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화왕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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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창녕 화왕산성은 경상남도 창녕군에 위치한 포곡식 산성이다. 화왕산 정상부의 험준한 암벽과 골짜기를 이용하여 축조되었으며, 둘레는 약 1.8km이다. 동쪽 성벽은 대부분 돌로, 서쪽 성벽은 흙과 돌을 섞어 쌓았다. 남쪽으로는 영산 방면과 낙동강, 북쪽으로는 현풍 방면을 통제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에 위치해 가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장기간에 걸쳐 군사적으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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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화왕산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지도 | |
기본 정보 | |
이름 | 창녕 화왕산성 (昌寧 火旺山城) |
영문 이름 | Hwawangsanseong Fortress, Changnyeong |
유형 | 사적 |
지정 번호 | 64 |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시대 | 삼국시대 |
주소 |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산322번지 |
면적 | 226,790m² |
문화재청 ID | 13,0064000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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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창녕군 읍내의 동쪽 화왕산에 있는 돌로 쌓은 산성으로, 처음 쌓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시대 이전 가야의 산성으로 추정된다. 험준한 북쪽의 바위산을 등지고 남쪽 봉우리 사이의 넓은 부분을 둘러싼 산성으로, 현재 동문·서문·연못이 남아있다. 조선 세종 때 성으로서의 기능을 잃었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가 의병 근거지로 삼아 일본군의 진출을 막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한두 차례 수리되어 지금까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창녕을 보호하는 진산으로 기록되었고, 영산·현풍을 포용하는 성이라는 점에서 군사적 요충지였다.[1]
2. 1. 가야 시대
가야 시대 창녕 지역은 비화가야의 중심지였으며, 화왕산성은 비화가야의 방어 거점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보인다.[1] 화왕산성은 험준한 북쪽의 바위산을 등지고 남쪽 봉우리 사이의 넓은 부분을 둘러싼 산성으로 둘레가 2.6km이다.[1] 창녕은 낙동강 중류에 넓게 펼쳐진 곡창지대의 중심지이며 서부 경남 지방에 대한 교통·군사상의 요충지로 이 산성이 당시 매우 중요했을 것이라 여겨진다.[1]2. 2. 조선 시대
조선 세종 때 성으로서의 기능을 잃었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가 의병 근거지로 삼아 일본군의 진출을 막기도 하였다.[1] 임진왜란 이후에도 한두 차례 수리되어 지금까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1]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창녕을 보호하는 진산으로 기록되었고, 영산·현풍을 포용하는 성이라는 점에서 군사적 요충지였다.[1]
3. 구조
화왕산 정상부의 험준한 암벽을 이용해 골짜기를 둘러싼 포곡식 산성이다. 현재 남아 있는 산성의 둘레는 약 1.8km이며, 동쪽 성벽 대부분은 돌로 쌓았고, 서쪽 성벽은 흙과 돌을 섞어 쌓았다.[1]
성벽 높이는 높은 곳이 4m 정도이고 폭은 3~4m이다. 자연 암벽 틈새는 성벽을 높게 쌓았다. 산성 출입구로 보이는 서문은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동문 자리 좌우의 석벽은 잘 남아 있다. 이 석벽은 다른 부분 성벽과 달리 가로 1m, 세로 1.6m나 되는 큰 돌로 쌓았다.[1]
관룡사 쪽 동남쪽 성벽에서는 무너져 내려앉은 수문이 확인된다.[1]
4. 군사적 중요성
화왕산성은 남쪽으로 영산 방면과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쪽으로 현풍 방면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이 일대에서 군사적 중요성을 보여준다.[1]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조선 전기에 이미 폐성되었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인 1595년에 다시 쌓았고, 그 이듬해에는 홍의장군 곽재우가 이 성을 근거로 의병활동을 하면서 내성을 쌓았다 한다.[1]
성안 곳곳에서는 조선·고려의 자기 조각들과 신라·가야의 토기 조각들이 출토되고 있어,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장기간에 걸쳐 화왕산성이 군사적으로 이용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1]
5. 유물
성안 곳곳에서는 조선, 고려 시대 자기편들과 신라, 가야 시대 토기편들이 출토되고 있어, 가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장기간에 걸쳐 화왕산성이 군사적으로 이용되었음을 짐작케 한다.[1]
6. 기타
성안에는 군량미를 저장하는 군창, 9개의 샘과 3개의 연못 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도 3개의 연못이 확인되며, 산성 중앙의 연못 주위에는 많은 건물터가 남아 있다. 창녕 조씨가 이곳에서 성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새긴 창녕조씨득성비가 있다.[1]
참조
[1]
문서
현지 안내문 인용
[2]
보고서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 1185번지 일원 내 梁山 架山里遺蹟 Ⅴ. 고찰
https://www.cha.go.k[...]
2015-09-01
[2]
보고서
대한주택공사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양산석산지구 文化遺蹟 地表調査 報告書
http://www.feaci.or.[...]
대한주택공사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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