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그리피 주니어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켄 그리피 주니어는 1969년 펜실베이니아주 도노라에서 태어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에서 활약한 야구 선수이다. 1987년 시애틀 매리너스에 드래프트되어 1989년 데뷔, 2010년 은퇴할 때까지 22년간 630홈런을 기록하며 MLB 역대 홈런 7위에 올랐다. 1997년 아메리칸 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1990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2016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현재 MLB 커미셔너의 수석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도쿄 돔
도쿄 돔은 도쿄도 분쿄구에 위치한 다목적 돔 구장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구장이며 야구 외 다양한 이벤트가 개최되고 공기 지지 구조의 돔형 지붕이 특징이다.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박찬호
박찬호는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여 아시아 출신 투수 최다승 기록을 세운 전직 야구 선수로, 메이저 리그와 KBO 리그에서 활약했으며 국가대표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관한 - 톰 글래빈
톰 글래빈은 메이저리그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활동하며 뛰어난 투구와 타격 능력으로 다승왕, 실버 슬러거 상 등을 수상하고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 300승을 달성한 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좌완 투수이다.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관한 - 그레그 매덕스
그레그 매덕스는 뛰어난 제구력과 지략적인 투구로 '정밀 기계'라 불리며 4년 연속 사이 영 상을 수상하고 18시즌 연속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355승을 거둔 전직 투수로서,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올랜도 출신 - 밥 로스
미국의 미술가이자 교육자인 밥 로스는 PBS 프로그램 '그림을 그립시다'에서 독특한 습식 유화 기법으로 그림을 쉽게 그리는 방법을 가르치며 친근한 어조와 긍정적인 태도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사후 유산과 지적 재산 관련 법적 분쟁이 있었다. - 올랜도 출신 - 데이비 존슨
데이비 존슨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선수이자 감독으로, 2루수로서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고, 뉴욕 메츠를 월드 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워싱턴 내셔널스를 지구 우승으로 이끈 후 2013년에 은퇴했다.
켄 그리피 주니어 | |
---|---|
기본 정보 | |
이름 | 조지 케네스 "켄" 그리피 주니어 |
영어 이름 | George Kenneth "Ken" Griffey Jr. |
출생일 | 1969년 11월 21일 |
출생지 | 펜실베이니아주 도노라 |
포지션 | 중견수 |
타석 | 좌타 |
투구 | 좌투 |
신장 | 188cm |
체중 | 104kg |
데뷔 리그 | MLB |
데뷔일 | 1989년 4월 3일 |
데뷔 팀 | 시애틀 매리너스 |
최종 리그 | MLB |
최종일 | 2010년 5월 31일 |
최종 팀 | 시애틀 매리너스 |
타격 성적 | |
타율 | .284 |
안타 | 2,781 |
홈런 | 630 |
타점 | 1,836 |
선수 경력 | |
팀 | 시애틀 매리너스 (1989–1999) 신시내티 레즈 (2000–2008) 시카고 화이트삭스 (2008) 시애틀 매리너스 (2009–2010) |
드래프트 | 1987년 MLB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순위) |
첫 출장 | 1989년 4월 3일 |
마지막 출장 | 2010년 5월 31일 |
대표팀 | 야구 미국 국가대표팀 |
WBC | 2006년 |
수상 및 업적 | |
올스타 | 13회 (1990–2000, 2004, 2007) |
AL MVP | 1997년 |
골드 글러브 | 10회 (1990–1999) |
실버 슬러거 | 7회 (1991, 1993, 1994, 1996–1999) |
NL 컴백 선수상 | 2005년 |
AL 홈런왕 | 4회 (1994, 1997–1999) |
AL 타점왕 | 1997년 |
시애틀 매리너스 영구 결번 | 24번 |
명예의 전당 | |
헌액 | 2016년 |
유형 | 전국 |
득표율 | 99.3% (첫 번째 투표) |
선정 방법 | 전미 야구 기자 협회 선출 |
기타 정보 | |
연속 홈런 기록 | http://www.baseball-almanac.com/recbooks/rb_hr5.shtml |
4개 시대 선수 | 켄 그리피 주니어는 4개 시대 선수 중 한 명임 |
은퇴 논의 | 켄 그리피 주니어 은퇴에 대해 논의 |
시애틀 매리너스 역사 | 켄 그리피 주니어가 시애틀 매리너스 역사에 합류 |
명예의 전당 입성 | 켄 그리피 주니어 명예의 전당 입성 |
명예의 전당 입성 | 그리피, 피아자 명예의 전당 입성 |
명예의 전당 | 리베라, 마르티네스, 할러데이, 무시나 명예의 전당 입성 |
2. 유년 시절 및 아마추어 경력
1969년 11월 21일 펜실베이니아주 도노라에서 태어나 레즈에서 MLB 데뷔를 한 아버지 켄 그리피 시니어를 따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로 이사했다.[10][11] 당시 켄 주니어는 세 살이었다. 켄 주니어는 아버지가 1975년과 1976년 월드 시리즈에서 연속 우승할 때 클럽하우스에 있었다. 켄 시니어는 아들에게 개인적인 성과보다 팀 성과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제가 어렸을 때 경기에서 제가 한 일을 자랑하며 집에 오면 아버지는 제 머리를 때렸을 겁니다. 아버지는 팀이 무엇을 했는지 알고 싶어했습니다."[12] 아버지가 뉴욕 양키스에 있을 때, 켄 주니어가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더그아웃을 떠나라는 말을 들었고, 백인 선수의 아들은 경기장에서 연습할 수 있었던 사건은 켄 주니어가 양키스와 계약하지 않게 된 계기가 되었다.[13]
시애틀 매리너스는 1987년 6월 2일에 열린 1순위 지명으로 그리피를 선택했다. 그리피는 매리너스로부터 160000USD의 계약금을 받았다.[16] 1987년 6월 11일, 노스웨스트 리그의 벨링햄 매리너스에 합류했는데, 이는 클래스 A 쇼트 시즌 마이너 리그였다. 그리피는 1987년 6월 16일에 프로 데뷔를 했다.
신시내티의 대주교 무엘러 고등학교(배리 라킨과 같은 고등학교)[23]에 다니며 1987년 미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로 선정되었다. 고등학교 야구 2시즌 동안 타율 .478에 17홈런을 기록했다.[14] 풋볼 와이드 리시버로도 활동했으며, 오클라호마와 미시간에서 대학 풋볼 장학금 제안을 받았다.[15] 타피 로즈와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으며, 항상 함께 야구를 하고 가족끼리도 친하게 지냈다.[143] 아버지 켄 그리피 시니어의 타격 성적을 매일 확인하고 라디오 중계를 들었다. 리틀리그 시절에는 거의 아웃되지 않았고, 아웃되면 悔し涙|후회의 눈물일본어을 흘릴 정도였다.[144] 모엘러 고등학교에서 야구와 미식축구를 했고, 특히 야구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2년 연속 리그 올해의 선수(Player of the Year)로 뽑혔다.
3. 프로 경력
1987년 54경기 시즌 동안 그는 타율 .313, 14홈런, 40타점, 13도루를 기록했다.[19] ''베이스볼 아메리카'' 잡지는 그를 리그 최고의 메이저 리그 유망주로 선정했다.[17]
1988년, 그리피는 클래스 A-어드밴스드 캘리포니아 리그의 샌 버너디노 스피릿에 합류했다. 스피릿에서 58경기를 치르는 동안 타율 .338, 11홈런, 42타점, 32도루를 기록했다.[19][18] 시즌 후반, 클래스 AA 이스턴 리그의 버몬트 매리너스로 승격되어 17경기를 뛰며 타율 .279, 2홈런, 10타점을 기록했다.[19]
1989년에는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좋은 성적을 바탕으로 곧바로 메이저 리그로 승격하였다.
3. 1. 시애틀 매리너스 (1989-1999)
1989년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팀의 간판스타로 자리 잡았다. 메이저 리그 첫 타석에서 그는 2루타를 쳤다.[20] 1989년 4월 3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투수 데이브 스튜어트를 상대로 라인 드라이브 2루타를 쳤으며,[21] 일주일 후, 킹돔(Kingdome)에서 첫 타석에서 메이저 리그 첫 홈런을 쳤다.[22]
1990년에는 아버지 켄 그리피 시니어와 함께 뛰며, MLB 역사상 최초로 부자(父子)가 동시에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는 진기록을 세웠다. 1990년 8월 31일, 아버지가 매리너스 선수로 첫 경기에 출전했을 때, 두 사람은 1회초에 연속 안타를 치고 모두 득점했으며,[24] 9월 14일에는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투수 커크 맥캐스킬(Kirk McCaskill)을 상대로 1회초에 연속 홈런을 쳐 최초의 부자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25]
1990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연속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며 최고의 중견수로 인정받았다. 그의 인상적인 수비 범위는 자주 화려한 다이빙 캐치를 가능하게 했고, 그는 종종 어깨 너머로 공을 잡는 캐치와 상대 타자의 홈런을 뛰어올라 잡아내는 플레이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는 위티스(Wheaties) 시리얼 박스에 등장했고, 나이키(Nike, Inc.)에서 자신의 시그니처 운동화 라인을 가지고 있었다.
1994년, 1997년, 1998년, 1999년에는 아메리칸리그 홈런왕을 차지했으며, 1997년에는 아메리칸리그(American League) MVP를 수상했다.
1997년 그리피는 매리너스를 AL 서부 우승으로 이끌었고, 157경기에서 .304의 타율과 56홈런, 147타점을 기록하며 MVP를 차지했다.[97]
1995년 뉴욕 양키스와의 1995 아메리칸리그 디비전 시리즈(ALDS)에서 극적인 끝내기 득점을 올리며 팀을 챔피언십 시리즈로 이끌었다. 5차전 11회말, 그리피가 1루에 있을 때 팀 동료 에드가 마르티네즈(Edgar Martínez)가 2루타를 쳤다. 그리피는 베이스를 돌아 홈으로 슬라이딩하며 결승점을 뽑았고, 기다리고 있던 팀 동료들의 팔에 안겼다. 이 장면은 "시애틀 야구를 구했다"[31][32]는 평가를 받으며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98년에는 마크 맥과이어(Mark McGwire), 새미 소사(Sammy Sosa)와의 홈런 경쟁으로 메이저리그 흥행에 큰 기여를 했다. 그리피는 1997년의 성적과 거의 같은 .284의 타율, 56홈런, 161경기 146타점을 기록했다.[97]
1999년 그는 ''스포팅 뉴스''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야구선수 100인 명단에서 93위를 차지했다.[34] 같은 해 그리피는 올 센추리 팀(Major League Baseball All-Century Team)으로 선정되었다.
3. 2. 신시내티 레즈 (2000-2008)
2000년 2월 10일, 그리피는 투수 브렛 톰코, 외야수 마이크 캐머런 등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했다. 그리피는 레즈와 9년 1억 1,25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36] 이적 후 자신의 등번호를 24번에서 아버지가 신시내티와 시애틀에서 사용했던 30번으로 바꾸었다. 24번은 토니 페레스를 기리기 위해 이미 영구결번된 번호였다.
2000년 시즌, 그리피는 145경기에서 타율 .271, 40홈런, 118타점을 기록했지만, OPS는 0.942로 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며 이전보다 아쉬운 성적을 냈다.[97]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그리피는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39] 2002년부터 2004년까지 486경기 중 260경기를 결장하며 그의 기량은 물론, 스타로서의 이미지도 퇴색되었다.
2004년 6월 20일, 그리피는 아버지의 날을 맞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경기에서 통산 500홈런을 달성했다. 이 홈런으로 아버지와 통산 안타 수(2,143개)가 같아졌다.[41] 그러나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 햄스트링 부상으로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42] 시즌 종료 후, 그리피는 햄스트링을 세 개의 티타늄 나사로 고정하는 수술을 받았다.[44]
2005년, 그리피는 35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재기에 성공했고, 미키 맨틀과 통산 홈런 동률을 이루는 등 여러 선수들을 넘어섰다.[97] 그는 내셔널 리그 올해의 복귀 선수상을 수상했다.
2006년, 그리피는 등번호를 30번에서 3번으로 변경했다.[47] 시즌 동안 여러 선수들을 제치고 통산 홈런 순위를 계속해서 끌어올렸다. 9월 25일,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시즌 27호 홈런을 기록하며 레지 잭슨과 통산 홈런 공동 10위에 올랐다.[54]
2008년 4월 4일, 그리피는 통산 1,702번째 타점을 올리며 레지 잭슨을 제치고 통산 타점 순위 16위에 올랐다.[74] 6월 9일에는 플로리다 말린스를 상대로 통산 600홈런을 기록했다.[75] 7월 30일, 레즈에서의 마지막 경기에서 608호 홈런을 기록했다.[77]
그리피는 레즈 시절 동안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 한 언론은 그리피가 레즈에서 홈런을 치고 외야에서 공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선수였다고 비판했다.[78]
3. 3. 시카고 화이트삭스 (2008)
2008년 7월 31일, 메이저리그(MLB) 트레이드 마감 시한에 켄 그리피 주니어는 투수 닉 매셋과 내야수 대니 리차드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이적했고, 신시내티에서의 9년간의 활약은 끝이 났다.[79][80] 화이트삭스에서의 첫 경기에서 그는 3타수 2안타, 2타점, 1볼넷, 1득점을 기록했다.[81]
2008년 8월 20일, 시애틀 매리너스의 R. A. 디키를 상대로 화이트삭스 선수로서 첫 홈런을 기록했고, 이로써 전 외야수 새미 소사와 공동 5위에 올랐다.[82] 9월 23일 미네소타 트윈스의 맷 게리어를 상대로 홈런을 추가하며 소사를 제쳤다.[83]
그리피 주니어의 화이트삭스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08년 시즌 마지막 경기인 9월 30일, AL 중부 지구 1위 자리를 결정짓기 위한 화이트삭스와 미네소타 트윈스의 163번째 추가 경기에서 나왔다. 득점 없이 진행되던 5회말, 트윈스는 마이클 커디어가 3루에 있고 1아웃 상황에서 공격을 펼쳤다. 트윈스의 3루수 브렌던 해리스가 가볍게 그리피 주니어에게 중견수 플라이 아웃을 기록했고, 그리피 주니어는 화이트삭스 포수 A. J. 피어진스키에게 홈플레이트 충돌 속에서 커디어를 태그 아웃시키는 송구를 해 더블 플레이를 완성하며 위기를 넘겼다.[84] 화이트삭스는 트윈스를 1-0으로 꺾고 2008 아메리칸리그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했지만,[84] 탬파베이 레이스에게 패했다.
2008년 10월 30일, 화이트삭스는 그리피 주니어에 대한 1600만달러의 옵션을 거절하여 그를 선수 생활 최초로 자유계약선수로 만들었다. 대신 그리피 주니어는 레즈와 화이트삭스가 나누어 400만달러의 바이아웃을 받았다.[85]
3. 4. 시애틀 매리너스 복귀 (2009-2010)
자유 계약 선수였던 그리피는 시애틀 매리너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전국 언론은 그리피의 기여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으며, 워싱턴 포스트는 "...매리너스는 야구적인 이유로 그리피와 계약하는 것이 아니며, 그를 시애틀로 데려와 티켓 판매를 늘리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87] 그리피는 2009년 2월 18일, 신시내티 레즈 선수로 시애틀에서 마지막으로 경기했을 때 압도적인 긍정적 반응을 받았던 것에 대한 감정적인 이유와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는 그의 집과의 근접성, 시즌 중 가족과 함께 있고 싶은 욕망 때문에 고민 끝에 매리너스의 계약 제안을 수락했다.[88] 윌리 메이스와 그의 13세 딸과의 대화도 그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89] 그리피는 매리너스에서 다시 한번 24번을 달았는데, 시애틀에서 두 차례 활동했던 9년 동안 팀은 그 번호를 어떤 선수나 코치에게도 주지 않았다.
thumb
그리피는 4월 정규 시즌 데뷔전에서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3타수 1안타, 홈런 1개를 기록했다.[90] 이 홈런은 그리피의 8번째 개막전 홈런으로, 2013년 기준으로 프랭크 로빈슨, 애덤 던과 이 부문 공동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09년 4월 15일, 그리피는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의 투수 제레드 위버를 상대로 매리너스 선수로서 400번째 홈런(통산 613번째)을 기록하며 한 구단(매리너스)에서 400홈런, 다른 구단(레즈)에서 200홈런을 기록한 최초의 MLB 선수가 되었다.[91] AP는 "그리피는 2009년 매리너스에 복귀하여 그의 리더십, 에너지, 끊임없는 장난으로 분열되고 다투던 클럽하우스를 거의 혼자 힘으로 변화시켰다"고 보도했다.[92]
2009년 6월 23일 세이프코 필드에서 그리피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투수 채드 고딘을 상대로 프랜차이즈 역사상 5,000번째 홈런을 기록했다.[93] 이것은 그리피의 통산 619번째 홈런이었다. 7월 1일, 그리피는 새로운 양키 스타디움에서 6회 뉴욕 양키스 투수 앤디 페티트를 상대로 통산 621번째 홈런을 기록했는데, 이는 그가 홈런을 친 44번째 다른 경기장이었다.[94] 2009년 8월 12일, 전 소속팀인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14회말 득점권에 있는 1루타를 쳐 매리너스의 1-0 승리를 이끌었다.[95]
그리피는 2009년과 유사한 1년 계약으로 2010년 시즌에 매리너스로 복귀했지만,[96] 처음 두 달 동안 타율 .184를 기록하며 공격적으로 부진했다.[97] 4월 27일, 그리피는 통산 안타 수에서 앤드레 도슨을 제치고 45위에 올랐다. 2010년 5월 20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경기에서 그리피는 블루제이스 마무리 투수 케빈 그레그를 상대로 득점권에 있는 1루타를 쳐 매리너스의 4-3 승리를 이끌었다.[98] 9회 초 3-1로 뒤지고 있던 매리너스는 9회말 두 개의 1루타와 볼넷으로 만루를 채운 후, 볼넷과 희생 플라이로 동점을 만들었다.[98] 끝내기 안타는 그리피의 메이저리그 경력에서 마지막 안타이자 타점이었으며, 그를 라파엘 팔메이로를 제치고 역대 타점 순위 14위로 올려놓았다.
2010년 5월, 돈 와카마츠 시애틀 매리너스 감독은 그리피의 지속적인 부진으로 인해 그의 경기 출전을 크게 제한하기로 결정했다.[99][100] 2010년 5월 10일, 담당 기자인 래리 라루는 와카마츠 감독이 전주에 그리피를 대타로 기용하지 않았으며, 두 명의 선수가 그리피가 경기중에 잠이 들었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101] 이 사건은 "낮잠 게이트(Napgate)"라는 이름으로 전국 매체에 빠르게 보도되었다.[100][102][103][106][104] 이후 며칠 동안, 팀 동료 마이크 스위니는 그리피가 잠이 들었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면 "일어서서 나와 싸워라"고 말했다.[105] 와카마츠 감독은 그리피가 잠이 들었다는 것을 부인했지만,[106] 그리피는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99][107] 그리피의 에이전트는 라루의 초기 보도가 잘못 게시되었고 라루가 고용주에게 삭제를 요청했다고 말했지만,[108] 둘 다 이를 부인했다.[109][110] 보도 이후, 라루는 선수들에게 보이콧을 당했다.[106][111]
2010년 6월 2일, 팀 분위기가 여전히 혼란스러운 가운데, 그리피는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4연전 2차전 후 시애틀 매리너스를 떠나, 한밤중에 플로리다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장거리 운전을 떠났다.[92] 그는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을 통해 즉시 효력을 발휘하는 은퇴를 발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매리너스 사장 척 암스트롱은 그리피의 에이전트로부터 다음 날 경기 시작 몇 시간 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리피는 도중에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112] 그의 은퇴는 매리너스가 트윈스와 경기하기 전 세이프코 필드에서 발표되었다.[113] 2011년 3월 17일 인터뷰에서 그리피는 팀에 방해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은퇴했다고 말했다.[5]
4. 은퇴 이후
2011년 2월, 그리피는 시애틀 매리너스의 특별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스프링 훈련과 정규 시즌에 매리너스와 함께하며, 대부분의 마이너 리그 계열팀을 방문했다.[114] 같은 해 10월 23일, 현역 시절 활약을 인정받아 메이저 리그 사무국 특별상(MLB 커미셔너 특별상)을 수상했다. 당시 MLB 커미셔너였던 버드 셀릭은 “시애틀과 신시내티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야구 대사입니다.”라며 그리피를 칭찬했다.
2016년 1월 6일, 그리피는 투표에서 99.32%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는데,[8] 이는 1992년 톰 시버가 기록했던 98.84%의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120] MLB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 선수로는 최초의 명예의 전당 입성이었으며, 동시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마이크 피아자와의 순위 차이(피아자는 다저스의 62라운드, 전체 1389번째 지명이었다)는 역대 명예의 전당 선수 중 가장 컸다. WBC 대표 선수로는 최초의 명예의 전당 입성이기도 하다. 선출된 그리피는 “뛰어난 선수들만이 허락되는 곳에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최고의 영광입니다. (득표율이 역대 최고라는 것은) 충격적이며, 이렇게 많은 표를 얻을 줄은 몰랐습니다.”라고 기뻐하며 소감을 밝혔다.[174] 같은 날, 시애틀의 상징적인 건물인 스페이스 니들에는 그리피의 명예의 전당 입성을 축하하며, 매리너스 시절 등번호 ‘24’의 깃발이 게양되었다.[175]
시애틀 매리너스의 영구 결번으로 2016년 지정.
그의 명예의 전당 헌액을 기념하여 시애틀 매리너스는 2016년 1월 8일 그의 등번호 24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영구결번 지정은 2016년 메이저리그 시즌 시작과 함께 시행되었으며, 공식 행사는 2016년 8월 6일 매리너스 경기 전에 열렸다.[122] 영구결번 지정에는 매리너스 마이너리그 계열팀에서도 24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포함된다.[122] 4월 8일, 매리너스의 홈구장인 T-모바일 파크(구 세이프코 필드)에서 열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개막전 시구를 맡았다.[177]
매리너스는 또한 2016년 MLB 드래프트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그리피를 기렸는데, 그의 아들 트레이를 24라운드(그의 등번호와 일치)에서 지명했다. 당시 애리조나 대학교에서 와이드 리시버로 활동했던 트레이는 사춘기 이전 이후로 야구를 하지 않았었다.[123]
2021년 1월 29일, 매리너스의 커미셔너 특별 고문(시니어 어드바이저)에 취임했다. 야구 운영 부문 자문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유소년 등 젊은 선수 육성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178] 7월 29일, 그리피는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이사회 이사로 선출되었다.[124]
2021년 현재, 그리피는 MLB 커미셔너 롭 맨프레드의 수석 고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125]
2024년 3월 20일과 21일, MLB 사상 최초로 한국 서울에서 열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개막전에는 사진작가로 동행했다.[179] 21일 경기에서는 시구에도 등장했다.
5. 선수로서의 특징
켄 그리피 주니어는 전성기에 타격, 수비, 주루 능력을 모두 갖춘 5툴 플레이어로 평가받았다. 1990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수비력을 자랑했는데, 넓은 수비 범위를 바탕으로 화려한 다이빙 캐치를 선보였고, 강한 어깨를 이용해 홈런성 타구를 잡아내는 플레이로 팬들을 열광시켰다.[20]
타격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였는데, 특히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타격폼은 "MLB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타격폼"으로 칭송받는다.[180] 나이키(Nike, Inc.)에서 출시한 켄 그리피 주니어 시그니처 모델 시리즈 로고에는 그의 타격폼 실루엣이 사용되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4번의 홈런왕과 7번의 실버 슬러거 상을 수상했고, 1997년에는 MVP를 수상했다.[97] 루 피넬라 감독은 그를 "최고의 선수"라고 칭찬하기도 했다.[180]
많은 강타자들이 스테로이드 복용 의혹에 휩싸였던 "스테로이드 시대"에도 켄 그리피 주니어는 약물 의혹 없이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여 더욱 높은 평가를 받는다.[181] 호세 캔세코는 그를 "깨끗한 남자"라고 칭찬했고,[180][182]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 당시 특집에서도 이 점이 다시 한번 소개되었다.[183] 1999년 당시 집계된 MLB 올센추리 팀에서는 현역 선수로서는 유일하게 선출되었고, 윌리 메이스에 이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평가받았다.
CC 사바시아[184], 커티스 그랜더슨[185], 밀턴 브래들리[186], 버넌 웰스[187], 데나드 스팬[188], 앤드류 매커친, 캐머런 메이빈[189] 등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선수들이 그를 동경하며 자랐다고 밝혔다. 오를란도 허드슨은 켄 그리피 주니어를 "야구계의 마이클 조던"과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190]
이치로의 우상으로도 유명하다. 이치로는 켄 그리피 주니어와 팀 동료가 된 후 "그의 존재는 엄청나다"라며 감사를 표했고, "시애틀의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194]
6. 개인적인 삶
켄 그리피 주니어는 아내 멜리사와 사이에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장남 켄 그리피 3세(트레이)는 미식축구 NFL에서 와이드 리시버로 활동(2017~2019)했고,[130] 딸 태린 케네디는 애리조나 대학교에서 여자 농구팀 선수로 활동했다.[131] 아들 테빈 켄달이 있다. 그리피 가족은 플로리다주 윈더미어에 거주하며, 켄 그리피 시니어도 같은 곳에 살고 있다.[132][133]
1988년 1월, 그리피는 아스피린 277정을 삼켜 자살을 시도했으나, 오하이오주 마운트 에어리에 있는 프로비던스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141] 그는 아버지와의 다툼, 우울증, 분노를 자살 시도 이유로 밝혔다.[142] "야구에서 모두가 나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고, 집에 돌아와서도 모두가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우울해졌고, 화가 났다. 살고 싶지 않았다."고 그는 당시 심정을 표현했다.[142] 이전에도 자살을 생각했지만, 이 사건 전까지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고 한다.[142] 그리피가 아스피린을 삼킨 후, 그의 여자친구의 어머니가 그를 병원으로 데려갔다.[142]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그는 아버지와의 다툼을 멈추기 위해 정맥 주사(Intravenous therapy|IV)를 팔에서 뽑았다.[142] 이 사건은 그리피 부자(父子) 관계를 변화시켰고, 그 이후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142]
그리피는 켄 그리피 주니어 가족 재단(The Ken Griffey Jr. Family Foundation)을 통해 여러 자선 단체를 지원하고 있으며, 자선 와인 시리즈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 재단은 미국 소년소녀 클럽(Boys & Girls Clubs of America)과 미국 전역의 여러 어린이 병원 등을 지원한다.[126] 그는 또한 항공 안전 및 교육을 장려하는 자선 단체인 AOPA 재단의 햇 인 더 링 소사이어티(Hat in the Ring Society) 명예 공동 의장이기도 하다.[127]
2008년 11월 18일, 그리피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으로부터 미국 공공외교 특사로 임명되었다.[134]
7. 수상 및 기록
켄 그리피 주니어는 선수 시절 뛰어난 활약으로 수많은 상을 받았다. 1997년 아메리칸 리그 MVP를 수상했고,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 4회(1994, 1997, 1998, 1999), 아메리칸 리그 타점왕 1회(1997)를 차지했다. 또한, 뛰어난 수비 실력으로 골드 글러브 상을 10회(1990-1999) 수상했으며,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뛰어난 선수에게 주어지는 실버 슬러거 상을 7회(1991, 1993, 1994, 1996-1999) 수상했다.
올스타전에 13회(1990-2000, 2004, 2007) 출전했으며, 1992년 올스타전 MVP를 수상했다. 2005년에는 내셔널 리그 올해의 복귀 선수상을 받았다. 통산 630홈런(역대 7위)을 기록했으며, 시애틀 매리너스는 그의 등번호 24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2016년에는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의 주요 수상 및 기록은 다음과 같다.
구분 | 내용 |
---|---|
메이저 리그 | 아메리칸 리그 MVP 1회 (1997) |
메이저 리그 |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 4회 (1994, 1997, 1998, 1999) |
메이저 리그 | 아메리칸 리그 타점왕 1회 (1997) |
메이저 리그 | 골드 글러브 상 10회 (1990-1999) |
메이저 리그 | 실버 슬러거 상 7회 (1991, 1993, 1994, 1996-1999) |
메이저 리그 | 올스타전 13회 출전 (1990-2000, 2004, 2007) |
메이저 리그 | 올스타전 MVP 1회 (1992) |
메이저 리그 | 내셔널 리그 올해의 복귀 선수상 1회 (2005) |
메이저 리그 | 통산 630홈런 (역대 7위) |
기타 | 시애틀 매리너스 영구 결번 (24) |
기타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16) |
기타 | MLB 올센추리 팀 외야수 선정 (1999) |
기타 |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베스트 나인 |
그는 1990년대 메이저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었으며, 특히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7. 1. 연도별 타격 성적
연도 | 소속 | 나이 | 출장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도루 | 도실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루타 | 병살타 | 몸맞 | 희타 | 희플 | 고4 |
---|---|---|---|---|---|---|---|---|---|---|---|---|---|---|---|---|---|---|---|---|---|---|---|---|---|
1989 | SEA | 19 | 127 | 506 | 455 | 61 | 120 | 23 | 0 | 16 | 61 | 16 | 7 | 44 | 83 | .264 | .329 | .420 | .748 | 191 | 4 | 2 | 1 | 4 | 8 |
1990 | 20 | 155 | 666 | 597 | 91 | 179 | 28 | 7 | 22 | 80 | 16 | 11 | 63 | 81 | .300 | .366 | .481 | .847 | 287 | 12 | 2 | 0 | 4 | 12 | |
1991 | 21 | 154 | 633 | 548 | 76 | 179 | 42 | 1 | 22 | 100 | 18 | 6 | 71 | 82 | .327 | .399 | .527 | .926 | 289 | 10 | 1 | 4 | 9 | 21 | |
1992 | 22 | 142 | 617 | 565 | 83 | 174 | 39 | 4 | 27 | 103 | 10 | 5 | 44 | 67 | .308 | .361 | .535 | .896 | 302 | 15 | 5 | 0 | 3 | 15 | |
1993 | 23 | 156 | 691 | 582 | 113 | 180 | 38 | 3 | 45 | 109 | 17 | 9 | 96 | 91 | .309 | .408 | .617 | 1.025 | 359 | 14 | 6 | 0 | 7 | 25 | |
1994 | 24 | 111 | 493 | 433 | 94 | 140 | 24 | 4 | 40 | 90 | 11 | 3 | 56 | 73 | .323 | .402 | .674 | 1.076 | 292 | 9 | 2 | 0 | 2 | 19 | |
1995 | 25 | 72 | 314 | 260 | 52 | 67 | 7 | 0 | 17 | 42 | 4 | 2 | 52 | 53 | .258 | .379 | .481 | .860 | 125 | 4 | 0 | 0 | 2 | 6 | |
1996 | 26 | 140 | 638 | 545 | 125 | 165 | 26 | 2 | 49 | 140 | 16 | 1 | 78 | 104 | .303 | .392 | .628 | 1.020 | 342 | 7 | 7 | 1 | 7 | 13 | |
1997 | 27 | 157 | 704 | 608 | 125 | 185 | 34 | 3 | 56 | 147 | 15 | 4 | 76 | 121 | .304 | .382 | .646 | 1.028 | 393 | 12 | 8 | 0 | 12 | 23 | |
1998 | 28 | 161 | 720 | 633 | 120 | 180 | 33 | 3 | 56 | 146 | 20 | 5 | 76 | 121 | .284 | .365 | .611 | .977 | 387 | 14 | 7 | 0 | 4 | 11 | |
1999 | 29 | 160 | 706 | 606 | 123 | 173 | 26 | 3 | 48 | 134 | 24 | 7 | 91 | 108 | .285 | .384 | .576 | .960 | 349 | 8 | 7 | 0 | 2 | 17 | |
2000 | CIN | 30 | 145 | 631 | 520 | 100 | 141 | 22 | 3 | 40 | 118 | 6 | 4 | 94 | 117 | .271 | .387 | .556 | .942 | 289 | 7 | 9 | 0 | 8 | 17 |
2001 | 31 | 111 | 417 | 364 | 57 | 104 | 20 | 2 | 22 | 65 | 2 | 0 | 44 | 72 | .286 | .365 | .533 | .898 | 194 | 8 | 4 | 1 | 4 | 6 | |
2002 | 32 | 70 | 232 | 197 | 17 | 52 | 8 | 0 | 8 | 23 | 1 | 2 | 28 | 39 | .264 | .358 | .426 | .784 | 84 | 6 | 3 | 0 | 4 | 6 | |
2003 | 33 | 53 | 201 | 166 | 34 | 41 | 12 | 1 | 13 | 26 | 1 | 0 | 27 | 44 | .247 | .370 | .566 | .936 | 94 | 3 | 6 | 1 | 1 | 5 | |
2004 | 34 | 83 | 348 | 300 | 49 | 76 | 18 | 0 | 20 | 60 | 1 | 0 | 44 | 67 | .253 | .351 | .513 | .864 | 154 | 8 | 2 | 0 | 2 | 3 | |
2005 | 35 | 128 | 555 | 491 | 85 | 148 | 30 | 0 | 35 | 92 | 0 | 1 | 54 | 93 | .301 | .369 | .576 | .946 | 283 | 9 | 3 | 0 | 7 | 3 | |
2006 | 36 | 109 | 472 | 428 | 62 | 108 | 19 | 0 | 27 | 72 | 0 | 0 | 39 | 78 | .252 | .316 | .486 | .802 | 208 | 13 | 2 | 0 | 3 | 6 | |
2007 | 37 | 144 | 623 | 528 | 78 | 146 | 24 | 1 | 30 | 93 | 6 | 1 | 85 | 99 | .277 | .372 | .496 | .869 | 262 | 14 | 1 | 0 | 9 | 14 | |
2008 | 38 | 102 | 425 | 359 | 51 | 88 | 20 | 1 | 15 | 53 | 0 | 1 | 61 | 64 | .245 | .355 | .432 | .787 | 155 | 7 | 2 | 0 | 3 | 13 | |
CHW | 38 | 41 | 150 | 131 | 16 | 34 | 10 | 0 | 3 | 18 | 0 | 0 | 17 | 25 | .260 | .347 | .405 | .751 | 53 | 6 | 1 | 0 | 1 | 1 | |
08합계 | 143 | 575 | 490 | 67 | 122 | 30 | 1 | 18 | 71 | 0 | 1 | 78 | 89 | .249 | .353 | .424 | .778 | 208 | 13 | 3 | 0 | 4 | 14 | ||
2009 | SEA | 39 | 117 | 454 | 387 | 44 | 83 | 19 | 0 | 19 | 57 | 0 | 0 | 63 | 80 | .214 | .324 | .411 | .735 | 159 | 6 | 1 | 0 | 3 | 2 |
2010 | 40 | 33 | 108 | 98 | 6 | 18 | 2 | 0 | 0 | 7 | 0 | 0 | 9 | 17 | .184 | .250 | .204 | .454 | 20 | 3 | 0 | 0 | 1 | 0 | |
MLB 통산 : 22년 | 2671 | 11304 | 9801 | 1662 | 2781 | 524 | 38 | 630 | 1836 | 184 | 69 | 1312 | 1779 | .284 | .370 | .538 | .907 | 5271 | 199 | 81 | 8 | 102 | 246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기록
7. 2. 연도별 수비 성적
도단
기
살
책
살
살
비
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