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야마 요헤이
1. 개요
가지야마 요헤이는 일본의 축구 선수로, FC 도쿄 유소년팀에서 시작하여 2003년 데뷔했다. 그는 FC 도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J리그컵 2회, J2리그 1회, 천황배 1회 우승을 경험했다. 2013년 파나티나이코스 FC로 임대 이적하여 그리스 리그에서 뛰었으며, 이후 FC 도쿄로 복귀와 임대를 반복하다 2018년 알비렉스 니가타에서 은퇴했다. 그는 U-20, U-23 일본 대표팀으로도 활약했다. 은퇴 후에는 FC 도쿄 코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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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어 이름 | 梶山 陽平 (かじやま ようへい) |
|---|---|
| 로마자 표기 | Kajiyama Yōhei |
| 출생일 | 1985년 9월 24일 |
| 출생지 | 일본 도쿄도 고토구 |
| 키 | 1.80m |
| 포지션 | 미드필더 |
| 유소년 클럽 | FC 도쿄 (1998–2003) |
|---|---|
| 프로 클럽 | FC 도쿄 (2003–2018) → 파나티나이코스 (임대) (2013) → 오이타 트리니타 (임대) (2013) → FC 도쿄 U-23 (임대) (2016–2018) 알비렉스 니가타 (2018) |
| FC 도쿄 출장 및 득점 | 292경기 21골 |
| 파나티나이코스 출장 및 득점 | 7경기 0골 |
| 오이타 트리니타 출장 및 득점 | 9경기 1골 |
| FC 도쿄 U-23 출장 및 득점 | 13경기 0골 |
| 알비렉스 니가타 출장 및 득점 | 3경기 0골 |
| 총 출장 및 득점 | 324경기 22골 |
| 국가대표팀 | 일본 U-20 (2005) 일본 U-23 (2008) |
|---|---|
| U-20 출장 및 득점 | 3경기 0골 |
| U-23 출장 및 득점 | 3경기 0골 |
| 소속팀 | FC 도쿄 |
|---|---|
| J리그컵 | 2004 2009 |
| 천황배 | 2011 |
-
수페르리가 엘라다의 일본인 축구 선수 -
가가와 신지
가가와 신지는 2006년 세레소 오사카에서 프로 데뷔하여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등 유럽 명문 클럽과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일본의 축구 선수로, 현재 J1리그의 세레소 오사카에서 미드필더로 뛰고 있다. -
도쿄도 출신 -
이와야 사자나미
이와야 사자나미는 메이지 시대에 아동 문학을 보급하고 일본 최초의 아동 문학 총서 간행, 전승 설화 리텔링, '옛날이야기 하이쿠 그림' 창조 등을 통해 일본 근대 아동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아동 문학가, 소설가, 시인, 수필가이자 문예 평론가이다. -
도쿄도 출신 -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태어나 소설, 희곡,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일본의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갈등을 작품에 담아낸 20세기 일본 문학의 중요한 인물이며, 1970년 자위대에서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할복 자살했다. -
J2리그의 축구 선수 -
마루야마 요시아키
마루야마 요시아키는 일본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J리그와 태국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J리그 아시아 앰배서더로 활동했다. -
J2리그의 축구 선수 -
고지마 노부유키
고지마 노부유키는 쇼난 벨마레, 아비스파 후쿠오카 등에서 활약한 일본의 은퇴한 축구 골키퍼 선수로, 쇼난 벨마레 시절 천황배와 아시안 컵 위너스 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일본 국가대표로도 활동했고 은퇴 후에는 해설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 클럽 경력
가지야마 요헤이는 2003년 FC 도쿄 유소년팀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뛰어난 패싱력과 볼 컨트롤, 양발 슈팅 능력을 갖춘 플레이메이커로, 2003년 데뷔 후 2004년부터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 2004년 J리그컵에서 FC 도쿄가 우승하며 클럽 역사상 첫 타이틀을 획득하는데 기여했고, 2005년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자리 잡았다. 2008년에는 등번호 10번을 부여받았고, 2009년 J리그컵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2010 시즌 16위로 J2리그로 강등되었다가, 2011년 J2리그 우승 및 2011년 천황배 우승과 함께 1년 만에 J1으로 복귀했다.
2013년 수페르리가 엘라다 파나티나이코스로 임대되었으나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FC 도쿄로 복귀했고, 8월에 오이타 트리니타로 다시 임대되었다. 오이타에서 많은 경기에 출전했지만, 팀은 2013 시즌 최하위를 기록했다. 2014년 FC 도쿄로 복귀했으나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2018년에는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2018년 7월 J2리그 알비렉스 니가타로 이적했으나, 2018 시즌 말 은퇴했다.
| 클럽 | 시즌 | 리그 | 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 | J.리그컵 | 대륙1 | 합계 | |||||
|---|---|---|---|---|---|---|---|---|---|---|---|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
| FC 도쿄 | 2003 | 3 | 0 | 1 | 0 | 3 | 0 | – | 7 | 0 | |
| 2004 | 16 | 2 | 1 | 0 | 5 | 2 | – | 22 | 4 | ||
| 2005 | 26 | 2 | 2 | 0 | 1 | 0 | – | 29 | 2 | ||
| 2006 | 30 | 3 | 2 | 1 | 5 | 1 | – | 37 | 5 | ||
| 2007 | 24 | 1 | 2 | 1 | 6 | 0 | – | 32 | 2 | ||
| 2008 | 28 | 1 | 4 | 1 | 5 | 0 | – | 37 | 2 | ||
| 2009 | 31 | 2 | 3 | 1 | 10 | 1 | – | 44 | 4 | ||
| 2010 | 24 | 2 | 3 | 0 | 6 | 1 | 1 | 0 | 34 | 3 | |
| 2011 | 34 | 6 | 6 | 0 | – | – | 40 | 6 | |||
| 2012 | 26 | 2 | 1 | 0 | 3 | 1 | 4 | 1 | 34 | 4 | |
| 합계||242||21||25||4||44||6||5||1||316||32 | |||||||||||
| 파나티나이코스 | 2012/13 | 7 | 0 | 0 | 0 | – | – | 7 | 0 | ||
| 합계||7||0||0||0||colspan="2"|–||colspan="2"|–||7||0 | |||||||||||
| FC 도쿄 | 2013 | 0 | 0 | 0 | 0 | 0 | 0 | – | 0 | 0 | |
| 합계||0||0||0||0||0||0||colspan="2"|–||0||0 | |||||||||||
| 오이타 트리니타 | 2013 | 9 | 1 | 0 | 0 | 0 | 0 | – | 9 | 1 | |
| 합계||9||1||0||0||0||0||colspan="2"|–||9||1 | |||||||||||
| FC 도쿄 | 2014 | 7 | 0 | 1 | 0 | 0 | 0 | – | 8 | 0 | |
| 2015 | 18 | 0 | 0 | 0 | 0 | 0 | – | 18 | 0 | ||
| 2016 | 14 | 0 | 1 | 0 | 2 | 0 | 0 | 0 | 17 | 0 | |
| 2017 | 11 | 0 | 1 | 0 | 5 | 0 | – | 17 | 0 | ||
| 2018 | 0 | 0 | 0 | 0 | 3 | 1 | – | 3 | 1 | ||
| 합계||50||0||3||0||10||1||0||0||63||1 | |||||||||||
| FC 도쿄 U-23 | 2016 | 3 | 0 | – | – | – | 3 | 0 | |||
| 2017 | 5 | 0 | – | – | – | 5 | 0 | ||||
| 2018 | 5 | 0 | – | – | – | 5 | 0 | ||||
| 합계||13||0||colspan="2"|–||colspan="2"|–||colspan="2"|–||13||0 | |||||||||||
| 알비렉스 니가타 | 2018 | 3 | 0 | 0 | 0 | 0 | 0 | – | 3 | 0 | |
| 합계||3||0||0||0||0||0||colspan="2"|–||3||0 | |||||||||||
| 총합 | |22||28||4||54||7||5||1||411||34 | ||||||||||
1AFC 챔피언스 리그 및 스루가 은행 챔피언십 포함.
2.1. FC 도쿄
2003년 유소년팀에서 FC 도쿄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뛰어난 패싱력과 볼 컨트롤, 그리고 양발을 사용한 슈팅 능력을 갖춘 플레이메이커였다. FC 도쿄는 2004년 J리그컵과 2009년 J리그컵에서 우승했고, 2010 시즌에는 16위로 J2리그로 강등되기도 했다. 2011년 FC 도쿄는 J2리그 우승과 2011년 천황배 우승을 차지하며 1년 만에 J1으로 복귀했다.
2013년 수페르리가 엘라다 파나티나이코스로 임대되었으나,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FC 도쿄로 복귀했다. 이후 오이타 트리니타로 임대되어 많은 경기에 출전했지만, 팀은 2013 시즌 최하위로 강등되었다. 2014년 FC 도쿄로 복귀했지만, 출전 기회가 점차 줄어들었다.
2.1.1. 초기 (2003-2007)
가지야마 요헤이는 1985년 9월 24일 도쿄도 고토구에서 태어났다. 2003년 유소년팀에서 FC 도쿄에 입단하여, 뛰어난 패싱력과 볼 컨트롤, 양발 슈팅 능력을 갖춘 플레이메이커로 평가받았다. 같은 해 나비스코컵 예선 리그 요코하마 FM전에서 후반 30분에 투입되어 공식 데뷔전을 치렀고, 4월 29일 고베전에서는 J1 데뷔도 했다. 당시 오구라 쇼헤이는 가지야마의 볼 키핑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2004년부터 FC 도쿄 1군으로 정식 승격하여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며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나비스코컵 예선 리그 2차전 가시마전에서 중거리 슛으로 공식전 첫 득점을 기록했고, 같은 해 8월 도쿄 더비에서도 중거리 슛으로 리그 첫 득점을 올렸다. 2nd 스테이지 14차전 이치하라전에서는 오른발 슛 페인팅 후 왼발 득점으로 활약하며 J리그 신인상을 수상했다. FC 도쿄는 2004년 J리그컵에서 우승하며 클럽 역사상 첫 번째 주요 타이틀을 획득했다.
같은 해 8월, 데포르티보 라코루냐와의 친선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어 현지 저널리스트 헤수스 수아레스로부터 미카엘 라우드루프와 같다는 극찬을 받으며, 리가 에스파뇰라에서도 통할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5년에는 왼쪽 무릎 수술 후 재활을 거쳐 2005년 월드 유스 네덜란드 대회에 출전하여 3경기에서 중원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같은 해 7월, FC 도쿄에서 레귤러로 정착하여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장했지만, 경기력 기복 개선에 힘썼다.
2007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 출전과 후쿠니시 다카시의 합류로 초반 출전 기회가 줄었지만, 활동량을 늘려 제11절 이후 포지션을 되찾았다. J1 23절 히로시마전에서 28미터 거리 무회전 프리킥을 성공시켰다. 9월 12일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 3차전 U-22 카타르전에서 헤딩 결승골을 넣었지만, 왼쪽 경골 고원 골절로 시즌 후반을 재활에 전념했다. 같은 해부터 다나베 노부아키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고 해외 이적을 염두에 두었다.
2.1.2. 전성기 (2008-2012)
2008년부터 에이스를 상징하는 "등번호 10번"을 물려받았다. 이는 클럽의 오랜 염원이었던 '유소년 출신 선수가 등번호 10번'을 다는 것을 실현한 것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축구 일본 대표팀(U-23)에서도 등번호 10번을 달았고, 가와가 신지는 "함께 하면 정말 잘한다. 종패스 한 번에도 아이디어가 있다. 공격의 핵"이라고 평가하는 등 동료 선수들에게도 인정받으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일본 대표팀은 3전 전패를 기록했고, 가지야마 역시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같은 해부터 조후쿠 히로시가 FC 도쿄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가지야마는 중원에서 수비적인 안정감을 더했다. 공격의 기점으로서 패스를 배급하며 팀의 핵심으로 기능했고, 이시카와 나오히로는 "FC 도쿄는 (가지야마) 요헤이의 팀"이라고 언급하며 팀의 주축 선수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나나미 히로시는 가지야마에 대해 "전방의 선수들을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굴리는 듯한 플레이를 보여준다. 그런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선수는 (일본인 J리거 중에서는 가지야마 외에) 얏토(엔도 야스히토)와 (나카무라) 겐고 정도(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2009년 12월, 오랫동안 통증에 시달렸던 왼쪽 발목과 오른쪽 무릎을 수술하여 회복을 도모했고, 장기였던 강한 킥도 부활했다. 2010년 개막전에 교체 출전으로 복귀했다. 11월에 부상에서 복귀한 요네모토 타쿠지 이후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뛰었다. 주장 도쿠나가 유헤이는 "기점으로서 안심하고 공을 맡길 수 있어 공격 시간을 벌 수 있다", "공격과 수비 모두 활동량이 많아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했지만, 선수 부족과 수술 경과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경기에 출전해야 했고, 선수 생활 처음으로 J2 강등을 겪는 등 만족스럽지 못한 시즌을 보냈다.
2011년에는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다카하시 히데토와 짝을 이루어 플레이했다. 요네모토와 다카하시의 플레이 영역 차이와, 공격의 기점인 가지야마에게 집중되는 마크를 분산시키기 위해 다카하시와 세로로 위치를 조정하면서, 패스 공급뿐만 아니라 더 전방에서 득점에 관여하는 플레이를 늘렸다. FC 도쿄는 J2리그에서 우승하며 1년 만에 J1리그로 복귀했고, 2011년 천황배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2012년 1월, 독일 분데스리가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훈련에 참가했다. 이 해부터 감독으로 취임한 란코 포포비치는 가지야마를 "아무도 갖지 못한 능력을 가진 선수"라고 평가했고, 클럽의 주장으로 임명했다. 하세가와 아리아자스르가 중원에 합류하면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고정 기용되었다.
2.1.3. 임대 (2013)
2013년, 가지야마는 수페르리가 엘라다 클럽 파나티나이코스로 임대되었으나, 경기에 전혀 출전하지 못했다. 같은 해 8월, 오이타 트리니타로 임대되어 많은 경기에 출전했지만, 팀은 2013 시즌 최하위를 기록했다. 오이타에서 그는 팀의 중심으로서 경기를 컨트롤하는 역할을 맡았고, 타사카 카즈아키 감독은 그를 "격의 차이"를 보여주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오이타에서 실전 복귀 후 고질적인 오른 무릎 통증이 재발했으나, J1 잔류 경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강행 출전을 계속했고, J2 강등이 결정된 같은 해 10월 제28절 C 오사카전을 마지막으로 전선에서 이탈했다.
2.1.4. 복귀와 은퇴 (2014-2018)
2014년, 가지야마는 FC 도쿄로 복귀했다. 그러나 출전 기회는 해마다 줄어들었고, 2018년에는 거의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2018년 7월, J2리그 알비렉스 니가타로 이적했지만,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만족스러운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고, 제31절 에히메 FC전에서 부상이 악화되었다. 같은 해 11월 14일,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2.2. 알비렉스 니가타
가지야마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5학년 때 "집에서 가까웠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도쿄 가스 축구 스쿨에 입회했고, 이후 FC 도쿄 U-15, U-18로 승격했다. 동기로는 오장은, 리 타다나리, 사이토 마사야, 가마다 지로, 신교지 가즈히코 등이 있었다.
U-18 소속 시절부터 제2종 등록 선수로서 1군 팀에 동행했고, 2003년 3월 8일(당시 고등학교 2학년) 나비스코컵 예선 리그 요코하마 FM전 (요코하마 국제)에서 후반 30분부터 투입되어 공식전 첫 출전을 했다. 같은 해 4월 29일 고베전에서 J1 데뷔도 했다. 당시부터 도쿄도 선발팀 동료인 오구라 쇼헤이가 "맡겨 놓으면 공을 빼앗기는 일은 없다"라고 말하는 등 뛰어난 볼 키핑력을 가지고 있었다.
3. 국가대표 경력
2005년 6월, 가지야마는 2005년 FIFA U-20 청소년 선수권 대회를 위해 일본 U-20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이 대회에서 그는 고바야시 유조와 함께 수비형 미드필더로 3경기에 출전했다. 2008년 8월, 그는 2008년 하계 올림픽을 위해 일본 U-23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이 대회에서 그는 일본 대표팀의 10번 셔츠를 입고 수비형 미드필더로 3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 연도 | 대회 | 소속팀 | 경기 | 득점 |
|---|---|---|---|---|
| 2002 | 국제 유스 축구 in 니가타 | U-17 일본 대표 | ||
| 2003 | 텔보르그 국제 유스 대회 | U-18 일본 대표 | ||
| 국제 유스 축구 in 니가타 | ||||
| SBS컵 | ||||
| 센다이컵 국제 유스 축구 대회 | ||||
| AFC 유스 선수권 예선 | ||||
| 2004 | 툴롱 국제 대회 | U-19 일본 대표 | ||
| SBS컵 | ||||
| AFC U-19 선수권 | ||||
| 말레이시아 대회 | ||||
| 2005 | 월드 유스 선수권 | U-20 일본 대표 | ||
| 네덜란드 대회 | 3 | 0 | ||
| 2006 | U-21 일본 대표 | |||
| 2007 |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2차 예선·최종 예선 | U-22 일본 대표 | ||
| 2008 | 툴롱 국제 대회 | U-23 일본 대표 | ||
| 올림픽·베이징 대회 | 3 | 0 | ||
| 2010 | AFC 아시안컵 2011 예비 등록 | 일본 대표 후보 |
4. 플레이 스타일
가지야마 요헤이는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으며, 정교한 패스와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경기를 조율하는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왼발 킥 능력이 뛰어나 프리킥과 코너킥을 전담하기도 했다.
다음은 가지야마 요헤이의 J리그 및 기타 리그 출장 기록이다.
| 시즌 | 소속팀 | 리그 | 경기 | 득점 | 기타 기록 |
|---|---|---|---|---|---|
| 2003 | FC 도쿄 | J1 | 3 | 0 | J리그컵 3경기 0득점 |
| 2004 | FC 도쿄 | J1 | 16 | 2 | J리그컵 5경기 2득점 |
| 2005 | 26 | 2 | J리그컵 1경기 0득점 | ||
| 2006 | 30 | 3 | J리그컵 5경기 1득점 | ||
| 2007 | 24 | 1 | J리그컵 6경기 0득점 | ||
| 2008 | 28 | 1 | J리그컵 5경기 0득점 | ||
| 2009 | 31 | 2 | J리그컵 10경기 1득점 | ||
| 2010 | 24 | 2 | J리그컵 6경기 1득점, 스루가 은행 챔피언십 1경기 0득점 | ||
| 2011 | J2 | 34 | 6 | ||
| 2012 | J1 | 26 | 2 | J리그컵 3경기 1득점, 수퍼컵 1경기 0득점, AFC 챔피언스리그 4경기 1득점 | |
| 2012-13 | 파나티나이코스 | 수페르리가 | 7 | 0 | |
| 2013 | FC 도쿄 | J1 | 0 | 0 | |
| 오이타 | 9 | 1 | |||
| 2014 | FC 도쿄 | 7 | 0 | J리그컵 1경기 0득점 | |
| 2015 | 18 | 0 | |||
| 2016 | 14 | 0 | J리그컵 2경기 0득점, AFC 챔피언스리그 0경기 0득점 | ||
| 2017 | 11 | 0 | J리그컵 5경기 0득점 | ||
| 2018 | 0 | 0 | J리그컵 3경기 1득점 | ||
| 니가타 | J2 | 3 | 0 | ||
| J1 통산 !! 267 | 16 | ||||
| J2 통산 !! 37 | 6 | ||||
| 그리스 수페르리가 통산 !! 8 | 0 | ||||
주요 출장 기록
* 2003년 3월 8일: 공식전 첫 출장 - 야마자키 나비스코 컵 예선 리그 제1절 vs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요코하마 국립)
* 2003년 4월 29일: J리그 첫 출장 - J1 1st 스테이지 제6절 vs 빗셀 고베 (고베 우이)
* 2004년 4월 29일: 공식전 첫 득점 - 야마자키 나비스코 컵 예선 리그 제2절 vs 가시마 앤틀러스 (가시마)
* 2004년 8월 29일: J리그 첫 득점 - J1 2nd 스테이지 제3절 vs 도쿄 베르디 1969 (국립)
* 2008년 3월 8일: J1 100경기 출장 - J1 제1절 vs 빗셀 고베 (아지스타)
* 2012년 9월 22일: J1 200경기 출장 - J1 제26절 vs 가와사키 프론탈레 (아지스타)
* 2013년 1월 27일: 그리스 수페르리가 첫 출장 - 제19절 vs 아트로미토스 FC
5. 은퇴 이후
가지야마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FC 도쿄 보급부 코치를 맡았으며, 2022년부터는 U-12 코치를 맡고 있다.
6. 개인 수상
* 일본 클럽 유스 선수권 (U-15) 대회 우수 선수 (2000년)
* 전국체육대회 축구 경기 우수 선수 (2003년)
* J리그 우수 신인상 (2004년)
7.1. FC 도쿄
2004년부터 FC 도쿄의 1군에 정식으로 승격되어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며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공식전 첫 득점은 나비스코컵 예선 리그 2차전 가시마전에서 중거리 슛으로 기록했다. 리그전 첫 득점은 같은 해 8월 도쿄 더비에서 역시 중거리 슛으로 얻었다. 2nd 스테이지 14차전 이치하라전에서는 오른발 헛발질로 상대를 제치고 왼발로 득점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 J리그 신인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8월, 스페인에서 열린 데포르티보 라코루냐와의 친선 경기에서 결승골이 되는 중거리 슛을 성공시켰다. 이 경기를 관전한 현지 저널리스트 헤수스 수아레스는 축구 잡지 칼럼에서 가지야마를 "미카엘 라우드루프와 같다"고 극찬하며 "지금 당장 리가 에스파뇰라에서 통용될 선수"라고 단언했다.
이후 부상으로 왼쪽 무릎 수술을 받았다. 2005년 월드 유스 네덜란드 대회에 재활 후임에도 중원의 핵심으로 3경기에 출전했다. 같은 해 7월, 피지컬적인 강점 등을 인정받아 미야자와 마사시 등을 제치고 FC 도쿄에서 주전으로 정착했다. 이후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장했지만, 경기 기복이 있다는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2007년에는 베이징 올림픽 예선 출전과 후쿠니시 다카시의 합류로 초반에는 출전 기회가 줄었지만, 활동량을 늘려 제11절 이후 포지션을 되찾았다. J1 23절 히로시마전에서는 28미터 거리에서 무회전 프리킥을 성공시켰다. 9월 12일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 3차전 U-22 카타르전에서 헤딩 결승골을 넣었지만, 경기 중 왼쪽 경골 고원 골절을 당해 시즌 후반을 재활에 전념했다. 같은 해부터 다나베 노부아키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고 해외 이적을 염두에 두었다.
2008년부터 에이스의 상징인 "등번호 10번"을 물려받았다. 이는 클럽의 염원이었던 '유스 출신 선수가 등번호 10번'을 달게 된 것이었다. 베이징 올림픽 축구 일본 대표(U-23)에서도 등번호 10번을 달고, 가와가 신지가 "함께 하면 정말 잘한다. 종패스 한 번에도 아이디어가 있다. 공격의 핵"이라고 말하는 등 기대를 받았지만, 일본은 3전 전패하며 가지야마도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같은 해부터 조후쿠 히로시가 FC 도쿄 감독으로 취임하여 중원에서의 수비적인 안정감도 향상되었다. 공격의 기점으로서 패스를 배급하며 팀의 심장으로 기능했다. 이시카와 나오히로는 "FC 도쿄는 (가지야마) 요헤이의 팀"이라고 언급하며 팀의 주축으로 확고한 존재가 되었다. 이 해, 가지야마와 대담한 나나미 히로시는 "전선의 선수를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굴리는 듯한 플레이를 보여준다. 그런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선수는 (일본인 J리거 중에서는 가지야마 외에는) 얏토(엔도 야스히토)와 (나카무라) 겐고 정도(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2009년 12월, 왼쪽 발목과 오른쪽 무릎 수술을 통해 증상 회복을 도모했고 장기였던 강한 킥도 부활했다. 2010년 개막전에 교체 출전으로 복귀했다. 11월에 부상으로 이탈했던 요네모토 타쿠지가 복귀한 후부터는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뛰었다. 주장 도쿠나가 유헤이는 "기점으로서 안심하고 볼을 맡길 수 있으므로, 밀어 올리는 시간을 만들 수 있다", "공격도 수비도 활동량도 많아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했지만, 선수 부족과 수술 경과가 좋지 않은 채로 플레이를 계속하여 선수 생활 처음으로 J2 강등을 경험하는 불만족스러운 시즌이 되었다.
2011년에는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다카하시 히데토와 콤비를 이루어 플레이했다. 요네모토와 다카하시의 플레이 에어리어 차이와, 공격 기점인 가지야마에게 집중되는 마크를 분산시키기 위해 다카하시와 종적인 위치를 취함으로써, 배급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전선에서 득점에 관여하는 플레이를 늘렸다.
2012년 1월, 독일 분데스리가·포르투나 뒤셀도르프 훈련에 참가했다. 이 해부터 감독으로 취임한 란코 포포비치는 "아무도 갖지 못한 능력을 가진 선수"라고 평가했고 가지야마는 클럽 주장이 되었다. 같은 해부터 하세가와 아리아자스르가 합류하며 공격형 미드필더로 고정 기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