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본산업별노동조합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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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일본산업별노동조합회의(산별)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민주화 정책에 따라 1946년 8월에 창립된 일본의 산업별 노동조합 연합체이다. 창립 당시 21개 산업별 노조, 약 160만 명의 조합원을 기반으로 했으며, 세계노동조합연맹의 강령에 기초한 활동을 펼쳤다. 산별은 10월 공세 등 적극적인 노동 운동을 전개했으나, 1947년 2·1 총파업 실패, 내부 분열, 미군정의 탄압으로 인해 세력이 약화되었다. 1948년 산별 내 공산당 지배에 반대하는 민주화 동맹이 결성되었고, 1949년 레드 퍼지 이후 조합원 수가 급감했다. 결국 1958년 해산되었으며, 이후 전국노동조합총연합(전노련)이 산별의 정신을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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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본산업별노동조합회의 | |
---|---|
기본 정보 | |
![]() | |
위치_국가 | 일본 |
가맹 | WFTU |
회원수 (1946년) | 1,500,000명 |
설립 | 1946년 8월 |
해산 | 1958년 |
명칭 | |
한국어 | 전일본산업별노동조합회의 |
약칭 | 산별회의, 산별 |
공용어 명칭 (영어) | Congress of Industrial Unions of Japan |
역사 | |
설립 년월일 | 1948년 8월 21일 |
해산 년월일 | 1958년 2월 15일 |
후신 조직 | 산별회의 기념회 평화와 노동회관 |
조직 형태 | 내셔널 센터 |
가맹 단체 수 | |
1946년 결성 시 | 21단체, 준비회 |
1950년 12월 말 | 7단체 |
1955년 6월 말 | 2단체 |
1958년 해산 시 | 2단체 |
조합원 수 | |
1946년 결성 시 | 약 160만 명 |
1950년 12월 | 111,500명 |
1955년 6월 말 | 11,540명 |
1958년 해산 시 | 6,106명 |
위치 정보 | |
본부 위치 | 도쿄도 미나토구 시바신바시 7정목 12번지 산별회관 |
가맹 및 지지 | |
가맹 조직 | 세계 노동조합 연맹 (세계 노련) |
지지 정당 | 없음 |
기타 정보 |
2. 역사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일본의 노동 운동은 급속도로 번성했다. 전일본산업별노동조합회의(산별회의)는 일본 공산당의 영향력이 강한 좌파 노동조합을 모아 결성된 내셔널 센터였다. 1946년 8월 21일, 전기, 국철, 철강업, 기기 제조업, 석탄 광업 등 21개 단산 소속 163만 명의 조합원으로 결성되어, 당시 조직 노동자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산별회의는 우파 성향의 일본 노동조합 총동맹(총동맹, 조합원 수 85만 명)과 경쟁하며, 2·1 제너럴 스트라이크, 노동 입법 제정, 산업 부흥, 최저 임금제 확립, 노동 협약 체결 등 전후 초기 일본 노동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국제적으로는 세계 노동조합 연맹(세계노련)과도 우호 관계를 맺었다.
1947년, 산별회의는 총동맹 등과 함께 전국노동조합 연락협의회(전노련, 조합원 수 450만 명)를 발족하여 노동 전선 통일을 시도했다. 그러나 1948년경부터 산별회의 내부에서 일본 공산당의 지배에 반대하는 산별 민주화 동맹(산별민동, 민동)이 결성되어 내분이 일어났다. 민동파는 반공주의를 내세워 노동 운동의 주도권을 잡았지만, 노동 운동의 민주화라는 본래 목적에서 벗어났다는 비판도 받았다.
민동파의 탈퇴와 레드 퍼지로 인한 탄압으로 산별회의는 조직이 약화되었다. 1950년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 결성 당시 소수파로 전락했고, 1958년 2월 15일 해산했다.
2. 1. 창립 배경 (1946년)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연합군 최고사령부(GHQ/SCAP)는 일본의 민주화 정책의 일환으로 노동조합 결성을 장려했다.[26] 이에 따라 1945년 10월 이후 각지에서 노동조합 결성이 잇따랐다. 전전・전시부터 활동을 해 온 일본공산당원을 포함한 좌파 활동가들은 각 지역에서 노동조합 결성에 힘썼다.[26] 이 과정에서 지역별 조직화 노력과 산업별 조직화 노력이 결합하여 1946년 8월, 21개 산업별 노조, 약 160만 명의 조합원을 기반으로 전일본산업별노동조합회의(산별)가 창립되었다.[26]지역별 조직화에 힘쓴 그룹은 가나가와현과 도쿄도 등에서 공장 대표자 회의나 지구 노동조합 협의회를 만들었다. 1946년 1월 20일에는 간토 지방 노동조합 협의회가 결성되어 경영자에 의한 어용 노조 반대, 노동조합의 지방 조직의 전국 협의회 결성, 통일 전선의 추진, 사상・신앙・정당 지지의 자유, 민주적인 대표제 등을 내걸었다.[26]
한편, 산업별로 조직화에 힘쓴 그룹 중, 가장 먼저 조직의 단일화를 이룬 일본 신문 통신 노동조합(신문 통신)의 요청으로, 2월 20일에 산별회의 준비회의 발기인회가 발족했다. 4월 이후 산업별 전국 조직이 잇따라 만들어져, 이들을 결집하여 산별회의가 결성되었다.[26]
1946년 8월 19일~8월 21일에 열린 '''창립 대회'''에서는 21개 단체, 약 160만 명이 조직되어 있다고 보고되었다.[26] 이는 같은 시기에 결성된 우파의 내셔널 센터인 일본 노동조합 총동맹보다 많은 규모였다.
조직명 | 약칭·통칭 | 조합원 수 | 비고 |
---|---|---|---|
전신 종업원 조합 | 전신 | 약 400,000명 | 1945년 12월 17일 발족, 1946년 5월 31일 결성 대회. |
전일본 통운 노동조합 | 전일통운 | 약 130,000명 | 1946년 4월 20일 결성. |
일본 교육 노동조합 | 일교로 | 약 117,000명 | 1946년 6월 26일 결성. 같은 해 12월 22일, 전일본 교원 조합 협의회(전교협)에 합류하여 해산. |
전일본 탄광 노동조합 | 전탄 | 약 96,000명 | 1946년 4월 22일 결성. |
일본 전기 산업 노동조합 협의회 | 전산협 | 약 95,000명 | 1946년 4월 7일 결성. |
전일본 철강 산업 노동조합 | 전철로 | 약 85,000명 | 1946년 4월 4일 결성. |
전일본 항만 노동조합 동맹 | 항만 동맹 | 약 30,000명 | 1946년 7월 27일 결성. |
일본 신문 통신 방송 노동조합 | 신문 통신 | 29,184명 | 1946년 2월 9일 결성. |
전일본 의료 종업원 조합 협의회 | 전의협 | 약 18,000명 | 1946년 4월 1일 결성. |
전일본 인쇄 출판 노동조합 | 인쇄 출판 | 약 15,000명 | 1946년 4월 7일 결성. |
일본 영화 연극 노동조합 | 일영연 | 약 12,000명 | 1946년 4월 28일 결성. |
전국 생명 보험 종업원 조합 연합회 | 전생보 | 약 10,000명 | 1946년 6월 4일 결성. |
전일본 기기 노동조합 준비회 | 156,583명 | 1946년 10월 25일, 전일본 기기 노동조합(전일본 기기)을 결성. | |
전국 화학 노동조합 준비회 | 약 130,000명 | 1946년 8월 16일, 전일본 화학 노동조합(전일화)을 결성. | |
전일본 주둔군 요원 노동조합 준비회 | 약 20,000명 | 1946년 11월 24일, 전일본 주둔군 요원 노동조합(전진로)을 결성. | |
전국 수산 식량 노동조합 준비회 | 약 3,500명 | 나중에, 전일본 식량 노동조합(전식량)을 결성. | |
국철 도쿄 지방 노동조합 | 약 118,000명 | 1947년 6월 4일, 국철 노동조합에 단일화하여 이탈. | |
간토 전기 공업 노동조합 | 약 60,000명 | 1946년 10월 23일, 전일본 전기 공업 노동조합(전전공)을 결성. | |
전 관서 조선 노동조합 협의회 | 약 45,000명 | 1946년 9월 1일, 전일본 조선 노동조합에 참가하여 이탈. | |
국제 전기 통신 종업원 조합 연합회 | 약 3,500명 | ||
일통 자동차 공업 노동조합 | 약 400명 | ||
(전국 차량 산업 노동조합) | 전국 차량 | ― | 1946년 5월 6일 결성. 9월 3일, 산별 가맹. |
(전일본 목재 산업 노동조합) | 전목로 | ― | 1946년 6월 28일 결성. 10월 10일, 산별 가맹. |
계) 21단체 (12 전국 단체, 4 준비회, 3 지방 단체) | 약 1,630,000명 |
2. 2. 초기 활동과 10월 공세 (1946년)
1946년 10월, 전일본산업별노동조합회의(산별)는 파업 공세를 시작했다.[4] 약 18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하는 100건 이상의 파업이 조직되었으며,[3] 에너지, 탄광 및 전기 장비 산업 부문이 파업 활동의 중심이었다.[4] 이른바 '10월 노동 공세'의 주요 요구 사항은 생활비를 기준으로 한 최저 임금 제정, 개선된 퇴직금 제도, 그리고 에너지 산업의 민주화였다.[5]10월 공세 와중에 호소야 마쓰타(전일본산업별노동조합회의 부서기장)는 노동조합의 투쟁이 더 이상 단순한 경제적 투쟁이 아니라 정치적 투쟁이라고 선언했다.[7][6][13] 그는 노동조합이 총파업을 통해 요시다 내각을 무너뜨리고 민주적인 인민 정부를 수립할 것이라고 선언했다.[7]
산별 회의는 9월 19일에 최고 투쟁위원회를 설치하고, 해고 절대 반대, 최저 임금제 확립과 대우 개선, 산업별 통일 단체 협약 획득, 요시다 내각 타도 등의 목표를 내건 산별 10월 투쟁(10월 공세)에 돌입했다.[27] 먼저 신문 통신 방송 지부가 쟁의에 돌입했고, 10월 5일에는 NHK 라디오가 방송을 중단했다. 이어서 전산협도 쟁의에 돌입하여, 정전 파업이나 송전 중단 전술 등을 구사하여, 생활비를 기초로 하는 최저 임금제(전산형 임금 체계)를 쟁취했다. 11월 1일에는, 노동조합과 경영자 단체 간의 산업별 단체 협약 기준안을 발표했다.
10월 이후 운동을 계속해 온 교원・전체・국철・관공서의 노동조합은, 11월 26일에 전 관공서 공동 투쟁 위원회를 발족하여, 대폭 임금 인상과 최저 임금제 확립, 연말 자금 지급, 단체 협약 체결 등을 공동으로 요구했다. 산별 회의도 이 움직임을 지원하고, 사공 양당・일농・총동맹 등과 함께 12월 17일의 "생활권 확보・요시다 내각 타도 국민 대회"에 참가했다.[28]
2. 3. 2·1 제너럴 스트라이크 좌절과 그 영향 (1947년)
산별은 1947년 2월 1일 대규모 총파업을 계획했다.[10] 호소야 마쓰타와 국철노동조합 위원장 이 야시로는 ''산별'', ''총동맹'', ''전일본노동조합회의'', 일본 공산당, 일본 사회당으로 구성된 ''전투''('공동 파업 행동 전국 위원회')를 결성했다.[6] 파업의 요구 사항은 공공 부문 근로자의 근로 조건 개선이었다. 400만 명의 노동자가 파업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4] 파업 준비 과정에서 정치적 분위기는 긴장되었다. 1947년 1월 ''산별'' 위원장이 암살 시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9]
그러나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개입하여 파업이 일본 국민의 복지에 반한다고 주장하며 파업을 막았다. 파업 준비는 ''산별'' 내 공산주의자와 비공산주의자 간의 분열을 초래했다. 그 결과, 실패한 파업은 ''산별''과 공산당에 대한 정치적 반발을 초래했다. 공공 부문에서의 노동조합 조직에 대한 제한이 가해졌고, 핵심 공산주의자들이 해고되었다. 결과적으로, ''산별'' 내에서 탈당과 분열이 발생했다.[10]
2. 4. 산별 민주화 동맹(민동)과의 갈등 및 조직 약화 (1948-1950년)
1948년, 산별회의 내부에서 일본 공산당의 지배에 반대하는 세력이 호소야 마쓰타를 중심으로 산별 민주화 동맹(민동)을 결성했다.[12] 민동은 국철에서 시작되어[13] 미 군정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세력을 확장했다.[2]산별회의는 민동의 결성에 대해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았으나, 이후 입장을 바꿔 민동파 임원과 서기들의 사임을 요구했다. 그러나 결국 민동의 존폐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애매한 성명을 발표했고, 이는 조직 내 갈등을 심화시켰다.[35]
1949년, 민동 운동은 산별회의에서 축출되었지만, 이미 산별회의는 분열과 이탈로 인해 심각하게 약화된 상태였다.[2] 레드 퍼지로 인한 탄압은 산별회의에 큰 타격을 주었다. 주요 노조들이 탈퇴하면서 조합원 수는 급감했다.
1950년, 민동파를 중심으로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가 결성되면서 산별회의는 소수파로 전락했다. 이후 공산당의 혼란 속에서 세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1950년대 중반에는 조합원 수가 1만 수천 명으로 감소했으며, 결국 1958년에 해산했다.
2. 5. 쇠퇴와 해산 (1950-1958년)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이후, 미 군정은 일본 공산당과 그 영향력 아래에 있는 단체들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을 가했고, 이는 전일본산업별노동조합회의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14] 레드 퍼지로 인해 신문·방송, 전기, 영화, 일통, 철강, 화학, 석탄, 사철 등에서 1만 명 이상, 공무원에서 1,000명 이상이 해고되었다.[17]이러한 탄압과 산별 민주화 동맹(민동)파의 탈퇴 및 이탈로 인해 전일본산업별노동조합회의는 급격히 쇠퇴했다. 1950년 2월, 전일본 항만 노동조합이 탈퇴했고,[15] 1951년에는 조합원 수가 약 4만 7천 명으로 감소했다.[16] 1953년에는 산하 노조의 총 조합원 수가 1만 3천 명에 불과했다.[19] 결국 1958년 2월 15일, 전일본산업별노동조합회의는 공식적으로 해산했다.[18]
3. 조직 체계
1947년 11월 정기 대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각 도도부현에서 산별 회의 계열 노동조합이 참가하고 있는 조직은 지방 산별형, 노조 회의형, 현노협형으로 분류된다.
- 지방 산별형: 산별 회의에 가입한 조합을 중심으로 조직.
- 노조 회의형: 산별 계열, 총동맹 계열, 기타 중립 노동조합이 각각 소속별·산업별로 가맹.
- 현노협형: 각 노동조합이 소속별·산업별로 정리되지 않고 포괄적으로 조직.
조직명 | 결성 | 조합원 수 | 성격 | 비고 |
---|---|---|---|---|
홋카이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9월 13일 | 142,073명 | 지방 산별형 | 무로란 지구 협의회 있음. 총동맹 등과 홋카이도 노동조합 회의를 조직 (1947년 10월). |
아오모리현 전 노동조합 회의 | 1947년 3월 9일 | 47,383명 | 지방 산별형 | 나카히로 지구·난부 지구·서북 지구·미야하치 지구·가미키타 지구에 각각 전노 회의 있음. |
전 이와테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24,274명 | 지방 산별형 | 와가 지구 산별 회의 있음. | |
미야기현 노동조합 협의회 | 1946년 3월 | 16,1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전력·화학 등이 가맹. 총동맹·전 관공·국철·교조 등과 미야기 지방 노동조합 합동 협의회를 조직 (1947년 2월). |
아키타현 노동조합 협의회 | 1946년 3월 28일 | 39,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국철·전력·광산·제석·도호쿠 비료·도호쿠 펄프 등이 가맹. 히라카 지구·유리 지구·기타지카 지구 노협 있음. 총동맹 등과 아키타현 노동조합 회의를 조직 (1947년 2월). |
야마가타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11월 8일 | 33,798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국철·교조·전력 등이 가맹. 산별 야마가타 지방 회의에서 개편 (1947년 9월). |
후쿠시마현 노동조합 중앙 연맹 | 1946년 가을 무렵 | 노조 회의형 | 전 전신·국철·전력 등이 가맹. 총동맹 등과 후쿠시마현 노동조합 회의를 조직 (1947년 3월). | |
이바라키현 노동조합 연맹 | 1946년 초 무렵 | 22,530명 | 현노협형 | ※ 총동맹 계열을 포함한 현내 노조의 연락 조직. |
도치기현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2월 9일 | 32,102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전력·아시오 후루카와 전선 등이 가맹. 총동맹 등과 함께 연락 협의회를 조직 (1947년 8월). |
군마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7월 26일 | 39,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국철·기기·전력 등이 가맹. |
사이타마현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7년 10월 7일 | 19,348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기기·전공·전력 등이 가맹. 현노협으로 발족 (1946년 1월), 산별 정리를 거쳐 결성. |
지바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8월 27일 | 30,811명 | 지방 산별형 | 10월 투쟁 시에 총동맹 계열이 이탈하지만, 지구 회의에서는 총동맹·전 관공과 함께 조직하는 경우도 있음. |
(도쿄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 1947년 12월 결성 예정. | |||
가나가와현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9월 13일 | 82,000명 | 지방 산별형 | 국철·기기·전공·전력·조선 등이 가맹. 현노협으로 발족 (1946년 1월), 개편. |
니가타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7년 4월 3일 | 30,000명 | 지방 산별형 | 현노련으로 발족 (1946년 3월), 산별·총동맹·전 관공 등으로 정리된 후, 니가타현 노동조합 회의를 조직 (1947년 8월). |
도야마현 노동조합 협의회 | ※ 상세 불명. | |||
전일본 산업별 노동조합 이시카와현 지방 회의 | 1947년 11월 10일 | 16,029명 | 지방 산별형 | 현노련으로 발족 (1946년 1월), 총동맹·전 관공이 이탈하여 산별로 개편된 후, 이시카와 전 노동조합 회의를 조직 (1947년 9월). |
후쿠이현 노동조합 협의회 | 1947년 4월 10일 | 16,1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국철·전력·도요보 등이 가맹. |
야마나시현 노동조합 협의회 | 25,000명 | 현노협형 | ※ 총동맹 계열을 포함한 현내 노조의 연락 조직. | |
나가노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9월 5일 | 85,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전력 등이 가맹. |
기후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57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전력 등이 가맹. | |
시즈오카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12월 9일 | 96,595명 | 노조 회의형 | 산별 계열·총동맹 계열의 각 단산 등이 가맹. |
아이치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8월 12일 | 92,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국철·철노·전력 등이 가맹. 총동맹·전 관공·전 자동차·요업 등과 아이치 노동조합 회의를 조직. |
미에현 | ※ 미조직. | |||
전일본 산업별 노동조합 간사이 지방 회의 | 1946년 9월 18일 | 124,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닛통·철노·기기·전력 등이 가맹. 10월 투쟁을 통해 오사카를 중심으로 교토·효고·시가 등 간사이 일원을 조직. |
시가현 노동조합 연맹 | 1947년 2월 | 7,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전력·사철 등이 가맹. |
산별 간사이 지방 회의 교토 지구 회의 | 1947년 1월 17일 | 27,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전력·도자기 등이 가맹. 10월 투쟁을 통해 만들어진 준비회를 거쳐 결성. 총동맹·전 관공·교토 금속 노동조합 연합회(KKR) 등과 교토 지방 노동조합 협의회를 조직 (1947년 4월). |
오사카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7년 여름 | 65,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철노·기기·전공·차량·전력 등이 가맹. |
효고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2월 1일 | 39,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닛통·철노·기기·전공·차량·전력·항만 등이 가맹. 총동맹 등과 효고현 노동조합 협의회를 조직. |
나라현 전 노동조합 협의회 | 1947년 6월 27일 | 44,367명 | 현노협형 | 전 전신·국철·교통·전력·섬유·산림·토건 등이 가맹. 총동맹 계열을 포함한 현내 노조의 연락 기관. |
와카야마현 | ※ 미조직. | |||
돗토리현 노동조합 협의회 | 1946년 3월 4일 | 현노협형 | ※ 상세 불명. | |
시마네현 노동조합 총연합 | 18,532명 | 현노협형 | 각 지구 조직의 연합체. 산별 계열로는 시마네 화학·히타치 야스기 제작소 등. | |
오카야마현 지방 노동조합 회의 | 1947년 4월 10일 | 37,000명 | 현노협형 | 전 전신·국철·닛통·교통·조선·전력·잠사·미쓰이 광산 등이 가맹. |
히로시마현 노동조합 협의회 | 현노협형 | ※ 상세 불명. | ||
야마구치현 노동조합 공동 투쟁 협의회 | 40,000명 | 현노련의 무력화에 따라 산별 계열 노조에서 새롭게 조직. | ||
도쿠시마 지구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지방 산별형 | ※ 상세 불명. | ||
가가와현 노동조합 협의회 | 지로협형 | |||
에히메현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12월 | 지방 산별형 | ||
고치현 노동조합 협의회 | 지로협형 | |||
규슈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12월 | 150,000명 | 지방 산별형 | 철노·화학·전탄·전력·항만 등이 가맹. 구루메·나오가타·와카마쓰·토바타·미이케 등에 각각 지구 노협 있음. |
사가현 노동조합 연합회 | 현노협형 | 전공·전력·총동맹 등이 가맹. | ||
나가사키현 노동조합 회의 | 현노협형 | 전 전신·국철·조선·전력·항만 등이 가맹. | ||
구마모토현 노동조합 연합회 | 1946년 11월 4일 | 18,500명 | 현노협형 | ※ 총동맹 계열을 포함한 현내 노조의 연락 조직. |
오이타현 노동조합 협의회 | 1946년 4월 | 20,000명 | 현노협형 | 전 전신·국철·닛통·기기·전력 등이 가맹. 총동맹 계열이 탈퇴 (1946년 7월). 총동맹·전 관공 등과 오이타 지구 노동조합 전체 회의를 조직 (1947년 7월). |
미야자키현 | ※ 미조직. | |||
가고시마현 노동조합 협의회 | 1946년 6월 27일 | 45,000명 | 현노협형 | 국철·교조·전력·항만·해원·담배·목재 등이 가맹. 총동맹 계열·전 관공 계열을 포함한 현내 노조의 연락 조직. |
3. 1. 중앙 조직
산별회의는 중앙조직으로 대회, 간사회, 집행위원회, 확대 중앙집행위원회를 두었다. 본부는 도쿄도 미나토구 시바신바시 7번지 12 산별 회관에 있었다.[41][42]제1회 대회 당시 사무국 전문부는 조직부, 교육선전부, 재정부, 부인대책부, 청년대책부, 법률부, 국제부, 출판부, 문화부, 기관지부로 구성되었다.
3. 2. 지방 조직
오키나와를 제외한 46도도부현에 "가나가와현 지방 산별 회의" 등의 명칭을 가진 지방 조직이 만들어졌다. 로컬 센터의 조직 상황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었으며, 중앙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예를 들어 오사카에서는 니시오 스에히로로 대표되는 것처럼 전전부터 우파를 계승한 총동맹 계열의 세력이 강한 지역이었지만, 1946년 전반기 시점에서 산별 회의 계열 활동가와 공산당 오사카부 위원회(시다 시게오 등)는 총동맹으로 일원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공산당 중앙이 독자 조직 결성을 결정하고 중앙에서 산별 회의가 만들어진 점, 현장 활동가가 총동맹의 보수적 체질과 조직 방침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점 등으로 인해 독자적으로 산별 회의 간사이 지방 회의가 결성된 것으로 보인다.
1947년 11월 정기 대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각 도도부현에서 산별 회의 계열 노동조합이 참가하고 있는 조직은 ① 지방 산별형, ② 노조 회의형, ③ 현노협형으로 분류된다.
- 지방 산별형: 산별 회의에 가입한 조합을 중심으로 조직.
- 노조 회의형: 산별 계열, 총동맹 계열, 기타 중립 노동조합이 각각 소속별·산업별로 가맹.
- 현노협형: 각 노동조합이 소속별·산업별로 정리되지 않고 포괄적으로 조직.
조직명 | 결성 | 조합원 수 | 성격 | 비고 |
---|---|---|---|---|
홋카이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9월 13일 | 142,073명 | 지방 산별형 | 무로란 지구 협의회 있음. 총동맹 등과 홋카이도 노동조합 회의를 조직 (1947년 10월). |
아오모리현 전 노동조합 회의 | 1947년 3월 9일 | 47,383명 | 〃 | 나카히로 지구·난부 지구·서북 지구·미야하치 지구·가미키타 지구에 각각 전노 회의 있음. |
전 이와테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24,274명 | 〃 | 와가 지구 산별 회의 있음. | |
미야기현 노동조합 협의회 | 1946년 3월 | 16,100명 | 〃 | 전 전신·전력·화학 등이 가맹. 총동맹·전 관공·국철·교조 등과 미야기 지방 노동조합 합동 협의회를 조직 (1947년 2월). |
아키타현 노동조합 협의회 | 1946년 3월 28일 | 39,000명 | 〃 | 전 전신·국철·전력·광산·제석·도호쿠 비료·도호쿠 펄프 등이 가맹. 히라카 지구·유리 지구·기타지카 지구 노협 있음. 총동맹 등과 아키타현 노동조합 회의를 조직 (1947년 2월). |
야마가타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11월 8일 | 33,798명 | 〃 | 전 전신·국철·교조·전력 등이 가맹. 산별 야마가타 지방 회의에서 개편 (1947년 9월). |
후쿠시마현 노동조합 중앙 연맹 | 1946년 가을 무렵 | 노조 회의형 | 전 전신·국철·전력 등이 가맹. 총동맹 등과 후쿠시마현 노동조합 회의를 조직 (1947년 3월). | |
이바라키현 노동조합 연맹 | 1946년 초 무렵 | 22,530명 | 현노협형 | ※ 총동맹 계열을 포함한 현내 노조의 연락 조직. |
도치기현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2월 9일 | 32,102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전력·아시오 후루카와 전선 등이 가맹. 총동맹 등과 함께 연락 협의회를 조직 (1947년 8월). |
군마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7월 26일 | 39,000명 | 〃 | 전 전신·국철·기기·전력 등이 가맹. |
사이타마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7년 10월 7일 | 19,348명 | 〃 | 전 전신·기기·전공·전력 등이 가맹. 현노협으로 발족 (1946년 1월), 산별 정리를 거쳐 결성. |
지바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8월 27일 | 30,811명 | 〃 | 10월 투쟁 시에 총동맹 계열이 이탈하지만, 지구 회의에서는 총동맹·전 관공과 함께 조직하는 경우도 있음. |
(도쿄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 1947년 12월 결성 예정. | |||
가나가와현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9월 13일 | 82,000명 | 지방 산별형 | 국철·기기·전공·전력·조선 등이 가맹. 현노협으로 발족 (1946년 1월), 개편. |
니가타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7년 4월 3일 | 30,000명 | 〃 | 현노련으로 발족 (1946년 3월), 산별·총동맹·전 관공 등으로 정리된 후, 니가타현 노동조합 회의를 조직 (1947년 8월). |
도야마현 노동조합 협의회 | ※ 상세 불명. | |||
전일본 산업별 노동조합 이시카와 지방 회의 | 1947년 11월 10일 | 16,029명 | 지방 산별형 | 현노련으로 발족 (1946년 1월), 총동맹·전 관공이 이탈하여 산별로 개편된 후, 이시카와 전 노동조합 회의를 조직 (1947년 9월). |
후쿠이현 노동조합 협의회 | 1947년 4월 10일 | 16,100명 | 〃 | 전 전신·국철·전력·도요보 등이 가맹. |
야마나시현 노동조합 협의회 | 25,000명 | 현노협형 | ※ 총동맹 계열을 포함한 현내 노조의 연락 조직. | |
나가노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9월 5일 | 85,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전력 등이 가맹. |
기후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570명 | 〃 | 전 전신·전력 등이 가맹. | |
시즈오카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12월 9일 | 96,595명 | 노조 회의형 | 산별 계열·총동맹 계열의 각 단산 등이 가맹. |
아이치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8월 12일 | 92,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국철·철노·전력 등이 가맹. 총동맹·전 관공·전 자동차·요업 등과 아이치 노동조합 회의를 조직. |
미에현 | ※ 미조직. | |||
전일본 산업별 노동조합 간사이 지방 회의 | 1946년 9월 18일 | 124,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닛통·철노·기기·전력 등이 가맹. 10월 투쟁을 통해 오사카를 중심으로 교토·효고·시가 등 간사이 일원을 조직. |
시가현 노동조합 연맹 | 1947년 2월 | 7,000명 | 〃 | 전 전신·전력·사철 등이 가맹. |
산별 간사이 지방 회의 교토 지구 회의 | 1947년 1월 17일 | 27,000명 | 〃 | 전 전신·전력·도자기 등이 가맹. 10월 투쟁을 통해 만들어진 준비회를 거쳐 결성. 총동맹·전 관공·교토 금속 노동조합 연합회(KKR) 등과 교토 지방 노동조합 협의회를 조직 (1947년 4월). |
오사카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7년 여름 | 65,000명 | 〃 | 전 전신·철노·기기·전공·차량·전력 등이 가맹. |
효고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2월 1일 | 39,000명 | 〃 | 전 전신·닛통·철노·기기·전공·차량·전력·항만 등이 가맹. 총동맹 등과 효고현 노동조합 협의회를 조직. |
나라현 전 노동조합 협의회 | 1947년 6월 27일 | 44,367명 | 현노협형 | 전 전신·국철·교통·전력·섬유·산림·토건 등이 가맹. 총동맹 계열을 포함한 현내 노조의 연락 기관. |
와카야마현 | ※ 미조직. | |||
돗토리현 노동조합 협의회 | 1946년 3월 4일 | 현노협형 | ※ 상세 불명. | |
시마네현 노동조합 총연합 | 18,532명 | 〃 | 각 지구 조직의 연합체. 산별 계열로는 시마네 화학·히타치 야스기 제작소 등. | |
오카야마현 지방 노동조합 회의 | 1947년 4월 10일 | 37,000명 | 〃 | 전 전신·국철·닛통·교통·조선·전력·잠사·미쓰이 광산 등이 가맹. |
히로시마현 노동조합 협의회 | 〃 | ※ 상세 불명. | ||
야마구치현 노동조합 공동 투쟁 협의회 | 40,000명 | 현노련의 무력화에 따라 산별 계열 노조에서 새롭게 조직. | ||
도쿠시마 지구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지방 산별형 | ※ 상세 불명. | ||
가가와현 노동조합 협의회 | 지로협형 | |||
에히메현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12월 | 지방 산별형 | ||
고치현 노동조합 협의회 | 지로협형 | |||
규슈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12월 | 150,000명 | 지방 산별형 | 철노·화학·전탄·전력·항만 등이 가맹. 구루메·나오가타·와카마쓰·토바타·미이케 등에 각각 지구 노협 있음. |
사가 노동조합 연합회 | 현노협형 | 전공·전력·총동맹 등이 가맹. | ||
나가사키현 노동조합 회의 | 〃 | 전 전신·국철·조선·전력·항만 등이 가맹. | ||
구마모토현 노동조합 연합회 | 1946년 11월 4일 | 18,500명 | 〃 | ※ 총동맹 계열을 포함한 현내 노조의 연락 조직. |
오이타현 노동조합 협의회 | 1946년 4월 | 20,000명 | 〃 | 전 전신·국철·닛통·기기·전력 등이 가맹. 총동맹 계열이 탈퇴 (1946년 7월). 총동맹·전 관공 등과 오이타 지구 노동조합 전체 회의를 조직 (1947년 7월). |
미야자키현 | ※ 미조직. | |||
가고시마현 노동조합 협의회 | 1946년 6월 27일 | 45,000명 | 현노협형 | 국철·교조·전력·항만·해원·담배·목재 등이 가맹. 총동맹 계열·전 관공 계열을 포함한 현내 노조의 연락 조직. |
3. 3. 역대 임원
대회 (선출 시기) | 의장 | 부의장 | 사무국장 | 간사 | 비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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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대회 (1946년 8월) | 청도극기 (신문통신) | 사카구치 야스오 (국철 도쿄) 도바시 이치요시 (전체) | 사토 타이조 (전산협) | 스즈키 에이이치 (화학·준) 타츠다 마사시 (전철노) 츠츠라 와타루 (전탄) | 나카하라 준키치 (관동전공) 마츠모토 신이치 (인쇄출판) 야마자키 료이치 (기기·준) | 사무국 차장 =호소야 마츠타 (화학·준) |
임시 대회 (1947년 7월) | 관도 (전일본기기) | 카메다 토고 (전일화) 미츠무라 킨스케 (전체) | 요시다 켄지 (기기) | 오노 겐조 (전일통) 카와바타 세이지 (전산) 키쿠치 슈고 (전식량) 키타 코지 (인쇄출판) 타이마스 고로 (전항만) | 타카야마 게이타로 (전탄) 나카하라 준키치 (전전공) 마츠무라 히로시 (전철노) 미와 요시아키 (전생보) 와다 지로 (전국차량) | |
제3회 정기 대회 (1947년 11월) | 아라가 후미키치 (전국차량) 오노 겐조 (전일통) 카와바타 세이지 (전산) 카네야마 사토시 (전생보) 키쿠치 슈고 (전식량) 사가 젠페이 (일영연) 키타 코지 (인쇄출판) 키요사와 소지 (전체) | 타이마스 고로 (전항만) 타카야마 게이타로 (전탄) 나카하라 준키치 (전전공) 후루카와 치후쿠 (전목로) 마츠무라 히로시 (전철노) 야나기사와 키요오 (신문통신) 유자와 키이치 (전체) | ||||
제4회 정기 대회 (1948년 11월) | (전금속) | 사가 젠페이 (일영연) 타카하라 신이치 (전체) | 타카쿠라 킨이치로 (전산) | 아라가 후미키치 (전금속) 카네코 켄타 (전금속) 사루와타리 후미에 (전일화) 스즈키 지로 (전전공) 타케우치 하치타로 (전생보) | 테라이 타츠오 (전주로) 나카하라 준키치 (전전공) 히사무라 분고 (전체) 후루카와 치후쿠 (전목로) 야스다 시게루 (전항만) | |
제5회 정기 대회 (1949년 11월) | 요시다 시지 (전금속) | 코바야시 이쿠오 (일영연) 타카하라 신이치 (전체로) | 아다치 쵸타로 (전산) | 아라가 후미키치 (전금속) 이토 키요시 (도쿄토건) 키시다 쵸지 (전항만) | 스기우라 마사오 (인쇄출판) 하라다 야스오미 (전건로) 요코타 쿄 (전의협) | |
(1950년 11월) | 타카하라 후미카즈 (전체로) | 요시다 히데오 (전의협) | colspan="2"| | |||
(1952년 11월) | 스기우라 마사오 (인쇄출판) | 마스다 미네오 (전체로) | colspan="2"| | |||
제6회 대회 (1956년 7월) | 이치카와 후쿠헤이 (전금속) | 아가츠마 사부로 (전금속) 토노조노 타카히사 (전의협) | 스기우라 마사오 (본부) | colspan="2"| | ||
제7회 정기 대회 (1957년 10월) | 아가츠마 사부로 (전금속) | colspan="2"| | 1958년 2월 15일의 제8회 임시 대회에서 임기 종료. |
4. 강령 및 목적
-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한다.
- 봉건적, 식민지적 노동 조건을 없애기 위해 투쟁한다.
- 주 44시간 노동제 획득을 위해 투쟁한다.
- 부인, 소년 노동자의 완전한 보호를 위해 투쟁한다.
- 자본가 전액 부담의 실업 보험 획득을 위해 투쟁한다.
- 민족 경제의 부흥을 위해 투쟁한다.
- 파시즘, 군국주의의 잔존 세력을 타도하기 위해 투쟁한다.
- 노동 전선의 완전한 통일을 위해 투쟁한다.
- 노동하는 농민과의 동맹 결성을 위해 투쟁한다.
- 세계 노동자 계급과 제휴하여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 투쟁한다.
'''산별회의 규약'''(초록)[44]
: 제2조 본 회의는 다음 각 항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
:: 1. 인종, 국적, 신앙, 정치적 신념에 관계없이 모든 민주주의적 노동조합과 모든 미조직 노동자를 산업별 단일 조합으로 조직하고, 나아가 이를 전 계급적 단결로 결집한다.
:: 2.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권리를 옹호하고, 노동자의 권리와 자유를 확대한다.
:: 3. 일본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철저히 개선하고, 노동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사회 입법을 획득한다.
:: 4. 생산에 대한 노동자의 발언권과 결정권을 강화하고, 노동자 및 모든 근로 인민을 위해 산업을 부흥시킨다.
:: 5. 일본의 봉건주의, 전제주의, 군국주의, 파시즘 및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모든 세력을 타도한다.
:: 6. 전 세계 노동자의 국제적 단결에 참여하고 모든 전쟁의 근원과 투쟁함으로써 세계 평화를 영구적으로 확보한다.
: 제3조 본 회의는 그 목적 실현을 위해 다음 활동을 수행한다.
:: 1. 정세 검토와 계급적 정책 결정, 그리고 그것을 공동 수행한다.
:: 2. 산업별 조합 간의 정보를 교환 수집한다.
:: 3. 산업별 조합 간의 공동 투쟁을 조직하거나 공동 지원한다.
:: 4. 산업별 조합을 강화 확대하기 위해 지원을 제공한다.
:: 5. 지방 산업별 회의와 연락한다.
:: 6. 노동 조사와 산업 조사를 실시한다.
:: 7. 노동 학교 및 기타 가맹 조합의 문화 활동에 대해 지원을 제공한다.
:: 8. 출판물, 기관지를 발행한다.
:: 9. 국제적 정보 교환과 연락을 수행한다.
5. 관련 단체
1947년 11월 정기 대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오키나와를 제외한 46도도부현에 "가나가와현 지방 산별 회의" 등의 명칭을 가진 지방 조직이 만들어졌다. 각 도도부현에서 산별 회의 계열 노동조합이 참가하고 있는 조직은 ① 지방 산별형, ② 노조 회의형, ③ 현노협형으로 분류된다.
- 지방 산별형: 산별 회의에 가입한 조합을 중심으로 조직.
- 노조 회의형: 산별 계열, 총동맹 계열, 기타 중립 노동조합이 각각 소속별·산업별로 가맹.
- 현노협형: 각 노동조합이 소속별·산업별로 정리되지 않고 포괄적으로 조직.
로컬 센터의 조직 상황은 지역에 따라 제각각이었으며, 중앙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오사카에서는 니시오 스에히로로 대표되는 우파 계승의 총동맹 계열의 세력이 강했지만, 1946년 전반기 시점에서 산별 회의 계열 활동가와 일본 공산당 오사카부 위원회(시다 시게오 등)는 총동맹으로 일원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일본 공산당 중앙이 독자 조직 결성을 결정하고 중앙에서 산별 회의가 만들어진 점, 현장 활동가가 총동맹의 보수적 체질과 조직 방침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점 등으로 인해 독자적으로 산별 회의 간사이 지방 회의가 결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직명 | 결성 | 조합원 수 | 성격 | 비고 |
---|---|---|---|---|
홋카이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9월 13일 | 142,073명 | 지방 산별형 | 무로란 지구 협의회 있음. 총동맹 등과 홋카이도 노동조합 회의를 조직 (1947년 10월). |
아오모리현 전 노동조합 회의 | 1947년 3월 9일 | 47,383명 | 지방 산별형 | 나카히로 지구·난부 지구·서북 지구·미야하치 지구·가미키타 지구에 각각 전노 회의 있음. |
전 이와테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24,274명 | 지방 산별형 | 와가 지구 산별 회의 있음. | |
미야기현 노동조합 협의회 | 1946년 3월 | 16,1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전력·화학 등이 가맹. 총동맹·전 관공·국철·교조 등과 미야기 지방 노동조합 합동 협의회를 조직 (1947년 2월). |
아키타현 노동조합 협의회 | 1946년 3월 28일 | 39,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국철·전력·광산·제석·도호쿠 비료·도호쿠 펄프 등이 가맹. 히라카 지구·유리 지구·기타지카 지구 노협 있음. 총동맹 등과 아키타현 노동조합 회의를 조직 (1947년 2월). |
야마가타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11월 8일 | 33,798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국철·교조·전력 등이 가맹. 산별 야마가타 지방 회의에서 개편 (1947년 9월). |
후쿠시마현 노동조합 중앙 연맹 | 1946년 가을 무렵 | 노조 회의형 | 전 전신·국철·전력 등이 가맹. 총동맹 등과 후쿠시마현 노동조합 회의를 조직 (1947년 3월). | |
이바라키현 노동조합 연맹 | 1946년 초 무렵 | 22,530명 | 현노협형 | ※ 총동맹 계열을 포함한 현내 노조의 연락 조직. |
도치기현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2월 9일 | 32,102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전력·아시오 후루카와 전선 등이 가맹. 총동맹 등과 함께 연락 협의회를 조직 (1947년 8월). |
군마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7월 26일 | 39,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국철·기기·전력 등이 가맹. |
사이타마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7년 10월 7일 | 19,348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기기·전공·전력 등이 가맹. 현노협으로 발족 (1946년 1월), 산별 정리를 거쳐 결성. |
지바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8월 27일 | 30,811명 | 지방 산별형 | 10월 투쟁 시에 총동맹 계열이 이탈하지만, 지구 회의에서는 총동맹·전 관공과 함께 조직하는 경우도 있음. |
(도쿄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 1947년 12월 결성 예정. | |||
가나가와현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9월 13일 | 82,000명 | 지방 산별형 | 국철·기기·전공·전력·조선 등이 가맹. 현노협으로 발족 (1946년 1월), 개편. |
니가타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7년 4월 3일 | 30,000명 | 지방 산별형 | 현노련으로 발족 (1946년 3월), 산별·총동맹·전 관공 등으로 정리된 후, 니가타현 노동조합 회의를 조직 (1947년 8월). |
도야마현 노동조합 협의회 | ※ 상세 불명. | |||
전일본 산업별 노동조합 이시카와 지방 회의 | 1947년 11월 10일 | 16,029명 | 지방 산별형 | 현노련으로 발족 (1946년 1월), 총동맹·전 관공이 이탈하여 산별로 개편된 후, 이시카와 전 노동조합 회의를 조직 (1947년 9월). |
후쿠이현 노동조합 협의회 | 1947년 4월 10일 | 16,1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국철·전력·도요보 등이 가맹. |
야마나시현 노동조합 협의회 | 25,000명 | 현노협형 | ※ 총동맹 계열을 포함한 현내 노조의 연락 조직. | |
나가노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9월 5일 | 85,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전력 등이 가맹. |
기후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57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전력 등이 가맹. | |
시즈오카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12월 9일 | 96,595명 | 노조 회의형 | 산별 계열·총동맹 계열의 각 단산 등이 가맹. |
아이치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8월 12일 | 92,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국철·철노·전력 등이 가맹. 총동맹·전 관공·전 자동차·요업 등과 아이치 노동조합 회의를 조직. |
미에현 | ※ 미조직. | |||
전일본 산업별 노동조합 간사이 지방 회의 | 1946년 9월 18일 | 124,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닛통·철노·기기·전력 등이 가맹. 10월 투쟁을 통해 오사카를 중심으로 교토·효고·시가 등 간사이 일원을 조직. |
시가현 노동조합 연맹 | 1947년 2월 | 7,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전력·사철 등이 가맹. |
산별 간사이 지방 회의 교토 지구 회의 | 1947년 1월 17일 | 27,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전력·도자기 등이 가맹. 10월 투쟁을 통해 만들어진 준비회를 거쳐 결성. 총동맹·전 관공·교토 금속 노동조합 연합회(KKR) 등과 교토 지방 노동조합 협의회를 조직 (1947년 4월). |
오사카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7년 여름 | 65,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철노·기기·전공·차량·전력 등이 가맹. |
효고현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2월 1일 | 39,000명 | 지방 산별형 | 전 전신·닛통·철노·기기·전공·차량·전력·항만 등이 가맹. 총동맹 등과 효고현 노동조합 협의회를 조직. |
나라현 전 노동조합 협의회 | 1947년 6월 27일 | 44,367명 | 현노협형 | 전 전신·국철·교통·전력·섬유·산림·토건 등이 가맹. 총동맹 계열을 포함한 현내 노조의 연락 기관. |
와카야마현 | ※ 미조직. | |||
돗토리현 노동조합 협의회 | 1946년 3월 4일 | 현노협형 | ※ 상세 불명. | |
시마네현 노동조합 총연합 | 18,532명 | 현노협형 | 각 지구 조직의 연합체. 산별 계열로는 시마네 화학·히타치 야스기 제작소 등. | |
오카야마현 지방 노동조합 회의 | 1947년 4월 10일 | 37,000명 | 현노협형 | 전 전신·국철·닛통·교통·조선·전력·잠사·미쓰이 광산 등이 가맹. |
히로시마현 노동조합 협의회 | 현노협형 | ※ 상세 불명. | ||
야마구치현 노동조합 공동 투쟁 협의회 | 40,000명 | 현노련의 무력화에 따라 산별 계열 노조에서 새롭게 조직. | ||
도쿠시마 지구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지방 산별형 | ※ 상세 불명. | ||
가가와현 노동조합 협의회 | 지로협형 | |||
에히메현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12월 | 지방 산별형 | ||
고치현 노동조합 협의회 | 지로협형 | |||
규슈 지방 산업별 노동조합 회의 | 1946년 12월 | 150,000명 | 지방 산별형 | 철노·화학·전탄·전력·항만 등이 가맹. 구루메·나오가타·와카마쓰·토바타·미이케 등에 각각 지구 노협 있음. |
사가 노동조합 연합회 | 현노협형 | 전공·전력·총동맹 등이 가맹. | ||
나가사키현 노동조합 회의 | 현노협형 | 전 전신·국철·조선·전력·항만 등이 가맹. | ||
구마모토현 노동조합 연합회 | 1946년 11월 4일 | 18,500명 | 현노협형 | ※ 총동맹 계열을 포함한 현내 노조의 연락 조직. |
오이타현 노동조합 협의회 | 1946년 4월 | 20,000명 | 현노협형 | 전 전신·국철·닛통·기기·전력 등이 가맹. 총동맹 계열이 탈퇴 (1946년 7월). 총동맹·전 관공 등과 오이타 지구 노동조합 전체 회의를 조직 (1947년 7월). |
미야자키현 | ※ 미조직. | |||
가고시마현 노동조합 협의회 | 1946년 6월 27일 | 45,000명 | 현노협형 | 국철·교조·전력·항만·해원·담배·목재 등이 가맹. 총동맹 계열·전 관공 계열을 포함한 현내 노조의 연락 조직. |
(출전) "산별 회의 지방 조직의 상황" (산별 회의 제3회 대회 자료, 1947년 11월, 『자료 노동 운동사 쇼와 20, 21년』, 1951년, pp.766-774)에서 작성.
- '''노농 구원회'''(이후 일본 국민 구원회): 노동 운동과 농민 운동 탄압 피해자를 구원하는 인권·법조 단체. 1945년 10월 "해방 운동 희생자 구원회"로 재건, 1946년 1월 "근로자 생활 옹호 협회", 12월 "노농 운동 구원회", 1948년 12월 "일본 노농 구원회"로 개칭. 산별회의 약화에 따라 함께 약화[49], 1951년 11월 현재의 일본 국민 구원회로 개칭.
- '''산업 부흥 회의, 경제 부흥 회의''': 산별회의가 참가한 경제 재건 협의 단체. 1946년 10월 7일 "산업 부흥 회의" 결성(전탄·국철총련·전산협 등 21개 조합, 민과·관동 식량 민주 협의회 등 참가). 1947년 2월 6일, 총동맹·일노 회의·경제 동우회·일산협·기술 연맹 등과 함께 "경제 부흥 회의" 조직.[50][51]
- '''일본 민주 부인 협의회'''(민부협): 1948년 4월 19일 산별회의 참가 노동조합 부인부, 부인 민주 클럽·일본 협동 조합 동맹 부인부 등이 결성.[52] 일본 아이를 지키는 모임 등에 관여.
- '''민주주의 옹호 동맹'''(민옹동): 1948년 6월 9일 "노농 연락회" 결성(사회당, 노농당 등, 총동맹 제외). 8월 27일 민주주의 옹호 동맹 결성(공산당·노농당·산별회의·일농·부락 해방 전국 위원회 등 95개 단체). 한국 전쟁 당시 탄압으로 1950년 6월 해산.[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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