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노미야
1. 개요
가야노미야는 1900년 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친왕의 둘째 아들 구니노리 왕을 초대 당주로 하여 창설된 일본의 궁가이다. 구니노리 왕은 동생에게 궁호를 양보하고 별도의 궁가를 창설했으며, 궁호는 아버지의 저택에 있던 비자나무에서 유래했다. 1947년 2대 쓰네노리 왕 대에 황적을 이탈하여 궁가로서의 역사가 끝났고, 현재는 쓰네노리 왕의 손자가 제사를 이어가고 있다. 가야노미야는 황실과 친척 관계에 있으며, 가쿠슈인 동창을 통해 일본 왕실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가야노미야 궁저는 교토와 도쿄에 있었으며, 현재는 교토의 부지는 호텔로, 도쿄는 전몰자 묘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 이름 | 가야노미야 |
|---|---|
| 한자 표기 | 賀陽宮 |
| 로마자 표기 | Kaya-no-miya |
| 관련 인물 | 가야노미야 구니노리 친왕 가야노미야 쓰네노리 왕 가야 구니나가 가야 하루노리 가야 마사노리 |
| 가문 | 賀陽宮家 |
|---|---|
| 가문 문양 | 가야노미야 국화 |
| 본성 | 불명 |
| 시조 | 가야노미야 구니노리 친왕 (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친왕의 제2왕자) |
| 종별 | 황족 (미야케) |
| 출신지 | 교토 (야마시로국) |
| 근거지 | 도쿄부도쿄시고지마치구이치반초 (현재 도쿄도지요다구 산반초) 효고현무코군스마정 (현재 효고현 고베시스마구) |
| 지류 | 불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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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노미야 -
가야 쓰네노리
가야 쓰네노리는 20세기 초 일본 황족으로 태어나 육군 장교로 중일 전쟁에 참전했고, 난징 대학살 이후 천황 특사로 파견되었으며, 전후 황족 지위를 잃고 평민으로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
궁가 -
구니노미야
구니노미야는 아사히코 친왕을 시작으로 쿠니요시 왕, 아사아키라 왕까지 이어진 일본 황족 계보이며, 육군 대장과 해군 중장을 역임했으며, 저택은 교토와 히로오에 위치했다. -
궁가 -
나시모토노미야
나시모토노미야는 후시미노미야에서 갈라져 나온 궁가로, 초대 당주 아사히코 친왕은 신정부 군사 제도 확립에 기여했으나, 쇼와 시대에 황적에서 이탈하여 남계 혈통이 단절되었고 현재는 양자의 후손이 명맥을 잇고 있다.
2. 역사
1900년(메이지 33년) 5월 9일, 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친왕의 둘째 아들 구니노리 왕을 초대 당주로 하여 창설되었다. 구니노리 왕은 형이 요절했기 때문에 구니노미야의 궁호를 계승할 예정이었지만, 병약하여 동생에게 양보하고 별도로 궁가를 창설했다. 궁호는 아버지 아사히코 친왕이 칭했던 궁호에서 유래했다.
1947년 (쇼와 22년) 10월 14일, 2대 쓰네노리 왕 대에 황적 이탈하였다. 현재 구 궁가의 제사 계승자는 쓰네노리 왕의 손자인 5대 마사노리이다.
구니노리 왕이 고준 황후의 백부이고, 쓰네노리 왕비 도시코가 데이메이 황후의 조카이기 때문에, 현재의 황실과는 친척 관계에 있다. 가야 가문과 황실의 관계는 기쿠에이친보쿠카이・도키와카이를 통해 깊으며, 마사노리는 가쿠슈인 초등과부터 가쿠슈인 대학에 이르기까지 현 일왕의 동창이었다.
2.1. 창설 배경
1900년(메이지 33년) 5월 9일, 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친왕의 둘째 아들 구니노리 왕을 초대 당주로 하여 창설되었다. 구니노리 왕은 형이 요절했기 때문에 구니노미야의 궁호를 계승할 예정이었지만, 병약하여 동생인 구니요시 왕에게 양보하고, 별도로 궁가를 창설했다.
궁호의 유래는 아버지인 아사히코 친왕이 구니노미야 창설 이전에 칭했던 궁호이다. 아사히코 친왕은 막부 말기에 환속했을 때, 처음에는 "나카가와노미야"를 칭했지만, 조정의 수뇌부로서 일회상정권과 연계했던 시기에 "가야노미야"로 개칭하여 궁가에 편입되었다. 궁호는 아사히코 친왕 저택의 가야(榧, 비자나무) 노목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여기에 헤이안 시대 후기의 사토다이리인 가요인 (고요인)의 글자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2.2. 궁호의 유래
1900년(메이지 33년) 5월 9일, 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친왕의 둘째 아들 구니노리 왕을 초대 당주로 하여 가야노미야가 창설되었다. 구니노리 왕은 형이 요절했기 때문에 구니노미야의 궁호를 계승할 예정이었지만, 병약하여 동생인 구니요시 왕에게 양보하고, 별도로 미야케(宮家)를 창설했다.
궁호는 아버지인 아사히코 친왕이 구니노미야 창설 이전에 칭했던 궁호에서 유래했다. 아사히코 친왕은 막부 말기에 환속했을 때, 처음에는 "나카가와노미야"(中川宮)를 칭했지만, 조정의 수뇌부로서 이치카이소 정권과 연계했던 시기에 "가야노미야"로 개칭하여 미야케 반열에 올랐다. 이 궁호는 당시 아사히코 친왕의 저택에 있던 비자나무(가야) 노목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여기에 헤이안 시대 후기의 사토다이리인 가요인(賀陽院, 고요인)의 글자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2.3. 황적 이탈과 현재
1947년 10월 14일, 2대 쓰네노리 왕 대에 황적에서 이탈하여 가야 가문을 이루었고, 쓰네노리 왕도 가야 쓰네노리라 칭하게 되면서 가야노미야는 2대 만에 궁가로서의 역사가 끝났다. 이후 옛 미야케의 제사는 쓰네노리 왕의 손자인 5대 마사노리가 이어받아 거행하고 있다.
구니노리 왕은 고준 황후의 백부였고, 쓰네노리 왕비 도시코는 데이메이 황후의 조카였기 때문에 현재의 황실과는 친척 관계에 있다. 가야 가문과 황실의 관계는 기쿠에이친보쿠카이・도키와카이를 통해 깊으며, 마사노리는 가쿠슈인 초등과부터 가쿠슈인 대학에 이르기까지 현 일왕의 동창이었다.
3.1. 가계도
4. 기타
가야노미야는 교토와 도쿄에 저택을 두었다. 교토 저택은 산주산겐도 인접지에 있었으며, 현재는 호텔 부지로 사용되고 담장만 남아있다. 도쿄 저택은 지도가후치에 있었으나 공습으로 소실되어, 현재는 지도가후치 전몰자 묘원(도쿄도지요다구 3번가)이 되었다. 그 외에 오기쿠보, 스마 등에 별저가 있었다.
교토 본저의 문은 1967년(쇼와 42년)에 히로시마현의 신쇼젠지로 이전되었으나, 저택은 1994년(헤이세이 6년)에 소실되었다.
4.1. 궁저
가야노미야 궁저는 교토와 도쿄에 있었다. 교토의 궁저는 산주산겐도 옆에 있었으며, 현재 부지는 호텔이 들어섰고 담장만 남아 있다. 도쿄의 궁저는 지토리가후치에 있었는데 공습으로 소실되었고, 현재는 해당 부지에 지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도쿄 도 지요다 구 산반초)이 들어서 있다. 그밖에 오기쿠보, 스마 등에도 가야노미야의 별저(별장)가 있었다.
교토 본저의 문과 저택은 1967년(쇼와 42년)에 히로시마현의 신쇼젠지로 이전되었으나, 저택은 1994년(헤이세이 6년)에 소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