 시간은 다음과 같았다.
:
십이지 | 십이지 기호 | 일본 숫자 | 타종 횟수 | 태양시 |
---|---|---|---|---|
토끼 | 卯 | 六 | 6 | 일출 |
용 | 辰 | 五 | 5 | 오전 |
뱀 | 巳 | 四 | 4 | |
말 | 午 | 九 | 9 | 정오 |
양 | 未 | 八 | 8 | 오후 |
원숭이 | 申 | 七 | 7 |
일몰부터 시작하는 밤 시간은 다음과 같았다.
:
십이지 | 십이지 기호 | 일본 숫자 | 타종 횟수 | 태양시 |
---|---|---|---|---|
닭 | 酉 | 六 | 6 | 일몰 |
개 | 戌 | 五 | 5 | 저녁 |
돼지 | 亥 | 四 | 4 | |
쥐 | 子 | 九 | 9 | 자정 |
소 | 丑 | 八 | 8 | 새벽 |
호랑이 | 寅 | 七 | 7 |
현대의 시계가 하루를 24시간으로 균등하게 나누는 정시법(定時法)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일본식 시계는 계절에 따라 길이가 변하는 낮과 밤을 각각 6등분하는 부정시법(不定時法, ''futei jiho'')을 기반으로 했다. 즉, 낮의 한 시(刻)와 밤의 한 시(刻)는 계절에 따라 길이가 달라졌다. 이때 기준은 단순히 해돋이나 해넘이가 아니라, 해 뜨기 전 희미하게 밝아오는 박명(薄明)과 해가 진 후 어두워지는 어스름(黄昏, 타소가레)이었다. 일반적으로 해 뜨기 약 30분 전과 해 진 후 약 30분 후를 낮과 밤의 경계로 삼았다.[16] 하지만 일본식 시계로 매일 변하는 시간 길이를 정확히 맞추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24절기에 맞춰 15일마다 시간의 길이를 조정했다.
5. 변화하는 시간 길이 문제
일반적인 시계가 하루를 24등분한 정시법(定時法)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일본식 시계(와도케이)는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낮과 밤의 길이를 각각 6등분하여 시간을 계산하는 부정시법(不定時法)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이는 낮의 한 시(時)와 밤의 한 시의 길이가 계절에 따라 달라짐을 의미한다. 시간의 기준은 해돋이나 해넘이가 아니라, 해 뜨기 전 희미하게 밝아오는 박명(薄明)과 해가 져서 어둑해지는 황혼(黄昏)이었다. 일반적으로 해 뜨기 약 30분 전과 해 진 후 약 30분 후를 낮과 밤의 경계로 삼았다.[16] 하지만 매일 시간 길이를 엄밀하게 조정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24절기에 맞춰 15일마다 한 번씩 시간의 길이를 조정했다.
1844년 덴포력 개정으로 달력에 연중 다른 시간 길이가 적용되면서, 일본 시계 제작자들은 변화하는 시간을 표시하기 위해 다양한 기계 장치를 고안했다.
가장 실용적인 방식 중 하나는 기둥 시계(야구라 도케이)였다. 이 시계는 일반적인 시계 문자반 대신, 트랙을 따라 내려가는 추에 부착된 지표(표시기)로 시간을 나타냈다. 시간 표시는 추와 함께 트랙을 따라 움직였으며, 계절에 따라 낮과 밤의 길이에 맞춰 위치를 조정할 수 있었다. 시계 태엽을 감을 때는 지표를 해당 시간 표시 지점으로 다시 옮겨야 했다. 이 방식은 시계 자체의 속도와 관계없이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유럽에서 전래된 시계 문자반을 사용하여 일본 시간을 표시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 24시간 눈금이 있는 시계 문자반 테두리에 움직이는 시간 표시기를 두는 방식.
- 계절마다 다른 시간 간격이 표시된 여러 개의 문자반을 교체하는 방식.
- 할구마식 문자판(割駒式文字盤)은 시계의 속도는 그대로 두고, 문자판에 새겨진 시간 눈금(駒, 코마)의 간격을 15일마다 조정하여 변화하는 시간 길이를 표시하는 방식이다. 1800년대 중반에는 이러한 조정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자동 할구마식 시계도 등장했다.[17]
시간의 빠르기를 조절하는 천부(天符)를 이용한 방식도 개발되었다.
- 이정 천부식(二挺天符式)은 낮용과 밤용, 두 개의 천부를 시계에 장착하여 박명과 황혼에 맞춰 자동으로 해당 천부로 전환되게 만든 방식이다. 이를 통해 매일 추를 교체하는 번거로움 없이 15일마다 한 번씩만 조정하면 되었다.[17] 이 방식이 등장하기 전에는 하나의 천부를 사용하는 일정 천부식(一挺天符式) 시계가 사용되었으며, 매일 두 번씩 추를 교체해야 했다. 이정 천부식 시계는 겐로쿠 시대(1688년~1704년) 무렵에 발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이정 천부식 시계는 어느 한쪽 천부가 작동하는 동안 다른 쪽은 멈춰 있는 구조이다.
- 타종 시계의 경우, 느린 밸런스(탈진기)와 빠른 밸런스를 함께 사용하여 시간이 낮에서 밤으로 바뀔 때 자동으로 적절한 밸런스로 전환되도록 만들었다. 1850년 다나카 히사시게가 설계한 만년자명종은 이러한 메커니즘을 사용한 대표적인 예시다.
현대의 시계 제작자 키쿠노 마사히로는 일부 손목시계에 부정시법을 구현하기 위해, 각 시간 표시에 연결된 여러 개의 팔(암)을 사용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이 팔들은 시계 구매자의 위도에 맞춰 홈이 파인 캠에 연결되어 있으며, 캠이 1년 주기로 회전하면서 시계 문자반 위 시간 표시의 위치를 자동으로 조정한다.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초기에 걸쳐서는 정시법과 부정시법 모두에 대응하는 와양 절충 시계(和洋折衷時計)도 제작되었다. 할구마식 문자판을 사용하면 문자판 표시 방식을 조정하여 비교적 쉽게 두 시간 체계에 대응할 수 있었다. 다나카 히사시게의 만년자명종은 서양식 회중시계를 내장하여 정시법 시간을 표시하는 동시에, 와시계 부분에서는 할구마식 문자판의 간격을 자동으로 변경하여 부정시법의 계절별 시간 변화를 나타내는 등 와양 절충 시계 기술의 정점을 보여준다.
1873년 일본 정부는 서양식 시간 측정 방식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여 계절에 따라 변하지 않는 동일한 길이의 시간(정시법)과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6. 종언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전통적인 부정시법(不定時法) 사용을 폐지했다.[11] 1872년(메이지 5년) 12월 3일, 메이지 내각은 태양력 도입과 정시법으로의 전면 이행을 결정하는 칙령 제453호를 발령하여, 이 날을 1873년(메이지 6년) 1월 1일로 정했다.[11][30]
이러한 변화는 일본 전통 시계인 와도케이(和時計)의 쇠퇴를 가져왔다.[11] 동시에 미국에서 '봉봉 시계'라 불리는 정시법 시계가 무관세로 대량 수입되면서 와도케이는 실용적인 가치를 잃었다.[30]
과거 각 번에 소속되어 녹봉을 받던 시계 장인들은 일자리를 잃었으나, 서양식 시계의 비교적 단순한 구조 덕분에 제작 기술 전환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30] 이는 일본 서양식 시계 산업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청일 전쟁 즈음에는 일본 국내 생산 시계가 수입품을 대체하기 시작했고, 1902년(메이지 35년)경에는 미국산을 넘어 아시아 시장을 주도하게 되었다.[30]
오늘날 와도케이는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감상, 전시, 연구 및 수리의 대상으로 남아있다.[25] 일부 애호가들을 위해 탁상시계나 손목시계 형태의 복각품이 제작되기도 한다.[31]
7. 갤러리
참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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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cision Timekeepers of Tokugawa Japan and the Evolution of the Japanese Domestic Clock
1996
[37]
논문
Precision Timekeepers of Tokugawa Japan and the Evolution of the Japanese Domestic Clock
1996
[38]
간행물
A Historical Overview of Japanese Clocks and Karakuri
2008
[39]
간행물
A Historical Overview of Japanese Clocks and Karakuri
2008
[40]
논문
Precision Timekeepers of Tokugawa Japan and the Evolution of the Japanese Domestic Clock
1996
[41]
간행물
A Historical Overview of Japanese Clocks and Karakuri
2008
[42]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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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oshiba.c[...]
Toshiba
2005-03-08
[43]
웹사이트
History of the Japanese Horological Industry
https://www.jcwa.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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