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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임벌린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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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체임벌린은 해리 체임벌린이 개발한 테이프 재생 방식을 이용한 악기이다. 1949년 처음 설계되어 다양한 악기 소리와 특수 효과를 녹음한 테이프를 건반으로 연주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1960년대 멜로트론과의 경쟁 및 법적 분쟁을 겪었으며, 1981년 생산이 중단되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다양한 음악가들이 사용했으며, 1970년대에는 M1 모델이 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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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임벌린 (악기)
개요
종류건반 악기
분류전자 악기, 샘플링 악기
개발자해리 챔벌린
개발 연도1940년대 후반 ~ 1950년대 초반
관련 악기멜로트론
특징
작동 방식건반을 누르면 해당 음에 녹음된 테이프가 재생됨
테이프는 건반에서 손을 떼면 되감김
음색다양한 악기 소리, 효과음, 합창 등
음색 선택테이프 뱅크 교체
초기 모델하나의 건반에 하나의 테이프 트랙 할당
8초 분량의 소리 재생 가능
후기 모델다양한 기능 추가 (스테레오, 효과 장치 등)
전문 음악가들이 사용
역사
개발 배경해리 챔벌린의 집에서 나는 소리를 녹음하여 음악을 만들고 싶어함
최초 모델Chamberlin Rhythmate (1949년)
멜로트론과의 관계멜로트론은 챔벌린의 기술을 기반으로 제작됨
멜로트론의 성공으로 챔벌린은 어려움을 겪음
현재챔벌린은 여전히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음
다양한 샘플링 악기의 선구자로 평가 받음
주요 사용자
참고 자료
관련 웹사이트챔벌린 뮤직 공식 웹사이트

2. 개발

해리 체임벌린은 오르간 연주 녹음본을 재생하여 즐기는 과정에서 자신의 악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1949년, 그는 가족의 노래와 당시 빅 밴드 음악 연주를 위한 가정용 엔터테인먼트 기기로서 최초의 체임벌린 악기를 설계했다. 체임벌린은 로큰롤을 극도로 혐오했기 때문에, 자신의 악기가 상업적으로 록 음악에 사용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체임벌린은 피아노와 유사한 건반을 사용했다. 각 건반 아래에는 테이프 재생 장치가 있었고, 각 테이프에는 다양한 악기 소리나 특수 효과가 미리 녹음되어 있었다. 연주자가 건반을 누르면 압력 패드가 테이프를 테이프 헤드에 밀착시키고, 핀치 롤러가 테이프를 앞으로 당겨 보관함(또는 롤러 메커니즘)으로 보냈다. 테이프 헤드에서 발생한 전기 신호는 증폭되어 스피커를 통해 재생되었다. 연주자가 건반에서 손을 떼면 소리가 멈추고 테이프는 초기 모델에서는 금속 스프링으로, 후기 M1 모델에서는 반환 롤러 메커니즘으로 되감겼다. 각 테이프의 길이는 대부분 8초 정도로 짧았다.

해리 체임벌린은 워크인 옷장을 개조하여 홈 스튜디오로 사용하며 소리 실험에 몰두했다. 그는 스튜디오와 집 안 다른 공간의 음향을 조정한 후 최초의 체임벌린 녹음을 제작했다. 1950년대 내내 로렌스 웰크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모든 체임벌린 녹음에 참여했다. 웰크는 테이프 재생 악기라는 아이디어에 감탄하여 "웰크" 머신이라는 이름으로 생산할 경우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체임벌린은 이를 거절했다.

체임벌린은 노이만 U47 마이크를 사용하여 소리를 녹음했다. 그 결과 매우 깨끗한 출력과 강한 비브라토를 가진 사운드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당시 음악 스타일의 특징이었다. 체임벌린 사운드는 압축이 거의 적용되지 않아 테이프에 녹음된 악기 본연의 다이내믹스(예: 플루트의 숨소리, 현의 울림)를 그대로 간직했다. 초기 체임벌린 악기는 테이프에 녹음된 악기 소리를 정확하게 재현하도록 설계되었지만, 고정된 상태로 운반이 불가능하도록 제작되어 신뢰성에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초기 모델 중 상당수는 내부 섀시가 없어 조율 상태가 불안정했다.

체임벌린은 설계를 개선하면서 음악 박람회에서 시연을 시작했고, 해먼드나 로리와 같은 경쟁사들은 체임벌린 사운드의 원리를 궁금해했다. 경쟁하기 위해 이 회사들은 드럼 리듬을 추가하고 오케스트라 악기 이름이 적힌 플라스틱 탭을 부착했다. 이 탭은 선택한 악기의 소리를 모방한 음을 생성했다. 미국 음악가 연맹은 회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을 우려하여 체임벌린 악기의 라이브 공연을 제한하려 했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음악가들은 체임벌린을 받아들였다. 바비 대린은 리듬 섹션 테이프가 없는 맞춤형 모델 300을 최초로 구매한 고객 중 한 명이었고, 엘비스 프레슬리 또한 초기 소유자로서 가끔 집에서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사용했다.

체임벌린의 회사는 그의 아내, 자녀, 그리고 창문 청소부였던 빌 프랜슨을 영업사원으로 고용하면서 성장했다. 프랜슨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악기점, 응접실, 칵테일 라운지 등에 체임벌린 악기를 소개했다. 더 큰 규모의 유통 제안도 있었지만, 해리 체임벌린은 입소문 광고를 선호하고 유통 조건에 만족하지 않아 이를 거절했다. 그는 빅 밴드 음악을 선호하는 라운지, 나이트클럽, 뮤지션들과 직접 거래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1962년, 빌 프랜슨은 몇 달 동안 행방불명되었다. 그는 체임벌린 600 모델 두 대를 가지고 영국으로 건너갔는데, 이 중 한 대는 토드 룬드그렌의 스튜디오에 소장되어 1986년 XTC의 ''Skylarking'' 앨범에 사용되었다. 프랜슨은 70개의 표준 재생 헤드를 제작할 수 있는 회사를 찾는 광고를 냈고, 브래드매틱(Bradmatic) 주식회사(엔지니어링 회사)가 이에 응답했다.

프랜슨은 체임벌린 라벨을 제거하고 해리 체임벌린의 허가 없이 "프랜슨" 악기로 재판매했다. 브래드매틱은 600의 설계를 멜로트론 Mark 1으로 개선했고, 결국 스트리틀리 일렉트로닉스(Streetly Electronics)가 되어 1963년 멜로트론 Mark 2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1965년, 해리 체임벌린은 미국 악기 박람회에서 자신의 악기 복제품이 판매되는 것을 발견하고 스트리틀리 일렉트로닉스와 법적 합의를 진행했다. 프랭크, 노먼, 레스 브래들리(Frank, Norman, Les Bradley) 소유자를 직접 방문하고 프랜슨과 격렬한 논쟁을 벌인 끝에, 멜로트론은 영국에서만, 체임벌린은 미국에서만 판매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체임벌린은 멜로트론 회사로부터 로열티를 받았지만, 1960년대 후반에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이 로열티 시스템을 통해 체임벌린은 "3 바이올린" 사운드를 멜로트론 라이브러리의 바이올린 사운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 사운드는 1960년대 중반부터 많은 영국 멜로트론 음악에 사용되었다. 따라서 녹음의 출처 국가를 제외하고는 3 바이올린 테이프가 사용될 때 멜로트론이 사용되었는지 체임벌린이 사용되었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

체임벌린 사운드는 별도의 처리 없이 녹음되었고 멜로트론 라이브러리에 비해 사용된 믹스다운 마스터 테이프가 적기 때문에 실제 악기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았다. M 시리즈 체임벌린의 광대역 재생 헤드는 충실도를 더욱 향상시켰다.

체임벌린 악기는 미국과 캐나다 외 지역에서는 판매를 위해 유통된 적이 없다. 체임벌린 사는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판매했으며, 멜로트론과의 경쟁을 위해 신뢰성 향상에 더욱 힘썼다. 주요 미국 스튜디오에 판매되면서 체임벌린은 The Lettermen, 마빈 게이, 바비 골즈보로 ("Honey", 1968), 비치 보이스, 교육자 에드먼드 보르도 셰켈리 등 1960년대 많은 팝 레코드에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1960년대 후반, 리듬 테이프 사용을 중단한 새로운 체임벌린 디자인이 등장했다. 1970년에는 더욱 견고해진 M1 모델이 출시되었는데, 완벽한 테이프 반환 롤러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이 모델은 멜로트론보다 테이프 흔들림이 적고 더 넓은 대역폭을 가진 고품질 재생 테이프 헤드를 사용했다. 이전 모델의 테이블탑 버전이었던 이 장치는 경쟁 모델인 M400 멜로트론보다 훨씬 작았다. 약 130대의 M1 체임벌린이 제작되었다.

디즈니랜드/디즈니 월드의 라이브 공연 아티스트 마이클 아이스버그는 전자 악기를 사용하는 쇼에서 체임벌린을 활용했다. 쓰리 도그 나이트의 스킵 콘테, 올리비아 뉴턴존, 레온 러셀(1972년 ''Carney''), 닐 메리웨더, 제임스 테일러, 스티비 원더, 엠브로시아, 무디 블루스의 마이크 핀더(앨범 ''Seventh Sojourn'', 1972), 에토스, 데이비드 보위(1977년 ''Low''부터 1980년 ''Scary Monsters''까지), 에드가 윈터(1975년 ''Jasmine Nightdreams''), 조 사우스, 아이언 버터플라이, 칩 테일러, 뉴욕 세션 연주자 배리 프레데릭, 캐나다 뮤지션 조와 지노 바넬리, 섀도우팩스(1976년 ''Watercourse Way''), 밥 시거의 키보디스트 로빈 로빈스와 톰 네메 등도 체임벌린을 사용한 뮤지션들이다.

체임벌린 사는 매텔에 옵티건 키보드에 대한 특허를 라이선스하여 수입을 유지했는데, 이 키보드는 미리 녹음된 루프와 옵티건 라이브러리의 일부 체임벌린 음악 테이프를 사용했다. 1970년대 말까지 디지털 신디사이저가 테이프 기반 키보드의 시장을 잠식하면서, 체임벌린은 1981년에 M1 생산을 중단했다. 마지막 몇 대의 장치는 캘리포니아주 온타리오 공장에서 제작되었고, 이후에는 이전에 공개되지 않은 사운드를 사용하여 가족 차고에서 제작되었다. 해리 체임벌린은 1986년에 사망했다.

1980년대에는 체임벌린 녹음이 많지 않았지만, 프로듀서 미첼 프로옴(크라우디드 하우스)과 토드 룬드그렌(1986년 XTC의 ''Skylarking'')이 이 악기를 사용했다. 1990년대에는 새로운 세대의 뮤지션들이 체임벌린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연주하여 만들어지는 특별한 사운드를 높이 평가했다. 마이클 펜과 그의 키보디스트 패트릭 워렌(''March'', ''Free-for-All'', ''Resigned'', ''MP4'', 1997년 펜의 영화 ''부기 나이트''의 영화 음악), 샘 필립스(앨범 ''Cruel Inventions'', 1991), 존 브리온(영화 ''I Heart Huckabees'', 2004)의 사운드트랙) 등이 대표적이다. 톰 웨이츠 또한 ''The Black Rider''(1993) 및 ''Bone Machine''(1992)과 같은 앨범에서 이 악기를 사용했다.

2. 1. 초기 개발

해리 체임벌린은 오르간 연주 녹음본을 재생하여 즐기는 과정에서 자신의 악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1949년, 그는 가족의 노래와 당시 빅 밴드 음악 연주를 위한 가정용 엔터테인먼트 기기로서 최초의 체임벌린 악기를 설계했다. 체임벌린은 로큰롤을 싫어했기 때문에, 자신의 악기가 상업적으로 록 음악에 사용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체임벌린은 피아노와 유사한 건반을 사용했다. 각 건반 아래에는 테이프 재생 장치가 있었고, 각 테이프에는 다양한 악기 소리나 특수 효과가 미리 녹음되어 있었다. 연주자가 건반을 누르면 압력 패드가 테이프를 테이프 헤드에 밀착시키고, 핀치 롤러가 테이프를 앞으로 당겨 보관함(또는 롤러 메커니즘)으로 보냈다. 테이프 헤드에서 발생한 전기 신호는 증폭되어 스피커를 통해 재생되었다. 연주자가 건반에서 손을 떼면 소리가 멈추고 테이프는 초기 모델에서는 금속 스프링으로, 후기 M1 모델에서는 반환 롤러 메커니즘으로 되감겼다. 각 테이프의 길이는 대부분 8초 정도로 짧았다.

해리 체임벌린은 워크인 옷장을 개조하여 홈 스튜디오로 사용하며 소리 실험에 몰두했다. 그는 스튜디오와 집 안 다른 공간의 음향을 조정한 후 최초의 체임벌린 녹음을 제작했다. 1950년대 내내 로렌스 웰크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모든 체임벌린 녹음에 참여했다. 웰크는 테이프 재생 악기라는 아이디어에 감탄하여 "웰크" 머신이라는 이름으로 생산할 경우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체임벌린은 이를 거절했다.

체임벌린은 노이만 U47 마이크를 사용하여 소리를 녹음했다. 그 결과 매우 깨끗한 출력과 강한 비브라토를 가진 사운드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당시 음악 스타일의 특징이었다. 체임벌린 사운드는 압축이 거의 적용되지 않아 테이프에 녹음된 악기 본연의 다이내믹스(예: 플루트의 숨소리, 현의 울림)를 그대로 간직했다. 초기 체임벌린 악기는 테이프에 녹음된 악기 소리를 정확하게 재현하도록 설계되었지만, 고정된 상태로 운반이 불가능하도록 제작되어 신뢰성에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초기 모델 중 상당수는 내부 섀시가 없어 조율 상태가 불안정했다.

체임벌린은 설계를 개선하면서 음악 박람회에서 시연을 시작했고, 해먼드나 로리와 같은 경쟁사들은 체임벌린 사운드의 원리를 궁금해했다. 경쟁하기 위해 이 회사들은 드럼 리듬을 추가하고 오케스트라 악기 이름이 적힌 플라스틱 탭을 부착했다. 이 탭은 선택한 악기의 소리를 모방한 음을 생성했다. 미국 음악가 연맹은 회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을 우려하여 체임벌린 악기의 라이브 공연을 제한하려 했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음악가들은 체임벌린을 받아들였다. 바비 대린은 리듬 섹션 테이프가 없는 맞춤형 모델 300을 최초로 구매한 고객 중 한 명이었고, 엘비스 프레슬리 또한 초기 소유자로서 가끔 집에서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사용했다.

체임벌린의 회사는 그의 아내, 자녀, 그리고 창문 청소부였던 빌 프랜슨을 영업사원으로 고용하면서 성장했다. 프랜슨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악기점, 응접실, 칵테일 라운지 등에 체임벌린 악기를 소개했다. 더 큰 규모의 유통 제안도 있었지만, 해리 체임벌린은 입소문 광고를 선호하고 유통 조건에 만족하지 않아 이를 거절했다. 그는 빅 밴드 음악을 선호하는 라운지, 나이트클럽, 뮤지션들과 직접 거래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1962년, 빌 프랜슨은 몇 달 동안 행방불명되었다. 그는 체임벌린 600 모델 두 대를 가지고 영국으로 건너갔는데, 이 중 한 대는 토드 룬드그렌의 스튜디오에 소장되어 1986년 XTC의 ''Skylarking'' 앨범에 사용되었다. 프랜슨은 70개의 표준 재생 헤드를 제작할 수 있는 회사를 찾는 광고를 냈고, 브래드매틱(Bradmatic) 주식회사(엔지니어링 회사)가 이에 응답했다.

프랜슨은 체임벌린 라벨을 제거하고 해리 체임벌린의 허가 없이 "프랜슨" 악기로 재판매했다. 브래드매틱은 600의 설계를 멜로트론 Mark 1으로 개선했고, 결국 스트리틀리 일렉트로닉스(Streetly Electronics)가 되어 1963년 멜로트론 Mark 2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1965년, 해리 체임벌린은 미국 악기 박람회에서 자신의 악기 복제품이 판매되는 것을 발견하고 스트리틀리 일렉트로닉스와 법적 합의를 진행했다. 프랭크, 노먼, 레스 브래들리(Frank, Norman, Les Bradley) 소유자를 직접 방문하고 프랜슨과 격렬한 논쟁을 벌인 끝에, 멜로트론은 영국에서만, 체임벌린은 미국에서만 판매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체임벌린은 멜로트론 회사로부터 로열티를 받았지만, 1960년대 후반에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이 로열티 시스템을 통해 체임벌린은 "3 바이올린" 사운드를 멜로트론 라이브러리의 바이올린 사운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 사운드는 1960년대 중반부터 많은 영국 멜로트론 음악에 사용되었다. 따라서 녹음의 출처 국가를 제외하고는 3 바이올린 테이프가 사용될 때 멜로트론이 사용되었는지 체임벌린이 사용되었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

체임벌린 사운드는 별도의 처리 없이 녹음되었고 멜로트론 라이브러리에 비해 사용된 믹스다운 마스터 테이프가 적기 때문에 실제 악기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았다. M 시리즈 체임벌린의 광대역 재생 헤드는 충실도를 더욱 향상시켰다.

체임벌린 악기는 미국과 캐나다 외 지역에서는 판매를 위해 유통된 적이 없다. 체임벌린 사는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판매했으며, 멜로트론과의 경쟁을 위해 신뢰성 향상에 더욱 힘썼다. 주요 미국 스튜디오에 판매되면서 체임벌린은 The Lettermen, 마빈 게이, 바비 골즈보로 ("Honey", 1968), 비치 보이스, 교육자 에드먼드 보르도 셰켈리 등 1960년대 많은 팝 레코드에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1960년대 후반, 리듬 테이프 사용을 중단한 새로운 체임벌린 디자인이 등장했다. 1970년에는 더욱 견고해진 M1 모델이 출시되었는데, 완벽한 테이프 반환 롤러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이 모델은 멜로트론보다 테이프 흔들림이 적고 더 넓은 대역폭을 가진 고품질 재생 테이프 헤드를 사용했다. 이전 모델의 테이블탑 버전이었던 이 장치는 경쟁 모델인 M400 멜로트론보다 훨씬 작았다. 약 130대의 M1 체임벌린이 제작되었다.

디즈니랜드/디즈니 월드의 라이브 공연 아티스트 마이클 아이스버그는 전자 악기를 사용하는 쇼에서 체임벌린을 활용했다. 쓰리 도그 나이트의 스킵 콘테, 올리비아 뉴턴존, 레온 러셀(1972년 ''Carney''), 닐 메리웨더, 제임스 테일러, 스티비 원더, 엠브로시아, 무디 블루스의 마이크 핀더(앨범 ''Seventh Sojourn'', 1972), 에토스, 데이비드 보위(1977년 ''Low''부터 1980년 ''Scary Monsters''까지), 에드가 윈터(1975년 ''Jasmine Nightdreams''), 조 사우스, 아이언 버터플라이, 칩 테일러, 뉴욕 세션 연주자 배리 프레데릭, 캐나다 뮤지션 조와 지노 바넬리, 섀도우팩스(1976년 ''Watercourse Way''), 밥 시거의 키보디스트 로빈 로빈스와 톰 네메 등도 체임벌린을 사용한 뮤지션들이다.

체임벌린 사는 매텔에 옵티건 키보드에 대한 특허를 라이선스하여 수입을 유지했는데, 이 키보드는 미리 녹음된 루프와 옵티건 라이브러리의 일부 체임벌린 음악 테이프를 사용했다. 1970년대 말까지 디지털 신디사이저가 테이프 기반 키보드의 시장을 잠식하면서, 체임벌린은 1981년에 M1 생산을 중단했다. 마지막 몇 대의 장치는 캘리포니아주 온타리오 공장에서 제작되었고, 이후에는 이전에 공개되지 않은 사운드를 사용하여 가족 차고에서 제작되었다. 해리 체임벌린은 1986년에 사망했다.

1980년대에는 체임벌린 녹음이 많지 않았지만, 프로듀서 미첼 프로옴(크라우디드 하우스)과 토드 룬드그렌(1986년 XTC의 ''Skylarking'')이 이 악기를 사용했다. 1990년대에는 새로운 세대의 뮤지션들이 체임벌린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연주하여 만들어지는 특별한 사운드를 높이 평가했다. 마이클 펜과 그의 키보디스트 패트릭 워렌(''March'', ''Free-for-All'', ''Resigned'', ''MP4'', 1997년 펜의 영화 ''부기 나이트''의 영화 음악), 샘 필립스(앨범 ''Cruel Inventions'', 1991), 존 브리온(영화 ''I Heart Huckabees'', 2004)의 사운드트랙) 등이 대표적이다. 톰 웨이츠 또한 ''The Black Rider''(1993) 및 ''Bone Machine''(1992)과 같은 앨범에서 이 악기를 사용했다.

2. 2. 작동 원리

2. 3. 녹음 및 사운드

체임벌린은 다양한 악기의 소리를 녹음하여 재생할 수 있는 악기였다. 건반 악기로는 마림바, 피아노, 비브라폰(비브라토 포함), 벨 (글로켄슈필), 오르간, 티비아 오르간, 키누라 오르간, 하프시코드, 아코디언, 일렉트릭 하프시코드, 플루트/현악 오르간 등이 있었다.

금관 악기로는 트롬본, 트럼펫, 프렌치 호른, 도 와 트롬본, 슬러 트롬본, 뮤트 트럼펫 등이 녹음되었다. 목관 악기로는 알토테너 색소폰, 플루트, 오보에, 베이스 클라리넷 등이 포함되었다.

보컬은 남성 솔로와 여성 솔로가 녹음되었으며, 현악기로는 바이올린 3대, 첼로, 피치카토 바이올린이 사용되었다. 발현 악기로는 슬러 기타, 반조, 스틸 기타, 하프 솔로, 하프 롤, 하프 7th 아르페지오 (하프 사운드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음), 기타, 만돌린 등이 있었다. 그 외에도 딕시랜드 밴드 구절 및 음향 효과도 녹음되었다.

2. 4. 경쟁 및 논란

2. 5. 빌 프랜슨과 멜로트론

2. 6. 법적 분쟁 및 합의

3. 모델

체임벌린에는 다양한 모델이 존재한다.[3] 건반 악기 기반의 악기와 드럼 머신(리듬메이트라고 불림)이 있다. 약 500~700대가 제작되었지만 정확한 수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모델생산 연도생산 수량
체임벌린 1001948–19494–10
체임벌린 2001951–1959~100
체임벌린 300/350 리모트1960–1969~200
체임벌린 40019611
체임벌린 50019612 or 3
체임벌린 600/6601962–1969>200
체임벌린 25/35/45 리듬메이트1960–1969>100
체임벌린 20/30/40 리듬메이트1975–1980>10
체임벌린 50 리듬메이트미상1 (프로토타입)
체임벌린 800 리비에라19702
체임벌린 M1, M2, M41970–1981>100


4. 사운드

체임벌린은 다양한 악기의 소리를 낼 수 있다. 건반 악기로는 마림바, 피아노, 비브라폰(비브라토 포함), 벨 (글로켄슈필), 오르간, 티비아 오르간, 키누라 오르간, 하프시코드, 아코디언, 일렉트릭 하프시코드, 플루트/현악 오르간 등이 있다. 금관 악기로는 트롬본, 트럼펫, 프렌치 호른, 도 와 트롬본, 슬러 트롬본, 뮤트 트럼펫 소리를 낼 수 있다. 목관 악기로는 알토테너 색소폰, 플루트, 오보에, 베이스 클라리넷 소리를 낼 수 있다.

보컬은 남성 솔로와 여성 솔로가 있다. 현악기로는 바이올린 3대, 첼로, 피치카토 바이올린 소리를 낼 수 있으며, 발현 악기로는 슬러 기타, 반조, 스틸 기타, 하프 솔로, 하프 롤, 하프 7th 아르페지오 (하프 사운드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음), 기타, 만돌린 소리를 낼 수 있다. 그 외에도 딕시랜드 밴드 구절 및 음향 효과를 낼 수 있다.

5. 사용

5. 1. 주요 사용자

참조

[1] 간행물 Phantom Orchestra at Your Fingertips http://egrefin.free.[...] Crawdaddy! 1976-04
[2] 웹사이트 2004 Uncut Magazine article "All Time Classics: Great Albums that have Fallen Off the Critical Radar" http://chalkhills.or[...] 2013-05-20
[3] 웹사이트 chamanu http://mellotr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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