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레 라벨
1. 개요
가브리엘레 라벨은 1880년 빈에서 태어난 학자이다. 빈 대학교에서 식물학을 공부하다 이론물리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 등과 함께 수학했으며, 기체 압력에 따른 수소 스펙트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울증 진단을 받고 철학을 시작하여 괴테의 문헌을 연구, 《괴테와 칸트》를 출간했다. 미국 '소사이어티 포 사이언스 앤 더 퍼블릭'에 기고하며 다양한 분야의 글을 썼고,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영국으로 피난하여 케임브리지에 정착, 과학 및 역사 관련 저술 활동을 했다. 1963년 케임브리지에서 사망했으며, 저작들은 처칠 기록 보관 센터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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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880년 |
|---|---|
| 출생지 | 오스트리아 빈 |
| 사망 | 1963년 8월 |
| 사망 장소 | 잉글랜드 케임브리지 |
| 모교 | 빈 대학교 |
| 직업 | 물리학자, 식물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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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티 코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 미국의 생화학자 거티 코리는 남편 칼 코리와 탄수화물 대사를 연구하여 1947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공동 수상했으며, 글리코겐 전환 과정 연구와 코리 회로 발견에 기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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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 마이트너
리제 마이트너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물리학자로, 방사능 및 핵분열 연구에 핵심적인 공헌을 했으며, 오토 한과의 협력 연구와 핵분열 현상 이론적 설명으로 핵물리학 발전에 기여했으나, 나치 박해로 망명 후 노벨상 수상에서 제외되었지만, 마이트네륨 원소명으로 기념되며 과학계 성차별 문제의 대표적 사례로 논의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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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러시아 혁명 이후 볼셰비키 정부에 참여하여 여성 권익 증진에 힘쓰고 세계 최초의 여성 정책 담당 부서인 여성부를 창설했으며, 급진적인 여성 해방론과 자유 연애 사상으로 사회에 반향을 일으킨 혁명가이자 정치인, 외교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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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식수
엘렌 식수는 프랑스의 여성주의 이론가, 철학자, 문학 평론가, 소설가, 극작가로서 여성적 글쓰기를 주창하고 여성학 연구에 기여했으며 자크 데리다와 함께 활동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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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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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2. 생애
가브리엘레 라벨은 1880년 빈에서 태어나 빈 대학교에서 처음에는 식물학을 공부했다. 이후 이론물리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라이프치히와 베를린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 등에게 배웠으며, 1923년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강 문제로 요양하며 철학을 접하게 되었고, 이후 바이마르에서 괴테 문헌을 연구하여 1927년 《괴테와 칸트》를 출간하는 등 저술 활동을 시작했다. 1930년대에는 사이언스 서비스 등에 다양한 과학 주제로 글을 기고했으며, 1940년 나치 독일의 정치적 상황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미국에서 잠시 활동하다 영국 케임브리지에 정착하여 진화, 유전학 등 과학 및 역사 관련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 라벨은 1963년 8월 27일 케임브리지에서 사망했으며, 그녀의 자료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처칠 칼리지에 보관되어 있다.
2.1. 초기 생애와 교육
가브리엘레 라벨은 1880년 빈에서 변호사의 세 자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라벨은 빈 대학교에서 리하르트 베트슈타인에게서 식물학을 배웠다. 그녀는 특정 하등 식물이 주변 환경에 적응하며 나타내는 색상 변화에 대한 실험 연구를 진행했다. 이후 이론물리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라이프치히와 베를린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 등과 함께 공부했다. 1923년에는 "기체 압력에 따른 수소 스펙트럼의 방출선 강도"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2. 조울증과 철학 연구
1923년 조울증 진단을 받고 2년 동안 요양소에서 지냈다. 이 시기 동안 헤르만 카이저링과 루돌프 슈타이너의 연구를 접하며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문헌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바이마르에 있는 괴테 기록 보관소에서 괴테의 문헌을 연구했다. 1927년에는 괴테와 칸트에 관한 연구 결과를 담은 《괴테와 칸트》(Goethe und Kant독일어)를 출간하였다.
2.3. 과학 저술 활동과 망명
1932년 라벨은 독일에서 연구하는 가운데 미국 소사이어티 포 사이언스 앤 더 퍼블릭(Society for Science & the Public, 당시 명칭 사이언스 서비스)의 정규 기고자가 되었다. 그녀는 기고가로서 고생물학에서 매독, 대륙 이동에서 심리치료 및 시 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한 글을 기고하였다.
1940년 5월, 제2차 세계 대전을 앞두고 독일 내 경제적, 정치적 상황이 악화되자 라벨은 영국으로 피난하였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4년간 강의 활동을 하였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케임브리지에 정착한 라벨은 진화, 유전학과 같은 과학 분야와 오스트리아의 카를 1세와 같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글들을 썼다.
2.4. 케임브리지 정착과 말년
1940년 5월, 라벨은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독일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 악화로 인해 영국으로 피난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4년 동안 강연 활동을 했다. 영국 케임브리지에 정착한 라벨은 진화, 유전학과 같은 과학 분야와 오스트리아의 카를 1세와 같은 역사적 주제에 대한 글을 집필했다.
라벨은 1963년 8월 27일 케임브리지에서 사망했다. 그녀가 남긴 논문과 문헌들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처칠 칼리지 내 처칠 기록 보관 센터에 보관되어 있다.
3. 대표 저작
* 《괴테와 칸트》 (1927년, 자가 출판)
* 《칸트: 선집》 (1963년,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