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수
1. 개요
강덕수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으로, 쌍용양회 입사 후 STX그룹을 창업하여 '샐러리맨 신화'를 이룬 인물이다. 쌍용중공업 재무 임원 시절 외환 위기로 회사가 매각되자 종업원들과 함께 인수하여 STX그룹을 출범시켰다.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STX그룹을 대기업으로 성장시켰으나,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경영에서 물러났다. 이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 한글 이름 | 강덕수 |
|---|---|
| 한자 이름 | 姜德壽 |
| 로마자 표기 | Gang Deoksu |
| 매큔-라이샤워 표기 | Kang Tŏksu |
| 출생일 | 1950년 8월 18일 |
| 출생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
| 국적 | 대한민국 |
| 직업 | 기업인, 경영인 |
| 학력 | 명지대학교 |
| 웹사이트 | Former STX Chairman Kang Deok-su released from pri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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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상업고등학교 동문 -
김영진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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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상업고등학교 동문 -
장영균
장영균은 청원중학교, 동대문상업고등학교, 인하대학교를 졸업한 야구 선수 출신 코치로, 1998년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 특례를 받았으며, 2002년 삼성 라이온즈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고, 은퇴 후 LG 트윈스와 NC 다이노스에서 2군 투수코치로 활동했다. -
21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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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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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기업인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
대한민국의 기업인 -
문재인
2. 생애
경상북도 선산 출신으로, 1973년 쌍용양회에 입사하여 30년 간 직장 생활을 했다. 50세에 STX그룹을 창업하여 "샐러리맨 신화"를 일궜다.
1997년 외환위기로 쌍용그룹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2000년 11월 쌍용그룹은 계열사 쌍용중공업의 지분 34.45%를 한누리컨소시엄에 163에 매각했다. 이 쌍용중공업이 STX그룹의 모체이다.
2000년 외환위기 여파로 쌍용그룹이 어려워지면서 쌍용중공업 재무 총괄 임원으로 재직 중, 퇴출 기업으로 결정되자 자신이 몸담았던 기업을 인수했다. 2001년 5월 1일 쌍용중공업의 명칭을 STX로 변경하며 STX그룹을 출범시켰다.
과감한 인수합병(M&A)을 통해 STX를 대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2007년 재계 순위 18위, 2008년 12위, 2010년 11위를 기록했다. 2010년 5월 1일 STX그룹 창립 9주년 기념 행사에서, 강덕수 회장은 2020년 그룹 매출액을 100(100조 원)로 올리겠다고 말했다. 2010년 당시 대한민국에서 매출액 100조 원을 돌파한 단일 기업은 삼성전자뿐이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의 영향으로 2008년 이후 STX그룹은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2013년 9월 9일 STX 채권단은 이사회를 열어 박동혁 대우조선해양 부사장과 류정형 STX조선 부사장을 등기이사로 선임했다. 강 회장은 2013년 8월 2일 STX팬오션 대표에서 물러난 데 이어, 이사회 결정으로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2014년 5월, 강 전 회장은 회사 돈 55700 횡령, 계열사 자금 284여 원 부당 지원(특경가법상 횡령·배임), 2300대 분식회계를 통한 900대 사기 대출 및 1750어치 회사채 발행(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2014년 10월 30일, 서울중앙지법은 징역 6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분식회계, STX중공업에 대한 86900 상당 연대보증 제공 관련 계열사 부당지원 혐의(배임)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2021년 1월, 대법원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확정했다.
2.1. STX 그룹 창업 이전
경상북도 선산 출신으로, 1969년 동대문상업고등학교(현 청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4년 명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73년 쌍용양회에 입사하여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50세에 뒤늦게 STX그룹을 창업해 "샐러리맨 신화"를 일군 주인공이다.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쌍용그룹은 어려움을 겪었다. 무리한 자동차 사업 투자로 어려움을 겪던 쌍용그룹은 발전용 엔진과 선박용 엔진을 만들던 계열사 쌍용중공업의 지분 34.45%를 2000년 11월에 한누리컨소시엄에 163에 매각했다. 새 주인을 맞은 쌍용중공업이 바로 STX그룹의 모체다.
2000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쌍용그룹이 어려워지면서 쌍용중공업의 재무 총괄 임원(부사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으로 재직하던 중 퇴출 기업으로 결정되자, 자신이 몸담았던 기업을 퇴출시킬 수 없다며 종업원들과 함께 인수했다.
2.2. STX 그룹 창업과 성장
2000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쌍용그룹이 어려워지면서 쌍용중공업 재무 총괄 임원으로 재직하던 중, 퇴출 기업으로 결정되자 자신이 몸담았던 기업을 퇴출시킬 수 없다며 종업원으로 인수하였다. 2001년 5월 1일, 인수한 쌍용중공업의 명칭을 STX로 변경하며 STX그룹을 출범시켰다.
과감한 인수합병(M&A)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STX를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07년 18위, 2008년에는 12위, 2010년 재계 순위 11위를 기록했다.
2010년 5월 1일 STX그룹 창립 9주년 기념 행사에서, 강덕수 회장은 2020년 그룹 매출액을 100(100조 원)로 올리자고 말했다. 2010년 당시 단일 기업으로는 대한민국 1위 기업 삼성전자만이 매출액 100조 원을 돌파한 상태였다.
2.3. STX 그룹 몰락과 경영 퇴진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해 STX그룹은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2013년 8월 2일 강덕수는 STX팬오션 대표에서 물러났고, 2013년 9월 9일 STX조선해양의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에서도 사임하며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이후 채권단의 결정으로 박동혁 대우조선해양 부사장과 류정형 STX조선 부사장이 등기이사로 선임되었다.
2.4. 법적 문제와 재판
2014년 5월, 강덕수는 회사 돈 55700을 횡령하고 계열사 자금 284여 원을 개인 회사에 부당 지원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로 구속 기소되었다. 또한, 2300대 분식회계를 통해 900대 사기 대출을 받고, 1750어치 회사채를 발행한 혐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도 받았다. 그해 10월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김종호 부장판사)는 "자본시장 신뢰와 투명성을 저해하는 회계분식으로 금융기관에 큰 피해를 입혔다"며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강덕수가 STX조선해양 최고재무책임자(CFO)와 공모한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분식회계로 꾸민 허위 재무제표로 은행 대출 900을 받은 혐의(사기)와 1750어치 회사채를 발행·판매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도 1심과 달리 모두 무죄로 보았다. 2심은 또 STX중공업에 대한 86900 상당 연대보증을 제공한 계열사 부당지원 혐의(배임)도 무죄를 선고했다.
2021년 1월, 대법원은 상고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4. 경력
| 기간 | 직책 |
|---|---|
| 1973년–1995년 | 쌍용중공업 |
| 1997년–2000년 | 쌍용중공업 부사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 |
| 2000년–2001년 | 쌍용중공업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 |
| 2001년 | STX영어 사장 |
| 2001년 | STX조선 사장 |
| 2002년 | STX에너지 사장 |
| 2001년–2003년 | STX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 STX 팬오션, STX조선해양, STX엔진, STX에너지 |
| 2003년–2013년 | STX그룹 회장 |
| 2009년 |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
| 2009년 |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
| 2012년 |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
| 2013년 8월 2일 | STX팬오션 대표 퇴임 |
| 2013년 9월 9일 | STX조선해양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직 사임 |
5. 상훈
| 연도 | 상훈 |
|---|---|
| 2003년 | 日本能率協會일본어 컨설팅 글로벌 경영대상 최고경영자대상 |
| 2003년 | 제40회 무역의 날 은탑산업훈장 |
| 2003년 | 산업포장 (대한민국) |
| 2003년 | 글로벌 CEO 대상 (일본경영협회컨설팅) |
| 2005년 | 올해의 최고경영자상 (창원시) |
| 2005년 | 창원시 기업 명예의 전당 헌액 |
| 2005년 | 최고경영자상 (창원) |
| 2006년 | 명지대 총동문회 "자랑스러운 명지인대상" |
| 2007년 | 제1회 대한민국 해양대상 |
| 2007년 | 대한민국 해양대상 대상 (해양산업기술진흥원) |
| 2008년 | 시트레이드 아시아상 올해의 인물상 |
| 2008년 | 중국 다롄시 명예시민 |
| 2008년 | 명지대 자랑스런 명지인상 |
| 2008년 | 다롄시 명예시민 (다롄, 중국) |
| 2008년 | Seatrade 아시아 어워드 올해의 인물 (Seatrade) |
| 2009년 | 제2회 언스트앤영 최우수기업가상 (인더스트리부문) |
| 2009년 | 한국능률협회 제41회 한국의 경영자상 |
| 2009년 | 제18회 다산경영상 |
| 2009년 | 제46회 무역의 날 금탑산업훈장 수상 |
| 2009년 | Ernst & Young 올해의 기업가상 조선 부문 기업가상 (Ernst & Young) |
| 2009년 | 최고경영자상 (한국경영자총협회) |
| 2009년 | 다산경영상 (한국경제신문) |
| 2012년 | 매경이코노미 선정 올해의 CEO |
| 2012년 |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글로벌경영부문 |
| 2012년 | 제7회 서상돈상 |