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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환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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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탄환열차는 1930년대 일본이 한반도와 중국 대륙으로의 수송량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계획했던 고속 철도 노선이다. 도쿄와 시모노세키를 잇는 984.4km 구간에 기존 노선과 별도로 건설될 예정이었으며, 최고 속도 200km/h로 운행하여 도쿄-오사카 간을 4시간 30분, 도쿄-시모노세키 간을 9시간에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표준궤를 채택하고, 전철화 및 기관차 견인 방식을 고려했으며, 대동아 공영권 구상의 일환으로 한반도, 만주, 중국, 싱가포르까지 연결하는 철도망 구축을 구상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건설이 중단되었고, 일부 구간은 이후 신칸센 건설에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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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환열차
개요
유형철도 계획
국가일본
역사적 배경
제안 시기1930년대 후반
주창자시마 야스지로 등
목표도쿄시모노세키시 간 연결
건설 주체철도성이 주도한 국책 사업
전쟁의 영향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계획 중단
계획 상세
노선도쿄 - 오사카 - 후쿠오카 - 시모노세키시
주요 특징표준궤 채택
최고 속도 200km/h 목표
해저 터널 구간 포함 (관문 해협)
기술적 도전고속 주행을 위한 신기술 필요
장대 터널 건설 기술 요구
전쟁으로 인한 자재 부족 심화
미완성 이유태평양 전쟁 발발
자원 부족 심화
기술적 난관 존재
현대적 의의
영향신칸센 계획에 큰 영향
기술적 유산고속철도 기술 발전의 초석
교훈국가 기간 산업 계획의 중요성
관련 정보
관련 인물시마 야스지로
관련 단체일본국유철도
참고 서적탄환열차 관련 서적 및 연구 자료

2. 역사적 배경

1932년 만주국이 성립되면서 일본에서 한반도중국 대륙으로 향하는 수송 수요가 급증했다. 도쿄·오사카에서 해당 지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경로는 도카이도 본선·산요 본선을 거쳐 시모노세키까지 간 후, 관부 연락선으로 겐카이 해를 건너 부산에 도착하여, 다시 조선총독부 철도(선철)·남만주 철도(만철)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도카이도 본선과 산요 본선은 이미 중요한 간선이었기 때문에 수송량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면서, 늘어나는 수송량에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고속 철도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1938년 12월 2일, 철도성 내에 "철도 간선 조사 분과회"가 설치되어 수송력 강화에 관한 조사가 시작되었고, 1939년 7월 12일 "철도 간선 조사회"가 칙령에 의해 설립되어, 수송력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검토되었다. 그 결과, 해당 구간에 별도의 고규격 철도를 부설하는 "광궤 간선" 계획, 즉 "탄환 열차" 계획이 수립되었다.

당시 관계자 중에는 간사이 철도 출신의 철도 기술자 시마 야스지로[1]와 그의 아들 시마 히데오가 있었다. 시마 야스지로는 과거 국철의 표준궤화를 계획했으나 입헌 정우회의 하라 타카시에 의해 무산된 경험이 있어, 독자적인 표준궤 신선 부설안을 지지했다.

탄환열차 계획은 선철 및 만철과 같은 1435mm 표준궤를 채택하고, 최고 속도 시속 200km(증기기관차 구간은 시속 150km)를 목표로 했다. 도쿄-시모노세키 간 984.4km에 새로운 복선 선로를 부설하고, 장거리 고속열차를 집중 운행하여 도쿄-오사카 간 4.5시간, 도쿄-시모노세키 간 9시간에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30]

여객역은 도쿄, 요코하마, 오다와라, 아타미, 누마즈, 시즈오카, 하마마츠, 도요하시, 나고야, 교토, 오사카, 고베, 히메지, 오카야마, 오노미치, 히로시마, 도쿠야마, 오고리, 시모노세키 18개소로 한정되었다.[30]

1940년 9월, 철도성은 '도쿄-시모노세키 간 신칸센 건설 기준'을 제정하고, 같은 해 제국 의회에서 '광궤 간선 철도 계획'이 승인되어 건설이 결정되었다.[30] 총예산 5.56억이 투입될 예정이었으나, 태평양 전쟁 전황 악화로 1943년 공사가 중단되었다.

2. 1. 만주국 성립과 수송 수요 증가

1932년 만주국이 성립되면서 일본에서 한반도중국 대륙으로 향하는 수송 수요가 급증했다. 도쿄·오사카에서 해당 지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경로는 도카이도 본선·산요 본선을 거쳐 시모노세키까지 간 후, 관부 연락선으로 겐카이 해를 건너 부산에 도착하여, 다시 조선총독부 철도(선철)·남만주 철도(만철)를 이용하는 것이었다(→국제 연락 수송 참조). 그러나 당시 도카이도 본선과 산요 본선은 이미 중요한 간선이었기 때문에 수송량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예를 들어 도카이도 본선과 산요 본선의 총 길이는 당시 국철선(성선)의 7%에 불과했지만, 수송량은 전체의 30%를 차지했다. 특히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대로는 늘어나는 수송량에 대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2. 2. 철도 간선 조사회 설치와 계획 구체화

1932년 만주국이 성립되면서 일본에서 한반도·중국 대륙으로 향하는 수송 수요가 급증하였다. 도쿄·오사카에서 해당 지역으로 향하는 당시의 최속 루트는 도카이도 본선·산요 본선으로 시모노세키까지 간 다음, 관부 연락선으로 겐카이 해를 건너 부산에 상륙한 후, 다시 조선총독부 철도(선철)·남만주 철도(만철)를 이용하는 루트였다.(→국제 연락 수송도 참조). 그러나, 당시 이미 도카이도 본선과 산요 본선은 중요한 간선이었기 때문에 수송력이 압박받는 상태였다. 예를 들어, 도카이도 본선과 산요 본선의 총 연장은 당시 국철선(성선)의 7%에 불과했지만, 수송량은 전체의 30%를 차지했다. 특히 1937년중일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대로는 수송량 증가에 대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생겨났다.

1938년 12월 2일, 당시 국유철도를 운영하던 철도성 내부에 "'''철도 간선 조사 분과회'''"가 설립되어, 양 간선의 수송력 강화에 관한 조사 연구가 시작되었다. 다음 해 1939년 7월 12일에는 "'''철도 간선 조사회'''"가 칙령에 의해 설립되어, 수송력 확대를 위한 방책이 구체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했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결론으로 조기에 해당 구간에 별도의 고규격 철도를 부설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철도성의 용어로는, 광궤에 의한 간선으로 "'''광궤 간선'''"이라는 단어로 이 계획을 불렀지만, 신문 등 세간에서는 탄환처럼 빠른 열차라는 형용으로 "'''탄환 열차'''"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또한, "새로운 간선"이라는 의미로 "신칸센"이라는 단어의 사용도 당시 공식 자료에서 보이지만, 현재의 신칸센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관계자 중에는, 최초의 본격 국산 증기 기관차인 8620형과 9600형을 개발한 간사이 철도 출신의 철도 기술자 시마 야스지로[1]와, 그의 아들로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도카이도 신칸센 계획을 추진하게 된 시마 히데오도 있었다. 시마 야스지로는, 과거 국철의 표준궤화를 계획했으나, 입헌 정우회의 하라 타카시가 방해하여 실현되지 못한 채 끝났다는 경위가 있었고, 독자적으로 표준궤 신선을 부설하겠다는 이 안을 지지했다.

당초에는 다른 노선과 직통할 수 있다는 이유로 1067mm의 협궤 신선을 부설하는 안이 유력했지만, 대륙의 철도인 만철과 선철이 1435mm의 표준궤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과의 화객 직통을 도모하는 쪽이 군사 수송 면 등에서도 유리하다는 점, 표준궤를 사용하면 고속 운전을 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계획 변경이 이루어졌다.

탄환열차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항목내용
도쿄-시모노세키 간 984.4km에 재래선과 다른 복선 신선 부설 (계획 수립 당시 재래선 총연장 1097.1km)
현재선과 반드시 병행하지 않고, 가능한 한 직선 노선 채택
장거리 고속열차 집중 운행
도쿄-오사카 간 4.5시간, 도쿄-시모노세키 간 9시간[30] (재래선 최속: 도쿄-오사카 8시간, 도쿄-시모노세키 18.5시간)
도쿄-오사카 간 편도 42편, 오사카-시모노세키 간 31편 여객열차, 도쿄-오사카 간 12편, 오사카-시모노세키 간 10편 화물열차
시속 200km (전기화 구간), 시속 150km (증기기관차 구간) (당시 재래선 최고속도 시속 95km, 전후 신칸센 시속 210km)
도쿄, 요코하마, 오다와라, 아타미, 누마즈, 시즈오카, 하마마츠, 도요하시, 나고야, 교토, 오사카, 고베, 히메지, 오카야마, 오노미치, 히로시마, 도쿠야마, 오고리, 시모노세키[30]
신츠루미, 하마마츠, 나고야, 스이타, 오카야마, 히로시마, 하타부[30]
선철 및 만철과 같은 1435mm 표준궤
도쿄-시즈오카 간 및 나고야-히메지 간[30]
직류 3000V (전후 신칸센: 교류 25,000V)
간선도로와 입체교차, 그 외 도로는 가능한 한 입체교차
긴 견통거리 (전후 신칸센: 자동열차제어장치 채택, 신호등 미설치, 탄환열차 계획 시 차내신호 방식 검토)
부분 개통을 전제로 당분간 표준궤 기반 협궤철도 부설, 전 노선 개통 시 표준궤로 개궤
오르막 10퍼밀, 내리막 12퍼밀[30]
높이 4800mm, 폭 3400mm, 길이 25m[30] (전후 신칸센: 4500, 3400, 25)
높이 5150mm, 폭 4400mm (전후 신칸센: 5700, 5500)
2500m[30] (전후 도카이도 신칸센: 2500m, 이후 신칸센: 4000m)
4200mm (전후 도카이도 신칸센: 4200mm, 이후 신칸센: 4300mm)[31]
60kg 이상 (전후 도카이도 신칸센: 53.54kg, 이후 신칸센: 60.8kg)
밸러스트 궤도 300mm (전후 도카이도 신칸센: 300mm, 이후 신칸센: 슬래브 궤도화)
10.2m 이상 (전후 도카이도 신칸센: 10.7m, 산요 신간선 오카야마 이동: 11.6m, 이서: 11.4m)


2. 3. 건설과 좌절

1940년 9월, 철도성은 '도쿄-시모노세키 간 신칸센 건설 기준'을 제정하고, 같은 해 제국 의회에서 '광궤 간선 철도 계획'이 승인되어 건설이 결정되었다.[30] 1954년까지 개통을 목표로 총예산 5.56억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30]

  • 도쿄-시모노세키 간 984.4km에 재래선과 다른 복선 철도의 새 선로 부설.
  • 기존 노선과 반드시 병행하지 않고, 가능한 한 직선 노선 채택.
  • 장거리 고속열차 집중 운행: 여객열차는 도쿄-오사카 간 4.5시간, 도쿄-시모노세키 간 9시간 연결 목표.
  • 여객 열차: 도쿄-오사카 간 편도 42편, 오사카-시모노세키 간 31편 설정.
  • 화물 열차: 도쿄-오사카 간 12편, 오사카-시모노세키 간 10편 설정.
  • 최고 속도: 시속 200km (전기화 구간 기준, 증기기관차 구간은 시속 150km).
  • 표준궤 (1435mm) 채택.
  • 전기화 구간: 도쿄-시즈오카 간 및 나고야-히메지 간, 직류 3000V 방식.


여객역은 18개소로 한정되었으며, 해당 역은 다음과 같다.[30]

역 목록
도쿄, 요코하마, 오다와라, 아타미, 누마즈, 시즈오카, 하마마츠, 도요하시, 나고야, 교토, 오사카, 고베, 히메지, 오카야마, 오노미치, 히로시마, 도쿠야마, 오고리, 시모노세키



또한, 장래에는 쓰시마 해협에 해저 터널(한일 해저 터널)을 뚫어 만주국의 신징(현 창춘)이나 중화민국의 베이징까지 직통 열차를 운행하고, 일본군이 점령한 싱가포르까지 연장하려는 구상도 있었다. 이는 대동아 공영권 구상에 따라 일본이 동아시아동남아시아에서 패권을 확립하고, 일본 중심의 새로운 체제를 만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계획이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 전황이 악화되면서 1943년 공사가 중단되었다. 신 단나 터널 공사는 중단되었지만, 니혼자카 터널은 완공 후 도카이도 본선의 신 터널로 전용되었다가 후에 도카이도 신칸센 터널로 재전용되었다. 매수된 용지 또한 전후 도카이도 신칸센 건설 계획에 활용되었다.

3. 계획의 개요

1938년 12월 2일, 당시 국유철도를 운영하던 철도성 내부에 "철도 간선 조사 분과회"가 설립되어, 양 간선의 수송력 강화에 관한 조사 연구가 시작되었다. 1939년 7월 12일에는 "철도 간선 조사회"가 칙령에 의해 설립되어, 수송력 확대를 위한 방책이 구체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했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조기에 해당 구간에 별도의 고규격 철도를 부설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철도성에서는 "광궤 간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신문 등에서는 탄환처럼 빠른 열차라는 의미로 "'''탄환 열차'''"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신칸센"이라는 단어도 당시 공식 자료에 나타나지만, 현재의 신칸센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관계자 중에는 최초의 본격 국산 증기 기관차인 8620형과 9600형을 개발한 간사이 철도 출신의 철도 기술자 시마 야스지로[1]와 그의 아들로, 2차 세계 대전 후 도카이도 신칸센 계획을 추진한 시마 히데오가 있었다. 시마 야스지로는 과거 국철의 표준궤화를 계획했으나, 입헌 정우회의 하라 타카시에 의해 좌절된 경험이 있어, 독자적인 표준궤 신선 부설안을 지지했다.

당초에는 다른 노선과의 직통을 위해 1067mm 협궤 신선 부설안이 유력했지만, 만철과 선철이 1435mm 표준궤를 채택하고 있어, 이들과의 직통을 통한 군사 수송 및 고속 운전 등의 이점을 고려하여 계획이 변경되었다.

탄환열차 계획은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기술 도입을 목표로 하였다.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선로: 재래선과 별도의 복선 신선을 부설하며, 직선 노선을 최대한 활용했다.
  • 운행 시간: 여객열차는 도쿄-오사카 간 4시간 30분, 도쿄-시모노세키 간 9시간 운행을 목표로 했다.[30] 이는 당시 최속 열차보다 훨씬 단축된 시간이었다.
  • 도로와의 교차: 간선도로와는 입체교차를, 다른 도로와도 가능한 한 입체교차를 추진했다.
  • 신호: 신호 간 거리를 길게 설정하고, 자동열차제어장치(ATC) 도입 이전에도 차상신호 방식을 검토했다.
  • 개통 방식: 부분 개통 후 전 노선 개통 시 표준궤로 개궤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구체적인 기술 기준

항목내용
최대 경사오르막 10‰, 내리막 12‰[30]
차량한계높이 4800mm, 폭 3400mm, 길이 25m[30]
건축한계높이 5150mm, 폭 4400mm
최소 곡선 반경2500m[30]
궤도 중심 간격4200mm[31]
사용 레일60kg 이상
밸러스트 궤도 도상 두께300mm
시공 기면 폭10.2m 이상


3. 1. 노선 및 역

도쿄-시모노세키 간 984.4km에 재래선과 별도의 복선 신선을 부설할 계획이었다. 여객역은 18개소로 한정되었으며, 주요 역으로는 도쿄, 요코하마, 나고야, 교토, 오사카, 고베, 히로시마, 시모노세키 등이 포함되었다.[30]

탄환열차 노선 및 역 (1940년 계획)
구분역명비고
여객역도쿄, 요코하마, 오다와라, 아타미, 누마즈, 시즈오카, 하마마츠, 도요하시, 나고야, 교토, 오사카, 고베, 히메지, 오카야마, 오노미치, 히로시마, 도쿠야마, 오고리, 시모노세키[30]오노미치역 대신 후쿠야마역, 누마즈역 대신 미시마역 설치 방안도 검토됨.
최고 속도 열차는 11개 역 (도쿄, 요코하마, 시즈오카, 나고야, 교토, 오사카, 고베, 히메지, 오카야마, 히로시마, 시모노세키) 정차 예정.
장래 초특급열차는 5개 역 (도쿄, 나고야, 오사카, 히로시마, 시모노세키) 정차 구상.
화물 조차장신츠루미, 하마마츠, 나고야, 스이타, 오카야마, 히로시마, 하타부[30]



여객열차는 도쿄-오사카 간을 4.5시간, 도쿄-시모노세키 간을 9시간에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30]

3. 2. 궤간 및 전철화

궤간조선총독부 철도 및 남만주철도와 같은 1435mm 표준궤를 채택했다.[30][5] 전철화 구간은 도쿄-시즈오카 간 및 나고야-히메지 간으로,[30][5] 직류 3000V 방식을 채택할 예정이었다.[5]

3. 3. 속도 및 운행 계획

최고 속도는 200km/h로, 도쿄-오사카 간을 4시간 30분, 도쿄-시모노세키 간을 9시간에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30] 이는 당시 재래선으로 도쿄-오사카 간 최속 열차가 8시간, 도쿄-시모노세키 간이 18시간 30분 걸리던 것에 비해 획기적으로 빠른 속도였다. 여객열차는 도쿄-오사카 간 편도 42편, 오사카-시모노세키 간 31편, 화물열차는 도쿄-오사카 간 12편, 오사카-시모노세키 간 10편이 설정될 예정이었다.[5]

여객역은 도쿄, 요코하마, 오다와라, 아타미, 누마즈, 시즈오카, 하마마츠, 도요하시, 나고야, 교토, 오사카, 고베, 히메지, 오카야마, 오노미치, 히로시마, 도쿠야마, 오고리, 시모노세키의 18개소로 한정되었다.[30][5] 화물열차 조차장은 신츠루미, 하마마츠, 나고야, 스이타, 오카야마, 히로시마, 하타부에 설치될 예정이었다.[30][5]

가장 빠른 열차는 도쿄, 요코하마, 시즈오카, 나고야, 교토, 오사카, 고베, 히메지, 오카야마, 히로시마, 시모노세키 11개 역에만 정차할 예정이었으며, 장기적으로는 도쿄, 나고야, 오사카, 히로시마, 시모노세키 5개 역에만 정차하는 초특급열차 운행 구상도 있었다.

3. 4. 기술적 특징

탄환열차 계획은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기술 도입을 목표로 하였다.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선로: 재래선과 별도의 복선 신선을 부설하며, 직선 노선을 최대한 활용했다.
  • 속도: 최고 속도는 시속 200km(증기기관차 구간은 시속 150km)로, 당시 재래선 최고 속도(시속 95km)보다 훨씬 빨랐다.[30]
  • 운행 시간: 여객열차는 도쿄-오사카 간 4시간 30분, 도쿄-시모노세키 간 9시간 운행을 목표로 했다.[30] 이는 당시 최속 열차보다 훨씬 단축된 시간이었다.
  • 궤간: 선철 및 만철과 같은 1435mm 표준궤를 채택했다.
  • 전철화: 도쿄-시즈오카 간 및 나고야-히메지 간은 직류 3000V로 전철화할 계획이었다.[30]
  • 도로와의 교차: 간선도로와는 입체교차를, 다른 도로와도 가능한 한 입체교차를 추진했다.
  • 신호: 신호 간 거리를 길게 설정하고, 자동열차제어장치(ATC) 도입 이전에도 차상신호 방식을 검토했다.
  • 개통 방식: 부분 개통 후 전 노선 개통 시 표준궤로 개궤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구체적인 기술 기준

항목내용
최대 경사오르막 10‰, 내리막 12‰[30]
차량한계높이 4800mm, 폭 3400mm, 길이 25m[30]
건축한계높이 5150mm, 폭 4400mm
최소 곡선 반경2500m[30]
궤도 중심 간격4200mm[31]
사용 레일60kg 이상
밸러스트 궤도 도상 두께300mm
시공 기면 폭10.2m 이상


4. 전후 신칸센과의 비교

탄환열차 계획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건설된 신칸센과 비교했을 때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다.

탄환열차는 도쿄-시모노세키 간 984.4km 구간에 재래선과 다른 복선 신선을 부설할 계획이었다.[30] 이 노선은 현재선과 반드시 평행하지 않고 가능한 한 직선 경로를 택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장거리 고속열차를 집중 운행하여 도쿄-오사카 간 4시간 30분, 도쿄-시모노세키 간 9시간 운행을 목표로 했다.[30]

최고 속도는 시속 200km로, 당시 재래선 최고 속도(시속 95km)보다 훨씬 빨랐다. (전후 신칸센은 시속 210km).[30] 여객역은 18개소로 한정되었으며, 도쿄, 요코하마, 오다와라, 아타미, 누마즈, 시즈오카, 하마마츠, 도요하시, 나고야, 교토, 오사카, 고베, 히메지, 오카야마, 오노미치, 히로시마, 도쿠야마, 오고리, 시모노세키였다.[30]

궤간은 선철 및 만철과 같은 1435mm 표준궤를 채택했다. 전기화 구간은 도쿄-시즈오카 간 및 나고야-히메지 간으로, 직류 3000V 방식을 사용했다 (전후 신칸센은 교류 25,000V).[30] 간선도로와는 입체교차하고, 그 외의 도로도 가능한 한 입체 교차하도록 설계되었다. 부분 개통을 전제로 당분간 표준궤 기반의 협궤 철도를 부설하고, 전 노선 개통 시 표준궤로 개궤할 예정이었다. 최대 경사는 오르막 10퍼밀, 내리막 12퍼밀로 설정되었다.[30]

차량 한계는 높이 4800mm, 폭 3400mm, 길이 25m였으며 (전후 신칸센은 4500, 3400, 25), 건축 한계는 높이 5150mm, 폭 4400mm였다 (전후 신칸센은 5700, 5500). 최소 곡선 반경은 2500m (전후 도카이도 신칸센은 2500m, 이후 신칸센은 4000m), 궤도 중심 간격은 4200mm (전후 도카이도 신칸센은 4200mm, 이후 신칸센은 4300mm)였다.[31] 사용하는 레일은 60kg 이상 (전후 도카이도 신칸센은 53.54kg, 이후 신칸센은 60.8kg)이었다.

하지만, 동력 방식, 전철화 구간, 화물 열차 운행 여부, 시운전 방식 등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차이점을 보이며, 이러한 차이점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에서 다루고 있다.

4. 1. 동력 방식

탄환열차는 기관차 견인 방식(동력집중방식)으로 계획되었다. 시마 히데오 등은 전동차 운전(동력분산방식) 방안도 검토했으나, 당시의 풍조와 육군이 유사시 변전소 등 송전 시설이 공격받으면 운행이 불가능해질 것을 이유로 비전철화를 주장하여 기관차 견인 방식이 채택되었다. 시즈오카-나고야 간과 히메지 이서 구간은 증기기관차로 견인할 예정이었다.[30][5] 반면, 전후 건설된 신칸센은 동력분산방식을 채택했다.

4. 2. 전철화 구간

탄환열차는 당초 도쿄-시즈오카 간 및 나고야-히메지 간만 전철화할 계획이었다.[30][5] 전기 방식은 직류 3000 볼트를 채택했다.[5] 이는 일본 육군이 유사시 변전소 등 송전 시설이 공격받으면 운행이 불가능해질 것을 우려하여 비전철화를 주장했기 때문이다.[30]

그러나 전후 신칸센은 전 구간 전철화를 채택했으며, 교류 25,000 볼트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4. 3. 화물 열차 운행

탄환열차는 여객열차 외에 화물열차 운행도 계획했다. 도쿄-오사카 간에는 12편, 오사카-시모노세키 간에는 10편의 화물열차가 설정될 예정이었다.[30][5] 신쓰루미, 하마마츠, 나고야, 스이타, 오카야마, 히로시마, 하타부에는 화물열차 조차장이 설치될 예정이었다.[30][5]

하지만 전후 신칸센에서는 최초의 신칸센인 도카이도 신칸센 때부터 화물열차 운행 방안이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하고 현재까지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4. 4. 시운전선

탄환열차는 별도의 시운전선 건설을 계획했다. 하마나 호와 사나 호수 사이 하마마츠시주오구에 1주 전장 16km, 최대 구배 8‰, 최소 곡선 반경 1500m의 타원형 시운전선과, 이 노선과 하마마츠 공장을 잇는 5km의 선로를 건설할 예정이었다.[9] 당시 일본은 150km/h 이상의 속도로 기관차와 열차를 고속 주행시킨 경험이 없었고, 궤간, 차량 한계, 건축 한계 규격을 만족하는 국철 재래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실현된 신칸센에서는 별도의 시운전선 대신 기존 구간을 활용했다. 도카이도 신칸센가나가와현의 사가미 강 부근 - 사카이 강 부근 구간을 모델선으로 선행 건설하여 1000형 전동차 A·B 편성 및 양산 선행차 C편성으로 고속 주행 시험을 실시했다. 도호쿠 신칸센에서도 구키역 부근 - 이시바시역 부근 구간을 도호쿠 신칸센 종합 시험선으로 선행 건설하여 961형 전동차[10]·962형 전동차로 고속 주행 시험을 실시했고, 센다이역 - 키타카미역 구간도 키타카미 시험선으로 선행 건설하여 925형 전동차로 설해 대책 시험을 실시했다.

5. 용지 매수와 신칸센 계획

1938년 12월 2일, 국유철도를 운영하던 철도성 내에 "'''철도 간선 조사 분과회'''"가 설립되어, 도카이도 본선과 산요 본선의 수송력 강화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1939년 7월 12일 "'''철도 간선 조사회'''"가 칙령으로 설립되어 수송력 확대 방안이 구체적으로 검토되었고, 11월에는 해당 구간에 별도의 고규격 철도를 건설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철도성은 이 계획을 "'''광궤 간선'''"이라 불렀지만, 신문 등에서는 탄환처럼 빠른 열차라는 의미로 "'''탄환 열차'''"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당시 공식 자료에서 "새로운 간선"이라는 뜻의 "신칸센"이라는 단어도 사용되었으나, 현재의 신칸센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계획 관계자 중에는 최초의 본격 국산 증기 기관차인 8620형과 9600형을 개발한 간사이 철도 출신 시마 야스지로[1]와 그의 아들 시마 히데오가 있었다. 시마 야스지로는 과거 국철 표준궤화를 계획했으나 입헌 정우회의 하라 타카시에 의해 무산된 경험이 있어, 독자적인 표준궤 신선 건설을 지지했다.

당초 1067mm 협궤 신선 부설 안이 유력했으나, 만주국 철도와 조선총독부 철도가 1435mm 표준궤를 채택하고 있어 군사 수송 등에서 유리하다는 점과 표준궤가 고속 운전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계획이 변경되었다.

1940년대 초, 일본 제국은 탄환열차 건설을 위해 강제적으로 토지를 매수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토지 소유자들은 최고 재판소까지 가는 소송을 제기했고, 국철은 패소 위기에 놓였다. 도카이도 신칸센은 소송 중 건설이 결정되어 토지가 반환되지 않았지만, 산요 신칸센은 계획이 구체화되지 않아 많은 토지가 반환되었다.

도카이도 신칸센 개업 후, 일등차(현재의 그린샤) 시트 포켓에 있던 방일 외국인 여행자용 영어 팜플렛 제목은 'Japan's Bullet Train - 125mph'였다. 'Shinkansen'이 국제적으로 정착되기 전에는 탄환 열차를 직역하여 사용했다.[15]

5. 1. 강제적인 용지 매수

용지 매수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반 강제적인 형태로 도카이도 구간에 대해서는 대부분 끝났다. 그 방법은 갑자기 관계자가 토지 소유자에게 찾아와, 협의 없이 대신 말뚝을 박고 돌아갔으며, 매수 가격 협상은 없었다고 한다. 지주는 상당히 싼 가격으로 헐값에 매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응하지 않으면 "비국민"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예도 있었다고 한다[11][12]。시국상, 공습이 토지 매수의 계기가 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13][14]

5. 2. 토지 반환 소송과 신칸센 노선 변경

1940년대 초, 일본 제국은 탄환열차 건설을 위해 강제적으로 토지를 매수했다. 당시 토지 소유자들은 협상 없이 매우 낮은 가격에 토지를 넘겨야 했으며, 이에 응하지 않으면 "비국민"으로 취급받는 상황이었다.[11][12]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원래 토지 소유자들은 국가에 매각한 토지가 사용되지 않을 경우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최고 재판소까지 이어진 소송에서 국철은 패소할 상황에 놓였다.

도카이도 신칸센 구간은 건설이 결정되어 토지가 반환되지 않았지만, 산요 신칸센 구간은 계획이 구체화되지 않아 많은 토지가 반환되었다. 이로 인해 산요 신칸센 건설이 결정되었을 때, 반환된 토지를 다시 매수할 수 없어 노선 변경이 불가피했다. 산요 신칸센터널이 많아진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었다. 도카이도 신칸센의 하마마츠역 부근에 급곡선이 존재하는 이유도, 탄환 열차용으로 확보했던 용지를 사용하지 못하고 노선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토지 반환 소송과 신칸센 노선 변경은 전후 일본 사회의 변화와 함께,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보상 문제가 제기되었음을 보여준다.

6. 예정 루트와 역 설치 장소

도쿄-시모노세키 간 984.4km에 재래선과 다른 복선 신선을 부설할 계획이었다. 이 노선은 기존 노선과 반드시 평행하지 않고, 가능한 한 직선 경로를 택하도록 설계되었다.[30] 장거리 고속열차 운행에 초점을 맞추어, 여객열차는 도쿄-오사카 간 4시간 30분, 도쿄-시모노세키 간 9시간 운행을 목표로 했다.[5]

여객역은 18개소로 한정되었으며, 해당 역들은 다음과 같다.[30][5]



오노미치역 대신 후쿠야마를, 누마즈역 대신 미시마를 설치하는 방안도 있었다. 또한, 가장 빠른 열차는 도쿄, 요코하마, 시즈오카, 나고야, 교토, 오사카, 고베, 히메지, 오카야마, 히로시마, 시모노세키 11개 역에만 정차하고, 장래에는 도쿄, 나고야, 오사카, 히로시마, 시모노세키 5개 역에만 정차하는 초특급열차 운행 구상도 있었다.

화물열차 조차장은 신츠루미, 하마마츠, 나고야, 스이타, 오카야마, 히로시마, 하타부에 설치될 예정이었다.[30][5]

궤간은 선철 및 만철과 같은 1435mm 표준궤를 채택했다. 전기화 구간은 도쿄-시즈오카 간 및 나고야-히메지 간으로, 직류 3000V 방식이었다.[30][5]

당초에는 시모노세키역에서 관부연락선과 접속할 예정이었으나, 차량 항송을 통해 객차를 부산, 베이징까지 직통시키거나, 사가현 히가시마쓰우라 반도 부근에서 이키·쓰시마를 거쳐 한반도로 연결되는 해저터널을 건설하는 방안도 검토되었다. 대한해협 구간은 해저가 깊어 해저 교각 위에 튜브를 얹는 방식이나 현수교 방식도 제안되었으나, 군부의 반대로 일반 해저터널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7. 운행 계획

탄환열차는 도쿄-시모노세키 간을 9시간에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최고 속도는 시속 200km(전기화 구간 기준)였다.[30] 여객역은 18개소로 한정되었으며, 주요 정차역은 도쿄, 요코하마, 시즈오카, 나고야, 교토, 오사카, 고베, 히메지, 오카야마, 히로시마, 시모노세키였다.[30] 장래에는 도쿄, 나고야, 오사카, 히로시마, 시모노세키 5역에만 정차하는 초특급열차 운행 구상도 있었다.

특별 급행 열차(특급 열차)와 보통 급행 열차(급행 열차) 두 종류의 열차가 운행될 예정이었다. 특급 열차는 10량 편성으로, 전 차량 냉난방이 완비되었고, 밀폐형 전망차도 설치될 예정이었다. 급행 열차는 야간 운행만으로, 15량 편성으로 좌석차와 침대차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당초 계획된 최속 열차 운행 계획은 다음과 같다.

구분도쿄 출발시모노세키 도착/출발부산 도착/출발경성 도착/출발봉천 도착/출발신경 도착베이징 도착
탄환열차 (예정)6:2015:20/16:1023:40/0:306:20/6:3018:00/18:1021:407:30
기존 최속 열차15:009:25/10:3018:00/18:50



위 표에서 보듯이 탄환열차는 도쿄에서 신경(창춘)까지 39시간 20분, 베이징까지 49시간 10분 만에 연결할 예정이었다. 이는 기존 최속 열차보다 약 1일 단축된 시간이었다.

8. 견인 기관차

탄환열차 계획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관차들이 설계되었다.[23]


  • 전기 기관차
  • 여객용 HEH50 (최고 속도 210km/h), HEF50 (최고 속도 170km/h)
  • 화물용 HEF10 (최고 속도 95km/h)
  • 입환용 HEH150
  • 증기 기관차
  • 여객용 HD53, HC51
  • 화물용 HD60
  • 입환용 HE10, HE11


여객용 HEH50형 전기 기관차는 2차체(후의 EH10형과 같은 형태)를 병결한 형태로, 동륜 8개, 보조륜 5개, 팬터그래프 4기, 전장 32.5m인 대형 기관차였다. 이 기관차는 세계 최고 속도로 운행하는 것을 목표로 설계되었다.

이 기관차들은 만철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24][25] 당시 세계 최첨단 철도 기술을 보유한 독일의 증기 기관차 및 전기 기관차의 영향을 받아 설계되었다. 예를 들어, HC51형 증기 기관차는 05형 증기 기관차와, HD53형은 06형 증기 기관차와 매우 유사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HC51형 증기 기관차는 남만주철도 파시나형 증기 기관차의 성능 시험 등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26] 05형 증기 기관차와 같은 차축 배치 2-C-2를 채택하고, 직경 2300mm의 동륜을 갖춘 3실린더 기관차로, 최고 150km/h 운전을 목표로 했다. 또한, 화실은 약 8m2 (다다미 5장 상당)[27] 이었기 때문에, 도면에는 연소실과 자동 급탄 장치가 그려져 있었으며[28] 장착할 예정이었을 뿐만 아니라[29], 중유 병연 장치의 채용도 검토되었다.

모든 기관차는 공기 저항을 고려하여 유선형 디자인을 채택할 예정이었다.

참조

[1] 문서
[2] 뉴스 戦時中に幻の「弾丸列車構想」 元岡山市長の資料8点を初公開 https://www.sanyonew[...] 2020-07-25
[3] 웹사이트 企画展「鉄道のまち おかやま」 https://www.city.oka[...] 岡山市 岡山シティミュージアム 2020-07-23
[4] 웹사이트 鉄道のまち おかやま4改 https://www.city.oka[...] 岡山市 岡山シティミュージアム 2020-06-09
[5] 서적 『鉄道技術発達史』第一編(総説) 日本国有鉄道編
[6] 서적 『東海道 山陽新幹線二十年史』 日本国有鉄道新幹線総局
[7] 문서 鉄道技術発達史 第1篇 P131
[8] 간행물 JREA2000年7月 (日本鉄道技術協会)“父 島秀雄と新幹線”
[9] 서적 幻の国鉄車両 JTBパブリッシング
[10] 문서
[11] 문서
[12] 서적 弾丸列車 幻の東京発北京行き超特急 実業之日本社 1994-12-15
[13] 문서
[14] 서적 弾丸列車 幻の東京発北京行き超特急 実業之日本社 1994-12-15
[15] 간행물 Japan's Bullet Train - 125mph Japanese National Railways
[16] 문서
[17] 서적 鉄道技術発達史 日本国有鉄道 1958-03
[18] 뉴스 東京下関間弾丸列車 新幹線、全工程の七割決まる 1941-11-24
[19] 뉴스 決戦下悠々たり世紀の大事業 東京←九時間→下関 京阪神を僅々三十分 実現するか“弾丸列車”国鉄が打樹てる技術陣 1942-06-02
[20] 논문 東海道新幹線 日本コンクリート工学会 2002-01-01
[21] 뉴스 弾丸列車 琵琶湖に日本一の大鉄橋 : 比叡山の横腹潜って洛北へ 1941-05-06
[22] 뉴스 三階式の高架も登場 快適、踏切は一ヶ所もなし 各駅の構内は半里以上に 弾丸列車 高槻−姫路間決る 1941-08-19
[23] 서적 鉄道技術発達史 日本国有鉄道 1958-03
[24] 서적 鉄道の語る日本の近代 そしえて
[25] 서적 五十年史 研友社
[26] 서적 特急列車 : 夢と現実の架け橋 毎日新聞社
[27] 서적 帰ってきたSL : 山口線の旅 日本放送出版協会
[28] 서적 日本機械工業五十年 日本機械学会
[29] 서적 日本の鉄道100ものがたり 文藝春秋 1991-05-10
[30] 서적 『鉄道技術発達史』第一編(総説) 日本国有鉄道編
[31] 서적 『東海道 山陽新幹線二十年史』 日本国有鉄道新幹線総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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