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용주사 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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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화성 용주사 동종은 청동으로 주조된 종으로, 854년에 제작되어 사찰에 설치되었다. 병자호란 때 사찰이 소실되었지만 종은 살아남았고, 사찰 재건 후 다시 설치되었다. 종의 형태와 문양으로 인해 고려 전기의 종으로 추정된다. 종신에는 비천상, 삼존상, 당좌, 유곽, 유두 등의 문양이 있으며, 현재 용주사에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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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용주사 동종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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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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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용주사 동종 |
한자 명칭 | 龍珠寺 銅鐘 |
로마자 표기 | Yongjusa Dongjong |
위치 | 경기도 화성시 용주로 136, 용주사 (송산동) |
문화재 정보 | |
국가 | 대한민국 |
유형 | 국보 |
지정 번호 | 120 |
지정일 | 1964년 3월 30일 |
시대 | 고려시대 |
소유자 | 용주사 |
문화재청 ID | 11,01200000,31 |
2. 역사
이 청동 종은 몸체에 새겨진 글에 따르면 통일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주조되어 사찰에 설치되었다.[1][2][3] 그러나 사찰은 병자호란 때인 1636년에 소실되었고, 종은 기적적으로 화를 면했다.[1][4] 이후 1790년 사찰이 재건되면서 종도 다시 제자리에 설치되었다.[1]
비록 종 몸체에는 854년 조성 기록이 있으나, 양식적 특징으로 인해 학계에서는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이 종은 "대한민국의 국보" 제120호로 지정되어 있다.[3][4]
2. 1. 제작 시기 논란
종 몸체에는 이 종이 통일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만들어졌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이 글은 후대에 새겨진 것으로 보이며, 종의 실제 형태나 문양 등 양식이 854년 당시의 신라 종과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이러한 양식적 특징 때문에 학계에서는 이 종을 신라 시대가 아닌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3. 구조 및 특징
신라 종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면서도 고려 초기의 특징을 함께 보여주는 거대한 범종이다. 높이는 1.44m, 입지름은 0.87m, 무게는 1.5ton에 달한다.
종의 상부에는 소리의 울림을 돕는 용통(음통)과 고리 역할을 하는 용 모양의 용뉴가 있다. 종 어깨 부분에는 장식적인 띠가 둘러져 있으며, 네 개의 사각형 유곽과 연결된다. 몸체에는 비천상, 삼존상, 당좌(종을 치는 부분), 유곽과 유두 등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특히 종 입구 부분의 넓은 띠에 새겨진 덩굴무늬는 이 종의 독특한 특징으로 꼽힌다.
종 몸체에는 통일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만들어졌다는 글이 새겨져 있으나, 이는 후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종의 형태와 문양 등을 고려할 때 학계에서는 고려 전기의 종으로 보고 있다. 용통에 약간 금이 가고 유두 일부가 부서진 것을 제외하면 보존 상태는 양호하며, 조각 수법이 뛰어나 고려 시대 종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3. 1. 용뉴와 음통
종의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돕는 음통(용통)이 있다.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 한 마리가 여의주를 입에 물고 두 발로 힘차게 몸을 들어 올리는 형상이다.3. 2. 문양
종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돕는 용통이 있고,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두 발로 힘차게 몸을 들어 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종의 어깨 부분은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고, 그 아래에는 위아래로 서로 어긋나게 반원을 그리고 그 안에 꽃과 구슬무늬를 새긴 넓은 띠를 두르고 있다.종의 몸체에는 비천상, 삼존상, 당좌, 유곽과 유두 등이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다.
종 입구 부분의 넓은 띠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고 어깨 띠와는 다르게 덩굴무늬를 새겨 넣어 이 종의 특징이 되고 있다.
3. 2. 1. 비천상
종의 몸체 앞뒤에는 비천상이 새겨져 있으며, 좌우에는 삼존상(三尊像)이 배치되어 있다. 비천상과 삼존상은 모두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으로, 가볍게 날리는 옷자락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3. 2. 2. 삼존상
종의 몸체 좌우에는 삼존상(三尊像)이 배치되어 있다. 비천상과 마찬가지로 삼존상 역시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으며, 옷자락이 가볍게 날리는 듯한 모습이다.3. 2. 3. 당좌
종의 몸체에는 앞뒤로 비천상이, 좌우로는 삼존상(三尊像)이 배치되어 있으며,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는 네 곳에 마련되어 있다.3. 2. 4. 유곽과 유두
종의 어깨 부분에는 구슬무늬 테두리가 있고, 그 아래에는 위아래로 서로 어긋나게 반원을 그리고 그 안에 꽃과 구슬무늬를 새긴 넓은 띠가 둘러져 있다. 이 띠는 사각형 모양의 유곽과 한 면이 붙어 있다. 종 몸체에는 총 4곳에 사각형 모양의 유곽이 있으며, 각 유곽 안에는 원래 9개의 돌출된 연꽃 모양 유두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1곳의 유곽에만 유두가 남아 있고 나머지는 부서진 상태이다.3. 3. 하단 띠
종 입구 부분의 넓은 띠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고 어깨띠와는 다르게 덩굴무늬를 두고 있어 이 종의 특징이 되고 있다.4. 보존 상태
용통에 약간 금이 간 것과 유곽 4곳 중 3곳의 유두가 부서져 현재는 1곳만 남아 있는 것을 제외하면 전반적인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조각 수법이 뛰어나 고려 종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5. 사진
6. 평가
신라 종 양식을 보이지만,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종 몸체에는 통일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만들어졌다는 글이 후대에 새겨져 있으나, 종의 형태와 문양이 이 시대와 일치하지 않아 학계에서는 고려 전기의 종으로 보고 있다. 용통에 약간 금이 가고 유두 일부가 부서진 것을 제외하면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조각 수법이 뛰어나 고려시대 범종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참조
[1]
서적
The Princeton Dictionary of Buddhism
https://books.googl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3-11-24
[2]
서적
Frommer's South Korea
https://books.google[...]
John Wiley & Sons
2012-05-31
[3]
웹사이트
National Treasure 120
http://jikimi.cha.go[...]
2014-09-01
[4]
웹사이트
Yongjusa Temple
http://english.visit[...]
201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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