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야마 마사히데 (1909년)
1. 개요
가나야마 마사히데(1909년)는 일본의 외교관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바티칸에서 근무하며 교황의 중재를 통해 일본의 조기 항복을 이끌어 내려 노력했다. 종전 후 바티칸 주재 특명전권공사, 하와이 주재 총영사, 외무성 유럽대양주 국장 등을 역임했으며, 1963년부터 1972년까지 칠레, 폴란드, 대한민국 주재 일본 대사를 지냈다. 특히 대한민국 대사 시절에는 한일기본조약 체결 이후 양국 관계 발전에 기여했으나, 과거사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972년 은퇴 후 여러 국제 연구 및 문화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1997년 사망하여 서울 근처 가톨릭 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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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주재 일본 대사 -
미야지마 아키오
미야지마 아키오는 와세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외무성에 입성하여 북미국 과장, 주대한민국 공사, 터키 및 폴란드 대사 등을 역임한 일본의 외교관이다. -
1909년 출생 -
이병철
대한민국 기업인인 이병철은 삼성그룹의 창업주로, 무역업을 시작으로 제조업, 전자산업, 금융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여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
1909년 출생 -
딘 러스크
딘 러스크는 미국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 케네디 및 존슨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하며 쿠바 미사일 위기 외교적 해결 지지, 베트남 전쟁 미국 군사 개입 확대 옹호 등의 활동을 했다. -
1997년 사망 -
이호 (법조인)
이호는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 후 법조인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주일본 대사 등을 역임하고 12·12 군사 반란 이후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을 지냈다. -
1997년 사망 -
덩샤오핑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사후 중국 최고지도자가 되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 중국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나 톈안먼 사건 무력 진압 등 비판도 받으며, 실사구시와 선부론을 통해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하고 일국양제 원칙을 제시한 중국의 정치가이자 개혁가이다.
2. 외교 경력
가나야마 마사히데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2년부터 1945년까지 하라다 켄 대사 아래 바티칸에서 근무하며, 1945년 봄에는 교황의 중재를 통해 일본의 조기 항복을 이끌어내려 시도했다.
전후에는 하라다의 뒤를 이어 바티칸 주재 특명전권공사(~1952년)를 지냈고, 이후 필리핀 주재 참사관, 하와이 주재 총영사(1954년~1957년), 외무성 유럽대양주 국장, 뉴욕 주재 총영사(1961년~1963년) 등 다양한 외교 보직을 거쳤다. 뉴욕 총영사 재임 중이던 1962년과 1963년에는 뉴욕 외국 영사 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1963년부터 1972년까지는 칠레, 폴란드, 대한민국 주재 일본 대사를 차례로 역임했다. 1972년 외교관 생활에서 은퇴한 후에도 여러 국제 연구 및 문화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1997년 사망한 지 9개월 후 대한민국 서울 근교의 가톨릭 묘지에 안장되었다.
2.1. 제2차 세계 대전과 바티칸
가나야마는 1942년부터 1945년까지 하라다 켄 대사 밑에서 바티칸에서 근무했다. 바티칸 근무 중이던 1945년 봄, 그는 교황의 중재를 통해 미국과 일본 정부 사이의 협상을 이끌어내려 시도했다. 이는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 폭탄 투하를 피하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조기 항복을 얻기 위한 노력이었다.
2.2. 전후 외교 활동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나야마는 하라다 켄의 뒤를 이어 바티칸 주재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되어 1952년까지 재직했다. 이후 필리핀 주재 참사관을 지냈다. 1954년부터 1957년까지는 하와이 주재 총영사로 근무했으며, 그 후 4년 동안 외무성 유럽대양주 국장을 역임했다. 1961년부터 1963년까지는 뉴욕 주재 총영사였고, 1962년과 1963년에는 뉴욕 외국 영사 협회 회장을 맡았다. 1963년부터 1972년까지는 칠레, 폴란드, 대한민국 주재 일본 대사를 차례로 역임했다. 그는 1972년에 외교관 생활을 은퇴했지만, 이후에도 여러 국제 연구 및 문화 단체에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