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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남서쪽 해역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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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홋카이도 남서쪽 해역 지진은 1993년 7월 12일 일본 홋카이도 남서쪽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7.7의 역단층 지진이다. 유라시아판과 북미판의 경계에서 발생했으며, 홋카이도 오쿠시리정에서 최대 진도 6을 기록했다. 지진으로 최대 37.1m의 쓰나미가 발생하여 오쿠시리섬에 큰 피해를 입혔으며, 202명의 사망자를 포함하여 323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 지진은 쓰나미 경보의 신속성과 예보의 정확성, 그리고 주민들의 자율적인 대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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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남서쪽 해역 지진
지도 정보
1993 오쿠시리 지진 진도 분포도
1993 오쿠시리 지진 진도 분포도
기본 정보
이름1993년 오쿠시리 지진
다른 이름홋카이도 난세이 오키 지신(일본어)
오쿠시리섬의 쓰나미 피해
쓰나미 피해를 받은 오쿠시리섬
발생 시각1993년 7월 12일 22시 17분 11초 (JST)
발생 위치홋카이도 남서쪽 해역 ( 오쿠시리섬 북방 해역 )
지진 정보
깊이16.7 km
규모7.7
일본 기상청 규모7.8
진도 (JMA)5
진도 추정 지역오쿠시리섬
최대 진도 (MMI)VIII
단층 유형동쪽 및 서쪽 경사의 역단층
쓰나미 정보
쓰나미 발생
최대 쓰나미 높이16.8m (오쿠시리섬 하츠마에 지구)
대한민국 최대 해일 높이2.76m (강원도 동해시 묵호진동)
피해 정보
사망자202명
실종자28명
총 사망자230명
재산 피해1243억 엔
피해 지역홋카이도, 도호쿠 지방 북부
기타 정보
USGS 이벤트 IDusp0005w12
ISC 이벤트 ID219326

2. 지진학적 개요

진원은 일본해 동쪽 가장자리 변동대에 있는 오쿠시리 해령 바로 아래, 유라시아 판과 북미판의 판 경계인 사할린에서 니가타 앞바다로 이어지는 곳에서 발생했으며, 좌표는 북위 42.8도, 동경 139.2도, 깊이 35km이다.[14] 기상청이 발표한 릭터 규모는 7.8, 모멘트 규모(Mw)는 7.7이다. 진원 단층의 일부는 오쿠시리 해령의 동쪽 끝에 노출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지진의 원인인 활성 단층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14]

혼슈 북서쪽은 수렴 경계와 관련된 후열 확장에 의해 생성된 해양 지각 지역인 동해 남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이곳에서 태평양 판이 침강하여 오호츠크 미소판 아래로 들어간다.[3] 확장은 후기 올리고세부터 중기 마이오세까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확장에 따른 확장 구조는 일련의 남-북 방향의 단층과 관련 퇴적 분지를 형성했다. 현재 이 지역은 역단층 작용에 의해 변형되어 이러한 초기 분지의 반전이 일어나 배사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3] 혼슈 북서 해안은 초기 침강대일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4] 오호츠크 판의 존재와 동해에서 그 경계의 성격 및 정확한 위치에 대한 상당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존재한다(오호츠크 판이 존재한다면).[5][6]

이 지역은 1964년 니가타 지진 및 1983년 동해 중부 지진과 같이 북–남 방향으로 거의 뻗어 있는 단층에서 역단층 메커니즘을 가진 여러 역사적 지진이 발생한 장소이다.

지진은 두 번의 뚜렷한 진동을 보였다. 첫 번째 진동은 20초 동안 지속되었고, 두 번째 진동은 35초 동안 지속되었다.[9]

단층 파괴는 동쪽으로 24도 기울어진 단층에서 발생했다. 예상 길이는 150km이며 변위는 2.5m였다. 오쿠시리섬(오쿠시리정)은 5~80cm 침강했다.[7]

2. 1. 발생 메커니즘

홋카이도 남서쪽 해역 지진은 유라시아판과 북미판의 경계인 일본해 동연 변동대에서 발생한 역단층형 지진이다.[44] 혼슈 북서쪽은 수렴 경계와 관련된 후열 확장에 의해 생성된 해양 지각 지역인 동해 남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이곳에서 태평양 판이 침강하여 오호츠크 미소판 아래로 들어간다.[3] 이 지역은 1964년 니가타 지진, 1983년 동해 지진과 같이 북–남 방향으로 거의 뻗어 있는 단층에서 역단층 메커니즘을 가진 여러 역사적 지진이 발생한 장소이다.

동서 방향 압축 응력에 의해 발생했으며, 여러 개의 애스패리티가 파괴되면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복합 지진으로 분석된다.[46] 첫 번째 파괴에서 20초 후에 남쪽 영역에서 다음 파괴가 일어났으며, 그 10초 후에 다른 영역이 파괴되었다.[15]

단층 파괴는 동쪽으로 24도 기울어진 단층면에서 발생했으며, 총 길이는 약 120km, 여진 지역은 남북으로 150km였다. 변위는 2.5m로 추정된다.[7] 오쿠시리섬은 5~80cm 침강했다. 파괴 지속 시간은 약 40초였다.[46] 지진은 두 번의 뚜렷한 진동을 보였는데, 첫 번째 진동은 20초, 두 번째 진동은 35초 동안 지속되었다.[9]

파괴 시작점은 동경 139.183°, 북위 42.780°, 깊이 20km이며, 파괴 전파 속도는 3.2km/s였다. 여러 연구 기관에서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졌으며,[44] 단층 모델로는 "동서 방향으로 수평 압축 축을 가진 역단층"이라는 설 외에도 "파괴 영역의 북쪽 끝 지점에서는 동쪽 경사, 나머지 북쪽 절반은 완만한 서쪽 경사, 남쪽 절반은 서쪽 경사"라는 설도 있다.[45]

2. 2. 전조 활동

1993년 홋카이도 남서쪽 해역 지진 발생 전, 뚜렷한 전진(前震)이나 지각 변동은 관측되지 않아 지진 예측은 이루어지지 않았다.[47][18] 후일 분석에 따르면 1992년경부터 진앙 부근의 지진 활동이 다소 활발해진 것으로 나타났다.[47][18] 1984년 3월 18일부터 5월 10일까지 오쿠시리섬에서 최대 규모 M4.1을 관측한 군발지진[47][18]이 발생했지만, 1988년 이후에는 비교적 조용한 상태가 유지되었다.[47][18]

2. 3. 여진

1993년 7월 20일 규모 5.1, 8월 8일 규모 6.5의 여진이 발생했다.

2. 4. 지각 변동

지진은 두 번의 뚜렷한 진동을 보였다. 첫 번째 진동은 20초 동안 지속되었고, 두 번째 진동은 35초 동안 지속되었다.[9]

단층 파괴는 동쪽으로 24도 기울어진 단층에서 발생했다. 예상 길이는 150km이며 변위는 2.5m였다. 오쿠시리섬은 5~80cm 침강했다.[7]

지진 직후 조사에서 전체적으로 오쿠시리섬은 침강했으며, 침강량은 북쪽에서 약 30cm, 남쪽에서 60cm에서 70cm였다.[16] 하지만 섬에는 해안 단구가 발달해 있으며 12만 5천 년 전부터 0.9m/1000년으로 융기해 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어떤 활동으로 융기했는지는 불명확하다.[16] 지진 20년 후인 2013년에 실시된 조사에서는, 북쪽 해안은 약간의 침강, 동쪽 해안에서는 10cm 미만의 침강이 지속, 서쪽 해안에서 4cm에서 8cm의 융기[17]가 관측되어, 여전히 해안 단구에서 읽을 수 있는 융기 활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3. 진도

홋카이도 오쿠시리정에서 최대 진도 6(추정)을 기록했다.[11] 홋카이도와 아오모리현 일부 지역에서 진도 5, 홋카이도, 아오모리현, 아키타현 일부 지역에서 진도 3~4를 기록했다.[11]



오쿠시리섬에서는 현재의 진도 계급으로 진도 6약~6강 상당의 흔들림을 겪은 지역도 있었다고 한다.[11]

4. 지진 해일

이 지진으로 홋카이도에서 최대 37.1m, 평균 3m에서 8m의 쓰나미가 들이닥쳤다.[48][49]

진원역이 섬 바로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지진 발생 후 몇 분 만에 오쿠시리섬에 거대한 쓰나미가 도달한 것이 이 지진의 특징이다. 또한, 지진 발생 4분에서 5분 후에, 오쿠시리섬의 반대편에 있는 홋카이도 남서 해안의 세타나정다이세이정(모두 현 세타나정[19])에 도달했다. 더구나 지진 발생이 야간이었기 때문에, 덮쳐오는 쓰나미를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은 찾아볼 수 없다.[20]

높은 역상고의 쓰나미를 발생시킨 원인은, 모나이 서쪽 약 15 km에서 발생한 해저 사태로 추정된다.[20][21] 또한, 본 지진에 의한 쓰나미는, 발진 후 약 1시간 후에 노토반도, 약 3시간 후에 규슈 북부 연안에 도달했다.[22]

'''주요 역상고'''

역상고는 진원으로부터 쓰나미의 직격을 받은 섬의 서쪽에서 특히 높았으며, 모나이 지구에서 최대 역상고 31.7 m를 기록했다.[20] 또한, 조사에 따라서는 30.6 m[23]이다.

오쿠시리섬 각 지구에서의 쓰나미의 높이(파고)는, 이나호 지구에서 8.5 m, 오쿠시리 지구에서 3.5 m, 하츠마쓰마에 지구에서 16.8 m에 달했다. 쓰가루 해협에서 가장 높은 쓰나미를 관측한 지점은 오마항(1.0 m)이다.

쓰나미는 동해에서 광범위하게 관측되었으며, 아키타혼슈 북부에서는 3.5m, 러시아 남동부에서는 최대 4.0m, 대한민국 해안에서는 최대 2.6m의 해일이 관측되었다.[8]

4. 1. 한국에 미친 영향

1993년 7월 12일 일본 홋카이도 남서쪽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대한민국 동해 연안에도 쓰나미가 도달했다.[50] 울릉도에서 119cm, 속초시에서 276cm, 동해시 묵호항에서 203cm, 포항시에서 92cm의 해일이 관측되었다.[50] 이 지진 해일은 1983년 동해 지진 이후 10년 만에 대한민국에 영향을 준 쓰나미였다.[8] 이 사건은 한국의 지진 해일 대응 시스템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계기가 되었다.

5. 피해 상황

지진으로 인한 흔들림은 수정 메르칼리 진도 VIII로 중간 정도의 심각한 피해를 야기했다. 쓰나미는 지진 발생 2분에서 7분 사이에 오쿠시리에 도달했다. JMA는 지진 발생 5분 후에 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다. 그러나 이는 오쿠시리 주민들에게 너무 늦었다.[7] 지진으로 인해 오쿠시리 마을에 화재가 발생하여 전체 피해가 크게 증가했다.

오쿠시리 섬에는 당시 지진계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재해 초반에는 맞은편의 홋카이도 본토에 있는 오래된 측후소가 있는 스쓰정의 정보가 보도되었으나, 스쓰정은 지반이 좋아서 진도 4 정도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오쿠시리 섬의 재해가 알려지면서 최종적으로 인적 피해는 사망자 202명(아오모리의 1명 포함), 행방불명자 28명, 부상자 323명이었다. 가옥 피해는 전파 601동, 반파 408동, 일부 손괴 5,490동, 소실 192동, 침수 455동, 기타 735동에 달했다. 또한, 도로 손괴 630곳, 항만・어항 피해 80곳, 선박 피해 1,729척이 발생했다. 또한, 도난의 다이세이정(현 세타나정)에서는 지진으로 인한 충격으로 52세 남성이 병원으로 이송 중 사망했다.

피해 상황, 홋카이도 남서쪽 해역 지진 대책 본부, 1993
지역사망행방불명중상주택 전파반파일부 손괴침수 (바닥 위)침수 (바닥 아래)
오쿠시리정1752748426553454819
기타262181642923119163117
20129665903473464211136
자치성 소방청 1994/6/20 자료20228부상: 3236014085490221234



집계 연도, 기관에 따라 차이가 보인다.

5. 1. 揺れによる 피해

오쿠시리섬 동부의 오쿠시리 지구에서는 지진 직후 산사태가 발생하여 호텔 요요소, 모리카와 식당 등이 붕괴되어 숙박객과 종업원 등 28명이 사망했다.[9] 오쿠시리섬 여러 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하여 도도 오쿠시리섬선 등이 일시 통행 불능이 되었다.[9] 오쿠시리 항구 산사태는 1.5 x 105 m3의 암석 부피를 포함했으며, 화산암 각력암 층의 기저에서 발생했다. 이 산사태는 두 단계로 발생했는데, 이는 지진 기록에서 나타난 두 번의 분리된 진동과 일치할 수 있다.[9]

지진계가 설치되지 않아 공식적인 진도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추정 최대 진도는 6이었다.(홋카이도 본토에서는 최대 5) 아오나에 지구에 대해 실지 검분을 실시했다면 진도 7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5. 2. 津波による 피해

쓰나미로 인한 사망자 및 실종자는 오쿠시리섬에서 섬 인구의 4%에 해당하는 198명이었으며, 홋카이도 본토의 시마마키촌, 기타히야마정, 세타나정, 오나루정(모두 현재의 세타나정) 등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했다.[8] 또한, 홋카이도 리시리정에서 야마구치현쓰시마섬의 넓은 범위에 쓰나미가 밀려와 주고쿠 지방에서도 높은 곳에서 2~4m의 쓰나미가 발생하여 선박 및 항만 시설에 피해를 입었다.[8]

제1파는 지진 발생 2~3분 만에 오쿠시리섬 서부에 도달했고, 5~7분 후에는 모우치 지구의 호야이시 수력발전소에 도달했다.[8] 홋카이도 본토 측의 모츠타 곶 부근에서는 제1파가 지진 발생 후 약 5분 만에 도달했다.[8] 오쿠시리섬 서부에서는 제1파 도달 10분 후에 최대 파도가 되는 제2파(섬을 회절한 쓰나미)가 도달했다.[8]

쓰나미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곳은 오쿠시리섬 남부의 아오나에 지구이다.[8]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이 지구는 진원으로부터 직접 도달한 쓰나미가 시가지에서도 높이 6.7m에 달했고, 섬을 회절한 파도, 홋카이도 본토에서 반사된 파도 등 여러 방향에서 반복적으로 쓰나미의 습격을 받아 사실상 괴멸 상태가 되었다.[8] 지구 인구 1,401명, 세대 수 504가구에 대해 사망자·실종자 109명, 부상자 129명, 가옥 전파 400채라는 피해가 발생했다.[8] 이 외에도, 모우치·마쓰에 등 오쿠시리섬 남반의 각 지구와, 북단의 곶에 있는 이나호 지구에서도 쓰나미로 사망자가 발생했다.[8]

오쿠시리섬은 1983년(쇼와 58년) 일본해 중부 지진으로 쓰나미 피해를 입었고, 이때의 도달은 지진 발생 17분 후였다.[8] 이 경험으로 도보로 신속하게 피난하여 구조된 사람도 많았지만, 반대로 쓰나미 도달까지 시간이 있다고 판단하여 자동차로 피난하려다가 교통 체증에 걸리거나, 자동차로 피난 중에 피난로 선택을 잘못하거나, 또는 피난 전에 용무를 보려다가 쓰나미에 휩쓸린 사람도 적지 않았다.[8]

자동차에 의한 피난은 오쿠시리정사무소 부근에서 마주쳐 일시적으로 교통 체증을 일으켰고, 운전자들의 자율 교통 정리로 겨우 교통 체증이 해소된 것도 알려져 있다.[8] 이 차량 행렬의 마주침 원인으로, 산 쪽 주민은 토사 붕괴를 경계하여 해안 방향으로 피난했고, 반대로 해안 주민은 쓰나미를 경계하여 산 쪽으로 진로를 잡은 것이 원인이 되었다.[8]

한편, 해안 부근에 세워진 철근 콘크리트 2~3층짜리 주택이 한 가족의 생명을 구했다는 사례가 존재한다.[8]

아오나에 1~2구에 도달한 쓰나미는 10m에 가까운 높이였지만, 지진 발생 17~18분 후였고, 더 빨리 쓰나미가 도달한 아오나에 5구와 비교하여 피난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는 보고도 있다.[8]

5. 3. 火災による 피해

오쿠시리섬 아오나에 지구에서는 쓰나미 직후 9건의 화재가 발생하여 가옥 192채가 소실되었다. 프로판 가스통과 난방용 연료 탱크가 폭발을 반복하면서 화재가 확산되었고, 쓰나미 표류물이 소화 활동을 방해했다. 소방대는 파괴 소화를 실시하여 연소 확대를 막았다. 최초 발화 후 약 11시간 후에 진화되었으며, 연소 면적은 약 5 ha에 달했다. 화재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하는 사망자는 없었다.

6. 재해 대응

1983년 일본해 중부 지진의 경험을 바탕으로, 홋카이도 남서쪽 해역 지진 발생 직후 주민들은 신속하게 자율적으로 고지대로 대피했다. 지진 발생 시 주민의 88.7%는 자택에 있었으며, 그 절반이 지진 발생 직후 자율적으로 고지대로 대피했다. 오쿠시리정에서는 주민의 약 8할이 긴급하게 자율 대피했으며, 그 중 23%는 지진 와중에 이미 대피를 시작했다. 자율 대피자들의 평균 대피 시간은 지진 발생 5.3분 후였다.

주민들은 주택 손괴로 문이 열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가스 밸브를 잠그고 긴급 서류를 챙기는 등 침착하게 행동했다. 그러나 구 아오나에 5구의 주민들은 대피 시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을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해안선에 가까운 주택에 거주하던 주민 중에는 맨발이나 목욕 수건 한 장만 걸치고 대피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두 생존했다.

지진 발생 22시 17분의 불과 3분 후, 22시 20분에 오쿠시리정청의 방재 담당 직원은 방재 무선을 사용하여 오쿠시리정 전 지역 주민에게 "쓰나미의 위험이 있으니 대피하십시오"라고 방송했다. 또한 1분 후인 22시 21분에는 오쿠시리 소방서 본서도 지휘차를 출동시켜 오쿠시리 지역에 쓰나미 경계를 알리는 홍보를 실시했다. 이러한 홍보 활동은 상위 조직의 지시가 아닌 각자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이루어졌다.

6. 1. 일본 정부 및 각 기관의 대응

기상청은 지진 발생 5분 후인 오후 10시 22분에 홋카이도 동해 연안과 오쿠시리섬을 포함한 홋카이도 서방 4개 섬 전역에 쓰나미 경보(대쓰나미)를 발표했다.[24] NHK는 지진 발생 7분 후인 오후 10시 24분 47초에 1차 긴급 경보 방송을 실시했다.[25][26] 1983년 일본해 중부 지진에서는 지진 발생부터 쓰나미 경보 발표까지 14분, 쓰나미 경보 보도까지 19분이 소요되었던 것에 비해, 이번 지진의 보도는 상당히 신속하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원에서 가장 가까웠던 오쿠시리섬에는 지진 발생 5분도 채 되지 않아 대쓰나미가 밀려와 많은 희생자를 냈다.[29]

소방청은 홋카이도의 요청에 따라 도쿄 소방청의 항공대, 특별 구조대, 수난 구조대에서 인원 연인원 184명, 소방 헬리콥터 3대와 차량 3대를 오쿠시리섬에 파견하여 수색 및 구조에 나섰다.[34] 또한, 홋카이도 광역 소방 상호 지원 협정에 따라 삿포로시 소방국 등에서도 지원이 파견되어 오쿠시리섬 등에서 수색 및 구조 활동에 종사했다.[33]

해상보안청은 헬리콥터를 이용하여 오쿠시리섬의 피해 상황을 최초로 전파했다.[35] 당시 오쿠시리섬에는 주재소 3곳이 있었지만, 경찰학교 입교 등으로 인해 아오나에 주재소의 경찰관 한 명밖에 없었다. 이 경찰관은 무전을 통해 피해 상황을 알리고 구조를 요청했다.

항공자위대오쿠시리도 분둔 기지는 지진 발생 직후 즉시 인근 재해 파견을 발령하여 구조 활동, 의료 지원, 식량 제공 등을 실시했다.[36]

지진 당일, 오쿠시리항에 정박해 있던 동일본해 페리 (현 하트랜드 페리) 소속의 정기 페리 '뉴 히야마'는 대쓰나미 와중에 탈출에 성공하여, 제1관구 해상보안본부에 "오쿠시리도에 대쓰나미 습격 피해 다수, 긴급 구조 요청"이라고 연락, 이것이 오쿠시리도 피해의 첫 보고가 되었다.

6. 2. 주민들의 자율 대피 행동

1983년 일본해 중부 지진의 경험을 바탕으로, 홋카이도 남서쪽 해역 지진 발생 직후 주민들은 신속하게 자율적으로 고지대로 대피했다. 지진 발생 시 주민의 88.7%는 자택에 있었으며, 그 절반이 지진 발생 직후 자율적으로 고지대로 대피했다. 오쿠시리정에서는 주민의 약 8할이 긴급하게 자율 대피했으며, 그 중 23%는 지진 와중에 이미 대피를 시작했다. 자율 대피자들의 평균 대피 시간은 지진 발생 5.3분 후였다.

주민들은 주택 손괴로 문이 열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가스 밸브를 잠그고 긴급 서류를 챙기는 등 침착하게 행동했다. 그러나 구 아오나에 5구의 주민들은 대피 시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을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해안선에 가까운 주택에 거주하던 주민 중에는 맨발이나 목욕 수건 한 장만 걸치고 대피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두 생존했다.

7. 복구

홋카이도 남서쪽 해역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의 파괴적인 힘은 오쿠시리섬의 해안 방어 시설을 개편하게 했다.[10] 강에 쓰나미 방수로를 건설하고 제방을 강화하는 작업이 진행되었으며, 새로운 대피 경로가 제공되었다.[10] 가구에는 비상 방송 수신기를 구매하는 데 지원이 제공되었다.[10]

미래의 재해를 예상하여 방조제(총 연장 약 14km, 최대 높이 약 11m, 총 공사비 약 350억 엔), 인공 지반 망해교(총 공사비 약 26억 2천만 엔), 피난로 등 각종 방재 설비가 구축되었다. 쓰나미 발생 시 주민들이 신속하게 고지대로 피난하기 위한 경사로인 피난로는 돔 형태의 것도 있다.

오쿠시리섬 쓰나미관(총 공사비 약 11억 5천만 엔)과 위령비 "시공 쇼" 등 희생자를 추모하고 재해의 교훈을 전하는 시설도 건립되었다. 정립 아오나에 초등학교는 쓰나미 대책을 위해 1층 부분이 비어있는 필로티 구조로 건설되었다.

복구에는 약 927억 엔이 투입되었으며, 190억 엔이 넘는 재해 의연금이 모금되어 재해 복구, 재해 대책, 각종 위로금 등에 충당되었다. 동일본해 페리 소속의 "다섯 번째 히야마"는 구호 물품을 수송했다.

8. 교훈

이 지진에서는 진원이 오쿠시리섬 바로 근처 해저였기 때문에 지진 발생 직후에 큰 쓰나미가 덮쳐 정보 전달의 신속성을 높여도 진원 위치에 따라서는 쓰나미 경보가 제때 발령되지 않을 수 있다는 기술적 한계를 보여주었다.[10] 또한, 당시 대쓰나미 경보 예보문이 "높은 곳에서 대략 3m 이상에 달한다"라는 모호한 표현이었기 때문에, "(쓰나미는) 3미터 정도"라는 잘못된 해석을 한 주민들이 대피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 따라서 해안가 주민은 큰 흔들림을 느꼈다면 쓰나미 경보를 기다리지 않고 즉시 고지대나 튼튼한 건물 위로 대피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10]

쓰나미 경보가 제때 발령되지 않았던 점, 쓰나미 높이에 대해 잘못 해석한 주민들이 많았던 점을 고려하여 기상청NHK는 쓰나미 정보 전달의 신속성을 높이는 동시에 예보문을 대폭 변경했다. 예보문에 "장소에 따라 예상보다 높은 쓰나미가 덮친다", "쓰나미는 제1파보다 제2파 이후가 더 높아질 수도 있다", "쓰나미는 여러 번 덮친다" 등의 문구를 추가하여 주민들의 경각심을 높였다.[10] 이러한 개선 덕분에 다음 해 홋카이도 동쪽 해역 지진 발생 시 네무로시에 173cm의 높은 쓰나미가 덮쳤지만, 홋카이도 본토에서는 쓰나미로 인한 희생자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에토로후섬북방 영토에서는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했다.[10]

지진 발생 당시 오쿠시리정 등 일부 시정촌에는 진도계가 설치되지 않아 체감으로 진도를 추정했다. 이후 모든 시정촌에 진도계가 설치되어 진도 측정 방식으로 완전히 전환되었다.[10]

지진으로 인한 화재였음에도 화재 보험에만 가입한 주민이 많아 손해 보험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다. 특히 주택 담보 대출 시 지진 보험 가입 여부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10]

쓰나미 예보의 신속화를 위해 쓰나미 지진 조기 감지망이 정비되었다.[10]

쓰나미 발생 시 차량을 이용한 대피는 교통 체증을 유발하고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으므로 도보로 대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홋카이도 남서쪽 해역 지진 도쿄도 조사반 보고서는 대피 시 차량 사용을 자제하는 "재해 문화의 철저"가 바람직하다고 기술하고 있다.[10]

오쿠시리정사무소 등에서 지진 발생 후 3~4분 만에 쓰나미 경계 홍보 활동을 독자적으로 실시했지만, 조사 결과 오쿠시리섬에서는 경보에 따른 주민 대피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생존 주민은 경보 발령 이전부터 자율적으로 대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옥외 설치 확성기 음성이 잘 들리지 않았던 점", "쓰나미 경보 발령 전 제1파 도달"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10]

지진 쓰나미 연구회 발행 『쓰나미 핸드북』에는 "신발을 신고 걸어서 도망갑시다"라고 적혀 있지만, 이와테 도카이 신문은 시간적 여유가 없는 쓰나미의 경우 잘못된 지시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10]

임시 주택의 입지, 설비와 관련하여, 피해자들로부터 "가재 도구 보관 장소 부족", "이웃집 소음",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등의 문제점이 제기되었다.[10]

섬 밖에서 온 사람들의 재해 위문 방문이 피해자들의 재건 의욕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으며, 특히 일본 천황 부부의 위문 방문이 가장 큰 효과를 보였다.[10]

9. 관계자


  • 사다이케 유키 - 도쿄 대학 대학원 정보학환 종합방재정보연구센터(CIDIR) 특별 조교수이자 사람과 방재 미래 센터 리서치 펠로우이다. 홋카이도 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 박사 후기 과정을 수료하고 박사(문학) 학위를 받았다. 오쿠시리섬에서 수백 m 떨어진 자택에서 피해를 입은 경험을 바탕으로 방재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41]
  • 이즈미야 시게루 - 싱어송라이터, 탤런트, 배우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오쿠시리섬의 대쓰나미를 목격한 것을 계기로 피해자 구원을 위해 유니세프 일본 협회의 협찬을 받아 "너희들 모금해!!"를 구호로 내건 "혼자 포크 라이브" 모금 활동을 일본 각지의 역 앞이나 상점가 등에서 실시했다. 이 활동은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 때에도 진행되었다.
  • 사토 요시노리 - 오쿠시리정 출신의 프로 야구 선수이다. 오쿠시리정에 남은 친족이 피해를 입었고, 이모가 사망했다. 이후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본거지인 고베 (한신·아와지 대지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본거지인 센다이시 (동일본 대지진)에서도 피해를 겪었다.
  • 나카무라 유키오 - 수중 사진 작가이다. 오쿠시리섬에서 취재 중 민박집에서 피해를 입었으나, 민박집 여주인의 설득으로 맨발로 피난하여 생존했다.
  • 아소 나오코 - 오쿠시리섬 출신의 시인이다. 시집 『오쿠시리섬 단장』, 논픽션 『오쿠시리 질주하는 여름』을 집필했다.

10. 자연재해 전승비

2019년 7월, 오쿠시리정 내에 있는 홋카이도 남서쪽 해역 지진의 지진 해일 피해에 관한 비석 4기가 국토지리원의 웹 지도에 자연재해 전승비로 공개되었다.[40]


  • 시공상(時空翔) - 아오나에곶에 있는 석비로, 비석의 토대는 덮쳐온 해일과 같은 높이까지 흙을 쌓아올렸다.[40]
  • 위령비(오쿠시리정 하쓰마츠마에 지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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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気象庁が命名した気象及び地震火山現象 http://www.jma.go.jp[...] Japan Meteorological Agency 2017-10-29
[3] 논문 Late Cenozoic tectonic development of the back arc region of central northern Honshu, Japan, revealed by recent deep seismic profiling
[4] 논문 The 1983 Akita-Oki Earthquake (Mw=7.8) and its Implications for Systematics of Subduction Earthquakes http://www.gps.calte[...] 2012-06-21
[5] 논문 Can the Okhotsk plate be discriminated from the North American plate?
[6] 간행물 Independent active microplate tectonics of northeast Asia from GPS velocities and block modeling
[7] 웹사이트 Comments for the Significant Earthquake http://www.ngdc.noaa[...] 2010-11-06
[8] 웹사이트 Comments for the Tsunami Event http://www.ngdc.noaa[...] 2010-11-06
[9] 논문 Recent Landslides in Western Hokkaido, Japan
[10] 웹사이트 Okushiri Tsunami Generated by southwest-off Hokkaido earthquake http://shippai.jst.g[...] 2010-11-06
[11] 웹사이트 震度データベース検索 https://www.data.jma[...] 気象庁 2021-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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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웹사이트 津波予報データベースNo3 http://wadai-kisho-t[...]
[25] 기타 緊急警報放送 <大津波・津波警報> NHKアーカイブス
[26] 문서 午後10時21分ごろから緊急警報放送が実施された午後10時24分47秒までは札幌局のスタジオから道内関係分の関連情報を放送した。また、午後10時24分22秒から15秒間、津波警報発表に伴い「ピロピロ」音が流された。
[27] 문서 現在は、(大)津波警報の範囲が拡大される場合は、速報字幕での表示。ただし、2022年1月15日にフンガ・トンガ噴火による『潮位変化』では、16日0時15分の鹿児島県奄美地方への津波警報発令と同日2時54分の岩手県の津波注意報から警報切り替え時の2回、緊急警報放送を発した。
[28] 뉴스 緊急警報放送 大災害への警戒促す(みんなのQ&A) 朝日新聞 1993-07-16
[29] 기타 テレビは災害をどう伝えてきたか NHKスペシャル
[30] 문서 ただし、2012年12月7日17時18分に発生した地震とそれに伴う津波警報発表では、NHKでは「第46回衆議院議員総選挙」の政見放送を放送中だったが、それを中断して緊急警報放送が流れた。
[31] 문서 この時、取材スタッフが宿泊先の宿に残した水中カメラのハウジングが津波で流出した。その後14年経った2007年3月、南へ1キロ離れた海中で地元漁師により発見・回収されている。
[32] 서적 奥尻 その夜 朝日新聞社刊
[33] 문서 北海道南西沖地震 災害記録 p83
[34] 문서 北海道南西沖地震 東京都調査報告書 p170
[35] 기타 2011年にNHK函館放送局の「どどんと道南ラジオ」に出演した当該パイロットが東日本大震災を受けて語ったものである
[36] 문서 災害派遣命令の要請は当時都道府県知事等現在と違い限定的であり、命令前の派遣は処罰の対象となっていたためである。このため一部の部隊は訓練という名目での派遣を強行している
[37] 뉴스 〈9〉ハートランドフェリー 蔦井孝典社長 https://web.archive.[...] 2018-06-04
[38] 웹사이트 気象庁マグニチュードの改訂について http://www.zisin.jp/[...] 公益社団法人日本地震学会 2015-01-20
[39] PDF 東北地方太平洋沖地震により被災した自動車の処理について https://www.env.go.j[...] 環境相 東日本大震災への対応について
[40] 웹사이트 「北海道内で初めて「自然災害伝承碑」を地図で発信」 https://www.gsi.go.j[...] 国土地理院北海道地方測量部 2020-01-02
[41] 뉴스 奥尻の教訓 被災地へ 災害への備えは、悲しみを繰り返さないため 読売新聞 2014-07-06
[42] 웹사이트 日本付近のおもな被害地震年代表 https://www.zisin.jp[...] 日本地震学会 2021-05-24
[43] 웹인용 Tsunami Event https://www.ngdc.noa[...] 2021-06-20
[44] 웹사이트 지진예지연락회 회보 제51권 http://cais.gsi.go.j[...]
[45] 논문 오카무라 유키노부: 동해 동쪽 가장자리의 지질 구조와 진원 단층과의 관계 http://dx.doi.org/10[...] 지질학 잡지 2010
[46] 웹사이트 1993년 홋카이도 남서쪽 앞바다 지진 (M7.8)의 특성화 진원 모델 http://www.pari.go.j[...] 일본 항만공항기술연구소 항만공항기술연구소 지진방재연구영역 내진구조연구팀 지진동연구팀
[47] 웹사이트 1984년 오쿠시리토 군발 지진 활동 http://eprints.lib.h[...] 홋카이도 대학 이학부 지구 물리학 교실 201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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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뉴스 일본 훗카이도 오쿠시리섬 지진 해일 강타 https://news.kbs.co.[...] 1993-07-13
[50] 뉴스 오늘 새벽 강원도 해안 해일로 인해 53척 침몰,파손 https://imnews.imbc.[...] 199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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